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줘야죠, 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야죠, 사람을 해하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 분)가 부르짖듯 내뱉은 대사이다.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말하는 심 판사는 소년범에 의해 어린 아들을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소년범죄자를 싫어하고 미워하면서도 그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심 판사의 언행에는 애증의 감정이 서려 있다.
소년 범죄와 관련된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제정된 지 69년째인 소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촉법소년’으로 불리는 소년범의 연령 상한을 14세에서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렇지만 처벌이냐, 교화냐의 오래된 딜레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제주지방검찰청은 교화에 목적을 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손 심엉(손잡고) 올레’라는 소년범 선도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재범의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소년범의 재활을 돕기 위해 그들과 올레길을 함께 걷겠다는 취지는 신선하면서도 숭고하다.
손 심엉 올레를 제안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만든 ‘쇠이유(Seuil·문턱)’에서 영감을 얻었다. 쇠이유에서는 ‘함께 걷기’를 통해 소년범죄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멘토와 함께 2천㎞ 이상을 걷는 치유 프로그램은 소년범의 재범률을 15% 내외로 낮추면서 감옥의 대안이 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개척했던 초대 탐사대장은 서명숙 이사장의 동생인 고(故) 서동철 대장이다. 서 이사장은 조폭 생활을 청산한 동생과 올레길을 답사하면서 쇠이유 프로그램을 떠올렸다고 한다. 성년인 동생에게 변화를 준 올레길 걷기가 청소년들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손 심엉 올레의 꿈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프레데리크 그로 교수는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서 “그냥 산책만 해도 멈춤의 자유를 얻게 된다”고 썼다.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의 규칙성은 걱정거리와 집착, 잘못된 습관들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걸으면서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는 길 위의 순례자를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호르몬과도 같다.
손 심엉 올레에서 앞으로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질지 사뭇 궁금하다. 쇠이유의 걷기 프로그램이 청소년 범죄의 재범률을 낮추었다고 해서, 장밋빛 희망을 성급히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숫자로 증명하는 것에 조급해하기보다 소년범에게 치유와 변화의 삶을 찾아 주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어린 나이에 범죄의 수렁에 빠진 소년범에게 교정이나 교화라는 말은 높은 허들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 손을 마주잡고 함께 걸어 준다면, 새 삶의 문턱을 넘어서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소년에게 “손 심엉 가자”는 제주 사투리로 손을 내미는 ‘소년멘토’의 모습이 벌써부터 어른거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