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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명확한 정책과 비전 제시로 대선 민심 잡아야

20대 대선이 어제(29일) 100일을 넘기면서 D-데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번 주 공식선대위를 출범시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사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승부전을 펼치게 된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윤 후보가 다소 앞서고 있지만, 절대강자가 없어 앞으로 민심은 변수에 따라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이 중앙일보 의뢰로 지난 26, 27일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20명을 대상으로 ‘가상 4자 대결’을 조사한 결과, 윤 후보 38.9%, 이 후보 36.1%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됐다. 윤 후보와 이 후보 간 격차 2.8%p는 오차범위 내 수준이다.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비호감선거로 치닫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로 인해 대부분 여론조사마다 후보를 결정 못 한 부동층이 20% 이상에 이르고 있다.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후보로 바꿀 생각이 있다’고 밝히는 응답자도 20%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향후 돌발적인 변수에 따라 여론이 급격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징후들이다.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으로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일가와 관련해서도 이 후보는 조카 살인사건 변론논란과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윤 후보는 부인 주가조작의혹과 장모 편법 증여의혹이 위험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동연 후보간 제3지대 단일화도 무시 못할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이번 선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정책과 비전 경쟁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선후보들은 진검승부를 벌이는 과정에서 네거티브전을 자제하면서 비호감 이미지를 벗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반전의 동력이 생긴다.이번 대선에서는 45% 이상의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승리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비호감 이미지를 벗고 지지율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부동층, 특히 청년세대를 향해 누가 더 명확한 정책방향과 국정운영비전을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2021-11-29

경북 시·군, 힘들게 확보한 국비 반납한데서야

경북도내 23개 시군이 올해 반납해야 할 국비 규모가 무려 1천50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본사 취재팀에 따르면 도내 23개 지방자치단체가 올해 반납할 국비는 모두 1천578억으로 작년 571억원보다 1천6억여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군별로 보면 영덕군이 460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구미 206억원, 경주145억원, 경산 127억원, 포항 127억원, 안동 120억원 등의 순이다. 100억원이 넘는 곳이 6군데나 됐다. 또 23개 모든 시군에서 국비를 반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경북도내 시군의 국비 반납은 올해뿐 아니라 매년 수백억원에 달해 왔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부터 최근 5년간 추이는 대략 이렇다. 790억→647억→621억→609억→571억원이다. 올해까지 6년간 총 4천819억원의 국비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국가에 반납된 것이다.국비가 반납된 사유는 당초 사업계획이 부실했거나 사업추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거나 부지매입의 어려움 등이 주요 원인으로 손꼽힌다. 올해는 영덕군의 경우 원전지원가산금이 포함됐기 때문에 크게 증가했고 일선 시군의 경우는 코로나로 각종 축제와 행사가 축소된 탓도 있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던 국비와 함께 매칭사업(국비+지방비)으로 추진된 사업비조차도 불용예산으로 처리됨으로써 시군이 국비를 사용하지 못해 낭비되는 예산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그래서 지역 정치권에서는 매년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 등으로 발품을 열심히 해놓고도 이렇게 대거 반납한다는 사실에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매년 국비 반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자치단체 스스로가 세밀한 준비와 대비책이 없었다는 데 대한 실망이다. 예산 집행기관의 관행적 태도에 놀랍고 행정의 나태함이 빚어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지역의 정치권과 지자체가 힘을 모아 확보하는 예산은 지역발전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주어진 예산을 제대로 사용함으로써 내 고장 사람의 복지와 행복, 그리고 지역발전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행정기관의 성찰과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1-11-29

‘일상의 회복’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

장욱현영주시장 코로나19라는 긴 터널 끝에 조금씩 빛이 보이고 있다. 1년 10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지속됐던 코로나19가 관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상회복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된 것이다.단계적 일상회복은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방역체계를 바꾸어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오랜 봉쇄에 지친 모두의 일상과 침체에 빠진 경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의료비 부담 등을 줄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그렇다면 사회경제적 대변혁의 시기를 맞아 지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영주시는 이에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해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을 앞둔 지난 10월 영주시청 일자리 경제과, 문화예술과, 총무과, 보건소 등 일상회복과 밀접한 17개 부서를 경제민생, 문화복지, 행정안전, 방역의료 분야로 나누어 시민의 삶 곳곳을 살피는 일상회복 지원단을 만들었다.지원단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해소와 체력증진을 위한 심신치유 목적의 사업은 물론, 영주방문 활성화, 지역 소상공인 소득증대, 주민주도 네트워크 형성 등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지원시책 발굴에 집중했다.특히 ‘위기’는 우리 사회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드러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제시해주었다.코로나19가 가져온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사회적 재난은 위기상황에서 서로 돕는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영주지역 관광산업은 침체되었고 지역의 소상공인들 또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중에도 영주시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첨단베어링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 추진도 중앙선 복선전철을 비롯한 영주의 철도사업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겼기에 시민 모두가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씩 해내고야 말았다. 착한 임대인 운동과 지역의 소상공인을 위한 영주사랑 상품권 사용 등 서로를 위해 힘을 모으면서 연대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이제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더 새롭고 규모 있는 영주의 내일을 만들어 갈 시간이다. 내년에 영주시는 대한민국 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선비세상 개장’, 우리 지역의 자존심인 풍기인삼을 세계에 알리는 ‘2022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 개최’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철도 교통망 구축도 도시재생사업도 힘을 내어 추진해야 한다.이제 코로나와 공존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시작됐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상회복은 그만큼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방역과 백신, 경제와 민생이 조화를 이루고 자율 속에서 더욱 절제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기에 어려움과 위기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 하나하나가 더 값지고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일상회복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동안 잘 헤쳐왔듯이 성숙한 공동체 의식으로 힘을 모은다면 일상회복에서도 성공적 모델을 만들어 영주는 위기를 넘어 한계를 넘어 희망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2021-11-29

변화와 모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올해도 이젠 달랑 한 달만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조마조마 위태위태 살얼음판 걷듯이 지내온 날들이 어느새 이다지 빨리 지나고 말았는지, 바람결 같은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진다. 들녘 길섶의 노란 야국(野菊)이 늦가을의 자락을 애써 잡는 듯해도, 서걱이는 몸짓으로 잔추(殘秋)를 배웅한 억새는 희디흰 손을 자꾸만 흔들어대고 있다. 늦은 가을이지만 늦지 않고, 또한 무엇이 거리낌이 있겠는가(晩秋不晩 又何妨)? 늦으면 늦은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그냥저냥 굴러가고 흘러가는 것이 세상의 시류가 아닐까 싶다.변화하는 일상들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나날이다. 낯설고 물설은 일들이나 환경도 시간이 흐르고 하나씩 접하다 보면 조금씩 적응이 되고 달가운 모습으로 다가와, 어쩌면 당연한 듯 새로운 일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마치 꽃향기나 어물전의 생선냄새를 맡고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다 보면 그 향이 이미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환경과 여건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변화와 모색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천변만화하고 만상갱신(萬狀更新)하는 세상인데 어찌 변화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우리는 분명 많이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 언제부턴가 물을 사서 마시고 파란 하늘이 그리워지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는가 하면, 희대의 감염병으로 온 지구촌이 신음하며 불안과 암울의 안개에 갇힌 채 살아가는 듯하다. 환경은 이렇게 시시때때 변화하기 마련이고 세상만사가 녹록치 않음을 일깨워주기에,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이변에 적극적이고 긴요한 자구책을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위협과 위험은 늘 있어왔고 모험과 위기극복은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늘 함께 이겨 나가야 한다.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일상회복을 위한 ‘With 코로나’를 시행한지 한 달, 예견된 일이었지만 일일 신규 확진자가 4천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위중증자가 역대 최다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생활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방역 전환의 인식과 필요성, 생업 다중시설의 제한 완화, 방역 패스, 재택치료, 사회 경제적인 효과 등 위드 코로나로 가는 여정의 평형점을 찾기에는 아직도 숱한 난항이 있어 보인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했지만 두려움과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난국이다. 기본적이고 치밀한 방역의 토대 위에 높은 백신 접종률, 그리고 국민들의 자율적인 참여와 굳건한 의지가 순조로운 위드 코로나 일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위험을 범하고 모험을 시도하면서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쌓아온 인류에게는 코로나19가 크나 큰 시련이고 고비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변화와 주변의 개인 방역, 안전하고 철저한 방역지침을 지키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단순히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일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패턴을 정립해야 한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2021-11-29

고대 와전(瓦塼)기술의 결정체 ‘치미’

