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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림 때문에 분열된 동·서방교회

서양미술사에서 13세기는 중세에 속하며 고딕양식이 서유럽 전역에 확산되던 시기이다. 13세기를 이탈리아어로는 두에첸토(Duecento)라고 부른다. 1200년대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두에첸토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비잔틴 미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1054년 기독교는 정치적, 신학적 입장차 때문에 교황 중심의 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로 분열되었지만 비잔틴 미술은 이탈리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미술을 마니에라 그레카(maniera greca)라고 부른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스 풍’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비잔틴 양식을 가리킨다.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교회는 수백 년 넘게 갈등과 반목을 이어왔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로마제국 단독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누스 대제 사후 그 이름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불림·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으로 옮겼기 때문이다.비잔티움이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분명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수도의 이전은 중심의 이동이자 권력의 이동이다. 그리고 그 권력에는 종교 권력도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최고의 머리는 성인 베드로의 대를 잇는 로마의 교황이다. 그런데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옮겨가면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로마 교황과 대립하게 된다.동·서방교회 충돌의 불씨가 된 것은 성화 사용에 대한 입장차였다.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는 했지만 기독교 교리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여러 신학적 쟁점들이 종교회의에서 다퉈지고 있었다. 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을 두고 찬반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을 한다. 대(大)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그림 사용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교육적 목적으로 그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미술품 사용 반대파는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성서의 가르침을 이유로 내세웠다. 교황의 지침에 따라 서방교회는 적극적으로 미술품을 수용했던 반면 비잔틴의 동방교회는 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파괴했다. 이 사건을 가리켜 ‘비잔틴 성상파괴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술품 사용을 둘러싼 두 교회 간 분쟁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476년 게르만의 침략으로 서로마제국이 몰락했다. 게르만족은 원활한 통치를 위해 토착 로마인들과의 유대 및 결속이 필요했고,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를 적극 수용했다.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야만족들을 개종시키는데 미술품은 용이한 수단이었다. 반면 비잔틴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가면서 각 지역별로 다양한 신학적 이론들이 생겨났고, 교리에서 벗어난 이단적 사상으로 비잔틴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숭배 문제와 직결된 그림 사용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서방교회는 로마제국 황제의 정통성을 이어가던 비잔틴에 명목상 종속되어 있었다. 730년 비잔틴의 황제 레오 3세가 성상금지령을 내렸고, 이를 이유삼아 서방 교회가 콘스탄티노플에 바치던 세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서로간의 골이 깊어졌다. 로마 가톨릭의 속내는 성상금지령을 빌미로 비잔틴의 정치적 간섭과 규제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은 비잔틴과 거리를 두는 대신 야만족들이 세워 왕성한 힘을 키운 프랑크 왕국에 손을 내밀었다. 교황 스테파누스 2세는 754년 파리 북부 생드니 대성당에서 프랑크의 왕 피핀 3세를 위한 축성식을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그에게 ‘프랑크의 왕이자 로마의 대군’이라는 직위를 내렸다. 이로써 프랑크의 왕은 교황으로부터 지배와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교황은 프랑크 왕의 힘을 등에 업고 비잔틴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미술사학자

2021-10-18

문두루비법을 행하다, 사천왕사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에 대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문헌기록에는 유독 신성스럽고 기이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3년(919년)에 사천왕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塑像)이 들고 있던 활의 줄이 저절로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소리를 냈는데 마치 짓는 것 같았다”.삼국유사 권2, 기이2, 문무왕법민(文武王法敏)에는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자, 갑작스런 풍랑이 일어 당나라군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이 구절은 어느 소설에 등장할 법한 말은 아니다. 바로 사천왕사와 관련된 기록이다. 사천왕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사찰이 위치한 낭산(狼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낭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남북방향으로 긴 능선을 이루는데 삼국사기 권3 실성이사금조에는 “12년(413년) 가을 8월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 받은 땅이다’라고 하였다.이때부터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처럼 낭산은 신라왕실은 물론 신라인들에게도 신성한 신유림(神遊林)으로 인정받았고 그래서인지 사천왕사의 창건은 물론 주변으로 망덕사지, 황복사지, 선덕여왕릉 등 다수의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이렇듯 낭산은 당시 신라사람들에게 복된 땅이자 신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사천왕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사천왕사와 관련된 창건기록으로 이야기를 되돌아가 본다. 삼국유사 기록처럼 사천왕사는 당나라군의 침입을 물리친 영험을 계기로 창건되었다. 당나라군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왕은 여러 신하들과 방어책을 논의했는데 명랑법사(明郞法師)가 아뢰길 “낭산 남쪽 신유림이 있으니, 그곳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을 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그러나 사찰을 짓기에는 급박하자 명랑은 다시 “채색 비단으로 절을 임시로 지으십시오”라고 답한다. 이에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비밀법(文豆婁秘密法)을 지으니, 당나라와 신라 군사가 싸우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고, 그 후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문무왕 19년·679년)라고 했다 한다.문두루비법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의 음을 딴 밀교의 비법으로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급박하게 임시로 만든 후 탄생한 사천왕사는 고려시대까지 문두루비법과 관련된 단석(壇席)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혹시 이 흔적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동·서 단석지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사천왕사와 관련해서는 기록뿐 아니라 발굴조사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발굴조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이루어졌고 강당지-금당지-탑지 등의 가람배치를 밝히는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금당지 앞에 동·서로 대칭을 이루고 서 있었을 탑지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쌍탑의 석탑으로 정착되는데 목탑에서 쌍탑의 석탑으로 변화하는 가교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사천왕사이다.흔히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 한국은 석탑이 많은 나라라고 하는데 물론 한국에서도 목탑과 전탑이 있었다. 황룡사 구층목탑과 목탑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사찰이 여러 곳 존재한다.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아 삼국시대 목탑의 원형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목탑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탑지에 심초석과 사천주가 있느냐에 따라 알 수 있는데 사천왕사에서는 동·서 탑지에서 모두 목탑지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발굴조사 당시 주목된 것은 탑지 기단면에서 확인된 벽전이다. 바로 녹유신장벽전이다. 이 벽전은 명칭부터 논란이 있었는데 사천왕상, 신장상, 신왕상, 소조상, 팔부중상 등 어떻게 불러야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여기에서는 녹유신장벽전으로 부르고자 한다. 정여선 ​​​​​​​학예연구사 녹유신장벽전은 목탑 기단부 한 면에 6점씩 모두 24점이 배치되었고 따라서 동·서 탑지를 합하면 모두 48점인 셈인데 얇은 녹유를 시유한 것으로 복원결과 높이 90cm, 너비 70cm, 두께 7~9cm로 확인되었다. 이 벽전은 아치형의 감실에 갑옷을 입은 눈을 부릅뜬 신장상으로 두 악귀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매우 실감 있고 자세하게 표현된 부조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각각의 벽전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얼굴의 모양과 바라보는 방향, 머리에 쓰고 있는 관(투구)의 모양, 갑옷의 모양, 앉아있는 자세 등이 달라 총 3종류로 구분된다. 특히, 목탑지 한면의 중앙에는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을 기준으로 3종류가 1세트를 이루어 한 면에 2세트씩 배치된 것인데 이 상들의 얼굴 방향이 첫 번째는 좌측, 두 번째는 중앙, 세 번째는 우측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조각에 있어 뛰어난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배치에 있어서도 매우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녹유신장벽전은 통일신라시대 우수한 조형기술로 제작된 것으로 이처럼 목탑기단면에 장식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혹시 녹유신장벽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세 종류의 벽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각각 어떻게 다른 자세와 모양을 취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사천왕사를 이해하는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2021-10-18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강길수 수필가 젊은 날, 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란 소공동체 활동을 시작했었다. 창단 단원으로 출발하여 오늘 해단할 때까지, 오랜 기간 참여했다. 해단 사유는 단원들의 수가 줄어, 더는 소공동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단원이 줄어든 원인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 전출이 주된 요인이었다. 전출은 타 시도로 가는 경우와, 같은 지자체에 살면서도 주거지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져 떠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대별 되었다. 우리 성당이 기존 시가지에 있어서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요즈음의 사회 여건도 작용했다.새 교우 영입, 혼성체제 도입, 상위 단체 지원요청 등 자구책을 쓰면서 버티어 왔다. 40주년을 반년 남짓 앞두고, 남은 단원이 한 명밖에 안 되었다. 결국, 해단하기로 했다.젊을 땐 인구가 유입되며 선교가 잘 되어, 분가(分家)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간부 맡을 이가 모자라서다. 하지만, 반세기도 안 된 해단 앞에서 ‘긴 세월 동안 함께해 고마웠고, 행복했다’라고 카톡 인사를 보냈다. 격세지감과 회한, 어떤 슬픔도 가슴에 여울져 왔다.알파와 오메가란 말이 있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 알파(α)와 끝 자 오메가(ω)를 말한다. 주로 그리스도교에서 신앙대상의 영원한 존재성을 말할 때 많이 사용해 오다가, 요즈음은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 일반적 뜻은 처음과 끝 혹은, 어떤 무엇의 전부를 뜻하는 말이리라.무릇 만사는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있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먼지 한 알부터 흙, 돌, 바위, 지구 등 자연은 물론, 나아가 원자에서 태양계, 우주에 이르는 물질계도 같다. 바로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체와 물질계의 존재 양태는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안에 있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당연히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는 ‘시간’이란 야릇한 존재, 변수 또는 개념이 그 몸이다. 시간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 끊임없이 다루어 왔지만, 명쾌한 답은 아직도 못 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살면서, 거부할 수 없이 처절하게 당하며 겪어내야 할 괴물이 시간이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한다’라든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란 속담만 보아도 그렇다. 시간의 절대 폭력 앞에 던져진 것이 모든 존재이다. ‘유종의 미’란 말도 있다. 목표를 끝까지 잘 이루어 내는 일이리라. 그렇다면 앞 소공동체 활동은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일까.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출발한 다른 단체는 계속되므로 그렇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결국, 만사는 꿈보다 해몽이란 말인가.오래 활동한 성당 소공동체의 알파와 오메가 법칙 결과가 이럴진데, 사회와 국가의 그것은 어떠해야 할까. 정권이 나라를 한 번도 겪지 못한 길로 막무가내 끌고 가는 우리 사회…. 그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이, 주권자 국민인 내게 실망을 주고 있다.

