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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새로운 씬

지난 여름부터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푹 빠져있다.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국내를 대표하는 여자 댄서들이 참가하여 댄스 경연을 펼치는 배틀 프로그램이다.첫 화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매 회가 거듭할수록 대단한 파급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예능 부분에서 4주 연속 콘텐츠 기능력 1위를 차지했으며 비드라마 화제성 부분에선 5위의 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2021년 최고의 화제 프로그램이라는 수식어와 걸맞게 SNS에만 접속해도 스우파의 인기를 쉽게 실감할 수 있다.그들이 만들어낸 유행어가 밈이 되어 돌아다니고, 팀별로 펼치는 댄스 경연 장면은 하이라이트 편집본으로 제작되어 조회수 2억 회에 달하고 있을 정도다.게다가 라이브 무대로 열리는 콘서트 또한 1분도 안 되어 서울 포함 총 5곳 지역의 표가 전부 매진될 정도라니, 아이돌 못지않은 거대 팬덤을 지니게 된데다 화보촬영과 인기 예능 출연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사실 그간 여러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대부분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혹평을 받기 일쑤였다. 비슷한 플랫폼과 서사를 지녔음에도 이와 반대로 스우파가 뜨거운 화제성을 낳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그동안의 경연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냈으며 단순 스토리와 악마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흥미만을 이끌어내는 것에 그쳤다.하지만 이러한 전형적인 폼에 질린 시청자들은 스우파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됐던 악마의 스토리에 속지 않았다.오히려 시청자들이 잘못된 편집점을 찾았을 정도였고 전 출연진이 여성인만큼 강렬하고도 능동적인 우먼 파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화려한 춤과 노래를 뽐냈던 아이돌 발굴 경연 프로그램과는 달리 정제되어 있지 않은 말투와 리액션을 보여주어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다는 호평이 크다.그들은 춤을 통해 자신만이 품고 있는 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표현해내며 정형화되어 있던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새롭고도 힘 있는 결을 보여줬다는 것이다.경연이기에 라이벌 구도가 선명히 드러나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이 초반에는 있었지만 가질 수밖에 없던 오해를 풀면서 그들은 서로의 열정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 분출로 유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시선을 잡아끄는 퍼포먼스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머뭇거림보다는 직진에 가까운 열정과 충실함에는 숨을 멈추고 멍하니 장면을 보게 한다.음악이 시작되면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신체의 일부분을 높게 들거나 뻗으며 상대를 제압하거나 표정으로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고 가벼운 손짓과 눈빛엔 정확한 감정과 의도를 담아 스테이지를 장악한다.춤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댄서들은 인상 깊은 씬을 여럿 보여주었다.파이널 무대로 선 ‘훅’팀은 ‘엄마가 아이에게’라는 곡으로 그간 보여주었던 파워풀하고 재기발랄한 춤에서 벗어나 수화를 통해 모성애를 담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춤은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많은 언어를 전달하여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 사실을 알았다.‘프라우드먼’팀에서 보여준 무대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보여준 무대에선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착화된 관념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인은 의견과 리듬 그리고 가치관을 통해 이루어져 있으며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여성 또는 남성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사실 경쟁 무대인만큼 가장 화려하고 파워풀한 무대를 보여주어야 눈에 잘 띄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잘 만들어진 무대나 익숙함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것을 무대 위로 이끌어 보여주었다는 것에 감명 깊었다.댄서란 무대 위의 가수 뒤를 보조하는 역할을 해 오는 걸로만 생각했었다.하지만 한 명의 가수와 무대를 빛내게 하는 것은 여러 댄서들의 퍼포먼스와 열정 덕분이라는 걸. 한 분야에 있어 진심을 다하는 이들의 행보는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던 가쁜 경험이었다.비단 댄서만이 아닌 이 스트리트 위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도 해당 되는 것임이 분명하다.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다.

2021-11-09

밥섬 식도의 위대한 밥상

동해도 근사하지만, 때로는 서해만이 가진 ‘쓸쓸한 아름다움’이 사무치기도 한다.고요하고 내밀한 휴식이 필요할 때면 나는 서해의 작은 섬 식도로 간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60세대 200명이 채 되지 않는, 면적 0.86㎢의 작은 섬이다.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여객선 안에는 격포에 장을 보러 갔다가 섬으로 돌아오는 어르신 몇이 전부였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여객선이 접안하자 어르신들은 손수레와 보따리를 양손에 짊어지고 다시 섬을 밟았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 낚시가방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식도에 올 때면 늘 찾는 한 민박으로 향했다. 서해의 작은 섬들이 보통 그렇듯 식도에도 변변한 식당은 없고, 그나마 민박과 밥을 겸하는 서너 곳이 다.그런데 섬에 상수도 공사가 벌어져 공사 노동자들이 지내느라 빈 방이 없다고 한다. 다행히 식도리 이장님이 근처를 지나다가 자기네 집에서 묵으라고 하신다. 이장님 집도 민박과 식사를 겸하는데, 공사 인부들이 묵긴 하지만 남는 방이 있다고 했다.이장님 차에 사모님과 함께 셋이 끼어 타고는 마을 몇 군데를 다니며 멸치를 내려다 줬다. 집에 도착하니 이장님께서 안방을 내어주며 편하게 쓰라고 하신다. 너그러운 인심이 따뜻한 물살을 퍼뜨렸다.가방을 풀고, 낚시 준비를 해서는 방파제 석축에 섰다. 혼자 고요함을 찾아 온 섬, 마음에서 수런거리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우럭을 먹을 만큼만 잡고 낚시를 접었다.욕심을 버리는 순간 그동안 내 안의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석축에 부딪치는 파도가 뭐라고 말을 한다. 할 말을 오래 참아 붉어진 입술처럼, 저녁노을이 나를 보며 옴짝달싹한다. 일찍 떠오른 낮달이 허밍으로 노래한다. 먼 산 나뭇가지에서 흔들리는 단풍잎이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른다.외부의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와 풍경과 내가, 세계와 내가 경계 없이 몸을 섞을 때 오랫동안 잊었던 마음 깊은 곳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우럭 몇 마리 챙겨 이장님 집에 오니 인부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방마다 고단한 몸을 누였고, 이장님 가족은 거실에 앉아 화투 놀이하느라 정신없다. 사모님이 식당에 있는 반찬과 찌개를 마음껏 꺼내 먹으라 하신다.우럭 회 한 접시 뜨고, 반찬통을 열었다가 그만 황홀해지고 말았다.꽃게장, 어묵볶음, 장조림, 오이소박이, 방풍나물, 멸치볶음, 버섯볶음, 파김치, 알타리김치, 물김치 등 온갖 맛깔스런 반찬들이 정갈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릇 하나에다 반찬 두세 가지씩 함께 담았다. 냄비에는 묵은지와 비계 숭덩숭덩한 촌돼지 고기가 가득 들어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한 그릇 떠서 상에 올리니, 마음부터 배부른 위대한 밥상이 완성되었다.식도(食島)가 왜 ‘밥섬’인지 이제야 알겠다. 예로부터 어장이 풍부해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는 섬, 먹거리보다 인심이 더 풍요롭다.“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뿐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이재무, ‘위대한 식사’)라는 시가 절로 떠오르는 밥상 앞에서 뭉클해졌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을 밥 한 덩이와 함께 목구멍으로 쑥 넘기고, 차가운 소주로 달아오른 가슴을 식히는 동안 저녁은 깊고, 저쪽 거실에서는 찰싹찰싹, 화투패 달라붙는 소리가 풀벌레 울음처럼 정다웠다.아침놀이 창문을 붉게 물들이는 6시 50분. 기상 악화로 7시 20분 첫 배 이후엔 배가 안 뜬다는 방송 소리를 들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나서려는데, 사모님이 아침 먹고 가라 하신다. 공사 인부들과 함께 앉아 또 한 번 뜨거운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인부들과 나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되었다. 비록 짧은 몇 분이지만, 나는 낯선 식구들과 말없이 정든 밥상을 떠나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나는 ‘밥섬’ 식도에서 그 밥 한 끼를 먹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생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2021-11-09

메타버스와 바로크 미술의 귀환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metaverse)는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킨 첫 번째 거대 파도이다. 메타버스는 IT기술을 통해 사람과 세계가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미술과 기술’이라는 대명제 아래 선보이고 있는 뉴미디어 미술창작물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디지털 환경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에 특정 알고리즘을 부여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유형이다. 다음으로는 특수 감지센서 등을 이용해 어떠한 변화에 반응하고 이를 경험하게 해 주는 작품이 있다. 세 번째로는 딥러닝이나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작품이 있고, 넷째로 증강현실을 이용해 현실공간에 가상을 작품을 구현하거나, 다섯째로 가상공간에 가상의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소리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거나 연출하는 작품이 있다.자연이나 대상 등을 가상세계에 모방하고 감상자는 기계장치의 도움으로 그것을 경험한다. 가상의 공간에 모방된 현실은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인식과 경험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문제는 모방된 가상세계와 그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떠한 가치를 지니느냐는 것이다. 단지 현실을 기술적으로 모방하는 것으로 도래할 미래의 미술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방과 가상의 창조는 서양미술사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2D를 3D로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는 어떠한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오로지 미술기법으로 실제 건축공간에 가상현실을 구현했다.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맞선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양식이다. 가톨릭교회로부터 멀어진 신자들을 시각적으로 압도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출현한 바로크 미술에서는 건축, 조각, 회화의 경계가 사라졌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고전미술을 모범으로 삼았다면 바로크 미술은 이성적 판단과 인지능력을 무력화 시킨 초감각적 가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자연의 빛이 창을 통과하는 순간 강하게 응축돼 교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그 빛은 금색 장식물들에 부딪혀 찬란한 광채를 뿜어낸다. 건축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그림 속 인물이 조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더니 어느새 다시 그림이 되어 허공을 떠다닌다.바로크를 수용한 프랑스 절대왕정의 결정체 베르사이유 궁전 곳곳에도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있다. 절대왕정의 이념을 상징하는듯 기하학적이고 대칭적 형태로 가꾸어진 정원 곳곳에는 신화를 그리고 있는 조각상들이 놓여 있다. 회화가 그렇듯 조각 역시나 과거를 현재로, 가상을 현실로 불러내는 그들의 방법이었다. 거대한 정원 사이사이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연극이 펼쳐졌다. 연극이야 말로 가장 오래된 메타버스의 원형 중 하나이다. 왕의 집무실과 침실에 접한 ‘거울의 방’에서도 여러 의미에서 현실과 가상이 교차한다.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은 현실을 비춰주지만 사실은 가상을 불러내는 장치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호수와 정원 그리고 운하가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서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이 관계한다. 창밖 풍경은 사실이자 현실이지만 규모와 조성 방식이 너무나 인공적으로 완벽해 오히려 가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면 베르사이유의 가상현실은 현실의 공간에서 완성된다. 메타버스에서 논의되는 가상현실, 현실과 가상의 융합, 현실의 확장이 이미 17세기에 일어났던 것이다.서양미술사는 오랫동안 현실을 과장하고 왜곡해 스펙터클을 연출한 바로크를 퇴폐, 타락, 악취미로 여겼다. 여기서 유래해 서구에서는 규범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바로크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 양식은 백년 남짓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다가 로코코라는 과도기를 거쳐 신고전주의에 완전히 자리를 내줬다. 고전적 미학을 재부활시킨 신고전주의에 자리를 내어준 이후 바로크의 미술사적 의의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와 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로크의 잔향이 감지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1-11-08