고대사회의 지배층은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신전을 비롯한 궁궐과 사원을 지었고 건물의 지붕은 기와를 덮어 마감하였다. 그리고 용마루의 양쪽 끝에는 장식기와인 치미(鴟尾)가 올려졌다. 기와는 방수성과 방화성, 그리고 방한성이나 내구성 등의 기능 외에도 목조건물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미관성과 길상과 벽사를 의미하는 상징성 등을 지니고 있다.용마루의 양쪽 끝에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아 있는 치미는 용마루의 미관을 강조하며 사악한 기운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벽사(辟邪)적 역할을 하였다. 중심 건물에만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치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형태와 문양이 달라,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국가, 지역 혹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발전하였기에 당시 시대상과 사회상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일반기와보다 대형이므로 제작이 어려워 숙련된 장인들의 고차원적인 기술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치미는 당시의 건축술과 공예수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치미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의 사료에 치미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들이 보이고 있고, 한대(漢代)의 화상석, 벽화, 석관 등에 고대 치미와 유사한 형태의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늦어도 중국의 한대 이후에는 건축물의 용마루 끝을 장식하는 건축의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중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수용해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치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357년의 묵서명이 있는 안악3호분에 치미가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4세기 중엽 전부터 치미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경에 고구려에서 제작하기 시작한 치미는 6세기경에 백제와 신라까지 파급되어 지역에 따른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의 당(唐)과 고구려, 백제의 영향을 받아 문양과 기종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며, 일부 지역에선 이런 형태가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치미의 제작은 일반기와의 제작보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의 소성물(燒成物)이다 보니 재료(점토)의 성질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가마에 구워낼 때 자유롭게 불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여 완성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발판삼아 더욱 발전된 기술을 터득하였을 것이다. 경주 황복사지에서 출토된 치미와 같이 외면에 녹유가 발려진 치미의 제작을 위해서는 기와를 제작하는 집단뿐만 아닌 유약을 제작하는 집단과의 협업도 필요할 것이다. 당시 최고의 기술간 협업을 통하여 치미가 만들어지고 건물의 지붕에 설치되었을 것이다.치미의 제작과정은 일반기와의 제작과정과 마찬가지로 성형→건조→소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치미의 성형을 일어나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세분하면, 첫 번째 작업은 뼈대를 형성하는 공정으로 일정한 두께의 점토를 테쌓기하여 전체 틀을 구성하게 된다. 두 번째 작업은 갖추어진 뼈대에 각 부위별로 양감을 표현하며 형체를 형성하게 되는 공정. 세 번째 작업은 형체가 갖추어진 치미의 내외면을 전면적으로 정면 처리하여 다듬는 공정이며,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문양을 표현하여 치미를 장식하게 되는 공정이다. 성형작업 후 치미는 건조과정을 거친 후 가마에서 소성해 완성된다.요즘 과거의 문화재 제작기술을 파악하기 위해 과학적인 분석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치미와 같이 흙으로 제작한 문화재를 분석하는 경우, 문화재 내부 구조 파악을 위해 X-선 투과분석과 X-선 CT 분석법을 문화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파악하기 위해 형광 X선 분석법, ICP 분석법 등을 이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X선 회절분석법, 주사전자현미경분석법, 열 분석법 등을 분석에 이용한다. 최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분황사·사천왕사지·인왕동사지 등 경주지역에서 출토된 8세기대 치미의 제작기술을 파악하기 위해 과학적인 분석을 이용한 바 있다. 내부 구조 파악을 위한 X-선 투과분석과 소성 온도를 파악하기 위해 X선 회절분석 및 열분석 등을 하였다. 분석 결과 점토를 테쌓기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가마에서 570~900℃ 사이의 소성온도를 경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도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치미는 용마루의 양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꼬리를 치켜든 새의 형상과 같기도 하고 물고기의 형상 같기도 하다. 치미의 모습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후한대(後漢代)의 화상석이나 건축명기의 용마루 양쪽에 올려진 상상의 새 봉황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치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고 보는 것이다. 즉, 치미라는 명칭이 새의 꼬리 인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두 번째는 후한대 역사서 ‘오월춘추(吳越春秋)’의 기록에 주목하여, 소성의 남문 양쪽에 올려진 용의 뿔을 닮은 반우(反羽), 즉 물고기의 모습을 띤 예묘(鯢鱙·범고래)가 치미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대 인도에서 전래된 상상의 물고기 마카라(摩伽羅·MaKara)의 모습이 치미라는 것이다. 마카라는 고대 인도신화 속의 해중괴수로 당나라에서 출토되는 마카라 무늬와 치미가 닮았기 때문에, 치미가 이 마카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치미의 형상은 대부분 전설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치미는 길상(吉祥)·벽사(辟邪)·장엄(莊嚴)의 용도로 제작되어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기이한 형태를 띠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위치하여 가장 먼저 하늘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지켜주길 바라는 고대인의 간절한 바람이 치미 제작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2021-11-29

우리가 서로 멀어지고 있는 속도는 초속 몇 미터일까

한때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으로만 간주되었던 과학기술의 영역이 어느 샌가 알아챌 수도 없는 사이, 우리와 가까운 거리로 성큼 다가와 버렸다. 생각해 보면, 모든 변화란 그렇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저 멀리 보일 때는 아직은 실현되기에는 한 없이 먼 아련한 꿈만 같다가, 변화를 눈치 챌 쯤에는 어느새 주위를 가득 채워버려서 마치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처럼 생각된다. 아직은 소설이나 영화 속 환상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했던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메타버스 등의 기술들이 단지 기호가 아니라 하나 둘 실현되어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되고, 우주를 오가는 일 같은 것도 가시화 되는 것을 보면, 문득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사실, 이미 우리는 기존의 세계와는 다르게 과학 기술에 의해 새롭게 구조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대학에서 과학이나 공학 수업은 몇몇 관심 있는 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필수적인 교양이 되고 있으며, 가장 인간적인 사유에 바탕을 둔 언어, 문학, 예술 등에 바탕을 둔 인문학의 개념은 점차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그 바탕에 두는 방향으로 변동해 나갈 것이다. 예의 그렇듯이,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속도로 변화는 우리 주변의 공기를 가득 채운다.최근 과학소설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불과 조금 전 SF, 즉 ‘사이언스픽션’이라는 특별한 장르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중심으로만 조금씩 읽히고 있던 과학소설은 지금 새롭게 진화하여 널리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배명훈, 김보영, 김초엽 등 단지 SF라는 장르문학의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는 점이 지금 과학소설 붐의 가장 흥미로운 점일 것이다. 과연 우리가 과학소설을 좀 더 많이 읽게 된 것은 우리가 어느새 과학기술에 익숙해져서일까, 새로운 주제를 다룬 소설들이 등장해서일까.지금까지의 과학소설은 물론 폭넓은 외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술이 실현된 미래상을 보여주는 데 주력해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이 유토피아가 되었건, 디스토피아가 되었건, 과학소설에 드러난 도래할 미래는 독자에게는 선명한 스펙터클로 작동하면서 환상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필립 K. 딕 등이 보여주었던 미래의 풍경은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소설을 쓸 당시에는 안드로이드나 홀로그램, 행성 간 여행 등의 아이디어는 구체화되었을 뿐인 순수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르지만, CG나 모션캡쳐 등이 가능한 영화 예술에서 그 과학기술이 보여주는 미래상은 시각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대개 과학소설의 독자가 갖게 마련인 과학기술이 구현한 미래 풍경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촉발된다.어쩌면 과거의 SF와 지금 나와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과학소설들이 갖는 중요한 차이는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이언스픽션이 신기한 미래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세계가 점차 도래하고 있는 와중에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기계의 단순한 알고리즘과 반복의 단위들, 그리고 복잡성에 기반을 둔 학습가능한 체계로서 기계를 규정할 때, 인간을 바라보는 자리는 새롭게 마련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노멀이 아닌 기계와 공존하는 새로운 노멀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인 셈이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 멀어지고 있는 속도는 초속 몇 미터일까. 이것이 단지 문학적 비유가 아닌 세계 속에서 요즘 과학소설은 읽히고 있는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1-11-29

