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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귀환

등록일 2022-10-19 18:51 게재일 2022-10-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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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호적을 되찾은 후 맞은 첫 가을이다. 온 국민의 애송시인 ‘별 헤는 밤’을 읽는 느낌도 새롭다. 지난 8월 국가보훈처는 직계 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 156명에게 대한민국의 호적을 부여했다.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 지사는 같은 주소의 등록기준지를 갖게 됐다. 독립기념관의 주소인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이다.

올해는 광복 77주년이자 윤동주 서거 77주년이기도 하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생체 실험을 당하다가 옥사한 것은 광복을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 날 오랜 친구이자 동지였던 송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동갑내기 문사들은 이제 같은 호적을 갖게 됐다. 그토록 그리던 마음의 고향, 조국으로 귀환한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민족시인인 윤동주마저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서는 윤동주의 국적을 중국으로, 민족을 조선족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윤동주의 국적이 중국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는 패(佩), 경(鏡), 옥(玉) 등의 중국 이름을 언급하며 “이국 소녀”라고 일컫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국(異國)을 “인정, 풍속 따위가 전혀 다른 남의 나라”로 기술하고 있다.

윤동주의 집안은 함경북도 종성(鍾城)에서 북간도로 이주해 ‘명동촌(明東村)’을 만들었다.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명동촌은 항일 민족교육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에게 중국은 ‘이국’이었고, ‘쉽게 씨워진 시’에 나오는 표현처럼 일본은 ‘남의 나라’였다.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집에 와서 유언처럼 남긴 말은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심지어 악보까지도 사서 모으라”는 것이었다.

이번 달에 전남 광양시에서는 ‘백영(白影)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정병욱은 윤동주와 연희전문학교를 함께 다니면서 같은 하숙집에서 지낸 인물이다. 그는 윤동주가 남긴 육필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자필로 쓴 시집 세 권 중 한 권을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겼다. 나머지 두 권이 분실되면서 정병욱이 고향집 마룻바닥 밑에 숨겨 놓았던 시집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윤동주는 원래 자신의 시집 제목을 ‘병원(病院)’으로 지으려고 했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유고시집에 실린 ‘병원’과 ‘위로’라는 시는 이러한 주제 의식으로 쓰여졌다. 지금도 겨레의 위안이 되고 있는 윤동주의 시를 지켜냈던 정병욱 선생처럼 이제는 우리가 77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한 윤동주 시인의 정신적 유산을 지켜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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