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정치 신뢰, 해답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김진국 고문 옛날 정치를 들먹이는 사람을 많이 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온갖 욕을 하던 사람이 그를 소환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던 사람이 ‘그래도 그분은…’이라고 추모한다. 추억이 현실보다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그때는 그래도 정치 도의라는 게 있었다. 속으로야 음험한 꿍꿍이셈을 품어도 겉으로는 아닌 체 명분으로 포장했다. 요즘은 명분이고, 체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낯 뜨거운 언행을 거침없이 배설한다. 말 뒤집고, 거짓말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다.후보끼리도 ‘같잖다’, ‘겁대가리’ 같은 상스러운 표현이 거침없이 오간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언행들도 상식을 벗어난다.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3일 국민의당과의 막후대화를 폭로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 제안을 해 온 것도 있다. 안 후보는 아시는지 모르지만….”‘안 후보가 아시는지 모르지만’이란 말은 “당신 측근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안 후보와 그 측근들을 이간질한 것이다. 물밑 대화를 공개하면 본인의 협상만 중단되지 않는다. 윤석열-안철수 사이의 모든 대화 통로가 다 막혀 버린다. 정치 도의도 신뢰도 모두 포기한 행동이다. 단일화보다는 안 후보 진영의 와해를 노린 수다. 적을 이기는 잔꾀를 잘 낸다고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다.윤석열 후보도 단일화가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단일화 없이도 이긴다는 생각 같다. 민심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마지막 투표함을 열기 전에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자만하다 뒤집힌 선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최근에 다시 지지율이 박빙으로 좁혀지고 있다.안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단일화를 생각했다면, 윤 후보는 군소후보들을 흡수하는 단일화를 말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도 적어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같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안 후보가 포기할까. 당선 가능성이 윤석열·이재명 후보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380만 명(8.5%)에서 660만 명(15%) 정도가 있다. 500만 명 정도의 그 지지자들이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진지한 제안에 외면하고, 조롱하면 모욕이다. 힘으로 누르면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종국에 표의 쏠림이 생기더라도 굴욕감을 느낀 표가 어디로 움직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제나 힘으로 굴복시키는 정치를 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양강이 아닌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체제를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만들겠다”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총리 국회 추천,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말보다 행동”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부터 치명적인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처리에 협조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만들었다. 막상 선거 때는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군소정당들은 기존 선거법에서보다 더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안철수 후보도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이재명 후보는 토론에서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성정당 없어도 압승했을 선거였다. 민주당이 뺏어간 의석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이 가져갈 의석이었다. 민주당이 만든 법이다. 아쉬운 일이 해결되자 입을 씻었다.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어제는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결의까지 했다. 그렇지만 불과 며칠 전 새벽에 날치기로 추경을 통과한 정당이다. 숫자의 힘으로 독주하는 그 체질이 갑자기 바뀔까.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국민의힘이건 민주당이건 소수당의 싹을 없애려고 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색깔일수록 더 짓밟는다. 그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분권형은 말뿐,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 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질주한다. 그래도 겁내는 건 국민이다. 해법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본사 고문

2022-02-27

다시, 악의 평범성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책임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게 잡혀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지켜본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이 존재한다고 했다.악이라는 것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독가스로 유대인을 학살한 일을 아이히만은 자신의 자리에서 명령을 수행했고, 심지어 법을 지키며 그 일을 했다고 했다.그는 사형장으로 향할 때조차도 자신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꼿꼿하게 서있기 위해 발목과 무릎을 묶은 밧줄을 느슨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잠시 후면 여러분과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만세…”라고 말한 뒤 죽었다.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말하기에서의 무능, 생각하기에서의 무능과 판단하기의 무능함을 보았다며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더욱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 없이 만든다”고 경고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독후감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가 말한 ‘우리 안의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인류세’라는 말이 있다. 25~15만 년 전에 탄생한 인류가 46억년 된 지구에게 ‘생태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로 붙인 말이다.‘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보자.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팀의 ‘인류세 : 인간의 시대’에 나오는 이야기다.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는 77억 인구가 250억 마리의 닭들과 함께 살아가는 ‘닭들의 행성’이며 우리가 먹는 닭의 조상은 ‘붉은들닭’으로 8천년 전부터 가축화되었단다.이 ‘붉은들닭’은 원래수명대로 산다면 30년을 사는데 현재 식용 닭의 수명은 중국 55일, 미국 45일, 한국 평균 35일이다. 길어도 두 달을 못 넘기며 로마나 중세시대의 닭들과 비교하면 다리와 가슴부분만 비대하게 자라고 5배 정도 빠르게 성장하도록 변형시켰단다. 그렇게 효율적인 닭이기에 일 년에 650억 마리 정도를 먹어치울 수 있게 됐단다.이 엄청난 대학살에 우리는 공기 중에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축산업과 유통업에서 생산하는 치맥으로 동참하고 있다.닭들이 어떻게 부화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어떻게 죽어서 튀겨지고 우리 집 앞으로 배달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주문하고 먹어치운다. 삼겹살을 뒤집으며 아무도 돼지의 분뇨를 치우다가 죽어간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다.닭과 돼지와 소는 인간들 덕에 자신의 종이 지구에서 번성하게 된 것을 고마워할까? 가축들의 죽음도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가 진행한 거대한 가속의 반생태적 문명이, 무심코 먹는 육식메뉴가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평범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46억년 된 지구를 70년 만에 거덜 낸 실력을 생각하면 ‘악의 비범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생태문명선언’이라는 책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영화감독 황윤은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에서는 ‘육류세’가 의회에서 논의 중이며 뉴질랜드에서는 가축사육에 ‘트림세’를 물리고 있다고 한다.캐나다는 2019년에 우유를 제외한 식물기반 자연식의 ‘캐나다 국민권장식단’을 발표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교육부행사에 채식을 기본식단으로 제공하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식물식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뉴욕시는 지속가능한 식생활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볼티모어에서는 200개의 학교에서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식품에 대해 가르치고 축산업이 기후변화와 물, 그리고 생물종다양성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아랜트가 말한 ‘우리 안의 악의 평범성’을 말하기, 생각하기, 판단하기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생태학자 최재천은 ‘호모 심비우스’에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모두 함께 사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유전자에 적혀있는 본능 같은 게 아니다. 이 지구를 공유하고 사는 다른 모든 생명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21세기 새로운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안한다”고 했다.호모 심비우스는 ‘공생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설 곳이 지구에는 없다는 절박함이 묻은 말이다. 협력하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경고의 말이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사유와 삶을 어떻게 꾸릴지를 안내하는 책 ‘소크라테스 스타일’에서 철학자 김용규가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로 ‘우리 안의 아이히만’이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을 다시 상기하자.“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가난한 사람들과 지구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신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2022-02-27

