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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정치

등록일 2024-08-05 19:18 게재일 2024-08-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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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언제부터인가 나는 정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서로 상대만 탓하며 그들만의 정치를 하는 모습에 실망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정 정당이 압도적 표를 받았지만 뭐 하나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차라리 외면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또한 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진실을 알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하는 나의 무력함을 외면하고 싶은 이유도 있다.

이런 내가 지난주 우연히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영상을 본 게 실수였다. 이진숙 후보자의 과거 이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장관급 공직자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 동요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사청문회 영상을 클릭한 것은 ‘광주’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다.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성격을 말하지 못하고 논쟁적이라거나 헌법 운운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세상을 좌/우 이념 대립으로만 보는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서 답답함이 몰려왔다. 이러한 시각이 방송에 투영될 때 어떤 결과가 생길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울 은평구의 어느 아파트에서 일본도로 이웃을 무참히 살해한 기사를 접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며, 피해자에게 죄송하지 않다는 당당한 모습에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음모론을 반복하는 피의자를 접하니,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간 해당 아파트 게시판을 보고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을 애도하는 글도 많았지만, 은평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 살인자는 임대 아파트 주민, 망자의 울음소리가 아파트에 가득하다는 식의 조롱과 혐오의 글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 떨어진다는 한탄도 빠지지 않았다.

정치와 일상,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실상 우리는 정치와 일상이 분리된 삶을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대체되고, 생활인으로서 우리에게 자본의 힘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생활은 가깝고 정치적 올바름은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언제부터인가 생활인으로서 감각에 익숙해져서 정치에 관심이 없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살기도 버거운 세상이다.

그렇지만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지 못하는 공직자와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사람의 거리감은 그렇게 멀지 않다. 타인의 고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선으로 여기는 삶의 태도가 정치인 것이다. 이런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 보편성을 만들고 나의 몸과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의 근저에는 자본주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나의 삶-정치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정치 뉴스를 외면할 수 있지만 나의 삶-정치를 외면하면 우리의 일상은 좀비가 출몰하는 디스토피아가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삶의 태도를 누구와 어떻게 공유해야 할까? 당장 2학기에는 학생들과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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