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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철근 누락 순살아파트 대구경북에는 없을까

지난 4월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의 원인으로 드러난 철근 누락의 무량판 구조 아파트에 대한 부실시공 논란이 전국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구와 경북서도 일부 아파트단지가 무량판 구조로 시공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토부 조사 결과에 따라 지역에 건설된 아파트 가운데 철근이 빠진 부실아파트가 없다는 보장이 없어 걱정이다. 국토부가 2017년 이후 공사 중인 전국 293개 아파트단지에 대한 긴급 전수조사에 나섰으나 그 가운데 64%가 이미 입주한 것으로 확인돼 부실시공 여부 판명에 따라서는 파장이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작년 외벽이 붕괴된 광주 화정아파트 역시 무량판 구조로 설계됐고,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도 무량판 구조다. 화정아파트 사고 이후 건축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의 특성상 연쇄붕괴에 의한 인명사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했으나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사고 위험성이 상존했다.무량판 구조는 보없이 기둥만으로 하중을 버티는 구조여서 철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의 벽체 구조보다 주차공간을 넓힐 수 있어 최근 대규모 단지 위주로 많이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건물을 버티는 철근이 빠지면 상상할 수 없는 큰 사고를 낼 수 있어 이번 사고는 생각만해도 아찔하다.LH가 발주한 아파트단지 91곳 가운데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을 두고 일각에선 LH의 고질적 전관예우가 사고의 배경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5년간 LH 2급이상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에서 203건 2천319억 공사를 수주한 것은 이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지역에 건설된 아파트에 대한 안전성 조사에 나서 주민을 안심시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파트 부실시공은 주민 재산손실은 물론 생명을 위협하는 민감한 문제이기에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부실시공 과정에 문제가 된 기관과 개인이 있다면 응징조치도 취해야 한다.세계 10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후진국형 건설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023-08-02

라이브 커머스의 질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채팅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상품을 소개하는 스트리밍 방송인 ‘라이브 커머스’가 신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실시간 방송 판매’를 하는 라이브 커머스는 생방송 진행 동안 이용자가 채팅을 통해 진행자나 다른 구매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구조다. 소비자는 방송 진행자에게 채팅 글을 남기며 궁금한 것을 묻고 진행자는 소비자의 질문에 말로 답한다. 다른 구매자들도 방송을 보면서 자유롭게 글을 남기며 물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온라인에 입점한 사업자는 누구나 손쉽게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품 구성과 판매의 폭이 넓다. 방송 중에는 제품 소개뿐만 아니라 일상 공유, 질문과 답변, 현장 이벤트 등이 다양하게 이뤄진다. TV 홈쇼핑보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율이 높다. 소통과 쇼핑을 결합해 재미와 관심을 높였다. 비대면 온라인 쇼핑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즉석에서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어 소비자 반응이 뜨겁다. MZ세대 취향에도 맞다. 그들이 주요 고객이다.네이버의 ‘쇼핑라이브’, 카카오의 ‘톡 딜라이브’, 티몬의 ‘티비온라이브’등이 대표적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이다.교보증권에 따르면 국내 라이브 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0년 4천억원에서 2021년 2조8천억원, 올해는 1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업은 성장세지만 아직 인지도가 떨어진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자료에 의하면 현재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온라인 쇼핑에서 2% 수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아직은 갈길이 먼 셈이다. 경북도는 얼마 전 자체 쇼핑몰 ‘사이소’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해 호우피해 모금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라이브 커머스의 외연 확대가 놀랍다. 라이브 커머스의 발전이 기대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02

텃밭 1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작년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집을 둘러싼 넓은 빈터, 풀로 가득히 뒤덮여 있는 땅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감당하려면 계획을 세워야겠다 싶어 생각만 하고 풀만 없애는 중이었다. 상추 모종을 사서도 땅에 심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 풀 속에서 이 여린 상추가 어떻게 자랄 수 있을까. 길쭉한 화분을 몇 개 사서 거기에 몇 포기씩 심었을 정도였다.여름 즈음 김장용 배추와 무 모종 한 판, 60포기씩을 사온 남편을 타박했다. 그 많은 걸 어떻게 심고 관리할 거냐면서 투덜댔다. 그래도 사온 걸 어쩌랴. 해가 잘 들 만한 터를 골라 풀을 뽑고 골을 파서 모종을 두 줄 나란히 심었다. 매일 사는 게 아니라 물 줄 일이 걱정이었다. 배추 모종 때문에 주말이 아니라도 틈날 때마다 가서 물을 주어야 했다. 비싼 배추를 먹을 판이었다. 작은 떡잎이 지고 쑥쑥 자라 제법 잎이 이들이들 커질 때 즈음엔 배춧속이 노랗게 꽉 차기를 기대하면서 끈으로 묶어주었다. 이웃 텃밭을 보고 흉내낸 거였다. 그러다 바쁜 일상에 배추를 까맣게 잊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에 화들짝 놀랐다. 배추가 생각났다. 저녁참에 잠시 틈을 내어 황급히 달려갔다. 큰 비닐봉지를 사 들고 가서 배추를 뽑아 담았다. 약을 한 번도 치지 않아서였는지 까맣게 벌레가 낀 배추가 많았다. 성한 걸 골라도 제법 많아 이웃에도 나눠주었다. 나물로도, 물김치로도 꽤 오래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신 이렇게 큰 농사(?)는 짓지 않으리라 결심이 섰다.올핸 수돗가 근처에 작은 텃밭을 일궜다. 물 주기가 편하다는 판단에 고른 터였다. 채소 모종을 이것저것 사 본격적으로 텃밭농사를 해 볼 참이었다. 미리 풀을 뽑고 유기농 퇴비를 사서 흙과 섞어 두었다. 모종은 오일장에서 사기로 했다. 옹기종기 나온 예쁜 모종은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구경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서너 개 정도의 작은 포트에 1~2천 원짜리 모종을 이것저것 샀다. 토마토와 고추는 기본, 파, 가지, 오이, 내가 좋아하는 고수와 청겨자도 샀다. 텃밭을 늘려가며 당귀, 명이나물, 땅콩에다가 양배추를 줄지어 심었다. 안동의 지인이 상추 모종을 잔뜩 보내주셔서 길게 한 줄 심었다. 심을 땐 시들하던 애들이 며칠 지나선 꼿꼿해지다가 제법 실해지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모두의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최애 스팟이 되었다. 손주가 집주변 이곳저곳에서 가느다란 쇠막대기를 주워 모은 것이 10여 개나 되었다. 지줏대인 것 같다고 했더니 같이 세우자고 한다. 고추와 토마토 모종 옆에 손자는 망치로 박아 세우고 나는 끈으로 묶었다. 후에 제대로 된 지줏대를 사와 더 높게 세웠다.쉼없이 자라는 풀을 갈 때마다, 볼 때마다 뽑아주었다. 고추는 흰 꽃을 핀 데마다 고추를 맺고, 토마토도 조롱조롱 열매를 달아낸다.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는 손녀에게 작은 통을 하나 들려주며 토마토를 따보라고 했다. 네 대답하면서 달려가 토마토 넝쿨 아래에 쪼그리고 앉는다. 빨간 토마토를 똑 따서 하나는 통에 담고 하나는 입에 넣어 오물거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텃밭 재미란 이런 건가 싶었다.

2023-08-02

불안한 마음 달래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많은 현대인들은 정신과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한의원에도 화병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잠을 못자는 등의 환자들이 내원한다. 정신과 질환도 일반 통증질환과 비슷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면 아주 괜찮은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일반 통증질환도 치료 이전에 본인이 몸을 아끼고 운동을 해서 근육과 인대 등을 튼튼하게 만들면 미리 예방이 되고 자연적으로 빨리 회복 되듯이 정신과 질환도 정신을 맑게 하고 강화 시키는 훈련을 하거나 관련 내용을 숙지 한다면 좀 더 빨리 회복하고 예방할 수도 있다.현재 명상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사회가 고도로 발달될수록 개인의 정신문제는 심해져서 선진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오고 있다. 많은 명상 방법이 있지만 아주 간단히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것을 10분만 해도 정신이 멍해지면서 맑아지니 한번 눈을 감고 멍하니 있어보자.방안의 불은 끈다. 은은하게 조명은 있어도 되고 명상 관련 음악을 틀어도 된다. 향을 피워도 되고 향초를 태워도 된다. 심호흡을 간단하게 하고 체조나 간단한 스트레칭 혹은 운동을 한 후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 이게 힘들면 벽에 등을 붙이고 양반다리를 해도 된다.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도 된다. 천천히 본인의 호흡에 집중을 한다. 집중을 하다가 집중이 흐트러지면 다시 호흡에 집중을 한다. 힘들면 눈을 아주 살짝 뜬 뒤 본인 종교에 따라 예수상이나 부처상 같은 것을 눈이 보이는 곳에 두고 집중을 하면 된다. 이는 몸을 이완시키면서도 정신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니 편한 방법을 하면 된다.심리학 책을 읽어도 도움이 된다. 정말 많은 심리학 관련 책이 있는데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베스트셀러를 한 권 택해 읽으면 된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전부다 내 얘기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고 괴로운 이유도 원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읽을 때는 모르겠지만 읽고 나면 마음에 뭉쳤던 응어리가 조금은 옅어지고 괴로움이 감소한다. 실제로 심리치료 중 중요한 것이 내가 처한 괴로운 상황을 마주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회피하고 바로 보지 못하지만 심리학 책을 읽는 자체가 편안하게 내가 처한 괴로운 상황을 마주보게 해주고 또 읽게 되니 자연스레 나의 괴로움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한 권 읽고 괜찮으면 다른 책들도 찾아서 한 권씩 읽다 보면 나의 괴로움과 좀 더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고통의 원인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고 나의 괴로움이 가장 큰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나의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면 많은 불편함이 이해 된다.태어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 괴로움 중 많은 부분을 내가 해결할 수도 있다. 방법을 모를 뿐이다. 책을 읽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명상으로 깊은 생각을 하게 되면 조금씩 괴로움의 실이 풀리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바로 책을 읽고 눈을 감아 보자.

