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 핑크빛 향기로 들뜨다
지리산은 사계가 아름다운 산이다. 여름이면 계곡마다 청랑한 물이 넘쳐흘러 좋고 가을에는 홍엽으로 울긋불긋한 풍경이 고운데다가 겨울이면 설산으로 천지가 하얗게 뒤덮인 산자락, 봄이면 철쭉 등 봄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지리산은 향기로 진동한다.
그 산은 남한 땅의 육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니 등산가나 일반인들이 계절을 따지지 않고 지리산을 찾아서 자연과의 인연을 맺는다.
그 지리산에 5월 철쭉제를 구경하러 간다고 하니 손꼽아 기다렸던 산행을 지난 주 다녀왔다.
넓은 흙길·소나무 활엽수길 펼쳐져 세동치 가는 걸음걸이 `가뿐`팔랑치 일대 봄꽃향연·바래봉 철쭉축제 매년 열려… 꽃향기 진동
지리산 바래봉 등산은 필자가 등산에 한참 재미를 붙이던 지난 2012년 12월 말에 바래봉 눈꽃 축제가 열릴 때 다녀오면서 고생한 적이 있어 잊어지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흩날리던 눈발이 멎었지만/ 여기까지 오르는 길은/ 눈꽃 천국이었다./ 천지가 하얗게 뒤덮인/ 순백의 등산길은/ 힘든 시간마저 잠재운다.// 흔적을 남기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래봉은 멋진 풍광을 이고/ 신비함으로 손짓한다./ 작디작은 내 모습에/ 바래봉이 얼른 다가와/ 산사나이로 만들어버렸다.”(자작시`남원 바래봉에서`전문)
추운 날씨에 고생을 많이 하면서 올랐던 산이니 필자가 쓴 한 편의 시에 바래봉의 겨울 풍광이 그대로 담겨져 있고 그 때 모습들이 눈앞에 선하다.
산 정상에 오르던 장면들이 필자의 카페`손경찬의 가로등`에 올라 있는데 그때의 등산 모습을 지금 봐도 고생한 표정이 생생히 나타나 우습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추억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다시한번 필자의 카페를 열어 바래봉 등산 사진을 본다.
또 회원들이 올린 “나날이 변모하신 모습 사진으로 뵙습니다. 정말 몰라보게 단단해지시고 건강해 지신 모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라는 글을 읽어보면 필자는 행복하다.
그런 행복을 안겨준 바래봉을 푸른 5월에 찾아가니 맘 설렘은 당연한 일이고 대구 드림산악회가 출발하는 일요일을 기다렸다.
대구 법원 앞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한 차는 오전 10시경 남원시에 있는 전북학생교육원 앞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봄날의 산천과 들판을 보면서 완연한 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버스는 교육원을 향한 길을 들어가면서 보니 차창 밖 저 멀리로 바래봉 주능선이 보인다. 관행차는 교육원 조금 못 미친 곳에 도착을 했고 우리 일행들은 장비를 갖추고 들머리 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이번 등산은 교육원에서 시작해 세동치를 거쳐 바래봉 방향으로 가서 부운치를 지나고 철쭉군락지 길을 걷는다.
팔랑치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바래봉에 올랐다가 임도길 하산 길을 걸어 허브마을로 내려오는 일정인데 총 12.5km에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행이다.
바래봉 등산은 통상 4코스로 구분된다. 1코스는 우리가 도착하는 철쭉공원 주차장에서 시작해 바래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코스로 5.5km에 3시간 정도 소요되고, 2코스는 철쭉주차장에서 바래산에 올랐다가 철쭉군락지를 거쳐 전북학생교육원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총 11km정도다.
3코스는 철쭉 군락지를 보고 산덕리 보리당으로 내려오는 코스이고, 4코스는 종주코스다. 옥계호에서 출발해 바래봉에 올랐다가 정령치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총 14km로 왕복 6~7시간이 소요된다.
우리 일행은 2코스 정반대 방향인 셈이다. 등산로의 시작은 나무계단으로 시작한다. 오늘따라 전형적인 맑고 깨끗한 봄 날씨로 벌써 많은 등산객들이 계단을 오르며 길을 매우고 있다.
표지판을 보니 세동치 까지는 1.8km거리다. 등산 들머리 해발이 거의 750m이고, 세동치 높이가 1천107m로 고도차가 360m 정도이므로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는 코스다.
또한 암릉길이 아닌 넓은 흙길이라 걷기가 좋다. 조금 더 가니 소나무 활엽수길이 나타나는데,편하게 5월의 지리산 길을 걷는 마음도 기쁘다.
