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가 숨가쁘게 흘러갔다. 일요일부터 다시 일요일이 올 때까지 무엇인가 내 삶에서는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올바름을, 원칙을 따라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눈 감고 포용하는 길을 택해야 하나?
옛날에 나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내게 남의 흉허물을 드러내지 말라 하셨다. 따지지 말라 하셨다. 그렇게 하면 인생을 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자식이 어렵고 힘들게 살까 걱정하신 것이었다.
화요일쯤이었나? 한 밤, 두 밤을 뜬눈으로 새다시피 한 판에, 파주의 후배 작가 작업실로 수박을 커다란 것을 하나 들고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택시를 타고 갔다. 거기에 작가 몇 사람이 모인다고 놀러오라 했었다. 몸은 너무나 피곤한데,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서 아예 잠을 잘 수 없는 상태, 잠깐만이라도 정 많은 친구들 만나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한 삼십 분 앉았다 돌아온다는 것이 두세 시간을 그대로 눌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퀴즈를 내듯 후배 친구들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하고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했다. 올바름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음을 깨닫는 나이, 더구나 그 올바름을 취한다면 사람을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몇 살이라도 젊은 친구들인데, 모두들 내가 더 어려워질 것을 걱정들을 했다. 이미 많이 늦었으니 판을 벌리는 것보다는 그대로 사람을 사는 쪽을 택하라는 것이었다. 지혜가 담긴 의견들이었다.
파주 헤이리의, 이 작업실 주인은 요리 솜씨가 아주 좋았다. 모인 사람들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해두었고, 내가 가자 서둘러 조리를 해서 다시 내주는데, 와인 한 잔 하기에 안성맞춤 멋진 음식들이었다. 이미 모인지 꽤 되었지만 내가 가자 무슨 일인가로 긴장해 있던 분위기가 더 풀린 것 같았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속에서 좋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편안한 것도 없다. 우리는 꽤 오래,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때부터 서로 가까워진 사람들이었다. 어려울 때 서로 가까워진 사람들은 사이가 쉽게 나빠지기 어렵다. 어려울 때 쌓인 정이 깊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불광동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몸이 천근이었다. 일산이 집인 후배와 같이 다시 택시를 타고 바래다주고 집으로 오기로 했다. 이 친구는 아직 자리를 옮겨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차 안에서 다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구했다.
이제 혼자였다.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건만.
그러나 두날째 밤을 새다시피 한 정신이 맑아지고 차분해졌다. 감정을 앞세울 일도 아니고 사리에 맞게, 일이 생긴 대로, 이에 맞게 대처하면 될 뿐이었다.
이 일은 결국 올바름을 쫓아 문제를 풀어나가겠지만, 사람은 결코 올바름만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사람은 각기,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사람이 결코 같지 않다. 사람마다 올바름이 같지 않을 수 없고, 내 올바름이 객관적으로 올바른 게 아닐 수도 있다.
끙끙 속앓이를 하며, 나는, 그래도 사람은 올바름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하고 애써 내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