2021-10-18

미안하다고는 안 할 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고1 때다. 어쩌다가 응원 밴드에 들게 되어 큰북과 심벌즈를 담당했다. 음악 선생님이 몇 번 쳐보라고 하더니 두 악기를 내게 맡겼다. 피아노를 잘 쳤던 친구는 어코디언을 맡았는데, 바로 연주를 잘했다.시내 공설운동장에서 학교 대항 응원이 끝나고 그 친구가 내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화를 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는 피아노 잘 치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그 부러운 마음만큼 큰북이나 심벌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 잘 치는 애가 나를 칭찬하니까 열등감이 폭발한 것이다.그 날의 일이 가끔 생각난다. 이렇게 아무 때나 갑자기 생각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선영의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에는 신경이 예민해지는 정도, 때때로 일어나는 걱정이나 생각, 불안해질 때 하는 행동, 그것들이 일어나는 빈도,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느낌 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참거나 조절하려고 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나 자책 역시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후회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대로 그런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의 나라면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면 후회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그때 내가 너한테 한 말,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그런데 이제는 너 원망 안 해. 그때 나는 남편 없이는 숨도 쉴 수 없었어.’ 요즘 인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15회에서 나온 대사다. 5년 전 친하게 지내던 형이 주인공 대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자 누나(형의 아내)가 주인공 홍두식에게 ‘네가 죽었어야지, 왜 형이 죽어.’라고 했던 말에 대해 사과 아닌 사과를 이렇게 한 것이다.드라마 작가가 ‘수용’의 의미를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그랬어’라는 누나의 말은 그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제 누나는 홍두식이 죄책감 느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아이에게 홍두식을 삼촌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허지원 교수 역시 ebs2의 ‘무덤덤한 심리학’ 강의에서 ‘그때는 내가 취약했지’라고 받아들이고, 지금은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나 스스로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내가 지금 알아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삶이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그렇다고 이런 수용이 대오각성하듯이 단번에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할 수 있다. 그럴 때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때 왜 그랬는지 분명하게 알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 나가면 된다.

2021-10-18

‘드라마속 도시’로 각광받는 포항, 활력 넘친다

그저께(17일) 종영한 tvN 인기 주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갯차)’의 실제 촬영지인 포항이 ‘드라마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갯차’가 방영된 이후 드라마 속 주무대이며 5일장터인 청하면 청하시장(극중에는 공진시장)과 청진리 해변(윤 치과위치), 구룡포 석병리, 북구 흥해 오도리 사방기념공원, 청진3리 어민복지회관, 석병1리 마을회관, 월포해수욕장 등에는 최근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이달 첫째·둘째 주 연휴 때는 1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드라마 제작진이 민원을 고려해 촬영지 주변 마을은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공지할 정도였다.포항시는 지난주 ‘갯차’ 주무대를 비롯한 포항 일대의 관광활성화를 의제로 해서 관련부서 회의를 갖고,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세부추진계획을 세웠다. 우선 주요 촬영지점에 관광코스 안내판과 포토스팟 등을 설치해 관광객이 현장에서 드라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번주부터 평일에 한해 포항시티투어 코스에 ‘갯차’ 촬영지도 포함시켜 운영하기로 했다.포항이 드라마 관광지로 유명해 진 것은 지난 2019년 방영된 공효진·강하늘 주연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부터다. ‘갯차’ 촬영지가 관광지로 뜨자 최근에는 ‘동백꽃 필 무렵’ 주 촬영지인 남구 구룡포읍과 그 주변 명소도 포항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이달부터 11월까지 가을철에는 ‘동백꽃 필 무렵’의 한 무대인 구룡포읍 해안둘레길 일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느니 어린 자녀를 둔 가족에겐 주요 관광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드라마 로케이션 담당자들은 포항이 촬영지로 뜨는 가장 큰 이유는 대도시인데다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을 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로 구성된 긴 해안선은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이 “드라마속 촬영지를 찾아가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관광산업이 포항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듯이, 드라마 제작진이 최고의 촬영지로 꼽는 포항의 관광문화 자산이 ‘갯차’ 방영을 계기로 국내외에 널리 홍보되기를 바란다.

