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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적대적 반항장애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권위 있는 대상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특정 시기에 이러한 반항적 태도가 두드러진다. 특히 2∼6세의 시기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려는 ‘자기중심성’ 때문에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아동이 떼를 쓰는 행동은 정상 발달과정에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럴 때 엄마의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우선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들어보고, 어른의 입장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어야 한다.그래도 계속해서 떼를 쓴다면 무작정 혼내기보다는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제재를 가하는 것도 관심의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떼를 쓰면 부모가 자리를 잠시 피해 있으면 대개 그치게 된다. 떼를 쓴다고 해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떼를 쓰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 된다.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습이론’이 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는 아이는, 부모가 그의 요구를 들어줄 때 다시 말해 떼를 쓸 때마다 자신에게 보상이 오니까 점차 떼쓰고 우는 행동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의학적 용어로 ‘강화’라고 한다. 떼쓰는 아이에게 제재를 가해도 이런 행동이 강화될 수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제재 또한 자신이 떼쓴 데 대한 부모의 반응 결과이고 관심의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떼쓰는 행동으로는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에 따른 아무런 보상도 없어서 그러한 행동은 줄어들고 없어지게 된다. 이를 ‘소거’라고 한다. 학습이론의 핵심은 인간의 행동에 있어 그 결과가 어떠하였나에 따라 그러한 행동이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치원에서 교사들이 아동들의 공격적인 행동에 전혀 주의를 주지 않고 사이좋고 협동적일 때 칭찬을 하고 주의를 기울이니 교실이 더 조용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렇게 제대로 된 훈육이 중요하다.사례를 살펴보면 K군은 8살 초등학생으로 어릴 적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화를 내고 심지어는 어머니에게 장난감을 집어던지거나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K군의 어머니 말에 따르면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급격히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고 교내 규칙을 자주 어긴다고 한다.그리고 자신을 혼내는 사람에 대해 앙심을 품고 복수한다는 글도 적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같은 반 친구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게 됐다고 한다.‘적대적 반항장애’ 증상은 크게 3가지이다.첫째 감정적인 면에서 화가 많다. 즉, 쉽게 짜증을 내며, 자주 욱하고 화를 잘 낸다. 둘째 반항적인 행동을 한다. 특히 권위자들(부모, 학교 선생님, 어른)에게 따지기를 좋아하고, 타인을 짜증 나게 하고, 권위자들의 요구나 규칙을 무시하거나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언행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셋째 복수심이 강하다. 자신을 혼내는 사람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복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만일, 초등학교 전후의 자녀에게 위와 같은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한다면, ‘적대적 반항장애’를 의심하고 조기에 전문적인 정신과적 진단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이 증상을 방치하면 청소년기에 품행장애, 성인이 된 후 반사회성 성격장애(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이코패스)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증상의 시작은 주로 집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치원, 학교, 사회 등으로 옮겨간다.부모가 ‘적대적 반항장애’ 아이를 훈육할 때 아이의 감정은 공감해주되 문제행동은 통제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감정을 공감해주어야 할 때는 “참, 힘들었겠다”, “많이 속상했겠다” 등의 표현으로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가 감정을 쌓아두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행동은 다르다. 예를 들면 아이의 폭력적 행동은 아빠나 선생님보다는 비교적 손쉬운 대상자인 엄마를 상대로 시작된다.이 때 폭력적 행동은 용납될 수 없음을 인식을 시켜주어야 하고 화가 난 큰 목소리가 아니라, 낮은 톤으로 힘 있게 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또 필요한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 합리적인 제재도 있어야 한다. 부모가 권위적일 필요는 없지만, 권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허용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해서는 안 될 일에 자유를 주는 것은 방임이다. ‘적대적 반항장애’의 평균 발병 연령은 8세 전후이며, 남아에게서 여아에게 보다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남아대 여아=1.4대 1). 유병률은 평균적으로는 3.3%이나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유병률이 1∼11%로 차이가 크다.예를 들면,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훈육이 엄격하고 어른의 권위가 살아 있었던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적대적 반항장애’는 매우 드물었던 병이다.반면,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일관성 없는 양육, 훈육이 느슨해지고, 어른의 권위가 줄어든 지금 ‘적대적 반항장애’는 급증해 11% 전후로 추정된다. 반항장애는 아이의 타고난 천성과 양육 환경의 결과로 초래되는 병이다. 양육환경은 어른인 우리의 몫이다.

2023-08-20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중략) /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김민기의 곡 ‘내 나라 내 겨레’이다. 혈기가 왕성한 청년기에 자주 들었던 노래다. 가난을 이겨내려 겨레가 땀 흘리던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겨레를 알았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가슴 깊은 곳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무엇이 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은 독도처럼.약 450만 년 전, 바다 밑에서 끓던 열망이 지각을 뚫었다. 쌓고 쌓이기를 수천 년, 탑을 이룬 열망은 마침내 수평선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얼마나 뜨거웠길래 열망이 깊은 바다를 관통했을까. 뿔처럼 우뚝 솟은 바위섬, 바위섬은 외로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무릉의 두 섬은 우리나라 최동단 바다 가운데에서 벌건 해와 함께 솟아올랐다. 망망대해에서 깊디깊은 바다를 가르고 홀로 솟았기에 그 존재감은 더욱 우뚝했다. 홀로섬은 주변에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었다. 괭이갈매기의 춤사위가 촛대바위와 보찰 바위 위에서 펼쳐졌다. 바다제비. 슴새, 물수리, 고니, 흑두루미와 뿔쇠오리가 어미의 자궁처럼 여유롭게 둥지를 틀고 숨을 골랐다. 150여 종의 곤충들도 깃들었다. 바다 밑에도 숱한 생명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갔다.모든 섬은 태생적으로 외롭다, 홀로섬은 비바람과 파도가 후려쳐도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살이 트고 깎여도 그 틈에 수많은 목숨을 키워냈다. 바람 거센 환경 속에서도 해국, 번행초, 땅채송화, 참나리, 동백나무, 보리밥 나무 등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홀로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숱한 생명을 품었다.배달겨레는 홀로섬을 우리 호적의 지도에 등재했다. 481년에 만들어진 ‘팔도총도’에는 울릉도 뿐 아니라 우산도도 그려져 있다. ‘동국전도’ ‘조선전도’ ‘해좌전’에도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이 선명히 찍혀있다. 역사가 홀로섬을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것이다.홀로섬을 처음 발견한 나라는 아침의 나라이다. 첫 발자국을 찍고 대대로 개척한 사람은 우리 겨레이다. 그것을 국토에 편입하고 영유권을 내외에 선포한 첫 국가도 아침의 나라이다. 우리 겨레는 국호도 깨끗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朝鮮)으로 정했다. 홀로섬은 이 땅의 맑은 아침을 열었다.우리가 가난하고 힘없을 때, 일본은 너울 파도를 넘나들며 망발을 일삼고 우리의 가슴에 붉은 물을 들이고 약탈을 일삼았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른 섬을 마치 자기들 땅인 것처럼 우기며 나무를 베고 고기를 잡고 생태계를 유린했다. 더 나아가 홀로섬을 양자로 들여 다케시마(竹島)라고 이름을 지었다. 김경아 작가 홀로섬의 잠재적 가치는 무한하다. 주변 해역에는 풍부한 플랑크톤을 노리고 몰려든 물고기가 많아 훌륭한 어장이 형성되었다. 또한 해저 퇴적층에는 미래의 에너지로 여겨지는 하이드레이트라는 메탄 수화물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뿐인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까지 지녔으니, 홀로섬은 하늘이 우리 겨레에게 내려준 선물이다.홀로섬은 이제 영토의 상징이 되고 호국의 얼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지킬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부끄러운 선조로 남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깨어있는 가슴으로 홀로섬을 품어야 한다.우리 겨레는 따뜻한 감성을 지녔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 지켜줄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사람을 보듬을 줄 아는 심성이 있기에 홀로섬은 홀로지만 혼자가 아니다. 이 땅의 풀포기 하나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저 섬이 그리운 날, 함께 노를 저으며 파도를 헤치자. 밤이면 촛대바위에 기원의 불을 밝히고 강강수월래를 돌아보자. 아침이면 해맑은 햇살 받아 입고 새날을 맞자. 그러고는 함께 겨레의 혼을 담은 노래를 불러보자.“보라 동해를 지키는 홀로섬/우리의 가슴에서 우뚝 솟았다//피 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서/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2023-08-20

