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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다시 기림일

김은주 포항시의원 다시 기림일이다. 정확하게 오늘은 국가 기념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그리고 내일은 광복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광복의 기쁨을 누려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거꾸로 가는 세상에, 그리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8월 첫날 폭염으로 한껏 달궈진 길 위에 섰다.국회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폭염주의보에 1시간 동안의 1인 시위는 땀과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운동을 했던 단체에 대한 가짜뉴스가 대량 생산되었다. 최근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왜곡된 프레임 탓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를 지원하는 모든 활동 등이 부정되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1992년부터 시작해 1천600회를 넘어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현장은 더 참혹하다. 언젠가부터 역사 부정 세력들이 수요시위 자리에 집회 신고를 해서 자리를 선점하기 시작하더니 그들의 혐오 발언은 30여 년을 바위처럼 지켜온 수요시위 현장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서 발언하시는데도 할머니의 실명을 부르면서 성희롱적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참아내기 힘들 지경이었다.‘누가 저들의 스피커를 저렇게 키워주고 있는 것인가?’ 슬프고도 참담했다. 무엇보다 그 모진 말들을 오롯이 견뎌내고 있는 수요시위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얼마 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만 봤던 역사 부정 세력들이 내일 광복절에 포항 환호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소녀상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고 한다. 포항까지 찾아온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다. 사실 알고 싶지 않다. 무관심이 최선이긴 하다.하지만 한 가지만 알려 드리겠다.포항 환호공원의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포항여성회가 주축이 되어 포항시민 3천여 명이 모금에 참여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포항시에서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끝으로 국회에 잠들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이 긴 잠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등록한 240여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이제 생존자는 아홉 분에 불과하며 평균 연령이 94세로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해 96세이신 경북에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생존자이신 박필근 할머니께서 뉴스를 자주 보신다.행여 할머니께서 역사 부정 세력들의 혐오 현장 관련 뉴스를 보시고 “누가 그카던데, 그게 무슨 말이고?” 이렇게 물으신다면,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다시 기림일!혐오는 정의와 상식을 이길 수 없다.오늘 하루만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2023-08-13

끝이 안 보이는 정치적 시니어 비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노인’이란 단어를 개인적으로 쓰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단어을 공공연하게 쓰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 일 것이다. 영어에서는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하여 경험을 강조하지 늙은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할인을 하는 경우 시니어 디스카운트(Senior Discount)란 단어를 사용한다.민주당의 정치적 시니어 비하는 끝이 안 보인다. 시니어에서 표를 많이 얻지 못하니까 아예 시니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거나 차등화된 표를 주자고 주장한다.어떤 정치인이 시니어에게는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 삶이 많이 남은 젊은이에게는 투표권을 더 할당하고 남은 삶에 비례하여 투표권을 비례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그러니 또 다른 정치인이 맞장구를 치며 시니어는 곧 사라질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 중고교생들은 살날이 많으니 한 100표의 권리는 주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참 정신나간 정치인들이다. 표를 얻으려니 모두들 제정신들이 아닌듯하다. 이들의 막말과 비하는 처음이 아니다과거 대통령 후보는 ‘60대 이상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 쉬셔도 되고….’라는 발언을 비롯해 ‘50대가 되면 멍청해진다. 60대엔 책임 있는 자리는 맡지 말아야’한다는 말도 했다. 심지어 ‘서울 노친네들 투표 못하게 여행 예약해드렸다’는 네티즌의 트윗에 ‘진짜 효자!!’라고 댓글을 단 분이 교수를 하고 장관을 했다는 분이다.사실상 이들의 시니어 폄하 발언은 표를 얻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치유할 수 없는 습관성 질병의 수준이다. 이들의 발언은 시니어 폄하가 아니라 시니어 혐오의 수준이다. 자기들에게 표를 많이 안준다고 하여 시니어들을 혐오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투표권을 남은 생명과 비례하여 주자고 주장한 그 분은 대학교수까지 했던 분이라고 하는데 정말 수학적 사고가 그 정도인가 묻고 싶다. 그 분 주장대로라면 갓 태어난 1세가 남은 생명이 가장 길기 때문에 가장 많은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 선거제도가 가령 18세 이하에 투표권을 안주는 것은 사고의 성숙도를 고려하는 것이다.사고의 성숙도는 18세가 넘어 시작되어 계속 경험과 성숙도가 쌓이면서 늘어간다. 사고의 정점의 나이가 몇인가 하는 가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많은 시니어들은 사고의 성숙이 계속 늘어간다고 믿고 있다.맞장구를 친 의원은 “김 위원장 말이 맞다.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는 섬뜩한 글을 남겼다. 연령과 세대를 선거 득실과 표로 계산하고 재단하는 음습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를 미워하고 투표권을 제한하자는 반민주적 공상을 하는 당이 ‘민주’라는 당명을 붙이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인간은 누구나 늙어간다. 선택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고령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성숙한 사고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니어들에 대한 반감과 저주를 퍼붓는, 조폭적 행패를 즉시 멈추어야 한다. 미래는 청년과 시니어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결정되는 것이다. 합리 운운하면서 시니어 차등 투표까지 토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당사자는 발언의 맥락을 오해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오해가 된 것이 아니고 표를 의식한 막말이 확실히 느껴진다. ‘청년’과 ‘미래’라는 명분으로 시니어들을 핍박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절대 아니다.시니어들은 지금의 청년이 존재하도록 사회를 발전시킨 장본인들이다.시니어의 개념도 이제 자꾸 달라지고 있다. 100세 시대에는 기존의 청년, 중년, 시니어의 개념도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 환갑잔치도 사라지고 칠순 잔치도 안하는 시니어들이 많다. 그들은 장년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나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은 판단이 흐려진다는 주장이다. 경험을 해보니까 판단은 더 명확해지고 오랜 경험에서 무리한 결정보다는 더 합리적인 좋은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 느껴진다. 치매 등에 의한 사고의 노쇠가 있지만 그건 본인이 확실히 알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대학에는 교수의 강제 은퇴가 없다. 스스로 판단하여 80이 넘어서 강단에 서는 교수도 많다. 특히 초일류 대학인 하버드, 스탠퍼드 등에는 이런 교수들이 많다.나이는 숫자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이로 세대를 구분할 필요도 없고 차별화할 필요도 없다. 같은 사고를 하고 같은 감정을 가진 것이 시니어 세대이다. 이제 100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고 시니어들의 활약도 사회의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너 늙어보았니? 나 젊어 보았다”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이 들어 보지 않은 청년들은 시니어를 충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그러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추측으로 세대를 구분하고 혐오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자신들의 이익 계산에 의한 시니어 혐오는 즉시 멈추어야 한다.

2023-08-13

기후재난과 극복을 위한 실천방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탄소중립, 넷 제로, RE100’ 같은 단어들이 이제 일상의 문제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이 심각한 현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7월은 온도계가 도입된 후 가장 더웠다고 한다. 평소 장마철에 300㎜ 정도 오던 비가 1천㎜ 이상 쏟아져 경북에서만 25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란 걸 온 국민이 절감하고 있는 여름이다.지구상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경우, 공기로 증발하거나 식물·토지·해양에 저장됨으로써 수많은 세월 동안 균형을 이뤄왔다. 그런데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땅속에 저장되어 있던 화석연료를 인위적으로 캐내어 사용함으로써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현재는 산업혁명 전에 비해 석탄, 석유, 가스등 화석연료로부터 매년 510억t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국제사회는 뒤늦게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위기를 깨달았다. 2015년이 돼서야 UN은 파리기후협약(197개국 참여)을 통해 국가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21년까지 제출받았다.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2030년(2017년 기준)까지 43% 정도의 감축목표를 제시했다. 우리나라도 2018년 기준 40% 감축목표를 제시했다.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매년 발생되는 510억 톤의 탄소배출을 제로(0)로 하자는 것이 목표다.최근 IPCC(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탄소중립뿐만 아니라 화석연료(석탄, 석유, 가스) 기반 경제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수력) 기반 경제로 바꾸자는 ‘에너지 대전환’ 선언을 했다. 지금처럼 화석연료 기반 경제를 유지하다가는 기온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높아져 2100년쯤에는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인류가 기후연대 협정을 맺던지 집단적 자살협약을 하던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라고 부르짖었다.에너지 대전환을 하려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편리하고 익숙한 생활문화를 단기간에 바꾸기 위해서는 대단한 실천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월드 그린뉴딜’ 제안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이제 인류도 ‘멸종할 수 있는 생물종’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현실은 인류가 ‘공동의 유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라고 했다. 필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정치 지도자들이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대전환에 대해 비용을 운운하며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든지 또는 마치 안 해도 될 일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는 한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에서 멈추라’는 선언이 헛구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위기 전문가들은 온도 상승이 ‘2도’를 돌파하면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지구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궁극적으로 물질 중심의 문명 체계를 바꾸는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인류의 생존 문제가 걸린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첫째, 사용하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서 30% 에너지 절감을 실천해야 한다. 이회성 IPCC의장에 따르면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의 40~70%는 절감 가능하다는 것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 절감을 ‘The First Fuel(첫 번째 발전소)’이라고까지 하며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에너지 절감은 1㎾ 절감에 27원의 비용이 드는 가장 싸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발전이다. 공장이든, 빌딩이든, ATP든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면 작게는 몇 십 ㎾, 크게는 몇 백 ㎾ 청정 발전소 하나를 갖는 것과 같다. 에너지 절감 활성화를 위해서는 절감에 따른 각종 인센티브 제공과 ESCO(성과배분방식)와 같은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둘째, 모든 건축물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우리나라에 필요한 재생에너지의 30% 정도를 조달할 수 있다. 기업들이 공장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작게는 몇 100㎾에서 많게는 수천㎾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하다. 공장과 아파트, 상가, 주택의 지붕·옥상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셋째,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햇빛이 가장 풍부한 전답에 태양광과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서 대도시나 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우리나라는 지금 정치인이나 기업을 비롯해 전 국민들이 기후위기에 무감각한 상태다. 탄소중립이 뭔지, RE100이 뭔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마치 미지근한 솥에 들어앉은 개구리와 같은 모습이다. 솥은 이미 끓고 있는데 생명이 위험한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에너지에 대한 국민 의식의 대전환 없이는,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기후 재앙을 우리 눈으로 명백하게 보는 순간, 기후환경에 대한 통제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는 섬뜩한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2023-08-13

