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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집 사라던 시절

등록일 2022-08-30 17:50 게재일 2022-08-3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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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불패라는 한국의 신화는 계속될 수 있을까? /Pixabay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부총리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대놓고 말하던 시절이. 그것도 다음 해의 경제부양정책에 대한 발표에서 말이다.

그 무렵 많은 이들이 은행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 매매가와 전세가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자 본격적인 갭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이 점진적으로 완화 기조로부터 긴축 기조로 전환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우리에게 미국의 금리 인상도 견뎌낼 힘이 있다며, “빚을 줄일 수 없다면 가계소득을 더 늘리면 된다”는 독특한 성장론을 설파하기까지 했다. 그게 고작 7년 전이다.

그 무렵 그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한겨울이나 다름없는데 각종 규제로 인해 여름옷을 입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규제 완화의 시급성을 설파했었다. 그 이후 정부는 LTV, DTI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고, 같은 해 9월에는 부동산 종합 대책을 통해 건설사가 보다 쉽게 아파트를 짓고 팔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부동산 시장에는 무수히 많은 돈이 흘러갔고, 거래가 활성화되었으며, 아파트에서부터 주상복합, 빌라, 오피스텔, 대지 등 온갖 종류의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사기만 하면 가격이 오르는 마법 같은 부동산 덕분에, 시드도 없는 3~40대 직장인들조차 어떻게든 돈을 빌려보려 은행을 찾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부동산은 미친 듯이 가격이 올랐다. 집값은 거품에 불과하다고, 집값은 언제고 곧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 믿었던 이들에게 집은 이제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집을 샀어야 했다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라도 집을 샀어야만 했다고 한탄하는 소리가 많다. 하지만 소위 영끌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지금 상황이 마냥 순조롭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점차 얼어붙어가는 세계 금융 시장의 여파로, 한국의 금리도 점점 더 오를 것이 전망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마저 점차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일각의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해 물건을 던지는 사람의 가격으로 평준화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20억대의 프리미엄 아파트라 할지라도, 대출이자를 견디지 못한 누군가 급매를 내놓는 순간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말 것이라는 소리다.

그 무렵 증가한 가계 빚은 2015년과 2016년만을 합쳐도 무려 250조원이 넘는다. 그렇게 부양된 부동산 정책 속에서, 실제로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사실상 강남 3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빨리 부동산을 구매한 사람들은 사정이 낫지만, 2020년대 들어 집을 구매한 사람의 입장에선 부동산 폭락이 곧 파산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빚을 더 늘려서라도 부동산을 부양해 달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무작정 부동산 시장을 살리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상품의 가격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더불어 내가 부동산과 관련된 전공자도,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니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와 같은 시장의 분위기가 정상이냐는 의문이다. 주택 구매로 인한 혜택은 다주택 보유가 가능한, 그러면서도 금리 인상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될 확률이 높다. 우리는 이미 IMF 직후 어떻게 부동산과 금융 흐름이 경제적 부유층에게 향해 가는지를 경험한 바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흡사 코인 시장이나 주식 시장의 수축과 유사해 보인다. 예컨대, 부동산 불패라는 한국의 신화는 이미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상향 만을 반복해오던 부동산 시장 역시 상품의 논리를 따르는 시장이었다는 것이고, 신화라는 말이 그렇듯 ‘부동산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명제 역시 믿음의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부동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도 그렇다. 이상한 믿음과 신념의 시장에서 정상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트렌드를 쫒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렇게 얻어낸 금융소득이 무로부터 창조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식 시장이 그러하고 코인 시장이 그러하듯이, 부동산 시장에서의 경제적 이득 역시 무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해, 내지는 다른 시장에서의 자본의 이동을 전제한다. 부동산 시장에 더 많은 돈이 몰린다는 건, 곧 누군가 손해를 보거나 다른 시장에서 활용되어야 할 자본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다소의 비약을 행한다면, 지금의 한국 경제는 부동산 시장이 말려죽이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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