관행이라는 하나의 벽을 깨부수고

윤경희 청송군수 이맘때쯤이면 어릴 적 어머니께서 간식으로 가마솥에 쪄주시던 포슬포슬 분 나던 감자가 떠오른다. 오순도순 식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감자에 김치 한 토막을 척 걸쳐 먹으면 무더위 속이라도 한껏 행복하기만 했다.그 추억을 이어와 요즘도 현대인들의 인기 군것질거리이기도 한 감자는,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프랑스 탐험가들이 유럽으로 가져가서 전파됐다.사실 유럽으로 들어간 감자가 처음에는 돼지 사료나 전쟁 포로들의 식량으로만 사용됐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감자는 음침한 땅속에서 자라며 울퉁불퉁 못생긴 데다가, 솔라닌이라는 독 때문에 잘못 먹으면 탈이 나는 식물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입견을 깨고 사람들의 식탁에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20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감자의 이로운 점을 이용하고자 재배에 주력한 지도자가 있었는데 프로이센의 황제 프리드리히와 프랑스의 루이 16세였다.이들의 혜안 덕분에 감자는 전쟁 중 전투 식량으로 기근에 구황작물로서 톡톡히 역할을 발휘해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필자는 감자를 먹을 때마다 어쩐지 이런 유럽의 역사와 함께 우리 청송사과를 떠올리게 된다. 그건 아마도 프랑스어로 ‘폼 드 테르’라고 불리는 감자의 뜻이 ‘땅에서 나는 사과’이기도 하려니와 대한민국 최고의 사과로 정평이 나 있는 ‘청송사과’ 또한 하나의 벽을 깨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한 출발 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올 가을부터 청송사과의 꼭지를 자르지 않고 시장에 출하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한 말이다. 필자가 농가에 방문했을 때마다 한목소리로 토로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오랜 관행으로 이어온 사과의 꼭지 절단 작업에 관한 얘기였다.사과 꼭지를 자르는데 드는 농가의 인건비는 청송군에서만 생산량 기준으로 한 해 86억 원, 전국적으로는 매년 660억 원 이상이 추산된다. 유통 과정에서 꼭지에 찔려 흠이 나면 높은 값을 받을 수 없고 또 모양을 좋게 하려고 병행하는 이 작업 때문에 농가의 손해가 막중하다고.모든 성취는 시도하기로 한 결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서 군민과 농민들만 바라본다는 다짐으로 군 관내 6개 사과 계통출하조직(청송농협, 남청송농협, 현서농협, 대구경북능금농협, 청송사과유통센터, 청송군조공법인)과 ‘꼭지 무절단 청송사과 유통’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시작은 언제나 혼란스러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꼭지 사과를 선호하지 않는 유통시장의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우리 사과농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결과적으로도 영광된 결정이리라는 걸 확신한다.인력 절감뿐 아니라 온전한 꼭지 덕분에 사과의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어 생산자나 구매자 모두에게 이득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이 사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 및 공판장, 대형유통업체에도 협조를 구하고 나아가 방송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 다양한 판촉행사 등으로 홍보·마케팅에도 전력을 다하여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볼 참이다.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프리드리히 2세는 영양가 많은 감자를 강제로 재배하게 하여 전투 식량으로 보급했기에 오스트리아와의 7년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루이 16세 또한 가축의 먹이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감자를 두 팔 걷어붙이고 재배를 장려했기에 흉년의 기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 또한 그들과 일맥상통한 심정으로 이 사업에 온몸을 던지고자 한다.첫걸음은 가장 어렵지만, 반대로 제일 용감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청송의 이런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국의 사과유통시장 흐름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선도적인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관행이라는 하나의 벽을 깨부수고 바다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우리 군민 앞에 서서 활짝 웃고 싶다.

2023-08-20

자제(自制)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며칠 전 밤늦도록 잠이 찾아오지 않아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 급기야 일어나 앉는다. 평소 같으면 잠자리에 든 지 1∼2분이면 곯아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런 불면(不眠)의 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때 벗하라고 생겨난 것이 유튜브인 모양이다. 제법 오래전부터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혹은 ‘법성게(法性偈)’ 같은 불교 관련 경전이나 글을 찾아 읽곤 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도 자연 그런 쪽을 찾아서 듣게 되는 것이다.그날 설법의 요체는 ‘자제’에 관한 것이었다. 몸과 마음과 말의 세 가지를 자제하라는 게 요체였다. 몸과 마음과 말,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가 자음인 미음으로 시작한다. 참으로 소략한 발음을 가진 세 단어가 몸, 마음, 말이다. 그런데 이들 세 가지는 인생살이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다.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형이하(形而下)의 몸이고, 거기서 마음과 말이 발원한다. 몸이 전제되지 않는 마음과 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몸을 자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적용해보면 의미가 자명해진다. 우리의 오감(五感)으로 작동되는 다섯 가지 감촉, 즉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그리고 감촉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말이다. 오감을 작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예의와 법도를 벗어난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 그와 같은 자제를 요구하거나 실천하는 일은 정녕 쉽지 않은 노릇이다.마음을 자제함은 무엇인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통제하지 못하는 유일자(唯一者)가 필시 마음이리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신출귀몰하는 게 마음이다. 잠시 좋았다가 즉시 흐려지고, 안도했다가 근심 걱정으로 휩싸인다. 관대했다가 옹졸해지며, 자신만만하다가 일시에 위축(萎縮)되기도 한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손볼 수 있음은 가히 축복이리라.말을 자제한다는 것은 친숙한 표현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고픈 말을 전부 쏟아낸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폭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지극한 수단이 말이지만, 말이 본령에서 어긋나면, 그 말은 인간을 죽이기까지 한다. 차라리 주먹으로 맞은 일은 잊을 수 있지만, 언어폭력은 대저 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극단의 양면성을 가진다.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대참사’ 이후 어떤 인간 말종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징글징글하게 해 처먹는다는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말을 내질렀다. 나는 그것이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 말인가, 귀를 의심했다. 대체 유가족들이 무엇을 그렇게 많이 먹었길래 저런 막말을 해대는가, 다시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시체 장사한다는 말을 내갈긴 야차(夜叉) 같은 족속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요즘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의 원인은 몸과 마음과 말의 자제가 사라진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말을 잠시나마 돌아보면 어떻겠는가?!

2023-08-20

농촌까지 파고드는 마약범죄, 정말 큰일이다

경북경찰청이 지난 3월 1일부터 7월말까지 5개월 동안 마약류 범죄 집중단속을 한 결과, 모두 520명을 검거해 이 중 64명을 구속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검거한 마약사범 310명에 비해 64.8%나 증가했다. 구속자 역시 3배 이상 늘었다. 마약 유통과 투약이 도시지역뿐 아니라 농어촌지역에까지 깊숙하게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검거 마약사범을 유형별로 보면, 양귀비·대마사범이 354명으로 가장 많았다. 야바(YABA)등 향정신성의약품 판매·투약 사범도 166명이나 됐다. 외국인 마약사범도 90명이나 됐는데, 국적별로는 태국 73명, 베트남 12명 등이었다. 10~20대도 13%나 돼 청소년 마약사범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양귀비·대마사범의 경우, 주로 주거지 인근 텃밭 비닐하우스에서 식용 목적으로 마약식물을 몰래 재배했다. 향정신성의약품 사범은 외국인전용 클럽 등에서 조폭을 매개체로 야바나 필로폰을 유통·투약하다 적발됐다. 태국어로 ‘미친 약’이라는 뜻의 값싼 합성마약인 야바는 대부분 국내에 입국한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각 효과와 중독성이 높아 문제시되고 있는 마약이다.우리나라가 마약 청정지역에서 제외된 것은 오래됐다. 최근에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주부, 청소년 등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올해 상반기 밀수 적발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국제 마약 밀수 조직의 공세가 심상치 않다.마약밀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유통 채널이 활성화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값싼 마약류의 천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진단도 나온다. 경찰이 지금 마약범죄 조직 소탕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마약사범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늘고 있어 걱정이다. 마약사범 근절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조그마한 온정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한 처벌이 불가피한 것 같다.

2023-08-20

노인 대중교통 무료이용, 시행 빠를수록 좋아

경북도의회가 제정한 ‘경상북도 노인 등 대중교통 이용지원에 관한 조례’의 후속 조치가 착실히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작년 말 제정한 이 조례는 경북도내 70세 이상 어르신과 19세 이하 청소년, 장애인 등이 시내버스, 농어촌버스, 마을버스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북도도 조례 시행을 위해 현재 노인 대상의 대중교통 요금체계 개편방안을 연구 용역주었고 올 11월부터는 실무 TF팀도 구성한다.TF팀은 2025년 1월부터 전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아동과 청소년은 예산 사정을 고려, 별도의 시행시기를 결정한다고 한다.노인의 대중교통 무료이용은 노인복지 차원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예산의 문제로 시행은 더디다. 올초 홍준표 대구시장이 노인의 도시철도 무료승차 연령기준을 끌어올리고 대신에 시내버스까지 노인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노인 대중교통 이용에 관한 논의가 사실상 커졌다.대구시는 현재 65세 이상 도시철 무료승차를 70세로 상향하고 매년 1년씩 올려 2028년까지 70세로 높인다. 대신에 유료의 시내버스에 대해서는 75세 이상 노인에게는 무료화하고 매년 1년씩 하향해 2028년부터는 70세 이상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노인인구 증가와 건강 등의 이유로 노인 연령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으나 법률상 개편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70세를 노인 연령기준으로 보는 사회인식도 많아졌다.경북도 조례 제정에 70세 이상으로 잡은 것도 이런 사회적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노인의 대중교통 무료이용은 손익의 문제로만 따질 수 없다. 우리나라 노인빈곤률은 매우 높다. 대중교통 무료승차는 노인복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인의 이동권 보장과 도시철도와의 형평성도 살펴볼 문제다.특히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편익성도 크다는 주장도 눈여겨 봐야 한다. 경북도의 조례 제정으로 95만명 어르신의 이동권이 보장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변화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2023-08-20

할랄식품

우정구 논설위원 할랄식품은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된 식품을 말한다. 이슬람의 음식문화는 허용된 것을 할람, 금지된 것을 하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코란에서는 죽은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잡지 않은 고기는 금하고 있다. 곡물, 과일, 채소, 해산물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으나 육류는 엄격한 규정을 두어 이슬람식 도축법에 따른 것에 한해 식용을 허용하고 있다.이슬람식 도축법인 이른바 다비하(Dhabihah)는 단칼에 정맥을 끊는 도축 방식이다.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적 도축법에서 고안한 것이라 한다.할랄식품은 무슬림 인구의 증가에 힘입어 세계 식품시장에서 26%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증가율도 가팔라 세계 식품시장 연평균 증가율 2∼3%보다 3배가량 높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할랄인증을 받은 한우를 처음으로 해외시장에 수출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국내 할랄전용 도축장도 만들었다.우리나라에는 2020년 기준 무슬림국가 출신 재한 외국인을 포함해 26만명 정도의 무슬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이태원은 한국 내 무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가 한국에서는 아직은 낯설은 감이 없지 않다.세계적으로 보면 최근 많은 나라들이 할랄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구의 95%가 불교신자인 태국도 할랄식품의 수출산업 육성에 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다. 대구시가 올해를 할랄시장 활성화 원년으로 삼고 지역기업의 할랄시장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했다.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 등 아직은 낯선 이슬람문화가 이번을 계기로 대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0

