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사이 여덟 봉우리 저마다 우쭐
곳곳의 산을 보면 어느 산봉우리에는 암봉이 많았다가 또 어떤 산은 육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나라 산은 지역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이같은 아름다움 때문에 산악인들이 전국의 산을 사계절 내내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오른 암릉만 해도 많다. 정기 등산을 시작하고 얼마 뒤 문경 사불산에 갔는데 암벽이 많아 로프를 타고 오르면서 고생했다. 그 이후 등산 기술을 익히며 바위 타는 기술을 익히니 흙으로 된 육산 봉우리를 등반하는 것보다 암릉 등반이 스릴이 있고 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암릉 등산은 고생이 따른다. 월출산,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신불산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산을 등산하면서 힘듦보다는 그 특색 있는 바위들의 형상에 매료되기도 했다. 등산하면서 전국의 아름다운 산을 소개하는 끝마무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산이 있으니 바로 충남 서산시에 있는 팔봉산이다.
팔봉산은 해발 362m로 낮은 산이다. 그러나 낮은 해발에도 불구하고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산상에 올라 예술작품을 빚어놓은 듯한 암릉 위에서 가로림만을 내려다보는 경관이 빼어나다고 소문나 꼭 가보기로 했는데 이번에야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해발 362m 체구 작지만바다·암릉 신비스런 조화
서산 9경 중 4경 `명품산`
온갖 모양 바윗돌 탄성 절로
서해바다 탁 트인 조망 일품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대구를 벗어나서 경부고속도로와 공주~서산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국도와 지방도를 빠져나와 서산 시내에 접어들어서 태안 쪽으로 달린다. 차안에서 필자는 사전에 입수한 팔봉산 등산 정보를 정리하면서 알려준다.
팔봉산은 서산9경 중 제4경에 속하는 명품산이다. 산이 인근 마을을 병풍처럼 펼쳐 안은 형세라 한다. 팔봉(八峰)이란 이름은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이어졌다 하여 붙은 것으로, 사실은 9개 봉우리인데 가장 작은 봉을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팔봉산은 감자가 유명하며, 매년 6월에는 팔봉산 일대에서 감자축제가 열린다. 이 일대가 서늘한 해양성 기후이고 또한 감자의 생육에 가장 적합한 토양인 사질 양토에서 자라나 저장양분이 풍부하며 단단하여 포슬포슬한 맛이 전국에서 최고로 손꼽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팔봉산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는 사이에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서산농협팔봉지점 주유소에서 좌회전해서 소로를 따라 들어가 양길리 주차장에 도착했고,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버스와 자가용이 주차해 있고, 등산객들도 많이 있다.
필자는 등산 준비를 하고 팔봉산을 쳐다보니 가까이에서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들이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주차장에서 산길로 올라가는 입구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채소류를 비닐봉지에 담아 팔고 있는데 그만큼 이곳에 등산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관광안내소 옆으로 난 들머리 길을 통해 산행을 시작한다. 팔봉산 등산로는 단순하다. 양길리 주차장에서 1봉에서 8봉까지 순차적으로 지나면서 하산길로 어송리 주차장으로 나오는 코스인데, 총거리는 4km이고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또 그 반대로 어송리에서 출발해 양길리 주차장으로 나와도 되며, 팔봉산에 등산온 전문 산악인들은 1봉에서 3봉까지가 가장 좋은 코스라 양길리에서 3봉까지 왔다가 되돌아가기도 한다.
일행들은 울창한 송림지대에 들어서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화기물 보관소를 지나서 가파른 등산길이 이어지고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편이 1봉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2봉이 나온다.
1봉에 오르기 위해 왼편으로 오른다. 1봉으로 오르기 전에 큰 바위틈이 나오는데 그 길을 넘자니 힘이 든다. 바윗길을 오르면서 바윗덩어리에 둘러 매어놓은 굵은 로프줄을 잡고 좁은 바위틈 새로 올라가서 드디어 1봉(210m)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걸렸다.
1봉 일대는 집채보다 큰 너댓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1봉 정상 옆 바위를 돌아 서니 앞쪽으로는 가로림만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2,3봉 등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1봉을 감투봉 또는 노적봉이라 부르는데, 감투봉은 높은 벼슬에 오른 대감의 감투 같아서, 또 노적봉은 마치 노적을 쌓아올린 모양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을 살피다가 임도로 내려와서 2봉을 향한다. 바위사이에 철계단을 향해 오르면서 오르다보니 등산객들이 중간에 멈추어 서서 바위를 보고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우럭바위라 한다.