2021-10-18

부스터샷

부스터샷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의 면역효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접종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돌파 감염이 계속되면서 백신 부스터샷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미국, 유럽, 영국 등은 이미 부스터샷 접종을 실행하고 있다.올해 7월 화이자 백신으로 면역저하자 대상 3차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부스터샷을 통해 전 연령층에서 재감염률과 중증 악화율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부스터샷은 고령층의 중증 악화나 입원을 예방하는 효과가 5~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4차 접종을 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모더나 백신의 부스터샷 효과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병원과 프랑스 연구진이 지난 8월 각각 NEJM과 JAMA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토론토 대학병원 연구팀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2개월이 지난 장기 이식 환자를 대상으로 부스터샷 접종을 진행했는데, 3차 접종을 마친 집단의 바이러스 중화율 중앙값이 71%에 달했다. 3차 접종을 하지 않은 집단은 바이러스 중화율 중앙값이 13%에 불과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부스터샷을 접종한 사례는 없다. AZ 백신과 같은 바이러스벡터 방식의 얀센 백신의 부스터샷 효과 임상시험 결과는 있다. 얀센 백신 제조사인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초기 임상시험 결과 얀센 백신을 접종한 지 6개월 지난 참가자들에게 두 번째 백신을 투여한 결과 이들의 항체 수준이 최초 접종 4주 뒤와 비교해 9배 높았다고 발표했다.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얀센 백신 접종자에 대한 부스터샷 접종계획 수립을 지시한 것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고려한 조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무리 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18

기상 이변에 대비한 농작물 관리 만전을

지난 주말 전국 일부 지방에서는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10월 중순 기준으로 64년만에 가장 추운 아침 기온을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올 가을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다. 주말인 17일 오전 6시30분 기준 경북 봉화 석포가 영하 1.9도를 기록했고, 안동 1.2도, 김천 2.3도, 대구는 3.9도를 기록했다. 불과 수일 전만 해도 반팔차림으로 다녔던 시민들은 일주일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겨울 날씨에 황당해했다.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뛰었다는 소리도 나왔다.17일 나타낸 아침 최저기온은 1957년 10월 19일 영하 0.4도를 기록한 후 64년 만에 10월 중순 최저기온이라 한다.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생긴 이상기온이라 하지만 지구촌의 이같은 기상이변은 날로 잦아지고 있다. 지난 7월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100년 만의 기록적 홍수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앞으로도 이같은 기습한파나 폭설 등의 기상이변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어 기상변화에 대한 준비가 미리 돼 있어야 한다. 특히 농축산 농가들은 농작물과 가축의 안전관리를 위한 사전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번 기습한파로 일부 농가서는 냉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농촌진흥청은 수확기에 접어든 가을배추와 무는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수확하도록 하고 수확이 어려울 경우 부직포, 비닐, 짚 등을 덮어 냉해 피해가 없도록 대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시설작물의 경우 비닐하우스나 온실 등 내부시설 보온관리가 중요하다. 밤사이 10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게 천창과 측창을 잘 닫아주고 낮에는 환기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지금은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피해가 경미한 과일은 출하를 서둘고 정상과일도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지구 온난화로 지구촌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폭우와 폭설,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과학자들은 이같은 지구촌의 기상이변이 갈수록 빠르게 가속화할 것이라 경고한다. 국가 차원에서 대비가 있겠지만 농촌도 갑작스런 한파나 폭설 등의 기습적 날씨 변화에 항시적 준비가 필요하다. 기상이변에 잘 대비하는 것도 농업을 살리는 길이다.

2021-10-18

인간은 부정성 편향이 있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당신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거리 반대쪽에서 아는 사람을 보았다. 당신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버렸다”면 당신의 감정은 부정적일까? 긍정적일까?아마 부정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당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화가 났을 것이다.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이 말기암 진단을 받고 망연자실해 당신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고 적어도 화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 상황은 정신의학적으로 사건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본다.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생각과 해석에 따라 감정과 행동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 감정과 행동 반응은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왜 인간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을 가질까?원시시대 인류의 이야기로 거슬러 가보자. “밀림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그때 저 멀리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부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놀고 있었고 한 부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맹수라고 생각하고 미리 피신을 했다” 어떤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까?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피신을 하지 않았던 인류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맹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리 피신했던 인류가 생존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우리는 생존한 자의 후예이다. 그렇다.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은 원시시대 직접적 위험에 많이 노출된 환경에서 생명을 지켜 내고자 한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인지적 기제이다.인간의 뇌는 변연계 특히 편도체가 이를 위험인자로 느끼게 해서 위험상황에서 일단 피하도록, 다시 말해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도록 설계되도록 진화됐고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능으로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좀 전에 제시한 예로 다시 돌아 가보자.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사실은 맹수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바람 소리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동물이 지나가는 소리 알 수도 있다. 그렇다. 많은 경우 위험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특히 현대에는 원시시대와 같이 맹수가 나타나서 목숨을 잃는 위험요소는 사실상 거의 없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사건조차 인생에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숨을 담보하는 잠재적 위험 때문에 더 이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할 필요성이 사라졌다.그러나 인간이 진화하는 속도는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에 우리는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속에서 살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중립 상황이나 애매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한다. 또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동시에 접하게 되었을 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내용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예를 들면, 우리는 웃는 얼굴보다는 화난 얼굴, 타인의 선한 행동보다는 악한 행동,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 칭찬보다는 비판, 긍정적 경험보다는 부정적 경험에 더 반응한다.그렇다면, 우리가 가지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먼저,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해서 느끼는 감정, 다시 말해 자꾸 부정적으로 내달리는 기울어진 감정은 대개 병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서 유래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다시 말해 우리의 부정적 사고, 부정적 감정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는 안경을 끼고 자신, 타인, 세상,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값을 제거하고 바라보아야 사실에 근접한다는 것이다.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의 과부하에 있는 현대인은 과거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불안감이 흔히 있을 수 있으나, 우울감과 불안감 대부분은 우리가 두려워할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또한 지나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이다.결코, 우울감과 불안감이 당신의 정체성일 수 없다.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값을 제거한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창조적 동기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또 극심한 부정적 사건을 겪었을 때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아닌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이루기도 한다. 극심한 부정적인 사건조차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자신의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

2021-10-17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대한민국 인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지난해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처음 발생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OECD 198개 회원국 중 7년째 꼴찌다.산모가 첫째 아이를 출산하는 시기도 OECD 국가 중 가장 늦다.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을 공개한 OECD 국가(30개국)의 평균 나이는 29.3세(2019년 기준)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2.9세 많은 32.2세다. 지난해엔 이 연령이 32.3세로 1년 새 0.1년 더 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출산율 감소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이 추세라면 30년 후엔 대한민국 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정부는 심각성을 깨닫고 2006년 저출산 대책을 처음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06년 이후 16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책정한 예산만 총 380조2천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작금의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이유가 뭘까.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유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크게 감소한 반면, 저출산과는 상관없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됐다. 지난 16년간 책정된 저출산 예산 중 아동, 청소년, 산모를 지원한 규모는 전체 절반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저출산 예산의 43.0%를 차지했다.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심화됐다. 대책 첫 해인 2006년 76.8%에 달했던 영유아 대상 예산 비중은 지난해 31.5%, 올해 26.1% 등으로 크게 줄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자녀 양육 가구를 지원하는 사업만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했지만, 3차 저출산 대책이 시작된 2016년부터는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사업도 저출산 대책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올해 저출산 예산엔 △프로스포츠팀 지원 △돌봄노동자권리보호사업 △게임기업 지원 △기술인력 지원 △에코 스타트업 지원 △폐업예정 소상공인 지원 △협동조합 종사자 지원 △지역 문화 기획자 지원 등도 포함됐다. 이들 사업은 저출산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가족 여가 진흥이 저출산 대책이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데 지원하는가 하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이러니 저출산 예산을 두고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수도권 집중 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를 포함하는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국토의 11.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는 50.1%로 전체 절반을 웃돌았다.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것이다. 지방의 청년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서울공화국’, ‘서울민국’, ‘수도권공화국’이란 말이 등장한 지 오래다.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역은 심각한 인구 유출에 허덕이면서 수도권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수도권 과밀로 지나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혼 후에도 주택문제나 교육비, 육아비용 등의 부담으로 출산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고령 인구’, ‘초고령 인구’ 중심사회로 치달으면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방분권이니, 지역균형발전이니 하는 갖가지 정책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고 있으나 자리를 만들고 예산만 축내면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내년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3월9일)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1일)가 치러진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인구소멸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공약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대장동’, ‘화천대유’, ‘천하동인’, ‘고발사주’, ‘손바닥 왕(王)’ 등 온갖 비리 의혹과 고자질, 무속 논란으로 대선 키워드가 점철되고 있다.후보들은 이제라도 인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 앞에 공약해야 한다. 구호에만 그칠 수 있는 경제정책과 주택안정, 일자리 창출, 지역균형발전 공약은 곤란하다. 그동안의 정책들을 점검하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수렴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완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2021-10-17