울릉 늦겨울의 우산고로쇠 수액 채취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울릉도는 겨울철에도 주변 표층수온이 섭씨 10도 이상을 나타내는 비교적 따뜻한 바다에서 기인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최고봉인 성인봉(해발 986.5m)과 만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폭설이 가장 빈번하게 내리는 지역이다.울릉도의 겨울은 눈으로 상징된다. 눈은 수목의 뿌리가 얼지 않도록 보온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수목이 생육을 시작하는 봄철에 눈이 천천히 녹으면서 뿌리에 수분을 공급함으로써 울릉도 수목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2월 중순 울릉도는 울릉도 겨울의 선물인 우산고로쇠수액 채취가 본격 시작된다. 고로쇠나무는 해발 100~1천800m에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특히 우산고로쇠나무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고로쇠나무로, 해발 3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라고 있다.다른 지역의 고로쇠나무수액과 비교 연구에 따르면 우산고로쇠나무 수액의 당도는 3.06%로, 다른 지역의 당도 0.8~2.0%에 비해 매우 당도가 높다. 특히 우산고로쇠나무 수액 중 칼슘의 함량은 약 522mg/ℓ로 통상의 고로쇠나무(16.2~153.3mg/ℓ)에 비해 뛰어나게 높아 고로쇠가 골리수라 하여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의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산고로쇠에서 항암효과 및 피부 미백효과와 함께 신경세포의 퇴행을 막는 항산화 효과에도 우수한 것으로 판명됨으로써 천연 기능성 물질로서 여러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우산고로쇠나무 수액채취 시기는 12월~1월보다는 연중 기온의 일교차가 높은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에 주로 이뤄진다.고로쇠 수액의 분출 원리는 고로쇠나무 내부와 외부의 압력차에서 기인한다. 나무 조직을 구성하는 도관세포 내부의 공기는 추울 때는 수축하고, 따뜻할 때는 팽창하는데 이러한 수축 팽창 원리에 따라 뿌리로부터 양분을 흡수한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중 최저기온이 영하 4℃, 최고기온이 영하 12℃, 일교차가 15℃ 이상일 때 가장 이상적인 채취 조건이 이루어진다. 울릉도는 통상 연 중 2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에 연 중 일교차가 가장 높으며, 한편으로 3월 중순 이후에는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따뜻해지기 때문에 고로쇠 수액의 적절 채취 시기는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에 이뤄진다.울릉도에서 본격적인 우산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는 1970년대 수액 채취가 이루어진 백운산, 지리산에 비해 비교적 최근인 2002년부터 수액채취 허가가 나면서 시작되었다.현재 울릉도에서 우산고로쇠 채취 생산자는 80여명으로, 수액채취와 품질관리는 울릉군산림조합 및 울릉군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울릉도에서 고로쇠나무의 이용은 울릉도 개척기 무렵부터 활발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울릉도 전통 가옥이면서 문화재청 중요 민속자료로도 지정된 울릉도 너와집의 널판의 재료가 바로 우산고로쇠나무이었다.울릉도는 지붕을 덮을 정도로 잦은 폭설이 내리기에 견고하면서도 눈에 적응하기 위한 집 구조가 필요했다. 산의 잡목을 구해 우물정자로 포개어 건립한 후에 그 위에다 지붕으로 너와를 올렸다. 고로쇠나무는 그 결이 단단하여 너와에 제격이었다. 그럼에도 해양성 기후 특성상 수분을 가득 머금은 눈의 무게로 인해 너와집이 붕괴되는 일도 예전에는 빈번하게 있었다. 1934년 2월의 어느 한 중앙지에 실린 울릉도 폭설 호외 기사는 4m에 이르는 폭설로 울릉도 용암골의 가옥이 붕괴되어 자고 있던 가족 모두가 참변을 겪었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실려 있다. 울릉도 주민들에게 가옥의 재료로 울릉도 개척기의 어려움을 함께했던 우산고로쇠나무가 이제는 수액으로서 울릉도 주민의 겨울 소득원이 되고 있다.매년 겨울이면 잦은 풍랑특보로 인해 1달에 보름 가까이 여객선이 결항되어 고립의 섬이었던 울릉도가 올해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포항-울릉도간 항로에 취항한 1만9천988t의 대형 카페리호인 뉴씨다오펄호의 운항으로 눈 덮인 울릉도의 풍광을 즐기고자 하는 등산객들로 비교적 활기를 띄고 있다.우산고로쇠와 함께 울릉도 풍성한 해산물은 울릉도 겨울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청정 해역의 어패류와 다양한 해조류도 한몫을 한다.왜 섬 주변에서는 그리고 울릉도(독도) 주변에서는 해조류가 풍성하게 자랄까? 해양 심층으로부터 영양염 공급도 있겠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육지로부터 영양염 공급에 주목하고 있다.특히 울릉도는 화산섬이라는 특징과 물이 풍부하여 육지로부터 영양염 공급에 우수한 조건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으로 알려진 포세이돈의 이름은 원래 땅의 남편, 땅의 주인을 의미하며, 대지를 뒤흔드는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바닷물에 녹아있는 거의 대부분의 물질은 육지에서 운반된 물질이다.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지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다와 육지가 가장 정직하게 만나는 곳이 바로 섬이다.

2022-02-27

안강송(安康松)

안강으로 소풍을 갔다. 소나무의 모양이 특별한 숲이 있어서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흥덕왕릉에 간다고 하니 집에서 가까운 곳인데도 다들 잘 모르는 눈치다. ‘태정태세문단속 예성연중집단속’, 이렇게 엉터리로라도 조선의 왕들은 우리 입에 오르내렸지만, 신라의 왕은 몇 대인지도 모른다. 우선 혁거세를 시작으로 마지막 경순왕까지 총 56명이고 그중 소재 불명을 빼면 왕릉은 총 37여 기가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주인이 확인된 무덤은 단 8기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추정할 뿐이다.그 가운데 제42대 흥덕왕릉에 도착했다. 능의 주변 비석에 ‘흥덕’이라는 글자 덕분에 주인이 분명해진 운 좋은 능이다.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어래산 기슭 능골에 있다. 능골은 왕릉이 있는 고을이라서 붙은 이름 같다. 주차장이 얼마 전에 새로 만들었는지 훤하다. 화장실에 들르니 천장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손을 씻으니 수도꼭지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와서 추운 날씨에도 기분이 좋았다. 흥덕왕의 백성에 대한 사랑인가, 하며 웃었다.능을 만나려면 먼저 소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 사실 소나무에 가려서 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레솔이 빽빽하다.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둘러서서 능을 감싸 안았다. 솔밭 사이로 바람 소리를 따라 걸었다. 갈비가 쌓여 푹신한 오솔길을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잔가지가 투닥투닥, 산비둘기가 낯선 손님이 왔다고 경계하며 부부 울었다. 용솟음치며 올라가듯 비스듬히 누운 나무, 두 그루가 꽈배기처럼 껴안고 자라는 나무, 드디어 소나무 병정들 사이로 능이 보인다.흥덕왕은 부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천 년이 지나도록 신라의 로맨티스트라 불렸다. 하지만 막상 소나무 숲 앞에 놓인 안내표지판을 보면 놀랄 것이다. 장화 부인은 남편이자 삼촌인 흥덕왕이 두 동생을 살해하는 현장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왕이 부인을 사랑했다는 말이 진짜일까 싶다. 왕위에 오른 지 2개월 뒤에 왕비가 죽었다. 왕은 무덤을 안강읍에 정하고 자신도 죽으면 그 자리에 합장하라고 했다. 자기가 묻힐 자리를 미리 정해둔 것이다. 왜 왕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했을까.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죄의식 때문에 경주의 중심지를 피했던 것이라 짐작해본다.구석에 있어서일까, 신라의 능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봉분과 그 둘레의 십이지신상, 무인상과 문인상, 4마리의 석사자에 석주까지 이렇게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원성왕릉과 이곳이다.봉분 둘레의 네 방향에는 석사자 네 마리가 지키는데 모두 보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왕릉의 주변을 천 년이나 한눈팔지 않고 경계하는 충직한 모습이다. 드디어 능에 다가서서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 열두 마리의 동물이 판에 새겨져 그 특징을 보고 무슨 동물일까 맞춰가며 거닐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세월에 뭉개져 귀가 쫑긋한 토끼와 구불구불한 몸의 뱀만 모습을 알아볼 정도였다.왕릉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거북이를 못 보고 지나치기 쉽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흥덕왕릉의 이름을 지켜준 거북이니까 등이며 발의 모습도 살펴주길 바란다. 이 거북은 등에 비석을 지고 있는 귀부인데 아쉽게도 비석과 머릿돌은 사라졌다.능을 다 돌아보았다면 이곳의 백미인 소나무 숲의 소리에 다시 귀 기울일 때다. 소나무를 솔이라 부르는데 솔은 으뜸을 의미하는 말 ‘수리’ 또는 ‘술’이 변한 것으로 나무 중에서 최고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름철 강우량이 적을 뿐 아니라 온도 격차가 심해 소나무가 살기에 아주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느라 안강의 소나무는 구부러지고 뒤틀린 모양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 지역만의 특징적인 소나무라 ‘안강송’이란 이름도 따로 붙여주었다. 흥덕왕릉을 지킨 공덕을 인정받아 정이품송처럼 이름을 얻었다. 드높은 소나무 숲에서 마음을 씻었다. /김순희(수필가)

