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내로남불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남 탓을 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시험공부 할 때 저녁에 공부하지 않고 자면서 어머니에게 아침에 공부할 테니 일찍 깨워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그런데 어머니가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깨워도 깨지 않고 계속 자다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일찍 깨워주지 않아서”라며 어머니 탓을 한다.평소에는 부하 직원의 보고서를 보거나 감독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던 상사가 사장에게 꾸중을 듣고 나면 부하 직원을 탓하며 난리를 친다.또 매사를 남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심한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인은 어떤 불미한 사건에 연루되면 하나같이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말한다.만에 하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되어 유감”이라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사과하거나 반성은 하지 않고 서로 남 탓하기 바쁘다. 오죽하면, 올해 4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내로남불(Naeronambul)’이 등장했겠는가. 자신한테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하다. 이중성의 극치이다.이렇듯, 사람은 대개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다. 왜 사람은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일까? 인간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갈등이 있으면 내적으로 긴장하고 불안을 느낀다. 불안과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 뇌는 여러 심리적 대응책을 작동시키게 된다. 이를 ‘방어기제’라고 한다. 남 탓을 하는 것은 정신의학으로는 갈등이나 내외적인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이렇게 남 탓하는 방어기제를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영사기를 통해서 나오는 스크린의 영상을 보고 그것이 영사기가 아닌 스크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용어이다. 투사는 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생각 등을 타인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불안감, 책임감, 죄책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아의 의도이다.그러나 문제는 투사가 부적절하게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신병적 증상 중에는 환자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이라는 증상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투사되어,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을 미워해 피해를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다.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그 사람의 잘못이므로 그 사람이 변해야한다”고 항변한다. 물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탓해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내 인생에서 잘못된 모든 것을 남 탓으로 규정한다면, 남이 바뀌기 전에는 내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타인 의존적 삶’이지 ‘자기 주체적 삶’이 아니다.정치의 경우,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하는 정치는 절망이고 자기반성에 투철한 정치는 희망이다.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정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올바른 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이 정치 때문에 불편하다.‘내로남불’의 풍토가 고쳐지지 않으면 희망의 정치는 없다. 어떤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는 국민들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희망의 정치가 없다면 희망의 대한민국은 없다.논어나 맹자에도 “소인은 무엇이 잘못되면 남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늘까지 원망하는데, 군자는 우선 자기에게 잘못이 없나 반성해보고 잘못이 없을 때 비로소 외부를 검토한다”고 돼 있다.요즘은 자기반성보다는 남 탓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핵심은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 즉 ‘바깥 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춰라’는 데 있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바깥모양(外相), 다시 말해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심반조,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보라는 뜻이다.사실 정신치료도 자기 문제를 남이나 외부로 투사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자심반조 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석가의 깨달음처럼 바로 이 투사를 없애는 것이라 할 수 있다.세상을 살다보면 세상 일이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힘겨워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진료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상사 때문에, 동료나 친구 때문에, 부하직원 때문에, 자신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 한다. 비록 타인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오롯이 남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타인 의존적 삶’이다. ‘자기 주체적 삶’은 자심반조하고 투사를 없애는 것이다.나는 우리가 남 탓하지 않는 자기 주체적 삶을 통해, 우리 정치도 남 탓하지 않는 희망의 정치를 통해 오늘보다 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2021-12-05

윤석열 선대위 이제부터 ‘受權역량’ 보여주길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선대위가 오늘(6일) 정식으로 출범할 수 있게 됐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선대위의 사령탑인 총괄위원장직을 수락했고, 그동안 이준석 대표의 잠행으로 증폭됐던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갈등도 울산 만찬회동에서 극적으로 봉합됐기 때문이다.김종인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윤 후보가 이 대표와 울산에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 전화해서 선대위 합류의사를 밝혔다.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대통령 선거까지 당무 전반을 통할 조정하고, 선거대책기구를 총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후보와 이 대표의 회동에서는 양측 대변인이 “대선에 관한 중요사항에 대해 후보자, 당대표, 원내대표가 모든 사항을 공유하며 직접 소통을 하기로 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한 적극적인 소통과 정책 행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국민의 힘은 그동안 윤 후보가 선출된 이후 한 달 가까이 선대위 출범도 못 한 채 내분을 겪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 진용을 갖추고 산뜻한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권력다툼으로 비쳐진 국민의힘 내분은 당장 민심의 동요를 가져왔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후보 4자 가상대결에서 윤 후보 지지율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역전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당 내분에 피로감을 느낀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증거다.어떤 선거든 후보 주변에는 헤게모니 쟁탈전이 있긴 하지만, 이번처럼 외부에 가감없이 표출된 것은 드물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대표가 ‘윤핵관’으로 지칭되는 윤 후보 측근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선거가 임박해 후보를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인 것은 선을 넘은 행위다. 윤 후보도 그동안 측근 의원들이 ‘문고리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왔음에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윤석열 선대위 모든 구성원들은 이제 권력욕에서 벗어나 정권교체를 위해 최전선에서 뛰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 중도층 지지를 얻으려면 국정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며 수권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1-12-05

‘이준석 가치’ 평가절하하면 안 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정치부 기자 시절 각종 선거를 취재하면서 다양한 여야 후보들의 캠프를 경험했다. 외부에 대해 개방적인 캠프가 있는가 하면, 이너서클(Inner circle) 중심의 꽉 닫힌 캠프도 있다. 주로 거물급 인사들의 선거캠프가 닫혀 있다. 이너서클 멤버들이 외부인사들을 경계하면서 충성심 경쟁을 펼치는 배타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선거캠프의 이너서클은 생리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문고리 권력을 나누기 싫기 때문이다.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의 주류인물로 구성된 ‘윤핵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윤석열 핵심 관계자’를 줄여서 쓴 윤핵관은 일종의 이너서클이다. 경선과정에서 윤 후보를 지지하거나 도왔던 중견정치인들 다수가 해당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 후보에게 불만을 터트린 것도 근본원인은 윤핵관에 있다. 이 대표는 이들이 의도를 갖고 당내분란을 조장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윤핵관 일원으로 지목되는 익명의 한 의원은 이 대표를 두고 “당무우선권을 가진 후보가 대표를 징계할 수 있다. 초장에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막말이다. 전형적인 호가호위(狐假虎威)다.최근 국민의힘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도 “선대위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선에 임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문고리 3인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불만이 나왔다. 윤 후보가 소수의 핵심인물에 의존해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권성동·장제원·윤한홍 의원을 ‘문고리 3인방’이라며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 대표는 지난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됐다. 당시 국민이 이준석을 국민의힘 사령탑으로 선택한 본질은 권위주의와 부패에 찌든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후 국민의힘을 디지털정당으로 변신시켜 기업처럼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했다. 각 시·도당에서는 온라인 입당신청자가 쇄도했고, 호남지역에서도 신규당권이 급증했다. 국민의힘 전성기는 그때였다.윤 후보가 지난 3일 울산에 머물던 이 대표를 직접 찾아가 그동안의 갈등을 풀고 ‘일체(一體)’가 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윤핵관 울타리를 벗어난’ 윤 후보의 리더십이 돋보인 시간이었다. 선대위 합류를 보류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니 이제 ‘윤석열 선대위’는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6·11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국민의힘의 변화다. 그때의 변화 돌풍이 지금 불면 집권여당이 아무리 자금이나 조직, 여론형성 등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더라도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내년 대선은 부동층이 많은 젊은 유권자들의 의중에 따라 승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이준석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며, 그가 활동할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줘야 한다. 윤 후보가 포용력과 수권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민심은 하루아침에 싸늘해진다.

