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가고 열매가 영글어 가는 9월이 가고 있지만, 월초에 들이닥친 태풍 힌남노로 인한 상흔과 시름은 깊기만 하다. 삶의 터전이 하루 아침에 물에 잠기고 생계 현장이 송두리째 초토화된 현실은 비애의 갈퀴 마냥 서럽기만 한데, 피해복구와 재난수습은 막막해 암담하다. 문명은 발달해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지만, 부지불식 간에 엄습하는 자연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허다하니 좀더 주의와 경계, 신중하고 치밀한 대응과 중장기적인 풍수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시사철 하얀 목화송이 같은 증기를 피우며 거친 숨을 내쉬던 포항제철소가 수해의 몸살을 앓고 있다. 태풍이 몰고온 폭우로 오천읍 지역을 관류하는 냉천이 범람하면서 인접한 제품생산 공장이 순식간에 침수되어 조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로 한없이 신음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 같이 조업 개시 49년간 한번도 멈춘적 없는 철옹성 같은 제철소가 수마의 손아귀에 휩싸여 여지없이 주저앉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형산강 너머 밤이면 오색영롱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며 지역과 나라의 희망을 밝게 비추던 제철소가 한동안 암흑천지로 돌변했으니, 이 어찌 억장이 무너지고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랴.
“미래의 꿈을 위해/모랫벌에 혼을 심었던 우리/모진 바람 불어도/거친 파도가 쳐도/신새벽 雄飛의 빛살로/도약의 비전/원대한 꿈을 키워온/도전자 아니었던가//….혼신의 몸부림/껍질 벗기는 아픔이 있었기에/제철소는 사시사철/하얀 목화송이를 피워대질 않는가!//靑春의 산맥을 넘으면서/영일만 신화를 창조했고/壯年의 강을 건너면서/바야흐로/변화와 혁신의 물꼬 트는 포항제철소!” -拙詩 ‘포항제철소장 헌정시’중
포항제철소의 냉천범람 피해는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고 극심하다. 노도(怒濤) 같은 황토물이 비좁아진 냉천교 교각 사이를 원활하게 흘러가지 못하고 제방을 넘어 시내 쪽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 동해안로와 오천지역으로 연결되는 해병로를 따라 거센 물길이 생기면서, 그 주변이 설마 하던 홍수로 대부분이 잠겨버렸다. 특히 제철소 압연라인의 특성상 단층건물과 지하설비가 많은 걸 감안하면, 사람 키 높이 이상 물밀지듯 속속들이 파고드는 물살로 공장전역은 무참히 뻘물로 찰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전무후무한 참사에 포스코는 창사 이래 크나큰 위기에 처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닥쳐도 살아나갈 희망이 있다. 재앙을 당하면 서로 도와주듯이(患難相恤) 포스코의 선제적이고 발 빠른 수해복구 대처와 임직원들의 전력투구에 민관군의 손길이 더해지니, 복구작업에도 한결 속도가 붙는 듯하다. 지역사회를 위해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던 회사가 공전의 수난과 곤경에 처하자 포항은 물론 멀리 광양에서까지 자매마을과 자생단체들의 도움과 물품지원이 답지하고 있어서 아름답고 고맙게만 여겨진다. 하루 빨리 포항제철소의 침울한 신음이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길 학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