2023-08-02

여당은 ‘수도권·무당층 民心’을 경청하라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저께 SNS를 통해 “나는 총선까지 쳐냈지만, 이준석도 안고 유승민도 안고 가라. 가뜩이나 허약한 지지층이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당내 쓴소리에 귀를 닫는 ‘쫄보정치’를 그만두고, 외연확장에 힘을 쏟으라는 충고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국민의힘이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이 아니라 용산탕’이라는 말은 김기현 대표체제 이후 계속 회자돼 왔다. 윤석열 대통령 측근 일색으로 당이 운영돼 견제·자정·확장 기능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집권당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져 있으니,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총선 직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7%(한국갤럽)에 달했다는 사실을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내년 총선 판세는 중도·무당층이 결정한다. ‘여의도 제1당은 중도·무당층’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윤 대통령 최측근인 장제원 의원도 최근 “내년 총선은 국민의힘 지지층 35%, 민주당 지지층 35%를 제외한 나머지 30%의 무당층이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중도·무당층은 주로 수도권과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에 집중돼 있다. 지난 총선기준, 수도권은 253개 지역구 중 절반에 가까운 121개의 의석을 가지고 있다. 2030유권자 수는 1천400만명이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총선주자들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당의 다양성은 공천과정에서 정확하게 나타난다.국민의힘이 수도권과 무당층 민심을 끌려면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끊임없이 윤 대통령과 집권당을 향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쓴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 이준석은 최근 ‘여의도 재건축 조합’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채널에는 지난 3·8 전당대회 당시 당 대표와 청년최고위원 후보로 나섰던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이기인 경기도의원도 출연하고 있다. 이준석은 지난 2021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인물이다.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구속에 대해 윤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서 풍수전문가가 다녀간 것에 대해 “국가안보상 중요한 시설을 결정하는데 왜 풍수 보는 사람이 나타나느냐”며 쓴소리를 했다.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로선 ‘적어도 이준석·유승민과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유상범 당 대변인은 홍 시장 발언에 대해 “해당(害黨) 행위자가 책임을 안 지면 제대로 된 정당이냐”는 식으로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현 상황이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총선은 8개월 조금 더 남았다. 총선 판세를 결정할 수도권과·중도층 민심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그들이 원하는 총선메뉴는 무엇이든 수용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2023-08-01

‘글로컬대 선정’에 포항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글로컬대학 본 지정을 앞두고 포항시가 예비지정된 포스텍과 한동대 지원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는 예비지정 1차 관문을 통과한 15개 대학을 대상으로 현재 본지정 평가를 하고 있으며, 10월말 10곳 내외를 최종 선정한다. 포항시는 지난 1일 이들 두 대학의 본지정을 돕기 위해 ‘글로컬대학 육성 거버넌스’를 출범시켰다. 행정기관과 대학, 산업체, 유관기관이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거버넌스에는 포항시와 포항시의회, 포스텍, 한동대, 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테크노파크, 포항금속소재산업진흥원, 선린대, 포항대, 포항상공회의소,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참여하고 있다. 포항시를 중심으로 지역의 유력 산·학·연 기관들이 모두 힘을 모은 협의체여서 타 지자체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포항시는 이미 포스텍·한동대와 공동으로 TF를 가동하고 있다. 포항시 일자리경제국장이 단장인 TF팀은 대학 팀장급과 실무진 20명으로 구성돼 있다.1차 예비선정에서는 대학혁신을 위한 차별화와 학과간 벽 허물기 등 혁신성이 선정 여부를 갈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인 포스텍은 과학·공학 분야의 교육과 산학협력을 선도하는 ‘대학-지역 동반 성장 대학’ 모델을 제시했다. 대학이 지역 전략산업 발전과 글로벌화를 이끌고, 신산업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부각시켰다. 한동대는 14개 학부를 통합하고, 100%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는 ‘문제해결형 원칼리지 대학’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었다. 대구·경북에서는 국공립대 통합을 내세운 안동대와 경북도립대도 1차관문을 통과했다.글로컬 대학으로 최종 선정되면 5년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1천억 원 규모를 지원받으며, 그동안 대학변화를 가로막았던 많은 규제에도 벗어날 수 있어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포스텍과 한동대가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돼 포항지역 내에서 ‘인재양성-취업-정주’ 시스템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2023-08-01

굿바이 코로나?

우정구 논설위원 굿바이 코로나 맞나? 끝난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우려가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하루 확진자 수가 5만명을 넘었다. 지난 1월 이후 6개월여만에 다시 5만명대에 들어선 것이다.지난 6월 일상회복 조치로 코로나19를 가볍게 보고 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신규 확진자 수는 현재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 당분간 확진자 증가세가 더 이어질 것 같다는 전망이다.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3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감염되고 3만명 이상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3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국민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국민적 트라우마가 심한 질병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코로나 재유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그렇다.그럼에도 정부는 이달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낮춘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남아 있는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하고 확진자 전수 감시도 중단할 예정이라 한다.전문가들은 최근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는 “정부의 방역정책 완화와 거듭된 변이 출현에 따른 면역력 약화가 원인”이라 말하고 “정부가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을 떨어뜨릴 메시지를 남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노약자나 만성질환자는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바이러스는 원래 여름철에는 활동성이 떨어지나 지금 이 시기에 확진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실내 활동이 많은 겨울철 대유행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보건당국은 정부의 대응 역량이 충분하다 밝히나 국민 각자가 마스크 착용 등 대응력을 갖추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01

대구를 전국 최고 육아 친화 도시로

대구시가 내년부터 다자녀가정의 기준을 두자녀 이상으로 완화하고,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출생아 수는 1만139명으로 10년 전보다 48%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대구의 합계출산율도 0.76명으로 전국 평균 0.78명을 밑돌았다. 전국 광역단체 중 대구는 부산시와 함께 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든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지난해 인구 변동을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중부권의 인구는 국내 인구 감소추세 속에 전년보다 0.2%, 0.6%가 각각 늘어난 반면 대구를 포함 영남권 인구는 0.8%가 줄었다.물론 저출산과 인구감소 문제는 국가적 과제이자 어제오늘의 난제는 아니다. 그러나 대구의 인구감소 수준이 타 도시보다 높고 전국 최고라는 점에서 대구시가 간과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전국 3대 도시의 자리를 인천에 내주고 대구는 2017년 인구 250만명선이 무너졌다. 이후 4년만에 240만명선도 깨졌다. 문제는 해마다 이같은 감소세가 이어지고 더 가팔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대구시가 내년부터 다자녀 기준을 완화하고 난임부부에 대해서도 1인당 최고 2천300만원까지 지원키로 하는 등 다양한 출산장려책을 내놓았지만 타 시도가 하는 만큼 해서는 출생아 증가를 기대할 수 없다. 보다 참신하고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구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전국에서 가장 좋다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전달할 정책이 필요하다.물론 대구의 인구가 즐어든 것은 일자리 부족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한 부분이 크다. 국가가 균형발전 정책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젊은 부부가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할 부분도 많다. 가족친화기업 문화 확산 등 자치단체로서 연구와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의 전국 3대 도시 명성을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3대 도시로 가기 위해선 인구 증가가 필수다. 저출산 꼴찌 도시에서 벗어날 묘안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2023-08-01

이열치열 여름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염천 폭서의 성하(盛夏)에 청산녹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국 대부분이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연일 찜통더위에 온열질환으로 인명피해까지 속출하니, 폭우와 폭염의 기승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상이변과 기후위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극명하고도 심각한 자연재난을 초래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날씨에 민감해서 괜한 기우(杞憂)로 여긴다거나 위축돼서는 안되겠기에, 지난 주말 아침 배낭 매고 더위도 즐길(?) 겸 한여름 속으로 거침없이 길을 나섰다.일행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싱그러운 들판을 지나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울진군과 봉화군 경계의 답운치 고개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했다. 안개가 자주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하다는 답운(踏雲)재에서 능선을 타고 통고산(1067m)을 오른 후 계곡을 따라 자연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는 비교적 순탄한 코스다. 더욱이 산행 기점이 해발 600여 미터라 약간 선선한 느낌이 들었고, 모처럼 산을 찾게 돼서 그런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세답게 등산 초입부터 수목이 우거져 햇볕은 잎사귀 사이로 겨우 비춰 들었다. 고산지대의 고요한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들의 합창이 산객을 반겨 맞는 환호처럼 들리고, 길섶에서 만나는 산나리꽃과 패랭이꽃은 청초한 자태로 제 멋을 떨구며 미소 짓는 듯했다. 장마가 끝나고 습기가 남아있는 등산로 주변으로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자주 눈에 띄는가 하면, 군데군데 우람하게 호위하듯 서있는 금강송은 모진 풍상을 이겨낸 낙락장송답게 꿋꿋한 기상이 서리는 듯했다.능선따라 바람따라 소요하듯 완상하며 새소리와 매미울음의 추임새 속에 몇 차례 구슬 같은 땀방울로 산길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다다른 정상, 10여년 전엔가 메마른 겨울에 오르고 온통 초록에 젖듯 여름날에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산은 이렇듯 오르는 자에게 늘 길을 열어주고 넉넉함과 뿌듯함을 안겨준다.“신발끈에 조인 의지/대찬 걸음으로//풀섶에 머문 꿈/땀방울로 말아내면//호방한 너울로 손짓하며/반겨 맞는/등성이//구름바다에 섬으로 뜨는/서리서리 얽힌 정//바람 결에 실어 보낸/원색의 외침 너머//창망한/메아리로 굽이치는/산정무한의/수묵화” -拙시조 ‘山行記’중(1995)하산길은 언제나 여유롭고 홀가분한 듯하지만,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居高思墜)’ 늘 경계하라는 가르침은 비단 산행 뿐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상황에서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내려오고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불볕더위에 아랑곳없이 이열치열로 산행을 하거나 맨발걷기로 애써 땀을 흘리고 움직이는 것은 극기와 내성(耐性)을 다지는 것이 아닐까. 별천지에 간 듯, 온통 초록 숲과 녹음에 어우러져 깊은 산골짝 석간수의 청량함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즐긴 꿈결 같은 여름산행이었다.

