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는 명실상부한 철강도시이다. 1968년 포항제철 설립 이후, 많은 철강업체들이 포항제철을 따라 포항에 모여들었고, 그 결과 포항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굴지의 철강기업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포항의 철강 관련 기업은 350여 개에 달하며, 철강업 종사자는 약 3만 명에 육박한다. 철강산업이 포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반세기 포항 경제의 주축 역할을 해왔던 철강 산업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철강 제품 수요가 줄고,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다 고물가·고유가·고금리의 ‘3고(高)’ 현상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경기가 둔화되자 철강산업도 타격을 피해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철강 시황이 좋지 않은 만큼 포항철강 공단에도 불황의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반 경기 악화 여파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고비가 온 것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철강공단에 설비·자재를 납품하는 공급사들의 사정도 심각하다. 실제로 포항지역 내 철강 관련 기자재 공급사들은 매출 감소와 이로 인한 고용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포항철강공단 내 업체들의 가동률은 87% 수준이었다.
수주가 줄어들자 휴업, 폐업한 공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철강공단의 상시 고용인원도 전년 6월 대비 200여명 감소했다. 철강업체들에 납품하며 수익을 얻는 공급사들은 덩달아 허리띠를 졸라매며 불황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과 포스코가 한마음이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그리워진다. 2006년 포스코가 해외로부터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될 위기에 처했을 때 포항 시민들은 몸소 주식갖기운동을 펼치는 등 ‘지역기업 지키기’에 매진했다. 당시 포항시민들의 마음에 포스코 직원들만 눈시울을 붉힌 것은 아니었다.
포스코에 납품하는 공급사도 지역사회의 간절한 움직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포스코가 지역 경제, 나아가 한국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치) 산업 발전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포항 지역사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역 곳곳은 붉은 현수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다.
번화가, 교차로 등 통행이 많은 곳은 어느 읍면동 할 것 없이 볼 수 있는데 현수막 색상만큼이나 내용도 원색적이고 자극적이다.
급기야 포스코 직원들은 최근 회사에 대한 과도한 비방을 중단해달라며 결의대회와 인간띠 잇기에 나섰다고 한다. 회사를 지켜달라고 피켓을 든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한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로서 그 심정이 이해가 가고, 한편으로 처절하게까지 느껴졌다.
포항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역 기업 77개사 중 33.8%가 상반기보다 자금 상황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포스코 또한 일부 공장에서 감산에 돌입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철강공단의 하루하루는 불안하고 어둡기만하다. 여기에 포스코 비방 현수막까지 줄을 잇는 모습은 실로 안타깝다.
기업들이 불경기에 신음할 때마다 함께 위기를 극복했던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는 사라지고,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공단 풍경을 볼 때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5월 美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시 첫 일정과 마지막 일정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을 면담하는 등 최근 전세계 정치지도자나 지자체장들은 어려운 고용 및 경제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기업하기 좋은 국가, 지자체로 만들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우리 지역도 하루 빨리 대립을 멈추고 포항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투자하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해야 한다.
또한 이에 호응하여 포스코를 비롯한 기업들은 포항시에 투자를 확대해서 고용과 경제 활성화를 일으켜야 한다.
탄소중립 시대에 철강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는 저탄소 제품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매년 높아지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기술개발과 대규모 설비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이는 포스코만의 숙제는 아니다. 포항의 철강기업들은 긴밀하게 협력하여 친환경 철강기술과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낡은 규제를 타파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할 것이다.
포항이 대한민국 철강 산업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하기까지 드러나지 않은 지원군들이 많았다.
포항의 근간인 철강 산업을 지키고, 포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강 기업들이 본업에 집중해 경제 불황이라는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주식 갖기 운동을 펼치며 지역 기업을 사수하던 시민들의 사랑이 부쩍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