경주 남산, 수행의 공간

경주 남산은 최고봉의 이름 따 금오산, 고위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남산 앞에 ‘신라불교문화재의 보고’, ‘천년고도의 노천박물관’, ‘민중 신앙의 산’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계곡 곳곳에 산재한 다수의 불적(불상·석탑 등)은 남산이 이러한 별칭을 얻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식어 때문에 생긴 막연한 기대와 경외심은 오히려 남산의 역사적 실재를 알아가고 증명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남산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무엇일까? 남산은 신라 당대 사람에게 어떤 장소였고, 어떤 연유로 그렇게 많은 불적이 조성되었을까?남산 불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왕경 가까이에 위치한 단일 산록에 다수의 불적이 밀집·분포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계곡에 다수의 불적이 짧은 거리를 두고 각각 위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어떤 불적의 경우는 도저히 사람이 거주하거나 생활하기 어려운 장소에 입지한 예도 있다. 실제 발굴로 확인된 삼릉계나 열암곡 불적은 많은 사람이 장기간 머물면서 예불을 드릴 수 있는 환경조건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산의 불적은 왜 평지가 아닌 험한 산지를 선택했고, 왜 하필 남산에 그 많은 탑상을 조성했던 것일까?남산의 불적은 개개의 사찰로 이해하더라도 그 곳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험한 산지계곡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규모 사역을 형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하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남산의 불적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또한 속세와는 분리된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산의 불적이 단순히 예불목적으로만 조성했다면, 한 계곡에 많은 불적이 입지할 필요는 없다. 즉 불자는 기왕에 만들어진 탑상(塔像)에 예불을 드리면 되지, 굳이 가까운 거리에 새로운 탑상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남산의 수많은 불적은 끊임없이 탑상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에 의해 생긴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황룡사, 사천왕사, 분황사와 같은 왕경의 사찰을 발굴하면, 흙으로 만든 작은 탑(小塔)이 종종 출토된다. 발굴된 소탑 중에는 매우 정성스럽게 만든 탑도 있지만, 거칠고 투박한 모습을 한 탑도 적지 않다. 이러한 소탑은 그 조형성이나 예술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거 같다. 즉 공덕을 쌓기 위한 조탑 행위 자체가 핵심이므로, 그 모양이 다소 투박하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조탑 신앙은 680년경에 한역된 ‘조탑공덕경’이나 704년에 한역된 ‘무구정광대다리경’의 영향을 받아 실제 왕경 내 많은 탑을 조성하게 한다.한편 ‘삼국유사’ 의해 ‘양지사석’조 말미에는 향가 ‘풍요(風謠)’가 전해진다. ‘풍요’는 영묘사의 장육상을 조성할 때 성 안의 성인남녀가 진흙을 나르면서 불렀던 노래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장육상을 만들기 위해 그 불사에 참여하는 것을 공덕을 닦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산의 수많은 탑상을 수행의 과정·결과로 생각한다면, 산지나 계곡의 험한 환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의 종교적 염원이나 깊은 불심은 최소한의 공간만 허락해도 그 장소에 탑상을 조성할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될 수 있다.남산은 ‘돌산’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수행자가 저비용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는 매우 적합한 장소라 할 수 있겠다. 즉 조탑(造塔), 조상(造像)을 위한 재료가 산천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종교적 염원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더불어 산은 속세와 분리되어 있어 수행의 장소로서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조건이다. 이러한 환경과 조건을 염두에 둔다면, 남산에 형성된 수많은 탑상 중 상당수는 수행자가 공덕을 쌓기 위한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하​​​​​​​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최근 일본학계에서는 수행과 법회를 위해 산속에 지은 불당, 사원을 ‘산림사원’이라 부른다. 이 산림사원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하는데, 첫 번째는 불교적 수행이고, 두 번째는 평지가람과의 유기적인 관계이다. 즉 평지가람에서는 수학(修學)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산림사원에서는 깨달음을 위해 불교적 수행이 행해졌다. 평지가람에서의 수학과 산림사원에서의 수행이 각각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돼 있다. 일본의 산림사원은 기본적으로 당탑을 가지고 있으며 회랑을 갖춘 사찰이 많다. 하지만 카스가 산중(春日山中)의 호산 이존석불, 지옥곡의 성인굴마애불, 나라시대 일부 산악의 석불이나 마애불과 같은 유적 등은 그 입지나 주변 환경이 경주 남산의 불적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학계에서는 이러한 불상 역시 산림수행과 관련한 존상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경주 남산의 불적도 일본의 산림사원과 같은 승려의 수행과 관련한 장소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9년(587) 기사 속에는 대세(大世)와 구칠(仇柒)에 대한 세속의 외면과 그들의 깨달음에 대한 염원 등이 감지된다. 대세는 어려서부터 세속을 떠날 뜻이 있었다. 그는 명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신선(神仙)을 배우려고 했다. 그는 친구를 구하다가 처음 담수(淡水)를 만났지만 끝까지 같이하지 못했고, 이후 그와 같은 뜻을 품은 구칠(仇柒)을 만나 바다로 향해 함께 떠났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두 사람이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남산의 절(南山之寺)’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곳에서 그들은 각자 품은 뜻을 서로 확인했다. 물론 이 이야기 속에서 수행의 직접적인 행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서 살펴본 일본의 사례를 비춰볼 때 이야기 속 ‘남산의 절’은 배움과 관련한 수학(修學)의 장소라기보다는 깨달음과 관련한 수행의 장소에 더 무게를 둘 수 있다.

2021-11-08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이 되면 들녘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고 땀방울을 흘리며 추수하는 농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고 서로 가진 것을 사고팔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농사기술이 발전하여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수확량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남는 곡식을 저장하고 다른 필요한 물건들을 서로 물물교환하면서 많은 저장과 이동이 동반되었고 유통(流通)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을 것이다.유통은 생산과 소비 사이에 존재하며 양자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장소, 시간, 사람 간의 이격이 존재한다. 예컨대 식탁에 오르는 생선은 근해나 원양에서 오는 것으로 이렇게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장소적인 이격이 존재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운송기능’이다. 또 쌀은 가을에만 수확하여 연중 소비가 발생하므로 생산과 소비 사이에 시간적 이격이 존재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보관기능’이다. 그리고 쌀을 생산한 사람은 본인이 필요한 양을 제외하고 쌀을 사려는 사람에게 팔아 현금화하여 다른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므로 이를 연결하는 것이 ‘판매기능’인 것이다.이처럼 장소, 시간의 이격을 매워주는 것을 우리는 물적유통(物的流通) 즉 ‘물류’라고 하며, 사람 간의 이격을 매워주는 것을 상적유통(商的流通) 즉 ‘상류’라고 한다. 그 중 제조현장은 물류의 개선이 중요하며 핵심은 장소와 시간적 이격을 줄여 생산하는 물건이 낭비 없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산현장을 보면 종종 물류의 핵심 개선 포인트를 잊어버리고 필요 이상으로 저장공간을 많이 두거나, 시간적 이격으로 인해 재공, 재고가 늘어 제품 회전이 늦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필자가 지도한 회사 중에 1천종류 이상의 내화물을 생산하는 공정이 있었는데, 가열로에서 나온 내화물을 종류와 사이즈 별로 팔레트에 적재 후 별도의 저장공간에 하나의 통로를 통해 저장 후 다시 꺼내어 포장공정에서 포장하여 최종 제품을 공급하는 생산라인이 있었다.내화물의 종류가 많다 보니 넓은 저장공간이 필요하였고 하나의 통로를 통해 입, 출고를 하고 있어 역물류 발생과 포장할 제품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이를 제품 종류별 생산 로트(Lot) 크기를 줄여 재고량을 줄이고, 입고와 출고 통로를 별도로 구분하여 물건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개선하여 하루에도 수백번씩 발생하던 역물류와 시간을 줄인 예가 있다.물류는 ‘사물(物)이 흐른다(流)’를 의미한다. 즉 생산하는 제품의 행선지와 두는 곳을 정하고 시간과 수량을 정해 최적으로 흐르도록 물품에 일종의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적지와 시간이 없는 것은 죽은 물건이 되는 것이다. 제조현장의 모든 생산품에 대하여 생명을 불어넣고 장소, 시간의 이격을 줄이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직원은 낭비를 발굴하는 역량이 향상되고 회사는 제품의 빠른 회전을 통해 경쟁력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21-11-08