2023-08-01

공교육 붕괴에 얽힌 복잡성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어느 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의 충격이 지속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학부모의 ‘갑질’에 젊은 선생님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겪은 부당함을 학교에 호소했으나 적절한 해법이 마련되지 못하자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학생 인권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전 정부와 진보 교육감의 학생 인권을 강조한 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선생님의 비상식적인 체벌이 많았다.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손찌검당한 기억이 선명하다. ‘갑’의 입장이던 선생님이 ‘을’의 위치에 있던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용납되던 시절에 체벌과 폭력의 경계는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훈육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학생들의 인권에 주목한다는 것은, 교육의 영역에서 기존의 갑을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학생은 계발시켜야 하는 대상, 선생님은 계발의 주체로 보는 것이 전통적 관점이라면, 이제는 선생님이 학생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며 그 잠재된 가능성을 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을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수렴시킬 것이 아니라, 학생 각각의 특성을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 인권과 선생님의 인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그런데 왜 다시 역전된 갑을 관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단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전히 공고한 학벌사회는 공교육 붕괴라는 결과를 낳고 이는 다시 교사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렸다. 경쟁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동의 관계를 학습하지 못한 부모의 내면은 자식 교육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자식이 손톱만큼이라도 손해 본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렵다. ‘강남’에 입성한 계급의 상대적 우월감은 이런 심리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리는 단지 초등학생의 부모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학생의 수강 신청이나 학점에 대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를 만나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이처럼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서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애꿎은 학생 인권조례를 탓하고 있다.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할 능력이 없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다. 반복하건대 사교육 시장, 교권, 지방대학의 위기 등 올해 들어 제기된 교육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복잡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이번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출산을 고민하던 지인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뉴스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학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문제는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2023-08-01

온실 속의 ‘금쪽이’들

서이초 교사 A씨가 학부모의 도 넘는 민원 제기와 폭언, 갑질, 교권 침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씨 담당 학급의 한 학생이 급우의 이마를 연필로 그어버리는 학교 폭력을 저질렀는데,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학부모가 ‘금쪽 같은 내 새끼’를 싸고돌며 A씨를 몰아세운 게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이다. 해당 건 외에도 그동안 얼마나 들들 볶아댔을까.지난 5개월간 서이초 교무실에 접수된 공식 민원은 11건인데, 내용이 기가 차다. “하교 시간에 솜사탕 상인이 있어 학생 통행이 위험하다고 항의함”, “담임교사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 수행평가에 6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함”, “방과 후 통기타 수업 중 아이가 기타 연습을 안 해와 강사에게 혼난 것을 항의함”, “교문 앞 교통 통제를 해달라고 함”, “교통 통제를 하지 말라고 함” 따위다.요즘 학부모들은 교사 개인 연락처로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고 문자를 보낸다. “여행 가지 마라”, “SNS 하지 마라”, “어머니 장례는 3일인데 왜 5일이나 휴가를 내냐” 등 학부모들이 보낸 메시지를 보니 천박하기 그지없다.나는 미혼이다. “자식이 없으니까 모른다”고 하겠지만, 요즘 부모들 하는 걸 보니 자녀 양육은 경험의 차원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그러니 말하련다. 제발 작작 해라. 호들갑 좀 그만 떨고 오지랖도 적당히 펼쳐라. 언제까지 갓난아이 업어 키우듯 할 텐가? 당신들의 자녀는 애완동물이 아니고, 생각과 표정 없는 인형도 아니다. 저마다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고, 개별적인 인격체다.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개입도 정도껏이다. 학교와 교사를 믿지 못하고, 아이 친구들을 믿지 못하겠으면 그냥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라. 세상이 삭막하고 위험해진 건 사실이나 요즘 부모들이 자식 키우며 벌이는 극성들을 보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서이초 교사 A씨의 비극이 바로 그 경우다.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 부모 세대는 요즘처럼 극성맞지 않았지만, 일부 ‘맹모삼천지교’가 없진 않았으니 한번 따져보자면 ‘내 새끼만큼은 안 굶기겠다’는 오기로 그랬던 것 같다.그런데 요즘 내 또래 부모들은 결핍 없이 자라놓고는 왜 이 난리법석일까? 한국사회의 스노비즘이 가장 큰 병폐일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심과 속물근성이 풍요 속의 결핍을 과잉생산해내는 시대다. 높은 수준의 경제력을 지닌 고학력자 부모들은 자식을 의사, 판검사, 대기업 임원으로 만들어야만 상류사회에서 면이 서고, 풍족하지 않은 부모들은 빠듯한 형편에도 내 새끼 기죽지 않게 온갖 귀하고 좋은 건 다 먹이고 입힌다. 아이와 함께 100만원이 넘는 호텔에서 바캉스 하는 게 유행이다.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또래 부모들의 일상에 ‘I(나)’는 없고 ‘아이’만 있다. 자신을 지워낸 자리에 자녀만 두는 헌신적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하지만 내 아이만 소중한 게 아니라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서이초 교사 A씨는 교실에서는 선생님이었지만, 교실을 나서면 이제 스물세 살 된 꽃다운 청년이자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행히 내 주변의 부모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배려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괴물이 되는 일부 극성 부모들이다. 제 자식은 제멋대로 날뛰어도 우쭈쭈 감싸면서, 그 미성숙한 ‘덩어리’를 사람 만들겠다고 애쓰는 교사들에게 폭언과 갑질을 일삼는다. 옳지 않은 짓이다.그래, 당신들이 학생일 땐 ‘미친개’라든가 ‘마귀’ 같은 별칭으로 불린, 선생 자격도 없는 교사들이 학교에 있었다. 그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도 이해불가다. 착하고 성실한 요즘 선생님들이 무슨 죄가 있나? 이제는 달라졌다. 교사들의 인식도 바뀌었고, 교육 현장의 분위기도 쇄신됐다. 제발 믿고 맡겨라.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개입, 지나친 집착이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란다. 온실 속 화초는 자꾸 만지면 시든다. 열대어는 수온과 빛과 먹이와 산소 등을 섬세하게 관리해줘야 하지만, 그 관리가 필요 이상으로 과하면 스트레스로 죽는다. 당신들의 ‘금쪽이’도 마찬가지다.

2023-08-01

적절히 화를 표출하기

분노는 거듭 분노를 낳을 뿐이다. /언스플래쉬 대중교통을 탈 때 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2시간 40분 거리의 열차 이동 내내 큰 소리로 통화를 주고 받는 사람, 휴대폰으로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사람, 어린 아이가 복도를 뛰어다녀도 가만히 지켜보는 부모 등 어느 곳을 가도 온갖 소란 속에서 아주 많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피로를 감당해 내느라 필요 이상의 너무 많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쉽게 낳기 마련이라서, 결국 어딜 가도 너무 많은 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여기저기서 얻은 스트레스 꾸러미를 집으로 돌아와 하나씩 풀 때, 건강한 사람들은 취미를 통해 푼다지만 나는 아주 가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다. 무작정 러닝머신에 올라가 걸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놓고 매운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는 쉽지 않다. 결국 책상에 앉아 나는 무엇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조금씩 생각하다보면 무언가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 화가 발생했는지 알게 된다.상황을 인지해서 종이 위로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부려놓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조금씩 해소된다. 하지만 내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될 때에는 벽에 부딪힌 듯한 막막한 심정을 느낀다.때마침 ktx 열차에 앉아 수많은 소음에 둘러 쌓여 강현식, 최은혜 저자의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를 읽고 있다. 책은 오랜 기간 내제된 ‘화’로 인해, 마음이 병들고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 바깥에서는 늘 친절한 사람이지만 유독 집에서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 화를 내는 방법을 몰라 난처한 사람, 버림받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파괴를 일삼는 사람, 상대가 화를 내면 마음이 돌아서 모든 관계를 끊는 이들의 일화가 차례대로 나온다.이들의 공통점은 화를 너무 폭발적으로 내거나, 또는 화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결핍이 있었고, 치료받을 기회나 상황을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상처를 방치하며 자라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지는 불만이나 화를 표출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무리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또는 불편한 감정을 한 개인이 참고 넘어가면 모든 상황이 다 해결된다고 여기며 상황을 무마시킨다. 유년시절부터 분노는 늘 숨겨야만 하고 적절히 화를 표출하여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선 학습하지 않기에 더 큰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만다.화를 참고 억누를수록 분노 표출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해한다거나 타인에게 엉뚱한 방향으로 큰 분노를 표출하게 되어 상황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분노는 거듭 분노를 낳을 뿐이고 특히 타인에게 전염성이 높아 이성적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분노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 어떤 것에서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지 뚜렷하게 바라보며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인지만으로도 화는 느닷없고, 마냥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내가 지속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책에서도 분노를 느낀다면 나의 의견을 전달한 후 해결책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이해해보며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책은 계속해서 말한다.오래된 상처를 꺼내어놓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은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개 트라우마 속에는 해소되지 못한 화가 감추어져 있고, 늘 화를 감추고 억누르며 살아왔기 때문에 화가 난 순간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란 큰 어려움이 따른다.하지만 분노라는 실타래를 조금씩 풀게 되다보면 어느 순간 쉽게 풀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던 이들이 점차 화를 적절히 표현하게 되는 부분을 읽다보면 나 또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뿐만 아닌 타인에게도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23-08-01