진짜 공부

유영희 작가 경제적 여유도 많아지고 수명도 늘어나면서 평생 학습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퇴직 후에도 계속 배움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배움에 대한 갈망은 나이를 들면서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게 배움을 찾아다니다 보니, 무엇을 배워야 할까? 배움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꼬리를 잇는다. 그런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공부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책이 많고, 이와 관련된 영상도 많다.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의 목적을 자아 찾기에 두고 있다. 어떤 이는 공부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설레는 여행이라 하기도 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라고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아란 내 마음속, 또는 나의 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발견을 기다리는 나의 본질일까, 그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일까, 진정한 자아와 거짓 자아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모든 상상력은 허용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자아’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고 막연하기 때문이다.그러니 자아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감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 더 실질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맹자는 그 옛날에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사단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나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같은 네 가지 도덕적인 감정을 들어 성선설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렇듯이 감정은 인간에 본질이 있다는 가정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그런데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에 대해 새로운 견해가 나온다. 배럿에 의하면, 감정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속성이 아니라 뇌의 신경망이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같은 인간을 놓고도, 순자는 맹자와는 다르게 인간의 감정이 이기적이라면서 성악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배럿이 본질주의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을 인간이 타고난 본질이라고 한다면 모든 문화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본질주의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생각과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무력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다.자아 역시 본질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자신의 개념으로 구성한 실재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설계한 자아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것은 자아의 확장일 뿐이다. 자아가 확장되어 비대해지면 다른 사람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진짜 공부란, ‘자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구나 하는 인식을 향해 가는 여정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구성한 개념일 뿐이고, 그런 ‘나’가 인식하고 느끼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깨달음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완고함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와 대화하고 협력하게 된다. 청소년 시절에는 어려울 수도 있으나, 이런 공부는, 나이 들수록 절박하게 해야 하는 진짜 공부다.

2023-08-20

고객 잠재력을 깨우는 힘, 코칭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매월 하루는 각 지역에서 떨어져 있는 컨설턴트 모두가 모여서 혁신 토론과 QSS 연구회를 하고 있는데, 이달에는 특별히 코칭 강사(박희섭)를 초빙하여 ‘코칭 리더십’이란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필자는 이 강의를 들으면서 코칭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였고, 이 코칭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컨설팅(Consulting)은 흔히 티칭(Teaching)과 코칭(Coaching)으로 나눈다. 티칭은 알고 있는 지식을 알려주는 일련의 가르침이고, 코칭은 알고 있는 지식을 알려주기보다는 고객에게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고객을 마주하면 티칭으로 시작하여 티칭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골프황제 타어거 우즈의 최고의 코치는 그의 아버지 얼 우즈이고, 골프 신동인 찰리 액셀 우즈의 최고의 코치는 그의 아버지 타이거 우즈라는 것이다. 이들 코칭 방식은 질문을 많이 하여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게 하고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재미있게 배우도록 하여 자발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한비자’에 삼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이용하며,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일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스스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일류 리더가 되기 위한 코칭의 핵심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첫째 한 번에 하나의 목표만 제시하라.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코치가 이것저것 많은 주문을 쏟아내자 그는 코치에게 골프공 4개를 집어 던지며 받으라 하였고, 코치는 받지 못하자 볼 한 개를 던지며 하나를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객이 하나에 몰입하도록 하여야 한다.둘째 질문에 달인이 되어라. 존 홀랜드는 “진정한 코칭은 효과적인 질문을 통해 사람들의 내재된 잠재력을 깨우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질문에 반드시 대답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잠재력을 깨우칠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해야 한다.셋째 고객의 말에 경청(敬聽)하라. 말은 ‘마알’, 즉 ‘마음의 알갱이’라는 말을 한다. 말 속에 마음이 들어 있고, 마음 상태를 말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중이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알토란 같은 마음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경청하면 고객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고 공감(共感)할 수 있다.코칭은 신뢰 관계 속에서 목표를 공유하고 질문과 경청을 통해 솔류션(Solution)을 스스로 찾도록 서포팅(Supporting)하여야 한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맥킨지 앤드 컴퍼니, 구글, 링컨 일렉트릭, 인도고 등의 기업들은 코칭 리더십을 활용하여 조직 문화를 강화하고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코칭 기법을 활용하여 고객의 잠재력을 깨우쳐 주길 기대해 본다.

2023-08-20

무궁화 찾아보기

우정구 논설위원 역사적으로 볼 때 무궁화는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꽃이다. 중국 지리지 산해경에는 “군자의 나라에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훈화초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조선 시대부터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했던 꽃으로 짐작이 된다.특히 고대시대는 신성시되는 식물로 여겨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전 주변에 많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장원급제자 머리에 꽂아주는 꽃도 무궁화다. 또 혼례때 입는 활옷에도 무궁화를 수놓았다고 한다.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백성들은 무궁화를 사랑했고, 무궁화에 대한 사랑이 곧 애국애족의 정신이라 생각했다. 일본은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무궁화 꽃을 뽑아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그래서 광복절만 되면 매스컴에서는 무궁화꽃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무궁화는 7월부터 10월까지가 개화기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매일 새롭게 꽃이 피고 진다. 보통 한그루에서 2천∼3천개의 꽃송이를 피우고 진다. 꽃말은 일편단심 혹은 영원 등으로 불린다. 매일 꽃이 피고 지니까 불굴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우리 민족의 인내와 끈기에 비유되기도 한다.무궁화는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국화(國花)는 아니다. 그러나 애국가 후렴에 등장할 정도로 대표적 꽃이어서 관습적으로 국가나 국민이 국화로 여기고 있다.지난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이다. 2007년부터 대한민국 나라 꽃 무궁화를 기념하기 위해 민간단체 주도로 제정한 날이다. 봄철에 피는 벚꽃만큼 쉽게 만나지는 못하나 광복의 달을 맞이하여 애국애족의 꽃 무궁화 명승지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7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골든타임 놓칠라

원전 소재 5개 지방자치단체가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특별법이 국회 안에서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작년 말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3개 관련 법안이 회부됐으나 지금껏 제대로 심사 한번 못하고 있다. 당초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 영구저장 시설에 대해 적극적이던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에 맞서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특별법 제정이 맴돌고 있는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10월 국정감사가 열리기 이전이 입법의 골든타임으로 보이나 지금 상태라면 좌초될 우려도 없지 않다.16일 원전 소재 5개 지자체와 원자력 학계 등이 특별법 조속 제정을 촉구하는 ‘고준위특별법 대국민 심층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서 주낙영 경주시장은 “특별법 조속 제정으로 부지 내 저장시설 영구화에 대한 지역주민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어야 한다”고 했다.고준위 방폐장 영구시설은 하루가 바쁜 현안이다. 국내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포화율은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다. 한울 91.4%, 고리 87.6%, 한빛 78.7%, 신한울 1호기 76.3% 등이다. 특히 현 정부의 친원전 정책으로 핵폐기물이 늘어나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핵연료 영구저장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많은 장애가 있다. 장소 선정이나 기술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원전산업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더 활성화돼야 한다. 핵폐기물의 안전한 보관을 위한 정부 정책을 위해서 국회 내의 특별법 통과는 서둘러 처리돼야 한다.수십년 동안 위험을 안고 생활해온 원전 소재 주민의 불안감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여야는 안전한 원전 운영과 핵폐기물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 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야당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에 강력 반대하면서 국내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소극적인 것은 모순된 행위로 보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23-08-17

늙은 말(馬)이 갈 길을 안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최근 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폄하 발언 후, 사회적 물의가 번져가고 있다.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때 했다는 말을 꺼내 들며 “남은 생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는 내용의 말을 한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상의 보통선거와 평등선거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으로 대한노인회와 국가원로회의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2004년에도 열린우리당 의장의 “6,70대는 투표 안 해도 된다”는 발언으로 총선 판도를 바꾸어 놓기도 했고, “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입놀림으로 홍역을 치른 정치인도 있었다.왜 이렇게 노인들이 비하되고 폄하를 받아야 할까? 세대 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차이라고 보아 진다. 은퇴 후 몸도 약해지고 생산 활동이 줄고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에서 사회적 힘이 없고 지식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관점일 것이다. 그래서 노인네, 늙은이, 꼰대 심지어 ‘틀딱충’이라는 신조어도 나돌고 있다. 꼰대는 프랑스 귀족 ‘백작(Comte)’에서 온 말인데 ‘권위적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은어가 되었고, 또 번데기의 영남지방 사투리 ‘꼰데기’에서 변화됐다는 설도 있다.유엔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국민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라 하고있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7월 이미 18.5%을 넘어 ‘고령사회’이다. 2020년에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여 60대 이상 노인세대가 950만, 100세 이상이 8천5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많은 노인에 대한 경로효친 사상은 MZ세대에서는 왜 찾기가 힘든 것일까?삶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은 ‘앎(knowledge)’이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철학, 수학, 과학, 예술 등의 교육과 학습,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지혜는 ‘슬기(wisdom)’ 즉, 사물의 원인을 이해하고 이치를 깨닫는 전인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은 어떤 것인가?’라는 명제적 지식은 요즘과 같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절차적 지식은 많은 경험과 감각에서 얻은 사리 분별 능력이 그 길을 찾게 해 준다.노마지로(老馬知路) 즉 ‘늙은 말이 갈 길을 안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융적(戎狄) 토벌원정에 나섰다가 겨울에 돌아오며 길을 잃어버렸는데 재상 관중(管仲)이 ‘늙은 말은 지혜가 쓸 만하다’며 늙은 말을 풀어놓고 말 가는 데로 따라가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늙을수록 경험을 쌓아 사리에 통달하는 지혜를 습득한다는 뜻이다. 노인의 지혜로움은 사회 측면에도 많은 가치가 있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집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모셔라’는 외국 격언들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의 지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진정한 사회인의 덕목은 존중과 배려이다. 사는 날이 많지 않아 쓸모없다(?)는 노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슬기로운 삶의 지혜를 빌려 나라의 앞길을 찾아보자.

