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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일월산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등록일 2014-12-12 02:01 게재일 2014-12-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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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서 받는 바다기운… 신비로움 가득 안은 영산
▲ 일출산 정상 풍경, 동해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산세들.
▲ 일출산 정상 풍경, 동해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산세들.

겨울등산이 시작됐다. 아직 경상도 남부 지방엔 한두 차례 추위가 왔을 뿐 눈이 내리지 않아 남쪽 산의 등산은 큰 무리가 없지만 강원도나 서해안지역의 산행을 하려면 겨울등산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산을 다녀보면 초보자들에게는 겨울철이 가장 힘든 시기인데 날씨 변화가 심하고 일몰시간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서둘러 산행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등산은 영양 일월산으로 정했다. 비교적 가까이 있어 가기 쉬운 산이지만 그래서 후순위로 남겨두었던 것인데 이제쯤은 산행을 해야 할 시기가 와서 주말에 결행을 했다.

전국의 산촌이 다 그렇지만 영양은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요, 고추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산이 좋고 사람들 인심이 좋은 곳이며 문향으로도 소문나 있는 문화의 고장이다. 이미 작고했지만 유명한 조지훈 시인, 오일도 시인에다가 현대소설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작가 이문열 등을 포함하면 작은 산촌에서 문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점괘 신통 소문으로 무속인들에 인기… 등산로 촛불자국 등 기도처 느낌도

8부능선 암벽길·9부능선 신갈나무길 거쳐 정상서면 눈앞에 동해바다 장관

자연경관이 빼어난 영양8경 중에서 제1경으로 일월산일출을 꼽는다. 경북 내륙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일월산에서 해마다 열리는 해맞이행사는 대성황이다.

일자봉과 월자봉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맑은 날 제일 높은 일자봉에 서면 동해바다가 훤하게 보여서 산 기운도 얻고 일출도 보는 일거양득으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뭐니 뭐니 해도 일월산이라 하면 무속인들에 인기가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음기가 강하여 여(女)산으로 알려져 있는 일월산에서 그믐날 내림굿을 하면 점괘가 신통해진다는 소문이 난 탓에 무속인들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추앙받는 산이기도 하다.

필자는 차를 타고 중앙고속도로에서 안동으로 빠져나와 청송방면 34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진보면 월전리에서 영양읍내로 들어가 일월산 등산이 시작되는 찰당골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월산 등산코스는 여러 개가 있다. 필자가 오를 찰당골- 방아목- 배틀바위- 일자봉- 월자봉- 황씨부인당- 찰당골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봉화방향에서 오는 등산객들이 주로 찾는 등산코스는 윗대티나 아랫대티에서 출발해 일자봉에 올랐다가 월자봉으로 해서 윗대티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는데 여기엔 영양군이 새로 만들어놓은 산책로인 외씨버선길이 이다.

▲ 그믐날 내림굿을 하면 점괘가 신통해진다는 소문으로 무속인들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추앙받는 영양 일월산. 육지에서 바다 기운을 느끼는 신비감에 새해 일출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 그믐날 내림굿을 하면 점괘가 신통해진다는 소문으로 무속인들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추앙받는 영양 일월산. 육지에서 바다 기운을 느끼는 신비감에 새해 일출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찰당골이나 방아목에서 출발해 일월산 정상에 올랐다가 윗대티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고, 원형으로 크게 한 바퀴 돌아 월자봉에서 일월재, 동화재 산길을 타고서 찰당골로 하산해도 된다.

오전 10시30분경에 산행을 시작한 필자는 당리저수지를 지나 배틀바위로 오른다. 일자봉까지 거리는 4.4km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방아목으로 향한다. 멋진 소나무 길이 나타난다. 소나무 중에서 오래된 소나무에는 군데군데 송진 채취 흔적이 나있다.

단풍이 모두 지고 겨울을 맞이하는 산엔 낙엽잔해들만 쌓여 있어 조심스럽게 능선길을 걷는다. 그렇게 오르기를 50분정도 계속해서 배틀바위에 올랐다.

바로 보이는 일월산 능선길이 멋있게 이어져 있다. 옆에 있는 잘 생긴 소나무들을 보며 잠시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화사 절이 산자락 안에서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 일자봉에 세워진 이문열 작가의 `일월송사`.
▲ 일자봉에 세워진 이문열 작가의 `일월송사`.

다시 산행을 이어 대관봉을 지나 쿵쿵목이로 향한다. 배틀바위에서 30분 정도 올라 쿵쿵목이에 도착했는데, 지명이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쿵쿵목이`는 “땅 속이 빈 것 같이 쿵쿵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등산로 옆길에 돌탑들이 있고, 돌탑을 두고 기도하는 조그만 제단이 있다. 또 그 위에 촛불 흔적이 있는데 일월산을 오르면서 필자는 산 전체가 기도처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곳이 일월산 7~8부 능선이고 암벽구간을 만난다. 조금 더 올라가서 9부능선에 오르면 잎이 떨어진 신갈나무들로 꽉 차져 있다. 일월산 정상이 바로 앞이다 보니 걸음이 빨라진다.