영농형 태양광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7월 26일 대구시청에서 대구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 27개 부서장으로 구성된 탄소중립지원단 및 9개 구·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제1차 대구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제1차 대구기본계획)’ 수립 중간보고회가 개최됐다. 이 계획은 2021년 9월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의 규정에 따라 수립하는 법정계획이다. 또한 지난 4월에 확정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제1차 국가기본계획)’의 하위 계획으로 반드시 연계해 수립되어야 한다.‘제1차 국가기본계획’은 지난 정부에서 국제사회에 약속한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는 유지하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산업부문 감축 목표는 낮추고 대신 그 양만큼 전환과 국제 감축 부문 목표를 높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환 부문에서 석탄발전은 감축하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현행 9%에서 2030년 22%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러한 기조는 ‘제1차 대구기본계획’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대구시의 2019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약 5% 정도에 불과하다.대구시의 부문별 에너지 소비현황을 보면 2019년 기준 가정·상업이 38%, 수송 33%, 산업 26% 정도로 산업 부문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가정·상업과 수송 관련 부문이 더 높고 이를 합하면 71% 정도에 달한다. 따라서 이 비율만큼 시민 중심으로 탄소중립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대구시 내 기존 도시화된 개발지역에서는 높은 땅값, 낮은 주민 수용성, 전력계통망 부족 등 많은 문제로 인해 태양광, 폐기물, 바이오 및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은 한계에 봉착해 왔다.지난해 12월 한화자산운용이 3조원을 투자하여 대구시 17개 산업단지 지붕에 총 1.5GW 규모의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제안하였다. 대구시는 이 사업을 ‘그랜드솔라사업’으로 명명하고 대구시 탄소중립 정책 선도 5대 대표과제로 추진한다, 이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최대 95만톤으로 대구시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1천869만톤)의 약 5% 정도로 적지 않지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필요하다. 마침 이러한 상황에서 금년 7월 1일 대구시 면적의 약 70%나 되는 군위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군위군의 토지이용현황을 보면 2020년 기준 임야와 전·답이 각각 75%와 14.2%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 농업 중심지역이다. 따라서 대구시 탄소중립 정책도 큰 변화가 전망되는데, 임야의 비율이 높아져 숲 조성을 통해 탄소흡수량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제1차 국가기본계획’에서 농촌 재생에너지 확대사업 모델로 제시한 ‘영농형태양광’ 발전시설의 대규모 도입도 전망된다. 이 시설은 농작물 재배지 상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농산물과 전기를 병행 생산한다. 최근 다양한 작물에 대한 실증연구에서 특히 녹차, 무화과와 포도는 더 많은 수확률을 보여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023-07-31

이승만과 트루먼, 69년 만의 재회

홍석봉 대구지사장 트루먼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우리 국민의 생존과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트루먼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 한민족을 일제 치하에서 해방시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 때는 미군 파병을 결단,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동안 한국에선 푸대접 받았다. 이승만이 독재자로 평가절하된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트루먼이 맥아더의 원폭 투하 요구를 거절, 북진(北進) 통일이 좌절됐다고 믿어왔다. 맥아더를 치켜세우기 위해 트루먼을 깎아내린 것이었다.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맥아더 동상은 최근까지 좌파 단체들에 의해 모욕당하기도 했지만 인천 자유공원에 당당히 서서 한국의 발전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에 반해 트루먼 동상은 임진각 한구석에 초라하게 방치돼 있는 형편이다. 평가절하됐던 트루먼이 이승만과 함께 호국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에 나란히 섰다.이승만과 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지난달 27일 칠곡 다부동 현장에서 열렸다. 다부동은 한국전쟁에서 연합군이 승기를 잡은 역사적 장소다. 민간 주도로 만든 두 동상은 2017년 완성됐으나 마땅히 세울 곳을 찾지 못하다가 경북도와 칠곡군의 도움으로 다부동에 안착했다. 양 대통령은 1954년 8월 5일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트루먼 자택에서 처음 만난후 69년 만에 다부동에서 동상으로 다시 만났다. 제막식 날은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자 ‘유엔군 참전의 날’이기도 해 의미를 더했다.북한의 기습 남침에 즉각 대응한 이승만과 트루먼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표상이 된 두 사람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31

꿀벌 실종… 양봉농가 집단폐업 두고 볼 건가

경북도내 양봉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상기후와 병해충 등으로 지난해부터 꿀벌이 갑자기 죽거나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주에서 오래전부터 양봉업을 했던 한 농가는 평소 100통 정도의 꿀벌을 키워왔는데, 지난해부터 꿀벌이 전멸해 지금은 폐업했다. 양봉농가에서는 꿀벌이 일시에 폐사하는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더욱 답답해하고 있다. 상주에는 경북도내에서 양봉농가가 가장 많으며, 상당수 농가가 꿀벌 집단폐사나 실종현상이 발생해 타격이 심하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농가에서 키우던 꿀벌 중 56.3%, 약 208억마리가 자취를 감추거나 폐사했다. 양봉농가에서는 “꿀벌 집단폐사 사태에 개별 농가가 대처할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에서도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에서는 “양봉직불금 제도를 정부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꿀벌 집단폐사나 실종현상에 대한 행정기관의 실태조사 결과는 나온 게 없지만, 항공방제나 병해충, 이상기후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상주 한 양봉농가는 주변의 농약살포로 피해를 보았다며 관계기관에 정밀조사를 의뢰해 둔 상태다. 양봉농가나 학계, 환경단체에서도 꿀벌 실종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량을 유지한다고 할 정도로, 양봉산업은 중요하다. 유엔은 매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로 지정했다.양봉산업이 개별 농가의 수익 차원을 넘어 자연 생태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피해 실태조사와 함께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양봉농가는 지금 꿀벌 집단폐사 외에도 각종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병해충 발생, 밀원(蜜源·벌이 꿀을 빨아오는 식물) 고갈 등으로 심각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2023-07-31

포항 양덕동에 부는 에코프로 경제 훈풍

세계적인 이차전지 소재기업인 에코프로가 포항시 흥해읍 영일만산단에 입주하면서 최근 인근인 양덕동 일대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소식이다. 포항시 양덕동은 수년전 법원이 들어선 장성동 상권에 밀려 슬럼화 현상을 빚었던 곳이다. 그러나 2017년 700명 정도이던 에코프로 직원이 최근 회사가 투자를 늘리면서 직원 수가 3천100명에 이르자 인근인 양덕동의 상권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직원 대다수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원룸과 아파트 거래가 늘고 값도 오름세다. 식당과 주점 등도 고객이 늘어 활기를 찾는가 하면 또 상가 공실률도 대폭 줄었다.에코프로는 최근 코스닥시장에서 주당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로 등극하는 등 이차전지 소재 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기차 성장에 따른 배터리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에코프로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포항 영일만산단에 1조7천억을 투자했고, 앞으로 포항 블루밸리산단 등에 또다시 2조원 이상 투자할 예정이다.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과 함께 포항을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변모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기업이다. “잘 나가는 기업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조선과 자동차로 성장한 울산시가 그런 케이스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설립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평택시가 그렇다.미국의 아마존이 도시를 먹여살린 대표적 사례다. 시애틀의 한 차고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2010년부터 급성장해 현재는 수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적 기업이다. 도시에는 기업투자가 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아마존 제2본사를 유치하겠다며 뛰어든 도시가 200여 개에 달했다.기업이 도시의 흥망을 가른다는 사실은 여러 사례에서 이미 입증됐다. 전국의 도시가 기업 모시기에 힘 쏟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에코프로가 입주한 영일만산단 인근의 양덕동 일대 상권의 변화가 바로 경제효과다.2030년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은 세계 양극재시장의 16%를 점유할 거란 전망이다. 양덕동에 부는 경제 훈풍이 포항 경제의 훈풍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2023-07-31

군인은 ‘공짜 인력’이 아니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집중호우가 한반도 거의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던 해병대원 故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를 찾던 중 갑작스럽게 하천 지반이 내려앉으며 해병대원 세 명이 물에 빠졌고, 두 명은 헤엄쳐서 빠져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채 상병은 그러지 못했다.당시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는 가장 기본적 안전장구인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하천의 수량과 유속이 급격히 증가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원들은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더구나 이들은 수중구조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인력도 아니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다시 한번 상기시킴과 동시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청년들을 얼마나 허술하고 박하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남성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대외적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선전되지만, 정작 그 의무를 다하는 주체인 청년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군인들이 외출·외박을 나가는 소위 ‘위수지역’의 물가가 유독 높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징병된 청년들을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다. 이번 폭우와 같이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지역사회에 큰 피해가 발생하면 신속한 복구를 위해 군이 대민지원에 나선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 활동의 일환이며 군 이미지 향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희생이 따른다면 어불성설이다. 하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들에게 상부에서 ‘해병대임을 알리는 빨간색 상의’ 착용을 지시했다는 언론보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대민지원인지를 되묻게 한다.故 채수근 상병의 소속 부대인 해병 제1사단은 작년 가을 태풍 힌남노로 인해 경주와 포항 일대에 막대한 호우 피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투입되어 활약한 바 있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이러한 활동은 대단히 고맙고 소중한 도움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故 채수근 상병과 같은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 의미 또한 퇴색될 수밖에 없다.이제 군인을 ‘공짜 인력’으로 생각하는 일은 그만두자. 그들도 군인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와 동등한 사람이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천연자원이 없어 사람이 최고의 자원’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의 가치와 목숨을 가장 하찮게 취급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 수뇌부의 인명 경시 경향과 안전불감증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모병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가주의·권위주의적 가치들이 힘을 잃은 현재, 징병제야말로 ‘열정페이’로 유지되는 가장 거대한 시스템이 되었다. 언제까지 애국심을 이유로 청년들의 시간과 생명을 착취할 것인가. 휴전 중인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모병제 전환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2023-07-31