함께 한다는 것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모든 것들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산자락 어딘가엔 열매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고 땀이 서린 들판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풀잎이나 잎새는 마르거나 물들어가며 조락(凋落)을 기다리고, 벌레나 짐승들은 제 나름의 몸짓으로 먹이를 모으거나 땅을 파며 동장(冬藏)을 채비하고 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나선지 쌀쌀해진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의 미틈달은 결실과 수확, 정리와 준비로 제자리를 채워가는 시간이다.세상만물은 모두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다가 비를 내리듯이(雲行雨施), 자연은 만물이 두루 은택을 받아 잘 생장하고 완성된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 속에 온갖 생명체는 생멸을 거듭하고 만남과 헤어짐은 다반사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정체되면 발전이 없듯이, 우리는 환경과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 버물리고 제자리를 찾아가며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작고 변변찮은 미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교감과 상호작용으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미상의 바이러스도 공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이 세상을 움직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코로나19라는 희대의 바이러스와 싸우며 버텨온지 꼬박 2년이 다돼 간다. 설마설마하던 바이러스가 공포와 불안의 회오리를 일으켜 지구촌은 신음과 침체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친 엄청난 충격과 파장은 수많은 이변과 변화, 생소함과 이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혼돈과 암울의 안개를 여전히 묶어 두고 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모색과 낯선 듯 익숙한 적응으로 난국을 헤쳐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단계적 일상회복’이 11월부터 전면적으로 이행되고 조금씩 삶의 제자리 찾기가 시작된 것 같다.단절과 고립을 걷어내는 포용적 방역관리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감소시키고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손실과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새로운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의 조치로 여겨진다. 다만, 시민의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방역을 통해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추진하여 ‘더 나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솔선수범과 배려와 존중, 신뢰와 공감으로 가정과 이웃을 함께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한다는 것은 보듬고 감싸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다독이며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은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서로가 어울려 위로하고 격려하며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뜩이나 혼미하고 흉흉해진 세상일수록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챙기고 사랑하며 더불어 함께 지켜가는 아량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맞서서 받아들여야 한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자연과 인간은 공생해야 공존할 수 있다. 어차피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희망과 행복의 바이러스를 불러들여 일상의 제자리를 되찾고 평온한 미래를 함께 열어 가길 기대해본다.

2021-11-08

대장동게이트, 특검을 해야 하는 이유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제왕적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대선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이나 심판이 불공정하면 부정선거가 된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발화된 ‘대장동게이트’는 인화성이 높아서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때문에 권력게임에 참가하는 선수(후보)와 심판(검찰·법원)은 물론, 이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국민)의 관심이 뜨겁다.대장동게이트를 둘러싼 정치게임에서 후보와 국민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담보할 수 있는 심판, 즉 ‘특검’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장동게이트는 여당의 대선후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최종 결재권자로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시녀가 된 현재의 검찰로서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야당과 대다수 국민의 판단이기 때문이다.검찰에 대한 불신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수사책임을 맡고 있는 검찰총장 김오수는 임명되기 전까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로 일했음이 밝혀졌고,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최종심을 맡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장동개발 추진사업체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았으며, 구속된 유동규는 이재명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법조계와 정치계 등 다수의 전·현직 권력들이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범죄의 본거지인 성남시청에 대한 압수수색은 수사 착수 22일 만에 이루어졌으니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준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이 졸속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니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부끄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권력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한 검찰의 편향성에다가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총장까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로 일했으니 어떻게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권력 해바라기 검찰이 대선을 의식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이 이재명캠프의 서초동 지부라는 말을 듣게 생겼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최근 여론조사들은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코리아정보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김오수 검찰의 수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67.1%)이 신뢰(13.3%)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이재명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54.2%)이 ‘국힘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33.3%)보다 훨씬 많다. 때문에 특검의 수사에 대해서는 캐이스탯리서치(찬성 73%, 반대 21%), PNR(찬성 61,3%, 반대 28.9%), 한국리서치(찬성 63.9%, 반대 26.8%) 등 모든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2배∼3배 이상 많다.검찰을 믿을 수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과 국민의 여론인데, 이를 무시하고 대선을 강행하면 공정성이 문제된다.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재명 후보도 특검을 수용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만약 특검을 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면 대선에서 국민이 직접 후보자를 심판할 수밖에 없다.

2021-11-08

일본제철의 구조조정, 지방도시 몰락을 불렀다

본지가 연재한 ‘일본 산업도시의 아픔’(11월 1일, 8일)은 거점산업 하나에 매달려 있는 지방도시의 몰락 과정을 보여준 교훈적 사례다. 특히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으로 이미 고로가 폐쇄된 이와테현 가마이시시, 히로시마현 쿠레시와 올해 또다시 1기를 폐쇄키로 한 이바라키현 카시마시 등에서 나타난 기업도산과 인구감소 등 도시 쇠락은 철강산업을 축으로 하고 있는 포항시가 반면교사 할 부분이 많다.1950년 창업한 일본제철은 매출 6조2천억엔, 종업원 수 10만6천명의 세계 굴지의 기업이다. 60년 넘게 일본경제를 견인했고, 세계 철강산업의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던 일본제철이 중국의 등장과 공급과잉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먼저 일본 제철산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가마이시 공장의 고로 2기를 폐쇄했다. 이 도시는 단숨에 쇠락의 길로 갔다. 1963년 철강산업 번성기 9만2천여명에 달했던 이곳 인구는 작년 3월 3만2천명으로 내려앉았다.또 철강이 도시의 랜드마크였던 쿠레시도 지난 9월을 끝으로 고로 2기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이 떠나는 타격을 입었다.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 간접 영향까지 포함하면 쿠레시가 받은 경제적 타격은 막심하다. 일본제철이 압연공장을 비롯 하공정까지 전면 폐쇄할 계획이라 쿠레시의 도시 브랜드인 철강산업은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올해 3월 일본제철은 동일본제철소 카시마지구의 고로 2기 중 1기를 2024년 말까지 폐쇄키로 발표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제철소가 소재한 카시마시다. 카시마시는 가마이시시의 전례를 따를까 고심하고 있다. 가마이시시와 이바라키현이 나서 일본제철의 체제 존속을 설득했으나 협상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은 앞으로 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어 쇠락위기 도시의 고민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국내 최대 철강생산도시 포항을 비롯한 단일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지방도시도 비슷한 산업 환경에 있다. 저출산과 청년의 탈출 등으로 위기에 내몰린 지방도시에서 거점산업이 붕괴한다면 도시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지역 거점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지방정부 차원의 다양한 고민과 대책이 준비돼야 한다. 철강산업 지원을 위한 포항철강거점센터 건립은 이런 면에서 바람직한 투자다.

2021-11-08

영부인 가방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6월 영국 콘월 미낙극장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배우자 프로그램을 마친 후 미국 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 캐리 존슨 영국 총리 부인과 기념촬영을 할 때 들었던 스테파니백이 ‘영부인 가방’으로 화제가 됐다.한때 에르메스 백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으나 화제의 가방은 국내업체인 쿠론의 ‘스테파니 클래식 백’이었다.지난 7월 중순 출시한 ‘스테파니 클래식 31’ 카라멜 카페 색상 가방과 브라우니 케이크 색상 가방은 영부인 가방으로 화제가 되면서 날개 돋힌 듯 팔려 지난 4일 기준 판매율이 각각 95%, 94%였다. 패션업계에서는 판매율이 90% 이상을 기록한 경우 완판으로 보고 있다.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이미 품절됐으며, 오프라인 일부 매장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두 상품은 각각 500점, 50점 한정 수량으로, 가격은 각각 63만8천원, 83만8천원이다.스테파니 클래식 백은 2012년부터 쿠론을 대표하고 이끌어온 모델로 2014년까지 7천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또 하나의 영부인 가방이 있다. 김 여사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차 이탈리아 방문 중에 선보인 한지 핸드백이다. 해당 가방은 국내 비건 가방 브랜드 ‘페리토(PERITO)’가 ‘동물의 희생 없이 아름답고 좋은 가방을 만든다’는 취지로 선보인 ‘블레드 깃털백’으로 벌써 품절상태다. 현재 예약 주문만 가능하다.영부인이 해외 출장때 국내 기업이 만든 가방을 들고 나가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을 널리 알린 것은 좋은 내조로 읽힌다. 영부인의 소소한 배려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08

野 선대위, 내분요인 차단이 ‘원팀’보다 우선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종 선출됐지만, 경선 경쟁자였던 홍준표 의원이 ‘비리 대선에 불참하겠다’고 밝히면서 원팀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홍 의원은 지난 7일 SNS에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저를 열광적으로 지지해준 2040들의 놀이터 청년의꿈 플랫폼을 만들어 그분들과 세상 이야기하면서 향후 정치 일정을 가져가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2040세대를 동력으로 해서 향후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걷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 의원 측에 따르면 그의 인스타그램 구독자 수는 지난 5일 경선 직후 이틀새 3만명에서 4만9천620명으로 급증했고, 카카오톡 채널 메시지엔 3천여 응원메시지가 쏟아졌다고 한다. 윤 후보는 이와관련 “(홍 후보의 지원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니겠냐.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홍 의원은 특히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주축으로 꾸려질 선거대책위원회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김 위원장을 선대위 총괄위원장에 임명하는 문제에 대해 이미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당 선대위 구성과 관련해 그동안 경선과정에서 윤 후보 캠프에 합류한 인사들에 대한 ‘옥석가리기’를 주문한 점도 향후 상당한 갈등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윤 후보 캠프에는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을 노리고 합류한 인사들이 많다. 내년 지방선거(6월 1일)는 대선(3월 9일) 직후에 치러진다. 두 선거의 간극이 100일도 안 나는 까닭에 대선 후보(혹은 신임 대통령)와의 정치적 친소관계가 지방선거 공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이 대표의 우려처럼,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에서 지방선거 공천을 노리는 사람들이 대거 발탁될 경우 당내 분열은 피할 수 없다. 실제 윤 후보 캠프에 있는 박진(서울)·윤한홍(경남) 의원과 유정복(인천)·심재철(경기)·이장우(대전) 전 의원 등은 자천타천 광역단체장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대선레이스에서 절대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그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2021-11-08