‘시인의 저녁’, 종언을 고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금요일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아, 그렇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경북대 교수회에서 퇴임의 변(辯)을 써달라는 시한이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길을 걷는 일은 그래서 유용하고 의미 있는 모양이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얼핏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을 차분하게 반추하여 글로 옮겨야 한다. 원고매수 제한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하면 된다.수요일에는 젊은 가수 박창근씨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목요일에는 학교 선생님 두 분과 함께 교육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봤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음유시인이자 참여 가객(歌客) 정태춘-박은옥 부부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구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이 청취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다. 금요일 저녁 6시 5분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방송을 마치면 ‘시인의 저녁’은 종방이다.지난 2020년 10월 5일 저녁 6시 15분에 시작하여 2년 10개월 1주일 동안 진행된 ‘시인의 저녁’이 막을 내린다는 소식은 지난 5월 중순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송국의 의사결정과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손님인 나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은퇴를 목전에 둔 연출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송 중단 통보는 찜찜하고 아쉬운 것이었다.8월 11일 저녁 8시가 되면 2021년 ‘한국 방송 라디오 부문 대상’을 받은 전국 유일의 시사와 인문학 프로그램인 ‘시인의 저녁’이 끝난다. 그런 자명한 사실이 시간과 더불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의 사실로 굳어진 방송 중단! 수요일 박창근 가수는 여러 차례 부당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좋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항변조로 말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이 있든 없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교수질 30년 인생이 끝나가듯 ‘시인의 저녁’도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나오자 30명 정도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잔칫상을 준비한다. 피디와 아나운서, 방송작가들이 십시일반 (十匙一飯) 정성스레 준비한 상이 펼쳐지고, 축하와 감사 인사가 이어진다. 여기저기 사진기가 소리를 내고, 환한 웃음과 예기치 못한 눈물이 터져 나온다.‘사랑에 관하여’에서 안톤 체호프는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시간에 끝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남녀 주인공 알료힌과 안나 알렉세예브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마침내 종언(終焉)을 고할 때 작가가 남긴 말이다. ‘시인의 저녁’도 그러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다’라는 글을 남긴 윤동주 시인의 말에 더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1천일 동안 ‘시인의 저녁’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준 대구경북 청취자들께 감사드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그들과 만나고 싶다. 끝은 어차피 새로운 시작이기에!

2023-08-13

長壽의 섬 울릉

우정구 논설위원 중국 진나라 황제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염원해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도 등지로 사신을 보내 불로초를 구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염원한 불로장생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49살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늙지 않는다는 불로초가 실존하지는 않지만 인류는 오래 살기를 염원하면서 질병과의 싸움을 거듭한 끝에 인간의 수명을 꾸준히 늘렸다. 통계에 따르면 1900년도 세계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31세였고, 1950년대 와서 평균 49세로 높아졌다. 2020년에는 1900년도의 두배가 넘는 평균 73세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4세다.최근 질병관리청 자료에 의하면 울릉군은 전국에서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사는 도시로 밝혀졌다. 울릉군의 건강수명은 77.4세로 전국 평균 70.9세보다 6.5세가 높았다. 또 전국에서 가장 짧은 부산의 부산진구 64.9세보다는 무려 12.5세가 높았다. 건강수명이란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기간을 뺀 수명을 말한다.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평균 외래진료 횟수가 OECD국가 중 1위를 차지한다. 의료기술과 의료복지가 잘 돼 있어 OECD 국가 중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등이 최상위권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이런 의료 현실과는 다르게 울릉군의 의료환경은 열악하다. 실제 병원 역할을 하는 곳은 보건의료원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건강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은 눈여겨볼만 한 일이다.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란 특수성과 울릉군의 뛰어난 자연환경, 맑은 공기, 좋은 물 등이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준 탓은 아닐까. 이번 조사로 울릉군이 전국 최고 청정지역임이 입증된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3

中 단체관광 재개, 대구경북 관광호기 살려야

중국 정부가 코로나 대유행 이후 3년여 만에 자국민의 해외 단체관광을 한국을 포함 미국, 일본 등 78개국과 함께 전면 허용했다. 한국으로서는 사드(THAAD) 배치를 이유로 한국행 단체비자발급이 중단된 지 6년5개월만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맞게 되는 셈이다. 중국 여행객(유커)의 한국관광 허용은 침체된 한국 관광산업 활성화에 큰 힘이 된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관광업 관련 주식이 반등세를 보이고 관광업계도 유커 맞이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등 중국 정부의 조치를 반기는 모습이다.그러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과거만큼 많이 찾아올지는 미지수란 전망도 있다. 우리나라는 한때 전체 외래 관광객의 47%가 중국인이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드배치 이후 반한감정이 생기고 일본, 미국, 유럽 등을 선호하는 중국인도 늘어 과거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직접 관광산업 진작에 나서고 있는 일본과도 유치경쟁을 벌여야 한다.6년여 만에 재개되는 관광업계의 대형 호재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더 치밀한 기획과 전략으로 중국 단체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대구와 경북도 마찬가지다. 경주 등 지역의 명승지를 중심으로 중국 단체관광객 유치에 본격 나서야 한다. 당장 황금연휴인 중추절과 국경절을 앞두고 있어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관광업계가 손을 맞잡고 유커 유치에 만반의 준비에 나서야 한다.경북은 2030년까지 연간 1억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는 등 관광산업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을 경북관광이 일어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대구도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 등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동성로 관광특구는 외래관광객 부족을 이유로 한번의 실패를 했다. 이번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 내년에는 반드시 관광특구 지정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유치가 관광업계 노력만으로 온전한 성과를 낼 수 없다. 지자체가 같이 노력해 호기를 살려야 한다.

2023-08-13

지구온난화와 제조 현장의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올여름 폭염이 미국과 유럽·아시아를 강타하며 3개 대륙이 경쟁하듯 연일 사상 최고기온을 갈아치우고 있다. 미국 남부 피닉스는 50년 전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19일째 43도가 넘는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유럽도 로마 관측사상 최고 기온인 41.8도를, 스페인 일부 지역은 45도의 폭염을 기록하였다. 인도에서는 최소 90명이 더위로 사망하면서 급기야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지구가 끓는 시대가 시작 되었다’고 발표하였다.우리나라도 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용머리해안을 갔는데 제주 해안의 해수면 상승폭이 지구 평균의 3배로 1989년을 기준으로 2018년 12.8Cm 상승하였고 2050년 26.4Cm, 2100년에는 47.7Cm가 상승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용머리해안로의 종일 탐방 가능 일이 2011년 214일에서 2020년에는 42일로 줄어들어 아쉽게도 해안에서 바라만 보다 와야 했다.최근 제조현장에서도 지구환경에 영향을 주는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을 줄이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 황산화물은 보통 SOx라고 하며 황과 산소가 주성분으로 대기중에는 아황산가스(SO2) 상태로 존재한다. 연료 중에 함유된 황 성분이 연소에 의해 산소와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주로 다공의 활성탄을 사용하여 화학적물리적인 흡착을 통해 제거하고 있다.질소산화물의 주요 형태는 일산화질소(NO)와 이산화질소(NO2)이며 이 둘을 합쳐서 NOx로 표현한다. 질소가스를 구성하는 두개의 원자는 아주 강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원자 상태로 쪼개는 것은 높은 온도가 아니면 쉽지않다. 그래서 주로 제조 현장의 연소로 소각로 등 석탄, 석유, 가스 등과 같은 연료에 의한 연소시 생성되며 대기중에서 물과 반응하여 질산(HNO3)을 만들어 산성비를 유발하므로 인체에 유해하며 환경과 대기 오염을 유발한다.질소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제조 현장에서는 오산화바나듐(V2O5)을 촉매로 사용하여 암모니아와 몰농도를 일정비율로 주입 280 ~ 450°C 온도에서 반응시켜 NOx를 제거하는 선택적촉매환원법(SCR)을 많이 사용한다. 제철공정에서는 원료를 1차 가공하는 소결로에서 광석을 소결하는 과정에서 배출가스에 포함된 황과 질소 산화물을 탈황과 탈질 설비를 순차적으로 거쳐 대기 방출 농도가 기준치 이하가되도록 하고 있다.생산설비를 정기수리나 점검후 재가동할 때 불안전 연소나 탈황 탈질 설비가 정상 가동이 안되어 황과 질소 산화물 농도가 많이 올라간다. 이들 설비가 정상 가동되기 위해서는 수분, 온도 등의 가동 조건이 되어야 하기에 현재는 행정처분 유예 시간을 설비 특성을 고려하여 주고 있다.하지만 최대한 짧은 시간에 법 기준치 이하로 빠르게 낮추는 것이 회사나 사회 모두에게 필요하므로 설비 문제점을 발굴하여 정상가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개선을 지속하고 있다.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 저감은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 주기 위해서라도 모두의 노력과 개선이 더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2023-08-13

치매는 치매가 아니다

유영희 작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병을 꼽으라면 누구나 치매를 들 정도로 치매는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치매에 걸리면 벽에 똥칠한다는 소문으로만 치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매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치매라는 명칭 때문이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환자의 증상과도 동떨어져 있다.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낮기는 하지만 어리석지도 않고 증상의 범위도 넓기 때문이다.지난 6월부터 노후 준비 차원에서 치매를 공부하고 있다. 사회교육기관에서 치매 강의를 같이 들은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어 학습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중증 치매 환자라도 자기주도권에 대한 의식은 끝까지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알고 숙연해진 적이 있다.신경과 전문의 양현덕은 치매 환자 진료에만 머물지 않고 치매 전문 출판사와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는데, 2021년 ‘디멘시아 도서관’을 개관하여 치매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치매 정명’이라는 책에서 ‘치매’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만 해도 이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며,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대만은 2001년에 실지증으로, 일본은 2004년 인지증으로, 홍콩과 중국은 2010년과 2012년에 뇌퇴화증으로 이름을 바꾼 상태다.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나라보다 조금 늦게 2006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치매 명칭 개정을 추진했고, 2017년에는 ‘인지장애증’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한 국회 입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병명 개정보다 사회적 인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계류된 이후 최근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다시 개명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간질은 뇌전증으로, 정신분열증은 조현병으로, 나병은 한센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감소한 사례가 있다. 막연히 예쁜 이름으로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치매 정명’에서는 새 명칭의 조건으로 질병의 본질이 잘 반영해야 하고, 과학적 타당성이 있어야 하며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현재 84만 명으로 추정되는 치매 환자는 2030년에는 136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치매에 대한 무지로 이들을 불편하게만 생각한다면, 그 부담은 우리 모두가 같이 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여 악화되면 시설에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환자에게도 고통이고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조기 발견할 수 있고 잘 관리하면 자기 집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그러기 위해서는 명칭 개선이 급선무다. 그동안 후보에 오른 ‘인지장애증’와 ‘인지저하증’, ‘신경인지장애’ 중에서 선택해도 좋다. 이 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치매라는 단어를 썼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치매는 치매가 아니다.

