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딱한번 문여는 부처님 오신 날, 이심전심을 헤아리다
나흘간 이어지는 5월 연휴가 황금연휴임에도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다보니 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이 어린이날을 맞이해 가까운 곳에 다녀오는 정도로 조용한 일상이다.
때마침 연휴기간 중에 부처님 오신날이 겹쳐져 있어 어디 산사에라도 조용히 다녀오고 싶어 알아보니 대구 KJ산악회에서 문경 봉암사 계획이 있다고 했다.
봉암사라 하면 평소에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1년에 단 한번, 부처님 오신날에만 일반인들에게 문을 연다고 하니 다녀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더불어 통제돼 입산이 금지된 봉암사 뒷산 희양산도 오를 수 있다는 기대에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조계종 특별선원 지정된 봉암사 단아·청정함 물씬
소라뿔 모양 나각산 아래 낙동강 물굽이 일품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국의 사찰에서도 연등회나 탑돌이 등 행사를 하지 않고 조용히 부처님 오신날을 경축하기 위해 설법이나 관욕식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 그 뜻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절에 들렸다가 산에도 오를 계획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매양 맞는 아침이지만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고, 필자가 불교신도인지라 마음이 와 닿는 것은 더욱 신중해진다. 일단 집을 나서면서 절에 가서 가족들의 무운을 빌고 뜻하지 않는 사고로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용기를 전해주는 기원을 드려야지 하는 생각부터 했다.
약속장소에 가니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몇 낯이 익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묵상해 본다.
관광버스는 시내의 탑승 장소에 몇 차례 섰다가 봉암사를 찾는 참배객들을 모두 태우고서 곧장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달린다.
2시간 남짓 달려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도착했다. 부처님 오신날에는 전국에서 봉암사를 찾는 참배객들이 워낙 많아서 절에 들어가기 전 3km 지점부터 차량을 통제한다.
일행들이 타고 온 차도 희양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를 하고서 참배객들은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봉암사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많은 참배객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느라 정거장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이 시골에서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그만큼 봉암사가 널리 소문이 난 유명사찰이다.
오전 9시40분경에 참배객들과 함께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으니 사찰 입구길이 나오고 일주문을 거쳐 계속 들어가서 1시간 후 봉암사에 도착했다. 이미 대웅보전 앞에는 흰색의 연등이 달려 있는데 법당에 들어가니 수많은 신도들로 가득 차 들어갈 틈이 없다.
대웅보전에서 참배를 드린 후 가족 건강을 빌고, 세월호 희생자들과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바깥으로 나와 경내를 돌아보면서 부처님 오신날의 의미를 새겼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소실됐다. 그 후 1955년 금색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을 다시 건립해 최근의 도량으로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봉암사를 창건하던 당시에 대사가 이곳을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쌓였는 즉,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경탄하고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 라 하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지었다 한다.
봉암사는 선원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봉암사 선원의 역사는 신라 후기 지증대사 도헌스님이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곳에서 개창하였던 것인데, 이렇게 유서 깊은 봉암사에 근대 선원이 다시금 부흥된 것은 1947년이라고 한다.
조계종 종단은 1982년 6월,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가 조성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필자는 경내에서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신라 경애왕 원년(924년)에 건립된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와 봉암사 지증대사탑(보물 137호)을 본 뒤에 조용히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이왕 봉암사에 온 김에 뒷산인 희양산에 한번 오르기로 계획했으므로 사찰을 들러보고 필자는 산신각에서 들러 108배를 드린 후에 여유시간을 시간을 이용해 뒷산에 오른다.
1년에 한번 기회가 주어지는 희양산 등산을 위해 전문 등산인들은 희양산 북쪽인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등산을 시작해 성터를 거쳐 희양산에 올랐다가 봉암사로 내려오는 길을 주로 이용한다고 하는데, 필자는 봉암사에서 희양산에 올랐다 다시 내려오는 코스다.