이유 있는 반항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50년대 미국 청소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제임스 딘’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청춘을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이 됐다.영화 속 주인공인 세 명의 청소년은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의 아이들 같았지만,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상태였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은 이 세 명의 청소년이 ‘정신병적 장애’를 가진 자가 아니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이라는 것이다.‘질풍노도’란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으로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부모의 말이라면 곧잘 듣던 우리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충동적이고 이유 없는 반항을 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그렇다고 청소년의 ‘질풍노도’를 단지 ‘철없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현대정신의학의 발달로 인해 청소년들이 보이는 ‘감정 반응’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입증되고 있다. 전두엽(frontal cortex)은 자기를 인식하고 감정·충동을 조절하고 행동을 계획하는 역할을 하는 이성의 중추이다.변연계(limbic system)는 감정의 중추로, 특히 편도체(amygdala)가 분노, 흥분, 공격성 등 즉각적이고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 시기의 뇌는 감정을 통제하고 뇌의 관제탑 역할을 하는 전두엽은 완만한 속도로 발달하는 데 비해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변연계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달한다.따라서 청소년의 뇌는 감정 반응의 브레이크 작용을 하는 ‘차가운 뇌’인 전두엽의 힘이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뜨거운 뇌’인 변연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장 격차가 벌어지는 시기이다. 청소년의 뇌는 성인처럼 전두엽이 성숙하기 전까지는 의사결정, 감정반응, 행동이 ‘뜨거운 뇌’인 변연계의 지배를 더 받게 된다.이런 이유로 청소년은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 감정을 잘 주체하지 못하고,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고, 본능에 더 민감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게 된다.안타깝게도 청소년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모는 자녀의 부정적인 감정 반응에 직접적으로 맞대응하고 급기야 다그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부모의 ‘무지’와 ‘이해 부족’이 많은 참사를 낳기도 한다.그렇다면, 부모는 청소년 자녀의 부정적 감정 반응에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첫째, 청소년 자녀의 부정적 감정 반응으로 부모가 화가 나고 좌절감을 느끼더라도 이런 감정으로 자녀를 마주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분노하면 청소년의 뇌는 더 큰 분노로 반응한다. 부모는 침착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부모가 ‘차가운 뇌’ 전두엽의 역할을 보여 줘야 한다.둘째, 부모의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표정조차 청소년 자녀의 뇌는 부정적으로 느끼기 쉽다. 부모는 자녀의 부정적 감정 반응에 직접 맞대응하기보다는 사랑과 공감의 눈빛으로 조용히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뜨거운 뇌’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이다.세번째, 잔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모의 잔소리는 청소년 자녀 뇌의 이성적 사고를 경감시키며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악화시킨다.또 잔소리는 자녀에게 반박이나 논쟁거리를 제공해 힘겨루기 양상이 되기 쉽다. 다만, “그런 말(행동)을 하면 엄마(아빠) 마음이 어떻겠니?”이라고 부모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핵심은 부모의 생각이 아닌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생각은 청소년 자녀의 몫으로 두는 것이 자녀의 ‘이성 뇌’인 전두엽을 발달에 도움이 된다.끝으로, 감정과 정서는 경청하고 수용해야 한다.예를 들면, “참, 힘들었겠다”, “많이 속상했겠다” 등의 표현으로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한다. 그래야, 감정을 쌓아 두지 않게 된다.다만, 공격적 행동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공격적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을 시켜주어야 한다. 단, 화가 난 큰 목소리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 톤으로 힘 있게 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필요한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 합리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제재를 가할 때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너의 행동에 대해 3시간 후에 반성문을 쓸 수도 있고, 3시간 후에 의견으로 말할 수도 있다. 너는 어떤 것을 원하니?”이라고 한다.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과정이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신체뿐 아니라 뇌와 마음의 발달에 따른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청소년기에 성호르몬이 분비돼 ‘이차 성징’이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듯,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는 뇌와 마음의 발달과정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면 어떨까?그렇다면, 청소년의 ‘이유 없는 반항’은 뇌와 마음의 발달 면에서는 거쳐야 할 정상적인 ‘이유 있는 반항’일 수 있다. 다만, 부모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른 대처를 못 한 것은 아닐까.

2021-11-07

코로나19 백신패스, 못마땅하다!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정부는 11월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을 발표하면서 실내체육시설과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목욕탕 등 고위험 다중이용시설과 의료기관, 요양병원, 중증장애인 및 치매시설, 경로당 등 고령층 방문시설에 대해 백신 패스를 적용한다고 발표했고 해당 시설에는 백신 접종을 모두 완료한 시민들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만약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았을 경우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검사를 통한 음성확인서를 지참해야 하며, 이밖에도 만 18세 이하 아동·청소년, 완치자,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했거나 항암 치료를 받는 경우, 또는 백신 1차 접종 후 부작용을 겪는 등의 의학적 사유에 의한 백신접종 예외자는 방역패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백신패스 없이 시설을 이용하게 될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시설 이용자는 10만 원의 과태료, 관리자에게는 최소 150만~300만 원의 과태료와 최소 10일에서 최대 영업장 폐쇄 명령이 내려진다.백신패스는 왜 나온 것일까? 정부는 코로나19 접종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백신패스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불안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백신접종을 못하고 있는 국민을 배려하지 않고 정부의 입장만을 생각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백신 확보를 못해 온갖 핑계를 대던 정부, K방역이라고 자만하다가 이물질 주사기로 체면을 구기고 유해물질로 범벅된 검사용 면봉 사건으로 할 말을 잃게 한 정부, 코로나19 사태 초기 봉쇄정책을 눈치만 보다가 때를 놓쳤고 코로나19 감염확산을 정치, 종교적 이슈도 몰아간 정부 등 언급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대처에 문제가 많았었다.백신을 접종완료 통계에만 집착하고 중요한 항체의 생성 유무는 확인하지 않고 있어 의아할 따름이다.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돌파감염 사례가 빈번하고 백신마다 항체 생성률이 다른 마당에 무조건 백신 맞은 접종자만을 위한 백신패스가 바람직한 것일까?지금까지 코로나19가 심해도 허용하던 시설에 대한 출입을 제한한다는 것은 근거도 없이 정부의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간제한, 인원제한도 사실 국민들에겐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되었다. 오후 6시부터 또는 밤 10시가 되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제한이 이루어졌다는 조롱이고 유명무실한 인원제한도 마찬가지였다.물론 코로나19 방역이 필요하고 백신 접종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내용을 상세히 알리고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어떤 정책이든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국민들에게 조롱받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고통과 부담을 더 주는 정부정책을 마냥 찬성할 수만 없다.PCR검사도 시점에 따른 오차(바이러스 배출 시기 이전에 음성판정 가능)가 존재하고 특정질환으로 접종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차별이 우려스럽고 접종완료자 역시 바이러스 전파 우려가 분명히 있다. 결국 백신을 맞았다고 반드시 감염이나 전파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닌데 미접종자만 차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다.‘위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중이지만 또다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4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일일 확진자수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독일도 확인자수가 1만 명을 넘어 선진국도 코로나19의 방역정책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경우도 확진자수가 2천 명을 넘어 향후 수천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특히 델타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접종완료자라 해도 미접종자와 똑같은 수준의 전파력을 지닐 가능성이 있어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의 호흡기 점막에 침투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를 무엇으로 세우고 있을까?‘백신 패스’는 사실상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이다. 국민들을 불안하게만 했던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백신 미접종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코로나19로 무너진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사지에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코로나19는 현재 상황에서 퇴치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제 공존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력이 약화되었고 계속되는 변이의 출현으로 상당기간 코로나19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그러므로 확진자수에 집착하기 보다는 고위험군을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의료자원의 재분배를 준비하고 방역 완화시 감염자 폭증을 대비하여 병상 확충 등의 의료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방역조치가 특정계층에게 몰리지 않도록 거리두기 및 손실보상 범위도 조정해야 한다. 국민이 불안한 이유를 정부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위드 코로나19’시대를 제대로 준비해주길 바란다. 국민은 백신패스가 못마땅하다!