2023-08-13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에 거는 기대

주낙영 경주시장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가 보름간 경주 일원에서 개최된다. 제6호 태풍 ‘카눈’의 한반도 북상으로 대회 차질이 우려됐지만, 10일 열릴 개회식은 취소하고 대회 시작도 11일에서 12일로 하루 연기하는 것으로 조정해 무사히 개막했다.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이번 화랑대기는 지난 12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오는 25일까지 국내 최초 에어돔 축구 훈련장인 ‘스마트 에어돔’을 비롯해 알천구장, 축구공원, 화랑마을, 시민운동장에서 1천900여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이번 대회는 전국 620여 개 팀, 선수 1만 여 명이 참가한다.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불참했던 일본 나라시와 중국 양저우시 유소년 팀까지 출전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대회가 될 전망이다.올해부터는 선수들과 공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촬영하는 AI 카메라 중계를 도입해 유튜브(KFATV Live, AI SPORTS TV)에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 관람이 가능하다.또 폭염을 대비해 선수들의 안전과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다양한 팀들이 빠짐없이 스마트 에어돔 경기장을 일부 활용할 수 있도록 경기 일정을 마련했다. 또한 대회안전과 차질 없는 진행을 위해 야외 축구장에 쿨링포그(물입자 분사) 운영, 경기장 아이스박스 설치 및 물 공급 확대, 쿨링 브레이크 시행 등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올해 화랑대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이었던 2021년 대회 당시 221개 팀 참가에 485경기가 열렸던 것과 비교하면 참가팀은 3배, 경기 수는 무려 4배 이상 늘었다.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선 가파른 성장세다. 화랑대기 앞에 ‘전국 최대 규모 유소년 축구대회’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까닭이다.이뿐만이 아니다. 화랑대기가 열리는 8월 보름간 지역 숙박업소 물론, 시내 음식점과 상가 대부분이 누리는 이른바 ‘화랑대기 특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위덕대 건강스포츠학부 박진기 교수팀이 분석한 ‘2022 화랑대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선수단 1만3천790명이 지난해 경주에서 7.25일을 머물렀고 선수 학부모 등 방문객 4만3천549명이 4.28일을 경주에서 묵었다.이 기간 출전 선수단이 지출한 직간접 비용은 84억8천만, 학부모 등 방문단이 지출한 비용은 303억3천만원으로 집계됐다.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선수들이 식사와 숙박이 편리한 불국사 숙박단체단지에 머무는 반면, 학부모들은 보문관광단지와 도심권에 주로 머문다는 점이다.‘화랑대기 특수’가 특정 숙박업소나 단체식당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주 전역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특히 화랑대기가 여름휴가 성수기가 끝나는 8월 중순부터 열리면서, 사실상 여름 성수기가 10여일 이상 연장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화랑대기가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에 큰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반면 화랑대기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대회 때마다 지적을 받았던 일부 숙박업소 업주들의 바가지 상혼과 경기장 주변 불법 주정차 문제가 대표적이다.경주시에서는 지속적인 행정지도와 단속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성숙된 시민의식과 참여이다.최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연속으로 3대 0 참패를 당했다. 호주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여자월드컵대회’에서의 일본 여자축구팀의 선전은 부럽기만 하다. 일본축구의 놀라운 성장과 발전은 유소년 축구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경주시가 유소년 축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심만은 아니다. 국민적 스포츠인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대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화랑대기를 통해 배출되었음을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경주시는 전국 최대 규모 유소년 축구대회로 자리 잡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화랑대기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모든 역량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2023-08-13

사랑, 그 지독한 멜로

이희정 시인 그가 오른손 검지로 내 왼눈을 찔렀다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그의 손가락이 후벼 파는 내 혈관의 피비린내를 음미했다어쩌다 통증 같은 것이 올라오면한밤중에 사 오던 감기약이나목도리 둘러주던 손길을 떠올리기도 했다그러다 어떤 순간엔 눈꺼풀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그의 손가락이 내 눈에서 빠져나갔을 때내 눈을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나는 그의 손끝이 지나가는 길을 잊지 않으려고내 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잊기로 했다나는 눈이 전부인 물고기였다그가 손가락을 빼고물 없는 수조에 나를 눕혀주었을 때나는 비로소 숨쉬기를 기억해냈다그가 왜 내 눈을 찔렀는지나는 왜 물고기가 되었는지알 수 없었으므로나는 오른눈을 내 손으로 찔러보기로 했다―최라라, ‘사랑’ 전문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2017)최라라 시인이 그려내는 ‘사랑’은 독특하고 강렬하다. 제목과 달리 이 시는 그저 달콤쌉쌀한 멜로가 아님을 첫 행부터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장르적 관점에서 보자면 서정적 스릴러라고 명명하고 싶을 만큼 기이하고 매혹적이다.“형식은 이데올로기의 벡터다” 에이젠시테인이 남겼던 이 말은 다른 예술처럼 시에서도 형식의 중요성을 그대로 요약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형식의 자장 속에서 위축되지 않은 잔혹한 그로테스크(grotesque)의 미학을 유감없이 드러낸다.이 시에서 사건을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감각이다. 눈은 보는 대신 기억하고 꿈꾸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의 말처럼 시인에게 사랑은 즉각적으로 고통을 주는 폭력의 의미가 아니라 ‘그’의 존재를 삶의 속살에 깊이 새기는 폭력, 그리하여 운명이 새겨지는 폭력이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새기는 일이기에 상처가 나기 마련인 사랑의 격렬함을 의미한다. 고통을 회피한다면 사랑의 극한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시인이 “그의 손가락이 후벼파는 내 혈관의 피비린내를 음미”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폭력의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그’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 속으로 격렬히 침입해 들어올 때 일어나는 피비린내로부터 올라오는 통증이다. 이는 아마도 ‘그’에 대한 따스한 추억들, “한밤중에 사 오던 감기약이나/ 목도리를 둘러주던 손길”과 같은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시인이 기억하는 사랑은 소중하다. “나는 그의 손끝이 지나가는 길을 잊지 않으려고 / 내 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잊기로 했”던 것, 그리하여 그녀는 “눈이 전부인 물고기”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던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시인은 “그가 왜 내 눈을 찔렀는지/ 나는 왜 물고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시인은 자신의 “오른눈을 내 손으로 찔러 보”는 일을 자행한다. 자신의 눈을 찔러줄 ‘그’는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 자신의 다른 쪽 눈을 찔러봄으로써 사랑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자신 안에 깊이 존재하는 그를 이해하고 자신이 물고기가 된 연유를 알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눈을 찔러보는 고통스러운 실험이 시인이 시를 쓰는 바탕이 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떠나간 ‘그’를 기억하며 자신의 눈을 찔러 눈알이 된 지느러미만 남은 물고기가 시인의 숙명임을 견지하고 있다.사랑의 방식이 서로 달라서 상처인 줄 모르고 내 방식을 고집하는 사랑이라고 말한 친구의 독해처럼 이 시는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다. 가학적인 사랑의 상처가 멈춰 선 자리에서 최라라 시인은 다소 모호하게 구두점을 찍으며, 고백의 바깥으로 배턴을 넘긴다. “그의 손가락이 내 몸을 빠져 나갔을 때”의 서술이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의 대담함이나 우울한 판타지의 대리 만족도 아니다. 이것은 헤어짐을 삶의 본질로 이해하게 되는 그에 대해 기억하는 그녀의 사랑 이야기다. 그가 떠나고, 환상이 끝나고, 꿈이 끝나야 비로소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이 시에서의 사랑이 처한 위치다.“그의 손끝이 지나간 길을 잊지 않으려고 내 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잊기로 했다”

2023-08-13

그들만의 리그, ‘이권 카르텔’

