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예언 숨어있는 성산… 소중한 문화재 곳곳에 품어
등산을 한지도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지난해 3월부터 경북매일에 금요일마다 등산기를 연재한지도 1년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등산지 선정에 신경이 쓰이는데, 매주 찾는 산의 특성과 함께 시기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계절의 맛을 제대로 알려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 가운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두루 갈 수 있는 명산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 필자 나름대로의 계획인 바, 주말 산행을 위해 주중에는 각 산악회를 확인해보고 필자가 가보지 않은 산이나 설사 가본 산이라 하더라도 다른 코스가 있는가를 꼼꼼히 살피게 된다.
전문산악회가 주관해 선정한 이벤트성 등산행사는 매년마다 계절에 따라 가는 곳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곳에 2~3년 동안 다녀오다 보면 거의가 간 곳이라 선택에 애로가 따른다. 이번에는 한번 다녀왔지만 등산코스를 달리하여 공주 계룡산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절벽수준 능선 지나 장군봉 정상엔 봄꽃·신록 절경으로 장관닭벼슬 모양 삼불봉·관음봉 등 20여개 봉우리 수려함 뽐내
계룡산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난해 5월 초에 다녀와서 경북매일에 5월10일자로 `닭벼슬 쓴 용처럼, 능선 따라 빼어난 산세 뽐내다`는 제하로 산행기를 올린바 있다.
하지만 계룡산은 20여개봉이 있는데다가 등산 코스가 여러 개다. 지난번 등산에는 갑사에서 시작해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하산해 남매탑과 동학사는 겹치지만, 이번 코스는 동학사 가까이 있는 박정자삼거리에서 출발해 장군봉으로 올라서 동학사 쪽으로 하산하니 다른 코스다.
계룡산이 예부터 영험한 기운이 깃든 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져 왔고, 정감록의 예언이 숨어 있는 신비의 산인만큼 그 영산을 찾아서 현재 한바탕 국민이 겪고 있는 세월호의 아픔을 잘 수습해달라고 기원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일요일 새벽, 예전과 같이 정해진 곳에서 차를 타고서 공주 동학사 방향으로 가는 차안에서 계획된 코스를 다시 확인해보며 일정을 그려본다.
박정자삼거리를 출발해 어느 정도 숙달된 등산팀들은 장군봉, 신선봉을 거쳐 삼불봉쪽으로 올라갔다가 자연성능과 관음봉에서 은선폭포를 거쳐 동학사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소요시간이 6시간 정도로 나와 있다.
한편 초보팀들은 장군봉을 거쳐 신선봉에 올랐다가 바로 그 아래 있는 남매탑쪽으로 하산해 동학사에 이르는 비교적 수월한 코스로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다.
등산 일행을 태운 관광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유성에서 빠져나와서는 오전 10시경에 등산로 초입부분인 박정자 삼거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날씨는 전형적인 봄 날씨라 등산하기가 안성맞춤인데다가 계룡산이 주는 신비감은 흥미를 더해준다. 또한 일행들은 장비를 챙겨 곧 바로 장군봉 쪽으로 등산을 시작한다.
계룡산이라는 산 이름은 조선조 시조인 이태조와 관련이 있다. 그 당시 이 일대에 새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던 때에 이태조와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요, 비룡승천형(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한 계룡산은 천황봉(845.1m)을 중심으로 이번에 오를 장군봉, 신선봉, 삼불봉, 관음봉 등 28개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 등 7개소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자태와 경관이 매우 뛰어나 삼국시대부터 이미 역사에서 검증된 명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행정구역상 주 위치는 충남 공주시이지만 일부가 대전광역시와 논산시, 계룡시에 위치하고 있으니 4개시에 걸치는 광활한 면적이다. 또한 이 일대의 계룡산국립공원은 1968년 12월31일에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정비가 잘되어 있는 곳이다.
장군봉에 오르는 초입 길은 잘 닦여져 있지만 처음부터 고도가 높다보니 힘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오를 봉우리 등 산행코스는 다른 등산지에 비해 두 배 정도 되다보니 초입부터 힘을 아끼고 잘 분배해야 한다.
장군봉을 오르면서 봄꽃들이 피고 신록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산 빛을 보면서 걷는다. 때로는 계단을 타고, 로프에 의지하여 등성이를 오르고 능선을 타지만 아직은 초입이라 힘들지 않다.