2021-11-07

백스(Vax)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을 편찬하는 옥스퍼드 랭귀지가 백신의 줄임말인 백스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사전편찬 대표는 “매우 파급효과가 컸기 때문”이라고 선정 배경을 언급했다.옥스퍼드 랭귀지는 영어권 세계뉴스에서 수집한 145억개의 단어를 훑어 그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잘 대변한 단어를 골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다. 과거에는 셀피(셀카 사진), 베이프(전자 담배를 피우다) 등이 선정된 바 있다.올 10월 말 기준 지구상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500만명을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를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고도 한다. 중국 우한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지 1년 10개월만의 수치다. 국가별 누적 사망자는 미국이 76만명으로 가장 많고 브라질 60만명, 인도 45만명의 순이다.팬데믹은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팬데믹에 속하는 질병은 14세기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과 1918년 5천만명 이상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그리고 1968년 100만명을 희생시킨 홍콩독감 등이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948년 설립한 이래 세 차례 팬데믹을 선언했는데, 홍콩독감과 신종플루, 코로나19다.코로나 바이러스로 500만명의 인류가 사망한 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다. 미국 LA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거대한 도시 하나가 통째로 소멸한 것과 같다.그러나 코로나19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유한 나라에 더 많은 타격을 준 질병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여운도 남기고 있다. 옥스퍼드 랭귀지가 선정한 짧고 강렬한 이미지의 백스는 후대에는 수많은 인류의 희생을 초래한 악명 높은 질병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07

국가부채를 가볍게 여기는 정치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신문 광고란을 보면 ‘상속한정승인’ 공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문공고일로부터 일정기간 안에 공고인에게 채권을 신고하지 않으면 부채청산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다. 부모의 빚을 상속한 자녀가 법원판결을 받아 부모 채권자들에게 빚잔치를 하겠다는 광고다. 부모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녀가 빚잔치를 하기 위해 송사를 벌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자식에게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이 빚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부모의 상속을 포기하는 절차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1순위 상속인(직계비속·자녀, 손자녀)이 상속포기를 하면 2순위(직계존속·조부모), 3순위(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순위(4촌 이내 친족)에 차례대로 넘어간다. 사망한 부모의 빚 때문에 일가친척 모두가 원수처럼 지내는 집이 비일비재한 것은 이처럼 빚이 4촌 친척에게까지 대물림되기 때문이다.국가 부채도 가계 빚과 마찬가지다.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우리국민의 경우 IMF사태 때 너무나 혹독하게 겪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감당하지 못할 빚을 차기 정부에 상속하면 그 국가는 빚잔치하는 자녀처럼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함께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해외투자가 철회되거나 끊기면 전 국민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지난주 국회 예산정책처가 우리나라 빚이 8년 뒤에는 2천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보다 8.4% 증액된 내년 예산안 수준의 재정 팽창 기조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결과다. 나랏빚 500조원(2014년 533조원)이 1천조원(2022년 1천73조원) 되는 데 8년 걸렸는데, 1천조원이 2천조원(2029년 2천30조원) 되는 데는 7년밖에 안 걸린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 채무가 408조원 늘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의 증가액 351조원을 훨씬 웃돈다.현재 집권여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국가 빚에 대한 경각심이 더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후보는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재정여력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하 30만~50만원의 전국민 6차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위험수위에 도달한 국가부채는 뒷전이고, 포퓰리즘으로 내년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꽉 차 있는 것 같다. 이러니 야당에서 ‘자유당시대 고무신선거와 다름없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이재명 후보는 지난주 열린 민주당 선거대책 위원회에서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도 좀 인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 빚은 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수직상승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세계 최악이다. 2023년부터는 국가채무의 연간이자가 20조원을 넘어선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처럼 일시적으로 국민에게 돈을 푸는 것은 서민생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청년과 퇴직자, 실직자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치권력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2021-11-07

윤석열과 국민의힘 존재가치는 정권교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됨에 따라,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선의 대진표가 완성됐다. 윤 후보는 이날 열린 전당대회에서 본경선 최종득표율 47.85%로 1위를 차지, 41.50%를 기록한 홍준표 의원을 6.35% 포인트 차이로 이겼다.국민의힘은 이제 윤 후보를 중심으로 일심동체가 돼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전심전력을 쏟아야 한다. 윤 후보도 수락연설에서 “우리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모두가 승리자가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패배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경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홍 의원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것이 제 역할이었다”며 선거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 것은 국민의힘으로선 정말 다행한 일이다.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곧바로 선거결과에 승복하며 원팀을 다짐해 국민의힘 대선레이스는 일단 순탄한 출발을 하게 됐다.현재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열망은 뜨겁지만, 윤 후보 앞에 놓인 과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경선이 과열되면서 홍 의원 등 경쟁자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만큼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이 급선무다. 원팀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경쟁캠프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인사를 중용하는 ‘화합형 선대위’ 구성이 꼭 필요하다.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대선 완주 의사를 밝힌만큼, 윤 후보 입장에선 야권후보 단일화 문제도 풀어야할 현안이 됐다. 여야가 초박빙 승부를 펼치는 상황에서 안 후보가 무시못할 지지도를 기록하며 대선 막판까지 강공모드를 이어갈 경우 자칫 야권 후보 단일화가 물건너갈 수 있다. 이와함께 당 혁신과 정책 대안 제시를 통해 ‘정치 신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수권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것도 윤 후보의 중요한 숙제다.윤 후보가 “이제 우리는 원팀이고 정권교체의 대의 앞에 분열할 자유도 없다”고 말했듯이, 국민의힘 존재가치는 오직 정권교체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당 전체가 이번 대선이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선거라는 점을 인식하고, 윤 후보를 중심으로 청년층을 비롯한 전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1-11-07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 논란, 이제 끝내야

대구시를 비롯한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전 등 특·광역시로 구성된 전국도시철도운영 지자체협의회가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에 대한 국비 보전을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을 지난 4일 발표했다. 도시철도 무임승차로 인한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손실 문제는 매년 논란이 되풀이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도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1984년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의 보편적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3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 교통복지 정책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정작 그 부담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 되고 있다.6개 전국도시철도 운영 지자체의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손실은 연평균 5천500억원에 달한다. 대구시의 경우 2018년 569억원, 2019년 614억원, 2020년은 416억원 등 매년 500억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한다. 최근 5년간 누적 적자액이 2천596억원이다.이런 적자는 노인 인구의 증가로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시작된 1984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5.9%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고령화 비율은 16%를 넘어섰다. 부족한 재정 때문에 노후역사의 보수나 전동차 교체 등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투자에도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특히 무임승차 손실보전을 위한 법적 근거인 도시철도법 개정안은 여러 번 국회에 상정됐지만 법사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국회는 이제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지자체의 무임승차 손실액이 누적되고 있는 그간 사정을 잘 살펴 연내 관련법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정부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법정 무임승차 손실을 보전해주고 있는 한국철도공사와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지자체의 무임승차 운영손실도 해법을 찾아 보전해주는 것이 논리에 맞고 순리적이다.노령화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무임승차 연령 조정도 검토해 보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 된다. 지자체가 안고 있는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분은 복지정책의 실질적 시행기관인 정부가 맡는 것이 당연하고 지자체가 일부 분담하는 문제도 고려해 볼 만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도시철도 운영 손실분 보전문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2021-11-07

동문서답

조현태​​​​​​​수필가 그저께는 잡채와 닭죽을 얻어와 이틀이나 맛나게 먹었다.빈 그릇을 돌려주기보다 뭔가를 채워 줘야지 싶었다. 여름에 수확하여 빻아놓은 고춧가루를 통에 가득 채웠다. 역시 얻어오는 고마움보다 나눠주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평범한 이치를 또 한 번 느끼며.맛있게 잘 먹었노라고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는데 김씨가 도착했다. 그의 작품을 논의하기 위해서 미리 연락하고 왔다. 반갑게 인사하는 중에 한 아름 가져온 물건을 불쑥 내밀었다. 호박죽 한 통과 음료수 한 박스. 뭘 또 이렇게 가져오시나 하고 받으려니 도서관 이씨 심부름이나 하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게 김씨의 심부름을 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씨가 호박죽을 참 좋아하지’했다.심부름이야 조금 후에 해도 되니 일단 호박죽은 냉장고에 보관했다. 나는 음료수라도 하나씩 마시고 논의하자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방금 점심 먹었으니 끝내고 커피나 한 잔씩 마시자고 했다. 서로 바쁘게 살고 있으니 얼른 마치고 가야하나보다 생각했다. 작품은 이메일로 받았고 미리 출력해 검토했으니 일사천리로 논의를 마쳤다.약간의 환담 후에 일어서는 김씨를 전송하고는 곧바로 자전거를 준비했다. 어차피 지금은 자전거 운동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자전거 코스가 남쪽이지만 오늘은 북쪽으로 가도 운동은 마찬가지 아닌가. 후다닥 냉장고에 두었던 호박죽을 자전거에 싣고 바로 페달을 밟았다.이씨를 본 지도 오래고 가을 날씨까지 무척이나 상쾌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신나게 달려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호박죽을 책상 위에 놓고는 전화를 했다. 이씨가 남편의 일터에 나가 있다는 대답이었다. 김씨가 가져온 호박죽을 전해주러 왔는데 아무도 없어 책상 위에 두고 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얼굴 보면 좋으련만 아쉽다는 인사를 교환하며 돌아온 것까지는 괜찮았다.몇 시간 지난 후 이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호박죽과 음료수는 이씨가 나 먹으라고 김씨에게 들려 보낸 건데 왜 도로 가져왔느냐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다. 김씨가 갖다 주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면 김씨가 농담했나?또 한참 후에 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니까 김씨는 먼저 이씨 집으로 가서 호박죽을 먹고 내게도 갖다 주라는 이씨의 부탁을 김씨가 심부름했던 것이다. 문우의 설명을 듣고 머리가 띵해졌다. 김씨가 음료수와 호박죽을 가져와 음료수는 내가 마시고 호박죽은 이씨에게 갖다 주라는 심부름으로 들었으니 말이다. 할 말이 없었다.다시 이씨에게 가서 호박죽을 가져와야 했다. 말을 잘못 이해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니까 내가 감당해야 할 당연한 수고다.상대의 말을 중간에 잘라먹거나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사람.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듣는 사람. 자신의 생각은 틀려도 옳고 상대의 생각은 옳아도 틀리다고 억지 부리는 사람.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말에 일관성이 없는 사람. 남의 말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 이미 뱉은 말에 책임지지 않으려 드는 사람….우리가 살면서 말만 정확하게 소통해도 훨씬 더 경제적이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터이다. 오랜 옛날부터 세 치 혀를 강조해오지 않았던가.