집권여당의 ‘대구조롱’ 어디까지 갈 건가

심충택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경기 광명시을)이 지난 13일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대구”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저 사람이 정말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날 국회 국감에 출석한 권영진 시장에게 “대구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사태로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됐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구의 초기대응이 미흡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중국이 아니라 대구로 인해 코로나19가 한국에 확산됐다는 기가 막힌 주장이다.코로나19가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은 정설로 굳혀져 있다. 당시 중국에서 매일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중국인 여행객 입국 제한조치에 나섰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차단’ 필요성이 강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른다며 ‘고위험지역(우한) 차단과 출입국 검역 강화’라는 방역원칙을 발표한 후 국제공항 입국장을 열어놓았다. 그 사이 국내에선 중국을 다녀왔거나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됐다. 대구에서도 지난해 2월 18일 국내에선 31번째로 첫 환자가 나왔다.국민의힘 대구출신 국회의원들은 지난주 발표한 ‘(권 의원의)망언규탄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초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해 대구시민들을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시켰다. 코로나 대확산의 진짜 근원지는 문재인 정권 자신이다”고 밝혔는데, 공감이 간다.대구·경북은 신천지교인인 31번 환자가 발생한 이후 8일 만에 누적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섰다. 양 의원이 대구시의 초기대응이 미흡하다고 했는데, 당시 방역상황은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대구에 머물며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를 진두지휘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잘 알고 있다. 대구시민과 방역당국, 의료진은 일심동체가 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벌이면서 52일만에 ‘확진자 제로’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구시민은 스스로를 봉쇄했고, 대구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구성원들은 모두 밤을 꼬박 새우며 대구의 의료시스템을 지켜냈다. 당시 생활치료센터와 드라이브 스루 선별검사, 이동검체검사, 자가격리자 의료진관리 등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적인 노하우는 모두 대구가 만들어냈다. 초기대응이 미흡했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대구시민들이 당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양 의원처럼 집권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대구에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는 못쓰게 하면서 ‘대구발 코로나19’라는 지역비하 단어는 마구 썼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대구경북에 봉쇄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언급해 시민들은 대구가 감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민주당 한 청년위원은 “문 대통령 덕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 했다.대구 국회의원들도 입장문에서 지적했지만, 집권여당은 대구시민들을 같은 국민으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2021-10-17

야당 경선토론 후보역량·정책 검증에 집중을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의힘 경선과정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주 제주지역 선거대책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정신머리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망하는게 낫다”고 언급한 이후,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오만방자’, ‘망언’ 등 선을 넘는 단어를 쏟아내며 경선토론회가 난장판처럼 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을 향해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않고는 앞으로 정치를 계속하기 어렵겠다”고 말한 홍 의원은 지난 15일 열린 일대일 맞수토론에서도 “윤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도덕성 문제에서는 피장파장”이라며 공격수위를 높여갔다.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보기엔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토론회 과정은 채널을 돌리고 싶은 막장드라마나 다름없다. 후보들의 국가경영 역량과 정책을 검증하며 지지외연을 확장해 나가도 시원찮은데 서로간 인신공격에 집중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국민의힘은 지난주 57만명 규모의 경선선거인단 구성을 완료했다. 다음달 5일 발표될 경선결과는 이준석 대표가 선출된 이후 크게 증가한 신규당원들의 지지성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과정에서 각 후보들은 선거인단에게 국가경영비전과 정책을 설명하고 동조를 얻어야 한다.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확신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냉철한 판단력과 함께 견해차를 조정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토론회 과정에서 각 후보의 부정적인 모든 요소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필요하기도 하다. 상대후보가 도(度)를 넘고 격(格)이 떨어지는 공격을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 공격에 못 견디며 화를 내선 곤란하다.그렇다고 후보들이 서로의 국가경영 역량이나 공약정책 검증은 외면한 채, 라이벌 후보를 조롱하기 위한 ‘퀴즈식 질문’을 계속하거나, 집권여당의 공격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해서 자당 후보를 몰아붙이는 행위는 자살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행위는 당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경선후보 토론회의 본질에도 벗어날 뿐 아니라, 기존의 지지자들도 떠나가게 한다.

2021-10-17

마지막 거리두기 2주… 슬기롭게 넘겨야

오늘부터 비수도권인 대구와 경북에서는 백신접종 완료자 6명을 포함 최대 10명까지 사적모임을 가질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5일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더 연장하면서 인센티브 확대와 더불어 여러 가지 규제를 완화했다. 사적모임은 수도권은 접종 완료자 4인을 포함 8명까지, 비수도권은 접종 완료자 2인을 추가해 10인까지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식당과 카페의 영업시간도 비수도권지역은 밤 12시까지 2시간 더 연장했다. 스포츠 경기 관람과 결혼식, 종교행사 참석 등도 기준을 완화했다.그러면서 정부는 앞으로 2주간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기간이라 말했다. 이 기간을 잘 넘겨야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오랜 기간 지속된 방역조치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방역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그러나 방역체계가 감염자 통제에서 위중증 환자 최소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급작스런 환자 발생은 없을 것인지, 있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우리의 의료체계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위드 코로나 체계에 들어간 이스라엘, 영국, 싱가포르의 사례를 잘 살펴봐야 한다. 국내서는 아직도 100일 넘게 네자리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델타 변이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 위드 코로나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방역 긴장감 해이로 이어질까 봐도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신규 확진자가 줄고 국내 백신접종 완료률이 이달 내 목표(70%) 달성이 가능한 등 방역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란 점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보건당국은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접종률을 끌어올리고 백신 패스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사적모임이 완화되고 위드 코로나로 들어간다고 마스크를 벗고 제한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위드 코로나로의 연착륙을 위해선 국민 각자가 방역수칙을 잘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위드 코로나 단계라 하더라도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 방역을 다시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 전 단계인 이번 2주동안 모두가 마음의 준비와 함께 슬기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21-10-17

마크롱의 원전회귀

지구온난화로 생존에 위협받는 동물로 코알라가 자주 주목을 받는다. 코알라는 물 대신 유칼립투스라는 나뭇잎의 물을 섭취하며 살아가는데 수분이 많이 함유된 유칼립투스 나무가 지구온난화로 생식이 부진해져 코알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코알라 개체 수는 25% 줄었다.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는 2005년 이후 전 세계에서 홍수가 15배 늘고 고온과 강추위 등 극한 기온도 20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IPCC(기후변화국제협의체)는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 상승폭을 1.5도 내로 유지하려면 2100년까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 7천300t을 포집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9억ha의 땅을 숲으로 복원해야 가능한 일인데 9억ha는 남한 면적의 90배다. 과연 인류의 힘으로 가능할 지 의문이다.기후변화대응이란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인류의 대응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거나 대기에서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생활 속 실천 방법으로는 친환경 제품 사용, 물 아껴쓰기, 쓰레기 줄이기, 재활용품 쓰기 등이다.유럽 최대 원전 대국인 프랑스가 점진적 탈원전 정책에서 원전 육성 쪽으로 에너지산업의 방향을 전환 주목을 받고 있다. 탈원전을 외쳤던 마크롱 대통령은 원전분야에 총 1조4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원자력이 현실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유럽 10개국 에너지 장관도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한 최상의 무기는 원자력”이라고 했다.국민 67%가 원자력 유지를 찬성하는데도 탈원전을 고집하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제 짚어봐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7