2021-12-05

연말경기 ‘꽁꽁’… 온정의 손길마저 끊길라

이번주부터 코로나19 백신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사적 모임 인원을 4명씩 줄이고 방역패스 접종을 늘리자 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한달만에 다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식당 등 각 업소들이 기대했던 연말특수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내내 방역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업소들은 이제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다고 하소연이다. 자영업자만의 걱정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이 많다.더욱이 델타변이보다 전파력이 센 오미크론 변이가 국내서 최초 발생한데 이어 추가 감염자가 속속 확인되고 하루 확진자가 또다시 역대 최대치인 5천352명을 기록했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으로 본다면 단계적 일상회복은 엄두도 못 낼 처지다.이런 가운데 소비자 물가 오름세도 심상찮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11월 국내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3.7%가 올랐다. 2011년 12월 이후 최고치라 한다. 물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이 가장 죽을 맛이다. 전후좌우를 돌아봐도 어느 하나 밝은 전망이 보이는 게 없다.그래도 연말이면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들은 여전히 많다. 사회적 소외계층과 빈곤층,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 우리 사회가 관심과 사랑으로 돌봐야 할 대상이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이웃사랑의 열정만은 이어가야 한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지난 1일 대구·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최 ‘희망 2022 나눔 캠페인’ 출범식을 가졌다. 대구시는 90억원, 경북은 137억원의 모금 목표액을 정해 놓고 지역사회 구성원의 온정 손길을 기다린다. 코로나19 사태와 연말 불경기 등으로 예년처럼 이웃사랑 성금 모금이 잘 거둬질지가 걱정이다. 그렇다고 취약계층의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공동모금 활동이 부진해서도 안 될 일이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조그마한 정성을 모아 그들에게 희망의 빛을 안겨 주어야 한다.문제는 사회적 관심이다. 대구와 경북은 예로부터 남의 아픔을 함께 하는 이웃사랑이 유별난 고장이다. 연말연시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사랑의 불길을 잘 지펴가야 할 것이다.

2021-12-05

기대 수명

슈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이란 110세 넘게 장수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300∼400명의 슈페센티네리안이 존재한다고 하나 정확한 조사는 없다.프랑스의 잔 루이스 칼망은 기네스북에 오른 현재까지 공식적인 최고 연장자다. 1875년에 태어나 1997년까지 122살을 생존한 유일한 여성이다. 1995년 그녀의 삶은 프랑스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파리 에펠탑이 완공되기 14년 전에 태어났으며 빈센트 고흐(1853∼1890년)를 직접 본 인물로 화제가 됐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말까지 산 근현대사의 증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1800년의 인간 평균수명은 26세였다. 1900년 31세, 1950년 49세였으며 2000년에 들어 66세까지 높아졌다. 국가에 따라 평균수명은 조금 차이가 나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라인 일본은 2000년에 81세를 기록했다.남자보다는 여성이 평균적으로 5세 정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통계되고 있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는 2030년 태어나는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90.82살이라고 밝히면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2020년 한국인의 생명표가 발표됐다. 생명표는 현재와 같은 사망 추세가 유지된다면 특정 나이의 사람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를 짐작게 하는 나이 통계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10년 사이 3년이상 늘었다. 작년 태어난 여자아이는 남자보다 6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추정됐다. 대구는 82.9세, 경북 사람은 82.6세로 전국 평균 83.5살보다 낮았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인간의 기대수명 얼마나 더 늘까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05

초겨울 단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12월 초순이다. 아직은 가을의 잔병들이 머뭇거리고 있지만 입동과 소설이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겨울인 셈이다. 만산홍엽 타오르던 단풍은 낙엽이 되고 엽록소를 탈색한 마른 풀잎들이 싸늘해진 북서풍에 수런거리는 계절이다. 개구리와 뱀이 동면에 들어가고 풀벌레들도 월동준비를 마치면 겨울 철새들이 돌아온다. 초겨울의 대략적인 풍경은 이러하지만 자세한 내막으로는 적지 않은 예외와 이변도 없지 않다. 특히나 풀을 배어낸 곳에는 뒤늦게 새싹이 돋아나 철없이 꽃을 피운 것도 있고, 가끔씩은 메뚜기나 나비가 초췌한 모습으로 눈에 띄기도 한다.12월은 세월의 강물 소리를 듣는 달이다. 벽시계의 톱니 소리를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듣게 되는 것처럼 한 해의 막바지에선 문득 세월의 흐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월의 강에 인간사가 휩쓸려가면서 역사가 된다. 얼마 전 그 역사의 흐름에 두 전직 대통령이 잇달아 떠내려갔다. 그들의 재임기간과 박정희 정권 시절을 포함한 삼십년을 군사정권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삼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가장 눈부신 성장을 했다. 국민소득이 고작 100불에 불과하던 극빈 후진국이 8천불이 넘는 국민소득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른 중진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 성과와 업적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집권한 북한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터이다. 군사독재라고 하지만 그것이 북한 김일성의 독재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하는 일이다.박정희의 5·16은 다행히 무혈의 쿠데타였지만 전두환의 군사정변은 5·18이라는 유혈사태를 초래했다. 항쟁하던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해서 무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희생이 훨씬 적었을 테지만, 12·12사태와 과잉진압 등이 원안제공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사람 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는 했지만 후임 김영삼 정권 때 군사반란 및 내란혐의, 불법비자금조성 등의 혐의로 처벌받고 자격을 박탈당했다. 나중에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전임 대통령의 예우는 물론 유골을 묻을 장지조차 정하지 못한 처지라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 발생했던 일들도 600년이 지난 오늘에는 은원친소의 감정을 떠난 역사적 사실로만 평가를 하듯, 군사정권 30년도 먼 훗날에는 원한과 감정의 앙금이 가신 역사적 사실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5·16도 5·18도 진행 중인 역사다.인류역사라는 대하(大河)의 한 지류인 대한민국 역사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통치자 한 사람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 예가 드물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현 정권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이대로 가다가는 뭔가 크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불안을 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온 국민이 신뢰하고 기대할 만한 후보가 없다고 한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국민 개개인의 의지와 판단이 역사의 흐름을 만든다. 한 해가 기우는 초겨울, 나를 돌아보는 일과 함께 역사의 향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2021-12-02