2021-11-07

선비문학의 노래, 입암28경

윤영대수필가 영남유교문화권에는 서원과 향교, 재사와 종택, 누정(樓亭) 등이 널려있는 노천박물관이 많고, 그중 포항 죽장면 입암리는 명승지이기도 하다. 옛 선비들의 낭만적 삶을 찾아가는 길, 자호천 따라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입암 28경은 임진왜란 때 대학자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이 피난 왔다가 그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면서 시를 쓰며 이름 지었고, 이곳에 정자를 지어 후학을 가르치고 벗들과 시가를 읊으며 40여 년간 고고한 삶을 살다가 84세에 세상을 뜬 곳이다.조용한 서원 앞에 주차하고 돌계단을 오르니 300년 된 은행나무가 거느린 울창한 송림 속의 서원은 닫혀 있어 낮은 담장 너머로 보면 입암서원(立巖書院)이란 투박한 서각의 현판이 걸린 곳은 강당, 그 뒤뜰의 묘우(廟宇)에는 장현광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봉 권극립, 우헌 정사상, 윤암 손우남, 수암 정사진 등 사우(四友)의 위패가 봉안되어있다. 입암서원은 경북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고 유물들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가을바람에 끌리듯 동봉 권선생 유허비를 돌아 마을에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만활당(萬活堂)을 들여다보고 가사천 개울로 내려갔다. 물가에 탕건을 쓴 듯 우람하게 서 있는 탁입암(卓立巖)과 춤추는 듯한 처마가 고운 일제당(日8E8B堂)은 서로를 바라보듯 사랑스러운 한 쌍인데, 그사이 기여암과 계구대 바위가 시샘하듯 둘러싸고 있다. 28경의 중심, 그 한적한 난간에 앉아 맞은편 구인봉을 보며 옛 선비의 ‘입암13영(詠)’을 듣고 싶다.입암 아래 돌다리 답태교는 흔적도 없고 물가에 놓인 상두석 수를 헤아려보니 7개, 그래서 북두칠성을 노래했었구나. 맨발로 건너서 깨끗한 경심대 반석에 앉아 마음을 씻으면 맑은 수어연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헤아려본 문객들의 유유자적한 풍류가 그리워진다. 개울 건너 피세대 절벽 아래는 맑은 물이 흘러들어 여름철에는 캠핑족들의 낙원이 된다. 발 씻고 그 앞의 넓은 잔디밭으로 건너가니 노계 박인로 시비가 단아하게 서서 ‘입암별곡(立巖別曲)’을 노래하고 있다. ‘무정히 선 바위 유정하게 보이나다….’목이 말라 솔안마을에 있다는 물멱정 샘을 찾으며 서원원무소를 지키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더니 만활당 뒤쪽이란다. 큰 느티나무 둥치 뿌리 사이에 솟는 작은 샘물을 한 움큼 마시고 갈증을 씻었다. 다시 차를 타고 함휘령, 산지령을 먼발치에서 보며 상암대와 욕학담으로 갔는데 홍수에 떠내려온 나무들이 걸려있어 모습을 잃었고, 허탈한 마음으로 읍내로 내려와 자호천과 가사천이 만나는 합류대(合流臺)를 찾았더니 입암교 부근은 지난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가 가득하다, 부근에 있었다는 향옥교와 화리대, 경운야와 야연림의 사라진 옛 흔적을 찾다 보니 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운다.옛 선비들의 ‘안빈낙도 선공후사(安貧樂道 先公後私)’의 가르침을 안고 되돌아오는 길, 마지막으로 세이담이 있는 까치소 맑은 물에 귀를 씻었다. 여러 관직에 불리었으나 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한 여헌 선생 같은 인물이 이 시대에도 나와, 참된 말씀을 들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1-11-07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최대과제는 야권통합

불법 선거운동 논란으로 경선 마지막 날까지 원색적인 공방전을 벌였던 국민의힘 대선 본경선 결과가 오늘(5일) 오후 2시 전당대회에서 발표된다. 국민의힘 경선이 후보들끼리의 인신공격과 거친 언어 남발로 ‘아무말잔치’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어제 마감된 당원과 일반국민 투표율이 역대급으로 높아 흥행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경선 막바지까지 혼전이 계속돼 누가 최종후보로 선출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지만, 오늘부터 국민의힘 최대과제는 야권 전체의 통합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후보 선출 뒤 ‘원팀’이 되는 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야권분열을 심각한 상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우선 이준석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이 대표는 3일 “(야권후보) 단일화는 전략 중 하나이지 선결 또는 필수불가결 조건이 아니다. 대선 때 부화뇌동하고 (당과 안 대표 사이에서) 거간꾼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당 행위로 보고 일벌백계하겠다”며 당내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하게 표출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옆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설 가능성도 커 야권후보 단일화 성사는 엄청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야권후보 단일화와 관련한 전략은 오늘 선출되는 당의 대선후보가 결정하겠지만, 당 대표와 당의 대선캠프 예비 좌장이 독자출마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안철수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에선 5% 차이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대선에서 ‘야권분열은 필패’라는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야권통합이 보수진영의 염원인 정권교체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일각에선 최근 안 대표에 대한 이 대표의 날선 공격이 통합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엊그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 대표에게 벌써 야권통합을 제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이 대표가 직접 나서서 안 대표를 노골적으로 자극해선 안 된다. 정권교체라는 큰 목표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대선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오늘 대선후보가 확정되면 일단 후보간에 쌓인 갈등을 수습하고, 야권통합 바람을 일으킬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1-11-04

불안한 위드 코로나…경계심과 절제심이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다시 2천 명대로 늘어났다. 위드 코로나 실시 사흘만이다. 이달 1일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전환과 함께 예상은 했지만 급작스레 증가한 확진자로 보건당국도 긴장하고 있다.위드 코로나 실시 사흘째인 3일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천667명으로 전날보다 1천78명이 늘어났다. 역대 4번째 규모다. 또 전일 대비 1천 명 이상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사태 후 처음이다. 4일도 2천482명이 발생, 2천 명대를 이어갔다. 대구가 66명, 경북은 38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수도권이 80%로 여전히 비중이 높다. 위드 코로나 체계 전환과 동시 정부가 방역 규제를 풀면서 사회활동이 증가하고 국민의 경계심이 느슨해진 탓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있은 할로윈 파티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위드 코로나 전환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따라 발생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선택한 불가피한 일이다. 유럽과 동남아 일부 국가서도 위드 코로나 체계로 전환, 일상회복을 추구하고 있다.보건당국은 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불가피하게 확진자는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하루 5천 명이 넘으면 현 의료체계로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또다시 일상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가 코로나를 극복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정상적 일상회복을 위한 노력에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답답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절제력 있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지난 7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영국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아 하루 4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체계에 들어간 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정부가 요양병원 환자와 노령층을 대상으로 부스터샷의 기간을 한달 앞당기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백신접종 의무대상자가 아닌 10대 청소년에 대한 백신접종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해 가야 한다.위드 코로나 체계를 안착시키기 위해선 신규 확진자를 일정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보건당국의 치밀한 대응과 국민 모두의 냉정한 절제심으로 위기를 잘 넘겨야 한다. 이번 기회가 코로나 극복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2021-11-04

에펠탑 효과

‘에펠탑 효과’를 ‘호감도 효과’라고도 부른다.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지만 대상에 대한 반복 노출이 거듭될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우리 말의 “자주 보면 정들고 정들면 좋아진다”는 말과 뜻이 비슷하다.에펠탑에 이런 의미가 붙여진 사연은 이렇다.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맞아 파리만국박람회가 열리면서 건립한 에펠탑이 당시에는 파리의 많은 예술가와 시민의 반대에 부딪혔다. 고풍스러운 고딕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에 무게 7천t, 높이 320m나 되는 철골구조물은 천박한 인상을 준다는 생각 때문이다.당초 20년만 유지키로 했던 에펠탑은 1909년 해체 위기를 맞으나 무선전신 전화의 안테나로 이용되면서 철거 위기를 넘기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파리의 명물로 등장한다. 지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시민의 자랑거리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반복적 노출이 만들어낸 최상의 호감도를 이끈 사례다. 잡음을 일으켜 구설수에 오르게 하는 노이즈 마케팅도 에펠탑 효과의 일종이다.호감이 간다는 말은 어떤 대상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는 마음인데 정치인에게는 유권자의 호감도가 매우 중요하다. 인상이나 말씨와 느낌 등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내년 3월 대선은 특이하게 여야 유력 후보 모두가 비호감도가 높은 인물이어서 걱정을 하는 이가 많다. 한 여론조사에서 유력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60% 선을 오갔다고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를 “국민들께서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하신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동감이 가는 말이다.4개월 정도 남은 대선까지 여야 후보의 비호감도가 에펠탑 효과처럼 호감형으로 바뀔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1-04

정권교체론의 착시현상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5일 오후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정권교체론의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보통 정권교체론은 집권여당이 아닌 야당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교체론이 높으면 당연히 야당이 대선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이런 평면적인 분석은 착시를 일으키곤 한다. 올해 들어 여야 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뤄진 수많은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정권교체론이 정권재창출론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대략 10%p 이상 정권교체 지수가 정권유지 지수보다 높았다. 국민의힘은 이 여론조사를 근거로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내년 대선 승부가 여야 진영대결로 번져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 이유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확연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이재명 후보가 야당 후보들과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앞서거나 근소한 차이로 경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모두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특히 정권교체를 원하면서도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유권자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 지지층이나 진보층의 약 10~20%가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정권교체론이 착시를 일으키게 하는 대목이다. 여당인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응답을 하는 건 어떤 경우일까. 이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엔 반대하지만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심리가 조사에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정권교체 지수가 줄곧 10% 이상 높은데도 정당 지지도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근소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치른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론에 대한 착시현상이 심했다. 여당의 박근혜 후보와 야당의 문재인 후보가 맞붙었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11월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유지보다 20%p 가까이 높았다. 하지만 양자대결 조사에서는 박근혜가 문재인을 앞섰다. 집권층을 지지하는 보수층 응답자의 20% 가량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당시 문재인 캠프는 정권교체 지수가 높다는 데 근거해 야당이 승리할 것이란 낙관 속에 선거전략을 짰다. ‘이명박근혜’프레임으로 ‘박근혜 집권은 이명박 정권 시즌2’가 된다며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여당 내 야당’으로 차별화했다. 대선에 앞선 총선에서 친이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벌였다. “박근혜 당선이 곧 정권교체”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박근혜가 승리하면서 ‘여당 내 정권교체’가 실현됐다. 세월이 흘러 상전벽해가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역시 비주류·비문의 정치 역정으로 벌써부터 ‘이재명 정부 창출’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권교체론이 높다며 방심했다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선은 말 그대로 건곤일척 승부다. 하늘과 땅을 걸고 벌이는 한판 승부의 결말이 참으로 궁금하다.

