위로가기 버튼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겁니다 <Ⅰ>

등록일 2022-11-14 18:19 게재일 2022-11-15 17면
스크랩버튼
/삽화 이건욱
/삽화 이건욱

안나는 한 손으로 부른 배를 받쳐 들고 우현을 맞이했다. 부은 두 눈을 남은 한 손으로 훔치며 우현의 앞에 섰다. 검은 상복 아래 하얀 버선이 보였다.

-왔어?

우현이 안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언젠가 아니, 조만간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무슨 말이야?

-노마가 네 이야기를 했었거든. 모두 다. 늙은 회장이 죽은 것도.

-그랬어? 그랬구나. 오빠가 다 말했구나. 말하지 말라 했는데.

안나는 노마의 영정을 보며 눈을 흘겼다. 노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고 있었다. 영정 앞 피어오르던 향 연기가 잠깐 흔들렸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우현이 안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안나는 우현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뭘 어떻게 하겠어. 아이가 클 때까지는 죽은 듯 지내야지. 노마 오빠와 약속했었어. 그때까지는 조용히 착하게 있기로.

-그래? 내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지금 답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알다시피 지금 상중이니. 아무튼 와 줘서 고마워. 전화번호는 그대로인거지? 내가 전화할게. 이 배 좀 꺼지고 나면 같이 밥도 먹고.

우현은 전화하겠다는 안나의 말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안나는 꼭, 곧 전화를 할 것이었다. 전화든, 뭐든 받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노마가 왜 그 차를 운전했는지 궁금했지만 안나도, 노마의 부모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 일과 관계가 있는 걸까? 이번에는 왜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걸까? 그 일은 나 혼자 무덤까지 가지고 가면 되는 건가? 우현은 되묻기만 했다. 답을 줄 이도 없었다. 당장은 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노마가 사라졌으니 우현은 그 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약간은 후련했다.

 

-들으셨습니까? 팀장님?

허 형사가 박 팀장의 방으로 들어왔다.

-뭐 말이야? 국회의원 죽은 것? 자동차 사고라면서. 익사라 하던데.

박 팀장은 쌓인 결재 서류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네. 자동차 사고고 익사이긴 한데요. 운전자가 있었습니다. 운전자도 사망했는데요, 소속이 올더앤베러 직원이랍니다. 올더앤베러 직원이 왜 그 차를 운전했는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운전석과 뒷자리 안전벨트, 둘 다 불량이었다는 것도 이상하고요.

-최 회장 사건과 관계있다는 거야?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조금 그래서요. 회사에 문의하니 휴가 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유족들은 휴가였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요. 올더앤베러에 취직한지도 얼마 안 되었다는데. 더 캐볼까요?

-뭘 더 캐. 조금 있어봐. 뭘 캐려고 해도 단서가 있어야지. 느낌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감으로 수사할 수는 없잖아. 더구나 우리 관할도 아닌 것을. 관계가 있다면 최 회장 사건 수사하다보면 연결고리가 나오겠지.

최 회장 사건 수사는 답보상태였다. 허 형사는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없어 답답하던 참이었다. 국회의원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할이 달랐다. 명백한 고리가 있거나 단서가 있다면 협조요청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 하나 없이 무턱대고 수사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우현이나 족쳐야겠어. 중국 쪽이든 국내 쪽이든 인공 폐에 대해 뭔가 나오겠지. 사고팔았을 테니까 뭐든 흔적이 남아 있겠지. 허 형사는 중얼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인호는 일어나 필립을 맞이했다.

-이런 황망한 일이 있습니까? 큰일을 하셔야 할 분인데 이리 가시다니. 일단 절부터 하겠습니다.

영권의 영정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한 필립은 인호와 맞절을 한 뒤 마주 앉았다. 취재 중이던 기자들이 몰려와 주위를 둘러쌌다.

필립이 인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의원님 빈자리가 큽니다. 상심이 크시겠지만 빨리 털고 일어나셔야지요. 지역민도, 정치권도 모두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인호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현장에서 올더앤베러 직원도 같이 발견되었다면서요?

필립은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근처에 있던 기자와 눈인사를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직원이 왜 의원님과 함께 있었는지, 왜 운전을 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알아보니 마침 그 전날부터 휴가를 냈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면접 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님이 운전기사를 바꾸려 하셨거든요. 운전기사는 보고 듣는 것이 많은 자리이니 직접 보고 뽑아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아무튼 그 직원 가족들도 황망하기는 마찬가지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쪽 빈소에도 들릴 예정입니다. 어쨌든 우리 직원이었으니 잘 챙겨 보내야지요. 그게 마땅히 제가 할 일입니다.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거지요. 아이고, 뒤에 줄을 많이 섰네요. 일어나겠습니다. 다음에 조용히 뵙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필립과 인호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가벼운 포옹을 했다. 필립은 신을 신은 뒤 장례식장 복도에 늘어선 화환을 둘러보다 빈소로 돌아가지 않고 서 있는 인호를 보았다.

-무슨?

-형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요. 그 말을 곱씹느라.

-무슨 말을?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한다는 말씀 말입니다.

-아, 그 말. 돌아가신 제 아버님이 즐겨 하시던 말입니다. 맞는 말이지요.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겁니다. /김강 소설가

소설가 김강 연재소설 ‘Grasp reflex’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