무릎 관절질환, 운동이 약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부경대 겸임교수 우리나라 50대 이상 성인의 절반이 앓고 있다는 관절염은 암에 이어 두 번째로 미래에 발병이 염려되는 질환이다. 관절염은 60세 이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손꼽히는데, 우리 주변에서도 무릎 통증으로 재대로 걷지 못하거나 아침저녁으로 관절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관절이 불편하거나 통증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곧 나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65세 이상의 경우 나이가 들어 생기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특히 무릎 관절질환은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통증이 극심해져야 병원을 찾는다. 연골에는 신경세포가 없어 손상되어도 통증을 느낄 수 없고, 혈관이 없어 스스로 자가 재생과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관절염은 조기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신체의 고통에다 우울증 등 2차적인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치료를 통해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과 신체활동력을 개선하는 것은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노화는 다리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면서 다리 근육은 급속히 약해진다. 60세 때 팔꿈치를 굽히는 힘은 평균 67%, 70세가 되면 60%로 낮아진다. 그런데 무릎을 쭉 펴는 힘은 60세에 55%, 70세에는 절반 이하인 40%가 된다. 고관절을 구부리는 힘도 60세에 60%, 70세에는 40%로 떨어진다.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상체에 비해 하체의 근력 저하는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체 근력이 약해지면 무릎이 쉽게 손상되고 생각처럼 잘 걸을 수도 없게 된다. 그래서 평생 동안 자신의 다리로 마음대로 걷기 위해서는 운동으로 하반신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평일에 운동을 하지 않다가 주말에 몰아서 하고 나면 무릎에서 걸리는 소리가 나거나, 계단을 내려올 때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 가끔 조깅을 할 때에도 어느 동작에서는 무릎 속이 바늘로 찌르듯 아프다면 반월상 연골판 손상일 가능성이 높다.반월상 연골판은 비틀림 방지와 충격 흡수를 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연골판이 약간 찢어진 것을 의심할 수 있다. 일단은 병원에서 MRI 등 정밀검사를 통해 운동가능 여부, 시기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무릎 꿇기 자세나 점핑동작, 구기운동은 연골판 손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체중을 싣지 않은 운동이 바람직한데, 실내 자전거타기, 미니 스쿼트 등 간단한 대퇴 근력운동과 운동 전후에 허벅지 스트레칭으로 근육의 위축을 예방하는 운동처방이 권장된다.평소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언제부터인가 무릎에 물이 차더니 점점 차는 횟수가 잦다면 십자인대의 부분파열이나 반월상 연골판 손상, 연골염 등을 의심할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은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통해 받아야겠지만 이런 증상이 있을 때에도 반드시 운동재활은 해야 한다.무릎통증이 동반할 경우 우선 통증 부위에 매일 2회, 20분씩 얼음찜질이 필요하다. 무릎, 아킬레스, 햄스트링 스트레칭 등 유연성운동과 눕거나 의자에 앉아 ‘무릎 펴고 다리 들기’, ‘무릎 밑 베개 짜기’, ‘무릎 사이 베개 짜기’ 등 근력운동이 효과적이다. 런닝, 등산, 구기 종목은 일단 피하고 통증이 없어지면 걷기부터 시작하여 운동 시간, 운동 강도 등 운동량을 점차적으로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출산 이후 앉았다가 일어서려고 하면 무릎부위에 통증이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 지난 후에야 일어날 수 있다면, 체중과다로 인한 관절염 초기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체중과다와 근력저하로 인하여 관절주변 구조물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왔으며, 그로 인한 관절염이 되어가는 과정이다.이러한 경우에는 병원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되기 때문에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중감량을 하는 것이 적절한 처방일 것이다.운동방법은 대퇴전후부 스트레칭 등 유연성운동과 걷기, 자전거타기 등 유산소운동과 계단오르내리기, 미니 스쿼트 등 근력운동을 조합해서 하는 복합운동이 적합하다. 운동시간은 최소 50분부터 최대 2시간까지 점차적으로 증가시키고, 운동빈도는 주 3회부터 시작해서 익숙해지면 5회로 늘리는 것이 효과적이다.나이를 먹었다고 운동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특히 노약자나 고령자의 경우 다리와 허리를 다치지 않도록 바닥에 눕거나 의자에 앉아서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지며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반신의 근력운동을 꾸준히 실시하면 틀림없이 근력이 향상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요즘처럼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김장철이 되면 무릎 관절질환이 급증하게 된다. 무릎 관절질환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관리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못된 생활습관, 운동부족 등으로 인한 무릎관절의 변형은 통증의 원인이 되지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근육을 잘 단련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2021-11-28

농촌 인력수급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승율 청도군수 인간의 힘, 인력은 고대부터 귀중했던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씨족이 생겨나고 국가로까지 발전하고 각종 문명이 탄생했다. 농경사회와 산업화사회에서 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의 힘을 대체하며 어느 날부터 인력에 대한 대접이 소홀해지고 가치관의 변화를 불러왔지만, 아직도 인력은 곳곳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농촌지역은 인력이 없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농촌도시인 청도처럼 농업과 관련된 산업이 주축인 지자체는 영농을 지원할 인력을 찾고 공급하는 문제가 행정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중요하다. 코로나19 시대를 경험하며 인력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내일에 어떤 문제로, 어려움으로 사람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지 모르지만 여러 상황을 가정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자치단체장의 몫일 것이다.“고령화되고 있는 농촌의 인력수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을 고민하며 청도군은 귀농과 귀촌 정책을 활성화하고 농촌일자리지원센터를 통해 이 문제를 일정부분 해결하고 있다.군은 귀농귀촌 정책의 체계적인 구축을 위해 지난해 귀농귀촌담당부서를 설치하고 올해 경북 1호로 귀농귀촌종합지원센터를 설치했다.이를 통해 지원사업과 귀농인 농가주택수리비지원, 정착장려금, 농촌 미리 살아보기 등으로 귀농 적응과 귀촌을 유도해 지난 10월 말까지 청도로 귀농귀촌 가구가 632가구에 이르는 등 귀농귀촌 1번지를 실현해 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553가구가 지역으로 귀농귀촌했다.경북 1호로 지정된 청도귀농귀촌종합지원센터는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도시민에게 농촌생활을 체득할 수 있는 주말농장, 도시청년 농장주 육성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고 귀농귀촌인 재능기부행사 등을 기획해 지역민과 쉽게 동화되며 젊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3년까지 귀농인과 농민의 안정적인 소득을 위한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 100억원을 조성하는 것도 청도의 자랑으로 도시의 젊은 층이 귀농하고 싶은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 공모사업선정으로 2026년까지 마을 단위 맞춤형 생활개선사업과 문화 생태관광 활성화, 귀농귀촌 청년 역량강화사업이 진행되면 지금보다 훨씬 젊은 청도로 변해 있을 것이다.지난해까지 청도농협에 위탁 운영하던 농촌일자리지원센터를 농촌일손 부족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군에서 직영하고 있다. 1층 사무실을 마련하고 전담 인력을 배치해 일손이 필요한 농민과 구직자를 연결하며 자원봉사자 관리로 적재적소에 인력을 제공하고 있다.그 결과 지난해 농촌일자리지원센터를 1천453 농가가 이용했지만 지난 10월 말까지 2천280 농가로 확대되고 참여자도 7천329명에서 1만2천552명(10월 말 기준)으로 대폭 증가했다.청도군은 인력 수송 경비와 농가 현장 교육비를 지원해 농가의 경비 부담을 줄이고 자원봉사자에게는 도시락과 장갑 등을 지원해 많은 사람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풍각면과 1사 1촌 자매결연을 한 경산의 (주)아진산업의 임직원 300여 명이 취약농가를 찾아 양파 수확을 돕기도 했다.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에 감사하게도 지난달에는 농협중앙회가 수여하는 제1회 귀농 활성화 선도인상을 받기도 했다.농업생산이 주를 이루는 자치단체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큰 상을 받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농촌지역의 일손 부족 해결은 정확한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다. 청도군이 비록 귀촌귀농담당 설치와 농촌일자리지원센터를 통한 인력확보로 농가에 수혜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기에 정주하지 않고 다양한 시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 다양한 방범으로 인력을 지원하는 지자체들의 모범 사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열린 마음과 행정으로 안주하지 않겠다.농촌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시책마련과 함께 농사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군정을 펼치고 빈번한 자연재해와 농산물 가격하락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21-11-28

노을 맛집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1984년 어린이날 MBC동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우리에게 다가온 ‘노을’이다. 아이들이나 부르던 동요가 전국 길거리에서 울려 퍼지도록 유행한 것은 이 곡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노을 하면 바로 노랫말이 저절로 입안에 맴돈다.내가 사는 포항은 일출로 유명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첫해를 보겠다고 호미곶 근처에 방을 잡고 새벽잠을 포기하며 마중을 한다. 그 틈에 한 번도 낀 적이 없는 이유는 일출보다는 저녁밥 짓는 연기 낮게 깔릴 때 서쪽 하늘 보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노을을 볼 수 있는 서해까지 낙조를 보러 가는 일은 먼 거리라 큰맘을 먹어야 가능하다. 그보다는 우리 동네 노을을 찾아보기로 했다. 도시 숲에서 석양은 좁고 길게 보인다. 고층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또 우리 집 뒷베란다 창살 사이로 가끔 핑크빛 노을이 걸린다.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보려고 하면 그새 어둠이 깔리고 만다. 순식간에 건물 사이로 사라지는 빛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간차 공격이다.일몰 담당인 서해는 어디로나 해가 떨어지지만 동해는 일출 담당이라 노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쪽으로 해가 지는 곳이 어디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호미곶이 떠올랐다. 삐죽이 튀어나온 곶 끄트머리에서 움푹 들어간 영일만 안쪽을 바라보면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거라 짐작했다.일몰 시간을 알아보니 5시 9분이다. 여름보다 두 시간 이상 짧아졌으니 4시에 집을 나섰다. 호미곶 중에 둘레길을 걸으며 노을을 보기 좋은 동네로 향했다. 도구에서부터 바다를 옆에 끼고 구불구불 달리다 보면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이 나온다. 공원 일월대에 올라 옆으로 비껴보는 낙조도 볼만하다. 정면이 아니라 난간에 서서 시내를 향해 몸을 돌리면 구름에 반사된 노을을 날이 좋은 날에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차를 더 달려 대동배 2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웠다.해파랑길 15코스 중에 이 동네가 노을 맛집이다. 구룡포 쪽으로 둘레길 따라 걷다 보면 저 데크 끝에 큰 바위가 우뚝 섰다. 멀리서 보니 사람의 옆 모습을 닮았다. 툭 튀어나온 매부리코에 굳게 다문 입, 눈썹 자리 즈음에 작은 소나무가 자란 것이 모아이 상이라 입간판에 이름 붙여질 만한 바위다. 가까이 가니 모아이 상은 사라지고 그냥 절벽이다. 다시 뒷걸음치며 보니 얼굴 형체가 서서히 나타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건너편으로 해가 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우리도 여기서 노을을 보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기울이니 파도 소리에 맞춰 하늘도 점점 붉게 물드는 소리가 들렸다. 일렁이는 바다에 바위섬 몇 개, 그 뒤로 먼 산이 지평선을 낮게 오르내리며 그려놓았다. 그 위에 동그란 해가 막 내려앉으려 주춤주춤거렸다. 마지막 남은 해의 힘이 어찌나 센지 빠알간 색이 파도 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그 사이로 갈매기가 한 줄 시를 쓰며 가른다.노을은 바라보기에 좋은 그림이다. 시간이 자연에 걸어놓은 걸작이다. 하지만 노을도 바라보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전시회를 찾지 않아 놓친 거나 매한가지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 저렇게 붉은 노을도 언제나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비슷한 시간에 며칠을 찾아갔어도 그 시각에 구름이 덮여 파도 위 해그림자는 볼 수 없었다. 첫날만치 감동적이지 않았다. 조금씩 흐리고 조금씩 덜 붉었다.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해가 산 너머로 꼴깍 넘어 가버렸다. 노을이 가장 좋은 시간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사위가 어슴푸레해지며 하늘과 바다가 점점 더 붉게 물들었다. 해가 사라진 자리에 붉은 부스러기들이 하늘과 바다에 가득 흩뿌려져 세상이 오로지 붉은색 하나였다. 바라보던 친구들 얼굴도 수줍게 붉어졌다. 친구들 눈 속에 명화가 내걸렸다. /김순희(수필가)