2023-08-17

전라도 시인 정재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이름난 시인들 중에는 전라도 출신이 많다. 한국 현대시단의 거목으로 꼽히는 서정주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이고, 여러 번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고은 시인은 전북 옥구군,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던 김지하 시인은 전남 목포가 고향이다. 그 아래로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의 풍자시로 주목을 받은 황지우 시인은 전남 해남군, 농촌시의 일가를 이룬 고재종 시인은 전남 담양군,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해진 박노해 시인은 전남 함평 출신으로, 모두가 한국 시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시인들이다.요즘 ‘전라도 시인 정재학’이란 이름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걸 더러 보게 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말고는 출신지가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는 시인이 없었는데, 굳이 ‘전라도 시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프로필에 따르면, 정재학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전라도 지역을 전전하며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가 가졌던 ‘전교조추방시민연합 공동대표’라는 직함은 그의 교직생활이 평탄치 못했음을 짐작케 한다. 사실 그는 문학 쪽보다는 보수우파 논객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해온 모양이다.전라도에서 태어나 살면서 전교조추방운동을 하고 보수우파 논객으로 활동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터이다. 편지 형식으로 쓴 어떤 글에서 그는 그 고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전교조의 해악을 알던 2002년부터, 이 길에 들어서서 싸워왔고, 그리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여생(餘生)을 아내에게 부탁하고 있네. 고소만 무려 20여 차례. 매일 대문 앞에 우체통에 검찰청, 법원에서 날아오는 붉은 줄 쳐진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은 내 심정을 알 것이네.”그는 무엇 때문에 자청해서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것일까. 누구 못지않게 조국과 전라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들과 제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전라도가 종북좌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그 해악이 전 국민에 미치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발소 아저씨도, 국밥집 아주머니도, 국밥집에서 만나는 지인들도’, ‘국회의원부터 자치단체 기초의원까지 모조리’ 좌파정당 일색인, ‘저울의 평형을 상실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리와 주장으로 살아가는 곳’ ‘정치이념의 일방통행만이 허용된 곳’에서 자유우파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다.전라도가 좌경화된 주된 원인은 ‘멸시와 천대’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과 분노라는 것이 정재학 시인의 진단이다. 그 피해의식과 적개심을 파고든 것이 바로 종북좌파세력이라는 것이다. 통일보다 더 크고 간절하고 시급한 소원이 국민통합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빨갱이들을 호남민중과 분리시켜야한다’는 주장이다. ‘전라도 내에 기생하는 북한추종세력들은 전라도 자유우파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전라도 출신 자유우파를 결집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쪼록 많은 전라도 출신들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한다.

2023-08-17

갑인일주(甲寅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한 번째는 갑인(甲寅)이다. 천간(天干)의 갑목(甲木)과 지지(地支)의 인목(寅木)은 같은 목(木)기운이며, 물상으로 보면 언 땅 위에 자란 굵직하고 힘찬 나무다. 강직한 인상을 준다. 동물로는 호랑이다.갑인일주는 나무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도끼가 부러질 정도로 강하다. 방해물이 있어도 머뭇거림이 없다. 말도 잘하지만 직설적이다. 하늘로 뻗어가는 나무처럼 올곧은 성격으로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기 일에는 적극적이며 일단 시작하면 고집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세상의 고난을 이겨낸 뒤 많은 것을 성취하는 기운이다. 좋은 결실에는 성패의 굴곡이 따른다.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독단적인 면이 있다.한편으로 사회활동에 많은 정열을 쏟아 붓는 성격으로 가정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성실한 데다 지도자 자질이 있어 자수성가형이다.갑인일주는 철학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편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신념과 내면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성향이 있다.이러한 성향은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기 벅차기에 단점이 될 수 있다.그렇기에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예민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을 한다. 즉흥적으로 결정을 하고 후회하며, 또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그러기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갖추어야 한다.중국 명나라 초기 유기의 ‘욱리자’ 영구장인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수라는 장사꾼이 강을 건너다가 배가 무언가에 부딪혀서 가라앉았다. 간신히 물 위에 뜬 널빤지를 잡고서 큰소리로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구해주기 위해 배를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장사꾼은 살았다는 생각에 “나는 이 강가에 사는 돈 많고 세력 있는 사람이요. 당신이 나를 구해주면 금 백 개를 주겠소”라고 말했다.어부가 그를 구해내서 강 언덕에 내려주자 장사꾼은 어부에게 금 열 개만 건네주는 것이었다.어부는 “당신이 금 백 개를 준다고 하지 않았소”라고 항의했다.장사꾼은 얼굴색이 달라지면서 “아니, 이 사람아. 자네 같은 고기잡이가 하루에 몇 푼이나 버는가? 잠시 수고하고 금을 열 개나 벌었으면서 적다고 투정하는 것인가?”라고 오히려 화를 벌컥 냈다. 어부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배를 저어 떠나갔다.그 후 어느 날 그 장사꾼이 물건을 싣고 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고기를 몰아들이기 위해 설치해 놓은 좁은 통로의 바위에 배를 들이받고 말았다. 마침 그곳에 지난번의 그 어부가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였다. 결국 그 장사꾼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뭍에 서 있던 사람이 “왜 장사꾼을 구해주지 않았소”라고 묻자, 어부는 “저 사람은 자기 입으로 준다고 했던 금을 주지 않는 사람이오”라고 대답했다. 욱리자는 “사람들이 장사꾼은 목숨보다도 재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기에 믿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정말로 그런 일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맹자도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어차피 사람이 가려서 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신용을 저버릴 경우 오히려 큰 우환을 만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갑인일주의 여자는 여장부의 기질이 있어 가정보다는 사회활동에 적합하다. 자존심이나 자기주장이 너무 뚜렷해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니 고독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남편보다 자식에게 애정을 쏟으며 사는 경우가 흔히 있다. 남자는 부인이 능력 있고 잘 생겼으며, 처가 덕도 본다. 허나 배우자를 무서워하고, 배려심이 부족하니 애정이 깊지 않다. 결과적으로 집보다 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내니 주의해야 한다. 남녀 모두 친구 같은 아내나 남편으로 서로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갑인일주의 인(寅)은 호랑이다. 울창한 숲에 있는 호랑이 형상이다. 활기찬 생명의 시작 즉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기운이며, 강한 활동력과 추진력이 있다. 모험심이 강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는 경향이다. 겉모습은 친해지기 어렵지만, 친해지면 다정하고 진중한 면이 있다.음 기운에서 양 기운으로 바뀌는 인시(寅時·새벽 3시)는 야행성 동물인 고라니, 노루, 사슴 등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이때 호랑이는 먹이 사냥을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배고픈 호랑이가 된다. 그러나 배고프고 고독한 호랑이는 어떻게는 살아남는 요령이 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이 세상에 말이 그냥 나오는 법은 없다. 속담에 ‘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물은 남아 있는 법’이란 말이 있다. 그 심한 갑인년 흉년에도 물은 남았다는 말이다. 또는 아무리 흉년이라도 물마저 말라 버리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제주도에는 물이 귀하여 이런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 제주도 방언으로 ‘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게 물이여’에서 온 것이다.배고픈 만큼 서러운 것이 없다. 우리들도 지난날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식탁에서 인사말은 ‘많이 드세요’다. 굶주림의 시대가 만들어 낸 인사말이다. 인간은 먹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가 힘이 든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마지막에는 항상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발생하니 유념해야 한다.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욕망을 ‘푸줏간 앞의 개’로 표현했다. ‘푸줏간 앞을 서성이는 개의 시선을 닮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눈앞의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과 푸줏간 주인의 시퍼런 칼이 두려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의 모습에서 인간은 욕망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젊었을 때는 욕망을 채우면서 살아야 하고, 늙어서는 부단히 욕망을 빼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

2023-08-16

윤명희 수필가 전화기를 쥔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 숨을 고르더니, 딸이 사는 옆집에서 청년이 죽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혼자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걱정인 친구는 가끔 집 주인에게도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편이다. 주인아저씨는 옆집 청년의 일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막을 술술 불었다.딸은 그 청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자고, 샤워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밤이면 또 그 집 앞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벽에 등을 대고 유튜브를 보며 지친 몸을 뉘었을 거라 생각이 들자 친구는 등이 가려운 듯 몸을 비틀었다. 차라리 안 들은 만 못했다. 주인에게 이 사실을 딸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린 딸이 알면 무섬증에 그 집에 다시는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했다.친구는 죽은 이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했을 딸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 전화하니 신호가 두어 번 가기도 전에 끊기고, 도서관이라는 짤막한 문자가 온다. 잘 지내느냐고 답문을 보냈다. 더 이상 대꾸가 없다. 별일 없지? 라는 문자를 또 보내보지만 딸은 그 문자를 읽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시 황망했을 청년의 부모 걱정을 했다. 멀리 있는 자식에게 온 신경이 가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세상 일이 내 자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정작 내 자식은 세상을 쫓아가느라 바쁘다.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는 친구의 말이 빙빙 돌아다녔다. 별일 없느냐는 말이 입안에서 몇 바퀴나 돌았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국은 있느냐고 물었다. 공부하다가 나왔다는 딸의 짜증 섞인 말이 폰 밖으로 튀어나온다. 며칠 전에 보내 준 것도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며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차마 그 얘기는 못하고 대신 보고싶어서라고 한다.“왜? 옆집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그 집에 어젯밤에 다른 사람이 새로 들어오는 것 같던데?”지난번 집에 와서 엄마의 밥이 맛있다고 했던 그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일요일 오후, 모처럼만에 종일 늘어지게 잤던 딸은 배가 고파 일어났다. 냉동실에서 엄마가 보내준 국 뭉치를 꺼내 해동부터 시켰다. 치약을 짜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사 후 처음 울린 초인종 소리에 놀랐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세면대에 올려놓고는 문 앞에 서서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치아교정용 보철을 한 그녀는 마스크부터 찾았다. 현관문 걸쇠를 한 채 문을 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다보았다. 두 남자의 신분증을 확인했지만 걸쇠를 풀지는 않았다.그들은 그녀에게 옆집에 사는 사람을 아는지 아니면 본 적은 있는지 물었다. 한 건물에 열 몇 가구나 살고 있지만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벽에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라던가 싸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고 또 물었다. 보철을 거쳐 마스크를 비집고 나오는 ‘아니오’라는 말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두 남자가 재차 물었다. 평소 몇 시에 집을 나가서 몇 시에 돌아오느냐는 둥 일거수일투족이었다.그녀는 옆집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사정 보다는 해동이 끝났다고 울리는 전자레인지 소리와 칫솔에 얹힌 치약이 욕실 바닥에 떨어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캐묻는 말과 짧은 대답이 몇 번 오간 후 경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외국인이냐고 물었다.그들은 그에 대한 대답은 듣지 않고 돌아섰다. 왜 자기에게 외국인이냐고 묻는지를 알 길이 없는 그녀는 커다란 눈만 끔뻑였다. 걸쇠를 걷어 젖히고 고개를 내밀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쳐다보았다.친구는 지금껏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딸에게 섭섭함이 몰려왔다. 원룸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사를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 친구에게 딸은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자기 시간을 뺏는다는 투로 말한다. 주변의 일에는 관심 가질 시간적, 마음적인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딸의 모습에 친구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디 딸의 문제이기만 하겠는가. 쓸쓸히 생을 마친 청년의 일이기도 한 것을. 커다란 벽을 마주한 듯 가슴이 답답하다.