통계의 함정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국민 98%는 종부세 청구서를 받지 않는다.” 정부가 크게 뛰어오른 종합부동산세(종부세)의 고지서를 받아들고 낙담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외친 말이다. 고지서를 받아든 국민이 약 100만이니까 5천만 인구의 2%라는 뜻이다. 일견 듣기에 “종부세 내는 사람은 2%밖에 안 되는구나. 많지 않네”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통계의 함정이다.거꾸로 이런 질문을 해보자. “종부세를 낼 사람의 모집단의 크기는 얼마인가?” 어린아이나 청소년 등 또한 자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인구를 제외한다면 이 모집단의 크기는 1천만 이하일 수 있다. 1천만 이하라고 가정하면 종부세 내는 사람은 10% 이상이라는 통계가 나올 수 있다. 언론이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언론도 이런 종류의 통계의 오류에 빠져서 여론을 잘못 호도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코로나 중증환자 숫자가 매일 발표된다. 그런데 숫자가 얼마나 늘었는가보다는 현재의 중증환자 숫자만 발표하여 현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고만 보도한다. 현재의 숫자보다 얼마나 중증환자가 늘어가는지를 보도하는게 중요하다. 중증환자의 증가 추세가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는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최근 65세 시니어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증가한다는 보도와 함께 시니어 운전자의 면허증 유효기간을 짧게 하고 검사를 엄격히 강화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체 교통사고에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매년 높아진다고 대서특필하는 언론도 있다. 의학상으로 시니어들의 노화 현상으로 운동감각이 저하되고 운전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시니어의 절대 숫자가 늘고 있다면 당연히 시니어의 교통사고가 느는 건 인구 고령화 시대에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는 인구 중 65세 시니어 비율이 늘어가는 통계와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내년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도 들쭉날쭉하다. 조사방식과 조사대상의 표본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게 대통령 후보의 선호도에 따른 여론조사의 본질이다. 조사방식이 어떤 계층에 유리한가 조사대상이 누구인가가 엄청 중요하지만, 조사기관들은 그런걸 발표하지 않고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결과를 발표한다.이러한 오도된 결론을 “컨벤션 효과가 있다 없다”로 언론매체들은 그에 따른 해석을 내놓는다. 결국 2중의 오류가 빚어진다. 통계도 문제지만 거기에 해석을 맞추는 언론의 견강부회식 해석도 분석의 오류일 뿐이다.최근 끝난 야당후보 경쟁에서 ‘역선택’ 논란도 있었다. 한 후보는 민심이 자기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를 인용했다. 그런데 그 통계를 들여다보면 여당 지지자들의 다수가 그를 지지했다. 그렇다면 그가 선출되면 그 지지자들이 그를 찍어 줄 것인가? 야당 후보 중 누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여당 지지자들은 야당 후보를 약화시키기 위해 약한 후보를 지지한다고 역선택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통계의 오류, 해석의 오류를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관계기관은 통계의 오류를 이용하여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해서도 안 되고 언론들은 해석의 오류를 범해서도 안 된다.

2021-12-02

국내도 오미크론 변이 확인…방역강화 급하다

국내서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진자가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또다시 코로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50대 여성 2명을 포함 5명이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로 최종 확인됐다고 1일 밝혔다. 세계보건기구가 오미크론 변이를 처음 보고한지 일주일만이다. 당국은 이들과 관련한 접촉자를 대상으로 감염 조사하고 있어 오미크론 감염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같은 날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확진자는 사상 처음으로 5천 명대를 기록했다. 위중증 환자도 700명을 돌파했고 수도권의 병상가동률은 89.2%에 달했다. 코로나19와 관련 각종 지표들이 연일 악화일로에 있다. 2일도 5천266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와 연속 이틀 기록경신을 이어갔다. 이제 7천∼8천 명대는 물론 1만 명대 확진자 발생도 시간문제로 다가왔다. 대구와 경북서도 최근 일주일(11월 25∼12월 1일) 사이 하루 평균 확진자가 179.6명으로 집계돼 전주보다 75%가 폭증했다. 경북과 병상을 공유하는 병상가동률도 51.9%까지 올라섰다.단계적 일상회복을 노리던 위드 코로나가 실시 한 달 만에 일촉즉발 위기에 봉착했다. 각종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연시를 앞두고 있어 지금 이 상태라면 2∼3주후면 매우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수도권은 병상 확보를 못해 대기중인 환자가 느는 상황이다. 그 여파가 지방에도 곧 닥칠지 알 수 없다. 특단의 방역강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방역은 선제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전문가 다수는 오미크론의 국내 침투를 기정 사실화하고 확산세를 막아야 한다고 한다. 사적모임 제한 등 방역강화보다 더 다급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정부는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확진자 하루 5천 명이 나와도 병상 확보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정부 말 믿을 사람도 없지만 정부의 안일한 생각이 지금의 위기를 불렀다.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은 전파도 빠르지만 백신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주목한다.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확산세를 막는데 주효하다. 방역강화에 따른 경제적 파장도 걱정이겠지만 둑 터진후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1-12-02

집단면역의 실패

집단면역이란 집단 대부분이 감염병에 대한 면역성을 가졌을 때 감염병의 확산이 늦어지거나 멈추게 되면서 면역성이 없는 개인이 간접적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1930년대 많은 어린이가 홍역에 대한 면역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과학자들에 의해 관찰되면서 집단면역의 효능이 입증됐다.1977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천연두는 집단면역의 결과다. 18세기 유럽에서만 천연두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 40만 명에 달했다. 치사율 30%의 전염병이 집단면역 효과로 지구를 떠난 것이다.LA타임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전 인구의 70∼85%가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이 형성돼 팬데믹의 종식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던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보도했다. 세계 최초로 접종률 60%를 달성했던 이스라엘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높은 접종률에도 불구, 코로나 신규 확진자 증가를 억누르지 못했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80%의 접종률을 유지하고 있으나 신규 확진자는 연일 최다치를 경신하고 있다. 중증환자와 사망자도 최대치로 증가하고 있다. 집단면역 형성으로 코로나19 종식을 학수고대했던 국민 모두의 꿈이 물거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델타 변이에 의한 돌파감염 사례가 빈발한 가운데 최근에는 델타변이 보다 전파력이 훨씬 센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코로나 팬데믹 종식을 위한 집단면역이 무력화된 것 아니냐는 비관론도 나온다. 백신접종은 병세 악화를 막는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다.미국의 전문가들도 집단면역 실패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말을 아낀다고 한다. 온 국민이 고대했던 집단면역 날 새고 만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1-12-02

윤석열의 오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국민의힘 윤석열호가 위기에 빠졌다. 경선 이후 한 달이 지났는 데도 원팀 선대위 구성이 지지부진하고 내부 잡음만 무성하다. 더 큰 문제는 선장을 맡은 윤 후보가 이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줄 모른 듯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문고리 3인방’ 원성을 듣고도 외면하고, 당 대표가 당무를 거부한 채 연락을 끊어 후보 따로 대표 따로. ‘따로 국밥’신세다.중도와 2030세대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젊디 젊은 당 대표가 당무 거부를 정치적 승부수로 던졌다. 그 결과 2일 오전 열릴 예정이었던 선대위 두 번째 회의마저 취소됐다. 당 대표가 정식 일정을 전면 취소한 채 잠행하는 바람에 선대위 전체가 마비된 셈이다.사태의 전말을 들어보니 한 달 전에 잡힌 외교사절과의 면담일정에도 불구하고 하루 전날 충청권 유세 참석여부를 묻는 패싱 논란이 도화선이었다. 뒤이어 후보의 제의로 홍보미디어본부장을 맡았는 데, 뒤돌아서자 마자 막대한 홍보예산을 탐낸 행보라는 식의 음해성 뒷담화가 결정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태의 발단은 당 대표를 적대시하고 배척하려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이중 플레이에 있다. 이준석 당 대표의 이유있는 당무거부에도 윤 후보는 “무리하게 연락않겠다”며 소극적인 반응이다.내년 3월 대선지형을 보면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유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대선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국민들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문재인 정부가 젊은 층 일자리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부동산 값 폭등을 막지못해 내집마련 꿈을 포기하게 만든 실정 탓이다. 잘한 것 없는 정부여당이 정권 연장을 꾀하니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이 제1야당 후보에게 모여들었을 뿐이다.이 대표의 당무거부는 벌써 일부 청년 지지자들의 지지철회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20대 지지자 모임인 ‘팀 공정의 목소리’는 1일 “이준석 당 대표의 지위를 부정하며 ‘패싱’으로 일관하고 변화를 갈망해 모여든 청년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사익만을 앞세워 각자가 챙겨갈 전리품 챙기기에 혈안”이라며 윤 후보 지지를 철회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중도층과 2030세대의 지지가 절실한 윤석열 후보에게는 뼈아픈 실점이다.당 주변에서는 오만과 불통으로 귀닫은 ‘이회창 대세론’의 실패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수 십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하던 윤 후보가 이제 대선 본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뒤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불길하다. 해법은 윤 후보가 직접 나서서 수습하는 길뿐이다.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후보가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보여주고, 유권자를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 젊은 당 대표 이준석을 설득못하면 어떻게 중도층·2030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2021-12-02

