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무덤덤한 백두대간 명산 산자락 아래로 비경들 감췄네
“고독은 너를 죽이는 힘이다./ 느닷없이 너에게서 터져 나오면/ 고독은 지평선 저 너머로/ 너를 데려간다./ 고독을 맞이할 마음이 있을 때”
이 글은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이다. 알다시피 메스너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등산가인데, 1978년 에베레스트 낭가파르밧을 세계 최초로 무산소 단독 등정한 이다. 필자는 그가 쓴 글을 읽고 매료돼 경북매일 등산기 연재에도 몇 번 인용, 소개한 바 있다.
그를 숭상하는 것은 그의 담대한 인생철학이요, 산을 향한 열정과 집념 속에서도 지독한 고독을 견뎌내며 솔직담백하게 표현하는 인간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검은 고독 흰 고독`이란 책에서 고독한 새에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가장 높은 곳까지 나는 일이요. 둘째는 같은 종류라 해도 친구로 삼으려 하지 않는 일이요. 셋째는 부리를 하늘로 쳐드는 일이요. 넷째는 한 가지 빛깔을 하고 있지 않는 일이요. 다섯째는 낮고 낮은 소리로 노래 부르는 일이다”
그의 고독은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산의 높은 곳에서 느끼는 절대고독이다.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튼튼하게 지탱해 주는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마침내 메스너는 고독을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힘과 자신감으로 승화했으리만큼 강인하다.
서두부터 메스너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정말 그가 위대하다는 생각 때문이고, 지난 주말에 다녀온 문경 대야산 산행이 힘들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그날 저녁 필자는 지인들에게 아래의 문자를 보냈다.
“오늘 문경 대야산은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해 10시 40분 선유동계곡에 도착해 월령대-대야산-피아골-용추계곡으로 해서 주차장에 4시 40분에 도착했습니다. 대야산 선유동계곡은 아름답고 능선, 암봉, 암릉들이 줄이어 있고, 산 모습이 변화가 많으면서 주위 조망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몸살, 감기에 콧물감기 때문에 고생 많이 한 산행이었습니다.”
필자에게는 등산이 주말 정례행사가 되다보니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도 아랑곳없이 산행을 한다. 벌써 4년째이니 일상의 습성으로 굳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한 번은 토요일 산행을 가게 되었는데, 연속 산행이 무리라서 일요일에 한 번 쉬어봤다. 그날은 온종일 안정되지 못하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힘들었던 경험을 했다. 그 후로는 일요일이면 무조건 산을 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지간한 명산은 가본지라 산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각설하고, 이번 주엔 케이제이 산악회를 따라 문경 대야산으로 향했다. 대야산 산행은 선유동계곡, 용추폭포, 월영대가 있어 아기자기하고 또한 암릉타기도 수시로 반복되는 코스라서 긴장감을 주는 곳이다. 한마디로 등산에 재밋거리가 있는 산이다.
등산의 들머리는 선유동계곡 입구의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여름철에 인기가 있는 산이고, 꼭 대야산까지 등산을 하지 않고 도중에 있는 용추폭포에서 쉬기가 딱 좋은 코스라서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간단한 몸풀기 등 준비운동을 하고서 서서히 등산을 시작한다. 요 며칠간 무리를 해서 과로한 상태여서 조심스럽게 다녀와야지 마음 먹은지라 들머리 입구에 세워진 `선유동천 나들이길 종합안내판`에 적힌 코스를 눈여겨본다.
다행히 이번 산행은 용추폭포, 월영대를 거쳐 대야산에 올랐다가 피아골, 용추골로 해서 원대복귀하는 간단한 코스다.
일반적으로 대야산 등산을 할 경우 대야산 주차장에서 용추폭포, 월영대를 지나 좌회전해 떡바위 방향으로 가서 밀재에서 우회전해 거북바위, 전망대 등을 거쳐 대야산에 오르는 코스다. 정상에서 다시 중대봉을 타거나 상대봉을 거쳐 피아골로 하산하는 코스다.
특히 밀재에서 대야산까지는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많아 즐길 거리가 많지만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암릉 타기에 다소 부담되는 등산코스이기는 하다.
등산객들을 따라 오른쪽으로 난 언덕 계단을 타고 오른다. 이내 숲속길이 나타나고 이 길은 용추폭포, 월영대까지 잘 정비된 오솔길인 선유계곡길이다.
선유동 계곡에는 이조 숙종 때 학자인 이재(1680~1746)를 기리기 위해 세운 학천정이란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학천정 앞의 큰 바위에는`선유동문`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여기서부터 선유구곡이 시작된다.
