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사람을 동경한다. 떠오르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럽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타인에게 좌지우지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발 딛고 서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점철된 사람을 만나면 어떤 면에서는 놀랍기도 하다. 내면에 침잠해있는 생각을 바깥으로 드러내 보여도 거리낄 것 없다는 태도, 거기에서 솔직함이 시작되는 것이니까.
나는 나 자신을 꾸며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쓰자니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가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꽤나 괴로워했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보단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들에 집착했고, 그런 것들이 내 인생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것은 취향에 관한 고민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색이라던가 흥미롭게 읽은 책, 물건을 선택할 때는 무엇을 중점으로 보는지, 즐겨 듣는 음악이나 최근에 관심을 두는 사회적 이슈는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수많은 요소는 한없이 난잡했으며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애매한 방향에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것은 얼마나 싫어하는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손을 뻗어 직접 선택하는 무언가가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너는 왜 이런 것을 좋아해?’, ‘너는 왜 이런 사람이랑 어울려?’라는 말을 들으면 상대의 무례함에 화가 나는 것보다 오히려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내어놓으면서 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진실한 이야기를 쓰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지점에 매료된 것이다. 등장인물의 발화는 내 것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것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나의 문장을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역할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고 나머지의 영역은 어떤 미지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우연적 사건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물론 작품을 내어놓는 일은 또 다른 지점에서의 부끄러움을 야기했다. 특히 ‘작가로서의 나’는 정말이지 못 봐줄 정도로 한심했다. 어린 시절 내가 상상했던 작가는 좀 더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었고 그에 비해 나는 부족함이 차고도 넘쳤으므로 몸집을 부풀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미진함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 없는 이들을 마주하노라면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발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야, 내 안에는 이렇게나 께름칙한 구석이 많아. 꺼내고 나면 개운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욱 엉클어졌다. 내가 가진 최소한의 존엄이 스르르 빠져나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그건 솔직한 게 아니었다. 솔직한 척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의 이십대는 이러한 고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신랄하게 살아가고 싶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연속.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궁리해왔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 속에 위치한 나 자신을 본다. 낮은 조도 속에서 잔잔한 음악을 듣는 시간이 좋다. 단맛이 나는 음료보다는 쌉쌀한 커피가 더 취향이고 왁자지껄한 공간보다 방 안에 고요하게 앉아 사색에 잠길 때 온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은 내 모습이 어렴풋하게 그려진다.
솔직한 척, 대단한 척,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척했던 나는 이제 지난 일이 되었다. 그때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나는 지금 ‘척하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찾아올 때도 있다. 이전도 지금도 나는 늘 서툴다.
나를 가장 모르고 있는 사람이 나인 것만 같다. 이 어쩔 수 없음 안에서 매일같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가다듬는다. 그러다 보면 훗날에는 지금의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형태의 내 모습을 갖게 될 것이고 그 어떤 것보다 꼭 맞는 옷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위안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