능선 양편으로는 거의 절벽수준이어서 조심조심 올라 정상(503m)에 도착했다. 산 왼편으로 천황봉, 관음봉, 삼불봉 등 봉우리들이 촘촘히 보이고, 절경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쉬면서 멀리 산들을 조망하고서 앞에 있는 풀이랑 나무에게도 세심한 관심을 가져본다. 바위틈을 헤치고 나온 풀이랑 그 틈에 뿌리박고 자라나고 있는 소나무를 보니 그 악착같은 생명력에 감탄사가 나온다.
다시 신선봉으로 가기 위해 길을 천천히 내려선다. 갓바위를 지나 얼마동안 가니 갓바위 조망점이 나타나고 거기서 잠시 쉬면서 살피는데 학봉리 마을이 멀리 보인다.
갓바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직진하면 신선봉이다. 일행은 신선봉 정상(649m)에 올라 숨을 다시 고르고는 바로 삼불봉 고개 쪽으로 발을 옮긴다.
삼불봉고개 밑에서 동학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에 남매탑이 있다. 일행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남매탑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점심식사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초보팀들은 남매탑으로 내려가고 전문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삼불봉을 거쳐 관음봉에 오르게 된다.
험한 산길을 올라 삼불봉 정상에 섰다. 삼불봉 명칭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형상이 세 부처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겨울 설경이 최고로 친다. 눈 덮인 삼불봉은 계룡산8경 중에서 제2경으로 치는데 그만큼 봉우리가 멋지다는 것이다.
봄이 완연히 무르익는 날의 삼불봉도 겨울 명승만큼이나 아름다우니 20여개 봉우리들마다 만들어내는 자연의 수려함은 정말 멋진 선물인데, 산에 올라본 자만이 느끼는 정취다.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구간은 자연성능 길이다. 이 길은 바위가 많고 험한 곳인데, 자연성능이라는 이름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성벽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칼날 같은 바위능선 위로 아슬아슬한 등산로는 전문 등산인들도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기는 하나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인기가 있다.
바로 저 위가 바로 해발 816m의 관음봉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룡산의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는데 힘이 부치기도 한다.
흙길과 암릉길을 걷고 때로는 계단과 로프를 이용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몇 개의 봉우리들을 지나오면서 좋은 풍경을 마음에 담지 못했더라면 상당히 힘든 산행이었으리라.
드디어 관음봉 정상에 섰다. 해발 816m로 이번 계룡산 등산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앞에 보이는 천황봉(845.1m)이 있지만 입산통제가 되어 아쉽긴 해도 관음봉에 올라서 계룡산의 닭벼슬 산봉들을 보는 것도 필자에게는 행복이다.
정감록의 예언이 숨어있고 신비감을 더욱 북돋우는 민족의 성산인 계룡산에 서 있다. 힘들게 올라온 산이고,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들이 신비감마저 들기에 하산하기가 싫어진다. 쉬면서 앞뒤 산들의 정경도 바라보고 봄볕 속에서 오래도록 춘심을 앓는다.
“같은 산을 향해/ 다시 오르는 일처럼/ 인생이 그럴 수 있다면/ 후회할 일은 없을 터에/ 지난해 못다 본 미련이 남아/ 오늘은 계룡산을 찾아/ 힘들게 올라 정상에 선다.// 명산에 다시 올라/ 먼 산들을 바라보니/ 스무 개 봉우리마다/ 제각기 모습은 다르지만/ 비경을 품고 있는 모습들이/ 참다운 인생길을 향한/ 무언의 지혜를 손짓해준다.”(자작시 `계룡산에 다시 서다` 전문)
관음봉에서 계룡산의 정취를 만끽한 후에 조심조심 길을 내려서서 은선폭포를 만났다. 높이 46m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피어나는 운무가 아름다워 `은선폭포 운무`는 계룡팔경의 제7경으로 꼽히는데, 옛날에 신선들이 이곳에 숨어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폭포다.
사찰에 들려 평소 등산 다니면서 사찰을 들릴 때와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의례를 바친다. 또한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는 희생자 가족들 등을 위한 기도도 함께 한 후에 도량을 빠져나와서 동학사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시계는 오후 4시40분을 가리킨다.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총 6시간 20분의 계룡산 등산, 어느 순간은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줄기차게 걸어서 등산을 마무리했다. 힘든 산행이었고 정말 등산다운 등산을 했다. 산행중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을 비교하니 계룡산 등산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