홍석봉 대구지사장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는 조직력이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결속력이 강한 인맥 집단이다. 또한 가장 배타적인 집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한국 3대 마피아’라고 칭해지기도 했다. 이들의 조직은 국내는 물론 세계로 뻗어있다.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대표적인 인맥 집단이다. 이 3대 조직도 사정이 예전만은 못한 듯 하다. 젊은 세대의 정서에 맞지 않아 회원수 격감 등으로 쇠퇴하고 있다. 그래도 끈끈한 유대는 이어지고 있다.최근 ‘이권 카르텔’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았다. 윤 대통령은 202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권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문재인 정권을 겨냥했다. 이후 각종 ‘이권 카르텔’이 등장했다. 척결 대상이 됐다. 노조와 시민단체가 타깃이 됐다. 정부가 노조에 메스를 댔다. 민간단체 보조금을 유용한 시민단체도 ‘이권 카르텔’의 한 부류가 됐다.이권 카르텔의 대상은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도 대상이 됐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부정과 부패의 온상으로 이권 카르텔로 지목됐다. 수능 킬러문항 논란 이후 ‘사교육 이권 카르텔’이 등장했다. 최근엔 ‘순살 아파트’사태로 LH의 ‘전관 카르텔’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대통령은 신임 차관에게 임용장을 주면서 현 정부를 ‘반카르텔 정부’로 규정하고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주문했다.‘50억 클럽’의혹의 당사자인 박영수 특별검사의 구속을 계기로 법조 카르텔이 주목받았다. 이권 카르텔을 깨는 첨병인 검찰도 도마위에 올랐다. 법조 카르텔에 침묵하는 검찰에 대해 여론은 비판적이다.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 위세를 떨쳤던 ‘하나회’는 카르텔의 원조다. 군부내에 패거리문화를 조장했었다. 관가에서는 한때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모피아’가 대표적 카르텔이다. 재무부와 재경부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그들끼리 대물림했었다. 최근 문제가 된 LH의 전관 업체 특혜도 공무원 사회에 이어져 온 ‘전관 카르텔’의 하나다.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 예우 풍토는 대표적인 전관 카르텔이다. 문화권력자들의 이권 카르텔과 운동권의 좌파 카르텔은 사회의 암덩이가 됐다.이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각종 카르텔이 판을 치고 있다. ‘관행’이란 이름하에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혈연·지연·학연이 판을 치던 연고 사회의 변형된 모습이다.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이권 카르텔’이 적지 않다. 오히려 더 조직화되고 내부 결속이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애교심과 애향심, 동지애는 잘 어우러지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다. 하지만 권력 지향과 이념이 덧입혀지면 또다른 ‘이권 카르텔’이 된다.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이권 카르텔이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거나, 비판 세력이라고 해서 낙인찍기는 곤란하다. ‘이권 카르텔’이라는 이름으로 조자룡 헌칼쓰듯 단죄 해서도 안 된다. 자칫 전임 정부의 적폐청산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

2023-08-10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태풍후 방역도 비상

강우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지나가면 각종 감염병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특히 강풍 등으로 축사 지붕이 뜯겨 날아가거나 축사 주변의 방역소독시설이 파손돼 방역에 구멍이 생길 우려가 높다.경북도는 태풍 카눈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의 전파 위험도가 높아질 것을 우려, 조기 차단에 나서기로 했다. 멧돼지 폐사체나 ASF 검출지점의 흙, 나뭇가지 등이 하천이나 농지주변 토사로 유입되고 해당 지점을 통과한 차량, 사람에 의해 ASF 바이러스의 유입 가능성이 있어 사전 조치에 나선 것이다.도내 양돈농가에서는 아직 ASF 발생은 없다. 그러나 지난 7일 안동지역 야생멧돼지 4마리에서 ASF 감염이 확인되는 등 도내 8개 시군에서 ASF 감염이 있었고 지속 남하 중인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언제 ASF 발병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ASF는 돼지와 야생멧돼지에 생기는 바이러스성 출혈성 전염병이다. 급성형은 발병 후 9일 안에 거의 100% 죽는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 해외서도 ASF 감염 돼지는 100% 살처분한다.ASF는 돼지고기 파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사전차단 방역이 필요하다. 물론 축산농가에게는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현재로서는 차단 방역과 충분한 소독이 최선 방책이다. 경북도는 축산농가에게 배수로 정비, 울타리 및 소독시설에 대한 방역 점검, 돼지 음용수의 상수도 대체, 주변 농경지나 하천, 산 등에 대한 방문 금지 등을 요청했다. 방역과 관련한 당국의 주의사항을 준수하는 축산농가의 적극적 대응이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ASF가 발생하면 양돈농가는 사육돼지를 모두 살처분해야 하는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치료제가 없다고 손을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이베리코 흑돼지로 유명한 스페인도 ASF 감염으로 곤혹을 치렀으나 정부 당국과 축산농가의 적극적인 협조로 청정국을 선언했다. 태풍 후 곳곳에서 감염병이 진동할 우려가 높다. 방역당국과 관련농가는 방역의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한다.

2023-08-10

성주참외의 진가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산 참외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일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개발한 품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이를 코리안 멜론으로 부른다.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분류학적으로는 멜론의 한 변종이다.멜론과 오이의 중간 정도의 맛을 가지고 있다. 참외의 어원도 좋다, 뛰어나다는 뜻의 ‘참’과 ‘오이’를 축약해 참외로 불렀다.수분 함량이 90%이상 차지해 수박과 더불어 대표적인 여름 과일로 손꼽힌다. 지금은 하우스재배가 가능해 연중 생산되지만 여름이 제철인 과일이다. 비타민C가 풍부해 기미, 주근깨 예방에 좋고 피부노화를 늦춰져 여성에게 특히 좋다. 또 무더위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참외 씨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속설이 있으나 씨앗에 붙어 있는 태좌는 식이섬유가 많아 씨앗을 같이 먹는 것이 오히려 좋다.참외하면 경북 성주다. 우리나라 생산량의 80%가 성주에서 생산된다. 성주군은 50년 전부터 참외를 많이 재배해 왔다.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비옥하고 넓은 토지와 풍부한 일조량이 있어서다.성주군에서 생산되는 참외 규모가 연 6천억원 정도다. 제주 다음으로 조수익 규모가 크다. 성주군내 3천800여 참외 농가 중 44%가 억대 조수익을 올리는 부농이다.지난 4일 일본 소비자청은 한국산 참외가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해 기능성표시식품으로 등록을 허가했다. 참외에 함유된 가바(GABA) 성분이 일과 공부 등으로 인한 일시적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일본 소비자청에 등록된 기능성표시식품은 전체의 2.9%에 불과하다. 한국산 참외의 진가가 인정된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0

노인을 멸시하는 좌파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전통이 있었다. 단군신화나 지석묘 등에 반영된 조상숭배사상을 엿볼 수가 있고, 유교의 효(孝)사상이 유입된 삼국시대부터는 세속오계(世俗五戒)와 같은 체계적인 실천덕목으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조선시대에는 효사상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그래서 전래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송과 함께 유교적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나라로 불렸다.경로효친은 우리 민족이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윤리체계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이란 의식이 바탕이 된 사상일 터이다. 친인척이 아닌데도 노인들을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로 호칭하고, 부모 뻘의 연세이면 아버지 어머니로, 비슷한 연배들 간에는 언니 오빠 형으로 부르는 언어습관에도 그런 피붙이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까지 한 집에서 살던 가족형태가 소위 핵가족으로 분화되어 가족관계의 붕괴와 함께 연장자에 대한 권위나 존경심도 희박해져 갔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오늘날에는 노인들은 시대에 뒤처진 구닥다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수천 년 이어온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의 경험과 경륜이 삶의 지혜이고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가전제품 하나 작동하는 것도 일일이 손자들에게 물어야 하는 처지이니 무엇으로 권위를 찾겠는가.얼마 전에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장이란 이가 노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청년들과의 좌담회 자리에서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같은 당 양이원영이란 의원도 “지금 투표하는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오래 살아있을 청년과 아이들이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고, 윤형중 혁신위원회 대변인도 양이 의원의 주장을 두고 “발언의 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한 그런 글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두둔하고 나섰다.그들의 발언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노인세대를 멸시하는 패륜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을 비롯한 좌파들이 노인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년층에 우파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좌파 정치인들은 젊은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인비하를 서슴지 않는 것이고, 그런 선동에 물들어 좌경화된 젊은이들은 ‘꼰대’니 ‘틀딱’이니 하면서 노인들을 멸시하고 혐오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치적 이득이나 표를 모으기 위해서는 패륜쯤은 아랑곳없다는 것이 좌파들의 인성인 것 같다.권력을 위해서 친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북한의 김정은을 추종하는 주사파들을 위시한 좌파들에겐 이념이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는 인륜이나 법질서쯤은 짓밟아도 된다는 걸 보여준다. 그럴수록 노인세대가 더욱 분발하여 국가와 미래를 위한 마지막 충정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수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2023-08-10

분노 사회의 ‘묻지마 범죄’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입추와 말복에 태풍이 다가오는 어수선한 8월 초, 흉기 난동의 무차별 살인범죄가 연이어 발생했고 그 여파로 닮은꼴의 살인예고 협박성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SNS에 와글대고 있다. 지하철역 등 다중 밀집 지역에서 불특정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에 범행을 막으려고 전신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의심의 눈길을 둔다,지난 7월 21일 서울 신림역 부근 골목에서 30대 남자의 무차별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범인은 무직, 전과 3범 외에도 소년 시절 범행도 10여 건이 넘는다.‘열심히 살았는데 잘 안돼….’ 하며 범행 후 태연하게 부근 계단에 앉아있다가 검거됐다.이후 2주일도 지나기 전에 분당 서현역에서는 22세 청년이 차량을 인도로 돌진하여 행인 5명을 친 후, 다시 인근 쇼핑몰로 칼을 들고 들어가 무차별 난동으로 9명을 다치게 하였다. 정신병력이 있으며 자신은 ‘스토킹 집단의 위험을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또 지난 1월 신도림역과 2월 신길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한 남·녀, 3월 전철 내에서 시끄럽다는 60대 여성을 살해한 30대 여자…,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노린 반사회적 범행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이러한 분노 범죄는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사회와의 단절과 고립에 의한 사회성 결여와 고물가, 불황과 실업, 빈부의 양극화 등 사회 불안 현상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경찰청이 밝힌 바에 의하면 9일까지 수사 중인 살인예고 187건 중 67건을 검거했다고 하는데 10대가 34명이며 14세 미만도 다수라고 한다. 이처럼 고립·은둔 청년의 묻지마 범죄로 인한 피해자 역시 평균 27.4세라고 하니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정신적 불안이 심각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묻지마 범죄’의 공식 용어는 ‘이상동기 범죄’라 하며 현실불만형, 정신장애형, 만성분노형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검거된 후에는 ‘죄송합니다’‘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살고 싶지 않다’라고 중얼대지만 ‘관심받고 싶다’는 10·20대의 심리가 사회에 화를 유발시켜 관심을 끌고 자신은 변태적 쾌감을 느끼는 악질적 범죄인데도 ‘장난이었다’라고 변명하고 있다.이에 행정안전부는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하고 예고지역 순찰강화와 선별적 검문검색을 실시하는 동시에 경찰의 정당한 총기 사용 및 제압 행위에 대한 책임감면 규정을 재조정하는 한편,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 한다. 즉 위계에 의한 공무 방해, 협박 및 살인예비죄 등을 적용한 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최근 묻지마 범죄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림 사이트 ‘테러리스(terrorless)’도 배포되어 있다. 살인, 칼부림, 총기 난동, 폭탄 테러 등이 난무하는 요즘, 우리나라에 총기 소지를 허용하였다면 어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마냥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교육심리 상담 등 특별예방교육과 홍보 활동 확대, 갈등관리에 대한 지원과 멘토링으로 공동체 의식함양을 높이고 사회 전반의 대응 체계를 강화하여 안정된 사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2023-08-10

