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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등록일 2022-09-25 17:53 게재일 2022-09-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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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공자와 동시대인이었던 진항(陳亢)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공자가 아들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공자의 외아들 백어(伯魚)에게 아버지에게 특별한 무엇을 배운 게 있는지 묻는다. 골똘히 생각한 백어가 답한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게 시를 공부하느냐고 물으시길래 그렇지 않습니다, 대답했더니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하셔서 시를 공부했습니다.” (‘논어’ 계씨편)

여기서 시는 공자가 당대에 엮은 ‘시경’에 들어있는 305편의 작품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시는 서정시에 한정되지만, ‘시경’의 시는 범위가 넓고 다채롭다.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도 있지만, 신과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노래와 군왕들의 전쟁과 사냥, 부패한 귀족들의 모습과 백성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따라서 시를 공부함은 언어를 넘어서 풍속과 제례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춘추시대에 시를 공부함은 ‘시경’에 담긴 305편의 시 전체를 기억하여 자유자재하게 활용함을 의미한다. 모방이 창조의 바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와 인식을 선행한 공자의 혜안이 우뚝하다. 오늘날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 극작가들이 앞선 시대 문필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나름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해가는 작업과 같은 방식이다.

1965년 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기록을 남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이히만은 그에게 부여된 과업을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악행을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규정하면서 그에게 결여(缺如)된 세 가지 무능을 삼단논법으로 거명한다.

생각의 무능, 언어의 무능 그리고 행동의 무능이 그것이다. 제대로 생각할 능력이 없기에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고, 그 결과 행동 역시 올바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으로 유추해보면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언어가 그릇되며, 언어가 그릇되는 이유는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과 행동의 중간 정거장에 자리하면서 양자의 결합점이자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고 하겠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깊이가 있고 신중하며 무게가 있다면, 그것의 출발점은 깊이 있는 사유에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출된다.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실행할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유와 언어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튀어나오는 말은 그의 평소 생각을 드러낸다. 그런 생각과 언어의 구체적인 결과물이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 며칠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대통령의 말은 수많은 말로 다시 해석과 재해석, 오해와 또 다른 오해를 증폭시키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국정 책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와 의미를 지닌다.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말에 담긴 생기(生氣)와 살기(殺氣)를 두루 살펴 신중할 일이다.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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