2023-08-16

스카우팅, 누구의 일인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지나갔다. 낯선 이름의 국제행사에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이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부가 깊이 관여하였다. 스카우트운동은 민간사회운동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적인 수련활동이기는 하지만, 본질은 여전히 보통사람들의 자발적인 사회운동이다. 주로 야외활동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는 다양한 운동의 결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존능력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역량을 증진하며 공동체를 위한 봉사정신을 함양하게 된다. 필자의 오랜 해외경험에 비추어도 스카우트운동에 정부조직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그리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스카우트운동을 지켜보면서 지원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할 터이다.새만금잼버리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에 참여한 결과, 부정적인 부분에 대하여 책임소재를 놓고 시끄러울 판이다. 더욱 혼돈스러운 일은 책임 시비를 두고 정권이나 이념의 향배에 따라 편을 가르고 지방색을 극도로 드러내는 비난이 들리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바뀌어도 같은 나라이어야 하며 지방정부에 책임이 있다면 이를 밝혀 시정하면 될 일이다. 어느 나라의 문제와 책임은 그 나라의 것일 뿐 ‘특정한 정권의 나라’에 귀속하지 않는다. 사회공동체의 사안을 어느 집단의 사안으로 바꾸어 시비와 정쟁을 일삼으면, 해결책의 도출은 고사하고 논쟁과 싸움의 이전투구만 거듭하게 되어있다. 실익과 결과가 보이지 않는 아귀다툼은 멈추어야 한다.길에서 새만금잼버리에 참가하였던 유럽 국가 청년들을 만났다. 생생한 느낌과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들 사이에도 생각과 의견이 달랐다. 전반적으로, K-콘서트가 인상적이었던 반면 스카우팅 본질에는 미흡하였다는 인상을 전해 주었다. 더위는 견딜 수 있지만 그늘이 없었던 건 힘들었다고 했다. 자연적인 난관은 얼마든지 이겨낸다는 스카우팅 운동의 실체를 엿들은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잘 준비하였더라면 그리 실패할 것도 없는 잼버리였을 모양이었다. 그르친 책임을 묻고 새롭게 만들어 갈 다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과도한 정쟁으로 혼돈스런 광경이 연출되지 않았으면 한다. 스카우트운동의 본질을 다시 찾아가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민간운동을 정권다툼으로 퇴색시킬 수는 없지 않을까.‘준비하라.’ 스카우트운동의 슬로건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몸과 마음으로 늘 준비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다음세대 청소년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난관에 미리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이끄는 셈이다. 세계잼버리 행사가 늘 여름 한가운데 벌어지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폭염과 태풍 등 기후조건에 대하여 사전에 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처하였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운동의 본질을 잘 이해하였다면 행사의 운영에 보탬이 되었을 터이다. 국민은 정치권의 끝모르는 아귀다툼에 지쳐간다. 정치권이 진정성있는 돌파구와 해결책을 찾아내는 정치적 효능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2023-08-16

동물의 복지와 권리

홍석봉 대구지사장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3월 설문조사한 결과 ‘동물에게도 생명권 등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응답이 7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동물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사설농장 등에서 키우던 곰과 사자 등의 탈출 소동이 잇따르자 동물보호단체가 정부에 야생동물 사육 기준 강화를 요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대구 달성공원에서 탈출한 침팬지가 마취총을 맞고 숨진 데 이어 경북 고령에서 농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탈출 한 시간 만에 사살된 사건이 발생하자 야생동물 사육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사육 동물의 잇단 탈출은 관리부실과 열악한 시설 탓이 크다. 현재 전국 곳곳에 야생동물 사육·전시 시설이 산재하고 있으나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에서 탈출한 동물들은 대부분 사살된다. 산채로 포획되는 경우는 드물다.지난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사설 동물농장에서 기르던 암사자 1마리가 탈출했다가 농장 인근에서 출동한 엽사와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지난해 12월 울산시 울주군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3마리도 사살됐다.사자와 곰 등은 대부분 어린이 관람용으로 사육한다. 한때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불법 사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거의 자취를 감췄다. 여름철 몸보신을 위해 개를 잡는 풍토도 찾기 힘들어졌다. 사람과 똑같이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가둬놓고 구경하는 사설 동물농장 및 동물원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할 때가 됐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다. 동물의 복지와 권리까지 챙겨야 하는 세상이 됐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16

경북도 광폭외교, 지방외교시대 선도하길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국제화 노력이 필수다. 지방자치단체의 국제화 수준이 곧 지방도시의 경쟁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자체의 국제화 노력이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체육,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간의 교류 폭을 넓혀가는 것을 의미한다.코로나19 이후 파생한 경제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지금은 글로벌 도시간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중앙 정부에만 의존하던 외교시대에서 탈피해 지방정부의 독자적인 외교가 주목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국가 성장동력으로서 지방외교의 중요성이 인정받기 시작했고, 지속 가능한 지방정부시대를 열기 위해선 지방외교가 지방도시의 핵심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판매와 관광, 해외인력 유치에 이르기까지 지방외교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이철우 경북지사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으로서 지난 5월 전국시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방외교시대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이란 제목의 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방외교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방외교를 강화하는 데 전국의 지방정부가 앞장서자는 취지의 행사였다.이 지사는 연초 일본 오사카도민회 방문과 서유럽 방문 등 올들어 몇차례 외교세일즈를 펼쳤다. 일본 방문에서는 경북농수산물 수출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는가 하면 한일지사회 재개 등 지방정치외교 분야에도 관심을 표시했다. 지난 5월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방문에서는 경북 농산물 교역과 함께 새마을 운동 전파, 경북 관광 등을 홍보하기도 했다.경북도는 일본을 비롯 미국, 호주,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7개국 14개의 도민회가 결성돼 있다. 이들 도민회는 경북도의 해외 인적네트워크로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경북의 국제화, 경북생산 제품의 수출협력, 관광 등에 있어 소중한 자원이다. 이달희 경제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이 베트남 등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북도의 광폭외교가 지방정부 성장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2023-08-16

TK신공항 최종승인…착공절차만 남았다

정부가 지난 14일 국유재산정책심의위를 열고 ‘대구군공항 이전(기부대양여 방식) 사업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기부대양여 사업은 대구시가 새로운 군공항을 건설해 국방부에 기부하는 대신, 기존 군 공항 후적지는 국방부가 대구시에 넘겨주는 방식이다. 군공항 건설이후 착공되는 민간공항은 국토교통부가 국비로 짓는다.정부의 기부대양여방식 승인은 대구군공항(K2) 이전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정부가 군공항 이전 사업의 타당성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군공항의 이전을 위해 지난 2014년 5월 국방부에 이전건의서를 제출한 후 9년 만에 이뤄진 성과다. 이로써 대구경북 미래 50년을 좌우할 핵심사업인 TK신공항 건설사업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도 오는 26일부터 시행된다.이날 기재부, 국방부, 국토부, 행안부 위원과 부동산·금융·도시계획·건축 분야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한 국유재산정책심의위에서는 기부대양여 방식의 적정성을 심의한 후 총사업비를 11조 5천억 원 규모로 확정됐다. 역대 기부대양여 사업비 중 최대 규모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경제부총리겸 기재부 장관은 “신공항 건설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대구경북지역 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인근 주민들의 60년 숙원도 해결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긴밀하게 협의해 2030년까지 성공적으로 사업이 완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대구시는 이날 정부의 최종승인에 따라 군공항 이전사업에 대한 합의각서 체결, 사업시행자 지정, 사업대행자 선정 등 후속 행정절차를 최대한 앞당겨, 2025년 착공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경북 군위군 소보면과 경북 의성군 비안면 일대에 들어서는 TK신공항은 대구경북을 우리나라 중·남부권의 중심지역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제 착공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만큼, 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을 담당할 사업자를 잘 선정해서 지금까지 제시한 비전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3-08-16