2022-02-27

포스코 지주사, 포항 설립 결단 환영한다

포항시와 포스코그룹이 지난 25일 포스코 신설지주사(포스코홀딩스)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을 포항에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포스코의 ‘탈(脫)포항’ 논란을 둘러싼 포항시와 포스코 간의 격화된 갈등이 일단락됐다. 합의서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정해종 포항시의회 의장, 강창호 범시민 대책위 위원장,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 전중선 포스코 사장이 서명했다. 포스코그룹을 대표하는 최정우 회장 서명이 빠진 것과 관련해서는 최 회장이 조만간 포항을 찾아 입장을 표명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합의서는 ‘포스코 지주회사 소재지는 이사회 및 주주설득과 의견수렴을 통해 2023년 3월까지 포항으로 이전할 것을 추진하고,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본원을 설치하는 등 포항 중심의 운영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포항시와 포스코, 포스코홀딩스는 앞으로 TF를 구성해 지역상생협력 및 투자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포스코홀딩스 소재지 이전을 1년 후로 미룬 것은 지난 1월 28일 열린 포스코 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소재지를 서울로 한다는 내용을 의결했기 때문에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주들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근무하던 기획·전략·신산업 담당 인력 200여명이 분리돼 3월2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있는 기술연구원과는 별개로 포스코그룹이 지난 1월 4일 개원한 RD 컨트롤타워이며, 인공지능(AI), 2차전지 소재, 수소 등 미래기술 연구에 특화한 조직이다.포스코가 포항을 비롯해 대구·경북 지역민의 여론을 받아들여 비수도권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포스코는 내년에 포항으로 오는 포스코홀딩스와 미래기술연구원이 실질적인 그룹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그러려면 최정우 회장이 가급적 자주 포항본사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최 회장이 포항에 머물면서 주요 회의를 주재하거나 많은 국내외 인사들을 만나면 포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 보유도시’가 된다.

2022-02-27

약육강식의 세계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먹이”라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자연의 생존법칙을 일깨우는 말이다.“우수한 자는 이기고 미흡한 자는 패한다”는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성공하면 왕이 되고 실패하면 도적이 된다”는 성왕패구(成王敗寇)라는 말과 비슷하다. 강한 자가 끝까지 남는 것은 일종의 자연 섭리다.다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인지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약한 자가 살아남아 강한 자를 무너뜨리는 일을 자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본래 의미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니고 가장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강해서 살아남은 것인지 살아남아서 강한 것인지 어느 것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한다는 데 별반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국가 존망 위기에 몰린 우크라이나 사태가 곧 약육강식의 국제 질서다. 날아 간 이해가 얽히면 어떤 논리나 순리보다 자국의 힘이 우선 작용한다. 국가적 이익에 물러설 나라가 없다는 뜻이다.바람 앞에 등불 같은 우크라이나는 서구 열강과 러시아의 신냉전 분위기 속에 어느 날 갑자기 제물로 남을 운명에 처해 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피난길로 나선 국민들은 일찍이 부국강병하지 못한 자신들의 모습을 자책하고 있을지 모른다.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앞에 버티고 있고 언제나 힘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는 한 한반도 안보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먼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평화 타령보다는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지는 반면교사의 정신을 가져야 할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2-27

신한울 1·2호기 재개, 정치적 의도 없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회의에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이른 시간 내 정상가동”을 언급했다. 평소 대통령이 낸 원전 관련 메시지와는 그 톤이 달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정책 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나 하면 또 다른 일각에선 대선을 앞둔 정치적 노림수로 보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을 점검하는 차원”이라 했지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왔던 청와대 측이 갑자기 원전공사 재개를 밝힌 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울진군의회 원전특별위원회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 변화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며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득표를 위한 일시적 정책 변화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신한울 1·2호기는 공정률 99%로 사실상 완공 단계다. 2018년 4월과 2019년 2월에 각각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막혀 운영허가가 3∼4년 가량 연기됐다.특히 문 정부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가까이가 원전사용을 찬성함에도 고집스럽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원전건립에 따른 매몰비용 발생 등 국가적 손실도 적지 않게 냈다. 청와대가 이제 와 신한울 1·2호기 등의 공사 재개를 주문했다면 그것이 정책 변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밝히는 게 올바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을 앞둔 득표용 노림수라는 비판을 받아도 달리 해명하기가 어렵다.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며 새로운 원전시대를 열어갈 계획이다. 정부의 원전 정책이 미래지향적이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지금이라도 정책 변화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차제에 신한울 3·4호기 공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밝히는 것이 정부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2022-02-27

유튜브 선거전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순서다. 절대 권력일수록 언론의 통제도 절대적이기 마련이다. 통제 밖으로 유출하는 언로를 막지 않고는 권력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시작부터 친정부 좌파들이 방송매체를 접수했다. 지난 정권이 발탁했거나 우파성향의 인사들은 당연히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방송매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정보에 의존해서 현실을 인식하기 마련인데, 지상파 방송은 물론 보수성향 종편방송도 생사여탈권을 쥔 정권에 대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론을 필두로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틀어쥐면서 좌파들의 장기집권 플랜이 착착 진행 되는가 했다.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유튜브(YouTube) 개인방송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지상파방송에서 쫓겨난 인사들이나 보수패널로 출연하던 평론가들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개설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권의 억제로 막혔던 언로가 새로운 물꼬를 트고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노란딱지’를 붙여 수익을 차단하는 등의 제재가 가해졌지만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원천봉쇄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유튜브는 미국의 구글(Google)사가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기 때문에 함부로 통제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수십만의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하는 바람에 지상파방송들의 권력옹호가 잘 먹혀들지 않게 됐다.유튜브 개인방송은 대부분 그 성격이 좌와 우로 뚜렷이 갈린다. 즐겨 찾는 구독자들도 인터넷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돼, 양편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래서 확증편향을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일방의 독단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더 많다고 할 것이다. 자유우파 유튜버들이 종북주사파가 주축이 된 좌편향 언론의 균형을 잡는 역할은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유튜브 기능은 결코 적지가 않은 것이다.우리나라 좌파세력은 상당기간 학습된 논리와 단합된 조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파 성향의 국민들은 대부분 지리멸렬 개별적인데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지식도 갖추지를 못했다. 그래서 좌파들의 준비된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거점으로 한 보수성향 국민들의 반격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정의감과 양식을 갖춘 논객들이 명석한 해설과 논평으로 대거 보수층 국민들을 계도하고 탄탄한 논리로 무장시킨 것이다. 반민족 매국노와 친일 독재자로 매도되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과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당당하게 추켜세울 수 있게 해준 것도 유튜브의 힘이었다.본격적인 대선정국에 들어서자 정권교체의 가망이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그 수훈의 갑은 자유우파 유튜버들이란 생각이다. 그들이 불철주야 사회의 혈맥인 언로를 열어 마비된 세상을 일깨운 덕이라 할 것이다.