여전한 아동학대…자녀가 부모 소유물인가

가족해체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잔인한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걱정이다. 사건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둘째 치고, 학대당한 아이가 학대 행위자와 계속 함께 생활하는 ‘원가정보호’ 케이스가 80%가 넘는다니 더 안타깝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학대’를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경북지역을 예로들면, 지난 1월부터 9월 30일까지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모두 2천215건이다. 지난해(1월∼12월 말까지) 1년간 접수된 신고 건수(1천987건)보다 11%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중 66%인 1천456건은 실제 학대 판정을 받았다. 학대유형 중에는 신체적 학대와 성학대 등 잔인한 범죄행위도 150건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더 큰 문제는 피해아동 대부분이 일정기간 가해자와 분리된 후 집으로 돌아가 학대 행위를 한 사람에게 다시 양육된다는 것이다. 경북도내에서 올해 아동 학대 판정을 받은 1천456명 중 83%인 1천207명이 학대 행위자와 계속 함께 생활하는 ‘원가정보호’ 조치가 취해졌다. 원가정보호 외의 조치유형은 보육시설이나 친척·연고자에 의해 양육되거나 가정 위탁되는 경우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자료’를 보면 전국적으로도 아동학대 건수는 하루평균 85건이상 발생하고 있다.지난해 아동학대 판정건수는 3만905건으로 2018년 2만4천604건, 2019년 3만45건에 비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중 아동학대 행위자 82.1%는 아동과 가장 밀접한 부모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학대가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 아동을 일단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다시 가정으로 복귀한다니 ‘재학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아동학대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들이 아동학대 사건을 취급하면서 ‘가족간의 문제’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례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녀 학대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부모들의 자녀관이 달라져야 한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권위적 가족문화가 가장 큰 문제다.

2021-12-02

내 생애 최고의 사춘기를 위하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거리마다 가로펼침막이 전시회를 이루었다. 대부분이 수험생을 응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정치인들이 불법으로 내건 것들이다.12년 무상교육을 마무리 짓는 시험! 오로지 이날을 위해 가장 빛나야 할 청소년 시기를 너무도 아프게 보낸 학생들! 과연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 줄 수 있을까? 보상을 떠나서 올해 수능부터는 제발 불수능, 물수능과 같은 말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지난주부터 필자의 심장에 꽂힌 뉴스가 있다. 그것은 대학 순위 발표! 물론 해당 기관은 좋은 의도로 발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뉴스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수험생 자녀를 둔 지인은 대학 서열을 조장하는 짓을 왜 하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대학 순위는 국내 순위, 아시아 순위, 세계 순위 등 다양하게 발표되었다. 국내 대학 중 세계 순위가 가장 높은 대학 순위는 129위였다. 이 수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순위다. 그 이유를 해당 기관에서는 “피인용 상위 논문·출판물 비율과 국제 공동연구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게 낮기 때문이라고 하였다.필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학 순위가 아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대학교와 많은 교육 연구 기관에서 연구가 진행될 것이고, 비록 실효성 없는 해결책이지만 해결책도 제시될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고등학교 제자 이야기다. 이맘때만 되면 유독 더 생각난다.“세계 100위 안에도 못 드는 대학은 안 가겠습니다.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습니다.”이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큰 충격에 빠졌다. 왜냐면 수도권 대학에 갈 성적도 되고, 그래서 당연히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연함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기에 필자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예전의 당연함을 강요하지 않는다.필자의 학교에서도 얼마 전 신입생을 위한 입학 전형이 있었다. 중학교에 무슨 입학 전형이 있느냐고 의아해하겠지만, 아주 엄정하게 입시가 진행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전형 방법은 서류 전형과 면접이며, 서류 전형의 핵심 문제는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이다.이 문제를 넣은 이유는 교육 수요자들의 생각을 직접 듣기 위해서다. 전형을 진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가면 갈수록 학교 안보다는 학교 밖에서 교육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체된 학교 안과 변하려는 학교 밖! 그 차이 정도가 곧 공교육 붕괴의 속도와 비례한다면 너무 억지일까! 올해 단연 으뜸 답은 주문과도 같은 다음 말이다.“첫째 아이가 그랬습니다. ‘○○○중학교에서 내 생애 최고의 사춘기를 보냈다고….’”모든 수험생에게 이 주문을 꼭 전하고 싶다. 비록 지난날이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분명 자신의 생애에 최고의 날이 될 것이라고!

2021-12-01

잠을 자야 꿈을 꾸지

사람이 잠을 자는 시간은 하루 8시간 정도이다. 인생의 1/3이나 잠을 자는 셈이다. 백 년도 못 사는 유한한 삶에서 그만한 시간을 무의식으로 보낸다니, 낭비도 이러한 낭비가 없다. 잠만 없다면 얼마든지 인생을 즐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고단한 우리네 인생에서 잠만큼 달콤한 것이 없다.우리말은 잠도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때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나누고 깊이에 따라 나눈다. 모양에 따라 비유해 이름만으로도 잠자는 모습이 그려진다. 잠의 종류를 음미해보면 다시 느끼게 된다. 어느 언어가 이처럼 세밀하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우리말의 표현력은 알면 알수록 놀랍다.개잠 : 개처럼 머리와 팔다리를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잠.겉잠 : 겉눈을 감고 자는 체하는 잠. 선잠.괭이잠 :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면서 자는 잠. 노루잠.굳잠 : 아주 깊이 드는 잠. 귀잠.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 두벌잠.꾀잠 : 거짓으로 자는 체하는 잠.꿀잠 : 꿀맛처럼 달콤한 잠. 단잠.나비잠 :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낮잠 : 낮에 자는 잠.노루잠 : 자다가 자꾸 깨어 깊이 들지 못하는 잠. 괭이잠.늦잠 : 아침 늦게까지 자는 잠.단잠 : 깊이 달게 자는 잠. 곤하게 든 잠.도둑잠 : 자지 않아야 할 시간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자는 잠.도적잠 : 자는 시간이나 곳이 아닌데, 사람의 눈을 피하여 살짝 자는 잠.돌꼇잠 : 누운 자리에서 빙빙 돌며 자는 잠.두벌잠 : 한 번 들었던 잠이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 개잠.등걸잠 : 옷을 입은 채 아무 데서나 나뒹구는 잠.말뚝잠 : 앉은 채로 자는 잠.발칫잠 : 다른 사람의 발치에서 자는 잠.발편잠 : 발을 죽 펴고 편안하게 자는 잠.밤잠 : 밤에 자는 잠.사로잠 :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는 잠.새벽잠 : 새벽에 깊이 드는 잠. 아침잠.새우잠 : 새우처럼 모로 누워 몸을 구부리고 자는 잠. 시위잠.선잠 : 깊이 들지 않은 잠. 겉잠. 여윈잠. 수잠.속잠 : 깊이 든 잠.수잠 : 깊이 들지 않은 잠. 선잠. 여윈잠.시위잠 : 활시위 모양으로 웅크리고 자는 잠. 새우잠.아침잠 : 아침에 자는 잠. 새벽잠.안잠 : 남의 집에서 그 집 일을 해 주고 그 집에서 자는 일.여윈잠 : 깊이 들지 못한 잠.온잠 : 밤새 온전히 자는 잠.이승잠 : 병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줄곧 자는 잠.쪽잠 : 짧은 틈을 타서 불편하게 쪼그리고 잠깐 자는 잠.칼잠 : 비좁은 방에 여러 사람이 잘 때, 한쪽 어깨만 바닥에 대고 옆으로 길게 뻗어 자는 잠.풋잠 : 잠든 지 오래지 않아 깊이 들지 않은 잠.한뎃잠 : 한데서 자는 잠.한잠 : 한창 깊이 든 잠.헛잠 : 자는 체하는 잠.늘 불안한 노루처럼 자는 잠, 눈은 감고 귀는 살아 있어 고양이처럼 자는 잠, 자리가 비좁아서 모로 누운 칼처럼 자는 잠, 꼿꼿하게 박힌 말뚝처럼 앉아서 자는 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등걸처럼 자는 잠, 실을 감고 푸는 돌꼇처럼 빙빙 돌며 자는 잠, 나비처럼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자는 잠, 이처럼 우리말은 비유가 살아 있어 말만 들어도 어떻게 잤는지 알 수 있다.- 쟤는 얼마나 피곤한지 등걸잠을 자더라.- 노루잠을 잤어.- 쪽잠이라도 청하세.- 한뎃잠 잤더니 삭신이 쑤시네.잠은 때와 곳을 가리지 않는다. 때에 따라 새벽잠, 아침잠, 낮잠, 초저녁잠, 밤잠이다. 곳에 따라 집 밖에서 자면 한뎃잠, 바깥잠, 남의 발치에서 자면 발칫잠이다. 목적에 따라 속이려면 헛잠, 꾀잠, 시간에 따라 나누어 자면 쪽잠, 두벌잠, 토막잠, 깊이에 따라 괭이잠, 단잠, 꿀잠, 풋잠, 여윈잠이다. 말만 들어도 잠을 잘 잤는지 못 잤는지 알 수 있다.잠을 잘 여유가 많지 않은 세상이다. 잠을 줄이며 공부해야 하고 잠 안 자고 일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모자라는 잠을 채우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데, 피로가 쌓였을 때 눈꺼풀은 역기보다 더 무겁다. 운전하다가 아주 가벼운 눈꺼풀조차 들어 올리지 못해 영원한 잠에 빠지기도 한다.잠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생물학적 장치이다. 언제 어디서든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일상의 스위치를 끄고 눈을 감아야 꿈을 꿀 것이 아닌가. 인간은 꿈꾸는 동물이고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므로.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2-01