월경통과 두통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여성이라면 초경 이후로 따라다니는 고통이 하나 있다. 생리관련 질환 특히 월경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은 아주 많다. 막 생리를 시작한 청소년부터 아이를 가진 여성까지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질환이다. 가임기 여성의 자궁내막이 주기적으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하여 증식하여 배아의 착상을 준비하는데 임신이 되지 않으면 자궁내막이 저절로 탈락되는데 이를 월경이라고 한다.자궁내막의 증식으로 복부에 불쾌감이 생기고 호르몬 변화로 인해 감정변화와 더불어 신체 변화가 나타나고 자궁내막의 탈락으로 인한 자궁근육의 강한 수축으로 복부의 통증 혹은 그 주위 골반이나 허리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 두통 어지럼증 구역 구토 위장장애까지 생긴다. 단순 자궁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증상이 생기고 주로 자궁이 있는 골반부 근처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한의원에선 생리전 증후군, 생리시 복통과 요통증이 심해서 내원하고 아주 심한 경우는 구토, 두통 혹은 전신 몸살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경우도 있다.자궁의 변화가 생기면 주변 허리쪽의 장요근 즉 대요근 소요근 장골근의 변화가 생기고 필연적으로 골반통과 요통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쉬어줘야 하는데 일을 하고 몸이 좋지 않은 현대인들은 그 고통이 심할 수가 있다. 보통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하고 오는 경우가 많으며 한의원에 오는 경우는 치료가 되지 않아 내원한다. 대부분은 10대에서 30대이고 이를 지나면 갱년기 쪽의 문제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진다.치료는 환자의 증상과 몸 상태에 따른 한약을 쓰게 되는데 기본이 간을 깨끗하게 하고 열을 내려 주는 시호관련 약재를 군약으로 쓰게 되고 추가로 어혈을 내려 주는 한약재를 같이 넣어서 처방을 한다. 한방에선 간과 자궁의 상관 관계를 아주 크게 보는데 간을 깨끗하게 하면 피가 맑아지고 피가 맑아지면 자궁이 깨끗해 진다고 본다. 보통 3개월 전후 복용을 기본으로 하고 치료를 하는데 대부분 이정도면 큰 고통은 없이 일상생활은 가능해진다. 아주 심하면 6개월까지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그리고 흔히 아는 복통과 요통만이 아니라 특이하게 생리때만 되면 극심한 두통과 구토 속미식거림 등을 호소해서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정말 고통을 많이 받는 경우로 사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좋아지는 경우가 없어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일반적인 약재를 써서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체력은 아주 약한 편이고 추위를 타고 손발이 차며 배가 차다. 한의원에도 소개로 오는 경우 말곤 보기 힘든 경우이다. 이럴 때는 오수유를 군약으로 하는 약재를 처방하면 탁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단점은 너무 써서 먹기 힘든데 보통 한달만 먹어도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확연히 줄어든다. 3개월 정도 복용 후 증상이 개선되면 일년에 한두번 보약을 먹는다 생각하고 컨디션이 떨어질 때마다 약을 복용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매운 음식을 금하고 단백질을 적당히 복용, 그리고 야채를 많이 먹으면 좋다. 탄수화물은 줄이고 설탕은 무조건 적게 먹으면 도움이 된다.

2023-08-16

무리하셨어요?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아침에 눈을 뜨니 어지럽고 메스껍다. 바로 일어나지 않고 잠시 앉아 있다가 끙차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도 바로 다시 주저앉는다. 한창 더울 때라 더위 먹었나? 도로 누웠다.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감싼 채로 한참을 엎드렸다. 난 아픈 신호가 항상 두통으로 온다. 그걸 아는 남편이었다. 바로 병원에 가자며 일으켜 세웠다. 가까운 내과에 갔다. 증상을 얘기하자 의사가 묻는다. 무리하셨어요? 그럴 일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진료를 받고 링거도 맞았다. 이틀 분의 약을 지어주면서 안정하란다. 며칠 후에도 나을 기미가 없자 이석증인 듯하여 오희종신경과엘 갔다. 지난주의 일이었다.무리하셨어요?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2005년 여름, 이때쯤이었다. 며칠째 밤을 새우며 논문을 썼다.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희붐해질 쯤에야 컴퓨터 모니터를 껐다. 기지개를 크게 켜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바로 쓰러졌던가 보았다. 새벽녘에 화장실을 나온 남편이 화들짝 크게 놀랐다. 응급실로 가서 뇌사진을 찍는 등 온갖 검사를 하며 호들갑을 떨었으나 큰 병이 아니라고 했다. 전정기관의 이상이 의심되나 별 치료 방법이 없다며 집에서 안정하란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하늘이 뱅그르르 도는데도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다. 며칠 후 남편이 용한 병원을 알았다며 데리고 갔다. 오희종신경과였다. 의사는 무리하셨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며칠밤을 샜다고 실토했다. 이석증이라는 병명을 처음 들었다. 신이하고 꼼꼼한 치료로 어지러움은 금세 말끔히 나았다. 깨끗해진 머리 덕에 신나게 운전하여 학교엘 갔다. 며칠만에 또 도졌다. 쉬라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또 한번은 2012년 겨울, 연말이었다. 입시며, 성적이며 한창 정신없을 때였다. 며칠째 열나고 오한이 들었지만 약을 지어 먹으면 낫길래 무시하였다. 어느 날 한밤중 이를 딱딱 마주치는 사정없는 오한에 정신을 잃었다. 식구들이 혼비백산, 응급실로 날랐다. 치료를 받으면 나았다. 낮엔 일상생활을 했고 밤이 되면 또 열에 들떠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외래진료를 받으라고 했으나 처리할 일이 태산이라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학교의 급한 불을 끈 뒤 퇴근길에 내 발로 느긋하게 병원을 찾았다.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의 호통이 매서웠다. 며칠 새 병을 크게 키웠고 신장 수술할 수도 있다고 했다. 2주간 입원했으나 호전되지 않자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그제야 내 몸 돌보지 않은 후회를 했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다. 병소(病巢)는 남아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들었다. 그때 역시 의사의 첫 문진은 무리하셨어요?였다.일 욕심이 많긴 했다. 한창 일할 때는 다소 무리했음을 부인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이제, 은퇴 후 이렇게 느긋하게 놀고 있는데 무리라니 어이가 없다. 일주일에 3일 손녀 유치원 등하원 도와주기. 일주일에 한 시간 자원봉사와 두 시간 영화공부하기. 주말에 모두의 집에 가서 풀 뽑고 텃밭 가꾸기. 병든 강아지 수발들기 정도가 일상의 전부다. 최근 일주일 두 시간 서예공부 시작으로 기분좋은 흥분에 마냥 들떠 있는데 이게 어찌 무리인가. 몸이 쾌청하지 않으니 별 서운한 생각이 다 든다.

2023-08-16

‘수도권 총선위기론’에 무덤덤한 집권당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총선 이슈가 ‘영호남 민심’을 건드리는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예민한 이슈에 불을 붙였다. 그는 최근 SNS에서 양산 평산마을과 전남 구례 양정마을 자매결연 소식을 전하며 ‘영호남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퇴임 후 정치에선 손을 떼겠다던 전직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가장 자극적인 정치적 이슈를 언급한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새만금 잼버리 파행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하며 “세계 엑스포 부산 유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본다”고 말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PK(부산·울산·경남)지역민의 ‘반(反) 정부정서’를 자극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산지역 여당 국회의원들은 “민주당이 엑스포 유치에 재를 뿌리고 있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내년 총선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이 또 쟁점화되면 여당에 이로울 게 없다. ‘민주당이 은근히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를 바란다’는 여론이 형성된다고 해도 국민의힘 의석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가 대유행한 상황속에서 진행된 21대 4·15 총선때도 진보진영은 ‘대구손절’‘대구봉쇄’ 등의 막말을 쏟아내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그 결과 21대 총선은 사상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진보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조직력을 굳히며 180석의 의석을 차지했다.집권당이 지금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문재인의 입’과 ‘잼버리 파행’이 아니라, 수도권 위기론에 대한 대응이다. 21대 총선(2020년)의 최대 승부처도 수도권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당의 수도권 의석은 18석으로 민주당 97석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경기·인천 현역 의원의 80%는 민주당 소속이다. 총선현장을 취재해보면, 현역 의원들의 조직력과 자금력, 홍보전략은 정치신인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다선 현역의 경우, 재정후원회와 세분화된 조직력이 아주 탄탄하다. 지역구 사무실도 별도로 있어 주민들과 상시 접촉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이 최근 “대부분 수도권 국회의원이 민주당이다 보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그들과 대항해 싸우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한 말은 집권당이 절대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국민의힘은 집권 초부터 내부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김기현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거대 야당을 상대할 전략과 혁신이 거의 안 보인다. 그러니 당 외연을 막는 울타리가 더욱 단단해지고, 경쟁력 있는 인물들이 바깥에서 겉도는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부산도 위험하다”고 말했다.여당은 여소야대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부터 당의 확장성을 위해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 수도권, 중도층, 2030세대가 지지할 수 있는 혁신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혁신을 주도할 스타급 인물, 예를 들어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 같은 비판적 지지그룹을 당이 흡수해야 한다. 지지율이 30%대에 갇힌 윤석열 대통령 측근 인물들을 중심으로 공천리스트를 작성할 경우, 당의 확장성은 ‘제로’가 된다.