우럭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져오고 있는데, 용왕이 보낸 우럭이 팔봉산 전경에 반해 돌아가지 않고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우럭바위를 지나 조금 가다보면 2봉 오르기 직전에 코끼리 바위가 있는데 생김새가 코끼리를 닮아서 필자는 사진을 찍어보았다.
2봉 정상에 올라보니 여기에서도 조망이 좋다. 서해바다의 조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일행들은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일대를 구경하다가 바윗돌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는 다시 3봉을 향해 행보를 시작한다.
3봉 오르기 전에 광장이 있다. 아마 헬기장으로 사용되는 장소로 여겨진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걷는다. 평평한 길을 걸어 3봉으로 오르다보니 길이 좁아진다. 한사람씩 바위틈을 지나야하니 진행속도가 갑자기 느려진다.
또 3봉을 보고 내려오는 등산객들과도 교차를 해야 하니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긴다. 3봉에서 내려오는 일행들이 있어 물어보니 서울에서 등산왔다고 일러준다.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길이 팔봉산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철계단이 마련되어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지만 계단이 만들어지기 전에 설치했던 마모된 로프줄을 보니 그동안 어렵게 산행했던 세월이 느껴진다. 철계단은 위로 올라가고 옆으로 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간다.
쇠난간을 잡고 급경사길을 오르니 팔봉산의 수호신이라는 용굴이 있다. 안내판에서 전설 속의 용은 가뭄이 들 때에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고 지역주민들에게 복을 주었다고 전한다.
굴 입구로 들어서는 길은 조금 넓은 편이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굴이 좁아지고 눕혀진 쇠사다리를 딛고 비좁은 구멍으로 빠져 나오는데, 나 몸집이 큰 사람은 빠져 나가기 힘들 듯하다. 그곳을 빠져 나와 커다란 바위를 동쪽으로 돌아내려가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정상이다.
팔봉산을 등산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팔봉산 산행 가운데는 제1봉에서 제3봉 사이에 펼쳐진 암릉 구간이 백미라 한다. 이 구간의 암릉을 오르내리며 걷다보면 온갖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윗돌에 저절로 자연의 조화와 그 신비감을 탄성이 터져 나온다고 하는데 그 길을 걸으면서 보니 정말 좋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산상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지는 가로림만의 풍경을 한참 보다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잠시 머리를 식히면서 서산 팔봉산의 오묘함에 빠져들어 시상에 잠겨본다.
“여덟 개 봉우리가/ 줄지어 이어져서/ 아랫마을을 병풍처럼/ 안고 있으니 명품산이다./ 서산4경, 팔봉산을/ 이곳 사람들은/ 복덩어리 산이라 부른다.// 여기는 우럭바위/ 저기는 코끼리바위/ 때로는 굵은 밧줄을 타고/ 암릉을 오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산상에서 보는 서해바다/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자작시`서산 팔봉산에 올라`전문)
3봉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들은 하산해 4봉으로 향하는데 봉우리 간 거리가 100~200m로 짧다. 철계단을 타고서 올라보니 4봉은 주봉인 3봉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 봉우리다. 하산해서 산길을 걷는데 4봉에서부터 산길은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소 편한 느낌을 준다.
5봉은 8봉 가운데 별 특징이 없는 적은 봉우리라서 올라서 잠시 보고서는 6봉을 향하는데, 오르막이고 꽤 올라가는 코스다. 급경사를 올라가면서 보니 제법 줄기찬 능선길이 이어진다. 6봉을 보고서 내려서서 7봉으로 가는 길에는 등산객이 쌓아올린 돌탑들이 여러 개 있다. 전국 어느 등산지라도 길가에 작은 돌로 쌓은 돌탑들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간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7봉을 지나 숲이 울창한 급경사 바윗길을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8봉에 올라보니 그 위는 헬기장이다. 그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8봉을 내려서서 하산로를 타고 한참 내려오니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사이 도로가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니 길가에 서태사가 있는데, 이 절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찰로 보인다.
그 길을 타고 내려와서 어송리 주차장에 도착해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일행들이 주차장에서 등산장비를 정리하고서는 휴식하다가 차에 올라 귀가를 준비한다. 그 사이 필자는 좌석에 앉아서 오늘 오른 팔봉산을 차창 너머로 보면서 소중한 순간들을 끄집어내본다.
팔봉산 8개봉 가운데 가장 높은 3봉은 해발 361.5m에 불과하다. 낮은 야산이지만 그 여덟 개 봉우리에 멋진 기암괴석이 온갖 모양을 하고 있으니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 신기하기만 하다. 거기에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암릉 길을 조심조심 걸어올라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와 가로림만의 모습은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풍경이니 필자의 마음조차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