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여가 조금 지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의원들은 충청권 까지는 출퇴근을 하고 그 밑으로는 여의도 인근에 방을 얻어 소위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충청권이 이제 수도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지방에서 올라간 의원들에게는 ‘金歸月來’가 생활 패턴화 돼 있다. 금요일에는 지역으로 돌아가서 주민들을 만나고 월요일 새벽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여의도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2006년 군의원으로 정치를 처음 시작한 이래 나는 늘 ‘소수’였다.
13명 군의원 중에서도 민주당 계열의 의원은 나 혼자 뿐이었다. 도의원을 할 때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져 정원 60명 중 민주당 소속이 9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상임위에 들어가면 10여 명의 상임위 의원들 중 혼자였다. 그래서 ‘소수파’정치인이 의회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산심의를 하는 중 잠시 정회키로 하고 방망이를 두들겼는데 약속된 속개 시간을 어기고 나만 빼고 일찍 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원안통과 시켰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 거세게 항의했지만 동료의원들은 미안하다를 연발하며 피해 싸움이 되질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름 깨우친 것이 있었다.
‘의결하기 전에는 최대한 나의 의사가 무엇인지 상대에게 알리고 적극 설득하라. 설사 표결 결과가 안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니 너무 상처받지 말라. 여러 의회 직에 배제된다 하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서러워하지 마라, 그건 인성평가에 대한 결과가 아니니 ‘다수파’의 호의나 배려 없음을 비난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걸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매우 길었고 그 비용은 눈물로 치렀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고 국회에 가니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다수당이 되었다. 오, 살다가 이런 경험을! 예상은 했지만 첫 상임위 회의부터 다수의 힘을 실감했다. 여당의원들의 항의도 힘이 없었다. 느낌상 그들은 이미 포기했는지 기대하는 게 없어 보였다. 전투력 또한 바닥이고 끈질김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국회에 온 지 이제 두 달여, 아직은 낯선 것이 더 많다. 지방의회에서는 상임위 끝나면 함께 밥도 먹고 차도 한 잔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시간이 꽤 있었다. 그 자리에선 감정들도 털어내고 주장을 하더라도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 등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차렸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그것을 찾기 어려웠다. 오직 내편, 상대편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가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면 남는 건 주장뿐이다. 그게 오늘의 국회 모습이다.
무제한 토론을 한다고 국회가 밤새 불을 켜고 의원들이 장시간 토론에 나서지만 그 발언에 설득이 된다거나 타협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열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언제까지 이 모습이 지속될 지 안타깝다.
기초의회 광역의회 모두 국회의 운영규정을 따라 만들어졌고 지방의회 운영과정에서 헷갈리는 게 있으면 국회 운영규정을 살펴보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작금 국회가 이러니 지방의회에 할 말이 없다. 선진국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