2022-02-24

심각한 인구위기, 청년일자리에 답이 있다

통계청이 지난 23일 발표한 ‘2021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인구가 5만7천300명 자연감소했는데 그 중 경북이 1만893명으로 20% 정도를 차지했다. 경북도내 농어촌지역의 인구소멸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경북은 인구 1천명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조출생률이 4.6명인 반면, 조사망률은 거의 2배에 육박하는 8.8명에 이르렀다. 대구는 3천900명이 감소해 광역시 중 부산(9천76명) 다음으로 감소폭이 컸다.시도별로 보면 경기, 세종, 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가 자연감소했다.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사상 첫 자연감소를 기록한 이후 2년째 감소세를 이어갔으며 감소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저출산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만15~49세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숫자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 0.81명까지 떨어졌다. 세계 최저수준이다. 지난해 OECD 평균 출산율은 1.61명이다.통계청은 이대로 가면 올해 0.7명대, 내년에는 0.68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서울(0.63명), 부산(0.73명), 대구·인천(0.78명)은 0.7명대 이하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을 넘지 않고, 사람이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으면 인구는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지난해 결혼건수(19만2천509건)도 처음으로 20만건 밑으로 떨어졌다. 전년보다 10%정도 줄었다.정부가 올해 0~1세 영아에게 수당 30만원을 지급하는 등 4조1천억원 규모의 저출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과거경험을 보면 효과는 의문이다. 정부마다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정적인 가치관만 심어주기 때문이다.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점점 치열해 지고, 내집갖기 꿈은 멀어지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잘 기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2022-02-24

희망 고문

우리나라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이틀 연속 17만명을 돌파했다. 22일 현재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한때 80만명에 이르던 미국은 9만명대로 떨어졌고 영국도 4만1천여명, 일본은 6만명선이다.신규 확진자 폭증으로 연초 2만5천명대에 있던 재택치료자가 이제 50만명을 넘겼고 조만간 100만명도 넘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도 7천600명을 넘어섰다.그런데도 정부는 “언젠가는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자리 잡는다” “계절 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자주 던지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도 “치명률이 낮은 오미크론의 확산은 일상회복을 위한 긍정적 요인”이라고 한다.실제로 정부의 말대로 코로나 사태가 종국으로 치닫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겠지만 아직은 코로나 유행이 정점을 향해 달리는 과정이라 성급한 언급에 국민의 경계심이 풀릴까 봐 걱정이다.특히 새로운 변이의 출현과 같은 불확실성이 아직은 존재한다. 지금의 섣부른 낙관이 더 큰 재앙이 부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경계심을 늦출 일이 절대 아니다.얼마 전 경기도에서는 재택치료 중이던 7개월 영아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한해 계절독감으로 사망하는 추정자가 3천∼5천명이 된다고 7천여명의 코로나 희생자의 목숨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한명 한명 귀하지 않고 억울하지 않는 목숨이 어디 있나. 무증상·경증이라서 재택치료라는 이름으로 방치되는 일도 안된다.섣부른 낙관론보다 신중한 말한마디가 더 중요한 때다. 프랑스의 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은 모든 악 중 가장 나쁘다.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24

LG전자 태양광도 철수, 구미경제 또 직격탄

LG전자가 집중과 선택을 이유로 실적부진의 LG전자 태양광 셀. 모듈 사업을 철수키로 했다. LG전자 태양광 패널사업 철수로 구미국가산단 내 가동 중인 LG전자 구미사업장 태양광 패널사업부의 인력 재배치가 불가피해졌다. 회사 측은 구조조정없이 그룹 내 재배치한다고 밝혔지만 구미 태양광 사업부 600여명의 직원 중 일부는 구미공단 내 타사업장에 남고 상당수는 평택, 창원 등지 사업장으로 이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LG전자는 2020년 구미공장 TV 생산설비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또 LG디스플레이도 2017년부터 2020년에 걸쳐 구미공장 생산설비를 모두 철거한 바 있다. 삼성과 LG의 입주로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본거지였던 구미국가산단은 TV와 무선전화 등 핵심 전자사업 대부분이 이제 구미를 떠나면서 구미산단의 기반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LG전자 구미사업장의 경우만 해도 수년간 지속되는 구조조정으로 생산비중 및 직원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LG의 태양광 사업 철수와 관련 김영식 국회의원(구미 을)은 “구미경제와 일자리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태양광 사업장 부지의 LG그룹 내 타계열사 활용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카메라 모듈과 반도체 기판을 생산하고 있는 LG이노텍의 태양광 공장 부지 인수설이 나오고 있으나 성사여부는 확실치 않다.구미국가산단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라 불렀다. 그러나 2010년 삼성전자가 베트남으로 생산 설비를 옮기고 LG 등이 수도권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한때는 중기가동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5년 산단내 10만명이 넘던 근로자수도 2020년 기준 8만명선에 머물고 있다.그러나 최근 LC화학 자회사 LG BCM이 구미형 일자리사업으로 양극재 생산공장을 착공하면서 구미산단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비록 LG태양광 패널사업부 철수 결정으로 구미경제가 악재를 만났지만 공단 활력화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경북경제 양축의 하나인 구미국가산단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지자체와 지역경제단체가 더욱 분발 노력해야 한다.

2022-02-24

무신불립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얘기다. 자공이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라고 대답했다.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했다. 이후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대선 중반을 지나는 시점에 터져나온 여당의 정치개혁 공약이 야당 후보들로부터 진정성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여당의 다당제 정치개혁안에는 다당제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강화,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 대선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 개혁 등이 포함돼 있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4일 정치개혁안을 발표하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제외한 제3지대와 이재명 대선후보 간 연대를 시도했다. 그런데 군소 야당후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차갑다.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의 선거제 개혁 발표에 대해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 소신대로 하면 될 일이지 그걸 빌미로 단일화하자고 하지말아 달라는 뜻이다.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아예 정치개혁안이 선거와 연계해서 나왔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 후보는 “공약을 내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랜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지난 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심 후보와 정의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온 힘을 보태서 만든 선거제도 개혁을 뒤집어 엎은 일을 거론했다.지난 20대 국회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을 고리로 국민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4+1 연대(민주당+군소4야당)’까지 했지만 이후 민주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뒤통수를 쳤던 원한을 다시 떠올린 셈이다.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 역시 민주당의 정치개혁 공약에 대해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는 “연동형비례대표제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앞장서서 무력화시켰고, 서울·부산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보낼 때는 개혁 성과라고 자랑하던 당헌당규까지 고친 게 바로 일년 전”이라며 민주당을 선거전략만 고민하는 ‘양치기 소년’에 비유했다.지금의 양당체제는 적지않은 문제가 있고, 폐해를 줄이기 위한 정치개혁은 꼭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치개혁안에 아무런 반향이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많은 국민들 앞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합의하고도 손바닥 뒤집듯 합의를 무너뜨린 여당을 믿을 수 없기때문일게다. 무신불립의 교훈을 지키지 않은 여당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시점이다.