포항시, 역대 최대 기업 투자 유치의 의미

이강덕 포항시장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격언이 있다.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어 고립돼 무너지고 말지만, 길을 뚫어 소통, 교역을 한다면 발전과 번영을 이뤄낸다는 말이다. ‘길’은 기존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시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최선봉에는 ‘기업 유치’가 자리하고 있다.우량 기업을 유치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파급 효과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기업 유치는 이제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자 저출생·수도권 집중 등에 대항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위한 첨병으로 그 의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최근 포항시는 이차전지, 바이오, 수소 등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투자유치에 성공하면서 지역 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신산업 관련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한 금액은 총 6조 8천억원에 이르며, 포항시의 역대 최대 성과이다.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이자 ‘미래 산업의 쌀’로 불리는 이차전지 분야는 총 2조2천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생산에서 재활용까지 집적화된 ‘포항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는 에코프로는 물론 포스코케미칼, GS건설 등 빅3 앵커기업과 중견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유치 및 공장 증설이 이어지고 있다.바이오 및 수소 분야 또한 대기업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의 투자와 공장 건설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다.이로 인해 지역 내 1만7천명 가량의 일자리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19조5천억원 정도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임에도 이처럼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뤄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포항시가 꾸준히 저력을 축적했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철강 일변도의 기존 산업 구조를 탈피해 이차전지, 바이오 등 다변화된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이라는 한 발 앞선 과감한 ‘도전’을 통해 신성장 산업에 최적화된 생태계 구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포항에는 블루밸리국가산단, 융합기술지구, 영일만4산단 등에 이차전지(배터리), 바이오, 수소 등의 기업 성장에 토대가 될 특구와 최고 수준의 RD시설 및 실증단지 등 우수한 산업생태계가 조성돼 있다.이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포항시의 각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이 합쳐진 결실이다.특히 포항시는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유망 산업을 미리 내다보며 RD 인프라 등 구축을 위한 ‘국·도비 보조사업’을 대폭 확보하면서 일찌감치 토대를 다져나갔다. 국·도비 보조사업 예산은 지난 2014년 3천527억 원에서 7년이 지난 올해는 현재까지 1조713억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의 협력은 물론, 저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다같이 합심해 정부와 경북도 등을 수시로 방문해 사업의 필요성을 적극 설명하는 등 발 벗고 나선 열정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조성을 비롯해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강소연구개발특구, 철강산업재도약 기술개발사업 구축 등 미래 신산업 연구 및 산업화의 기초를 튼튼히 닦았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도 강화해 나갔다.또한, 포항시 구성원들과 함께 ‘절실한 마음’으로 기업 유치에 매진했다.청주에 본사를 둔 에코프로의 포항 유치를 위해 2017년에 직접 발로 뛰며 청주 본사를 방문해 인센티브 등을 설명해 기업 유치에 성공한 바 있고, 최근 연이은 기업유치에도 실무진에서의 전문적이고 신속한 행정 처리로 신뢰감을 제공하며, 경제성 검토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포항시는 반세기 전 대한민국 산업화를 주도한 철강산업의 ‘영일만 기적’을 이뤄낸 위대한 도전의 도시이다. 이제는 미래 신성장산업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투자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해 ‘제2의 영일만 기적’을 이뤄낼 낼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위대한 도전의 길을 우보전진(牛步前進)의 자세로 다 함께 개척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1-10-17

추억을 긷는 소리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졌다.20년 넘게 초등학교 옆에 살았다. 아이들이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학교가 있다는 것에 무조건 이사를 결정했었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어두면 쉬는 시간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가 그 문으로 들어온다.하지만 이맘때 들려오던 운동회 소리가 코로나 때문에 끊겨버렸다. 날이 정해지면 한동안 운동장에서 매스게임 연습하느라 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날아오고, 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쉴 새 없이 동네를 들썩거렸었다. 그런 소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마스크에 묻혔는지 초등학교 옆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이십 대인 아들 둘이 졸업한 초등학교이다. 저 학교에서 큰아이는 봄가을로 여섯 번이 넘는 운동회를 경험했다. 일기장을 뒤적이니 2005년 9월 29일의 운동회 장면이 만국기를 흔들며 나타났다. 둘째가 1학년에 입학해서 5학년인 형과 함께 체육복 차림으로 신나게 학교로 향했다. 내 어릴 적 같으면 운동장에 만국기 날리고 장사꾼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그 틈새에 할머니가 밤 삶고, 떡 싸서 큰 나무 아래에 전을 폈을 것이다.도시에 사는 우리 아이들의 운동회는 심심하다. 그저 맨손 달리기 한 번이면 끝이다. 남편과 나의 운동신경을 닮아 재바르지 못한 두 아들은 늘 꼴찌를 못 면한다. 학교 가기 전 아이들에게 남편이 부탁한다. “일등 하면 안 된다. 꼴찌로 달려라, 천천히. 너같이 잘 생긴 사람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천천히 달려줘야 해. 알았냐?” 말도 안 된다고 킥킥거리며 현관을 나선다. 저녁에 야영 간 남편이 전화했다. 3등, 4등을 했다니까 5학년은 세 명씩 달리고 1학년은 4명 달렸나 한다. 보물찾기나 장애물경기처럼 여러 변수가 없는 맨손 달리기는 어차피 다섯 명 달리면 5등, 여섯 명 달리면 6등 하는 아이들이라 위로할 방법으로 뒤로 처질수록 용돈을 더 주겠노라 약속했었던 거다. 그 후로 아이들이 맨손 달리기를 즐겼다.다음 해 가을, 두 아이의 학교 운동회날이 돌아왔다. 늘 간단하게 오전에만 하던 소운동회를 올해엔 학부모님들 다 모시고 거창하게 한다고 초대장을 들고 왔다. 수업 시간 쪼개서 달려가니 2학년 둘째의 달리기 순서였다. 달려가다가 훌라후프 다섯 번 넘고 또 달려가기였다. 신발 맞는 거 신으랬더니 또 형 신발을 신고 달려가느라 낑낑거리는 게 안타까워 목청껏 그냥 뛰라고 응원을 보냈다. 안 그래도 겨우 4등으로 달리다가 드디어 신발이 벗겨졌다. 엄마의 바람은 뒤로하고 우리 둘째 되돌아와서 천천히 신발을 다시 껴 신는다. 그동안 다른 애들 다 뛰어가 버리고 없다. 그래도 5등으로 웃으며 뛰어간다.6학년 큰애는 ‘손님 찾기’라고 쪽지에 적힌 대로 한 다음 달려가는 건데 4-4반 선생님을 찾으라는 쪽지를 잡았나 보다. 다른 선생님들 다 나와서 누구 찾냐고 물어보시는데 하얀 바지 입으신 4반 남자 선생님이 맨 꼴찌로 나와서는 아들더러 이왕 꼴찌인 거 아이 혼자 뛰어가게 했다. 헐! 성질 더러운 나는 화가 치밀었다. 초등학생 담임이 운동회를 뭐로 보는 거지?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걸 배우도록 하는 게 운동회인데 꼴찌라고 그냥 혼자 뛰어가게 한다고? 안 그래도 부끄럼 많은 아들은 뻘쭘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얼굴에 쓰였다. 끝까지 손잡고 뛰어줘야지 선생님아. ‘님’자도 붙이기 싫었다.그 와중에 교감 선생님, 맨 나중에 단상에서 내려와 옆에 다른 아이 손 잡고 꼴등으로 달리던 아이를 거의 끌다시피 데리고 날아가서 3등으로 골인했다. 역시 교감 선생님 짱이다. 어른이라면 그 정도 모범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지.콩주머니로 박을 터뜨려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마지막 청군 백군 학년 대표들이 나와 이어달리기를 하며 전교생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다음에야 운동장이 조용해지던 기억 속의 운동회, 일기장 속에서 길어 올린 아이들의 운동회로 허전한 가을의 쓸쓸함을 달랬다. /김순희(수필가)