이제는 죽음에 대해 답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죽음이 계속된다. 그 죽음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죽음을 본다. 그 죽음에 대하여 울분을 토하며 격분해도 그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죽음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죽음에 우리는 아직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학부모의 도를 넘은 항의와 전화에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어야 할 교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달리했다. 한쪽만을 바라본 법의 폐해가 발생하고 이미 여러 명의 교사가 목숨을 잃었어도 우리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저 교사의 죽음을 바라보기만 한다.신림동의 ‘묻지마 살인’에 대하여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비난만 할 뿐 그렇게 지나왔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였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슬픔의 자리에 꽃은 쌓여가는데, 문제 역시 그대로인 채로 쌓여만 간다. 혹시 내가 그 대상자가 아니라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어처구니없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망연자실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여러 번의 신고 전화가 관련 기관으로 걸려 왔는데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고,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제방을 넘어 지하차도로 들어찬 물은 차도를 달리던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서로가 상대가 잘못했다는 말만 하느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도 어렵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없는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사회를 살피는 감시 카메라는 더 늘어난다. 매스컴은 홍수를 이루고 심지어 개인 방송하는 크리에이터도 늘어나 많은 사람이 아는데도 왜 이런 불행한 일이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가. 죽음이 던지는 계속된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어서 답을 달라고 하는데 속 시원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인간이 쌓은 경제적인 부로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하는데 삶은 더 힘들어진다. 안전을 위한 법은 늘어나고 난간을 지지하는 지지대는 굳건하게 세워지지만, 삶과 죽음은 편리한 삶의 도구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야 할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에 속수무책이다. 사람 사이에는 어떤 안전장치를 해야 할까.다양한 삶으로 정작 가까워야 할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혼자만의 시간과 생각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 주위에 푸른 하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자기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자기 자식보다 남의 자식이 누리는 행복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낸다.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된다. 남의 행복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볼 줄도 모른다. 이 세상을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옆의 사람들이 있어야 내 삶이 더 단단해진다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나의 주위에 사람이 있음을 느껴보고 몸이 불편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주위를 향해 돌릴 때 세상은 더 살만하지 않을까. 이제는 죽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한다.

2023-07-31

이야기가 살아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벽은 이야기를 품는다. 바위에 그림을 새긴 구석기의 벽도 있고, 사후세계관이 그려진 고분벽화도 있다. 분필로 ‘00바보’라고 낙서한 옆집 벽도 있고, 공공미술로서 특별한 주제를 표현한 벽화마을이나 거리도 있다. 벽에 담긴 이야기는 책에 담긴 것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이야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고 사랑받는데 다른 이야기는 외면받고 지워지기도 한다.대구에는 사랑받는 이야기를 품은 벽화거리가 하나 있다. 그곳은 오래된 골목에 한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덧입힌 곳이다. 다리를 꼬고 기타를 치는 그, 마이크와 하모니카를 앞에 둔 그, 오토바이를 탄 그, 포장마차 사장이 된 그. 아름다운 노래 가사와 슬픈 목소리와 환한 웃음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광석이 벽마다 그려져 있다. 익살스러운 옆집 아저씨처럼 활짝 웃고 모습이 어둡고 낡았던 좁은 골목길을 환하게 밝힌다.‘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2010년 슬럼화되던 방천시장과 그 일대를 살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그의 음반 ‘다시 부르기’와 ‘그리다’를 혼합해 거리의 이름을 정하고, 대구의 미술작가 20명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노래만큼이나 다양한 김광석을 만들어냈다.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한 볼거리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반드시 누군가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되었으면 해요. (1995년 샘터 9월호 인터뷰 중에서)’ 이 거리에는 그의 말처럼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벽마다 새겨져 있다. 김광석을 형상화한 벽화나 동상, 지금도 애잔한 그의 목소리, 유품이나 콘서트 영상을 볼 수 있는 스토리하우스, 그의 노래를 재해석한 버스킹(busking),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노래 가사에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등 그의 노래는 태어난 이래로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친구가 되어 줬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대구의 도시재생사업 중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던 것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나와 이웃의 이야기가 거리에 수놓아졌기 때문이다.소규모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벽화거리 조성은 2006년 ‘아트인시티’때부터 도시재생사업으로 활용되었다. 나눔·희망·주거환경 개선·관광 활성화 등 공공의 목적을 내세워 주로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의 미관을 정비하기 위해 채택되었는데, 특히 우범지역의 범죄 발생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지금은 벽화마을이나 거리가 조성되지 않은 지자체를 찾아보기가 더 힘들 정도로 범람한 상태다.대구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벽화마을이나 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마비정 벽화마을, 구룡산 해맞이마을, 옹기종기 행복마을, 두류 벽화미로마을, 이천동 99계단 벽화거리, 이인성 화가 벽화거리, BTS 뷔 벽화거리, BTS 슈가 벽화거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들안길 시화거리, 영남대로 과거길 벽화골목, 칠성시장 역사벽화길 등 곳곳에 그려졌다. 작은 공원이나 학교 담벼락 또는 계단, 가로등이나 전봇대 등에서도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술가, 벽화시공업체, 봉사자 등 벽에 그림을 그리는 주체도 다양하다.사실 모든 벽화마을이나 거리가 다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벽이 품은 이야기가 마음의 현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특색 없는 꽃이나 나무 등과 같은 자연을 그리고, 원색을 심하게 사용하고, 일관된 주제가 없으며, 예술가의 창의적 표현이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실거주자의 사생활을 침범하여 불화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벽화가 지워지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이 요동쳐 외부 자본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가난이 상품화되고, 낭만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건 비일비재다. 페인트라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이나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있다.‘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본래 도시순환도로 옆에 있는 어두침침하고 푹 꺼진 좁은 골목길이 었다. 오래된 회색빛 시멘트벽이 무심하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그 거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되살아나고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벽화를 그려 공간을 재정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라는 치트키가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주민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과 잘 유지되는 사후관리, 시대에 맞춰 변하려는 노력도 몫을 한다. 물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겠지만 말이다.수많은 벽화가 전국 방방곡곡 마을과 거리에 무분별하게 그려졌다. 대구에 그려진 벽화마을과 거리도 꽤 많다. 벽은 자신의 품은 이야기를 그저 드러낼 뿐이다. 단순히 도시의 미관 정비와 관광상품화가 아닌 진정한 도시재생으로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벽이 품은 이야기가 마음의 현을 움직이는 그런 이야기이길 바라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7-31

마음을 글로 쓰는 일의 어려움

인간이 글쓰기로 무언가를 표현해 온 역사는 꽤 길 것만 같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만도 않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해 느끼고, 배우고, 말로 그것을 표현하고, 또 글로 그것을 표현해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이제 무언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쯤에는 인간의 감각은 둔해지고, 지력은 쇠퇴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예술 중 문학이라는 것이 늘 기괴한 착상과 화려한 수사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그렇게 단순하기 그지 없는 세계로 돌아오고 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내뱉는 말과 글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다.인간은 글쓰기라는 미디어를 가지고 세상을 그려내기도 하고, 저 멀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그려내기도 한다. 글쓰기를 가지고 재현하는 세계는 결코 구체적이지도, 감각적이지도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억지로 쥐어짜낸 확신이 아니라면 가지기 어렵다. 특히 어떤 인간의 마음속을 흘러가고 있는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단지 있었던 일을 글쓰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도 같은 흔들림을 옮기는 일은 그래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소설은 대부분 인간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물론 흥밋거리로 읽는 소설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언어예술로 간주되곤 하는 소설이라면 대부분 세상의 일들을 살피거나 인간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생각이나 심리를 그려내는 것을 마치 자기의 사명인 양 간주해왔다. 세상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과 마음속을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글쓰기는 분명 다른 글쓰기와는 조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심리가 흘러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들은 문학 내에서도 예술적인 작가로 분류되는 것이 아닐까.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20세기 초반 자신이 태어났던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그 사회상 위에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얹어 두어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예술적 아이콘이 되었다. 물론 조이스 이전에도 인간의 심리를 언어로 그렸던 작가들은 많았지만, 우리가 그로부터 심리주의 소설의 기원을 삼는 것은 그가 처참하고도 궁핍한 당시의 현실 위를 흘러가는 인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얹어두었기 때문이다.지금의 소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방법을 쓰고 있지만, 100년 전 조이스가 시도했던 일종의 심리주의, 조금 더 정확히는 심리적인 실재주의의 방법론은 인간의 마음을 글쓰기로 묘사해내는 데 고심했던 다른 작가들이 찬탄할 혁명적인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조이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여느 소설과 같이 먼저 인물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 아일랜드의 거리들이 들어오고, 그리고 배경음악처럼 세계 위에 보이스 오버되어 인물의 마음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조이스와 같은 시대의 평론가들이 그의 심리묘사를 음악성에 빗대었던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이다.사실 제임스 조이스는 1930년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백석이나 박태원 등이 그를 좋아해 자주 소개하곤 했다. 그가 한국과 똑같이 식민지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의 작가라는 동질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도구로 인간의 마음을 그토록 세련되게 그려낸 작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히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그렇게.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7-31