당근 프로젝트

배문경수필가 시작은 오천 원이었다. 시립도서관 앞에 서서 폰을 하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맞으시죠”, “네” 얘기는 짧고 물건을 본 그녀는 좋다며 돈을 나의 계좌로 입금시켰다. 물건은 내손을 벗어났다.집안 청소를 하다보면 먼지만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필요했지만 지나고 보면 처치 곤란한 물건들로 방이 빼곡히 차곤 한다. 언제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마음먹은 날 이것저것을 들춘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것 같은 물건부터 어쩌다 보니 잊어버리고 겹쳐 산 물건들이다. 말도 되지 않은 가격으로 내놓고 기다려보는 것도 잠시 흥미로운 일이다.물건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사람이 주는 기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관리가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도 나무와 나무사이처럼 적절한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팔면서 또 많은 전화번호를 지웠다. 사람 숲에 가려 하늘을 못 보거나 잊혀 진 그도 나도 그녀도 나도 모르는 관계인 경우도 있다.누구시죠? 이런 관계로 당황스럽지 않기 위해 정리하자. 당근마켓에 내놓을 것은 아니지만 정리해서 전화번호부도 가볍고 통풍이 되어야할 듯했다.원피스를 좋아하는 내게 안 입는 원피스가 서 너 벌이 있었다. 살 때는 비싸게 줬지만 시간이 지나니 짧아서 약간 유행이 지나서 라는 핑계로 물건을 당근마켓에 내놓았다. 가격은 각각 오천원이었다. 올리자 말자 입질이 시작되었다. 어떤 분은 택배를 부탁하며 택배비까지 덜렁 보냈다. 같은 편의점끼리는 택배비가 저렴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에 직장근처 같은 편의점에 갔지만 택배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몇 군데를 갔지만 허사였다. 어찌어찌하여 찾아간 편의점이 얼마나 고맙든지 택배를 보내고 나니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등엔 땀이 고여 있었다. 오천원짜리 원피스가 결국 나의 점심시간 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신뢰를 지킬 수 있었으니.점심시간에 직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 후 연락을 취했더니 죄송하다며 갑자기 ‘자녀가 아파서 급히 병원에 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팔아도 된다며 미안한 마음을 비추었다.‘일 잘 처리 잘하고 오실 때까지 옷은 기다리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는 위로의 문자를 날렸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소식은 없다.타지에서 온다는 고객은 퇴근 후 40분 뒤에 도서관 앞에서 보기로 약속한 경우다. 낯설지만 잘 입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만원이란 돈이 생겼다. 그리고 가벼움이란 기쁨도 같이 얻었다. 많은 것이 좋고 행복할 수 있지만 적정선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행복을 만든다.빽빽하게 장롱에 들어차 있던 옷걸이의 옷들이 조금씩 빠져나가자 장롱도 통풍이 되는지 환해졌다.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이 차고 넘친다. 작은 인연조차 소중히 여긴 탓에 저장해 둔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이름만 보고서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옷장정리를 끝내고 전화번호 목록도 하나씩 지웠다. 카톡방에 쌓인 사진과 동영상도 지웠다. 폰의 데이터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어떤 공간이든지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 수천 개의 전화번호가 차 있던 휴대폰도 여름의 바닷바람이 일듯이 시원해졌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일에 첫걸음이다.오늘 아침 내려놓았던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몇 년 연락이 안 되던 사람이 직장으로 전화를 해서 나를 찾는다. 잊혔던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가온다. 이건 새로운 행운이란 생각으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모양이다.그토록 극악스럽던 올 여름 더위가 아침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다.8월 8일이 입추(立秋)고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복이 8월 10일이다.눈부신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가볍게 출발해 보자.

2023-08-09

계축일주(癸丑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번째는 계축(癸丑)이다. 천간(天干)의 계수(癸水)는 깨끗하고 찬 물이며, 비 또는 연못이다. 지지(地支)의 축토(丑土)는 얼고 습한 땅이다. 동물로는 소다.계축일주는 겨울 땅 위에 차가운 비가 내리는 물상이다. 냉한 성분과 음기를 강하게 품고 있어서 끈기와 오기, 집념이 남다르다.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한 기준과 이상이 있어 모든 일에는 끝까지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조용하고 말이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 남들이 알아줄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않는다.노련하지 못하지만, 패기 하나만큼은 엄청나다. 출세 지향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개발에 충실하다. 여기에 공부와 교양, 정신수양도 함께 연마하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정에는 소홀히 할 수 있다.저돌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본인의 공력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심하게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견디는 힘이 강하다.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려는 성격 때문에 사서 미움을 받는다. 특히 타인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자기 주관이 명확해 타인의 간섭을 싫어하고,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도 있다. 흥분된 마음을 내려놓고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장자’ 외편 ‘산목편’의 ‘빈 배’를 보자. 한 사람이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다가 빈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속이 좁은 사람일지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만약에 배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피하라고 소리를 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또 다시 소리칠 것이고, 결국에는 화를 내며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이 모든 일은 배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배에 사람이 없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심청사달(心淸事達)이란 격언이 있다. 마음이 맑고 고우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딜레마인 것이다. 상책이 없다면 차선책이라도 써야한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여 정당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한다면 인생살이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계축일주 남자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노력하는 형이다. 부인 복은 좋으나 가정생활이 순탄하기는 힘이 든다. 본인의 바람기와 이성관계에 주의해야 한다. 아내가 종교,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면 대체로 해로할 수 있다. 여자는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고 능력이 있지만 본인의 행동이 거칠고 차가워 보일 수 있어 다정다감한 생활은 힘이 드니 신중해야 한다. 남녀 공히 무정해질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계축일주의 하늘 계(癸)는 무조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비가 내리듯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땅은 살림꾼인 소 축(丑)이다. 말없고 부지런하고 힘도 좋아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소다. 소는 위가 네 개라서 삭이고 또 삭이는 되새김질을 하며 참고 참는 성질이 있다.겨울 소이기에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나설 때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해야 한다. 소는 시작이 굼뜨지만, 시간이 걸려도 끈기와 집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사교성이 있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설렁한 느낌이 들지만, 속으로는 얼음송곳 같은 섬뜩함도 가지고 있다.자(子)는 북쪽이고 겨울이지만, 축(丑)은 동쪽이고 봄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조금 나아지는 희망을 기대하지만, 언제 추위가 올지 모른다. 마치 동장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이다. 소같이 순한 엄마가 한 번 성질을 내면 집안이 온통 풍비박산이 된다. 그래서 한 마디 입을 열면 참고 참았던 독기가 뿜어 나오는 독설가가 된다.계축일주는 길흉반반(吉凶半半)이다. 터트려서 좋을 것이 있고, 터트리지 않고 삼킬 것도 있는 법이다. 소 축(丑)이 천간 계(癸)의 낙처를 소화하자니 되새김질을 많이 하다가 토해내고 마는 그런 기운이 작동하는 때다. 혹은 미루던 일들이 시절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류대창명리연구자 ‘계축일기’는 조선 중기 1613년 계축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기다.‘계축일기’는 인목대비 폐비사건이 시작되었던 계축년(광해군 5년)을 기점으로 일어난 궁중의 비사다. 현명한 광해군이 계축년에 참고 참았던 것을 터트렸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얻지 못했다.‘계축일기’의 작자는 미상이고, 인목대비를 모시는 궁녀나 궁중에서 일을 하는 나인이 쓴 책으로 추정된다.‘계축일기’는 일방적인 견해이고, 광해군 입장에서는 전혀 다를 수가 있다.인목대비는 김제남의 딸로 19세에 51세 선조의 계비가 되어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가 57세에 죽자 광해군이 즉위한다.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여 모반하려 한다는 무고(誣告)로 김제남 부자와 영창대군은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인목대비는 서궁(덕수궁)으로 쫓겨나 폐비가 되며 그 뒤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11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되는 이른바 궁중비사이다.사람은 무엇을 위해 상대를 헐뜯는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인가? 아니다. 자신의 권력 유지와 탐욕으로 인해 행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며 고변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불행과 고통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어떤 말일지라도 하나하나의 말에는 어느 정도 선입견과 편견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말의 액면 그대로 이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뒷면에 감추어진 의미까지도 민감하게 알아채야 한다. 그래야만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다.