2021-10-17

코로나 孤兒

브라질에 사는 64세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다섯 손주의 보호자가 됐다. 싱글맘이던 딸이 코로나19로 숨지자 그녀가 남기고 간 아들 딸 3명과 이미 양육하던 친손주 2명을 더해 5명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생계비와 양육비 등 앞으로 그녀가 감당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코로나로 인해 졸지에 고아가 된 어린이가 급격히 늘고 있다 지구촌 국가마다 코로나 고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외신이다. 코로나19가 2년 가까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부모를 졸지에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는 국제아동보호단체 집계에 의하면 대략 5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불과 두 달 전 150만명 정도로 추정됐으나 그 사이 세배 이상 그 수가 늘어났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앞으로 더 늘 것 같다는 것이다.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의하면 인도에선 지난 4월 코로나19가 덮치면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어린이가 1천742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숨진 어머니의 시신을 어린이가 직접 묻는 사례도 목격됐다고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생계와 양육 문제다. 이에 겹쳐서 인도에서는 고아에 대한 인신매매 가능성마저 제기돼 당국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고 한다.최근 미국도 작년 4월부터 올 6월까지 14만2천여명의 코로나 고아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미성년자 500명의 1명꼴이다. 특히 백인보다는 흑인, 소수민족 등에서 더 많이 발생해 인종 간 격차의 문제도 빚어졌다.코로나19가 2년도 되지 않는 사이 우리 인류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코로나 고아는 코로나가 낳은 또 다른 비극의 한 단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4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잘 운용해야 藥이 된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지방의회에 정책지원관제도가 도입되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진 지방의회 사무직원들의 인사권이 지방의회 의장에게 이양되면서 각 지방의회가 준비작업에 분주하다. 정책지원관은 국회의원 보좌진처럼 지방의원들의 의정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며, 의원숫자의 50% 내에서 전문계약직 또는 공무원 신분으로 채용할 수 있다. 포항시의회 운영위원회는 그저께(13일) 지방자치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앞으로 추진계획을 논의하고자 간담회를 가졌다. 의원 수가 32명인 포항시의회는 최대 16명의 정책지원관을 뽑을 수 있다. 포항시의회는 내년에 8명을 임용하고, 나머지는 2023년 추가 임용하기로 했다. 포항시의회 손병혁 사무국장은 “정책지원관은 7급 이하 일반직 또는 임기제로 채용할 수 있다. 임기제의 경우 시의회가 인사위원회를 통해 직접 채용하게 되는 형태다”고 밝혔다.임기제 정책지원관과는 달리 일반직 정책지원관은 국가공무원 시험을 통해 채용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각 지방의회는 임기제 채용을 선호하는 분위기다.집행부에서 파견돼 근무 중인 의회 공무원의 신분이 ‘의회직원’으로 독립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나오고 있다. 지방의회에서는 인사권독립으로 집행부 견제 기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의회 사무직원들이 인사권을 가진 집행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앞으로는 집행부 견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의회근무를 원하는 공무원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직원 숫자가 적어 승진기회가 줄어드는데다, 의원들과 충돌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진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 공무원’들이 의회 근무를 선호해 인력확보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 각 지방의회는 준비팀을 구성해서 의회에 근무 중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잔류여부 의사를 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잔류희망자가 적으면 집행부 전체직원들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인사권독립은 지방의회의 오래된 현안이었던 것만큼 이를 잘 운용해 지방자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2021-10-14

대구가 코로나 확산 근원지라는 여당 의원 망발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열린 대구시 국정감사에서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대구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으로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됐다는 불명예도 있었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양 의원의 발언에 대해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시민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항변했지만 아직도 대구를 코로나 근원지로 생각하는 여당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전세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진원지가 중국의 우한인지 다 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초기 국민은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지난해 2월 민주당 대변인이 당정청 회의 후 브리핑을 하면서 대구봉쇄라는 발언을 했다가 뭇매를 맞았던 사실이 다시금 상기된다. 여당 대변인의 대구봉쇄 발언으로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는 등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자 정부와 여당이 나서 대구봉쇄가 아니고 방역망 강화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대구시민의 불쾌감을 지우지는 못했다.문제는 여당 지지율이 낮은 대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여당의원이 대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코로나 확산 근원지가 대구라는 말을 이처럼 쉽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대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작용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대구는 내편이 아니라는 편견이 밑바탕에 있다는 뜻이다.국민의 힘 김용판 의원이 양 의원의 발언은 대구봉쇄와 같은 급이라고 지적하고 양 의원도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사과를 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얼버무렸지만 대구시민의 불쾌감은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이날 권 시장의 말대로 대구가 코로나 환자를 만들고 싶어 만들진 않았다. 신천지발로 커진 코로나 사태에 대구시민이 열심히 대응해 외국언론에서는 대구시민의 정신을 코로나 극복의 모범 사례로 극찬했다. 국감장에서 정치적으로 대구를 질타하더라도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현은 삼가해야 한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은 비록 지역구가 다르더라도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바른 자세다.양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품격에 관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21-10-14

깐부 동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전세계적인 히트작인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 게임’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놀이를 할 때 같은 편을 의미하는 속어로, 딱지나 구슬을 공동관리하는 한 팀을 ‘깐부’라고 불렀다. 영화에서 1호 오일남(오영수 분) 할아버지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에게 같은 편을 뜻하는 깐부를 맺자고 제안해 ‘깐부 할아버지’라고 불린다. 오징어게임에서 큰 화제가 된 ‘깐부’가 한창 달아오른 제1야당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소환돼 화제다.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출되자 2차 컷오프에서 뽑힌 4명의 후보가 각각 깐부를 맺으며 합종연횡, 승부가 예측불허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지난 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4명의 두 번째 TV 토론에서 이같은 후보 간 이합집산 양상이 드러났다. ‘2강’인 홍준표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맞서고, 홍 후보는 유승민 후보 편을, 윤 후보는 원희룡 후보 편을 드는 그림이 연출됐다.우선 양강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은 서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윤 전 총장은 홍 의원의 제주 개발 공약과 관련, “제주가 안 그래도 난개발 때문에 환경이 죽을 판”이라며 “환경 파괴에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느냐”라고 비판했고, 홍 의원은 “그렇게 생각하면 도로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발끈했다. 홍 의원은 이어 윤 전 총장에게 “제주 제2공항 어떻게 추진하려고 하나. 천공 스님이 제주공항은 확장안이 좋다고 그리 말씀했다”며 윤 전 총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을 거론하며 반격을 가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 전 총장을 공격했다.반면에 홍 후보와 유 후보는 서로의 생각에 동의했다. 홍 후보가 유 후보에게 자신의 노인복지청 신설 공약에 대한 생각을 묻자 유 후보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유 후보가 홍 후보에게 공매도 전면 폐지 공약에 대한 생각을 묻자 “유 후보가 보완책을 제시해주시면 제가 공부를 더 하겠다”고 아예 몸을 낮췄다.윤 후보와 원 후보 역시 깐부를 맺은듯 서로 우호적인 문답을 주고받았다. 윤 후보는 원 후보에게 “제주지사할 때 난개발도 잘 막고 공기업 채용도 100% 공채로 하고 업적 많이 남긴 것으로 안다”면서 원 후보가 자신의 치적을 알릴 기회를 주었다. 이쯤되면 2대2 토론 양상으로 비쳤지만 유 후보는 한사코 홍 후보와 깐부임을 부인했다. 여론조사상 선두주자인 윤 후보와 홍 후보는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당심에서는 홍 후보가 다소 밀리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일까.노자는 “죄는 욕심이 많은 것보다 큰 죄가 없고, 화는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큰 화가 없으며, 허물은 얻기를 원하는 것 보다 더 흉한 것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정치권력의 향방을 놓고 다투는 경선국면에서 욕심이나 족함을 아는 게 가능할리 만무하다. 어떻든 야당 대선경선에서 깐부 동맹이 아름답게 결말지어져 여야간 대권 경쟁이 국민의 뜻아래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2021-10-14