2022-02-24

악착과 애착

백후자수필가 같은 길인데 다른 길 같다. 몇 년 전 여름에 찾았을 때랑 사뭇 달라 보인다. 계절이 다르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때는 지나쳤던 저수지 앞에 멈춰 선다. 파리한 물결이 매섭게 맞이한다. 물결 안은 바람이 주머니 속까지 들어와 헤집고 설친다. 오늘은 무언가가 마음을 헤집을 듯하다.영지사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웅정암이었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선조 36년에 다시 중창하면서 영지사로 개명했다. 영조 50년에 중수가 이루어졌고, 1992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0호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 건물이다.고찰인데도 불구하고 대웅전 단청의 빛깔이 바래지 않고 화려하다. 해체 복원 작업을 하면서 새로 색을 입힌 흔적이 역력하다. 고찰에 들어서면 오래된 빛깔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모아지면서 차분해진다. 고색창연한 느낌을 잃어버린 것 같아 많이 아쉽다.영지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천장 들보의 반야용선대에 악착같이 매달린 악착동자다. 청룡과 황룡이 이끄는 용선대에 열 한 개의 종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그 중간쯤에 악착동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반긴다.악착은 ‘작은 이 악(齷)’과 ‘이 마주 붙을 착(齪)’이 합쳐진 말이다. 어떤 일에 기를 쓰고 덤벼들거나 끈기 있고 모질게 달려들어 해낸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악착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부처님 경전에는 전해지는 바가 없지만 명나라 운서 주굉 스님이 편찬한 ‘왕생집’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명나라 경도에 유통지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평생 염불에 온 정성을 쏟았다. 쉰 두 살의 나이에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는 더욱 간절히 염불하였다. 그때 이웃에 살던 이백제라는 사람이 먼저 죽고 유통지도 죽었다. 그런데 아침에 숨이 멎었던 유통지가 정오 무렵에 다시 소생하여 가족들에게 말하였다.“정토로 가는 배를 탔소. 그 배에는 나를 포함하여 서른여섯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소. 이백제도 그 배에 타고 있더군. 그러니 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오.”어안이 벙벙한 가족들을 보며 유통지는 말을 이었다.“너무 서둘러 가다보니 옷이 이 모양이고 염주도 잊었지 뭐요. 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염주도 챙겨야 하니 좀 도와주구려.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소.”가족들은 서둘러 유통지의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었다. 잠시 후 유통지는 배로 돌아갔다.이 이야기를 모태(母胎)로 여러 가지 설(說)이 돌고 있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악착같이 수행정진하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둔다. 뜻하는 일에 악착같이 매달리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다는 의미다. 줄을 타고 용선에 매달린 악착동자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비록 외줄에 매달렸지만 평온해 보인다.조용히 눈을 감는다. 악착같이 살았던 때가 있었던가를 더듬는다. 그동안 크게 이루어놓은 건 없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나날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건 인정하련다.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고, 그 욕심 안에서는 만족이라는 단어가 꼭꼭 숨겨진 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고 둘을 얻으면 셋을 노리는 게 욕심이다. 이젠 내려놓는 연습도 필요해 보인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평생 줄에 매달린 듯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자신의 삶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나름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온 힘을 쏟는다. 또한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잡은 줄을 놓지 않는다. 때로는 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겠지. 그래도 악착같이 일어나 매달리는 것이 삶이다.악착같이 산다는 것,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다.

2022-02-23

병인(丙寅)

하늘의 기운인 병화(丙火)를 태양이라 칭하고, 양 중의 양이며 땅의 기운인 지지(地支)인 인(寅)을 호랑이로 형상화하지만, 호랑이로 태양 아래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낸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동방 인(寅)’이라고 했고 시작하는 기운을 의미하기도 한다. 호랑이 중에서도 ‘병(丙)’이라는 호랑이는 고향을 떠나 개척을 하며, 다른 기운을 받아야 성공하는 간지다. 하늘이 땅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땅이 하늘을 운용하는 호랑이가 ‘하늘 시계 병(丙)’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그 이후 일이 달라진다.‘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편 김현감호(金現感虎)조에 나오는 이야기다.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면 8일부터 15일까지 경주의 남녀가 흥륜사 탑돌이를 하며 복을 비는 행사가 있었다. 김현이 늦게까지 탑돌이를 하는데 웬 처녀가 염불을 하며 김현의 뒤를 따라 돌았다. 서로 눈이 맞아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가 김현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정을 통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다른 종류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일이라. 처녀 호랑이는 김현을 출세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김현은 벼슬에 등용된 뒤에 호랑이 처녀의 소원대로 경주 서천가에 절을 짓고 이름을 호원사(虎願寺)라 하였다. 남편 출세를 위해 사람이 아닌 호랑이 처녀의 희생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남편들은 아내로 인하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서로가 오십 보 백 보가 아니겠는가. 병인(丙寅)은 ‘봄의 태양’이라고 하며 새로운 생명을 알리기도 한다. 1866년 병인년은 조선을 서양에 처음으로 알리는 해이기도 하다. 중국의 속국 정도로 알았던 조선이 엄연한 독립국임을 알리는 기회였다. 그러나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천지 분간도 못하여 자신과 집안만을 생각했던 선조들이 결국은 죽을 쑤어 일본에 주어버린 결과를 초래했다.병인양요(丙寅洋擾)는 서구열강이 무력으로 조선을 침입한 최초의 사건이다. 프랑스 로즈제독은 병인년 10월, 7척 군함에 600명의 해병을 이끌고 인천 앞바다 물치도(지금의 작약도) 부근에 나타나 14일 강화도 갑곶에 상륙하고, 16일 강화부를 점령하고 무기, 서적, 식량을 약탈했다. 그러나 10월 26일에 약 120명의 프랑스군이 문수산성을 정찰하려다가 매복 중이던 한성근 소부대에게 공격받아 20여명 사상자를 내고 도주한데 이어 11월 9일에는 정족산성의 전투에서 양헌수의 포수꾼에게 30여명이 사상당하는 참패를 맛보았다. 이 전투의 참패로 프랑스군은 조선침공의 무모함을 깨닫고 철수를 결정한다. 11월 11일 강화성에서 철수하면서 모든 관아를 불 지르고 막대한 양의 보화, 서적, 무기 등을 약탈하여 중국으로 물러갔다. 병인양요의 결과로 대원군은 쇄국양이(鎖國攘夷)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천주교 박해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구미 열강은 조선을 청국의 종속국이 아닌 독립국으로 인식하게 되어, 종래의 조선과 청나라 관계를 재검토하기에 이르렀고 프랑스군이 탈취해간 많은 서적과 자료는 훗날 유럽 사회에 조선과 동양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중요한 호랑이해에 그 중요한 병(丙)의 해에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은 작은 전투의 승리에 도취하여 결과는 조선이 서양의 먹이가 된다. 대원군이 병인년의 승리가 자신과 국가와 집안을 거덜 내는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몰랐듯이 그것이 대원군 혼자의 잘못이었을까?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들의 행동과 결단이 나라와 국민을 구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사례는 복거일 저서 ‘낭만적 애국심’에서도 볼 수 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서기 66년부터 70년까지의 ‘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포위되었을 때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선택한 길이다. 로마군과의 항전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그는 관 속에 누워 몰래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로마군 진영에 이르렀다.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장차 로마 황제가 되리라고 예언 한 다음, 최후의 소원으로 야브네에 학교를 세워달라고 간청했다. 베스파니아누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 사소한 은혜가 유대교를 살렸다. 요하난은 성경이 유대인들이 어느 곳에 가든 지니고 갈 수 있는 조국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면 유대교는 살아 남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신전이 사라져도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보았다. 이 사실이 마사다의 반생명성과 불모성에 대한 궁극적 평가다. 로마군과 항전에서 마지막 남은 요새는 사해 연안의 마사다였다. 거기서 그들은 서기 73년까지 버텼지만 결국 공성 기계들에 의해 무너졌다. 결국은 여인들과 아이들을 포함해서 960명의 생존자에게 도망치거나 항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들은 아내와 아이들의 목을 따 먼저 죽인 다음 자신들도 자살했다. 마사다의 참극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반생명적이다.”자살을 미화해서도 영웅시하는 사회는 반인륜적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싸워 죽는다면 자랑스럽지만, 또한 살아남아 나라를 재건해야 할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이 뜨거운 이슈다. 마치 미친 호랑이가 날뛰면 그 피해와 환란은 선량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교훈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2022-02-23