대구시 택시 감차, 서비스 증대로 이어져야

대구시가 코로나19로 인한 승객감소 등으로 존폐위기에 몰린 택시업계의 경영안정 도모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키로 했다고 한다. 택시업계의 지원을 통해 업계의 경영개선은 물론 대시민 서비스 증대도 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그 가운데 과잉공급된 택시수급 조절을 위해 내년에는 46억원을 투입해 역대 최대 규모인 350대의 택시를 감차할 계획이라 한다.대구시의 감차사업은 법인택시를 중심으로 펼치되 개인택시도 참여토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대구시내에는 개인택시 1만여대와 법인택시 5천여대 등 모두 1만5천여대가 운행되고 있다. 업계는 수요에 비해 5천대 가량이 과잉공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면허대수 대비 과잉대수가 전국 광역시 중 대구가 가장 높다.지역택시업계의 운송수익금도 포화상태의 택시운행을 반영하듯 2019년에 비해 20∼39%가량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 영향과 대중교통 환승체계 구축, 자가용 확대 등도 영향을 미쳤다.대구시의 택시감차 사업은 2016년부터 추진해 왔다 올해까지 1천248대의 감차가 이뤄졌다. 그러나 실제적인 감차 효과가 아직 드러나지 않음에 따라 시민의 세금으로 추진하는 택시감차가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직면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경영을 안정시키고 보다 친절한 택시문화 조성을 위해 과잉된 택시의 감차사업 추진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이번에 추진하는 대구시의 택시감차 사업은 반드시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시민세금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밑바진 독에 물붓기식이 된다는 비판을 또다시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대구시가 마련한 택시운송사업 종합대책은 택시업계의 경영개선과 근로자 고용안정에 기여하고 대시민 서비스 증대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 결과가 택시업계의 경영 및 고용안정에 기여하고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업계 역시 자구노력도 필요하다. 택시의 불친절과 난폭운전 등 고질적 문제가 사라지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대구의 택시가 전국에서 가장 친절하고 모범적인 택시로 평판을 받을 수 있도록 대구시와 업계는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2021-12-01

한판 승부 성공 방정식

장규열 한동대 교수 구도, 조직, 사람, 정책, 홍보, 여론, 시대정신. 선거를 앞두고 늘 고심하는 가닥들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치르는 한판승부에서 무엇이 승패를 가를 것인지 모두 촉각을 세운다. 정치적 관심이 평균적으로 높은 우리는 누가 무엇을 잘 활용하여 최후 승리에 이를 것인지 궁금하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진영을 오가며 정권의 향배가 길을 찾는 이즈음에는 특히 선거전략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모두에게 흥미깊은 관전거리다. 백일도 안 남은 결전의 순간까지 양 진영은 치열한 수싸움에 집중할 터이다.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던 콜린파월(Colin Powell)은 리더십에 대하여 말하면서, ‘조직은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계획이 무엇을 성취하지 않는다. 경영이론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성패는 어떤 사람이 일하느냐에 달려있다. 위대한 성공에 이르려면, 최고의 인재를 끌여들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특히, ‘조직구도와 직위명칭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선언하였다. 디지털과 온라인이 주도하는 지식경제에서 최고의 자산은 ‘사람’이다. 고정관념에 빠져 오래된 습관에 의지하면 정작 해야할 일에 집중하기 힘들고 자리다툼에 몰입하게 되어, 가장 중요한 사람을 놓치고 만다.정치권이 딱 그 모양이다. 대선판에서 후보가 물론 잘 해야 하지만, 그의 곁을 지키며 판을 이끌어갈 장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대정신과 사회적 트렌드를 잘 짚으며 직전 선거에서 중요한 승리를 이끌었던 젊은 기수가 신음하고 있다. 실로 오래간만에 신선한 바람을 기대하였던 국민은 정치적 경향성을 떠나 그의 부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이 가닥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든든하게 일어서기를 기대한다. 정치적 기득권이 옥죄는 모습에도 물러서지 않을 용기와 기백에 희망을 걸고싶다. 변화가 어려운 까닭은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을 답습하면서 새로움에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 정치는 말로만 변화를 외칠 뿐, 실제로는 ‘내일을 향한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기억과 전통이 필요하기는 하다. 지나간 흔적 가운데 실수와 패착을 발견하고 진정한 혁신을 이어가기 위하여 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아닐까. 오래된 이름들과 식상한 직책들에 매달리는 오늘 저들의 모습은 비전과 꿈으로 펼쳐가야 할 우리의 내일과는 너무 먼 게 아닐까. 무엇을 바꾸겠다는 집단이 옛 모습만 끌어모으는 행태도 이해하기 힘들다. 구태와 암투의 그늘에서 힘들어하는 젊은 리더를 다시 불러와야 한다. 진영의 이쪽저쪽을 넘어 정치가 젊어져야 한다. 나이는 물론 생각이 맑고 신선해야 한다. 싱싱한 기운으로 가득해야 한다. 바라보는 국민이 안심하고 내일을 맡기려면, 그 내일을 닮은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어제의 습관만 반복하는 당신들의 오늘에 실망하는 중이다.돌아올 그가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새롭게 던질 돌직구와 변화구를 기대한다. 발상이 전환되고 상상력이 발동되는 대한민국 정치권을 회복해야 한다. 국민이 바라보고 있으니.