플라타너스에 추억 걸렸네

하늘 높이 양떼구름이 몽글몽글하다. 산들바람이 양떼구름을 물리고 그 자리에 새털구름을 엎는다. 가을하늘이 그린 수채화 아래 플라타너스도 높다랗게 이파리를 달고 서 있다. 기억 속의 한 풍경이다.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타고 희미한 흑백사진 속으로 떠난다.초등학교 때, 플라타너스는 약속장소였다.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플라타너스 아래 모였다. 십리 길을 혼자 가면 심심해서 친구들과 몰려다녔다. 나무 아래 친구의 가방이 하나둘 던져졌다. 가방 서너 개가 쌓이면 우리는 비석치기를 하고 그림자밟기 놀이를 했다.매번 늦게 오는 친구가 있었다. 받아쓰기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준비물을 빠트린 친구이다. 우리는 반이 달랐지만, 늦게 오는 친구를 기다리며 나무 아래서 뛰어놀았다. 한참을 소리 지르고 노느라 다리가 뻐근해질 때쯤, 친구가 왔다. 그러면 교실에 남아서 뭐 했노? 청소했나? 숙제했나? 한 사람이 하나씩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가방을 챙겼다. 친구의 처진 어깨를 동무하며 한 손으로 가방을 들어 올려 주었다. 교정을 빠져나갈 때쯤 플라타너스 잎에 노을이 내려앉았다.플라타너스는 넉넉하고 우람했다. 내 몸의 몇 배나 되는 나무 몸통에 기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감고 있는 눈에 구름이 내려 나를 감싸고 햇살이 조물조물 생각을 빚자 상상하는 것들이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졌다. 큰사람, 넓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그리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지. 저 플라타너스처럼 풍성하게 그늘을 드리워야지.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에는 낭만이 깃든다. 낙엽이 쌓여 바스락거리는 곳에 연인들이 손잡고 걷는다. 걸을 때마다 낙엽이 소곤대는 것은 연인의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다. 콩닥콩닥, 쿵쾅쿵쾅, 심장이 멋대로 나대는 소리를 감추며 걷기에 좋다. 저물녘에 부는 바람 한 자락은 연인들의 맞잡은 손을 더 감싸게 한다. 커다란 나뭇잎 하나 주워 얼굴에 대고 속삭이면 한쪽 어깨가 살짝 기울어진다.플라타너스는 성장 속도가 빨라 대기 중의 오염물질을 걸러준다. 자동차 도로에 플라타너스가 양쪽에 쭉 뻗어 있다. 나무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무의 넓적한 잎은 자동차의 시끄러운 소리를 흡수하여 방음에 도움이 된다. 오염된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능력은 다른 어떤 나무보다 뛰어나다. 이미 오래전 그리스에서도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심었던 이유다. 영국 런던을 비롯한 세계의 이름난 대도시의 가로수로 플라타너스는 빠지지 않는다.언제부턴가, 플라타너스가 사라지고 있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린 플라타너스. 가을이 깊어지면 큰 잎이 떨어져 도로 가장자리에 수북이 쌓인다. 제때 치우지 못하면 상수도의 구멍을 막아 비가 오면 물이 넘치기도 한다. 그리고 씨에 있는 털이 날려 기관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이소프렌’을 많이 배출하여 공기 중의 오존을 증가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매연 속에서 견디느라 애쓰는 플라타너스의 몸부림일 수 있겠다.플라타너스의 공식적인 우리 이름은 ‘버즘나무’다 처음 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나무의 껍질이 얼룩덜룩해서 버짐나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옛날 사투리로 부르던 그대로 버즘나무라 한다. 가난하던 시절 영양이 부족한 까까머리 어린아이들의 마른버짐이 생각난다. 아니면 왠지 피부병이 날 것 같은 이름이다. 차라리 영어 이름 그대로 플라타너스라 쓰면 좋겠다. 이순혜​​​​​​​수필가 플라타너스는 한 아름의 추억을 안고 있다. 그 나무를 보며 시인은 우리를 향해 묻는다. 꿈을 아느냐고,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파아란 하늘에 어느덧 젖어 있단다. 가을이면 입에서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가을이 다 가도록 그리운 얼굴이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우리들의 약속장소 플라타너스, 그 아래 영화가 있고 시가 있고 추억이 있다.어른이 되자 플라타너스는 그저 그런 나무였다. 나이가 들어가니 도로에 줄 서 있는 플라타너스가 다시 보였다. 나무가 품고 있는 숱한 회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제 플라타너스가 사라지면 추억을 소환하는 풍경도 사라질 것이다.

2021-10-13

포구, 알알이 붉은

양태순수필가 몇 해 전부터 포구가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모양이며 맛이 생생하여 눈앞에 삼삼하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 큰 시장에 가 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맛이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어 포구를 먹고 싶은 갈증은 점점 커졌다. 가을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입맛을 다시고는 몸살을 앓곤 했다.포구는 토종 보리수 열매다. 보리똥, 물포구, 보리수로 불리기도 하지만 내 고향에서는 포구라 불렀다. 동글동글 작은 알이 조롱조롱 모여 열린다. 빨간 열매에 흰 반점이 무늬를 만들고 속에 씨를 품고 있다. 산에서 만나면 알알이 눈을 붙잡아 손이 바빴다. 주섬주섬 따 먹으며 주머니에 담고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 왔다. 알불 아래서 깨끗이 다듬어진 포구는 어머니가 이고 장으로 갔다.포구, 알싸한 그리움으로 가는 티켓이다. 한 알씩 먹는 것보다 한 움큼을 입안에 털어 넣고 씹어야 맛있다. 와작 씹으면 살짝 떫은맛에 이어 새곰한 맛이 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연달아 우물거리면 달큼한 맛이 혓바닥을 어루만진다. 어느 해의 일이다. 그때는 자취를 하던 때이고 전화도 없어 서로 연락이 잘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설탕을 솔솔 뿌린 포구를 먹으라고 주었다. 숟갈로 푹푹 떠먹었다. 어저께 먹어본 듯 선명한 감각이다. 입술에 붉은 물 들이며 뛰어다녔던 고향의 풍경도 스르르 살아난다.간만에 소꿉친구들을 만났다. 포구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는지 물었다. 산에서 포구를 따다가 가시에 찔렸던 일, 벌집을 건드려 줄행랑을 치다가 땄던 포구를 엎었던 일, 어느 골짜기에 많이 있어서 몇 번이나 따러 갔던 일 등. 그 시절의 추억담이 쏟아졌다. 포구라는 말에 저마다 잊었던 산천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아련한 웃음이 걸렸다.나는 어릴 적 시간을 더듬는 여행이 잦아졌다. 포구가 만들어낸 길이다. 오징어게임과 숨바꼭질하던 골목, 산딸기, 머루, 망개, 포구를 따먹던 산이며 두레상에 오르던 무밥, 호박범벅, 콩죽 따위를 지도에 그리듯 마음에 새겼다. 고샅길로 연결된 놀이터에서 일어난 일이며 계절별로 먹었던 먹거리를 조금씩 수정하기 몇 차례였다. 그래서 정확할 거라 믿었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맞춰보면 엉뚱한 것도 있었다. 순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맞춤형 여행지도일 뿐이었다.지도에 점으로 남은 것들은 지나온 시간을 연결하는 징검돌이다. 돌 주변은 희미해진 사건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부유한다. 언저리를 배회하는 흔적들을 잡아채서 얼기설기 엮으면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더러는 징검돌 사이를 연결하지 못해 끙끙대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서 기억을 이어보기도 한다. 담담히 시작된 순례길은 포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횟수가 늘었다.이유를 알 수 없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누구나 가끔은 아궁이에 불씨를 뒤적이듯 추억 한자락을 곱씹는 날이 있다. 그뿐이다 답을 내리기에는 시원찮았다. 그 자리를 맴돌 때마다 무지근한 명치를 눌러야 했다. 기어코 포구를 먹어야만 몸살이 나을 것 같았다.자주 시장을 기웃거렸다. 난전에는 갖가지 채소와 가을을 담은 과일이 소쿠리에 올라앉아 손님을 부른다. 발소리 엇갈려 지나는 틈틈이 흥정하는 소리도 끼어든다. 나는 구석구석 바삐 눈을 굴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에 휩쓸려 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감을 소쿠리에 소복이 쌓아놓고 팔고 있는 펑퍼짐한 곡선의 뒷태를 본 순간이었다.포구, 나를 붙잡은 정체가 그이였구나! 나에게 포구의 맛을 알게 하고 포구를 팔던 야무진 장사꾼이자 내가 간절히 살 부비며 온기를 나누고 싶은 여인이다. 어떤 어려움도 끄떡없이 펄떡이는 심장으로 삶의 행로를 걸었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형편이지만 오남매 넘치는 사랑으로 키워 준 사람, 내 그리움의 여정에 언제나 불을 켜는 어머니.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수년째 병상에서 눈으로만 세상사를 읽으려 애를 쓴다. 뻐끔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포구의 붉은 물이 추억으로 가는 문을 열길 바란 모양이다. 젊었던 날을 기억하며 스스로가 잘 살아냈다 인정할 수 있기를. 포구즙같은 비가 눈앞을 가린다.

