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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서

등록일 2022-09-25 17:55 게재일 2022-09-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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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바라본 교차로

창밖을 내려다보면 네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서남북에서 밀려온 차들이 붉은 신호에 멈춰 선다. 잠시 기다리는 그 짧은 사이에도 내달리고 싶은지 차들이 쿨럭거린다.

오늘은 교차로가 시끄럽다. 대형트럭 한 대가 교차로 한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차들이 끼어들어 꼬리를 문다. 신경전을 벌이듯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며 으르렁거린다. 차들로 뒤엉킨 교차로를 바라보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내가 처음 운전면허증을 따고 도로에 나갔을 때, 핸들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도로 위, 차들의 물결에 떠밀려 곁눈질도 못 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어깨가 뻐근해지고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방향지시등을 켜고도 제때 차로를 바꾸지 못해 몇 바퀴를 돌기 일쑤였다. 운전이 서툴러 설설 기면서도 질주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차를 부리는 데 조금 익숙해질수록 내 자동차 속도계도 점점 올라갔다. 탁 트인 도로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자동차가 도로에 착 붙는다는 느낌의 쾌감은 짜릿했다.

그러나 내 자동차의 속도는 한없이 올라갈 수만은 없었다. 어느 날, 앞선 화물차를 바짝 뒤따르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혔다. 질주를 막은 교통경찰에게 짜증이 났다. 신호를 보고 진행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따졌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히자, 웃음으로 대하던 경찰관이 음주 측정까지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면허증을 보여주고 범칙금 통지서를 받았다. 며칠 내내 기분이 찜찜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주는 빨간 경고장인지 몰랐다.

운전에 재미가 붙어 자동차를 몰 듯 나의 일상에도 점점 속도가 붙었다. 일하는 보람도 있었다.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 욕망이 커질수록 속도도 빨라졌다.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아니나 다를까, 종합검진을 받았더니 여러 군데 고장이 나 있었다. 의사는 호르몬의 균형이 깨진 게 큰 문제라고 했다.

“그동안 빨간불이 몇 번 켜졌을 텐데….” 의사는 안타깝다는 듯 내뱉었다.

인생에 건강의 빨간불이 켜지자 내 질서가 뒤엉켰다. 일하거나 청소하는 소소한 일상까지 혼돈에 빠졌다. 평소 잘 다니던 골목길도 얽히고설킨 미로처럼 보였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저만치 이탈해버린 시간이 뽀얀 먼지처럼 흩날렸다.

사람의 몸도 기계처럼 고장 난 부품을 바꿔 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큰 수술을 했다.

이순혜 수필가
이순혜 수필가

수술하고 시골집에서 잠시 쉼표를 찍었다. 와글와글한 생활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병원 특유의 냄새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달릴 줄만 알았던 나에게 호흡의 정리가 필요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적적하다 싶으면 길섶 돌멩이에 말을 걸고 키 작은 풀꽃에 웃음을 보냈다.

날마다 집 근처 숲에 들어갔다. 숲에 있는 표정 있는 것들이 느낌표로 다가왔다. 손바닥만 한 땅 움켜쥐고 들풀은 꽃을 피우고 알곡 몇 톨만 먹고도 새들은 노래를 불렀다. 많은 것을 차지하려 않고 순서도 다투지 않았다. 주어진 조건에서 생명을 꽃 피우고 열매를 만들면서 제 몫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작은 풀꽃들도 저러한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숨차게 달려 온 것일까. 다짐과 다짐을 거듭한 뒤 어설프지만, 나만의 답안지를 들고 돌아왔다.

세상의 시간은 잠시도 멈춤이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가 확장되고 있었다. 나란히 달렸지만, 앞서간 사람이 많았다. 누구는 그동안 큰상을 타고 작품집을 출판했다. 봄꽃이 있으면 가을꽃도 있고, 먼저 피는 꽃도 있고 나중에 피는 꽃도 있지 않은가. 큰 숨 한 번으로 마음이 그득해졌다. 그래, 멀리 가야 하니 내 속도를 잃지 말자. 어우렁더우렁 덜컹거리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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