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대학입시의 시즌이 돌아왔다. 이제 새내기들은 입시가 끝나면 자기가 선택한 대학에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대학 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받지 않는 대학이 있다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호통을 친다는 소식이 들린다.
신용카드 등록금 납부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작년 2학기 7만630건에서 올해 1학기 6만3천106건으로 감소했고, 올해 2학기에는 6만497건으로 더 떨어졌다고 한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현금 수납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카드사와 제휴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대학들이 카드수수료를 걱정할 정도로 재정에 쪼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학재정 문제를 탁상공론으로 다룰 상황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은 투표를 의식하는 정치적인 이유로 10년 넘게 동결되어 왔다. 이 기간 동안 당연히 물가는 올랐고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들, 특히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대학들은 지금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교직원 임금을 미루고 있는 대학도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대학생들의 높은 학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든든학자금 대출제도와 국가장학금 제도가 2010년과 2011년에 도입되었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경우 정부의 학자금 지원이 학생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등록금에 대한 규제가 함께 도입되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 투자는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한다.
행정적 정치적 이유로 동결된 등록금은 대학의 목을 죄여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진보성향의 한 언론은 사립대 적립금이 많은데 돈을 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올해 2월 기준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적립금이 8조1천43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천억원 가까이 늘었다는 주장이다. 대학들은 재정난을 이유로 등록금 인상의 길을 터주길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우선 대학들은 쌓인 적립금 활용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터무니 없는 지적이다.
4년제 사립대 151곳 가운데 적립금을 1천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20개교, 100억 이상의 적립금을 가진 대학은 84개교라고 한다. 포스텍은 주가가 좋았던 시절 기금 2조원으로 한국에서 단연 1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한국 1위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 반이하로 줄어들었다.
진보 언론이 지적한 이러한 한국대학의 기금은 서구의 대학들 특히 미국대학들에 비하면 정말 초라할 정도이다.
오늘날 세계를 이끄는 대학들 중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모두 수십조원 단위의 발전기금을 가지고 있다. 동부 하버드, 예일, MIT의 발전기금은 60∼70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프린스톤과 서부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도 50조원의 기금을 확보 하고 있다. 기금 2조 이상인 대학은 50여개가 된다. 기금에 의한 대학운영비 투자도 한국과는 천지 차이이다. 한국의 사립대들은 기금에서 불과 몇억 많아야 몇십억 정도의 지원을 받는다, 대학 전체 예산의 퍼센티지로 불과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포스텍이 수백억으로 예산의 10∼20퍼센트 정도를 기금에서 지원 받는 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퍼센티지도 미국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 발전기금 상위 5개 대학 예산의 발전기금의 기여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하버드가 20억 달러로 39%, 예일이 15억 달러로 35%, , 프린스턴이 14억 달러로 62%, MIT가 8억 달러로 30% 라고 한다.
돈의 액수도 크지만 기여도도 대부분 30%를 넘는다. 심지어 60% 가 넘는 대학도 있다.
미 사립대 발전기금 10년 평균 수익률 12%이고 이들 사립대학들은 매년 발전기금의 5% 정도를 대학 예산으로 쓴다고 한다. 물가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발전기금의 수익률이 최소 연 8%는 되어야 원금을 까먹지 않고 키울 수 있는데 이를 12% 수익률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대학 발전기금 운영을 최적으로 운영하면서 고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의 수준은 발전기금 규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고 실제로 미국대학의 랭킹은 발전기금 규모와 비례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있는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정적으로 미국 선도 대학 같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기여도의 증가도 중요하다.
한국대학의 재정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등록금은 동결되고 기금은 적은데도 기금이 많다고 그걸 풀지 않는다고 비판하면 기금의 원금을 까먹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나마 연구비로 버텨야 하는데 주요대학을 제외하면 그것도 쉽지 않다.
대학 재정의 딜레마. 언제까지 정부는 이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등록금 인상을 불허한다면, 대학 기금 확충을 위한 정부의 대책과 도움은 무엇일까. 대학의 시름은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더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