세동치에 오르기 직전은 약간 경사가 있는 오름길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혼자 오르는 사람, 두세 사람이 이야기 하며 걷는 모습, 또 뒷짐을 짚고 올라가거나 허리를 구부린채 스틱에 의존해 걷는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세동치에 도착했다. 표지판 오른쪽으로 가면 세걸산이 있고, 왼쪽이 바래봉 방향인데 바라보니 편한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바래봉까지는 5.1km다.
세동치에 도착해 조금 쉬다가 계속 걷는다. 지난번 겨울에 올 때는 추워 힘들었지만 지금은 5월인데도 산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많은 인파 속에서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거치다보니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 길은 산 정상과도 고도차가 없기 때문에 험한 길 없어 등산의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바래봉 일대의 철쭉군락지는 전국의 어느 산보다 대단위로 펼쳐져 있고 꽃이 붉고 예쁘기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초봄에 날씨 탓으로 냉해를 입어서인지 예년보다는 빨리 지고 있다.
편한 길 따라 가면서 꽃과 신록으로 물들이는 풍경을 본다. 저 앞에 바래봉이 보이고 멀리로 지리산 주능선이 나타난다.
외줄기 같은 좁은 길을 계속 걸어 부운치(1천115m)에 도착했다. 군데군데에 낙엽송 군락지가 등산로 주변에 아주 많아 심겨져 있어 그 나무 그늘아래서 등산인들이 쉬고 있다. 조금 쉬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운봉읍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부운치를 지나니 철쭉꽃 군락지다. 팔랑치 일대까지 길고긴 철쭉 군락지인데 무려 1km 정도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2년 겨울 바래봉 눈꽃 축제를 보려고 이 길을 지나면서 설경에 감탄했는데 봄에는 꽃들의 향연에 몸살을 앓으니 자연을 만나는 기쁨으로 마음이 하늘을 나를 것만 같다.
철쭉 길을 따라 걷는데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철쭉축제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온 등산객이다. 그들도 마음마다 바래봉의 5월 풍경을 가득 담고 있으리라.
긴 철쭉 터널을 지나 파랑치 정상 밑에도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초지 가득 펼쳐지는 5월의 신록을 보며 주변의 절경을 만끽한다.
파랑치에 올랐다가 내려오니 벌써 낮 12시10분이다. 산행한 지 2시간이 조금 넘게 5.4km를 걸어왔다. 나무 아래 자리를 만들어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산 이쪽저쪽을 살펴보니 산자락이면 산자락, 계곡이면 계곡마다 초록이 넘쳐난다. 절정기는 지났지만 철쭉꽃 붉은 기운이 잘 어울리고 게다가 봄볕마다 따사롭게 비쳐진다.
다시 바래봉을 향한 걸음을 내딛는다. 임도길의 편한 길이 나타난다. 부지런히 걸어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래봉이고, 왼쪽 방향은 바래봉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하산 길 방향이다. 바래봉에는 군데군데 늘 푸른 구상나무들이 즐비하다.
이제 등산로에서 가장 심한 경사구간인 바래봉 오름길이다. 여기서 250m만 오르면 정상이다.
바래봉 정상 직전 나무계단 길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무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 드디어 바래봉에 올랐다. 바래봉(1천186m)은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습과 닮았다 하여 바래봉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둥그스름하고 순한 산릉인데다 정상 주위는 나무가 없는 초지로 되어 있다.
바래봉은 지리산의 수백 개 봉우리 중 하나다. 산 자체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여 잘 알려지고 있는데 남원 운봉에서 올해 20회째 지리산 바래봉 철쭉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시작한 행사엔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광객이 감소했지만 30만여명 정도가 바래봉철쭉 축제장을 다녀갔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멀리 지리산의 노고단이 보이고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도 희미하게 보인다. 내려가는 방향도 바라본다.
이제 하산길이다. 삼거리로 나가니 아직도 많은 등산객들이 팔랑치쪽에서 건너오고 있다.
삼거리를 지나 임도길을 걷는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내리막길이다. 바닥에 돌을 깔아 정비했는데 지금까지 10km가 넘는 길을 걸어와서 힘이 드는데 돌길을 걸으려고 하니 불편하다.
볕 좋은 오월의 하루, 철쭉꽃 피는 절정기는 지났지만 여기저기서 예쁘게 피어난 꽃들과 함께 영산 지리산의 바래봉을 오르내리느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자연 속에서 많은 등산인들이 자연을 마주하며 그 지혜를 배우고 노래했으니 분명 그 사람들도 분명 꽃만큼 아름다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