2023-08-09

텃밭2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황급히 불을 껐다. 텃밭에 가서 대파를 찾았다. 풀숲 더미를 뒤져 간신히 하나를 찾았다. 쑤욱 뽑아 뿌리를 털고 그 자리에서 흙 묻은 겉껍질을 깠다. 가까이 있는 수돗가에서 씻어 들어오면서 대충 비틀어 잘랐다. 제법 실하게 큰 고추 몇 개도 땄다. 한 개는 된장에 썰어 넣고 몇 개는 쌈장에 찍어 먹어도 좋겠다.한 달여 전, 안사돈께서 파 모종이 있으니 심겠냐고 전화주셨다. 작년에 들깨와 마를 심어주셔서 잘 키운 적이 있었다. 나도 한참을 못 간 터라며 같이 심으러 가는 게 어떠시냐고 여쭈었다. 흔쾌히 동행하셨다. 오랜만의 집엔 무성히 자란 풀이 반겼다. 풀에 뒤덮인 텃밭이 부끄러워 막무가내 엎드려 풀을 쥐어뜯어 뽑았다. 풀 속에 숨어 있는 오이와 가지는 새끼손가락만한 열매를 겨우 맺고는 노랗게 비틀려 있었다. 큰형님이 주신 호박 모종은 꽃도 피우지 못한 채였다. 딸기 모종을 살 땐 손주들에게 직접 따게 해야지 꿈도 야무졌다. 그러나 토마토와는 달리 딸기는 어찌된 노릇인지 열매가 달리는 듯하다간 지고 달린 열매조차도 볼품없는 데다가 흙에 묻어 맥없이 잎만 뻗치고 자라있었다. 제법 이파리 성성하여 향기로운 맛을 줬던 고수와 청겨자조차 키가 자랄 대로 자라 꽃을 피우고 있고, 싱싱하여 아름답기까지 했던 상추마저도 잎색은 바래고 대신 상춧대를 높이 올려 꽃을 달고 있었다. 잎채소들은 한창 자랐을 때 더 자주 더 많이 따 먹었어야 했다. 예뻐서 아끼느라 먹을 시기를 놓친 거였다. 고추도 먹을 만큼 크게 자란 것이 대견스러워 따지 않았더니 며칠 후엔 발갛게 익는 거였다. 더욱 이뻐 두고두고 감상(?)하려 했는데, 그만 갈라지고 썩어버리는 게 아닌가. 주인 잘못 만나 제 구실을 못한 채소들에게 미안함이란….안사돈도 같이 풀을 뽑으시면서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잡초를 막을 수 없다고 하신다. 약을 치지 않으려면 비닐로 멀칭이라도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가져오신 파는 마침 집에 있는 검은 비닐자투리를 땅 위에 덮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심었다. 그렇게 안사돈께서 소중히 심어주신 파였다. 멀칭 덕에 다른 곳보단 잡초가 훨씬 덜했고 텃밭 중에서도 가장 먼저 물을 주며 정성을 더했더니 제법 꼿꼿하게 자라주었다. 그러나 꽤 오랜 장맛비엔 속절없었다. 기승을 부리며 자란 풀더미에 가려있는 가엾은 파에 미안함마저 들었다. 농사는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던데, 자주 오지 못한 내 탓이 크다며 자책할 밖에….한해의 배움이 크다. 내년 텃밭을 일굴 때는 올해의 실패를 지혜로 삼아야겠다. 유기농퇴비를 듬뿍 섞어 땅심을 도와준다. 골을 파서 두둑을 크게 만들어 올리고 모종과 씨앗은 두둑에 심는다.-나는 골에다가 모종을 심었었다.- 아, 밭두둑엔 미리 넓은 멀칭비닐을 덮어 두어야지. 무엇보다도 내 발자국소리를 더 자주 듣게 해 주리라. 예쁜 모종과 씨앗에게 더 이상 미안하고 부끄러운 주인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그래도 된장에 송송 썰어넣은 파향과 고추향은 달디달았다. 갓 딴 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무니 서걱! 소리가 싱그러웠다. 이게 바로 텃밭의 맛이로구나 싶었다.

2023-08-09

찾아가는 서예교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삼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학동(學童)들이 서예삼매에 빠져든다. 벼루에 물을 부어 사각사각 조심스럽게 먹을 갈고, 은은하게 피어나는 먹내음을 맡으면서 붓에 먹물을 찍어 화선지에 천천히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하고 정겹게 보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잡아보는 붓과 생전 겪어보지 못한 붓글씨 쓰기 실습으로 새로운 배움의 세계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묵향에 흠뻑 젖어 들고 있다.이러한 모습은 최근 포항제철소 묵향붓글씨봉사단이 구룡포읍에 위치한 꾸러기마을돌봄센터를 찾아가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붓글씨 체험학습 프로그램 ‘찾아가는 서예교실’의 활동장면들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평소 접하기 어려운 우리 고유의 서예를 알리고 몸소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2년 7월부터 송도동, 해도동에서 시작된 서예체험교실은 주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서 실기 위주의 붓글씨 쓰기로 진행되는데, 1년새 열 세 차례나 열렸다.포항시 읍면단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이번 서예수업은 1부 서예에 대한 설명과 지필연묵 용구 소개, 먹갈기, 붓잡는 방법, 화선지 재단, 기초 점획 연습과 자신의 이름 및 장래 희망을 붓으로 쓰는 등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1부 수업 후 휴식시간에는 구룡포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지원한 치킨과 음료, 과일 등을 학생들이 간식으로 맛있게 먹으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이어 2부에서는 삼복더위에 필요한 부채작품 쓰기로, 학생들은 합죽선, 원형부채, 모시부채, 오죽선 등의 다양한 부채에 자신들의 꿈과 희망의 글귀를 붓으로 직접 쓰거나 그림을 곁들여 ‘나만의 부채작품’을 완성해 흥미와 자신감을 더했다. 이날 서예교실에 참여한 10여 명의 학생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쓰고 그린 다양한 붓글씨와 먹그림을 벽면에 부착해 전시하기도 하고, 또한 각자가 만든 부채작품을 보면서 서로 부채질을 해주는 등 시종 밝고 신나는 모습들이었다.“버겁고 여린 손길/어느새 익숙터니//먹 갈고 붓 놀리기/신명으로 삼는 나날//초롱한 망울 속으로/피어나는/꿈 자락” -拙시조 ‘書童’전문(2000년)서예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예술이지만 독특한 품격과 매력을 갖고 있어서 생활환경을 미화시키고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효용가치가 큰 심신활동이다. 그리고 서예를 배움은 단지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매우 유익한 활동으로서 개인의 사상과 인격수양, 예술적 재능과 문화 교양의 개발,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의지의 단련을 강화시키며, 또한 심신의 건강과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비록 재능봉사활동 차원에서 일회성으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다니며 주마간산 격의 서예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지만, 이 마저도 없다면 부조전래의 서예의 명맥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은 어떻게 될까? 서예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하고 꿈나무 육성을 위한 제도적, 교육적인 안목과 보완책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2023-08-09

안동시, 생명산업 대표도시 날개 달아

경북 안동시에 경사가 겹치고 있다. 안동이 지난 3월 바이오생명 국가산단 지정 이후 복지부의 글로벌 바이오네트워크캠퍼스 선정에 이어 이번에는 정부의 헴프산업 클러스터사업지 지정과 함께 특용작물산업화 지원센터 건립까지 정부 지원을 받게 되는 쾌거를 얻었다.경북도는 안동시가 2023년 국가 공모사업인 특용작물산업화 지원센터 건립과 산업·식품용 헴프산업클러스터 조성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헴프는 향정신성 물질 함량이 0.3% 이하인 대마 품종으로 주로 산업 및 식품용 소재로 쓰이는데, 이번에 센터와 클러스터 2개 사업이 동시 선정됨으로써 헴프산업의 활성화와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큰 힘이 될 전망이다.클러스터에는 섬유용 헴프재배 장비와 가공시설 등이 구축되고 센터에서는 헴프 연구분석, 제품개발 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동은 전국 헴프 재배면적의 60%를 차지할 만큼 헴프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이번 사업으로 헴프의 안정적 공급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재배농가의 소득 증대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안동은 알다시피 이미 국산1호 코로나 백신개발과 생산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3월 바이오생명 국가산단 지정으로 바이오생명산업 중심도시로 자리를 서서히 매김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일 복지부가 선정하는 백신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정교육과 훈련을 맡는 글로벌바이오캠퍼스 후보지에 최종 낙점되는 쾌거도 거둔 바 있다.또 SK바이오사이언스가 2024년까지 1천5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바이오 벡터 등 신규 플랫폼도 구축 중이다. 안동대 백신생명공학과와 기업이 연계한 전문인력양성 프로그램도 현재 진행 중이다.안동은 바이오생명과 관련한 연구와 생산기반, 인력양성 등에 이르기까지 전주기 지원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이번 헴프산업클러스터 사업지 지정은 바이오산업의 분야를 더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끌고감으로써 안동이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계가 됐다. 안동은 이제 문화관광의 도시에 더해 생명산업도시로 이미지를 키워가고 있다. 분발을 기대한다.

2023-08-09

이제 TK신공항건설의 과제는 속도전이다

정부가 그저께(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했다. 시행령 제정은 신공항 건설과 K2 후적지 개발사업에 대한 법적·제도적기반이 완결된 것을 의미한다. 시행령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법률 및 시행규칙과 함께 오는 26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시행령의 주요내용을 보면, 신공항 예정지역 경계로부터 10㎞ 이내는 ‘주변개발예정지역’으로 지정된다. 이곳에서는 국비로 기반시설 설치, 스마트도시 건설, 물류 활성화 지원사업 등을 할 수 있다. 신공항 건설로 생활 기반을 잃게 된 이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보상은 당초 입법 예고안에 명시됐던 가구당 1천50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확대됐다. 가구 구성원에게 추가 지원하는 생활안정지원금은 1인당 250만원이다. 군 공항 이전 및 이전주변지역 지원사업 추진과정에서 초과사업비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확정돼 사업의 안전성이 강화됐다. 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기업 우대범위도 구체화됐다.신공항 건설사업은 대구시가 이달 중 ‘신공항건설추진단’을 구성하면 본격 시작된다. 신공항건설추진단은 신공항 건설 업무 전담 조직이다. 추진단은 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연구개발과제와 기본·실시계획, 기반시설 건설 등 전반적 업무를 수행한다. 대구시는 올 연말까지 군 공항 기부대양여 최종 심의 및 국방부와의 합의각서 체결, 민간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 사업대행자 선정 등을 끝내겠다는 방침이다.대구시가 신공항 개항을 2028년으로 2년 앞당기겠다고 공식화한 만큼, 이제부터 공항 조기개항을 위한 속도전에 들어가야 한다. ‘늦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다고 공기 단축으로 내실을 기하는 일에 소홀해서도 안 된다. 신공항 건설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와 국방부가 국무회의에서 “신공항 적기 개항을 위해 대구시, 경북도와 원팀으로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고 하니, 대구시로선 든든한 우군(友軍)을 만난 셈이다.