2021-11-04

의대 열풍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너무 인상적인 의사를 만난 경험이 있다. 갓 의대를 졸업했지만 너무 총명하고 친절하여 너무 믿음직스러운 의사였다.미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의사들의 총명성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도 의대생들의 학력 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한국에서도 의대생의 실력은 대학을 막론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의과대학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뜨겁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의대는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보다 그 합격선이 높다고 한다.그런데 한편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볼 만하다. 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을 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를 못가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려한다는 소문이다.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받아들인다 해도 그러한 배경에는 안정된 수입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큰 걱정이다.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미국에는 의대 출신으로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가 많다고 한다. 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이다.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 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문제가 국회에서 토의된 적이 있다. 신약을 현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은 결국 의사이며 환자를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취지이다. 의사들이 참여한 신약개발은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의과학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약은 엄청난 숫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의과학 발전이 병행된다면 그러한 위협은 상쇄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

2021-11-04

검찰개혁의 민낯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검찰개혁을 대한민국의 지상과제요 역사적 사명인 것처럼 몰아가던 때가 있었다. 조국 전 민정수석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부터였다. 물론 그 전에도 검찰개혁이란 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제한하고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원래 취지였다. 그러나 지난 정권을 적폐로 몰아 단죄하는데 일등공신인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까지는 검찰개혁이 그렇게 절박한 과제가 아니었다.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의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화들짝 놀란 정권은 검찰개혁을 꺼내 들었다. 피의자인 조국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법무부 장관에 앉혀 검찰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뒤를 이은 추미에 법무장관은 재임기간 오로지 검찰개혁(?)에 올인 했다. 추 장관의 검찰개혁 제1 목표는 윤석열 총장이 구성한 수사팀을 해체하고 눈엣가시 같은 총장을 몰아내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 정권에 관련된 수사를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여론과 검찰 내부의 반발에 부딪히는 일이기도 했다.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자르고 검찰 밖으로 내몰기 위한 추미애 법무장관은 일 년여 재임기간 두 차례나 ‘학살인사’를 단행해 법무부와 각급 검찰청의 간부들을 요직에서 밀어내고 정권 실세들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수사팀을 해체했다. 두 번이나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 직무정지와 징계청구권을 발동하기도 했다.법무장관의 이런 처사에 대해 춘천지검의 한 검사는 SNS에 “법무부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 이후 수사지휘권을 남발하며 인사권, 감찰권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검찰을 압박하고, 비판적인 검사들을 검찰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인 양 몰아붙이고 있다”며 “혹시 장관님은 정부와 법무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거나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지 않는 검사들을 인사로 좌천시키거나 감찰 등 갖은 이유를 들어 사직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 감히 여쭤보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윤석열 총장이 사직을 하고 나오자 검찰개혁이란 말이 사라졌다. 더이상 검찰개혁의 필요성이 없어졌거나 이제는 검찰개혁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윤 총장의 제거가 검찰개혁의 목표이고, 지금의 검찰이 바로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개혁을 한 검찰인 셈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위시해서 대검찰청, 중앙지검 등 법무부와 검찰의 모든 요직에 오로지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들만 앉혀놓았으니 이제는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되었다는 것인가. 늑대 같은 검찰을 발바리나 푸들 같은 애완견으로 길들여 놓고 이게 바로 개혁된 검찰이라면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런가보다 할 따름인가.그런데 그렇게 개혁된 검찰의 민낯을 보게 될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대장동 사건’이다. 여권의 대선후보가 성남시장일 때 발생한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검찰개혁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 수사를 하는 척 뭉그적거리다가 결국 꼬리 자르기로 매듭지을 거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2021-11-04

종교적 여흥(sideshow)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맥시코 체첸이사의 쿠쿨칸 신전근처에 후에고데펠로타(골반축구장)가 있다. 경기장 넓이는 오늘의 축구 경기장과 비슷하지만 한쪽에 10미터 높이의 벽면이 있고 그 벽면 꼭대기에 농구골대와 같은 것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골반으로 공을 차서 그 골에 넣는 경기가 고대 마야의 골반축구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경기의 승자는 그 심장을 신전제단에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결국 골반축구의 즐거움은 제물을 뽑는 ‘여흥’에 불과하다. 이 경기의 승자는 제물이 되어 신전의 제단에서 죽어야 하는데 과연 누가 골대에 볼을 넣으려 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당시 마야 사람들은 제물로 선택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이라 생각했기에 최선을 다해 승자가 되려 했다고 한다.여흥(餘興·sideshow)이란 서커스 등에서 손님을 끌어오기 위해 광장이나 길거리를 돌면서 따로 보여주는 소규모의 공연이다. 그러므로 여흥은 본질로 이끌기 위하여 제공하는 약간의 즐거움으로 메타포이며 예수는 이를 표적(Sign)이라 했다. 골반축구의 즐거움은 제물을 뽑기 위한 여흥일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어떤 종교이든 그 본래의 목적은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함에 있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기적을 보여 준 것은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여흥일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베드로는 만선의 기적을 체험한 후 즐거워하기 보다는 무서워하면서 무릎을 꿇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고 말했다. 만선의 기적은 여흥이었고 여흥이 이끌고자 했던 본질은 고기잡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인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여흥만 즐기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예수는 이들을 가리켜 “너희가 나를 따른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했다. 요한은 이를 표적신앙이라 했다. 표적이 가리키는 본래의 것을 봐야 하는데 표적만 보고 따른다는 질책이었다. 예수에게서 유대인은 표적만을 구하고 로마인은 고상한 지식만을 얻으려 하였는데 그것은 여흥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바울의 지적이었다.스퐁 교수는 오늘의 기독교에는 ‘종교적 여흥’만 남아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영적인 생활까지도 변화산에서의 세 제자들처럼 여흥에 빠져 있다고 했다. 지금 내가 신앙행위를 통해서 얻는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이 종교적 여흥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종교까지도 여흥에 빠져 영적파산에 이르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2021-11-03

립스틱

정미영 수필가 립스틱을 바른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매끄럽게 덧발랐더니 색감이 선명해진다. 화장의 완성은 립스틱이라고 했던가? 그 순간 자신감으로 충만해져 거리로 나선다.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립스틱 바른 입술을 드러내 보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예뻐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립스틱은 신분이나 국적, 나이를 막론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보석을 갈아서 입술에 화장을 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딱정벌레와 개미로 만든 붉은 색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피부 톤을 하얗게 하고 입술은 붉은 빛으로 표현하는 화장법을 유행시켰다.립스틱 효과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일 때, 저렴한 가격으로 여성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대학 졸업반이었을 때 나는 립스틱 효과의 수혜자였다. 취업의 벽에 가로막혀 앞길이 막막했다. 직장을 못 구해 힘들어 하고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심리적 압박과 우울한 기분이 밀려왔다.도전과 좌절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꿈을 향한 목마름으로 굳게 닫힌 취업의 문을 열려고 애를 써도 현실은 냉정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주름지고 눈동자는 흔들렸다. 푸를 것 같던 젊음이 점점 시들해지고, 마음은 흔들다리 위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학기 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직장을 구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혼자서 긋고는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취업 고민에 어깨가 처져 있던 날은 매서운 바람이 내 옷깃 속으로만 유독 몰려드는 것 같아, 잔뜩 긴장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 탓에 자주 허방을 딛고 다녔다.그 시절, 주머니가 얄팍해 다른 화장품은 못 샀어도 립스틱만은 발랐다. 마음이 팽팽하지 않고 느슨해질 때 입술 선을 따라 색을 입히면 정신적 허기가 채워졌다. 립스틱이 마치 심리적 대변자라도 된 듯, 내 가슴에 담긴 수많은 문장들이 입술 색으로 표현되었다.립스틱을 바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맨얼굴에 립스틱만 바른 채 학교 도서관으로 향할 때면,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보이지 않는 실체지만 내가 꿈꾸는 이상향을 세밀하게 소묘하기를 반복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의 흔적은 어떤 무늬로 그려질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도했다.혹독한 마음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내게도 봄이 찾아왔다. 마침 적성에 맞는 일자리에서의 까다로운 면접까지 무난히 합격했다. 다행이었다. 봄빛 머금은 발랄한 색상의 립스틱은 일터로 향하는, 생기 넘치는 발걸음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립스틱은 때때로 자국을 남긴다. 첫사랑을 심하게 앓은 남자 동창생은 상대를 떠올리면 분홍 빛깔의 입술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직도 마음이 달뜬다고 한다. 처음 소개팅 자리에서는 밋밋한 인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으면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그녀의 얼굴이 펼쳐졌다고 한다. 청순해 보이는 립스틱의 분홍 빛깔이 풍부한 사랑의 언어로 탈바꿈해 그녀의 입술 위에서 빛났을지도 모른다. 예쁜 빛으로 물들여진 사랑의 언어를 받고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헤어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 빛깔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다분히 그럴 것이다.가끔은 즐겨 바르는 색 대신에 붉은 립스틱을 발라본다. 일상의 변화를 바라는 내 시도가 익숙한 안일을 밀어내고 싶은 순간에 입술 색을 바꿔보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무언가 도전하는 일도 잘 마무리될 것 같고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생활에 있어 당당함의 밀도가 느슨해져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립스틱을 짙게 바를 것이다.나의 립스틱에 대한 관심은 멈추지 않는 진행형이다.

