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낙동이 만나 이룬 절묘한 조화 `일품`
경남의 바닷가에 자리잡은 양산 토곡산이 그런 경우다. 그 산을 등산하노라면 낙동강과 부산 앞바다 쪽을 내려다보며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걸으며 봄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하산길에 원동역 쪽으로 내려오면 순매원 매화의 향연을 볼 수 있어 별천지다.
순매원 일대는 매화꽃으로 유명하여 매년 매화축제가 벌어진다. 낙동강 변 야산으로 번져나는 매화꽃을 볼 수 있어 3월말이나 4월 초의 등산지로는 유명하다. 이때가 되면 낙동강변에 위치한 원동역은 기차를 타고 몰려드는 상춘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거대한 병풍모양 암벽사이 물맞이 폭포·확 트인 전망으로 시원함 더해낙동강변 순매원 70년 전통 매실·매화꽃 자랑… 등산객 사진찍기에 딱
대구드림산악회가 매화꽃도 볼 겸 동해안의 등산 계획을 경남 양산 토곡산으로 정했는데 지난달 22, 23일 양일간에 펼쳐진 제8회 원동매화축전이 끝이 났지만 아직도 순매원 일대의 개화는 진행 중이어서 그리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마다 등산을 떠나는 필자로서는 그날의 일정은 대개가 비슷하다. 전날 등산지에 대한 정보를 산악회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 대충 알고서는 시간을 맞춰놓고 잠을 자고서 당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출발지로 향한다.
이번에는 양산이 가까운 거리라서 오전 7시40분경에 차에 올라서 시내를 한바퀴 돌아 등산 일행들을 태우고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서 경주, 울산을 지나 양산방편으로 행차한다.
등산으로는 오랜 만에 울산, 양산 방향으로 가는 지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눈에 익고, 일정도 쉬운 편이어서 마음이 편하다. 차는 오전 10시30분경에 양산의 등산 들머리인 함포마을에 도착했다.
일정상의 등산로는 함포마을에서 출발하여 물맞이폭포를 거쳐 토곡산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코스로 원동초등학교로 빠져나와서 원동역을 거쳐 매화꽃 향연이 펼쳐지는 순매원에서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다. 순수한 산행 거리로 치면 9㎞ 정도가 되고 산행시간은 넉넉잡아 4시간30분쯤 걸린다.
자료에서 보니 토곡산은 악산이라 하는데, 인근에 있는 달음산, 천태산과 함께 부산 근교의 3대 악산으로 꼽히고 있다. 그렇지만 토곡산은 해발 855m의 높이로 능선과 능선사이의 비탈길에서 경사는 조금 심하지만 겁부터 먹을 산이 아니다.
암릉이 많다보면 볼 수 있는 경관도 많고 더군다나 능선 길에서 낙동강의 흐름과 그 구비들을 계속 볼 수 있으니 힘 드는 것도 잊게 하고 지루하지는 않은 등산로이다.
부산·경남지역의 인근 산은 천성산, 신불산, 간월산 등에서 암릉이 많다. 이 산의 암릉 구간이 거칠고 투박해 흔히 남성미가 있는 암릉에 비유된다.
그러나 양산의 함포부락에서 토곡산 정상으로 올라서는 길과 토곡산에서 인근에 있는 용골산으로 내려서는 암릉 지대는 부드럽게 형성돼 있어 여성미가 흐르는 암릉 구간이라고 전문 등산인들은 말한다.
필자는 최근에 육산(肉山) 보다는 암릉이 많은 골산(骨山)을 많이 다녀왔다.
지난 연재에서도 언급한바 있듯이 바위로 구성돼 오르기가 많이 힘든 산은 겨울이나 여름보다는 봄, 가을에 가는 것이 그래도 더 낫기 때문이다.
함포 마을회관에서 출발한 일행들은 500m쯤 가다보니 오른쪽에 토곡산을 오르는 들머리를 만났다. 등산의 시작은 항상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느라 천천히 걷는다.
시작지점에서 8분 정도 걷다보니 정면 소나무 숲 속에서 조그만 지장암이 나타나고, 마당에 있는 지장보살상이 서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한 뒤에 늘 하던 예처럼 오늘도 무사히 등산을 마치기를 기원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산행을 계속해 지장암을 지나 길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돌아서 걷는다. 왼쪽으론 거대한 암벽이 마치 병풍을 친 것처럼 산에 붙어 있으니 토곡산에서 유일하게 물을 만나는 물맞이 폭포다.
올려다보니 길이 7m의 높이에서 그 폭은 2~4m인데 한 여름에 물이 많이 흐를 때 보면 장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행들은 폭포 위를 조심스럽게 올라타고서 걸으니 두 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좌측 편으로 골짜기를 건너서 능선 쪽 길을 따라 걷는다.