2023-08-15

올드보이 논란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5세다. 국제의원연맹(IPU)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국회 평균연령은 G20 국가 중 3등이다. 미국 58.4세로 가장 높고 일본 55.5세, 다음이 우리다. 가장 낮은 이탈리아보다 10살 정도 더 높다.각 계층 대변을 국회 평균연령으로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위연령(43.2세)과 비교해 볼 때 10살 이상 차이가 나 국회의 평균 연령대가 높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국회의 평균연령이 높다는 비판은 이미 많았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평균 40대인 것과 비교할 때 더 그렇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노령화 추세에 비춰 볼 때 장차는 국회의 평균연령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문제는 고령보다 고령의 정치가 젊은 정치인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21대 국회의 2030의 비율은 고작 4.3%다. 전체 중 2030세대가 13명 정도다.최근 미국에서도 장로(長老)정치라는 단어가 뜨거운 논쟁거리라 한다. 미 상하의원 중 20여 명이 80∼90세의 고령에도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81세 바이든 대통령과 77세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기 대통령 출마가 유력하자 올드보이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넘어지는 실수를 범해 이런 우려를 키웠다.최근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고령의 다선의원 용퇴를 촉구해 논란이 일었다.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선출직은 선거로 심판을 받는다”며 반박을 했다.나이만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음과 패기에 맞서는 연륜과 노련함도 있어야 한다. 정치권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5

‘잼버리 파행’ 정쟁화하면 진상 못 밝힌다

154개국에서 4만3천명이 참가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지난 11일 K팝 콘서트를 끝으로 마무리 됐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행사 첫날인 지난 1일부터 전북 새만금 야영지에서 폭염으로 인한 환자가 속출했는가 하면, 참가자들은 편의시설 미비와 비위생적인 음식 등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영국·미국 참가자들이 조기 퇴영하며 국제적 망신을 샀다. 파행원인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여야가 현재 치열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중앙정부는 전북도를 탓하고, 민주당과 전북도는 중앙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비난하고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대통령실과 여권 내에서 ‘지방시대’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점이다. 잼버리 파행 사태로 인해 윤석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북도 공무원들이 잼버리 준비를 명목으로 따낸 국가 예산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지방정부의 도덕성 부패가 쟁점이 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잼버리 사태 수습을 도와준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난한다면 앞으로 지방자치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와관련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일부 지자체의 문제로 시대적 과제인 지방시대 자체가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한덕수 국무총리와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지난 14일 잼버리 사태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잼버리대회에는 직접 사업비만 1천171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철저한 책임 규명은 필수적이다. 감사원은 여성가족부에 대한 감사를 담당하는 사회복지감사국을 중심으로 잼버리 파행에 대한 감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르면 이달 중 감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대상은 잼버리 조직위에 소속된 여가부와 전북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당초 안정화된 매립지를 두고 부적합 곳을 부지로 선정한 이유부터 예산 집행 과정, 조직위 운영 실태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잼버리 사태를 정쟁화해서 감사원 진상규명을 방해해선 안 된다.

2023-08-15

군위 등 특별재난지역 선포, 신속 복구를

정부는 태풍 카눈으로 피해를 입은 대구시 군위군과 강원도 고창군 현내면을 특별재난지역으로 14일 선포했다. 또 지난 7월 집중 호우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예안면, 녹천면과 상주시 동문동, 전북 군산시 서수면 등 전국 20개 읍면동과 충북 충주·제천시 등 7개 시군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지정했다.특히 대통령실은 이와 별도로 지난 4월 이상저온과 서리 등 냉해로 꽃눈 고사 및 착과 불량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경북 의성군, 청송군 등 2개 군과 경북 영주 봉현면, 안동 길안면 등 전국 15개 읍면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농작물 피해에 따른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역사상 처음이다. 농작물 냉해는 그 피해가 서서히 나타나는 특성이 있어 정부는 농가 신고누락을 줄이고자 피해신고 및 확인기간을 연장한 바 있다.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과거와 달라졌다. 통상 중대본의 합동조사가 2주 이상 소요되는 불편을 줄이고 신속히 결정되며 추후라도 피해가 드러나면 추가 선포도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또 농작물도 피해 대상으로 삼은 것도 달라진 점이다.잦아지는 자연재해에 대해 정부가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기후변화로 지금 지구촌은 각종 재앙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응력도 특별하게 달라져야 할 때다. 피해보상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피해를 줄이는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에도 인명피해나 재산상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전 국가적 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시설에 대한 사전 관리와 주민들의 사전대피 등이 주효했다.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국세와 지방세 납세 예외 등의 지원이 따른다. 이제는 신속한 복구를 통해 주민들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일이 재난지역 선포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다. 지금부터는 해당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파손된 시설 등을 복구하고 피해주민의 불편함을 챙기는 적극적인 행정이 발휘돼야 한다.

2023-08-15

필묵의 텃밭, 꾸준한 먹빛 솎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철이나 여름날 비가 잦게 되면 들판에 도사리던 잡초의 복병이 일제히 일어서며 진을 치게 된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이곳저곳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가지 풀로, 뽑고 뽑아도 질기고 끈덕지게 농작물 따위의 다른 식물이 자라는데 해(害)를 끼치게 된다. 잡초, 즉 잡풀은 사람에 의해 재배, 관리되지 않는 잡다한 풀로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식물이라 할 수 있다.잡초나 잡목 같은 것은 논밭이나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나 마음의 밭에도 얼마든지 잡스러움이 튀어나와 쑥쑥 자라며 옳고 바른 일들을 방해하고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잡념이나 잡담 등 쓸데없는 생각이나 말들이 언행에 민망함을 주는가 하면, 잡종이나 잡상(雜常)스러움은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쳐서 불미스러움이나 낭패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春日傷悲如草長/何時得91E4刈心庭)’라고 읊었던가.서예창작활동은 어쩌면 붓과 먹의 언저리에서 무수히 돋아나고 비집어 드는 잡다한 풀 같은 불순(不純)함을 걷어내는 지난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비탈진 선지(宣紙)의 밭뙈기에 무딘 붓의 날(刃)로 먹을 찍어 점과 획의 골을 타서 필묵의 밭을 일구며, 생동하는 글과 향기로운 글자의 숲을 이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묵향으로 텃밭을 일구듯 순백의 설원 같은 화선지에 싹을 틔우는 몸짓으로 붓이 노래하고 먹을 춤추게 하는(筆歌墨舞) 먹빛의 향연을 줄기차게 펼치는 것이리라.‘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줄기//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들끓듯 뿜어진 먹빛/눈부신 침묵이어라’ -拙시조 ‘먹빛 솎기’중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농작물이 자라듯이, 글밭(書田)에 어리는 먹의 새순(荀)들은 꾸준하고 한결같은 붓질에서 비롯된다. 부지런히 먹을 갈아 줄기차게 붓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먹물의 거침없는 번짐과 주체 못할 난감이 잡히고, 붓놀림의 잡기같은 난삽하고 생경한 서체의 행색이 차츰 유려해지지 않을까 싶다. 꽃솎기나 적과(摘果)로 실한 열매를 기약하듯이, 먹빛 솎기는 필묵의 절제와 숙성을 가늠한다.붓과 먹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먹빛 솎기를 수십년 일삼아온 전국의 중진 서예가들이 ‘월간 서예문화’가 주최하는 KOCAF ‘筆墨의 世界化展’에 초대되어, 오늘부터 1주일간 서울 인사동에서 먹빛의 향연을 펼치게 된다. 문화와 트렌드의 중심인 서울에서 작가 나름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한국서예의 새로운 아이템과 발전적인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쉼 없는 먹빛 솎기는 필묵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함에 이르는 길이다.

2023-08-15

20대의 실상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휴학이나 자퇴하는 경우 학과장과의 상담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학과장 보직을 맡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명의 자퇴생, 그리고 다수의 휴학생과 (비) 대면상담을 해야만 했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자퇴나 휴학하는 경우는 서로 기분 좋게 상담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지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분 좋은 상담보다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두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았다. 올해 초 학기가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2023학번 여학생이 찾아왔다. 어딘가 불안한 학생들이 그러하듯 눈은 나를 피해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학교에 있는 것이 불안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도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신과에 입원한 적도 있고 치료도 오래 받았다고 담담히 말하는 학생에게 내가 더 해줄 말은 별로 없었다.또 다른 학생은 1학기 종강을 4주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찾아온 경우다. 도저히 힘들어서 학교에 있기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이제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힘내보자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조용히 자기의 팔목을 보여주었다. 자해 흔적이 선명한 팔목을 보고 나는 애써 당황한 표정을 지우며 이유를 물었지만, 당시 그 학생이 뭐라 답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 심신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학교에서 보자는 말을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전했지만, 정말 그 학생을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2023년 3월. 정부는 최초로 청년(만 19세~34세) 삶 실태조사 통계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거의 집에만 있는 청년 비율이 2.4%, 약 24만 4천 명으로 나타났으며, 은둔의 이유로는 취업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제시되었다. 일본의 은둔형 청년이 전체의 1.8% 수준이란 점을 고려할 때 대단히 높은 수치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그냥 쉰다는 청년이 65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이유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2022년 대한민국 전체 실업률이 2.9%인 점을 고려한다면, 청년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청년들의 이런 삶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일 것이다.최근 신림동 살인사건, 서현역 살인사건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며 경찰이 특별대책을 발표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섰다. 시내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과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당연히 ‘묻지마 범죄’에 대한 엄벌과 예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우기 어려운 사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않았을 뿐, 우리 주위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이 많다는 점이다. 고립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근 발생한 일련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다.