2021-12-01

Z세대 신조어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는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며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Z세대는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온라인 활용에 능숙하고, 디지털 DNA를 기반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Z세대는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기본이고 틱톡, 트위치, 아프리카에서 트렌드를 선도한다.이들은 2000년대 초반 ‘즐’, ‘OTL’, ‘깜놀’, ‘갑툭튀’ 등을 채팅 용어로 썼으나 자연 도태됐다. 새로 등장한 Z세대 신조어로는 ‘어쩌라고’라는 뜻의 신조어로, ‘어쩔티비’가 대표적이다.‘어쩔티비~ 저쩔티비~’ 또는 ‘어쩔티비~ 어쩔냉장고~’ 식으로 쓴다.‘완내스’는 ‘완전 내 스타일이야’라는 뜻으로 음식, 장소, 사람 등이 마음에 들때 쓴다. ‘오저치고’는 ‘오늘 저녁 치킨고?’란 뜻이고, ‘반모’는 ‘반말 모드’의 줄임말이고, 반대인 ‘반말 모드 박탈’은 ‘반박’이다. 더 이상 반말 모드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킹리적 갓심’은 ‘합리적 의심’이란 말에다 ‘킹’과 ‘갓’을 붙여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실에 기반해 매우 의심할 만한 상태를 가리킨다. ‘꾸민 듯 안 꾸민 듯’의 뜻인 ‘꾸안꾸’에 이어 ‘꾸꾸꾸’는 ‘꾸며도 꾸질 꾸질’이란 뜻이다. ‘자낳괴’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줄임말로 돈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를 줄인 말이다. ‘박박/나나/짜짜’는 각각 대박, 겁나(혹은 비속어 X나), 진짜를 두 번 반복한 말을 줄인 말이다. 갓(god)과 인생의 합성어인 ‘갓생’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을 말하고, ‘캘린더 박제’의 준말인 ‘캘박’은 일정을 캘린더에 저장한다는 뜻이다.Z세대의 신조어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문화를 반영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01

지방의회 정책지원관 임기 1~2년 너무 짧다

내년부터 의회사무직원 인사권을 가지는 지방의회가 조만간 채용절차를 밟을 ‘정책지원관’의 임기와 자격요건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지방의회에 전달한 ‘정책지원 전문인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보면, 광역의회는 6급 이하, 기초의회는 7급 이하로 의원정수의 50% 내에서 1년 또는 2년 임기의 정책지원관을 뽑도록 규정했다. 임기 연장이나 재공모가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임기가 1∼2년밖에 보장되지 않는다. 응시요건도 까다롭기 짝이 없다. 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의 경우 국회·지방의회·법인·단체 등에서 법무 회계·법제·감사·조사 관련 분야 1년 이상 실무경력이 있어야 하며, 학사학위가 없으면 3년 이상의 실무경력이 있어야 응시할 수 있다. 또 8급 또는 8급 상당의 공무원은 2년 이상 관련분야 실무경력이 있으면 정책지원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정책지원관 채용과 관련한 정부지침에 대해 지방의회가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임기 1~2년짜리 임시직인데다 응시요건도 까다롭기 짝이 없어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뽑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돼 있다. 특히 농어촌지역 지방의회는 응시요건을 갖춘 지원자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정책지원관은 지방의원들의 조례안 작성과 정책 개발, 시정 질문 등 의정활동과 관련된 자료의 수집·조사·연구 업무를 수행한다. 이와함께 주민 의견수렴과 의원 요청사항 검토, 보도자료 작성, 회의·토론회 개최 등도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임기만료 후 계약연장을 위해서는 의원들의 평판이 중요 할 수밖에 없어 의원의 개인적 업무까지 처리하는 비서로 전락할 소지도 다분하다.인사권독립 문제는 지방의회의 30년 숙원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의회 사무직원이나 정책지원관 인사문제는 해당 지방의회가 정부 가이드라인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의회가 집행부 견제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인력의 전문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임기를 최소한 3년 정도는 보장해야 인재들이 지원한다. 그리고 정책지원관이 의원의 사적인 사무를 처리할 수 없도록 하는 명확한 규정도 필요하다.

2021-12-01

추가 접종에만 매달려 방역효과 나오겠나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 대응키 위한 정부 대책이 추가접종에만 올인하는듯 해 걱정스럽다. 델타변이보다 5∼6배 정도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의 출현으로 전 세계가 비상인 가운데 정부가 특별방역대책을 내놓았지만 부스터샷을 확대하는 수준에 그쳐 방역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정부가 청와대 특별방역점검회의 후 내놓은 대책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현재 추가접종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18∼49세도 기본접종 완료 5개월 후 추가 접종을 시행한다. 18세 이상 모든 국민이 백신추가 접종 대상자가 된다는 것이다. 또 모든 환자는 재택치료를 원칙으로 하고 먹는 치료제 조기도입과 청소년의 백신접종 독려 등이다.당초 예상됐던 청소년 방역패스 확대나 사적모임 제한, 다중이용시설의 미접종자 모임 인원축소 등은 논의만 하고 결정은 유보했다. 신규 확진자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방역패스 확대나 모임 인원제한은 사회·경제적 피해를 우려해 유보한 것이다.특히 앞으로 모든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재택치료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내용은 논란 소지가 많아 또한 걱정이다. 언뜻 봐도 현재 수도권 중환자실 병상가동률이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과 유관해 보인다. 단계적으로 적용하던 재택치료를 한꺼번에 끌어올린 것은 코로나 환자 응급이송 체제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자칫하면 환자의 피해를 키울 수도 있다.지금 우리의 코로나19 상황은 사면초가다. 신규 확진자와 위중증자, 사망자 등 각종 지표가 매일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어제도 3천명대 신규 확진자가 이어졌고 위중증 환자는 661명으로 다시 최다치를 경신했다. 신종 변이 오미크론의 국내 침투는 시간문제로 보는 견해가 많다. 언제 어떤 문제가 야기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추가접종만 강조해서 될 일이 아니다. 국민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최소한의 다중시설 이용에 관한 규제도 검토해야 한다.연말연시를 앞둔 가운데 각종 모임이 많아지고 있다. 계절적으로 실내 활동이 많아 감염증 전파 우려도 높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4주간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정부 태도가 빨리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2021-11-30

허경영 현상

허경영 국가혁명당 20대 대통령 후보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특이한 대목을 마주할 수 있다. 취미는 평범한 등산이라 했지만 좋아하는 운동은 축지법과 공중부양이라 했다. 애창곡도 특이하게 은하철도 999라 했다. 보통의 생각과는 분명 다른 면이 엿보이는 부분들이다.그는 17대 대선 출마 때는 결혼수당 남녀 각 5천만원, UN본부 판문점 이전, 국회의원 출마 고시제 도입 등을 주장했고 국회의원 수도 100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지만 다소 황당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예전에 발표한 공약의 일부가 20대 대선에 와서는 다른 후보의 벤치마킹이 된다는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그는 정치인이자 가수다. 폴리테이너로 불리기도 한다. 두 번의 대선에서 낙마하였지만 특이한 정치 공약을 내세운 탓에 다수 국민의 기억에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지난 4월에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도 출마했다. 이번 20대 대선에 나섬으로써 그는 대통령 선거만 세 번째 도전한다.이번에도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결혼하는 부부에게 3억원 지급,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1억원과 국민배당금 월 150만원 지급을 공약했다. 자신 공약이 포퓰리즘은 아니라 했다. 국회의원 수와 보좌관 수를 줄이고 대통령 월급도 없앤다고 했다.지난 24일 아시아리서치앤컨설팅이 조사한 대선후보 가상대결에서 그는 4.7%의 지지를 받아 윤석열 후보(45.5%)와 이재명 후보(37.2%)에 이어 3위를 해 주목을 받았다. 황당하다고 했던 그의 공약이 이제와 먹혀드는 것일까. 허경영 현상이 지지율 변화로 이어갈지 궁금하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1-30