2021-11-28

코로나 시대의 해외여행

윤영대 수필가 지난주 딸의 안내로 우리 부부는 지난봄부터 코로나가 줄어들기를 바라며 꿈꾸어 왔던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2년째 발이 묶여있었는데 다행히 위드 코로나를 맞아 자가격리 면제조건이 완화되었기에 비행기를 탄 것이다. 해외여행을 위해서는 필히 백신 접종 완료와 PCR 검사결과가 음성이어야 한다.최근 자가격리 면제가 가능한 국가로서 몰디브, 괌, 사이판, 싱가포르 등이 떠오르고 몇몇 곳은 관광 상품이 매진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하와이는 11월 초 제한이 많이 풀리면서 출국 72시간 내 PCR 음성판정을 받으면 격리 없이 입국이 가능하고 귀국할 때에도 음성이면 자가격리가 면제다. 우리 가족은 다행히 모두 백신접종 완료자여서 여행 하루 전날 서울 중부보건소로 가서 PCR검사를 하고 다음 날 ‘음성 증명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ESTA(전자여행허가서)도 발급받고 또 쿠버(COOV)라는 ‘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 증명서’ 앱도 깔았다. 이것은 해외에서 통용 가능한 글로벌 표준의 ‘백신 여권’이라는 앱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또 11월 8일 전까지만 해도 PCR증명서는 하와이주 당국과 업무협약을 맺은 대형병원에서 12만~13만 원의 검사비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서울 중부보건소에서 무료로 검사하고 영문 증명서까지 받은 것이다. 또 세이프 트래블 신청서 작성도 필요가 없어졌다. 이러한 것들을 딸이 하나하나 해결해주었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전자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인천공항은 텅 비어 있고 면세점도 닫혀있어 쓸쓸했다. 티켓도 자동발권기로 받고 기내에 들어갔더니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이렇게 어려운 절차를 해결할 수 있는 세대이리라. 승객은 80% 정도이고 승무원들도 모두 비닐 옷을 걸치고 있다. 그러나 도착한 호놀룰루 공항은 조금 활기가 있었다. 하와이는 여름 날씨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고 유명 맛집은 북적대었다. 열흘간 렌터카를 빌려 복잡한 곳은 가능한 피해 다녔고 11월이라 축제도 거의 없고 해서 와이키키 해변에서 수영하며 즐긴 반나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3개의 큰 섬을 이동하면서 관광은 잘하였지만 내내 코로나가 걱정되었다. 귀국하기 이틀 전 PCR검사를 또 해야 했기에 휴대폰으로 우리의 보건소와 같은 검사소를, 그것도 무료인 곳을 찾아내어 검사받고, 다음날 이메일로 증명서를 받아서 프린트도 직접 했다. 인터넷으로 증명서를 신청하고 무료검사에 국제증명서까지 가능한 우리나라 의료검진 시스템이 참으로 고맙다.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들어오니 마음은 놓였지만 QR코드를 찍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복잡한 절차가 있었다. 또 도착 1일 이내에 PCR검사를 해야 한다기에 일찍 포항에 내려와 북구보건소로 가서 검사했더니 다음 날 아침 ‘음성’이란 문자가 뜬다. ‘이제 자유다.’ 했으나 또 2차 검사 통보가 와서 했다. 코로나가 덮친 세상을 돌아다니기가 참 어렵다.

2021-11-28

지역경제 실핏줄인 ‘골목상권’사업 성과 내길

대구시가 지난주(25일) 향후 5년간 240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골목상권 활성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사업의 핵심은 남구 안지랑 곱창골목, 달서구 두류먹거리타운처럼 이미 명품골목으로 소문난 골목경제권을 권역별(120여개)로 나눠서 조직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권역별 법인화도 추진해 사업성과를 높일 예정이다. 올해에는 31곳의 골목경제권이 선정되며, 상권별로 스토리를 발굴해서 고객들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명품골목 육성 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의 골목상권 육성정책이 전통시장 중심으로 이뤄져와 그동안 자영업자들이 상인회 조직이 없어 소외받아 왔다는 판단에 따라 추진하게 됐다.권영진 대구시장이 이날 밝힌 것처럼, 지금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자영업자들이다. 대구시가 지역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골목상권의 활성화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을 펴는 것은 시의적절하다.지난 24일 올해 처음으로 시민 2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구시민원탁회의에서도 골목경제 살리기가 논의됐다. 회의에 참가한 시민들은 위축된 골목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고 한다. 토론에서는 골목경제의 주요 침체 원인이 간편식, 온라인 쇼핑 등의 생활방식 변화와 주차문제로 진단됐다. 그리고 골목경제 활성화 방안으로는 상품이나 음식의 품질, 친절, 위생을 비롯해 안전한 보행, 환경개선 등이 제시됐다고 한다.현재 대구지역 소상공인 사업체 수(2019년 기준)는 전체 사업체의 85.6%로 전국 평균(82.9%)보다 2.7%포인트 높다. 종사자 수 또한 36.5%로 전국 평균(30.8%)보다 5.7%포인트 높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렵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통계다. 잘 알겠지만 똑같은 소비를 하더라도 돈을 자신이 살고있는 지역에서 쓰는 것과 타지역이나 대형할인점, 백화점 같은 외지업체에서 쓰는 것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극명하게 다르다.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아주 작은 소비를 하더라도 골목상권을 배려하는 현명한 소비를 했으면 좋겠다.

2021-11-28

새 변이까지 출현…사면초가 된 위드 코로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전세계가 다시 비상이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시작한 오미크론은 벨기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도 감염자가 확인되면서 유럽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있다고 한다.우리나라도 긴급회의를 열고 남아공 등 8개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 국내 입국을 불허키로 했다. 오미크론은 기존 변이 델타보다도 훨씬 감염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집단면역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국내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를 시작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코로나 하루 확진자는 전 달보다 배가 늘어나고 있다. 위중증자와 사망자수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서울지역은 병실이 부족해 대기하는 환자가 1천명대를 넘고 있다. 일부 환자의 지방이송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방의 병실난을 재촉할 수도 있다.하루 신규확진자가 4천명을 넘나들고 있지만 방역당국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지 불과 한달도 안된 데다 이제 겨우 숨통을 틔우려는 자영업자의 반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에 빠진 꼴이다.이런 상황에 새 변이 오미크론의 등장까지 겹쳤으니 방역 관리가 보통 걱정이 아니다. 중대본은 오늘 비상 방역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하나 묘안이 있을지 궁금하다.위드 코로나의 실시로 신규환자 증가는 예측했지만 문제는 예상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위중증 환자가 처음으로 6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27일 52명으로 코로나19 이후 최다를 기록했다. 사망자의 96%가 60대 이상이다. 사망자가 이처럼 증가한 것은 위중증 환자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특히 60대 이상의 위중증 환자 비중이 35%로 높아진 것은 사망자수가 더 늘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방역조치 완화와 환기가 어려운 겨울철에 접어들어 국내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정부는 코로나 유행이 집중되는 서울지역 방역망을 강화하는 등 냉철한 판단으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새 변이 오미크론이 유입된다면 예측 못할 대혼란이 올 수도 있다. 추가 접종 등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2021-11-28