골짜기를 건너 약 50분가량 능선을 올라 널따란 평지의 평탄한 길을 만나 조금 걸으니 첫 번째 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앞이 확 트여 산 아래 전망들이 시원하게 눈앞에서 펼쳐진다.
조금 쉬다가 다시 길을 걸어가니 첫 이정표가 나온다. 토곡산 정상까지 거리가 1.7km로 표기돼 있고 출발해온 함포마을회관은 2.1km로 나와 있으니 그사이에 토곡산까지 거리로 치면 반 이상을 온 것이다.
이제 암릉 길이 눈앞에 나타나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바위 사이 등산로에 버티고 있는 앙상한 고사목 소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는 것 같다.
밧줄을 타고 암릉길을 오르고, 또 다시 험난한 코스를 타고 걸으며 몇 번을 반복해서 암릉위에 올라서 너럭바위에서 배낭을 풀고 잠시 한 숨을 돌린다. 여기서 보니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애덴밸 리가 보이고 낙동강 전경이 펼쳐진다.
다시 토곡산 정산으로 가는 능선에 오른다. 암릉길을 걸어 640봉부터 730봉, 754봉까지 지나오는데 20여분 걸린다. 안부를 걷다가 순한 오름길을 타고 드디어 토곡산 정상에 올랐다.
토곡산(855m) 정상의 표지석 높이가 2m를 넘는다. 일행들과 함께 사방에서 펼쳐지는 조망을 즐긴다. `영남 알프스`를 자랑하는 이 일대의 산줄기들이 북쪽과 동쪽에서 길게 뻗어 내린 올망졸망한 경관이다.
서쪽 편을 보면 천태산, 남쪽에는 낙동강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일행들이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이 필자는 멀리 산들을 바라보면서 영남 알프스의 경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꼭대기라서 바람은 있지만 내리쬐는 봄빛에 아득히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매화꽃 향기 그윽한 날에/ 낙동강이 훤히 보이는/ 양산 토곡산에 오른다./ 암릉길, 고난의 길을 오르며/ 힘들어 붙여진 말이/ `토하고 곡했다`는 산의/ 어려운 등산길이다.// 정상에 오르면 펼쳐지는/ 영남 알프스의 멋있는 경관들,/ 저 만치에서 은빛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구비구비를 보니/ 홀로 천지가 아득하구나./ 매화꽃 물드는 봄날/ 토곡산에 올라 단꿈을 꾼다.”(자작시 `양산 토곡산의 단꿈` 전문)
비몽사몽간은 아니지만 봄빛 따뜻한 3월의 끝 무렵에 풍광 좋은 산 정상에 올라 눈앞에 전개되는 아름다운 전망들을 보면서 생마음속을 흘러가는 운율을 다스려본다.
이젠 하산이다. 석이산을 타고 원동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택한다. 토곡산 정상에서 내려서서 남쪽 능선을 타고 8분정도 걸으니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으로 가면 복천암으로 가는 방향이고, 오른쪽은 하산로인 원동역 방향이다.
능선을 타고 15분 정도 내려서니 두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734봉 아래 하산 길부터는 내리막이 급하게 이루어져 있다.
경사가 비탈진 하산 길에 낙엽이 깔려서 바닥이 미끄럽기도 해 자칫하면 낙상할 수 있어 조심조심 내려선다.
그렇게 20분정도 직진하다보니 석이봉 이정표를 만났는데, 예전에 석이버섯이 많이 났다고 하여 석이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 갈림길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원동초등학교와 함포마을회관으로 길이 갈린다.
두 길은 다시 만나게 되니 어느 길을 택해도 상관이 없다.
갈림길에서 오솔길로 접어들어 걸어가니 토곡산 등산로 이정표가 보이는데, 여기는 사실상 산행의 들머리이자 종점이기도 하다. 일행들은 버스에 올라 인근에 있는 순매원으로 향한다.
순매원은 원동마을 삼정지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원동 매실은 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 상품이다.
삼정지란 옛날 정자나무 세 그루와 인가가 세군데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마을로 이 지역의 온화한 기후와 매실재배에 알맞은 조건하에서 재배된 것이니 전국에서도 알아준다.
매월 3월에 이 일대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꽃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일행들은 토곡산을 등산도 하고 피날레로 여기서 매화꽃들의 향연을 보면서 피로를 잊는다.
일행들은 매화꽃나무 사이를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고 등산도 하고 낙동강변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즐긴다.
오후 4시30분경 대구로 돌아가는 관광버스에 올라 매화꽃이 만개한 원동마을 매화단지를 뒤로 하면서, 산행에서 만난 부드러운 암릉 길의 토곡산 풍광들을 그리면서 산 아래 전만치에서 굽비치는 낙동강 모습을 가슴에 안아보았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