선유동계곡은 조선시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내선유동이라고 대야산 밑에 기록돼 있다. 둔덕산 북쪽 자락을 동서로 흐르는 1.7km 계곡인데, 하얀 암반이 마치 대리석을 깔아놓은 듯 하며 그 암벽 사이로 흐르는 물이 옥계수이며 이 계곡에 아홉 구비의 경승(景勝)이 있어 선유구곡으로 불리어진다.
용추폭포 아래 용추계곡에는 벌써 물가에서 노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용추에서 대야산 정상까지는 3.1km이니 부지런히 가야한다.
용추골로 해서 20분쯤 올라가 월영대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등산코스고 산길 정비가 잘 돼 있어서 산에 오르면서 이편과 계곡 저편의 모습들을 훑어보면서 쉽게 올라왔다.
월영대(月影臺)는 월(月)자가 들어갔으니 밤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달이 훤하게 뜨는 밤이면 이 일대의 바위와 계곡의 물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이곳 이름을 월영대라고 한다.
밤에 달빛에 비치는 월영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는 월영대 안내판을 읽어보고는 아쉽게도 마음속으로만 그리고 다시 대야산을 향한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쳐다보니 저 만치에서 산 암릉의 유려한 선들로 이뤄진 대야산이 보인다. 여름이라 녹음이 짙게 드리운 숲으로 둘러싸인 암석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백두대간을 대표하는 산이어서 유명세를 탄다.
산길은 숲속으로 이어지다가 암릉을 만나면 조심조심 지나가야 한다.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많은 등산객들이 함께 오르고 내리므로 특히 로프를 타는 지대이거나 길게 형성된 암릉지대에서는 여간 조심해서 될 건 아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 암릉지대 직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중간 크기 정도의 소나무 한 그루가 암반을 뚫고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강한 생명력에 감탄한다. 산의 척박한 토지 위에서 자라나기도 힘든 판에 바위에 생다지로 커가는 소나무를 보니 절로 느껴지는 게 많다. 한 마디로 대단한 소나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저 위 산 정상에서는 등산객들 몇 명이 소리치고 있다. 그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그것은 정상을 정복했다는 자신 있는 외침이요, 무언가 이뤄냈다는 승리의 포효이기도 하다.
위험한 암릉 구간에서는 밧줄을 타고 또 계단을 타고 올라 이윽고 대야산 정상에 도착했다. 등산객들이 대야산 정상석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다 마친 시간을 기다려 기록에 남길 사진을 찍고서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대야산(931m)은 경상북도 쪽에는 선유동 계곡과 용추계곡, 충청북도 쪽으로는 화양구곡이 자리하고 있는 경계지점에 있다. 산 자체도 백두대간에 있어 이름나 있지만 또 다른 명물은 옥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용추폭포와 이름처럼 달빛이 가득한 월영대인 것이다.
잠시 쉬면서 이곳 저곳을 들러보니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 모습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여름산의 녹음이 산그리매로 묻어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를 맛보는 필자의 마음은 온통 시심으로 흘러내린다.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는 산들은/ 운치가 멋지다./ 문경의 산 가운데/ 늠름한 자태로 서서/ 명성을 빛내는 명산/ 대야산에 오른다.// 푸름을 더해가는/ 아름다운 6월에/ 대야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암릉과 소나무,/ 이어지는 능선 길에서/ 그윽한 솔향기 맡는 사이/ 산그리메 묻어난다”(자작시`문경 대야산에서`전문)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서 피아골로 해서 용추계곡을 타고 내려서면 된다. 이 코스에서는 하산하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가 않다. 용추계곡부터는 등산로 하산길도 등산길만큼 잘 정비돼 있기 때문이다. 일행들과 함께 조심조심 내려서서 피아골을 지나 다시 용추폭포로 왔다.
용추폭포에서는 오전에 산을 오를 때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대야산 자락에 멋진 비경이 많지만 2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는 명소 중 명소다. 폭포 아래에 보기 드문 하트형(♡)으로 깊게 패인 용소의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용추 양쪽에 큰 화강암 바위에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용트림하다 남긴 용비늘의 흔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과연 문경팔경 중 으뜸인 대야산 용추폭포의 위용이 남다르다.
일행들은 대야산 등산을 모두 마치고 오후 4시 40분경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야산을 오르내리며 본 풍경들이 등산기를 쓰는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비록 힘든 산행을 했지만 등산가 메스너의 철학을 떠올리며 그 믿음을 따르려고 애써 미소를 지어본다.
“힘들고 고독한 것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 튼튼하게 지탱해 주는 원천”이므로. /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