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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대건의 고귀한 여정

등록일 2022-12-28 18:21 게재일 2022-12-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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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던 안타까운 일을 가슴에 품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화 ‘탄생’의 제작진을 만났다. 교황은 조선의 첫 가톨릭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의 삶을 다룬 영화 ‘탄생’의 제작에 대해서 감사를 표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최근 일어났던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언급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티칸의 뉴 시노드 홀에서는 영화 ‘탄생’의 시사회가 열렸다. 순교 176년 만에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가 교황청에서 영화로 상영된 뜻깊은 순간이었다. 영화 포스터를 교황에게 전달했던 주인공 윤시윤 배우는 “배우 윤시윤이 바티칸에 온 것이 아니라 김대건 신부가 온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대건 신부는 탄생 200주년이었던 작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됐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외벽에는 그의 조각상이 설치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청은 이번 달 20일에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 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기념성당 및 묘역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김대건 신부를 영화 ‘탄생’은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성직자와 근대적 지식인의 면모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사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으면서 김대건은 근대적 세계에 대해서 눈떴다. 외국어와 지리학에 대한 그의 지식은 당시 조선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김대건은 불어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라틴어 등 5개 외국어를 구사했다. 포교를 위해 그가 그렸던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6년이 앞섰다. 천주교 사제임이 드러나 투옥되었을 때는 조선 조정의 요청에 따라 세계 지리 개설서를 편찬해 주고 우리말로 된 세계 지도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조정의 관료 중에는 김대건이 갖고 있는 능력 때문에 그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신분 제도가 붕괴될 것을 우려한 대신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결국 최초의 가톨릭 성직자 김대건에게 참수형이 내려졌다. 15세에 유학길에 올라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해서 구원의 소망을 전하던 김대건은 25세를 일기로 고귀한 여정을 마쳤다.

김대건 신부는 당시 조선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세상을 꿈꿨다. 신앙과 신념의 자유가 있고 신분이나 남녀의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염원했다. 천주(天主)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영화 ‘탄생’은 순교자 김대건을 통해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이 잉태되는 또 다른 탄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학생 시절의 김대건이 잠시 머물렀던 필리핀 불라칸에는 김대건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곳에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대건 신부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했다. 그는 희생이라는 씨앗을 통해서만 고귀한 가치가 열매 맺는다는 것을 종교와 시대를 뛰어넘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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