정전협정 70년, 무엇이 두려운가

김진국 고문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70년이 지났다. 1953년 7월 27일 동족 간에 총을 겨눈 3년간의 비극을 끝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체결됐고, 그렇게 70년을 살아왔다. 70년간 전쟁이 없으면 사실상 종전이다. 그런데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적대 상태다. 서로 통일을 최대과제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항구적인 평화 체제가 필요하다.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지 않는다. 문서보다 위험한 건 끝없이 고조되는 긴장이다. 남북한은 평화를 약속하는 문서를 여러 번 합의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을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 15일 ‘한반도 평화 정착→ 상호 문호개방과 신뢰 회복→ 남북한 자유 총선거’라는 ‘평화통일 3단계 기본원칙’을 발표했다.1991년 12월 13일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비방·중상하지 않고,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것도 의미가 크다. 통일헌장의 기초와 같은 문서다. 이와 함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합의해, 핵무기는 물론 핵 재처리시설이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로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노무현)으로 평화가 왔다고 당시 대통령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문서는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비핵화선언을 해놓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잠시도 중단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그렇다. 체제가 다른 나라 사이의 합의는 더 위험하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합의를 강제할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침략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입된 두려움은 미국의 북침이다. 그것을 핵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다. 핵무기로 그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나. 전쟁의 참극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분단은 아픔이다. 그러나 통일하려고 전쟁까지 할 수는 없다. 한반도가 방사능이 가득찬 죽음의 폐허가 된다. 조금 더 기다려도 좋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려고 북한 체제로 통일 당할 수는 없다. 양측이 동의하지 않는 통일은 전쟁의 구실이 된다.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청와대로 무장 공비를 보내고, KAL기를 공중 폭파했으며, 미얀마의 아웅산에서 남측 대통령 살해를 시도했다. 민간인이 사는 연평도로 포탄을 퍼부었고, 천안함을 격침했다. 북한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 전역을 사정거리에 넣은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단과 함께 전승절(정전협정 기념일) 열병식을 사열했다. 한·미·일 정상은 다음 달 18일 미 대통령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할 예정이다. 신냉전체제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어떤 시나리오로 갈 것 같은가. 미국의 북침인가, 북한 정권의 도발인가. 아니면 미국이 새로운 애치슨 라인 뒤로 물러나는 것인가.핵 경쟁이라는 공포의 균형보다 평화의 균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비대칭 전력이다. 재래식 무기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견제할 수 없다. 때리면 몇 배로 보복당한다는 두려움만이 공포의 균형을 이룬다. 핵무기가 아니면 국제 공조밖에 없다.6·25 때 우리는 아무 대비가 없었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침략을 준비할 때,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긋고, 한반도를 버렸다. 국군 장교들은 주말을 맞아 무더기로 외출했다. 단숨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무방비가 오히려 전쟁을 부른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30

젊은이 죽이는 나의 조국 자유대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월요일 출근 후 업무 폭탄과 아이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인용문은 서울 교사노동조합이 7월 24일 유족의 동의를 받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교사의 일기장 일부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교사의 깊은 한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녀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낸 두 가지 근본 원인이 글에 담겨 있다.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떨어지는 과중한 업무가 그 하나고, 아이로 인해 벌어진 난리 북새통이 그 둘이다.언제부턴가 대학에도 수많은 잡무가 부과되고 있다. 교육부가 강제하는 잡무 때문에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젊은 교수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예컨대 지난 5년 동안 교육부에 신고하지 않고 참가한 회의나 외부강연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무슨 수로 그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자료가 필요하다면 해마다 자료 제출하라고 요구할 것이지, 이 시점에 무슨 이유로 교수들을 들볶는가?!국립대학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초등학교 초임 교사에게 떨어지는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업무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가늠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초등교사의 가장 큰 소명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이지, 자잘하고 쓸모없는 잡무가 아니다.왜 그들에게 사무 관료의 사고방식을 강제하는가?! 아이 가르치는 것을 능가하는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있는가.아이로 인해 생겨난 난리 때문에 경험도 없고 마음도 여린 교사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교육부 장관, 교육감, 학교장, 교사, 학생, 학부모 가운데 누구인가?! 왜 서이초 어린 교사는 극단적인 선택에 홀로 내몰린 것일까?!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어디에도 손들어 저항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길 없는 참혹한 현장으로 내몰린 것일까?!교육이란 미명(美名)으로 ‘사랑의 매’라는 허울로 포장된 폭력적인 교육을 받아온 나도 알 수 없는 게 학부모들의 온갖 분탕질이다.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 소중한 것쯤은 알아야 할 텐데, 요즘 학부모들 수준은 경이로운 지경이다.담임교사가 아이를 조금만 혼낼라치면 ‘아동학대’란 이름으로 협박하며 교사를 윽박지른다.이런 지경이니 교사가 마음 놓고 학생 지도에 나설 수 있겠느냐 말이다. ‘숨이 막혀 오고,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한’ 상황까지 교사를 몰고 간 교육 당국과 학부모가 이번 참사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세월호 대참사와 이태원 참사도 모자라 이제는 교사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에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젊은이들을 비난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참담하고 암담하며 또다시 참혹한 내 조국 자유대한이여!

2023-07-30

모처럼 손잡은 與野… ‘달빛고속철’ 순항

‘달빛 고속철도(대구-광주 1시간 내 연결)’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청신호가 커졌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지난 2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특별법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발의 참여를 먼저 제안했고, 의원들이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여야 충돌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구·광주 공동현안에 여야가 모처럼 손을 잡고 초당적 협력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17일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회에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를 만나 특별법 연내 제정을 당부했었다. 시간을 끌면 곧 총선시즌이 시작돼 특별법 통과가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일단 특별법 발의는 이번 주에 여야가 따로 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에서는 윤재옥 원내대표가, 광주에서는 국토위 소속 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각각 특별법을 발의한 후, 병합 심사를 통해 하나의 특별법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다. 여야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와 광주 출신 국회의원이 대표발의자로 나설 경우, 연내 입법 가능성은 더 커진다.대구시와 광주시가 달빛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특별법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비용 대비 편익’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 관문을 넘기 위해서다.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할 경우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업 진행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사업이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포함되긴 했지만, 4조5천억 원 이상의 사업비가 투입되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특별법은 국고 부담 원칙과 복선건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달빛고속철도(198.8㎞) 건설의 완공목표는 2030년이다. 이 철도는 동서 지역화합과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지역공약으로 발표했다. 특별법의 입법취지도 영·호남의 인적·물적 교류 촉진과 남부 경제권 구축을 통한 국가균형 발전이다. 이제 민주당도 특별법 통과를 당론으로 정한 만큼, 후속조치가 빨리 진행돼 특별법이 연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2023-07-30

본격 무더위 시작, 취약계층 폭염대책 세워야

긴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지난 주말도 대구 경북을 포함 전국에서 체감온도 35도의 무더위가 이어졌다. 기상청은 이번주도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무더위와 열대야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난 가운데 이번에는 폭염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기후 재난시대다. 효율적인 폭염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또다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작년보다 빨리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지난주에는 경북 상주에서 80대 남성이 폭염 속에 밭일하다 쓰러져 숨졌다.질병관리청에 의하면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26일과 27일 이틀동안 온열질환자가 108명이나 발생했다. 올들어 누적 온열질환자가 868명이며 경북서도 71명의 온열질환자가 이미 발생했다.온열질환은 폭염에 오랜 시간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열사병, 열탈진, 열실신 등의 질환이다. 특히 노인이나 만성질환자, 임산부, 무더위 속에 일하는 근로자 그리고 경제적 빈곤층에게는 치명적이다. 당국의 배려와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나홀로 노인이나 경제적 빈곤층은 무더위에도 전기료가 두려워 냉방기를 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행정당국은 이들이 어떻게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는지 살펴보고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폭염도 집중호우 못지않게 무서운 재난이다. 재난에 미리 대비하면 피해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폭염에 대비한 안전수칙을 우리 모두가 지켜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수분과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바깥에서 일하는 농민은 무더위 때는 외부 활동을 자제하여야 한다.지구온난화로 지구촌 곳곳이 홍수와 폭염으로 재난을 겪고 있다. 올여름은 엘니뇨까지 겹쳐 역대급 더위가 잦을 것이란 기상청의 예보다. 괴팍해진 기후변화에 맞게 당국도 재난대응 시스템을 바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폭염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각 지자체가 책임감 갖고 폭염에 대응할 때 취약계층과 지역주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2023-07-30

