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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과 수박 논쟁도 필요하다

등록일 2022-09-04 16:58 게재일 2022-09-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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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 당 내부 총질문제가 당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격려 메시지와 체리 따봉이 당의 내홍으로 번지고 있다.

윤리 심판원의 6개월 징계로 정치 생명이 끝날 것 같았던 이준석 당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일단 연장되고 있다.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 이후 의원 총회는 5시간이나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당규를 개정하여 새 비대위를 구성한다는 방침으로 당 내분은 일단 봉합되었다. 안철수, 조경태, 하태경, 윤상현 등 당내 중진들은 새로운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고, 권성동 원내대표의 우선 사퇴를 주장하고 있어 당내 반발은 심상치 않다. 긴급 의원 총회의 무기명 비밀 투표 없이 거수로 통과시킨 결정을 절차상의 문제라는 비판도 따랐다.

당 대표의 징계가 형식은 성상납 무마의혹이지만 대선시의 내부 총질에 대한 응징임은 분명해지고 있다. 새 비대위 구성과 이준석 대표의 또 다른 가처분 신청이 여당의 내홍으로 이어질 전망이 높다.

민주당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수박 논쟁’으로 내부 갈등은 심각하였다.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내홍은 표면적으로 진정되었으나 앞으로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명 강성 지지층은 상대 후보측을 ‘수박’에 비유하여 힐난하였다. 겉이 푸른 수박을 깨보니 속은 붉어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상대를 빗댄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상대 후보인 친낙 측의 정체성을 비난하고, 이를 친명 측의 팬덤 정치 강화에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상대의 선명성을 비난하는 전술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사꾸라 논쟁과 같이 야당사에 종종 등장했던 정치 술책이다. 과거 군부 권위주의 정권시절 민주당내에서는 상대측을 ‘낮엔 야당, 밤엔 여당’하는 사꾸라로 비난하였다. 또한 정치적 라이벌을 2중대라고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정체성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야의 내부 총질과 수박논쟁을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내부 총질을 당하는 측에서는 그것은 당의 분란이며 선거의 패배 등 해당행위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를 겨누어 총질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당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애당행위로 강변한다. 수박 론 역시 당 구성원들의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지만 정당내 공개적 토론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해당행위로만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내부 총질이나 수박 논쟁 등도 당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문제제기로 수용해야 할 사안이다.

민주적 정당이라면 당내의 다양 다기한 주장과 문제제기는 폭넓게 포용하고 수용해야 한다. 현대의 정당은 대체로 당권파와 비당권파, 정책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어 대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 내부의 총질도 수박 논쟁도 그것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단죄할 것이 아니다. 당의 민주적 용광로에서 제련되어 합리적 정책으로 승화되어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당간의 정권 교체를 두 번이나 성공한 민주화의 상징 국가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내부 총질에 따른 젊은 당대표에 대한 가혹한 징계도 한국 정당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우리정치가 그간 제도적 민주화에는 성공했으나 정당정치의 민주적 질서는 수립하지 못한 결과이다.

과거 3김 시대의 보스 정치, 줄서기 정치, 카리스마 정치 시대도 종식된 지 오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아직도 상부의 눈치를 보는 줄서기 정치에 익숙해 있다. 우리의 비민주적 정당 정치는 당 발전을 위한 용기 있는 제안마저 ‘내부 총질’로 오해받고, 상대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수박 논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당의 활동까지 정치적으로 해결치 못하고 사법부의 심판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이 모두 우리의 수직적인 경직된 권위주의적 정당 구조의 산물이며 우리 정치문화의 한계 때문이다.

여야는 이번 사태를 당내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집권 초반의 지지율 하락이나 집권 여당의 대혼란도 대통령에 기댄 당권 파, 윤핵관이 자초한 비극이다. 30대 당 대표에 대한 대통령과 당 관료의 누적된 냉소적 태도가 사태를 더욱 키웠다. 시대정신과 여론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과거의 보스 정당시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당료의 오만과 국회의원들의 침묵의 카르텔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공천을 의식하여 당 지도부나 상부의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하는 의원들의 태도는 결코 당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내분의 수습을 위한 의원 총회에서부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허심탄회한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당은 결코 위로부터 정해진 방침이 관철되는 관료기구가 아니다. 늦었지만 당의 논의 구조부터 민주화시켜야 바람직한 당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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