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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여산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등록일 2014-05-09 02:01 게재일 2014-05-0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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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철쭉과 기암괴석의 조화, 탄성 절로

▲ 마고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 하여 이름이 생긴 경남 거창 월여산은 해동제일의 명당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암괴석과 철쭉이 빚어내는 경관은 수려함을 자랑한다.
▲ 마고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 하여 이름이 생긴 경남 거창 월여산은 해동제일의 명당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암괴석과 철쭉이 빚어내는 경관은 수려함을 자랑한다.

고향이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정겨운 이름이다.

마치 어머니의 가슴 품안에 든 것같이 푸근한 느낌이 든다. 필자는 늦은 나이에 문학의 길에 입문해 수필을 쓰고 시를 배우면서 애송하는 시가 있었으니 `고향`을 주제로 하는 글이다.

많은 시 가운데 김소월의 `고향` 시를 들으면서 조상님 뼈가 묻혔고, 어릴 때 살던 곳이라 자나 깨나 생각나는 게 고향이다. 그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인간의 마음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던 터에 먼저 김소월 시인의 `고향`의 한 소절을 옮겨 적는다.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 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 뼈가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 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이하 생략)

암릉길 지나 올망졸망 붙은 7형제바위 볼수록 정감스러워

3개의 봉우리 삼봉산 등 `일품`… 해동제일 명당 별명 붙기도

꿈에서도 떠오르는 고향!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서 소중한 것을 꼽으라한다면 단연코 가족과 고향땅 영해(寧海)다. 이 둘은 운명처럼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인데, 남들도 나에게 고향사랑이 유별나다고 하니 그 점만큼은 자신도 솔직히 받아들이고 싶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살면서 근래에 대구에 정착했지만 언젠가 고향 쪽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꿈을 꿔본다.

지금도 이곳에서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고향이 그리울 때면 시간을 내어 가보긴 해도 내 고향 영해가 빚어내는 아련한 향수가 무시로 떠오르는 날이 많다.

고향사람들이 대구로 나와 살면서 영덕인 끼리 화림산악회를 구성해서 매달 첫째 주 일요일에 등산을 가고 있는데 벌써 163회째라고 한다. 그동안 고향 산악회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등반 행사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내게 늘 있어왔다.

필자가 대구시등산연합회 부회장이고 대구시내 등산회와 함께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전국의 산에 간다는 사실을 화림산악회 선후배들이 잘 알고 있기에 자유롭게 놓아두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4월에 통영 욕지도 등산시에 산행을 하던 중 마주쳤으니 많은 원망을 들었고,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매월 첫 주 일요일 등산은 화림산악히 행사에 동참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번이 그 첫 번째로 고향 선·후배님들과 함께 하는 등산이니 마음이 설렌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기예보를 보니 날씨도 좋다고 하고, 더욱이 고향사람들끼리 가는 산행이라 마음마저 상쾌하다. 오전 6시45분경 약속장소인 법원 앞으로 나가니 몇몇 분들이 나와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서는 차에 오른다.

▲ 철쭉꽃이 만발한 월여산 밑 풍경.
▲ 철쭉꽃이 만발한 월여산 밑 풍경.

몇몇 모르는 분도 있지만 회장이나 총무, 그리고 산악회의 중심인물들이 잘 아는 선후배님들이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고향 영덕에 대한 사랑이 더욱 피어오르는 5월의 아침이다.

시내 정해진 장소를 돌면서 회원들을 다 태운 후 관광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 달리다가 화림산악회원들이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회원들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서는 다시 차에 올랐다.

화림산악회 회원을 태운 관광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빠져나와서는 합천을 거쳐 거창으로 내달아 오전 9시30분경 등산 들머리인 거창군 신원면 구사리 원평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간단히 준비운동을 마치고 산행로를 따라 걷는데 조금 가니 저수지가 나오고, 거기서 조금 더 오르니 사진찍기 딱 좋은 정자나무가 있다. 원만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한 정자나무 앞에서 화림산악회 회원들은 가져온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월여산 등산 초입길은 농로를 따라 시작되는데, 아스팔트길이다. 일행들은 그 길을 따라 걷는다. 30분간 걷는 이 길이 칠형제봉바위로 가는 길목인데, 오름길이 계속 이어지는 본격 등산로다. 날씨가 무덥지 않아 다행이지만 한여름에 오면 고생이 되는 오르막 코스, 깔딱고개다.

등산을 시작한지 30분 정도부터는 암릉이라 7형제바위까지 힘들게 올라왔다. 도착해보니 바위 7개가 마치 형제처럼 옆에 붙어서 올망졸망 놓여있다. 볼수록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일행들은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주변의 풍경도 본다. 감악산을 보고, 저 멀리에 지리산 천황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시선을 돌려 우리 일행이 올라온 마을들을 본다.

일행들이 말하는 소리가 고향말씨라 정감 있게 들린다. 객지에 살고 있는 고향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같은 사투리를 들으니 7형제바위와 같은 기분이 돋아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다.

▲ 재구영덕인 화림산악회 회원들.
▲ 재구영덕인 화림산악회 회원들.

다시 출발해 월여산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능선을 10분쯤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왼편으로 접어드니 주능선이 나타난다. 바위능선이 시작된다. 조심조심 올라서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니 탁 트인 시야에 5월의 산들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다.

일행들이 오를 월여산 삼봉이 우리를 손짓하는 것 같다.