고교야구의 추억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야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5년 서울 한성고가 학교 차원에서 야구를 처음 도입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후 경신, 휘문, 배재 등의 학교에서 야구팀이 생겼고, 1920년에는 조선체육회 발족 기념으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개최됐다.지난 27일 지역의 야구 명문 경북고등학교가 30년만에 우승컵을 거머쥔 청룡기 고교야구대회는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교야구대회다. 1946년 창설됐다. 6·25전쟁으로 잠시 중단되고 1953년부터 조선일보사가 행사를 주최해 오고 있다.1950년대는 동산고가 4차례 우승하였으나 1960∼1970년대 들어서는 경북고와 대구상고(지금의 상원고), 경남고 등 영남권 고교가 판세를 휘어잡아 고교야구의 인기를 몰아갔다. 이후 영남권 고교와 호남권 고교, 서울 등지 고교야구팀이 엎치락뒤치락 승패를 갈랐으나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고교야구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청룡기 야구의 역대 우승 전적을 보면 경남고 9회, 경북고 8회, 대구상원고 6회 등 영남권 고교들이 여전히 선전 중이다.특히 경북고 야구팀의 청룡기 야구대회 30년만의 우승은 지역의 노장년 야구팬들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화제를 낳았다. 지나간 추억의 스타를 떠올리게 했고, 30년 전 이승엽 감독이 고교 2학년으로서 이 대회 우수투수상을 수상한 이력도 회자됐다.무엇보다 프로야구에 밀려 등한시된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좋은 일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토양이라 불리는 고교야구의 성장을 위해서도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경북고의 청룡기 야구대회 우승이 30년만의 소중한 기록이지만 고교야구를 되돌아본 즐거운 추억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30

한국, 에너지전환 선도국 될 수 있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석기시대가 돌이 없어서 끝난 게 아니다. 차원이 다른 청동기라는 신기술이 등장하자 경쟁에 밀려 주류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가 고갈됐기 때문이 아니다. ‘계속 화석연료를 썼다가는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인류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UN 주도로 1992년에 열린 ‘리우회의’와 1995년 열린 ‘당사국총회’ 이후부터 전 세계는 본격적으로 에너지전환에 돌입했다.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를 매년 510억t씩 줄이고 온도 상승을 1.5도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10위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2020년 기준 92.8%로 세계 1위다. 에너지 소비량은 10위인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에너지 중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8.6%다. 덴마크와 오스트리아는 80%대이고, 미국과 일본은 20% 이상, 중국은 30% 정도다. OECD 국가 평균이 31.3%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1995년 1%이던 독일은 50%를 넘본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상황이 최악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가 에너지전환이 어려운 것은 첫째 국토가 좁아서, 둘째 날씨 때문에, 셋째 너무 비싸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빠른 시간안에 에너지전환에 실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들은 RE100이 가능한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겨야 하며, 이미 이러한 현상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에 투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업생태계는 붕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에너지전환을 늦출 경우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 신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불가론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한국은 태양광, 풍력 발전을 하기에 국토가 좁지 않다. 우리나라가 2050년 재생에너지 75% 이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500GWh 정도의 발전시설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에는 국토의 3.5% 즉, 3천500㎢, 서울시 면적의 6배 정도의 토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나라 농지가 국토의 15% 정도이니 농지의 24% 미만을 활용한다면 된다.한국 날씨가 재생에너지 생산과 맞지 않다는 주장도 엉터리다. 재생에너지 천국인 독일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독일에 비해 훨씬 낮은 위도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일조량이 1천459 시간으로 1천56 시간인 독일에 비해 38%나 더 많다.그리고 재생에너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지금은 태양광 설치비용이 원자력발전소 건설비보다 더 싸졌기 때문에 이 말도 맞지 않다. 태양광 기술은 반도체처럼 일정한 기간을 주기로 해서 ‘가격은 반으로, 효율은 배’로 진화한다. 태양광은 한번 설치하면 25~30년간 햇빛과 바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탈탄소 경쟁력이 곧 기업 경쟁력이고, 기후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92.8%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모든 국민이 협력하면 에너지전환시대에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단지 인근 농지에 ‘신재생에너지 연계 스마트팜 융복합단지’ 조성이 활성화되고 있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에서는 21만여평의 부지에 50MWh 용량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와 연계해 75MWh급 스마트팜 단지가 한창 조성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폐열을 스마트팜에서 이산화탄소는 작물 육성용 원료로, 폐열은 팜 냉난방용으로 활용한다. LNG를 연료로 하는 수소연료발전소의 부산물인 탄소를 팜에서 소진시켜 그린수소화 함으로써 막대한 재생에너지 생산(1천500MWh)과 스마트팜에서 첨단 작물 재배를 통해 고소득 창출을 꾀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생산된 재생에너지는 주변의 홍성일반산업단지 입주 기업에 RE100용으로 공급된다. 스마트팜에서는 첨단 바이오 작물을 재배해 수출함으로써 전통적인 쌀 재배에 비해 800배 이상의 소득을 창출한다. 수소발전소에서 생산하는 그린 수소는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한다.이러한 메커니즘의 스마트팜단지가 현재 전국에서 13군데 진행 중이다. 대도시나 산업단지 주변의 절대농지에 스마트팜 단지를 적극적으로 조성해 나간다면 기업이나 농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국제자산운용사들이, 스마트팜 건설 자금은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앞다투어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전환 지원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스마트팜단지가 보편화돼서 우리나라가 그린-디지털 전환기에도 제조업 강국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고, 후진국들의 에너지전환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7-30

한여름 밤의 불청객, 열대야 불면증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열대야’는 밤사이(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주로 일 평균 기온이 25도 이상이면서 일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인 무더운 여름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장마가 끝난 뒤에 나타난다.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냈던 역대급 올해 장마가 지난 26일 끝나자마자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권으로 낮에는 폭염이 밤에는 열대야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우리나라의 열대야는 7월 말에서 8월 초가 절정이다. 최근 들어 열대야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기간 또한 점점 길어지는 추세이다.열대야는 우리에게 밤에는 잠들기 어렵게 하는 공포의 밤이 되게 하고 낮에는 짜증, 피로감, 집중력 저하, 의욕상실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예로부터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불면증이 지속하면 불안증,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와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 대사질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가 정말 실감나는 요즘이다.밤사이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열대야는 왜 우리를 잠들기 어렵게 할까. 왜 기온이 올라가면 잠이 들기 어려울까. 우리 몸이 잠들기 위해서는 체온이 0.3도 정도 떨어져야 한다. 침실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우리 몸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 밑에 있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순환 속도를 높이려 한다. 그 결과 교감신경이 흥분하게 돼 잠들기 힘들어진다.또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밤이 돼 체온이 떨어짐에 따라 밤이 왔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분비되는데, 열대야 현상은 한밤중에도 한낮과 비슷한 25도 이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뇌의 시상하부가 낮인지 밤인지 구분을 하지 못해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아 불면증이 생기게 된다.열대야 수면의 특징은 서파수면이 줄게 돼 잠이 들더라도 자주 깨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꿈을 꾸는 수면(REM수면)도 줄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상쾌하지 못하고 피곤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어떻게 하면 열대야로 인한 공포의 밤을 평안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열대야로 인한 불면증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침실 온도를 적절하게 맞추는 것이다. 손쉬운 방법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의 냉방기를 활용해 침실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것이다. 쾌적한 수면 온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 20도이고, 습도는 50%이다.그러나 잠들기 전 에어컨 온도는 자신의 적정 수면 온도보다 약간 더 높게 설정해야 한다. 보통 에어컨은 잠을 자는 곳보다 높게 설치돼 있다. 대류 현상으로 상층 온도는 하층 온도보다 높아 센서가 감지하는 온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보통 에어컨 희망온도를 24도 전후로 맞추면 평균 피부 온도는 입면시 쾌적함을 느끼는 영역(피부 온도 34.5∼35.5도)에 도달한다. 그러나 수면시 에어컨을 사용한다면 24도로 계속 유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면을 ‘유도’하는 온도와 ‘유지’하는 온도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이를 감안하지 않고 에어컨을 24도로 유지하면 주변 기온이 떨어지면서 체온도 함께 떨어지고 추위를 느껴 오히려 숙면의 유지를 방해한다. 잠이 든 1시간 이후에는 희망온도를 26도로 하는 것이 수면 유지에 좋다. 요즈음 에어컨에는 ‘열대야 모드’도 있다.에어컨을 수면 중 계속 가동해서는 안 된다. ‘예약 꺼짐’, ‘취침 운전’ 기능을 활용해 일정 시간(2∼3시간) 후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나친 에어컨 사용은 냉방병에 시달리게 하거나 노약자나 심혈관질환자의 경우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선풍기를 사용한다면 작동시 회전 모드로 설정하고 바람은 아래로 향하게 하고 일정 시간(2∼3시간) 후 꺼지도록 예약 설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은 급성 호흡곤란까지 겪을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에어컨과 선풍기 사용 없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잠들기 1~2시간 전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면 체온이 내려갈 뿐만 아니라 각성시키는 교감신경이 진정돼 기분 좋게 잠이 들 수 있다.그러나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면서 피부 혈관이 수축해 오히려 체온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열대야로 인한 불면증은 온도, 습도 등 수면환경만 개선해도 해결될 수 있다.또 잠자기 3∼4시간 전에는 격렬한 운동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을 해서 몸 안의 심부 체온이 올라가게 되면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내려간다. 높은 심부 체온은 잠드는 것을 방해한다. 여름밤 잠 못 이루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야식의 유혹, 술의 유혹 그리고 수면을 방해하는 블루 라이트가 나오는 스마트폰은 열대야 불면증의 적이다.열대야 불면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불면증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여름이 더운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더우면 잠들기 힘든 것은 인체의 이치이다. 불면증에 집착하면 불면증 환자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이다. 열대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3-07-30