2023-08-09

태풍 경로

홍석봉 대구지사장 태풍은 대개 적도 부근에서 발생해 천천히 서진한 후 소멸하는 경로를 취하는 것과 발생 후 북상해 북위 20~30도 부근에서 진로를 북동쪽으로 바꾼 다음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지만 태풍의 진로는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태풍은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한동안 제자리에 멈춰 서 있기도 하며, 원 모양으로 움직이기도 해 진로 예측을 어렵게 한다. 태풍의 약 12%가 이상 행보를 한다는 통계도 있다.북상 중인 6호 태풍 ‘카눈’ 때문에 온 나라가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카눈의 궤적이 이례적이다. ‘카눈’은 갈지(之)자 행보를 하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오키나와를 거쳐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이다. 오키나와를 강타한 카눈이 대만 동쪽 해상까지 갔다가 갑자기 ‘유턴’해 다시 오키나와를 덮쳤다. 이어 북쪽으로 방향을 90도 꺾어 일본 규슈 방면으로 향했다. 기상청은 카눈이 10일 오전 경남 통영 인근에 상륙 후 한반도를 관통해 11일 오전 북한 평양 부근에 이르겠다고 예보했다.전문가들은 카눈이 특이한 궤적을 보이는 이유가 태평양 상공에 형성된 고기압에 막혀 길을 찾지 못한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카눈은 당초 부산에 상륙, 포항 등을 거쳐 동해안을 훑고 지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경로를 점차 서쪽으로 바꿔 통영 상륙이 예보됐다. 많은 강우와 강풍을 동반해 큰 피해가 우려된다. 더구나 지난번 집중호우 피해 복구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마당이다.카눈(KHANUN)은 태국에서 제출한 이름이다. 열대과일의 이름을 따왔다. 8월 들어 태풍의 내습이 본격화 됐다. 앞으로 어떤 태풍이 더 닥칠 지 알 수 없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09

남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세계 각국의 인재유치매력도 순위를 발표하였다. 어디서 공부하고 준비하였든 젊은 인재들이 소양과 재능을 펼치며 일하고 싶은 나라의 순위를 매겼다. 대한민국은 조사대상 63개국 가운데 49위에 그쳤다. 나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같은 조사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점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결과인데, 이전보다 여덟 계단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미국이 4위, 일본이 27위, 호주가 14위라 하고, 그나마 중국이 우리보다 아래쪽에 보인다. 썩 괜찮은 나라인줄 알았던 대한민국이 젊은 인재들의 눈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셈이다. 그마저 해를 거듭하며 내려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여러 나라들이 인구감소를 힘들어 하는 가운데, 유독 캐나다가 한 해에 이민인구 유입 1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구를 획기적으로 늘이고 있다. 비결은 역시, 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닐까. 우리는 대한민국을 얼마나 그런 나라로 만들고 있을까. 정부는 위기를 맞은 인구정책을 가다듬으면서 양질의 고급인력을 끌어들이는 고급인력 유입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문제로 인식하여 국내인구를 늘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점차 확연해지는 글로벌 환경에서 해외의 인재들을 대한민국으로 맞아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유학 떠난 인재들이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고국으로 다시 불러들일 만한 여건을 만들어 내는 일도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세금과 연금제도, 환경적 정주여건, 2세를 위한 교육환경, 문화적 다양성과 수성, 일상생활에서의 불편제거 등 인재들을 대한민국으로 모으기 위한 과제들이 즐비하다. 그동안 경제적 집적효과에 방점을 두고 국가경쟁력을 생각해 왔다면, 이제는 보다 다각적이며 심층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세계 10위권’ 타이틀이 세계인의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잡기 위해서 우리에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치안과 안전이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그마저 무너진 듯 보이는 오늘의 현실 앞에 혹 나라의 경쟁력 관리를 위한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세계스카우팅잼보리에 참여했던 대원들이 다소 실망하여 속을 끓였겠지만 국가이미지를 다시세울 방법을 얼른 찾아 끌어올려야 한다. 스카우팅의 본질과 젊은이들의 심장을 함께 두드릴 방도를 찾아야 하고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잊지않고 교감을 이어갈 관심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좋은 생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남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앞에 겸손해야 한다. 생각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진심과 공감을 실어 태도와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세계인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늘보다 나아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세계10위권’ 허상을 붙들고 자만해 봐야 아무도 이 나라를 곱게 봐주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나 우리의 실상을 보아야 하고, 거기서부터 쌓아올려야 한다.

2023-08-09

건강한 여름나기

우정구 논설위원 더위를 표현한 우리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습도가 높아 찌는듯한 더위 때는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으로 표현하고 습도가 높지 않으나 햇볕이 뜨겁게 내리 쬐는 더위를 불볕더위, 불더위, 강더위라 부른다.한자말로 삼복염천(三伏炎天)은 삼복기간의 매우 더운 날을 이르는 표현인데 지금이 그 시기다. 지금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이 있어 혹독한 한여름 더위도 그런대로 시원하게 보낼 수가 있다. 그러나 문명이기 혜택을 못 누린 우리의 조상들은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날을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하다.조선시대 왕들의 여름나기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보면 조금씩은 알 수 있다. 당시 왕들도 기발한 피서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가 궁내 후궁 피서지인 창덕궁 후원에서 수박과 참외 등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는 게 고작이다.조선 7대 왕 세조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대산 계곡을 자주 찾은 것으로 기록돼 있고, 22대 정조는 책을 읽으며 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그는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에 선다. 그래서 더운 기운이 몸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조선시대 양반들은 산수가 좋은 계곡을 찾아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시를 읊으며 경치를 즐기는 탁족회를 자주 즐겼다. 집안에서는 사랑방 옆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차가운 감촉의 죽부인과 부채 등으로 더위를 달랬다.유난히 더운 여름을 맞고 있다. 14일째 전국에 걸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여름철 전력 수요도 역대급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온열질환 사망자도 급증한다. 건강한 여름나기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08

코로나 4급전환 연기, 방역완화 더 신중해야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증가세를 고려해 방역완화 계획 발표를 연기했다. 당초 당국은 오늘 브리핑을 통해 병원급 의료기관 마스크의무를 포함해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질병청 관계자는 “중증화율, 치명률은 감소했으나 최근 신규 확진자 수가 6주 연속 증가세를 보여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연기 이유를 밝혔다.질병청이 밝힌대로 한여름 폭염속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달 들어 일주일간(1∼7일) 하루 평균 코로나 확진자 수는 5만388명으로 전주 평균 4만5천529명보다 10.7%가 늘었다. 6주 연속 증가세다. 지난 2일에는 신규 확진자가 6만4천155명까지 치솟았다. 동절기 1월10일 이후 6만명대는 처음이다. 방역당국도 이같은 증가세가 8월 중순에는 하루 7만6천명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전문가들은 여름철 코로나 증가세는 마스크 의무해제 등 방역정책 완화와 거듭된 변이출현 등에 따른 면역력 저하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이동량이 많은 휴가철을 맞고 있어 확진자 수가 줄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다행히 확진자 대부분의 증상이 가볍고 몇주 안에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층과 기저질환자 등에는 여전히 치명적일 수가 있어 고위험군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질병청은 “유행, 방역상황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한 후 전문가 자문을 거쳐 등급조정 등 종합적인 계획을 내놓겠다”고 했다. 보건당국의 방역완화 정책 발표는 코로나19가 위험하지 않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해야 한다.완전한 일상회복은 확산세가 감소세로 돌아서는 시기에 시행해도 늦지 않다. 지금 정도의 불편은 국민도 국가 보건안정을 위해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 각자가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말고 마스크착용과 같은 개인 안전수칙에 충실해야 한다.보건당국은 고위험군의 보건안전을 위해 60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백신접종률을 끌어올리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겨울철 유행을 줄일 수 있다.

2023-08-08

“차라리 해산하라”는 말까지 듣는 지방의회

대구 중구의회가 지난 7일 열린 본회의에서 ‘유령회사 수의계약’ 논란을 빚은 배태숙 의원에 대해 30일 출석정지 결정을 내림으로써, 의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배 의원의 출석정지로 소속의원 7명 중 3명이 의원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앞서 이경숙 의원은 임기 중 주소를 관외지역으로 옮겼다가 의원직을 상실했고, 김효린 의원은 보조금 부정수급으로 고발돼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재적의원 수가 모자라 기능을 상실한 사례는 아마 지방의회 중 중구의회가 처음일 것이다. 대구참여연대는 “최소 윤리마저 내팽개친 중구의회는 해산해야 한다”고 말했다.배 의원은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유령회사(홍보물업체)를 차려 대구 중구청 등과 총 8건(1천680만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겸직하고 있는 회사의 수의계약 논란과 관련된 일로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 수의계약 매출분에 대해서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의원들의 일탈·탈법행위가 집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방의회 무용론’이 잊을 만하면 제기되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에게 철저하게 종속된 지방의회의 정상화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소리도 나온다. 대구·경북을 보더라도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이 대부분 공천권을 행사하니까 지방의회는 여의도 권력의 도구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지역주민의 의사와 생활정책을 지방정부에 반영해야 할 인물보다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의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탓이다.지난해부터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지방의회의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 지방의회 의장이 사무직 공무원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정책지원 전문인력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대구중구의회 사례에서 보듯, 지방의원들의 일탈행위는 변함이 없다. 지방의원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지역 주민을 대변하는 공직자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3-08-08

‘증오정치’가 사회병리의 주범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대구 도심 곳곳에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 요원이 시민을 감시하는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1980년 비상계엄령 사태 때의 장갑차까지 길거리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연쇄 묻지마 살인’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인터넷에 살인예고가 연이어 올라오면서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묻지마 살인과 살인예고 범죄가 개인의 질병이나 유전적 원인이라는 분석이 다수이지만, 그 원인을 사회병리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 우리사회에서 격화되고 있는 진영싸움이 집단적 증오심을 키우면서 범죄로까지 비화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때 대구경북은 집단증오의 표적이 된 적이 있다. 언론을 통해 표출된 증오였지만, 당시 시도민들은 ‘묻지마 살인 범죄’ 버금가는 고통을 겪었다. 그중에서 ‘증오정치의 선동가’로 불려지는 김어준의 말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2020년 3월 6일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져 대구가 고통받을 때 자신이 진행한 라디오를 통해 “우리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고 말하며, 코로나 발생원인을 대구시민 탓으로 돌렸다. 그 5일 전에 민주당 한 청년위원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 한 말에 대한 후속타였다. 그 후 좌파여류시인인 김정란은 페이스북에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 소속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 거느리고”라는 글을 올렸고, 한 민주당 중진은 ‘대구봉쇄’를 입에 담았다.좌파 진영의 이러한 증오표출에 대해 당시 대구시민들은 분노로 상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발적 격리를 하면서 대구봉쇄를 거론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외신들은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성숙하고도 침착한 대응을 특종기사로 다루면서 격려했다.좌파진영은 지금도 증오심을 무기로 ‘진지전(陣地戰)’을 유발하고 있다.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과 양이원영 의원의 노인폄하 발언에 대해서는 같은 당내에서조차 ‘개딸들의 홍위병’등을 운운하며 비난하고 있다.좌파진영이 주도하는 진지전은 우리사회 전체의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진지전은 무솔리니 정권에 대항했던 좌파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내놓은 헤게모니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을 설명하면서 ‘권력이 진지전을 통해 상식적인 것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만들고, 비상식인 것을 상식적인 것으로 만들어 국민을 통제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확하게 짚은 이론이다.미국의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연말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1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국민이 느끼는 ‘정치적 갈등’ 수준이 1위로 나타났다. 좌파와 우파 양진영이 상대를 향해 쏟아내는 막말과 모욕적인 언사는 갈수록 거칠어져서 진지전에 관심 없던 국민까지 증오의 늪에 빠트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갈등과 분열의 저질 정치를 계속하는 한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은 치유될 수 없다.