전망바위를 타고 내려와서 다시 월여산 암릉 길을 조심조심 오른다. 화림산악회가 등산회수가 많아서인지 어려운 코스나 난관을 만나도 손발이 척척 잘 맞고, 행동이 민첩하다. 고향사람들이니 이심전심의 마음이 아닐까.

오전 10시 55분경 드디어 월여산 제1봉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2봉과 3봉이 붙어 있다. 1봉에서 잠시 주변 경관을 구경하다가 조심해서 내려서서는 다음 구간인 2봉을 향해 오르는데 로프를 타고 차례차례로 오른다. 1봉에서 2봉까지는 5분정도니 바로 옆의 가까운 거리고, 그 옆에 붙어 있는 3봉도 마찬가지다.

월여산(862m)은 봉우리가 3개로 삼봉산이라고 불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이 산을 금계포란형 명당으로 지목했다고 해 풍수가들이 많이 찾아들던 곳이라 한다.

월여산 지명과 관련해 마고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산에는 월여와 옥황의 아들 일야의 사랑에 관한 전설도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옛날 이곳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 달맞이를 했다고 하여 월영산(月迎山)으로 불러지기도 한다.

2봉에 올랐다가 내려서서는 3봉에 오른다. 봉우리가 가깝게 붙어 있어 봉우리 정상에 오르는 맛도 색 다르다. 3봉에서 저 밑을 보니 이곳 월여산 5월의 자랑인 철쭉이 무더기로 피어나 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조심조심 길을 내려선다.

암릉길과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와 안부를 거쳐 철쭉지대에 이르니 11시 반이 가까워온다. 안녕기원제단 앞에 도착해 자리를 깔고서 때 이른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널따란 곳에 봄볕이 잘 들어 따뜻한 감마저 주는 명당자리에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고향 선후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 피우며 드는 식사시간도 즐겁다. 점심을 끝내고 일행들은 철쭉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5월의 완연한 봄빛이 철쭉에 내려앉으니 꽃 색깔이 더울 붉어 번져난다. 좋은 풍경을 보며 오랜만에 순수한 고향 사투리를 마음껏 들으면서 점심까지 곁들었으니 졸음이 쏟아져 눈이 감길 지경이다.

산에서는 좀처럼 겪지 않는 현상인데 그만큼 산행 분위기가 좋다는 반증일거다.

▲ 올망졸망 붙어있는 7형제바위.
▲ 올망졸망 붙어있는 7형제바위.

잠시간의 비몽사몽에서 정신을 차리고, 3개의 봉우리와 흐드러지게 피어난 철쭉이랑 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월여산 전설들을 떠올리면서 가슴 속을 휘젓는 상념들을 가다듬는다.

“푸른 오월의 산은/ 들머리부터 화사하게 피어난다./ 해동제일의 명당으로 소문난/ 월여산에 오르면/ 온산 여기저기에서/ 철쭉이 무더기로 피어나/ 마음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다.// 세 개 봉우리, 삼봉산에 / 마고할미의 외동딸이 살았다 하여/ 이름마저 월여산이 된 이곳에서/ 마음 속 깊은 소원을 빌면/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전설 있어/ 거창 땅 월여산에 올라/ 간절한 소망을 하늘로 띄워 보낸다.”(자작시,`푸른 오월, 월여산에 올라`전문)

필자는 가족 건강을 빌고 또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화두 `국민안전`을 위한 기원과 함께 겪지 않아야할 아픔에 젖어있는 세월호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서도 기원을 올렸다.

우리 일행들은 자리를 잠시 정리하고서 다시 행보를 시작한다. 여기서 신기마을까지는 4km다. 암릉길을 내려와 삼거리를 지나 지리재에는 낮 12시10분에 도착했다.

지리재에서 직진하면 재안산, 전망바위를 지나 월여사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로 가면 바로 월여사가 나타난다. 필자는 재안산을 거쳐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쉬다가 월여사로 향했다.

월여사는 신기마을로 가는 도중에 있는 개인사찰이어서 들리지 않고 신기마을로 가서 담 벽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구경했는데, 그 가운데 월여산 노래가 눈길을 끈다. “…. 긴 겨울 만고풍상에 시달리던 나무에 꽃피는 날 오라./ 월여산 철쭉꽃 거룩해지는 날 오라!”는 내용이다.

벽화구경을 마치고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오후 2시30분이 됐다. 대구 가까이에 있어 등산 일정이 빨리 끝났다. 일행들은 등산 일정을 모두 마치고서 애향심으로 똘똘 뭉친 넉넉한 기분이 되어 마을회관 옆에 마련한 자리로 옮겼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회원들이 가져온 음식을 들면서 친목도모를 하는 간단한 회식이었는데 의미가 크다. 필자는 이날 고생을 한 정동주 회장과 최선정 총무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어느 모임이든지 임원진이 열성적으로 해야 그 모임이 활성화되는데 최 총무가 얼마나 사회를 잘 보고 회원들을 보살피는지 화림산악회가 그동안 163회의 산행 역사에서도 익히 증명된다.

5월의 첫 일요일 동향인으로 구성된 화림산악회에서 `해동제일의 명당`이라 이름 붙은 거창 월여산을 다녀오는 차안에서 마음속에 붉게 물던 철쭉과 함께 동향인들과 고향의 맛을 새겼으니 그 고마움이 다시금 새롭다. 6월의 산행이 기다려지는 건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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