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으로 붉게 타오른 내장산이 눈 부시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계절에 그 분위기를 실감나게 하는 것은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낙엽을 바라볼 때다. 낙엽이 붉게 타는 시기에 홀로 또는 여럿이서 산행을 하다보면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의 간절함이 누구에게도 기도를 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끔은 가을을 더욱 진솔하게 느끼게 하는 시가 떠오르는데 이맘때쯤이면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가 깊어가는 계절과 함께 인생의 깊이를 생각나게 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또는 위안 받고 싶은 상황이 되면 그 간절함은 더욱 짙어지는데 필자에게는 가족의 행복과 건강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주말마다 산행에 나서면서 `가을의 기도`와 같은 시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위안받곤 했는데, 그래서 이번 행선지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는 정읍 내장산을 택했다. 이름다운 자연에 묻혀 일상의 때를 씻어내고 싶어서다.
서래봉 등 9봉으로 이뤄져… 기암괴석 산봉우리 많아 낙상사고 주의를
바윗돌·철 계단 타고 763m 신선봉 정상에 오르면 정읍 시가지 한눈에
우리나라 산 가운데 내장산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든다고 잘 알려져 있다. 몇 번이나 가을에는 꼭 가 봐야지 했는데 이번 가을에 그 바램을 이루게 됐다.
내장산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이곳을 찾는 행락객들이 가장 많이 등산 사고를 당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 산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등산사고의 26.0%는 가을철(9~11월)에 발생했고, 가을 등산사고의 38.4%가 가을 행락철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62.5%), 설악산(48.8%), 속리산(43.8%) 순으로 사고발생률이 높았음은 주의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계절과 무관하지만 등산할 때에는 스틱을 지참해서 오르막길에서는 보폭을 좁게 해 오르는 것이 좋고 내리막길에서는 뒤꿈치를 지면에 부드럽게 디뎌 관절에 부담을 줄이는 것도 등산의 기본이자 부상을 막는 지혜다.
단풍만큼이나 울긋불긋 여러 가지 색깔의 옷을 입은 행락객들이 입구도로를 메우고 있고 서래봉 통제소로 가는 길이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다.
내장산 등산코스는 여러 갈래다. 그 가운데 행락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일주문- 백련암- 서래봉- 원적암- 내장사- 일주문 코스로 5.65km 거리에 4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백암사 종주코스는 8.4km로 5시간20분 정도 걸리며 가족을 동반한 행락객들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전망대 코스를 찾는데 거리는 1.8km이며 50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 일행은 서래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서래봉에 오른 후 다시 원점으로 내려와 불출봉, 망해봉으로 해서 내장산 정봉인 신선봉에 올랐다가 내장산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지원센터를 출발해 천천히 걸어가니 서래삼거사가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서래봉과 일주문이 나오고,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망해봉, 까치봉이 나오는 코스다.
먼저 서래봉에 올랐다가 정봉에 오를 계획이니 왼쪽으로 접어들어 20분정도 걸어가니 서래봉이 나온다. 서래봉은 기암괴석이 농기구 써레를 닮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곳 내장산은 기암괴석의 산봉우리들이 많아서 오르고 내리는데 조심을 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전국 가을산 행락객 중에서 가장 많은 낙상사고가 발생한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철계단을 타기도 하고 바윗돌을 넘어 내장산 9봉 가운데 한 봉우리인 서래봉에 올랐다. 주변을 조망하는데 기암괴석이 갖가지 모양새를 하고 있고 주변에는 붉게 단풍이 들어 아름답다.
암봉에 올라서면 내려갈 준비 삼아 잠시 휴식을 취하게 마련인데 그곳에서 잠시 쉬다가 올라왔던 길로 내려선다. 삼거리까지 원점 복귀해서 서래약수를 지나 불출봉을 향해 걷는다. 서래삼거리에서 불출봉까지 거리는 0.9km지만 암릉길이다. 20분 남짓 걸어 불출봉에 도착했다. 이곳에 부처가 출연했다고 하여 불출봉이라 이름붙은 곳이니 가히 자연경관을 알만하다.