개천용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공한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개천처럼 작은 물고기만 사는 곳에서 용이 난다는 것이니 보통사람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을 해낸 성공한 사람이란 뜻이다. 자수성가(自手成家)와 비슷하다.개천용의 대명사처럼 여겼던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이 생기자 일각에서는 개천용이 사라지게 됐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어려서부터 좋은 학원에서 사교육을 받은 부유한 집 자녀에게 유리한 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직도 빈익빈 부익부 측면에서 로스쿨을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는 부모찬스 전면 폐지의 명분으로 수시폐지와 사법시험 부활을 청년 공약으로 내세웠다. 조국사태 이후 더욱 부각된 우리 사회의 불공정 문제를 이슈로 삼은 것이다.개천용 불평등지수를 처음 개발한 서울대 주병기 교수가 최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발간 브리프에서 ‘대학입시 성과에 나타난 교육기회 불평등과 대입전형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해 화제다. 주 교수는 논문에서 “출신 환경이 좋지 않으면 타고난 잠재력과 노력에도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확률이 적어도 70%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했다. 주 교수는 “명문대일수록 계층간 격차가 컸고 특히 수시전형에서 출신지역간, 가구환경간 기회 불평등도가 높았다”고 주장했다.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이동이란 사회적 불평등 체계 안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서열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과거 소득수준이 낮아도 노력에 따라 충분히 계층이동이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그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는 것을 말하는 연구결과다. 우리 사회 기회 불균형이 악화된다는 것은 사회의 폐쇄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후진적 현상이라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1-28

‘국민의힘 안녕한가’라고 묻고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하던 중 당 대변인으로 선발된 국민의힘 임승호 대변인이 지난주 당의 선대위 인사와 관련 “정말 지금 저희 당의 상황이 안녕한 것인가. 매일 선대위 명단에 오르내리는 분들의 이름이 어떤 신선함과 감동을 주고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솔직히 요즘 당 상황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활력이 넘쳐나던 신선한 엔진이 꺼져가는 느낌”이라고 했다.국민의힘 지지자 중에는 임 대변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준석이라는 젊은 정치인이 당 대표로 당선되면서 활기찼던 국민의힘의 신선한 엔진동력이 꺼져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준석 대표의 등장으로 새롭고 건강한 바람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과거 ‘낡은 정당’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오는 12월 6일 출범을 앞두고 이상기류에 휩싸인 윤석열 대선후보 선대위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선대위 총괄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펴면서 윤 후보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재 윤 후보의 끈질긴 구애에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당과 선대위를 흔들고 있다. 당내에서는 “빼고 가자”는 견해도 있는 모양인데, 충분히 나올 만한 소리다.지난주에는 더불어민주당 핵심인사들이 김 전 위원장을 만나 국민의힘 선대위 참여를 만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민주당 인사들이 야당의 선거사령탑으로 거론되는 인물을 만나 ‘거기 가면 안된다’는 식의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은 순전히 김 전 위원장의 처신 때문이다. 노련한 정객인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최근 행태가 야당과 윤 후보 리더십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혼란한 시국에 우리 국민이 정치 신인 윤석열을 야당 대선 후보로 뽑은 것은 새롭고 건강한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강력하게 실천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집권 후의 국가운영 로드맵을 고려해 구성하고 있을 선대위 진용을 보면 이러한 국민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지금 윤 후보 주변에 여의도 정치인들만 들끓고 있는 현상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윤 후보가 더 잘 알겠지만, 국민의힘이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 덕이다. 선대위 구성을 놓고 이번 주에도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면 민심은 돌아설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선거의 중심은 후보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선 안된다. 대선은 아직 3개월 이상 남았다. 윤 후보가 그동안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여당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앞서왔지만, 선거 판세는 여러 번 요동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선대위를 정상적으로 가동해서 집권 후 시행할 분야별 주요 정책제시를 통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

2021-11-28

작은 실천으로 안전한 겨울나기

류득곤포항북부소방서장 지칠 줄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위협 속에서 격동의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늘 그렇듯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가 수없이 반복됐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겠지만 앞으로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에 따라 그 해에 대한 모든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남은 한 달, 우리가 더욱 화재예방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짧았던 가을이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을 맞이하면서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겨울철은 난방기구 사용량이 많아질뿐더러 건조한 날씨로 인해 주택화재 발생이 잦아지는 시기다.주택화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소방서에서도 불조심 캠페인을 진행하고 겨울철 소방안전대책을 추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주택화재의 경우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각 가정 스스로도 화재 예방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그럼 주택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첫째, 전기제품 사용 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화재위험 3대 전기제품인 전기히터, 전기장판, 전기열선 가열기 등 난방기구를 사용할 때에는 전원이 켜진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하지 않도록 하고, 반드시 KC마크 등 공식 안전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둘째, 음식물 조리 시에는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특히 장시간 조리가 필요한 음식이나, 튀김 요리 등은 더욱 화재 발생 빈도가 잦은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방 내에는 주방화재 전용 소화기인 K급 소화기를 비치해 화재 발생 시 빠른 초기대응이 가능하도록 대비해야 한다.마지막으로 각 가정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의 49.7%가 주택화재로 인해 발생하는 만큼 화재의 초기발견 및 진압을 돕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의 중요성은 몇 번을 다시 말해도 부족할 정도다.안전한 겨울나기, 후회 없는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해 내 주변의 기본적인 안전수칙부터 돌아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한 사항들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나와 내 가족을 화마로부터 지키는 동시에, 안전하고 따뜻한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2021-11-25

포항은 한국의 시애틀이 될 것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미국 서북부에 캐나다 밴쿠버와 맞닿은 시애틀이란 도시가 있다. 도시 인구는 포항보다 약간 많고 메트로로 크게 확대하면 경북 인구 정도가 된다.어찌 보면 포항과 경북의 관계와 비슷하다. 1800년대 중반 목재집산지에 불과하였으나 타코마와의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고, 1900년대 중반 비행기 제조업체 보잉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그러나 보잉으로 단순화된 산업구조는 다양화된 경제구조에 대응하지 못하고 고전하였다.그리고 1970년대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가 둥지를 틀면서 스타벅스 아마존 등 기업이 다양화되기 시작했다.지금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모여 있는 지식의 보고로 알려진 도시가 되었고, 워싱턴 주립대학이 지식을 공급하는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이와 대조적인 도시가 미국 동부에 있다. 뉴헤이븐은 미국 동부 롱아일랜드해협의 북쪽 해안에 자리한다. 인구는 10만 남짓하지만 메트로는 50만 정도로 역시 포항과 비슷하다.아이비 리그이며 미국 정계를 이끄는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예일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대학도시이다.과거 뉴헤이븐의 주요산업은 화기제조였고 서부를 주름잡던 윈체스터 연발권총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윈체스터 권총박물관이 있다.그러나 아름다운 대학도시로서 명성이 압도하면서 산업도시로서의 명목은 크게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포항시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역점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의료산업의 혁신 도약을 위해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꼭 필요하고,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포항의 미래 신성장 동력인 바이오·의료 산업 육성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포스코를 필두로 철강 산업으로 성장한 포항은 이제 항공제조업을 넘어서 산업다각화와 IT 선두로 올라선 시애틀 모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필자가 80년대 박사학위를 받았던 일리노이 어바나 샴페인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대(UIUC)는 2015년 새로운 의대를 설립했다.공학 분야 최정상의 UIUC는 칼 재단(Carle Foundation)과 손잡고 세계 최초 공학 기반 의대를 설립했다.정체 상태에 이른 의료기술에 도전하는 한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의료비용을 절감하는 새로운 길을 찾는 의학 혁신가(Physician-innovator)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대학이 선택한 것은 공학과 의학의 융합이다.이들은 의학자와 과학자, 공학자가 함께 공학과 의학을 융합한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성신장질환 진단키트, 코로나19 신속진단 시스템 등 다양한 시제품이 공학-의학의 융합에 의해 개발되었다.포항은 포스코의 경영다각화와 함께 이러한 공학형 의대 설립으로 바이오 쪽으로 포항이 발전해 나가야 한다.그건 포항이 뉴헤이븐이 아닌 시애틀로 가는 길이다.포항은 한국의 시애틀이 돼야 한다.

2021-11-25

대선정국 읽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부를 수립한 지 73년이 되는 대한민국은 그동안 6·25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항쟁, 대규모 촛불시위 등 몇 번이나 위기와 혼란을 거듭하면서도 상당한 발전을 지속해왔다. 산업화로 일컬어지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불리는 자유민주주의 신장은 서로 길항하면서도 결국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한 단계 더 경제적 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70년 역사는 큰 흐름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그러나 아직도 균열이 깊은 이념갈등과 핵무장한 북한은 커다란 불안과 위협의 요소로 남아 있다. 일차적으로는 남남갈등으로 대변되는 좌·우 이념의 대립이 국민화합과 나라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군사정권에 이어 문민정부가 시작되자 그동안 탄압을 받았던 좌파들이 양성화되어 세력을 확장해가면서 우파와의 갈등과 불화가 끊이지 않다가 소위 주사파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매우 심각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백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전기(轉機)가 될 것이다. 좌파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그것은 곧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1980년대 이후 각종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한 좌파세력은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 등이 주도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친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몰지각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세력이 주축이 된 정권은 얼마 못 가서 그 한계와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 정권은 적폐로 몰아 처벌해놓고 정작 자신들의 비리와 부정을 덮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가 하면 소득주도 성장이란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나라 경제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굴종적 대북정책에 목을 매는가 하면 노골적인 반미친중으로 자유우방들과의 외교를 망치고, 세계 최고 기술력의 원전을 포기하는 대신 자연을 훼손하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태양광발전에 매달리고,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 4대강 사업을 악의로 왜곡 폄훼하여 파괴하려는 정권이다.좌파정권의 파렴치와 부도덕성은 대선후보 선출에서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운동권 출신 권경애 변호사의 탄식처럼 이재명 후보가 그들의 결론이자 결과일진대,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아직 다하지 않아 새로운 전기가 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천하에 드러난 그의 패륜적 행태나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나랏돈 퍼주기, 대장동 사건을 비롯한 각종 비리에 버물린 의혹들만 하더라도 도무지 국정을 맡길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2021-11-25