2023-08-15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강박과 불안을 저 멀리로 보내고 싶어진다. /언스플래쉬 태풍 카눈이 몰려오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있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지만 나는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우산을 썼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옷이 잔뜩 젖어 버스 가죽 시트에 앉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버스 안에선 실시간으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 뉴스 기사를 읽었다. 안타까웠다. 왜 절망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와 안그래도 고통 속에 머무는 인간의 삶을 휘저어 놓는 걸까. 아직 읽지 못한 피해 기사가 수두룩했지만 휴대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 태풍의 절정에 다가서는 듯 버스는 바람에 거세게 흔들렸고 차창에 부딪히는 물방울은 소란스러웠으며, 두통이 또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버스 2개를 마저 갈아타고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작은 섬 영종도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 간단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흰색 이불을 몸에 덮고선 거센 바람과 빗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바깥과 달리 방 안의 낯선 적막이 온몸을 휘감아 소름이 돋았다. 시계를 보니 대략 한 시 반. 평소 이 시간에는 오후 업무를 다시 해내기 위해 억지로 커피를 들이켜고 있을 시간이었다.휴대폰의 전원을 끄고선 안개가 내려 앉아 먹먹히 젖은 바다와 빗소리로 부산스러운 영종도의 풍경에 귀를 기울였다. 현실의 고단함을 이렇게 외면하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싶지만, 어떤 상황은 정면 돌파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인내하는 것에서부터 해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겨우 떠올려보았다.낯선 공간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집에서부터 챙겨온 김영민 저자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꺼내들었다. 손길이 가는대로 아무 장이나 펼쳐 보았더니 시시포스 신화 이야기로 글이 시작된다.꾀가 많고 교활한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된다. 하지만 시시포스는 자신의 못된 지혜를 이용해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린다. 곧이어 속임수가 발각되었고, 신을 속인 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김영민 저자는 이 신화의 이야기를 꺼내오며 ‘시시포스와는 달리 권태를 이기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돌을 아래로 굴린다’고 말한다. 생은 본래 허무하며, 외려 인간은 허무함을 잊기 위해 반복되는 노동을 자처한다는 것이다.이어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아닌 즐기는 노동이 되어야 그나마 노동은 삶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은 신산한 삶을 견디게 하는 레시피다. 슬픔이 닥칠 때는 절망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언덕을 오르는 중이라 생각하라’고 말한다.너무 당연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생의 허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을 땐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라’는 말이 듣고 싶어진다. 김영민 저자의 말처럼 ‘쉬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리곤 그가 말하는 ‘소극적으로 쉬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쉬어야 쉬어진다.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허무를 받아들이는 여유와 마음의 탄력을 상기해보는 것이다.스멀스멀 밀려오는 강박과 불안을 파도 소리에 실어 저 멀리, 도무지 내가 떠올릴 수 없는 곳까지 밀려 보내본다. 하지만 그럴수록 역설적이게도 나를 괴롭힌 허무와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낼 수 있는지, 허무를 어떻게 더 길들이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열렬한 고민에 빠져드는 것이다.왜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행복해져야 하는가? 일상의 허무를 잊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왔으나 실은 막연한 행복에 기대지 않고 구체적으로 허무를 대하는 법에 골똘해지기 위해 이곳에 당도한 것임을 깨닫는다.사방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고 비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그쳤다. 풍경이 조금 더 선명히 보이고 해변가에는 폭죽을 터뜨리는 이들이 보인다. 발코니에 앉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작은 소음을 지켜본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생의 의문들이 싸구려 폭죽처럼 낮게 솟아오르다 힘없이 꺼진다.그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보기 위해 얇은 겉옷을 걸치고 의자를 고쳐 앉았다. 쉼이 시작되고 있다.

2023-08-15

이것이 K잼버리다

서울 시내에서 본 스카우트 대원들. 지난주 월요일, 을지로에 나왔다가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폭염의 광장시장 앞에 퍼질러져 있는 광경을 보고 측은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스카우트 스카프를 매고,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영락없는 난민 꼴이었다. ‘엑소더스’에 성공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고 있었다간 태풍에 풍비박산 났을 테니 말이다.새만금 잼버리가 종료됐다. 153개국 4만3천여 명 청소년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 행사는 다른 의미로 ‘역대급’이 됐다. 천억 원 넘는 예산을 어떻게 사용한 건지 뭐 하나 제대로 준비된 게 없었다. 기록적인 폭염 가운데 그늘 하나 없는 풀밭에서 잼버리 대원들은 온열 질환과 모기, 개미 등에 시달렸다. 열사병 환자들이 속출했지만 의료 지원은 미비했고, 열악한 야영 환경에서 세계 청소년들의 종아리에는 벌레 물린 수포 자국이 가득했다. 청소가 이뤄지지 않은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나고, 인원수 대비 턱없이 부족한 샤워장은 비좁은 데다 수압까지 약했다.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만큼 후진적이었다. 그 와중에 단독 입점한 GS25 편의점은 바가지 상술까지 부렸다. 총체적 엉망진창. 전체 예산 1170억 원 중 야영장 시설 조성에 쓴 돈은 129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날카로운 감사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새만금에서 잼버리를 개최한 것부터 난센스다. 새만금은 끔찍한 생태 학살의 현장이지 않은가? 자연의 보고인 갯벌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바다 숨구멍을 막아버린 곳이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주장하는 잼버리 정신을 완벽하게 위반한다. 뉴스에 보도된 현장 영상과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 같은 데다 천막을 쳐놨다. 애초에 장소 선정부터가 틀려먹었다. 이 파행을 예상 못했을까? 게으른 관료주의는 아마 ‘들판에서 텐트치고 애들 놀다 가는 거’ 정도로 잼버리를 얕잡아봤을 것이다. 돈 잔치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전 세계적인 개망신을 당했다.정부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조기 퇴영한 대원들을 서울로 불러 시티투어 버스 태워주고, 경복궁 구경시켜주고, 홍대 기숙사에서 재우고, K팝 콘서트를 보여줬다. 다른 지자체들도 거들었다. 잼버리 대원들은 악몽 같은 새만금을 잊고 부산 광안리에서 해수욕하고, 드론쇼 보고,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 머드 축제 즐기고, 전국 각지에서 템플스테이, 레고랜드, 민속촌 관광 등 다채롭게 놀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위기 대응은 ‘K스러움’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인간성이 결여된 디지털 콘텐츠, 규격화된 관광 자원, 자연과의 불화, 자본이 급조해낸 문화 양식 등이다. 나는 새만금 잼버리보다 ‘폭망’한 잼버리를 수습하기 위한 ‘K관광’이 더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 잼버리를 고작 단체 패키지 관광, 애들 수학여행으로 전락시켰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급히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없었겠지만. 다른 나라 대원들과 함께 교류하며 협동심과 이타심을 발휘하고, 도시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불편함을 낭만으로 바꾸는 씩씩함이 잼버리 정신임을 떠올린다면 실내 체험 행사와 도시 투어, K팝만을 내세운 대응은 아쉽다. 국가별로 뿔뿔이 흩어져 노느라 ‘잼버리 공동체’는 조각나고, 대자적 기억 대신 개개인의 즉자적 추억만 남았다. 캠핑 인구가 700만 명이나 되고, 육군이 사계절 야영 훈련을 하는 ‘야영 강국’ 대한민국인데, 잼버리의 취지에 보다 부합한 대책은 없었을까?“여러분은 시련에 맞서 이것을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으로 맞바꾸었습니다. ‘여행하는 잼버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흐메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의 폐영식 발언에는 뼈가 있다. ‘시련’, ‘특별한 경험’, ‘여행하는 잼버리’에 밑줄치고 싶다. ‘K잼버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늘 없는 새만금이 아니라 관료주의의 빈곤한 상상력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효율과 가성비 지상주의다. 호방하고 장쾌한 데가 없이 모든 문화가 비좁고 답답하다. 땡볕의 간척지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난개발은 우리에게서 자연을, 자연과 어울리는 낭만을, 숲과 반딧불을, 맑은 공기를, 조화와 연대의 감각을 앗아가고 협소한 생활과 작위적인 문화만 남겨뒀다.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칼부림 사건과 잼버리의 파국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이 가까울 것이다.

2023-08-15

“내 새끼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말해라.” 한 교육부 사무관이 자식의 담임교사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 충격을 던졌다. 보도에 따르면 한 사설 자녀 교육 지도 단체가 부모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유사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양육하라고 부모를 교육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왕의 DNA’를 가진 아이가 그 공무원의 자식만이 아니다. 그 반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런데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니 자기가 실천할 것을 교사에게 요구하는 난독증(難讀症)인가. 자기 아이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전파하는 건가. 그는 “나는 담임을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압박하고, 실제로 직전 담임교사를 직위해제 시켰다. 이런 사람이 교육부 고급공무원이라니 더 어이가 없다.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황상 학부모의 갑질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의심한다. 전국의 교사가 분노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영화 제목에나 써먹는 말이 됐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건 케케묵은 잔소리다. 스승에게 주먹질하는 세상이다. 버릇없는 학생을 훈계하지 못하고 참으며, “내 새끼 아니다”라고 주문을 왼다고 한다. 스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우리 사회에 분노가 가득하다. 취업이 안 되는 사회적 원인이 크다. 휴대폰에 갇혀 가족이고, 친구고, 대면 소통이 단절된 기술적 요인도 있다. 그렇지만 의사가 치료해야 할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누군가는 사회 규범을 가르쳐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개인의 쾌락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고, 작은 어려움은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야 한다. ‘왕의 DNA’를 가지고, 안하무인인 아이들만 설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나.자식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도 가장 큰 약점이 자식이다. 몰래 자식에게 재산을 넘기려는 사람, 자식의 교육·병역·국적·취업을 위해 편법을 쓰는 사람…. 아득바득 불법으로 재산을 불리는 것도 결국 자식을 황제로 살게 하겠다는 욕심 아닌가.대통령들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 씨가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임 중 아들을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러려고 대통령 됐느냐”라며 울었다고 한다. 그는 회고록에서 “진작 해외에 내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라고 썼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아들 삼 형제를 모두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야당 총재 시절에도 아들에게는 엄하게 하지 못했다. 장남 홍일을 권노갑 전 의원 지역구이던 목포에 공천하면서,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라며 반대 의견에 입을 막았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것도 자식 문제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어느 날 정상문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와 돌처럼 굳어진 얼굴로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아들) 건호가 관련되었다는 500만 달러, 아내가 받아 쓴 3억 원과 100만 달러’(자서전 ‘운명이다’) 문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그때만 해도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쓴 것인지 몰랐다”라고 썼다. 역시 자식 문제였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집안이 풍비박산한 가장 큰 배경도 자식 사랑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최순실 씨의 딸 사랑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보고 배운 이후다. 그런데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린다.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평생 두 딸에게 재산을 다 쏟아부었지만, 가난뱅이가 되자 외면당하는 노인 이야기다. 두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뒤늦게 고리오는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죽음을 준다”라며 정곡을 찌른다.자식 사랑을 나무랄 순 없다. 하늘이 정한 본능이다. ‘딸 바보’, ‘아들 바보’가 미담일 수 있다. 그래도 내 새끼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으로 존경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