벼랑끝에서 버티는 자영업자 급증한다니 걱정

문재인 정부 임기 4년간 폐업을 희망하는 자영업자가 9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 지역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골목 가게들이 존폐위기를 겪으며 힘겨워하고 있다는 의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수는 700만 명에 이른다. 대구도 소상공인 사업체 수(2019년 기준)가 전체 사업체의 85.6%를 차지할 정도로 자영업자가 많다.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간 ‘희망리턴 패키지 사업 현황’에 따르면, 2017년 2천918건이었던 자영업자의 폐업 지원 사례가 지난해 2만5천410건으로 8.7배 늘어났다. 올해는 11월 초 기준으로 1만9천714건의 폐업 지원 사례가 조사돼 전년과 비슷한 수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소상공인진흥공단이 운영하는 ‘희망리턴 패키지 사업’은 폐업 예정 소상공인에게는 폐업 지원을 해주고, 폐업이 이뤄진 후에는 취업과 재창업·업종전환 지원을 통해 신속한 재기를 돕는 제도다. 폐업 지원 방식은 사업정리 컨설팅과 점포 철거지원, 법률자문, 심화상담 등으로 이뤄진다. 사업지원 건수가 증가하면서 투입 금액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총 26억5천300만원이었던 지원 금액이 2018년 32억7천만원으로 늘었고, 2019년 190억1천300만원, 2020년 298억3천200만원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김상훈 의원이 지적했다시피, 현 정부 임기 내 최저임금의 과속인상 등 소상공인 정책실패가 코로나19 여파와 맞물리면서 자영업자 폐업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부터는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까지 등장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폐업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다.자영업자들은 지역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면서도 경기침체에 가장 취약하다. 급격한 매출 악화로 자영업자들이 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하지 못한 채 고사당할 처지에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위기다. 최근 주위를 보면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가게 문을 닫고 싶지만 폐업하면 대출을 일시상환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다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정부가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2021-11-30

어떤 전화

김규종 경북대 교수 우리는 문명의 이기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집 안팎에는 인간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물건들이 자리한다. 그중에서 나는 가끔 전화기를 생각한다. 1980년대 초에 거금 20만원 넘게 들여서 구한 전화기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사립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25만원 정도였으니, 전화기가 얼마나 비쌌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받은 전화번호는 아직 나의 비밀번호로 살아 남아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들들로 인해 괴로웠던 어머니가 한시름 놓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전화기. 가정의 풍속도마저 바꾸어놓았던 전화기에 얽힌 일화를 누구나 하나쯤 기억하고 있을 터. 러시아의 계관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1830년에 출간한 ‘벨킨 이야기’에 아픈 사연이 나온다. 순정파 처녀 마리아를 사랑한 사내 블라디미르가 도둑 결혼하려다 눈보라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야기다.프랑스 감상주의 소설로 교육받은 마리아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귀족 청년 블라디미르. 그는 마리아의 집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에 주례를 담당할 신부와 증인까지 구해놓는다. 하지만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눈보라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소설을 읽으면서 ‘아, 전화기만 있었더라도 이런 불행은 피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며 구슬픈 심사를 금할 수 없었다.200년 전에 이런 사연이 어디 러시아에서만 있었겠는가?! 예기치 않게 걸려오는 반가운 소식부터 언짢고 슬픈 이야기까지 전화는 담담하게 사연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얼마 전 아픈 전화를 받았다. 재작년에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면서 건강을 상당 정도로 회복한 친구에게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 듣자마자 속이 짠하고, 마음 한 자락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전남대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학교 안팎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온갖 꽃과 풀을 사진으로 찍어 그에게 보내곤 했다. 다행히 2019∼20년 겨울은 포근했다. 눈 속에 빨갛게 피어난 장미 사진을 보내기도 했더랬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그는 항암치료 없이 베트남에서 생산된 ‘개 구충제’만으로 2년 이상을 버텨왔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기적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맑고 투명한 그의 웃음소리에 환호하곤 했다.그런데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모든 기쁨과 환희와 미래기획을 눌러버린 것이다. 아, 하는 짧은 탄식과 아픈 가슴 그리고 무거운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가족과 학생들과 그가 기획한 미래가 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상념(傷念). 하지만 우리는 단념하지 않기로 한다. 2년도 넘게 버텨온 그의 생명력과 낙천성 그리고 강고한 긍정적 사유와 환한 웃음이 그를 반드시 살려내리라 믿는다.우리가 오늘 하루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음은 내일과 모레, 그리고 그 내일의 장밋빛 희망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꿈과 기적 같은 미래가 그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21-11-30

낙엽 이불

강길수 수필가 낙엽경기라도 벌어진 걸까. 높하늬바람이 내려 부는 아침, 출근길이 온통 낙엽축제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정신없이 하늘을 난다. 은행잎은 갈 곳 잃은 노랑나비들의 군무를 춘다. 멀리 커다란 느티나무는 어느새 앙상한 몸이다. 사시 푸를 것만 같던 벚나무도 옷을 거의 다 벗었다.시선이 나무 밑 잔디밭에 머문다. 샛노란 은행잎들이 매스게임이라도 하듯 정연하게 도열해있다. 말라가는 잔디이파리 사이사이에 은행잎이 들어있는 모습이 아늑하다.순간, 은행잎들이 작은 황금색 이불로 보였다. ‘내년 봄도 새싹을 돋구려면 겨울잠을 잘 자야 해….’ 은행나무가 잔디에 조곤조곤 일러주는 말이 귀를 일깨운다. 도로 가장자리나 가로수 아래 잔디밭과 화초밭, 학교나 공원 화단은 이미 두꺼운 이불이 내려앉아 겨울 채비를 한다.나도 나뭇잎 이불 같은 이불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왕골자리 위에 깐 두툼한 무명 이불이다. 목화씨를 심고 가꾸어 딴 목화송이 솜을 어머니가 직접 타서, 일부는 무명 베를 짜고 나머지는 이불 솜으로 썼다. 어머니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없는, 온전한 자연산 이불이다. 그 이불을 덮고 우리 동기들은 잠자고 자라났다. 집에 화학섬유가 없던 때를 산 어린 시절이, 지금은 왜 그리도 소중하게 생각될까.어릴 적 산골 마을 사람들은 가난해도 행복했다 싶은 것은 웬일일까. 마음은 하늘, 산, 구름, 골짜기, 내, 들이 나타나고 나무, 풀, 곡식, 꽃, 잎, 열매들이 떠오른다. 가족 같던 이웃들, 소, 개, 돼지, 닭 같은 짐승들, 야생동물들과 양서류, 파충류, 곤충들도 생각난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길, 한 건물에 살면서도 남같이 사는 도시 사람들과는 너무 대비된다.약 반세기 전, 나라는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그에 따른 시골 엑소더스 물결에 따라 나도 도회지로 떠나와 산다. 고등학교 때는 대도시에서 자취를 했다. 그때가 예비 엑소더스였으리라. 자취방에도 어머니의 목화이불은 함께했다. 머리맡에 둔 마실 물이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도, 목화이불은 너끈히 이겨냈다.군에서 제대하고 직장 따라 공업도시로 왔다. 이불은 화학섬유 제품으로 바뀌었다. 자투리 화학 천들을 성글게 뜯어 솜 대용으로 써서 누빈 커다란 이불이다. 간편히 이불 반을 접어 요로 쓰고, 반은 덮었다. 어머니의 이불은 까마득하게 잊고 바삐 살았다. 세월 흐르는 줄도 잊은 체, 모두가 일에 매달렸다.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결혼하고 아이들 둘도 태어났다. 이불은 모두 화학제품으로 바뀌었다.나라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정치 격변을 겪으면서도, 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일어섰다. 산업화 입국 반세기 여가 흐르는 동안, 지구촌도 많이 변했다. 기후변화, 환경재앙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려다가 당하는 후과(後果)일까.컴퓨터 모니터에, 손주 또래 어린아이들이 낙엽 이불을 덮고 활짝 웃고 있다.