‘한국 근대화의 주역’ 박태준, 새롭게 조명된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별세 10주기를 맞아 포항, 부산 등 전국에서 대대적인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포항지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포항지역발전협의회는 그저께(24일) “박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10주기가 되는 오는 12월 13일 포항문화예술회관 일원에서 청암 박태준 10주기 추모행사를 갖는다”고 밝혔다. 메인행사가 열리는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는 다음달 13일 오후 4시 30분 박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박태준 청암사상 심포지엄’이 열린다. 심포지엄에는 전상인 서울대 교수, 김왕배 연세대 교수, 이대환 작가 등이 참여해 주제발표 및 패널토론을 진행한다. 심포지엄이 끝나는 오후 7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박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식이 열린다.박 명예회장의 고향인 부산 기장군에서는 다음달 14일 장안읍 임랑리에 건립된 ‘박태준기념관(임랑문화공원)’ 개관식과 함께 추모행사를 갖는다. 2011년 12월 13일 별세한 고인을 기리는 기념관이 10년 뒤 고향에서 문을 여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박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포스텍(포항공대)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주최로 포스코 서울센터에서 ‘청암 박태준 명예회장 서거 10주기 추모 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이다.박 명예회장은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인정하듯, 한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포스코를 세워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산업을 일으켰다. 이와관련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한국경제 발전의 견인차는 철강업이었다. 그 중심이 된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은 창업자인 박태준 회장의 공헌, 효율적인 제철소건설과 운영체계, 인본주의, 직장환경 정비와 고품질 달성, 연구개발 체제에 의한 독자기술 개발”이라고 분석했고, 미국 하버드대 연구소는 “포철의 성공요인은 박 명예회장의 국가관과 지도력, 특유의 인사관리방식, 원만한 노사관계에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포스코는 제철산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려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박 명예회장의 실천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박 명예회장 10주기를 맞아 우리 국민은 지금의 번영이 박 명예회장 같은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기업철학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021-11-25

경북도 인구소멸 전략, 성과로 이어지길

경북도가 전국 최초로 도단위 지방소멸 대응 종합계획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최종 완료 보고회를 가졌다. 도내 23개 시군의 인구감소 요인을 자연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 자연·사회적 복합 요인 등으로 분석하고 6가지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6대 대응전력은 생활인구 활성화 전략, 세대통합 경북 만들기, 지역자원 활용 특화, 건강하고 편리한 생활공동체 조성, 지역간 연대협력 및 관계 강화, 4차산업 혁명시대 디지털 기반조성 등이다.이철우 도지사는 이와 관련, “대응정책이 현장에 반영돼 사람이 모이는 활력 넘치는 지역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잘 알다시피 인구감소 문제는 심각한 국가적 현안이다. 지방단위의 노력만으로는 큰 흐름을 잡을 수 없다. 국가 차원의 종합적 대응전략이 반드시 선행돼야겠지만 지방단위에서도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문제다.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전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그런 점에서 경북도의 지방소멸 위기대응 전략은 시의적절하다. 뿐만아니라 선제적 효과도 기대해 볼만하다. 중앙정부와 함께 지방정부가 대응할 현장 중심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다.경북도는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지방소멸위기 시군이 가장 많이 분포된 곳이다. 대구시와 분리된 1981년 319만명이던 경북 인구가 2020년 기준 264만명으로 55만명 감소했다. 특히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청년유출은 심각하다. 최근 10년간 16만명의 청년이 경북을 떠났다. 출산 가능한 젊은층의 인구 유출은 경북의 인구 감소를 더 가속화시켰다.경북도가 제시한 전략 가운데 생활인구 활성화 전략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거주인구의 양적 확대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과 연을 맺고 있는 사람을 지역에 정착토록 유인하는 전략이다. 그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지역에 대한 애착을 정착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단순히 거주인구 증가에 주력했던 정책과는 달라 현장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거듭 말하지만 우리나라 인구감소 문제는 국가 존망을 가를 만큼 심각하다. 지방의 인구소멸 대응책은 지방대로 큰 의미가 있다. 경북도의 인구소멸 대응이 꼭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2021-11-25

모병제(募兵制)

모병제는 직업군인으로 지원한 사람을 모아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징집제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세계적으로 보면 과거 징집제를 실시하던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 모병제로 돌아가는 추세여서 우리나라 징병제도 시간이 필요할 뿐 모병제로 바뀌어 갈 가능성이 높다.아직은 남북 대치 등 안보와 관련, 민감한 현안이라 유력 후보들 사이에서는 노골적 공약이 나오지 않으나 반전 기회를 노리는 군소 대선후보들은 내년 대선에 맞춰 모병제를 공약으로 채택해 젊은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준모병제 도입을 공약했다. 전문 부사관을 군병력의 50%까지 확보하고 징병되는 일반병의 수를 줄여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병역의무를 마친 청년에게는 사회진출지원금 1천만원도 제공하자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단계적 모병제를 내세웠다. 2029년까지 의무복무 4년의 전문병사를 혼합 운용하는 징집·모병 혼합형태를 제시했다.일부 군소후보의 모병제 공약이 얼마나 먹혀들지 알 수 없으나 생활밀착형 공약으로서 상당한 관심거리다. 우리나라 징병제는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청년층의 기회비용 상실과 남녀간의 갈등 유발 등 최근들어 자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정부의 합당한 보상이 없는 부분도 정부의 부담이다. 최근에는 남녀평등 군복무를 이유로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모병제는 인적자원의 질을 높여 정예 부대화하고 현대화, 과학화된 장비로 국방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 등 위협받는 한국 안보와 재정적 문제가 걸림돌이다. 모병제 공약이 특별히 주목되는 만큼 선거에도 먹혀들 지는 미지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1-25

여야 후보의 이미지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이른바 이미지 정치다. 실제로 대선 승부는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적인 우열에 달려있지 않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의 양대 축으로 나눠진 진영싸움이 우선이고, 양 진영의 후보 가운데 어느 쪽이 국민들에게 더 친근하고 설득력있게 다가서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그래서일까. 대선 100여 일을 앞두고 여야 대선후보들은 벌써부터 ‘이미지’경쟁에 나섰다. 무겁고 딱딱한 정책공약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으로 민심을 끌어오려 한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들어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감성 이미지의 정치다. 이 후보는 지난 20일 충남 논산의 재래시장 좌판에서 토란 나물을 파는 노인에게 물건값을 치르며 훌쩍였다. 고인이 된 모친 생각이 났다고 했다. 다음 날인 21일 국립대전현충원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에서는 부인 김혜경 씨와 함께 눈물을 훔쳤다. 최근 있었던 선대위 회의에서도 전국 순회 도중 시장에서 ‘가난한 사람 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우는 사람이 있었다고 소개하며 울먹였다.이 후보가 사흘 연속 눈물을 보이자 이런저런 해석이 나온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는 자체 평가가 대표적이다. 옷차림도 달라졌다. 경선기간에 말끔한 수트를 입었다면 대선후보 선출 후 본선에서는 클래식한 느낌의 캐주얼 정장으로 바꿨다. 경선 때는 안정감을 주는 게 우선순위였다면 지금은 세련미를 돋보이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이에 맞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역시 최근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부쩍 노력하고 있다. 2030 세대 일각에서 지적하는 소위 ‘꼰대’ 이미지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의 헤어스타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머리에 힘을 주고, 눈썹 메이크업도 짙어졌다. “인상이 달라졌다”는 평이 잇따르고 있다. 옷차림 역시 바꿨다. 경선 때는 간간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본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선이 깔끔한 감색 톤의 정장을 착용하고 있다. 말쑥하고 정중한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다.윤 후보는 공개석상에서 앉은 자세가 달라졌다. 정치 입문 초창기 다리를 과하게 벌리고 앉아 ‘쩍벌남’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메시지도 미리 준비된 원고를 활용해 정제된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실제로 최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출판기념회 축사도 미리 적어온 종이를 보며 진행했다. 하루 한 두 차례 정도 취재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설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정치 입문 초반 말실수로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던 윤 후보가 점차 이미지 정치에 적응해가는 모습이다. 과연 누구의, 어떤 이미지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대권을 차지하게 될까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2021-11-25