특히 구름이 낀 날에는 불출봉 일대는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불출운하(佛出雲河)`라는 표현이 생겨날 만큼 모습이 멋지다고 한다. 날씨가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짙은 구름이 없으니 소문만 듣고 지나갈 뿐이다.
그런 산행 코스인 망해봉과 연지봉에 연달아 올라 사방으로 탁 트인 전상에서 정읍시가지를 한눈으로 살펴보고서 가을이 무르익는 내장산의 정취에 흠뻑 취해본다.
연지봉을 지나 까치봉(717m)에 도착했다. 2개 바위봉우리의 형상이 마치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까치봉이라 이름 붙어졌고 내장산의 제2봉 위세를 떨치고 있다.
까치봉을 보고서 내려서서 조금 걸으니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제1봉인 신선봉까지 거리는 1.5km이다. 우리 일행은 산행하는 많은 등산객들과 함께 정상인 신선봉으로 오른다.
어느 산이든 정상에 있는 산은 쉽게 오름을 허락하지 않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바윗돌과 철 계단을 타고 고생한 끝에 드디어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 정상(763m)에 올라섰다. 여기에 오르기까지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등 다섯개의 봉우리를 넘어 힘들게 올라왔지만 내장산 정봉에 오르는 손쉬운 방법도 있다.
내장산탐방지원센터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바로 옆 봉우리인 연자봉 전망대에 올라 1.1km를 산행하면 신선봉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굳이 어렵게 여러 개의 산봉우리를 타고 넘는 어려운 산행을 하는 것은 깊숙이 감추고 있는 내장산의 참맛을 보기 위함이 아니던가.
일행들과 여기저기에 있는 산행인들은 신선들이 놀고 갔다는 신선봉 정상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들을 살피고 멋진 풍경들을 배경삼아 저마다 사진 촬영을 한다. 필자도 주변 경관을 살피면서 한창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산 풍경을 보느라 눈이 호강을 한다.
멀리 정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가까이로 펼쳐지는 산들이 가을볕 아래 단풍을 만들어내 광경들이 한없이 위대해 보인다. 내장산 깊숙이에 들어와서 힘들게 산상에 올라 아름다운 자연을 보노라니 필자의 마음이 감격스럽다.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많아/`양의 내장 속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런 연유로 이름이 붙어진/ 호남의 대들보, 내장산은/ 태고 적부터 오래도록/ 신비함을 간직해온 명산이다./ 여기에 올라보면/ 그 까닭을 안다.// 내장산 9봉의 절경과/ 계곡마다 넘치는 아름다움이/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를./ 최고봉에 올라서니/ 타는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자작시 `내장산 신선봉에 오르다` 전문).
내장산은 9봉으로 이뤄져 있다. 전체 봉우리를 다 오르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코스상 신선봉에서 연자봉으로 해서 내장사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장군봉에는 들르지 못한다.
아쉽긴 하지만 신선봉에서 연자봉 쪽으로 하산해 내장사로 향한다. 연자산 전망대나 그 옆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행락객들이 붐비는 모습을 보며 계곡으로 내려서서 내장사로 들어섰다.
내장사는 백제 제30대 무왕 37년(636)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절 입구 자리에 대웅전 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영은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후 현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것을 1957년 주지 야은 스님께서 요사, 1958년에 현 대웅전을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바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에 안겨 있어 주변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사찰이다.
법당에 들러서 조용히 경배를 올리고서 경내를 구경해본다. 많은 행락객들로 사찰 경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로워 보인다.
우리 일행들은 가을 단풍의 절경지인 내장산 등산을 6시간 30분간에 걸쳐 모두 마쳤으니 흐뭇하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던 날,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든다는 내장산을 찾아 9봉 가운데 장군봉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개봉에 올랐다. 하산하는 길에 아름다운 계곡을 보고 또한 1천330년 전의 고찰에서`가을의 기도`로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가슴속에서 온통 붉은 단풍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