계곡을 통해서 산길에 올라 수목 사이로 조심조심해서 올라가니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암릉 길이다. 다소 바위가 편편해서 다행이지만 밧줄 등 안전장치가 없어 혼자서 올라가기가 마땅하지가 않아 잠시 쉬면서 여기서 내려갈까 고민해본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힘들었고, 조심스러웠다. 다른 산에 등산하는 경우는 일행들과 함께 하거나 전국에서 온 등산객들과 합류해서 길동무라도 있는데 여기서는 순전히 혼자다.
오늘따라 고독한 산행이니 부처님 오신날에 홀로 깨우쳐야 하는 마음의 수행이다.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거대한 바위산으로 천하 길지로 이름나 있는 희양산(998m) 중턱에 올라 부처님의 이심전심의 미소를 헤아려본다.
일단 내려가기로 작심했는데 여기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 올라온 길을 통해 하산해 봉암사에 다시 가니 오후 3시가 가까이 됐다.
거기서 대문트레킹 회원들을 다시 만나 우리 일행은 대구로 가는 귀가 길에 상주 나각산에 들리기로 했는데, 관광버스가 오후 4시경 나각산 입구인 상주시 낙동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나각산 정상을 향해 일행들은 편안한 걸음으로 걷는다. 산 모양이 마치 소라뿔 같아 나각산으로 불리어지는 이 산은 해발높이가 240여m 정도다.
산 밑에서 직선거리로 따지자면 240m에 불과하지만 등산코스를 이용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1.4km거리다. 남녀노소가 편안히 오를 수 있고, 산 정상에 오르면 펼쳐지는 낙동강의 물굽이가 일품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일행들은 나각산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는다. 저 아래에 굽이도는 낙동강은 봄빛 속에서 좋은 풍광을 연출하는데 자연이 주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명품을 빚어낸다.
나각산은 우리국토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풍요와 부를 상징하는 산으로 소문나 있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이 속리산과 일월산, 팔공산의 정기가 낙동강과 위강의 강 기운이 함께 어우러진 삼산이수(三山二水)로써 예로부터 큰 도시가 들어설 명당 터라 했다.
상주시에서 나각산 일대를 관광지로 잘 가꾸어놓았다. 2010년에 나각산 정상에 구름다리를 만들고 나각산에 3개 정자를 세웠는데 첫 번째 정자는 8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오르막을 오르기 직전에 사람들이 한숨 돌리면서 여유를 즐기라는 뜻으로 정자를 세웠고, 나머지 두 개의 정자 전망대는 구름다리를 사이에 두고 솟은 두 봉우리 정상에 세워져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이 산에 세 번 오르면 뜻을 이루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산의 정기와 낙동강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마귀할멈굴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영험이 전해져 내려와 아직도 이곳에서 소원을 빌러온다는 것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산이다. 나각산 정상에 서면 눈 아래로 펼쳐지는 낙동강의 풍경과 마을 모습들을 보니 사월 초파일의 부처님 오신날을 경축하는 날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져온다.
대문트레킹 회원 일행들과 함께 상주 나각산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상주 시내에 들려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 귀가 길에 올랐다.
차안에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 행차한 문경 봉암사의 조용하며 뜻있는 행사와 혼자 오른 희양산 자락을 생각해보고, 또 강물이 휘돌아 나가는 낙동강 풍경을 그려본다.
그러한 사이 필자는 자료로 가져온 주요한 시인(1900~1979)의 불놀이 시를 꺼내서 의미를 한번 새겨본다.
이 시는 1919년 2월에 창간된 월간`창조`지에 수록된 작품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 산문시이기도한데, 사월 초파일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가져온 것이다.
시인은 사월 초파일날 망루에 올라 연등행사 장면을 보면서 임을 여읜 슬픔과 그 극복의지를 시로 승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 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 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주요한 시인의 시`불놀이`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