울진을 수소생산도시의 메카로

손병복 울진군수 울진군은 정부의 신규 국가산업단지 공모에서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돼 대한민국 수소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홍수 등으로 인한 자연재난에 신음하고 있다.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탄소중립시대 핵심 에너지원으로 수소생산에 주목하고 있다.울진군의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선정은 바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수소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울진군은 기존 추진하던 연구실험 중심의 수소 실증단지 조성 사업을 수소 전주기연구 생산 저장 운송 활용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로 추진 전략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했다군은 수소 관련 기업들과 MOU를 맺는 등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3월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돼 울진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사업비 약 4천억 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일원에 158만㎡ 규모로 조성되는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는 국가산단 조성에 따른 생산유발효과가 7조1천억 원, 고용유발효과가 2만4천여명으로 막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울진군의 상용원전(한울원전)과 고온가스로(HTGR)를 활용해 수전해 청정수소를 대량 생산하고 수소를 활용하는 관련 기업을 대거 유치한다. 국내 수소 관련 대기업을 비롯해 소재·부품·장비 제조업체와 연구시설과 원전의 열과 전기를 이용해 대량의 청정수소 생산체계를 갖추게 된다.울진에는 현재 7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3기의 원전이 건설 중에 있어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이 가동되면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해안 수소경제 벨트’의 거점 도시 역할을 수행 할 것으로 기대된다.울진군은 세계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을 선도하고 미래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원자력 청정 수소의 대량 생산·실증을 위해 삼성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와 원자력 청정 수소 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울진군은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한 수소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동해·삼척 액화수소 클러스터 △포항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 △울산 수소그린모빌리티 클러스터 등을 연결하는 청정수소 공급의 최적지로 손꼽힌다.원자력수소의 생산과 저장뿐만 아니라 운송, 활용 기업의 집적화가 이뤄진다면 울진이 동해안 수소경제 벨트(강원~경북~울산)의 거점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울진군은 앞으로 원자력 수소 국가산업단지 인프라 및 원자력 청정 수소의 생산 실증 인프라 구축은 물론 원자력 청정 수소 사업이 착수되면 지역 일자리 창출 및 동해안 수소경제벨트 활성화 등 지역경제 부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또한, 지난 20일 국내 최대규모인 30MW급 청정수소 생산 실증사업 유치계획서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제출했다.이번 공모사업은 정부 주도로 2025~2030년까지 총사업비 2천600억이 투입되는 30MW급 청정수소 생산 기술개발 및 실증사업이다.2025~2026년까지 1천500억원을 투입해 수전해 기술(알칼라인 20MW, PEM 10MW)을 기업 공모를 통해 개발하고, 2026부터 2030년까지 1천100억원을 투입해 청정수소 생산기술을 실증하는 사업을 추진한다.울진군은 이제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유치로 울진군이 보유한 원자력의 우수성을 활용한 원자력 청정수소 산업의 비전이 제시됐다.특히 동해안을 따라 철강, 화학, 시멘트 등 대규모 수소 사용 기업·지역이 밀집해 있어 이들과 연계·협력을 강화할 경우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수소 산단이 조성되면 국내 수소 관련 대기업을 비롯해 소부장 제조업체와 연구시설 등의 집적화가 이뤄진다면 탄소 중립 시대 핵심과제인 국가 수소산업을 울진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아 갈 것이다.민선 8기 남은 기간 국가산단 중심의 ‘울진 원자력수소산업’ 육성을 통해 울진을 ‘대한민국 수소경제벨트의 허브’로 구축하는데 전 행정력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2023-07-30

발이 가고 싶은 곳으로

피곤한 발을 베개에 올리고 누웠다가문득 발이 베개를 베고 누웠다고 생각해 본다가고 싶은 곳에는 경쾌하게 앞서가던 발가기 싫은 곳에는 천근만근 끌려오던 발오늘 발이 피곤한 것은 아무래도가기 싫은 곳에 끌려갔다 돌아온 탓이리라오래된 발톱 무좀도가고 싶은 곳에 못 데려갔거나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고 다닌 탓이 크리라 생각한다발에게 베개를 받쳐주고 누워머리를 발이라고 생각하며 진짜 발을 바라본다열 발가락 하나하나 꼽으며 가고 싶은 곳을 헤아려본다한 키의 간격을 두고 동거하면서도그사이 어디 있는 마음의 발을 자주 동동거리는 바람에마음의 신발을 찾지 못해 허둥대던 날들을 생각해본다더 늦지 않게 마음먹어 본다가고 싶은 곳에 앞장서 가는 발을 따라나서리라머물고 싶은 곳에 발과 함께 머물리라 마음먹어 본다발이 머리가 되고 머리가 발이 되어 생각해 본다머리가 발 같고 머리같이 살아갈 날을 생각해 본다―안상학,‘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걷는사람, 2016)’에서‘발에게 베개를’전문우리의 제한된 삶, 그 불가역의 궤적을 발에 의탁해 형상화한 시들이 꽤 많다. 발만큼 시로 쓰는 인생론에 자주 쓰이는 클리셰도 없을 것이다. 안상학(1962~) 시인의 ‘발에게 베개를’은 제목부터 해학적이다. 해학이란 무엇인가, 예술 체험의 핵심인 즐거움과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 시의 소재는 발이다. 그런데도 이 시는 발이 머리로 읽힌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 치를 나아가기 위해 두 발로 바닥을 디뎌야 하는 발은 머리와 달리 지상의 바닥과 맞닿은 우리의 몸 가장 아래쪽에 있다. 시인이 가진 발에 대한 연민에는 보이는 현상보다 더 복잡다단한 미안함이 실려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시에 대하여 갖고 있는 낭만적인 정조와는 사뭇 다르게 날카로운 사실적 세계의 인식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희정 시인 “가고 싶은 곳에는 경쾌하게” “가기 싫은 곳에는 천근만근”이라는 표현처럼 하기 싫은 것들을 견디는 것. 하지만 발 스스로가 이끄는 삶과 끌려가는 삶은 그 무게가 다를 것이다. 발이 향하는 곳을 표현한 이 두 구절은 ‘경쾌’와 ‘천근만근’이라는 대비적인 시어로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심상을 적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발은 앞서가는 발과 끌려가는 발로 병치된다. 우리의 삶처럼.이 시의 클라이맥스는 “발에게 베개를 받쳐”주는 데에 있다. 마음의 발을 동동거리는 바람에” “마음의 신발을 찾지 못해 허둥대던”날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조곤조곤 발을 위무하듯 “열 발가락 하나하나 꼽으며 가고 싶은 곳을 헤아려 본다”정작 그가 가고픈 곳은 어디일까? 이 물음 앞에 우리는 그가 가자고 하는 곳은 정의와 평등 그리고 개인의 해방이 이룩된 곳일 거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시를 쓰는 까닭은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우리의 발이 견뎌내는 곳은 인간의 자유가 이룩된 세상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비록 그런 삶을 꿈꾸며 사는 일이 힘들지라도 “더 늦지 않게” “발과 함께 머물고 싶은 곳을 머물리라”다짐한다. 때때로 나 자신이 자유할 수 있는 소유권은 얼마나 될까를 헤아려 본다. 대부분 직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여분으로 각자의 역할에 맞게 할당된 크게 작게 소속된 장소에서 소유한 지분을 제외하면 오롯이 나만의 몫은 그닥 많지 않다. 그럴 때마다 안상학 시인을 따라 발에 베개를 받쳐 놓고 소리 내어 읊조려 보는 것이다.“가고 싶은 곳에 앞장 서 가는 발을 따라 나서리라”

2023-07-30

내가 본 그사람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저 사람은 부정적이야, 위치의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이런 평가는 그 사람의 실체라기보다 내가 본 그 사람이고 내가 해석한 그 사람이다. 우리는 수많은 대화 속에 이런 오류를 범하면서 살아간다. ‘아들아,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돼!’ ‘엄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나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야’ 엄마와 갓 중학생이 된 아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아들이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자기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사람은 누구나 어떤 현상에 대해서 자신의 가치관대로 평가하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기업이나 가정에서도 대화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와의 관계도,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심지어 평생을 한 이불 덮고 살아온 부부 간에도 대화가 참 어렵다. 이것은 상대 관점에서 보기보다 자기 관점에서 생각하고 얘기하기 때문이 아닐까.커뮤니케이션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에서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읽고 일 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대화가 현실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라고 한다. 일상 대화에서도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받게 되는 데, 이것은 자기 판단이 들어가는 순간 상대와 견해차이로 충돌이 일어난다. 실상 그대로를 보는 ‘관찰’ 관점보다 자기 주관이나 판단이 들어간 ‘추측’ 관점으로 보면 상대 시각은 다를 수 있으니 부딪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판단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대화에서 경청을 잘 하면 된다고 하는 데 경청도 쉽지않다. 미국 UCLA 대학교 심리학과 매라비언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구성 요소 중 옷차림, 용모, 인상 등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단어를 통해서 뜻이 전달되는 것은 7%, 어조, 억양, 음성 등 소리의 요소 38%, 나머지 55%는 제스처, 표정, 몸짓 등 동작 요소에 의해 전달된다고 한다. 동작이나 어조를 제대로 듣지 않으면 소통이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니 말하지 않은 것도 듣는 것이 소통의 기술자가 아닐까.기업의 혁신활동을 사람으로 표현해보면, 뼈대는 조직을 의미하고 살에 근육을 붙이는 것이 혁신이고 동맥, 정맥 등 혈의 흐름을 좋게 하는 것이 혁신 운영이다. 혁신 운영에서는 상하·수평조직의 동맥과 직장생활에서 늘 일어나는 대화의 정맥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고 혈류 막힘 현상이 일어나 조직이 고혈압이 되면 그 기업은 어려워 지는 것이다.조직 고혈압을 예방하는 길은 내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의 전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내가 본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상대관점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부모자식, 친구, 직장에서 상하·수평조직 등 혈관의 흐름이 좋은 소통을 이뤄 건강한 기업, 미래가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개인의 삶과 기업의 건강은 내 판단을 버리고 상대 관점의 생각에서 시작된다.

2023-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