허물벗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경기 중 발생한 중국 선수 봐주기 편파 판정과 관련하여 중국을 대하는 감정이 더 악화되었다. 아울러 중국의 반한정서도 더 높아졌다.“소국 주제에 나대지 말라” “나라가 작아 하는 짓도 하찮다” “중국은 한국의 아버지”라는 댓글이 대변해 주는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황희 문체부 장관은 자신들을 대국(大國)으로, 한국을 소국(小國)으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대국이어서 큰 생각을 하고 소국이어서 좁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중국인의 편견일 수 있다.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등소평은 키가 150Cm 밖에 안되는 소인이지만 그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면서 아무도 그를 소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의 스승 맹자는 이웃 나라와 관계를 맺을 때에 이렇게 하라고 했다.“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는 크고 어진 나라가 되어야 작은 나라도 예로써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크다고 작은 것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작다고 큰 것을 사대(事大)함이 아닌 서로 의로써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그런 위대한 스승을 두고서도 오늘의 중국은 옹졸한 중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우리 또한 소국의 한풀이식으로 격분하거나 감정대립을 하지 말고 차분하고, 냉정하고, 지혜롭게 대해야 할 것이다. 불의한 판정을 받고서도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경기에 임한 선수들처럼 말이다.성경 [시]3:4에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한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유대교의 한 랍비는 이렇게 번역했다. “나는 내 옹졸한 마음으로 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은 넓은 마음으로 응답하셨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달라고 옹졸한 마음으로 내 목소리만 내는 기도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나 외에도 다른 사람의 기도하는 목소리까지 듣고 그 사람들까지 배려하여 넓은 마음으로 응답하셨다는 것이다.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면서 내 목소리만 내고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옹졸함이다. 옹졸한 마음으로 내 목소리만 내는 기도를 아무리 힘있게 하여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여 넓은 마음으로 응답하신다. 그것을 깨달은 다윗은 이후에 이렇게 노래했다.[시]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자” 비로소 다윗도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광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던 왕이 가져야 할 덕목이었다. 물리적 크기로 대국 소국을 따지면서 큰 마음 작은 마음을 논하는 자체가 옹졸함이다.진정한 대국은 광대한 마음을 가진 국민들이 사는 나라이다. 다윗과 같이 옹졸함의 기도를 버리고 광대한 마음으로 노래하자.

2022-02-23

화제의 청년희망적금

청년희망적금은 정부가 청년들의 목돈마련을 위해 출시한 금융상품이다. 이 적금은 50만원씩 24개월간 적립할 수 있으며 은행에 따라 5~6%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기업은행 등 금융권에서 신청가능하며 현재 신청이 쇄도해 서버가 마비되는 등 문제로 인해 5부제로 신청을 받고 있다.출생년월에 따라 신청기간이 월~금요일로 배정되어 있다. 즉, 나의 출생년도 끝자리가 1, 6일 경우 월요일 / 2, 7일 경우 화요일 / 3, 8일 경우 수요일 / 4, 9일 경우 목요일 / 5, 0일 경우 금요일이다. 현재 신청이 폭주하고 있으므로 사전에 신청할 은행과 날짜를 확인해 신청할 필요가 있다.청년희망적금은 만기 2년까지 납입하면 시중이자에 저축장려금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상품이란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장려금의 경우 1년차 납입액의 2%, 2년차 납입액의 4%를 지원해준다. 따라서 내가 돈이 부족할 경우 전략적으로 적금을 쌓아가야 한다. 또한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이 없는 매우 좋은 금융상품이어서 청년들로부터 더욱 큰 인기를 얻고 있다.청년희망적금 모집이 시작되자 200만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청년희망적금 가입대상 청년들의 아우성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2주간 모두 가입조치’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적금 가입을 하지 못할까 우려하는 청년들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한 모양새다. 소득 조건이 높다거나 부유층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가입할 수 있는 등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공정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이 적금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금융상품으로 자리잡도록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뒤따르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23

새 국면 맞은 ‘안동 의료폐기물 소각장’ 논란

안동시가 최근 (주)상록환경이 풍산읍 신양리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설치하기 위해 제출한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에 대해 ‘사업계획 재검토’ 결정을 통보했다. 이미 경북도내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용량이 충분해 추가 설치가 불필요한데다, 안동시의 중장기 도시기본계획과도 상충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함께 주변 주민들이 입게 되는 피해가 크고, 인근 지자체에서도 부정적 의견을 보내와 공익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소각시설 설치에 대한 불허 결정으로 해석된다.이 업체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풍산읍 신양리에 하루 처리용량 60t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를 추진해 왔으며, 최근 도시계획 변경 신청서를 안동시에 접수했다. 안동시는 그동안 “사업에 불법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 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의료폐기물 처리업의 인허가권을 가진 대구지방환경청도 지난해 11월 이미 업체 측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대해 적정 통보를 한 상태다.안동시의 사업계획 재검토 통보에 대해 업체 측은 “공식적인 결과를 확인한 후 회사의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인허가권자인 대구지방환경청이 이미 ‘사업적정’ 판단을 했기 때문에, 사업자측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의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주민들의 소각장 설치 반대여론을 대변하기 위해 가동되고 있는 안동시의회 의료폐기물소각장 건립반대 특위에서는 이와관련, “소송에도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백현 의원은 “대구와 경북의 일일 의료폐기물 발생량이 59t 정도지만, 현재 경북도내에는 하루 의료폐기물 159t 규모를 처리할 수 있는 소각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어 따로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건립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소각장 설치 예정부지는 낙동강 본류 인근에 있는 청정지역이어서, 주변에 사는 안동과 예천 5개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심각한 상태다. 최근까지 한파 속에서도 주민들이 매일 아침 안동시청 정문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오고 있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22-02-23