2021-11-30

나는 왜 술자리를 좋아했을까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부쩍 줄어들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술 약속을 잡는 것마저 어색하게 느껴진다. 정부의 위드 코로나 정책에 따라 많은 제한들이 사라졌지만, 심리적인 저항감 탓인지, 술 약속을 잡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술을 끊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 요즘엔 집에서 혼자 개인방송을 시청하며 마시곤 한다. 예전이라면 혼술 같은 건 상상도 못했었을 텐데, 코로나가 불러온 변화인 셈이다.나는 술자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에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고, 처음 보는 학우들과 합석을 하는 것도 힘들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단체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어울리는 것에 꽤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술자리가 있다고만 하면 상대가 누가 됐든 찾아가고,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하게 되더라도 지루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곤 했으니 말이다.지금은 그런 행동들이 너무나도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그땐 그런 자리 자체를 꽤 재밌게 받아들이기도 했었고, 왠지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었다.하지만 내가 단체 술자리에 기를 쓰고 참석했던 건 단지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술자리에 참석해 흥겹게 놀고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면서 그 안에서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야, 나는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 안의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야… 같은 느낌들을 무척이나 필요로 했던 것 같다. 그런 느낌마저 없으면, 내가 왠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으므로.그렇다보니 나는 술자리에서 내 진심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늘 상대방의 이야기에 휩쓸리기 일쑤였고, 나와는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험담을 하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에 사람들을 실망시킨 적도 많았다. 술김에 하는 말들이 늘 그렇듯이, 내 대답은 깊게 생각해서 나온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매번 그 말들을 수습하느라 바삐 지냈고, 그걸 핑계로 또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술을 먹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었다. 성글은 말과 어설픈 진심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피곤하게만 만들었을 따름이다.사실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리에서라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술에 취하고 기분에 취한 사람들은 늘 나를 추켜 세워줬고, 나는 그런 분위기에서 스스로가 뭐라도 된 양 굴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취기와 함께 사라지는 기분일 따름이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남는 거라곤 늘 텅 빈 지갑과 피로감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금 술자리를 찾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술에 취해 흥겨워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 했다.그런 사람이었던지라, 코로나가 시작된 후 사람들과 술을 못 마시게 되었을 때 느낀 외로움은 상상보다 컸었다. 맨 정신의 사람들과 하는 대화는 어딘가 엉성하고 모자란 기분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다들 속내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의 말조차 쉽사리 믿지 못하는 불신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어딘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 불러온 참사가 아닌가 싶다. 누구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쉽사리 털어놓지는 않는다. 정말로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술을 마셨는지 아닌지 따위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눈을 마주보고, 서로의 말에 담긴 진심을 헤아리는 건 술기운이 없이도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렇게 술 취한 사람들의 말을 덥썩덥썩 믿곤 했던 걸까. 어쩌면 나에게는 누구라도 좋으니, 진심을 다해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나를 진심으로 믿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참으로 성글게 믿음을 구하며 살았었던 셈이구나 싶다.술이 아니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외로움을 해소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이에게 나는 단지 무례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건방지거나 피곤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건 그 순간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일. 지나고 나서야 겨우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늘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이라도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 뿐이겠다.

2021-11-30

올바른 교실, 올바른 국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로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국가는 어떤 모습인지 기술하라’는 문제를 냈다. 조지오웰의 ‘1984’를 읽은 뒤에 그에 따른 자기 생각을 정리하라는 의도였다. 동시에 내가 완수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이들이 내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아이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저마다의 답을 써 내려갔다.답안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자연스럽게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가혹한 문제를 주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비뚤게 써 내린 문장마다 나에 대한 원망과 함께 열여덟 인생의 고뇌가 묻어 있었다.대부분 비슷한 답을 내어놓았는데,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다. 그러므로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가 올바른 국가이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웃음을 짓게 되는 재미있는 답도 꽤 있었다.‘인간에게 필요한 건 자유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통제한다. 그러니 국가는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낫다’는 입장부터 ‘국민의 삶에 국가가 너무 깊게 관여하게 되면 국민들은 화가 날 것이다. 여러 제도를 통하여 국민을 적당히 어르고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대한민국의 땅과 건물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국민에게 재분배해야 한다. 그것이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 길이다’는 입장도 있었다.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답은 이것이다.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는 사실 멀리 있지 않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내용은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는 억압과 검열에 관하여 설명한다. 여러 매체를 통하여 교묘하게 주입되고 있는 사상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러므로 국가의 역할은 국민이 세계를 의심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이다. 세계가 음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기 소신을 가지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며 그러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라는 것이었다.학생의 답을 읽고 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교실을 둘러보았다. 볼펜을 딱딱거리며 문제집을 푸는 학생,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 학생…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반짝거림을 뒤로 한 채 책상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들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가는 역할이었고 나는 아이들이 시스템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과연 올바른 교실의 모습인가.점심을 먹으며 선생님들과 한 인간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의 맹점과 그럭저럭 유지되는 허울 좋은 자율성, 의심이 말살된 상태에서 대입에만 매진하는 학생들이 과연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는가에 관한 의구심을 차례로 내던졌다.자연스럽게 다음 대선 이야기로 넘어갔다. 누구를 택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누가 되었든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냉소의 가운데에서 우리는 다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모르겠죠.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올바른 교실 그리고 올바른 국가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돌고 돌아 원론적인 이야기만 내어놓을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적절한 배분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며 소통을 놓치지 않고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장치를 구축하는 일. 어느 정점에 도달했다고 하여 방심할 수 없이 시스템을 경계하고 긴장해야 하는 일. 이 모든 것은 너무나 이상적이며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어느 날 문득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도출된 결론이 아주 형편없는 것이라도 스스로가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냉소와 허무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어차피 망한 세상에서 내 할 일만 하면 그만이다는 기조가 성행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올바른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계속해서 활자를 꺼내어 놓기를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하염없는 과정이다.아직도 촌스럽게 유토피아적 열정을 가지고 있네. 누군가 그렇게 말해도 별수 없는 노릇이다.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나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2021-11-30

공포의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

델타변이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 중이어서 지구촌이 또 한 번 코로나 변종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보고된 변이 바이러스(B.1.1.529)를 ‘우려 변이(VOC·variant of concern)’로 지정하고, 그리스 알파벳 15번째 글자인 오미크론(ο)이란 이름을 붙였다.이 바이러스가 최초로 확인된 건 지난 달 9일 남아공에서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에 이어 5번째로 지정된 우려 변이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비변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와 비교했을 때 약 50개 부분에서 변이가 확인됐다. 특히 인체와 결합하는 부위인 스파이크(S) 유전자 단백질에서 30개 이상의 변이가 확인됐으며, 감염 위험을 높이는 부분(D614G·N501Y·K417N 등)에서의 변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한때 이 바이러스는 PCR(유전자 증폭) 검사로 진단할 수 없다는 낭설이 번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오미크론을 포함한 모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금의 진단검사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확진자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하는 데엔 다소 시간이 걸린다.특정 유전체(4000여개)를 분석하는 유전체 분석에는 검체 확보 후 3일, 전장 유전체 분석(3만여개)에는 5일 가량이 걸린다. 또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한달도 채 안 돼 우려 변이로 지정돼 전염력이 얼마나 강한지, 중증도, 백신 효과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선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류가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와 위협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