드디어 일월산 정상 일자봉에 올랐다. 잘 꾸며진 전망대 테크에 올라 동해바다 쪽을 조망해본다. 산들이 촘촘히 층계를 이루고 있어 멋진 경관을 느끼게 한다.

일자봉은 특이하다. 두 개의 조각이 원으로 이어져 있고 그 뒷면에는 영양출신 작가인 이문열이 지난 2001년 1월1일에 쓴 일월송사(日月頌辭) 글이 새겨져 있다.

`곤륜의 정기가 해뜨는 곳을 바라 치닫다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으로 흘러 동해바닷가에 우뚝한 영산으로 맺히니 이름하여 일월산이다.….` 그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다.

글에서도 나타나듯이 일월산은 태백산맥의 남쪽 끝에 위치한 해발 1천219m의 고봉이다. 산정은 평평하나 산세가 하늘에 우뚝 솟아 웅장하고 거대하다.

동쪽으로는 동해가 바라보이고 해와 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데 산 정상부에 솟은 두 개의 봉우리 이름이 일자봉, 월자봉(1천170m)이다. 산 지명의 유래는 산이 높아 해와 달이 뜨는 것이 잘 보이는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는 까치집이 있는 풍경.
▲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는 까치집이 있는 풍경.

일자봉에서 휴식 겸 점심식사를 한 후에 정상에서 서서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신비감에 쌓여 산 풍경을 보며 회한에 젖는다.

“신령스런 산이다./ 먹을 게 마땅찮던 춘궁기/ 시장기를 채워준 나물들이/ 일월산에 천지여서/ 이곳 사람들은/ 일월산을 두고/ 은혜의 산이라 부른다.// 신비함으로 다가서는/ 일자봉에 올라/ 동해로 향하노라면/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굽이치는 산마다 멋지니/ 기분 좋은 산행을 하며/ 초겨울 산촌 풍경을 안는다”(자작시 `영양 일월산상에 서다` 전문)

다음 코스는 일월산의 또 하나 명 봉우리인 월자봉이다. 빤히 보여 가까운 거리 같지만 정상에 있는 군사시설을 돌아서 윗대터 방향으로 걸으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초겨울 산행이라서 산을 타고 걸어도 땀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신선한 느낌마저 주니 산행하는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앞으로 12월 중순이 넘어가고 1월이 되면 본격적인 겨울등산은 힘이 들지만 초겨울 지금 시기는 기분 좋은 산행을 이어가는 철이다.

월자봉 밑의 급경사를 빠져 나와서 정상에 올랐다. 1천205m라고 쓰인 정상석이 턱 버티고 서 있다. 여기에 서서 봉화 쪽 청량산 방향도 바라보면서 지난 8월에 올랐던 청량산을 잠시 생각해기도 한다.

월자봉에서 하산코스는 세 군데나 있다. 필자가 내려서는 황씨부인당을 지나 천화사로 해서 내려가는 길과 직진해서 일월재, 동화재를 거쳐 찰랑골 하산 코스, 그리고 큰골로 해서 윗대티로 하산하는 코스다.

필자는 황씨부인당 쪽으로 내려선다. 10분쯤 걸으니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인간의 욕심, 번뇌, 회한을 씻어내는 밤샘 굿으로 유명하다. 황씨부인당에 얽힌 이야기다.

지금부터 약 106여년 전 조선 순조 때 영양군 청기면 당리에 살던 우씨(虞氏)의 부인 평해는 남편과 금실 좋게 살았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해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아홉째 딸이 젖을 뗄 무렵 집을 나가 우씨가 만들어놓은 일월산 삼막에서 자결하였다.

가족들은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고, 며칠 뒤 같은 마을에 사는 이명존이라는 사람에게 현몽돼, 꿈에 나타난 황씨 부인은 자기를 위해 당사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이명존이 황씨 부인의 한을 풀기 위해 그 자리에 당을 지어 주고 `황씨부인당`이라 했다고 한다.

황씨부인당을 내려서서 하산해 천화사 쪽으로 발길을 옮겨 50분 정도 걸어 천화사 입구로 나왔다. 50여년 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천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6교구 고운사의 말사로 영양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중앙에서 스님이 파견되는 사찰이라 알려지고 있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시계를 보니 벌서 오후 3시30분이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아침 10시반경에 등산을 시작한지도 5시간이 지났으니 직접 차를 몰고 귀가하려면 오후 4시에는 출발해야 하므로 절에는 들리지 않고 바로 찰랑골 가는 길을 따라 나서서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을 마쳤다.

이제 귀가할 일만 남았다. 올해 봄에 일월산에서 영양산나물축제를 10년째 했다고 하니 내년 5월경에 여기에 오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때 조지훈 시인의 고향인 주실마을도 한번 찾아보리라. 차에 오르기 직전에 산을 보면서 종이에 적어온 이문열 작가의 `일월송사`를 읊어본다.

“이제 옛 고을은 문향 영양으로 자라 새로운 천년을 마주하고 섰으니 아 아, 일월산이여 그 기상 그 자태 바뀌고 다함이 없으리. 우리 영양과 더불어 길이 우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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