후보 당신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장규열 한동대 교수 딱 2주 앞이다. 대통령이 새로 뽑힐 날이 코 앞인 게다.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대선 다음이 더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기대와 희망보다는 좌절과 낙심이 한가득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조는 무엇 때문일까.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 보이지 않는 건 왜 그러는 것일까. 어제를 딛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고 대선을 치르는 게 아닌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오늘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가. 누구를 뽑아도 하나같이 절망이라면 굳이 대선은 왜 있어야 하는가. 나라와 국민은 어쩌다 오늘처럼 첨예하게 나뉘었을까. 마음들이 어떻게 이만큼이나 쪼개어졌을까. 어찌하면 우리는 다시 소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이미 불가능한 게 아닐까.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닐까.디지털세상이 도래하고 미디어환경이 바뀌면서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동굴 속에 갇혀버렸다. 온라인과 SNS는 마음에 드는 생각만 늘어놓는 매체만 선택적으로 구독하게 한다. 정치적 경향성이 다르거나 이념향배가 다른 담론에는 등을 돌린다.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에는 끝없이 돌을 던지는 세상. 나누고 견주는 일에는 인색한 관계. 경청과 포용은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끊임없이 살피는 만남. 우리 편에게는 한없이 너른 가슴, 다른 편에게는 끝없이 야박한 외침. 메시지(message) 내용보다 메신저(messenger) 사람으로 칼날같이 쪼개지는 태도. 편가르고 짝지으면서 대선판이 흘러간다. 구호와 성토로만 얼룩진 세상에 차분하게 들어보는 아량은 기대할 수가 없다. 마지막 며칠 동안 우리는 무엇을 살펴야 하나.정직. 뜬금없을까. 꼬리를 물며 드러나는 거짓말들 가운데 정직함을 찾으라는 게 말이나 되나. 적개심을 내려놓고 찬찬히 살피면 진심이 보인다. 나라의 내일과 국민의 일상을 누가 진정으로 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걸어온 길과 나서는 태도를 살피면 그의 진실이 그래도 보인다. 조금씩 부족한 내 모습만 생각해도 후보의 흠결 가운데 진정성이 드러난다. 상처와 실수를 넘는 비전과 계획을 찾아야 한다. 어려움을 넘으려는 용기와 실천력을 살펴야 한다.정치인은 누구보다 정직해야 한다. 공인은 진지함과 진솔함으로 나서야 한다. 해결해야 할 일들의 무게만큼 후보의 언행에는 진중함이 실려야 한다. 비전이 두터워야 하고 계획이 분명해야 한다. 피상적인 구호로는 세상과 시대의 높은 파도를 넘을 수 없다.어차피 51대 49라는 생각부터 위험하다. 결판은 그리 날지라도 대선후보가 국민의 화합을 이끌지 못한다면 나라는 다시 어려움을 만날 터이다. 겨레의 위대함과 나라의 선진성이 드러나려면 통합의 의지를 살려야 한다. 민생이 살아나고 경제가 일어서려면 이념의 벽을 넘어 어떤 선택이 좋을까. 어려움을 딛고 기회의 창을 열어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대선의 표심을 간직한 유권자 국민은 후보들의 진지함과 정직함을 기대한다.얄팍한 구호로 혹 오늘 속인다면, 그 거짓은 선거 후에라도 반드시 드러난다. 대선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2-02-23

일촉즉발 우크라이나, 지역경제도 위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해당 지역에 러시아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와 관련, 지난 22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범정부 차원의 다양한 대책을 세울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25%를 생산하는 나라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주요한 곡물 수출국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과 유럽의 대 러시아 경제 제재는 필연적이다. 원자재 공급 차질은 물론 가격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최근 한 달간 국제유가가 6%정도 상승해 배럴당 90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산 원유공급이 중단된다면 배럴당 150달러까지 폭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국내시장도 증시가 출렁이고 금값이 오르는 등 곳곳에서 경제불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내 경제는 3개월째 무역수지가 적자다. 게다가 물가까지 뜀박질하고 있어 서민경제가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고 있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면서 후보들간 돈풀기 경쟁까지 벌어져 경제 전반에 암운이 드리운 상황이다.대구와 경북 경제도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 시 지역에서는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과 승용차 등 총 9억5천만 달러 규모의 수출이 직접 영향권에 든다고 했다. 경북은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는 철강에 필요한 유무연탄, 선철, 합금철, 고철 등의 상당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철강생산에 필수인 유연탄은 러시아산 수입이 4억 달러 규모로 경북 수입품목의 1위다.정부 차원에서 수출입 리스크를 점검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대구경북에서도 자치단체는 물론 관련 상공단체들이 지역단위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수출입 기업의 애로를 실시간 점검하고 수입선 다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 등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2022-02-23

시적 대상화 않기

이산하 시집 ‘악의 평범성’. 최근 우리 시에서는 ‘대상화하지 않기’가 일종의 캠페인처럼 전파되는 중이다. 타자를 섣불리 시적 대상화해 시인의 주관대로 비참함이니 아름다움이니 페이소스 따위를 부여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상화에 반대하는 기조는 기성 시단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다. 그동안 기성 시들이 민중이니 양심이니 하는 윤리적 우월감, 또 미적 완결성에 대한 왜곡된 신념에 도취되어 타자를 쉽게 대상화하고, 그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신체나 약자의 고통을 미의 대상으로 사물화, 도구화해온 비윤리적 관습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젊은 시인들에게는 ‘재현의 윤리’가 창작의 중요한 기율로 자리 잡았다.지난해 출간된 시집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작업으로 이산하의 ‘악의 평범성’을 꼽고 싶다.주지하다시피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기록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이다.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장교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법정에 선 그가 지극히 평범하고 왜소한 한 중년 남성이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악은 악마의 얼굴이 아니라 평범한 모습으로 온다는 것이 ‘악의 평범성’의 표층적 함의라면, 그 심층은 보다 복잡하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실행에 그 어떤 고민이나 반성,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악’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던 것이다. 나치 친위대 고위 장교라는 직책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그저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었다.이산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때, 일상의 매너리즘과 소수적·개인적 평화에 젖어 타자와 외부세계에 가해지는 폭력들에 무감각해질 때, 분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절규하지 않고, 울지 않을 때, 타인의 비극마저도 정치적 성향이나 계층 이익 실현을 위해 이용할 때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우리 안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예컨대 “약자를 추방시키는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달려들 때”(‘지난번처럼’), “모두 장밋빛 꿈의 복선을 적당히 깔며 정서적 타협을 할 때”(‘멀리 있는 빛’),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새로운 유배지’)될 때 우리는 모두 아이히만이 된다. 이산하는 5.18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인터넷 게시물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악의 평범성 1’)이라는 것을, 그게 곧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악의 비범성이 없는 것이 악의 평범성”(‘악의 평범성 2’)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이 세계에 반복되어져 온 무수한 ‘악’을 고통스런 언어로 재현하고, 민족과 국가, 세계라는 거시 역사가 개인이라는 미시 역사에 가한 폭력들을 통시하면서 인간의 본성과 악의 본질을 탐구한다.이러한 시적 작업에서는 필연적으로 폭력의 피해자들을 대상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인이 ‘먼지의 무게’라는 시에서 “네팔의 한 화장터”의 끔찍한 풍경, “여기저기 불길 속으로 머리들이 터졌고/ 사방으로 흩어진 뇌수를 개들이 핥아먹”는 “가난한 집의 시신들”을 묘사한 것은 ‘가난’이라는 구조적 폭력이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참혹히 훼손하는지 증언하기 위함이며, 풍족한 환경 속에 살면서 “시를 짓듯 죄를 짓고/ 죄를 짓듯 시를 지”은 ‘도시문명인’으로서의 자기존재를 반성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이 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현실에 비추어 ‘나’를 성찰하게 하는 과정에서 타자의 대상화와 감정이입은 불가피한 법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밤마다 바이올린 선율이 수용소에 울려퍼졌다/ 죄수들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위안했다./ 어느날/ 죄수들은 모두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인에게는 연주가 금지된 베토벤의 곡이었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들었다./ 달빛처럼 은은하게 흐르던 선율이 갑자기 멈췄다./ 다음날 아침 굴뚝 옆의 교수대에/ 어린 소년과 바이올린이 매달려 있었다.”(‘마지막 연주’)와 같은 시에서도 교수대에 매달려 죽은 어린 소년의 이미지는 독자에게 전쟁의 참상을, 동일성이라는 원리로 타자를 배격하는 순혈주의의 폭력성을 생생하게 감각시킨다.미학적, 정치적 욕망보다 인간을 향한 연민,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쓰인 이러한 시를 ‘선한 대상화’의 시라고 부르고 싶다.이산하의 시집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해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고,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 같은 불온한 ‘저질 대상화’ 또한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2022-02-22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를 결심했다. 첫 회사이고 입사한 지 일 년도 안 되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퇴사 결정을 내렸다. 회사를 그만두는 데엔 너무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간단히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우선 중간 관리자의 연달은 퇴사에 1년 차 신입이 맡기엔 부담스런 업무가 주어졌다는 점이었다.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건, 과도한 업무에 대한 피로함과 압박감은 직장인으로썬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사사로운 일임을 잘 안다.그러니 회사 내 급격히 변화하는 여러 사항에도 수긍했고, 필요에 따라 야근을 자처하며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애써 왔다. 물론 이 야근이 나중엔 너무나 당연시하게 자리 잡게 되는 듯하여 당황스러웠지만.내가 견디기 난감했던 건 맡은 업무에 있어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는 결정권과 통제권이 없었단 점이었다. 보고를 위한 보고, 회의를 위한 회의, 검열을 위한 검열이 계속 되는 동안 뚜렷한 결과물 없이 시간은 지나갔다.연달은 피드백에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데 같은 공간에 있던 상사와 동료가 줄줄이 떠나가 버렸고, 겨우 남은 나는 어느덧 ‘책임자’라 불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불시에 보고를 해야 할 때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응당 나의 책임이 아닌, 나를 포함한 구조적인 문제인데도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다.여러 어려움을 느끼면서 면담을 요청해보았지만 가장 어려움을 느낀 부분은 상호작용의 부재였다. 내 모든 요청에 대해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면 이 정도 업무는 감당해야 한다’는 대답을 엇비슷하게 할 뿐이었다.A에 관련된 사항을 물어봐도 위의 대답을 해줄 뿐이었고 B에 관련된 문제를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회사에선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없고 임금에 따라 정당한 노동을 부여해야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지시하는 방향으로, 매뉴얼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도 안다. 이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피력하고 있음에도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창구가 미흡하고, 조직 소통이 불통일 때에 계속해서 의욕이 좌절되었다.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입사 1년차 신입사원의 퇴사율은 2010년 15.7%에서 2016년 27.7%로 상승했다고 한다. 연이어 2019년 취업 플랫폼 ‘사람인’에서 실시한 조사에선 1년 미만의 신입사원의 퇴사 비율이 48.6%로 훨씬 더 높은 비율을 드러냈다. 퇴사의 이유는 41.7%는 이직, 26.2% 업무 불만, 15.4% 잦은 야근과 워라벨 불가 순으로 나타났다.그럼 신입사원인 밀레니얼 세대가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뭘까. 나는 직장 내 세대에 따른 이해관계와 소통의 부재가 중요 요인 중 하나라 말하고 싶다.밀레니얼 세대는 역대급 취업난과 스펙 경쟁을 겪었고 이를 통과하여 취준에 성공했다고 한들 내 집 마련조차 불가능한 실패에 익숙한 세대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것에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직 시스템에 희생과 충성을 요하는 것에 대해 비합리적이라 느낄 수 있다.또한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기에 무작정 높은 연봉을 받는 것보다는 적절한 대우와 존중 그리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을 우선 순위로 두는 경향이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물론 1955년에서 1963년까지의 출생자인 베이비붐 세대의 입장도 충분히 수긍해볼 수 있다. 급변하는 경제 성장을 겪으면서 이를 적응하기 위해 책임감 다해 일해 왔고, 필요에 의해 희생을 감내하며 노력에 따른 성과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어떤 한 세대를 비판하고 수긍하기 보단,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갈등의 문제만 놓고 보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선 기업이 앞서야 한다.각기 다른 세대를 어떻게 인정해주고 보상해줄 것인지 구조를 재설계하여 모두의 업무 환경과 조직 문화가 조금이나마 나아졌음 좋겠다.나는 이제 겨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 아직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경험을 하며 새로운 걸 또 다시 배워 간다. 퇴사로 인해 새로운 시작 앞에 놓여 있으니 이제 또 다른 기회를 잡으러 부지런히 나아가야겠다.

