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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게 안부를

등록일 2024-08-04 19:53 게재일 2024-08-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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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시인
이희정시인

여름아, 반찬이 쉽게 상하는 계절이 되었어

이런 계절이 되어서야

겨우 답장을 한다

종이와 펜은 넘쳐나는데 마음이 도착하지 않아서

겨우의 자리에 많은 것들을 고이게 만들었어

겨우의 자리는 어떤 곳일까

모든 것엔 제 자리가 있고 그건 결코 슬픈 일이 아니지만

어쩐지 겨우는 영원토록 제자리만 맴돌 것 같고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 가까스로….

내가 사랑하는 부사들을 연달아 적으며

그것들의 겨움을 또한 생각한다

여름아, 왜 어둠을 말할 땐 내린다거나 깔린다는 표현을 쓸까

어제는 야광운을 찍은 사진을 봤어

야광운의 생성 조건은 운석이 부서진 가루와 초저온이래

부서짐과 추위의 결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된 것

그것들을 아무 죄의식 없이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이 올까

상한 반찬을 버리면 깨끗한 식탁을 가질 수 있을까

-안희연,‘야광운’부분 (‘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일기예보는 연일 폭염을 경보한다. 아이들은 연신“더워죽겠어요”라는 말을 쏟아낸다. 온몸에 흐르는 땀처럼 말이다. 해서 답해주었다,“여름이니까.” 그런데 진정 여름을 여름으로만 답할 수 있을까.

안희연 시인(1986~)이 호명하는 단어들은 모두 애정어린 겨움을 지니고 있다.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 가까스로….” 의미심장한 부사어들을 연달아 적으며 겨움의 안쓰러움을 상기한다. 시를 가만히 따라가 보면 유독 언어 표현의 세밀함에 감탄하게 되는데, 한 단어도 허투루 놓인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여름이라는 대상을 한 존재로 대상화하고 있다. 제목으로 올린 ‘야광운’의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멀리 두는 방식으로 본질에 밀착하는 기예의 깊이를 힘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가 한 존재, 여기서는 여름이 되겠다. 여름이라는 존재를 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세상 모든 모종을 향해 열려 있으되 충분한 교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절대로, 도무지, 결단코, 기어이, 마침내, 결국….//그런 말들은 다독여 재우고//여름아, 이제 나는 먼 것을 멀리 두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내가 나인 것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안희연의 시는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순간을 통해, 삶이란 한 사람의 것이 아님을 체감하게 만들며, 그러한 연결의 감각이 서로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는 독해를 경유하며 이번에는 ‘절대로’‘도무지’‘결단코’‘기어이’‘마침내’라는 종결의미의 부사어들이 안간힘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힘을 빼고 지나온 겨움의 연약함을 결국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강한 의지가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우리의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다. “상한 반찬을 치운다고 우리의 식탁은 깨끗해질 수”없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직감하고 있다. 보통 밤에는 구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행성에선 밤에도 빛을 향해 하늘을 밝히는 야광운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대기 오염의 결과라고 이것이 주는 불안감은 시인이 열거한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의 여름과 같은 사실로 귀납된다.

여기서 여름은 점점 틈입해 들어오는 경험의 편린이 아니다. 부서지고 쪼개지는 파괴에 힘을 다해 맞서는 저항의 태도이다. 이 시에서 야광운은 공포감을 가졌지만 이어지는 단어들은 치유감을 지녔다.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잊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쓴 시어들이 결국 비극의 구멍을 메운다.

먼 것은 멀리 두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시에 담긴 감동의 태반(太半)은 안간힘이라는 저항의 겨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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