푸른 풀밭, 쉴 만한 물 가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힘겹게 우물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물을 긷는 한 노인을 보고 자공이 두레박을 사용해보라고 권면했다. 노인은 대답하길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쓰게 되고 기계를 쓰다보면 언젠가는 기계의 종이 되어 버리게 된다”며 두레박의 사용을 거절했다. 두레박을 기계에 비유한 것이다. 기계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인심(人心)이 기심(機心)이 되어 인간본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기계와 자본의 결합으로 이익을 추구하면서 편리함을 극대화 했지만 반면에 지구온난화를 불러와 자연이 파괴되고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으로 동식물의 멸종을 가속화 시켜 지구종말 시계가 1분전으로 다가왔다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경고했다. 생태학자는 이미 기계문명의 질주는 자연을 회복시킬 수 있는 터닝 포인트를 지났다고 하면서 기계와 자연의 공존을 논할 때가 아니라 이제는 자연으로 뒤돌아가야 한다고 했다.정복자적 신학이 주축인 서구신학은 자연에서 생명원리를 제거하고 물체로만 인식하려는 데카르트-뉴튼-베이컨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받아들여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신이 주신 권리라 주장하면서 기계문명을 가속화 시켰다.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로 초래한 기후변화의 위기에 서구기독교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자연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최근에 학자들은 자연의 치유기능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자연을 하루 20분 이상 대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13.4%가 줄어들고, 신체를 강화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엄청난 치유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자연은 정신과 육체만을 치유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루소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 때에는 불평등과 빈부의 양극화와 인간성 소외가 없었다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자연은 사회적 질병까지도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면서 그 속에 치유의 속성을 넣어 두었다. 영혼이 피폐해진 다윗이 치유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이 다윗을 데려간 곳은 성전이 아니었다. 다윗은 시편에 고백하기를 “그가 나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데려가서 거기에서 내 영혼을 소생 시키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이면 어디서나 영혼을 소생 시킬 수 있지만 왜 자연 속으로 데려가서 영혼을 소생 시켰을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서나 똑같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계 속에 묻혀 있으면 내가 기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가지지만 자연 속에 들어가면 내가 피조세계의 일부임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내 영혼을 소생시킬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것이 우리가 자연을 회복하고 찾아가야 할 이유이다.

2021-11-24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실현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1921년 상해에서 모택동이 창립한 중국 공산당이 올해로서 창당 100년을 맞이하였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11월 11일 19기 6전 회의에서 ‘역사 결의’를 통과시켰다. 내년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 통치자의 ‘10년 연임’ 원칙을 깨고 3연임의 길을 열기 위함이다. 7천400자의 ‘역사 결의’는 약 28%를 시진핑의 업적과 성과찬양에 할애하고 있다. 시 주석의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를 담은 이 문건은 1945년 모택동의 사회주의 혁명, 1981년의 덩사오핑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이은 세 번째 문건이다. 그는 과연 중국식 굴기(5D1B起)로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할 것인가.시진핑은 당 혁명원로이며 광둥성 서기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중쉰은 문화 혁명 시 반동분자로 몰려 오지로 추방되었다. 시진핑은 비참한 토굴에서 공부하여 칭화대학 화공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베이징 대학이 중국 인문사회계의 최고 대학이라면 칭화대학은 자연 공과 계열의 최고 대학이다. 그는 덩사오핑 시절 부친의 복권과 복직으로 공산당에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의 인내력과 뚝심은 과묵한 그의 표정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모택동과 덩사오핑의 반열에 오르려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앞에는 중국적 대내외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식 개혁·개방 과정의 빈부의 격차, 집권 관료들의 부패는 그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부패 청산이 시진핑의 국정 철학이지만 중국 고위 관료층의 부패는 만연한 실정이며 최고위층 자녀가 국가 기업의 최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신장 위구르와 티벳의 인권 탄압은 이번 중미 정상 회담에서도 최대 걸림돌이 되었다. 홍콩의 반중 민주화 운동은 시진핑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중국식 시장경제와 경제 발전이 중국 공산당의 중앙 통제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중국제조(中國製造)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한 세계 최강의 건설을 국가 목표로 제시하였다. 미국, 영국, 호주 중심의 오커스(AUKUS)와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쿼드(QUAD)는 사실상 중국을 봉쇄하고 있다. 세계 최강 제국이 되려는 중국몽은 거대 미국에 원천봉쇄 당하는 형국이다. 이번 미·중 정상 간의 3시간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도 미국 바이든의 강력한 제어력 때문이다. 미국은 시진핑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대만의 독자성을 지지하려 한다. 미국의 군사력과 중국 포위 전략은 중국이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이다.시진핑의 중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통해 G2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거대 제국 미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은 덩사오핑 이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교묘한 결합을 시험중 일뿐이다.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에 따라 성장하는 다원주의적, 자유주의적 가치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위상강화와 3연임은 결국 권력 독점과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진리이다. 시진핑은 중국적 현실적 모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21-11-24

내 안에 너 있다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지난해 열지 못했던 포항국제불빛축제가 2년 만에 다시 영일만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지난 20일과 21일 펼쳐진 축제는 예년에 비해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으나 다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한 축제여서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축제는 흥겨운 놀이가 중심인 ‘축(祝)’과 제의적 의미가 담긴 ‘제(祭)’를 합쳐서 만든 말이니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을 위무하는 마음과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기원이 함께 담긴 이번 행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축제가 아니었을까?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축제가 다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최근의 ‘위드 코로나’방역지침이 일상회복을 위한 단계적 시행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온·오프라인 병행의 하이브리드 축제라는 신형식의 축제를 실현하였다. 개막식 유튜브 생중계에는 무려 15만여명이 실시간 참여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다.이 축제의 백미는 화려한 연화행사, ‘국제불꽃쇼’이다. 매년 해외의 전문 불꽃쇼 팀들이 참가하여 수준 높은 연화연출을 선보였으며, 국내팀과 치열한 경연을 벌였다. 그러나 올해는 프로그램 이름부터가 ‘미니 불꽃쇼’였다. 대규모의 화려함 보다는 소박하고 절제된 불꽃으로 코로나 극복과 일상 회복의 기원을 담았다. 포항시가 용감하게 축제를 결행한 까닭은 지나치게 위축된 시민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용기의 부여가 필요하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시민들은 흔쾌히 공감하였고, 개막식과 미니불꽃쇼를 전후하여 행사장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그동안 침체됐던 지역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였다. 물론 안전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뒤따랐다. 행사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백신 2차 접종완료 확인을 거쳐 발열체크와 안심콜 등록 후 입장이 허락되었고, 방역요원의 안내를 준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축제의 성공을 도왔다.필자도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축제의 흥겨움을 즐겼는데, 개막행사 도중 의미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인기 연예인의 축하무대가 한창 진행되던 중 사회자가 무대에 다시 등장하여 잠시 안내 방송을 하였다. 미아를 찾는다는 안내였다.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을 중시한 진행에 참가자들은 모두가 무언의 공감으로 동의하였다. 곧이어 다른 행사 때문에 뒤늦게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경우는 사회자의 등단요청을 정중히 사양하였다.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어필하려 애쓰기 마련인 정치인이 공연에 방해가 될까 조심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고, 거듭된 권유에 짧은 인사를 전하며 미아를 찾았는지 염려함으로써 도백(道伯)의 품격을 보여주었다.오래전 어떤 드라마에서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말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다. 밝은 세상이라 시민들은 이미 정치인의 언어를 다 알고 있다. 수준 낮은 ‘낯내기’ 행태로는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인류에 대한 넘치는 사랑,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내 안에 네가 있음’을 보여줄 때 시민들은 감동하는 법이다. 2년 만에 열린 포항국제불빛축제의 미니 불꽃쇼, 그 뒷맛은 여느 축제의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훨씬 더 개운하였다.

2021-11-24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배문경수필가 가을이 익을 대로 익은 날 축제를 즐겼다. 경주 시민이라는 이름 덕분에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화려한 노래와 춤사위가 우리들의 가을에 군불을 지폈다. 고인이 된 이영훈의 자작곡들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맞춰 노래가 울려 퍼졌고,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마음도 아랫목처럼 뜨듯해졌다.그중에서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가슴속에 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두자는 노랫말은 뭉클했다. 삶을 살아내면서 많은 사람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시절 인연이란 말처럼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미련의 끈을 길게 늘였더랬다. 옛사람이 떠난 자리로 새로운 사람들이 틈을 메우는 것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그렇게 떠남과 만남이 평생이란 인생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후배 순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즐겼던 십 대의 노래들은 거의 이문세의 노래로 가득했단다.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는 인기 짱이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환했다. 그 덕택에 그의 노래 제목이 어린 그녀와 친구들의 모임 제목이름까지 되며 요즘의 BTS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그 가수였다는 이야기가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의 노래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색 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태어나 십 대까지 듣던 음악이 평생을 찾아 듣는 음악이 된다고. 20대까지는 신곡을 찾아 듣지만 30대가 되면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만 되풀이해서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익숙한 노래들이 음악에 대한 기억저장고에 묻혀 있다가 이따금 사람이 그리울 때 꺼내 듣는다. 그래서일까. 나 또한 나이 차이가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꿈속에 나온 적도 있으니 어른들이 흥얼거리던 그 시절의 노래를 귀 너머로 듣고 자란 탓이겠거니 싶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음악과 열정이 묻어나는 리듬이 흘러나오면 쉽게 따라 하고 어깨가 들썩인다. 그리움처럼 말이다.나의 저장고에 각인된 노래야말로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추억이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중에 앞면을 차지하는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 최백호의 ‘작은 잎새’이다. 뒷면은 영화로 채웠다. 사랑스러운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나 스스로 노래까지 부른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애송하는 노래처럼 쪽지편지로 접어서 마음 저장함에 넣어 두었다.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날, 넷플릭스나 OCN을 통해 다시 보면 추억의 그 영화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양산(量産)하는지도 모른다.퇴근하다가 문득 이름이 떠오르면 핸드폰에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수화기 저편에서 어쩐 일이냐고 묻지만 반가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기억 날 때 전화를 하지 않으면 다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나의 말은 진심이다. 상대도 “ 그렇지, 세월이 너무 빨리 가고 있어.” 너무 바쁜 일상의 급류에 휩싸여 작고 귀한 것들을 잃어갈 때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를 가다듬게 한다. 오래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상기의 필름처럼 지나가며 세포 곳곳에 산소를 공급한다. 한동안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옆에서 기차를 바라본 적이 있다. 기차에 탄 사람과 밖에 있는 내가 서로 겹쳐질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린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서로를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란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더러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처럼 그것은 환영처럼 기억의 저편, 막힌 어느 부위를 긁는 느낌이다.11월 늦가을 들녘을 보니 경주의 벚나무에는 두 번째 꽃이 피고 은행나무는 이미 계절의 여운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였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나무가 데칼코마니다. 그리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낙엽처럼 플레이리스트에서 흩날리고 있다.

