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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시인의 ‘수선화 편지’

등록일 2024-07-29 17:53 게재일 2024-07-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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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대구경북 방언으로 연작 시집을 완간했던 상희구 시인이 목소리를 상당히 죽여 침묵에 가깝게 속삭이는 새 시집 ‘수선화 편지’(오성문화, 2024)를 펴냈다. 상희구 시인의 방언 시집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시 해설을 겸한 시평도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좀 조심스럽게 시의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할까 한다. 시가 강력한 목적성을 갖게 되면 메시지 전달에 힘을 주기 때문에 문학적 순결성을 상실하게 된다. 진보적인 목적시와 마찬가지로 방언의 자료를 가능한 작품에 많이 담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자칫 시의 전범을 훼손시킬 위험성을 안게 된다. 너무 많은 방언이 시 작품 속에서 누더기처럼 불어나면 조야해진다. 자칫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거나 천박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시 창작을 통해 방언 자료를 끌어 모으겠다는 의도가 오히려 시의 자리를 협소하게 만들 위험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최근 AI기술의 발전으로 거대한 음성자료 클라우드가 구축되고 거의 천문학적인 수량의 방언 자료가 이미 수집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많은 방언 자료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목적성 뒤에는 시문학 본질의 문제가 훼손돼 있다는 점을 결코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번의 ‘수선화 편지’에서는 시인 스스로 그러한 위험성을 감지했는지 기존의 시와 다른 상당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는 하다.

‘경상도 사투리 호시뺑빼이란 말의 어원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단 시 ‘수선화 편지 24’를 살펴보자. 과연 시인이 방언 어원을 시작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눈여겨본다. “대개의 경우, 각 지역의 사투리는 표준말에 비하여/어투가 아주 거칠고 투박합니다. 그 이유는 어느 지역/사투리든, 의태나 의성의 의미가 도드라지기 때문입니다./”(상희구 ‘수선화 편지 24’ )은 방언학개론서의 설명도 아니다. 오히려 운문성을 일탈한 서술은 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표현일 뿐이다.

문학 작품 속의 방언은 단순히 문화적 원자재다. 방언시는 부정적 차원에서의 변용을 위한 시가 아니다. 표준어로만 영위되던 문학의 외연을 시간적, 지리적으로 넓혀 정체성을 확대시켜 주고, 인종적 소수자나 이민자나 젠더와 같은 계급적 외곽 집단의 목소리를 유입해 역사적 진폭이나 문학 유산을 더 폭넓게 확장할 수 있음에 의미가 크다. 아마도 상희구 시인은 이러한 목적성 때문에 방언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을 가진 것은 아닐까?

“…. 얘들아, 그 작은집에 김 서방, 사업이 망해가아, 멀찌감치 야반도주했다 카디이 요새는 우째 사능공?//아이고 백모님, 그런 말씀 마이소, 김 서방이 사업 망한 그 질로 서울로 가가주고, 서울서 집장사로 해가주고, 돈을 엄청 벌어가아, 요새는 호시뺑빼이로 산답니더.”에서는 시와 산문의 경계도 없어 시적 긴장감마저도 없다.

이러한 방언으로 쓴 시의 문학적 한계를 아마도 시인도 의식한 듯하다. 이 시집의 2부에서 보여주는 단행 시편들은 앞서와 달리 서정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1행시, 3행시, 4행시와 같은 일본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단행 시들이 유행하고 있다. 단행 시의 전통은 우리의 고전, 전통 시조를 이은 현대시조 장르에서와 같이 고도로 압축된 문학 양식이다.

그동안 상희구 시인의 방언으로 쓴 시작의 성과들은 문학 해석학의 범위를 확대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언시들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번역이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다. 영어권의 소설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에 등장하는 흑인들의 방언, 계급어를 국내 번역 작품에서 녹여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실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들 언어가 함유하고 있는 계급적 문제까지 함유하고 있으니 표준어로만 번역한다면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 방언이 섞여 있는 문학작품의 외국어 번역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상희구 시인의 거작 대구방언시편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나 있을까? 언어학적, 문화적, 지리적 차이와 사회 계급적 방언차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해외에도 알려낼 수 있을까? 문화적 실천으로 연구되고 문학작품이 대답할 수 있는 범주가 넓어졌지만 시대의 이념에 어떻게 조응하고 저항할 것인지 모색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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