2021-10-13

한 몸 살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한 번도 교육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에 원주민들 아이들에게 1+1=2가 된다는 덧셈을 가르쳤는데 한사코 원주민 아이들은 1+1=1이라고 고집하였다. 진흙 두 덩어리를 합치면 한 덩어리가 되니 하나에 하나를 더하더라도 하나라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한 말이다. 머리가 둘인데 몸이 하나인 사람을 썀 쌍둥이라 한다. 이란에 썀 쌍둥이인 ‘비자니’ 자매는 두 머리가 자꾸 싸워서 한 몸살기를 거부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싶어 분리수술을 하였는데 결국은 둘 다 죽었다. 반면에 태국의 썀 쌍둥이인 ‘창’과 ‘엥’은 한 몸 살기를 원했다. 생각이 다른 두 개체가 한 몸 살기 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양보와 타협으로 몸을 공유하는 한 몸 살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서커스로 큰 돈을 벌고 농장을 구입하여 공동운영을 했다. 이후 각자 결혼을 하여 삼일은 이 집에서, 삼일은 저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63세를 살았고 세 시간 간격으로 운명했다. 그들이 늘 했던 말은 “우리 둘은 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었다”는 말이었다.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라”였다. 한 몸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소마’인데 개별적 특성을 그대로 지닌 개체적 몸을 뜻한다. 이런 몸은 하나로 묶어도 비자니 자매처럼 갈등과 분열과 분쟁뿐이다. 몸을 의미하는 다른 하나는 ‘사르크스’인데 창과 엥처럼 마음과 생각과 뜻을 하나로 결합한 큰 몸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과 뜻을 가진 몸이지만 그 다른 것이 유기적이고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큰 생각, 큰 마음, 큰 뜻을 이루는 큰 한의 거대한 한 몸이 사르크스이다. ‘소마’는 하나(one)의 한 몸이지만 ‘사르크스’는 큰 한(grand)의 한 몸이다.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라”는 그 한 몸은 ‘소마’의 한 몸이 아니라 ‘사르크스’의 한 몸으로 큰 한 몸을 말한다. 아담의 원뜻은 인류라는 뜻이다. 인류가 큰 한 몸으로 살기를 명령한 것이다. 한(grand)몸을 이루고 공생해야 할 세상은 지금은 한(one)몸에만 머물러 있어 갈등과 분열과 분쟁과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극기의 ‘태극’은 서로 다른 양극이 큰 원에서 한 몸 이룸을 의미하고, 대한의 ‘한’은 무한히 큰 한(grand)으로 한 몸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런 국호를 가진 우리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있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하나에 하나를 더해 큰 하나가 되고, 합하여 둘이 큰 한 몸을 이루는 한 몸살기로 살아보자.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라”

2021-10-13

오징어게임 덕에 돌아보다

장규열한동대 교수 오징어게임이 지배한다. 넷플릭스 전용 콘텐츠로 소개된 지 3주 남짓 전 세계 94개국 1억이 넘는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456억, 어른들의 동심이 파괴된다’는 슬로건으로 어릴 적에 동네 골목길에서 즐기던 놀이들이 소환되었다. 미국 내 주요매체와 외신들마저 ‘한국적 콘텐츠가 지구 보편적 감성을 흔들어놓은 작품’으로 호평한다. K-pop이 이끄는 한류가 영화계를 연이어 휘젓더니 이제는 글로벌뉴미디어 시장에서 드라마가 기회의 창을 넓게 열었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456인의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456억원에 도전한다. 여섯 게임을 통과하여 살아남으면 큰 돈을 거머쥐겠지만 최후의 승자 한 사람 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드라마적 허구로 가득하지만 현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다.456인 가운데 455인은 죽어야 하는 비정하고 슬픈 구조를 드러내며 무자비한 경쟁과 극도의 긴장으로 몰고간다. 시청자들의 인기가 드높고 언론의 호평이 가득하지만, 희한하게도 ‘죽음’을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콘텐츠는 오히려 패자의 죽음에 분홍색 리본으로 충격을 줄인다. 삶을 마감해야 하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이 유연해 졌을까. 폭력적 콘텐츠에 길들여진 나머지 우리는 모두 죽음과 살인에 관하여 무감각해진 것일까. 돈을 위해서는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냉소와 자조에 빠진 것은 아닐까. 죽어 사라지는 경쟁자들에 오히려 짜릿한 승리감마저 느끼고 있는 것일까. 상생과 협력, 공감과 배려는 듣기에만 좋은 소리였을까. 죽음에 대하여 이렇듯 드러내고 바라보면서 슬픔이나 동정이 사라진 현실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최후의 한 사람이 456억을 굳이 다 가져야 하는 경기방식.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고안한 룰이지만, 돌아보면 극도의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우리네 자화상이 아닌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Winner takes it all.) 운영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짜릿한 쾌감마저 느끼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이 1억씩 공평하게 나눌 생각은 아예 해 보지도 않는 사회경제적 구조에 너무 익숙한 것은 아닌지. 극한의 양극화가 삶과 죽음으로 극화 대비되었을 뿐 극소수와 99%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가. 분배정의를 논하지만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능력과 배경에 따른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제도와 관습이 지어져 오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돌아보며 공정과 상식을 살려내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죽음을 버거워하지 않는 사회와 승자만 모든 것을 차지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삶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고 경쟁의 가치만 드러내는 일도 부당하다. 힘들어도 살아내며 어려운 이를 돌아보는 정서를 회복해야 한다. 오징어게임이 콘텐츠로 표현하는 비정함의 오류와 무한경쟁의 약점을 돌아보아야 한다. 죽음보다 삶이 소중하다. 정글같은 경쟁만큼 협력하는 상생이 화두여야 한다.갖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노력과 서로 살피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