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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트라우마의 치유

등록일 2022-11-02 18:43 게재일 2022-11-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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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밤에 서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비좁고 비탈진 골목길에 몰려든 대규모의 축제 인파가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청춘들의 축제는 삽시간에 비극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156명의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도 26명 포함돼 있다. 전 세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에 놀라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10만여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현장에는 200명도 안 되는 경찰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인력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행자들이 몰린 골목길의 안전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앞뒤로 꽉 막힌 골목에는 안전도 꽉 막혀 있었다. 결국 사고 사흘 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부는 이번 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태원이 속한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참사를 미연에 막지는 못했지만, 정부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 사고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트라우마의 치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다음 날 성명서를 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큰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대규모 정신건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영상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는 행동이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의 저자인 캐롤린 요더는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트라우마를 겪은 집단은 폭넓은 두려움, 공포, 무기력감,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이를 사회적 혹은 집단적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다.

필자는 포항 지진 일주년에 발표했던 연구 보고서에서 집단적 트라우마 체험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지진 진앙지와 인접했던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를 인터뷰했었는데, 이들에게서 중층적인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지진으로 인한 일차적 트라우마와 함께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SNS 전파를 통한 이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실제 지진보다 방송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이번 참사의 경우 참혹한 현장의 모습과 심폐소생술 장면 등이 방송과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졌다. 언론에서는 사건 관련 보도를 할 때 유가족들의 심정을 한번 더 헤아려 주기 바란다. 시민들도 SNS를 통해 참사 현장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은 슬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며 함께 울어야 할 때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보듬을 때 트라우마로 막혀 있던 마음에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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