2023-08-08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고요?

나선택포항 행복한의원장 “한약을 오래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데, 제 약은 괜찮을까요?”“건강 유지 목적으로 1년에 한두 번 한약을 먹었는데, 양방 병원에서 먹지 말라고 해서 먹을 수 없어요”2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진료 중인데, 이상하게도 2∼3년 전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약 먹으면 간이 상하거나 건강이 나빠진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타난 것인가? 여러 통계 자료와 논문들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얘기는 없다.한국의료분쟁조정위원회의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를 보면 최근 5년간 의료행위 조정 사례 중에서 한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0.3%로 극히 낮다. 2007년 한국소비자원에서 ‘한약재 중금속 모니터링’을 통해 중금속, 이산화황, 납, 수은, 카드뮴 등에 대해 분석한 결과 시중에 유통되는 쌀보다도 낮고 안전함이 밝혀졌다. 2021년 대구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대구 약령시장 한약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중금속 안전도 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더욱 엄격한 한약의 안전성 관리를 위해 2015년부터는 한약재 GMP 기준이 의무화되어 농약, 중금속 기준 뿐 아니라 ‘의약품용 한약재’의 경우에는 제조시설과 기구, 원료의 구매 제조 및 품질검사, 제품 출하에 이르기까지 생산 공정 전반을 표준화한 절차를 거쳐야 한의원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한약재 자체의 오염으로 인한 문제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현행 규정상 한약재는 뛰어난 효능과 함께 독성도 가지고 있어서 전문가인 한의사와 한약사만 다룰 수 있는 ‘한약’과 독성이 거의 없어서 누구나 사용 가능한 ‘식품(농산물)’으로 나뉜다. 한약에는 마황 부자 대황 세신 시호 행인 (살구씨) 황련 등 뛰어난 효능이 있지만 체질이나 증상에 맞지 않게 투약되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식품에는 도라지 구기자 산수유 산약(마) 오미자 계피 황기 갈근(칡) 등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것들이 많다. 식품류 한약재라도 한의원 등의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것은 식약처에서 허가한 공인 기관에서 기준치 이상의 유효성분 함유 여부와 중금속과 농약의 잔류 여부를 검사해서 합격된 것만 사용 가능하므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훨씬 우수하고 안전한 약재가 사용되고 있다.이쯤 되면 한약을 오래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말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이런 식의 얘기가 나오는 걸까?한약으로 인한 부작용의 대부분은 복용을 중지하고 3∼4일이 지나면 자연소실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약을 먹어서 간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든 한약이든 양약이든 뭔가를 먹었을 때 불편한 느낌이 생겼다면 일시적으로 간수치가 상승할 수 있다. 이 때 그것의 복용을 중지하고 처방한 의사 또는 한의사와 상의해서 약의 내용물이나 복용량을 조절하면 간이 나빠질 이유가 없다.기후가 급격하게 변하는 요즘이다. 면역 저하로 인해 각종 전염병과 질병이 만연하다. 한약은 오랫동안의 사용으로 각종 효능이 입증되어 있다. 게다가 요즘은 국가에서 약재 관리의 기준을 정해 놓음으로써 안정성도 확보 되었다. 한약과 함께 여러 질병을 예방하거나 잘 치료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

2023-08-08

소유와 존재, 그 엄청난 간극

최선희 경운대 교수 최근 들어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건이 자주 들려온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찾아가서 무차별 폭행하고, 신고를 하면 보복살인까지 하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한 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한 연인에게 이런 무자비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프로파일러는 데이트 폭력의 주요인을 소유와 집착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구속하고 가두려는 소유적 집착이 문제라는 것이다.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할 수 있는가. 50여 년 전 사회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이 제기한 인간의 두 가지 생존양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화두를 던지며, 인간 유형을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소유적 인간’과 존재하는 것에 자신을 맡기고 능동적인 일을 추구하며 삶에 희열을 느끼는 ‘존재적 인간’으로 구별했다. 그는 이런 소유와 존재의 차이점을 학습, 권력, 사랑 등의 구체적 사례로 설명한다.프롬이 주장하는 소유적 학습은 배운 내용을 모조리 필기하고 암기하여 시험에만 대비하는 행위이고, 존재적 학습은 배울 내용을 미리 연구하여 교수자의 설명을 적극적이고 생산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이다. 소유하려는 권력은 자신의 권위에 굴하는 사람을 착취하고 존재하려는 권력은 인간의 인격을 바탕으로 세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소유적 사랑은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취하려하고 존재적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고 설명한다.‘나는 소유적 삶을 살고 있는가, 존재적 삶을 살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이 문제를 생각해보게 했다. “수능이 끝난 후 약국 아르바이트로 20살치고 꽤 많은 돈을 갖게 되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명품 신발과 가방을 소유하게 되었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학업을 소홀히 한 채 약국 일에만 전념하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갖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고 고백한 한 학생은 소유욕에 의한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어서 자신의 소유양식의 삶을 성찰하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보겠는 다짐도 했다. 어떤 학생은 과제를 하기 위해 구입한 ‘소유냐 존재냐’ 책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태도를 소유적 삶이라고 규정하며,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사진 찍기에 집중하는 또래 친구들의 소유적 삶을 질타하기도 했다.1970년대에 에리히 프롬이 제기한 소유적 삶의 문제들이 아직까지 사회 도처에 자리한 채 우리의 존재적 삶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소유적 사랑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사랑은 상대를 내 것으로 가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상대를 마주하고 그 존재적 가치를 아끼려는 마음이다.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소유적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칼린 지브란의 시 한 구절을 새겨볼 일이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서로 사랑하라/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소유는 아이 같은 욕심이고 존재는 성숙한 어른의 마음이다. ‘소유와 존재’, 그 엄청난 간극을 기억하자!

2023-08-08

법대로 합시다?

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어떤 사건을 목격했다. 오후 세 시,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로 공원 놀이터는 북적였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아이가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고, 동시에 저 멀리서 경찰이 오는 게 보였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상황을 종합해 보니 아이가 자신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 출동한 경찰은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내어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고 놀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한 아이가 배제된 것이었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경찰을 불러도 돼?” 옆에 앉은 다른 사람 역시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요즘 애들은 시도 때도 없이 경찰을 막 불러.” 나는 그들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로 공원을 떠나야 했다.세상이 달라졌구나. 나 역시도 그렇게 느꼈다. 아이들이 자기를 지키는 방식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세상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아이의 신고였으나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조사하는 경찰의 모습 또한 대단하게 느껴졌다.동시에 당연한 우려가 따라왔다. 친구들끼리의 다툼, 물론 크다면 크고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이러한 일에 공권력을 소환한 것을 과연 올바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려지던 아이는 경찰의 등장으로 인해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칼자루를 손에 쥐고 휘두르는 쪽이 되어 버린 것이다. 법과 제도는 약자를 지켜주는 장치이다. 하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상대를 상처 주고 크게 다치게 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법대로 하자”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요즘이다. 규범을 어긴 사람이 처벌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사자들끼리 소통하고 충분히 숙고해 볼 수 있었던 문제까지도 법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어떤 판결이 나는 순간, 누군가는 죄인이 되고 모든 것이 공정하게 처리되었다는 착각을 등에 진 채로 상황은 종결된다. 일련의 사건에서 많은 것이 묵살된 채로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다.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웹툰 작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자폐증을 앓는 자신의 아이를 담당하는 특수교사가 아이에게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고발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녹음기를 사용했고 특수교사에게 상담을 청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 고소를 하여 징계 받는 것을 우선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작가는 자신의 입장문에서 아이를 지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 동시에 교사를 고소해야지만 아이와 분리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러한 일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제도적 문제 속에서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지점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설령 법정에서 교사가 사용한 언어가 학대의 영역이라고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그가 얻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와 ‘법대로 엄중하게 처벌해 달라’는 요청은 전혀 다르다. 그가 진심으로 교사에게 원하는 것이 반성과 개선이었다면, 이러한 선택은 완전히 잘못되었다.페터 비에리는 자신의 저서 ‘삶의 격’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알면서도 고통을 가하는 경우 우리는 분노와 원망, 증오를 느낀다. 이러한 감정들은 고통의 상쇄를 갈망하는데, 그것이 원망을 잠재워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쇄를 일컬어 복수 또는 보복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재판관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가해자를 감옥에 집어넣고 고통을 고통으로 되갚아주는 것이다.” 보복의 마음을 가지고 있게 되면 절대 화해의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그날 오후, 놀이터의 아이들은 경찰의 등장으로 인해 사이좋은 친구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법적 공방에 결론이 나면 그로 인해 모두가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을까?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단순하고 표면적이지 않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해결하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일리 없다. 하루가 머다 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상황을 더욱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2023-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