2021-11-24

나무를 안다는 것

나무와 친해지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우선 나무의 이름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다. 다음은 수시로 나무 아래 어슬렁거린다. 나무 아래 의자가 있다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퍼질러 앉아도 무방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으면 나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이제는 나무의 몸피를 살핀다. 안아보고 만져보며 나무의 시간을 읽어낸다.생태공원 오솔길을 걸으면 나무를 많이 만난다. 나무의 생김이나 모양을 보고는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잘 가꿔진 공원에는 친절하게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너의 이름이 뭐니? 궁금해서 나무 가까이 가서 이름표를 들춰본다. 거기에는 이름과 꽃피는 때와 열매 맺는 시기가 적혀있다. 이름을 알고 나면 한결 친해진 듯하다.인터넷을 검색해 꽝꽝나무를 찾아보았다. 두꺼운 잎을 불길 속에 던져 넣으면 잎 속의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여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난다. 야무지고 단단한 것을 두고 나무의 자생지인 남도 사투리로 ‘꽝꽝하다’고 한단다. 실제로 꽝꽝나무는 잎이 사방으로 빈틈없이 돋아나 단단해 보인다. 그래서 꽝꽝나무라고 한단다.꽝꽝나무를 찾으러 생태공원에 갔다. 회양목과 꽝꽝나무가 비슷해 이름표를 찾아 근처를 헤맸다. 공원 중턱을 다 헤매도 보이지 않던 꽝꽝나무가 공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꽝꽝나무라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나무를 발견했다면 이제는 어슬렁거리기다. 나무의 키가 작아 가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잎이 푸르고 가지들이 빈틈이 없다. 가지에 달린 잎 하나를 만져보았다. 이파리가 푸름을 그득 물고 있다. 꽝꽝하게.어릴 적에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 살았다. 촘촘히 울타리가 쳐져 있어도 듬성듬성 집안이 보였다. 어두워질 때까지 노느라 부모님께 혼나는 날이 많았다. 탱자 울타리 사이로 부모님의 상황을 지켜보다 마당에 들어설 기회를 엿보았다.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할 때다. 구판장에서 집에 오기까지 노란 주전자 속에 찰랑거리는 막걸리를 한두 모금 마셨다. 줄어든 주전자를 들고 탱자 울타리에서 걸음을 멈췄다.탱자나무는 촘촘히 돋아난 가시가 있다. 향기도 은은하고 하얀 꽃과 동그란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신맛이 강해 잘 먹지 않았다. 탱자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는 지(枳)인 데, 선비들의 문집에 귤의 종류로 감귤, 유자와 등자(橙子)가 언급된다. 등자는 신맛이 강한 광귤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탱자의 다른 이름이다. 등자가 열리는 나무로 부르다가 탱자나무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이순혜​​​​​​​수필가 자귀나무는 생태공원 안쪽에 있다. 새끼손톱 반 크기의 자잘한 자귀나무 잎은 해가 지면 서로 닫히는 수면운동을 한다. 남녀가 사이좋게 안고 잠자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야합수(夜合樹), 합혼수(合昏樹)라 하여 부부의 금실을 상징한다. 또 자괴목, 좌귀목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좌귀나무, 자괴나모를 거쳐 자귀나무로 변한 것이다. 자귀나무의 상태를 살피려고 자주 공원에 갔다. 나뭇잎이 닫히는 그 모호함의 경계에서 관찰하고 싶어 저녁때 가 보았다. 매번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자귀나무를 알아가는 길이 멀다. 자귀나무는 이른 아침과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에 보아야 한다.댕강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댕강’ 부러진다고 하여 댕강나무라 지었다. 꽃이 핀 댕강나무를 보면 연분홍 꽃이 새 가지 끝에 모여 핀다. 꽃 하나하나는 긴 꽃자루를 가지고 있고 서로 떨어져 있어서, 꽃이 동강동강 피어 있다는 뜻으로 ‘동강나무’라 하다가 댕강나무로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오월에 피는 댕강나무꽃은 가지처럼 댕강거리며 떨어지지 않는다. 향기를 뿜으며 살포시 내려앉는다.층층나무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가지를 살펴야 한다. 층층나무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는 방식은 마주나기, 어긋나기, 돌려나기로 뻗는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거의 수평으로 여러 개가 한꺼번에 돌려나기로 자란다. 마디마다 규칙적으로 층을 이루기 때문에 ‘층층이 나무’라 하다가 층층나무가 되었다. 숲에서 다른 나무를 제치고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어 폭군 나무라는 이름도 있다.이름을 안다는 것은 인식이다. 생태를 안다는 것은 관심이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친구 맺기이다. 어루만지고 보듬어 준다는 것은 사랑이다. 나무 앞에 서면 나는 나무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2021-11-24

김종인과의 갈등…도마에 오른 윤석열 정치력

12월 6일 ‘3톱 체제’ 출범이 예고됐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선대위가 이상기류에 휩싸였다. 선대위 총괄위원장직이 유력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윤 후보와 갑자기 결별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이 극적인 화해 없이는 한배를 타기 어려울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두 사람은 현재 서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내 일상으로 회귀하고 있으니 선거에 대해 나에게 구차하게 묻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심을 굳혔다는 소리로 해석된다. 이 말을 들은 윤 후보는 “그 양반 말씀하는 건 나한테 묻지말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당내에선 ‘김종인 없는 선대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에 합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지만, 괜한 분란만 일으킬 바엔 빼고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한다. 윤 후보로선 한시라도 빨리 해법을 찾아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윤 후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어떤 식으로든 앞서 발표한 대로 김 전 위원장을 ‘1톱’에 앉히는 것이다.최근 민주당 핵심인사들이 김 전 위원장을 만나 국민의힘 선대위 참여를 만류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윤 후보 리더십에 상처를 내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후보 입장에서는 ‘킹메이커’로 불리는 김 전 위원장 합류가 불발된다면 정치력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김 전 위원장은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해 막판 타협의 여지를 남겨뒀다.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펴면서 다시 타협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선대위 구성을 놓고 감정적인 언사까지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피로감은 극에 달해 있다. 설상가상 윤 후보가 지난 23일 당내 경선주자들과 오찬 회동을 가진 자리에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참여하지 않아 국민의힘이 적전분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윤 후보나 김 전 위원장을 비롯해 지금 국민의힘 모든 구성원들은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자리욕심 같은 이기적인 생각을 깨끗하게 비워내야 한다.

2021-11-24

영화 ‘아마겟돈’

영화 ‘아마겟돈’은 텍사스 크기의 행성이 시속 2만2천마일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행성에 800피트의 구멍을 뚫어 핵탄두를 폭발시켜 행성을 둘로 쪼개 충돌을 피하는 스토리다.실제로 이런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물체를 강하게 충돌시켜 궤도를 바꿀 수 있는지 실험할 우주선이 미국에서 발사돼 화제다. 미래에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할 상황이 됐을 때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물을 구할 방어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으로, 내년 9월쯤 우주에서 실제 충격 실험이 이뤄진다.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이중 소행성 경로 변경실험(DART)’을 수행할 우주선을 발사했다. DART 우주선의 임무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을 때 인위적으로 비행 궤도를 바꿀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다. DART 우주선은 태양계 소행성인 디디모스(지름 780m)와 디디모스 주변을 공전하는 위성 격의 작은 소행성 디모르포스(지름 160m)에 내년 9월쯤 바짝 접근한다. NASA는 DART 우주선을 디모르포스에 시속 2만4천㎞로 충돌시켜 궤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관찰할 계획이다. 실험에 성공한다면 지구가 소행성에 의해 실제로 해를 입을 가능성이 생겼을 때 대응할 방법이 생기는 셈이다.과학계에선 지름 300m짜리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대륙을 파괴하고, 1㎞ 이상이면 지구 전체에 큰 피해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룡을 비롯해 전체 생물의 75%가 사라진 6천600만년 전에는 지름 10㎞짜리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는 설명이다. 우주에서 닥쳐올 위기도 유비무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