2021-11-03

따스하고 착한 별빛 명상

어둠이 내리면 천지가 깜깜한 시절이 있었다.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도 휘황한 네온사인도 없었다. 사람의 집 영창에 비친 은은한 불빛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름밤 개울가에 나가면 개똥벌레가 지천으로 날아다녔다.그런 날, 먼 산 너머에는 어김없이 별똥별이 긴 빗금을 그으며 떨어졌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흙이 되고 그 위에 금싸라기 은싸라기 별꽃이 피고 개똥벌레가 날아가 하늘의 별이 된다고 믿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신화는 깨졌지만 밤하늘에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주렁주렁 열려있다.개밥바라기 :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별, 금성으로 개 밥을 줄 때쯤 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늑대별 : 천랑성(天狼星)이라 불리운다. 狼은 늑대이며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별이다.닻별 : 북두칠성 아래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일컫으며 모양이 닻을 닮았다고 하여 닻별이다.무저울 : 혜성 꼬리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별.미리내 : 남북으로 강물처럼 흐르는 별의 군집.별똥별 : 유성.붙박이별 : 북극성으로 지구의 자전축 위에 있어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살별 : 긴꼬리를 끌고 도는 혜성으로 꼬리별이라고도 한다.샛별 : 금성으로, 새벽에 뜨면 샛별, 저녁에 뜨면 개밥바라기별이다.싸라기별 : 싸라기처럼 잘게 흩어진 별. 잔별이라고도 한다.어둠별 : 어둠이 짙어진 후 서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을 말한다.여우별 : 날씨가 궂을 때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별.짚신할아버지 : 독수리자리의 견우성이다. 모양이 짚신을 삼는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하늘의 해달별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해는 에너지를 주고 달은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고 별은 길잡이가 된다. 인간에게 해는 희망을 주고 달은 휴식을 준다. 반짝이는 별은 꿈을 준다.“어둠은 별을 낳고 별은 명상을 낳는다. 칠성별, 플레이아데스 그리고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밤마다 줄기차게 윙크를 보내는 무수한 별자리들, 별은 암흑 속에서 제 몸을 태워 존재를 증명하고, 빛은 수 억 광년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다. 그리하여 티끌만한 내 존재에 관한 명상에 불을 댕긴다.끝을 알 수 없는 시공간, 은하계 한 모퉁이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가운데 지구에 사는 숱한 사람 중에 한 점, 나는 누구이며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길을 찾는 존재론적 질문에 종교는 천당과 지옥으로 말하고 철학은 에둘러 말할 뿐,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는 신화만큼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없었다.”(김이랑 수필 ‘별’ 부분)별을 사색한 글이다. 작가는 별을 보며 ‘반짝인다’는 단세포적 인식에 그치지 않는다. 별을 바라보며 망망한 우주에서 티끌만한 자신의 존재를 사색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명상에 닿는다. 이처럼 별은 인간에게 숱한 영감을 준다. 그래서 인간은 밤하늘 별자리에 숱한 이야기를 걸어놓았다. 칠성신화, 견우와 직녀, 별자리마다 전설이 있다. 이러한 신화적 상상은 감수성 예민한 사람을 통해 문학이 되었다.“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소리 별 그림자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굴뚝 가까이 내려오던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도종환 ‘어떤 마을’ 전문)별은 밤하늘에만 뜨지 않는다. 어둠이 내리고 사람의 마을 집집마다 불을 켜면 그 또한 별 하나 뜨는 일이다. 멀리서 보면 그 별은 군집을 이루어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시인은 사람들은 착하고 별들은 따스하다고 표현한다.별을 세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참 많았다. 별 하나에 단짝 친구가, 별 둘에 좋아하는 사람이, 별 셋에 언젠가 별빛처럼 나를 향해 달려올 사람이, 별 넷에 작년 이맘때 하늘로 가신 어머니가, 별 다섯에 이런 사람이, 별 여섯에 저런 사람이….해와 달은 하나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유한다. 하지만 별은 무수하므로 너와 내가 다툼 없이 나누어 가진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그래서 사람들은 너를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겠다고 ‘뻥’을 쳤다. 그 ‘뻥’은 지금도 마음이 착하고 따스한 사람에게는 반짝이는 진실이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1-03

고삐 풀린 소비자 물가, 서민이 피해자다

10월 소비자 물가가 1년전보다 3% 올랐다. 대구는 3.1%, 경북은 3.4% 올랐다. 3%대 상승률은 근 10년만에 처음이다. 특히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석유류값 급등과 서비스 요금까지 거의 모든 물가가 다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10월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했다. 이는 2012년 12월(3.0%) 이후 9년 9개월만에 처음으로 3%대 상승률을 보인 것이다.통신비 지원 효과가 없어지면서 통신비가 25.5%로 가장 많이 올랐다. 전기, 수도, 집세, 월세 등 전 분야에 걸쳐 물가 상승세가 나타났다. 공공서비스 5.4%, 개인서비스는 2.4%가 올랐다. 농축수산물도 0.2% 올랐다. 오른 물가가 모두 서민생활과 직결된 품목이다. 그래서 물가가 오르면 서민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일상회복 단계에 들어간 시기여서 물가 인상이 소비의 흐름을 막을까도 걱정이다.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입이 감소하고 소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서민가계들이 많이 이용하는 전세자금의 대출금리가 한달 새 1% 포인트나 올랐다. 4% 중반대에서 5%대 상승은 시간문제라 한다. 주택가격 안정화를 위한 규제 일환이라지만 결국은 돈 없는 서민 살림만 어렵게 만든다.곧 닥칠 김장철을 앞두고 김장 배추값도 들먹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 김장 배추값이 평년보다 9%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10월 한파와 무우 마름병으로 수급 사정이 불안하기 때문이다.정부가 12일부터 6개월간 유류세를 20% 인하하고, 액화천연가스 관세율도 0%로 낮춘다. 연말까지 민수용 가스요금을 동결할 예정이나 시중의 물가 흐름으로 보아 이 정도론 물가를 안정시킬 수 없다. 특히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이 유지되면서 인플레 우려도 커져 경기 불안마저 부추기고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균형있는 정책이 필요하다.여당 대선후보가 전국민 재난지원금 1인당 100만원 지급을 주장하고 있으나 재난지원금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서민생활 지원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 위드 코로나를 맞아 경기회복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물가가 발목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1-11-03

질병진단기술의 진화

질병 진단 기술이 크게 진화하고 있다. 이미 피 한 방울로 암을 유발하는 변이 유전자를 찾아내거나 마이크로리터의 땀으로도 스트레스 수준을 파악하는 기술이 개발돼 있다.최근 포스텍 연구진은 피 한 방울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에 지난달 발표됐다. 암에 걸리면 혈액에서도 암을 유발하는 변이 유전자가 발견된다. 연구진은 유전자 증폭을 하지 않고 ‘원자힘현미경’을 이용해 직접 피를 관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원자힘현미경은 시료에 탐침을 대고 이동시켜 표면을 확인하는 장치로, 탐침 끝에 변이 유전자와 반응하는 단백질을 붙이면, 원자힘현미경에서 변이 유전자에만 다른 힘으로 반응하는 원리다. 실제로 췌장암 환자의 혈액에서 변이 유전자 1~3개를 찾아냈다. 이르면 3년 내에 상용화하는 게 목표란다.땀은 피보다 채취하기가 쉽기에 질병진단에 더욱 활용도가 높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은 적은 양의 땀에서 바이오마커(몸 안 변화를 알아내는 지표)를 감지할 수 있는 패치를 개발했다. 땀의 양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무선 전자 패치를 웨어러블 장치에 적용하면 운동 전후의 탈수 증상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측정 결과는 무선으로 스마트폰에 전송돼 건강관리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눈물을 이용해 전극이 필요 없는 당뇨병 자가 진단 콘택트렌즈도 개발됐다. 눈물 속 포도당 농도에 따라 색이 변하고 인체에 무해한 나노 입자를 콘택트렌즈에 적용해 렌즈 색 변화로 당뇨병을 자가 진단할 수 있다. 질병진단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백세시대를 앞당겨 초고령화시대에 각광받는 첨단의학으로 자리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03

선거용 재난지원금, 청년들에게 빚더미 안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하 30만∼50만원의 전 국민 6차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5차례 지급된 재난지원금 규모가 1인당 48만~50만원이니 100만원을 채우자는 논리다. 이에대해 국민의힘에서는 “자유당 시대 고무신선거와 다를 바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지급 주장을 ‘대선 매표행위’로 규정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과는 달리 민주당은 그저께(2일) 재난지원금 재원 마련 방안을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 차원에서 본격 검토하기로 했다.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날 재원 마련 방식과 관련해서 “남은 세수를 가지고 할 거냐, 빚내서 할 거냐가 주 쟁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민주당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김부겸 국무총리는 3일 “재정여력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국회가 내년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올해 추경예산안을 다시 짤 수도 없는데다, 내년 본예산에는 올해 지원에서 제외됐던 300만명 가량의 자영업자(여행·관광 등) 손실보상금이 우선적으로 편성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개인 브랜드 수준으로 만들었다. 올 추석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때도 정부 방침과는 달리 이 후보는 전 도민 지급을 관철했다. 민주당과 중앙정부가 피해 상황과 재정 형편을 고려해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88%로 제한했지만, 경기도는 자체 예산을 동원해 전 도민에게 지급한 것이다.재난지원금 지급은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간다. 1인당 5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25조원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 지금 정부 재정상황은 최악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의하면 2023년부터 우리나라 국가채무의 연간이자가 20조원을 넘어선다. 우리 청년세대에게 어마어마한 빚더미를 상속하는 것이다.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지원금 지급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년 본예산 심사가 선거판으로 변질할 수도 있다.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중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 강화를 위해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2021-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