2022-02-22

소줏값 유감

월급 빼고 다 올랐다더니 이번엔 소줏값이 올랐다.하이트 진로가 오늘(23일)부터 소주가격을 출고가 기준 7.9% 인상했다. 다른 소주업체들도 이에 맞춰 곧 가격 인상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애주가들의 심기가 불편하다.소주는 대표적인 서민 술이다. 한국에서 1년에 36억병 정도(2016년) 소비된다. 1인당 연 87병, 잔수로 따지면 779잔이다. 소주가 서민 술인 이유는 술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맛과 향기로 즐기는 술이 아니라 마시고 취하는 것이 목적이다.소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몽골제국이 일본 정벌을 위해 우리나라 개성과 안동 등지에 주둔군을 두면서부터다. 세월로 보면 800년이 흘렀다.소주가 본격적으로 서민 술로 자리 잡은 것은 일본이 주정생산을 시작한 이후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 무렵이다. 이 때 우리나라에는 수 천개의 소주공장이 생겨났다고 하니 그때가 주류시장의 대변혁기라 할 수 있다.술은 인류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수천 년에 이르는 동안 술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술은 나라마다 자기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의 포도주나 우리의 막걸리 같은 민속 술 등이 그런 것들이다.술은 사회관계의 윤활유로서 역할도 하고 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성숙시키다. 그래서 술을 즐겨 찾지만 때로는 술로 인한 사회적 폐단도 적지 않다.직장인들이 한 달에 지불하는 술값이 대략 20만원 안팎 정도라 한다. 이번 출고가 인상으로 시중에서 소주 한 병 가격은 5천원을 후딱 넘을 것 같다. 퇴근 후 술 한잔 하기가 이젠 더 부담스러워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22

코로나를 정말 독감 정도로 여겨도 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 방역당국이 그저께 “코로나19가 빠르면 이달말, 늦어도 3월중에는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코로나가 낮은 중증화율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유행상황을 거치면 계절성 독감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치명률이 높지 않은 풍토병(엔데믹)으로 자리잡는다”고 했다.방역당국은 확진자의 치명률과 위중증률 수치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 코로나 델타변이의 치명률과 위중증률이 0.7%와 1.4% 수준이었던 반면 오미크론 치명률과 위중증률은 0.18%와 0.42%로 뚝 떨어졌으며, 특히 50대이하의 경우 오미크론 치명률은 거의 0%에 가까워, 코로나를 독감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논리다.정부발표와는 달리 국민들은 지금 주변에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이제 전염병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매일 확진자와 위중증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모두가 좌불안석이다.얼마 전 시골 고향마을에 갔더니 골목에 인적이 없어 마을 전체가 텅빈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자식과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 너도나도 코로나 감염 불안 때문에 집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덜컥 코로나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보건소 외에는 의사진료를 받을 수 없는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경우 이렇게 셀프방역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대도시에 사는 시민들도 불안하기는 시골노인들과 마찬가지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확진이 될 경우 격리는 어떻게 해야 될지, 한밤중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줄지, 10세이하 아이들도 확진자가 많다는데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도 되는지 등등 걱정이 태산이다.최근 약국과 편의점에서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감기약 해열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가정 내 상비약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어린이 해열·진통제 판매량이 최근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지난주 상급종합병원이 즐비한 수도권에 사는 생후 7개월 아기가 응급병원 이송 중 사망한 사건은 아이가 있는 가정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119구급대는 신고 6분 만에 집에 도착해 10곳이 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입원이 가능한지 수소문했지만 모두 ‘준비가 안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방역당국이 “병상은 충분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응급상황에서 영유아나 임신부들이 곧바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숨진 아기 가족에게는 이미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한 것과 다름없다.정부의 느슨한 방역 탓에 재택 치료자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시민들을 24시간 공포에 떨게 한다. 재택치료자 무단이탈 사례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입국자 자가 격리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중단되면서 확진자들이 거리를 누벼도 방역당국이 파악하기 어려워졌다.최근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주변사람이 기침이나 재채기라도 하면 승객 모두가 화들짝 놀라 피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공포상황 속에서 정부가 코로나를 감기정도로 여기고 안심하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202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