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넘기 힘든 고개마루서 자연의 넓은 마음 배우다
요즘 지방도시에서 시내를 다녀보면 이해되지 못하는 풍경들이 자주 보인다. 평일 오전이나 한낮인데도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사정은 대구나 포항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는 등산객도 있지만 산에 오르는 일과 무관하게 평상 의복을 등산복차림인 경우가 많다. 행사장에서도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시민들에게 등산이 일반화됐다는 의미겠다. 그만큼 등산인구가 늘어났다는 반증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명산이 있는 전국의 국립공원 탐방객수를 따져보면 2003년 2천500만명에서 2013년 4천692만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게 되면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건강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말마다 등산을 떠나는 산악 동호회가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필자도 주말이 가까워지면 독도사랑산악회를 비롯해 필자가 자주 동행하는 화림산악회, 영남일보 CEO아카데미산우회나 아니면 대구의 등산전문업체인 드림산악회, KJ산악회 등에 전화를 해서 필자가 가보지 못한 산이 계획돼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문경새재·사적지 등 자연경관 탁월, 유서깊은 관광 명소로 자리능선 벼랑으로 이어지는 멋진 암반들 자연이 빚어낸 걸작 같아
경북 문경에 있는 주흘산 등산을 하고 싶던 참에 마침 드림산악회에서 그곳으로 간다기에 동행했다.사불산(2013년 7월12일자 경북매일 게재), 희양산(2014년 5월16일자 경북매일 게재)은 이미 올랐으니, 문경 관내에 있는 산은 이번이 세번째가 된다.
대구시내의 지정된 탑승 장소에서 등산객을 태운 드림산악회 차량은 곧장 고속도로를 달려 오전 10시 30분경에 문경 새재 주차장에 도착했고, 우리 일행들은 내려서 등산 준비운동을 했다.
문경은 새재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이곳 가까이 주흘산이 있어 등산과 연계한 관광객들이 주말마다 넘치고 있으니 자연적으로 복 받은 곳이다. 게다가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문경새재는 문경관문과 주흘산·조령산 일대의 사적지 및 자연경관을 포함해 국립공원 못지 않게 잘 정비돼 있는 곳이다.
주흘산 등산은 두 코스로 나누어진다. 1코스는 제1관문에서 출발해 여궁폭포, 혜국사를 지나 주흘산에 올랐다가 충북도경계에 있는 부봉을 거쳐 동문과 북문을 통해 제3관문으로 내려서는 길인데 17.8km 거리에 약 8시간 40분이 소요된다.
2코스는 제1관문에서 여궁폭초, 혜국사를 지나 주흘산까지 올랐다가 조곡골로 해서 제1관문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총 길이 13km로 5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산악인이 아니고서는 대체적으로 2코스를 따라 트레이킹 겸 등산을 하게 된다. 이번 드림산악회 등산계획도 2코스를 따라 산행하게 되어 있으니 오전 10시 30분경에 주차장에 도착해서 등산 일정에 오르면 한 바퀴 돌아 오후 4시30분경에 다시 주차장에 집결하면 끝이 난다.
산행 출발지가 문경새재 주차장이고 인근에 공원형태로 잘 조성된데다가 박물관 등이 있어 마치 고궁 같은 느낌이 든다. 편한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조령 1관문 앞에 선다.
옛적 과거시험 길에 오르던 영남의 젊은 선비들이 조령을 넘을 때 통과하던 관문이 아니던가. 지금은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앞산, 뒷산의 자연풍경은 같을 것이나 이 길을 지나 한양으로 가고 또 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었겠는가.
따지고 보면 굳이 문경새재, 조령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 영남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려면 조령과 죽령 그리고 추풍령 세 갈래 길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데, 특히 문경의 옛 지명이`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희(聞喜)여서 과거 길에 오르는 선비들이 비록 조령길이 먼 길이긴 하지만 많은 선비들이 이 길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령 1관문을 지난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인 여궁폭포까지는 800m 거리다. 주흘산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멀리 보이는 주흘산들을 바라보거나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폭포소리를 들으며, 또 인근의 경치에 만끽하다보면 어느새 여궁폭포 앞에 다다른다.
계곡 옆 산길을 따라 오르니 눈앞에 절벽이 막아서며 약 20m 높이의 바위에서 좁게 파인 홈을 통해 수정같이 맑은 물이 좁고 길게 쏟아져 내린다. 밑에서 폭포를 올려다보면 그 생긴 모양이 여인의 하반신과 흡사하다고 하여 여궁폭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주변의 기암절벽의 풍치가 멋진 노송들과 잘 어우려 있는 이 폭포는 여심폭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목욕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폭포를 보면서 다시 산행을 시작해 골짜기로 들어가 혜국사에 도착했다.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6년) 보조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범흥사라고 하였으나 고려 말 홍건적 난이 일어났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으로 내려와 나라님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혜국사(惠國寺)로 개칭하였다 한다.
우리 일행들은 대궐터를 지나고 다시 산행길을 이어간다. 제법 경사진 된비알을 거쳐서 주봉을 향해 오르는데 수많은 나무계단의 오름길에서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위를 올려다보니 주봉이 희끗희끗한 잔설 사이에서 위엄을 갖추고 조용히 서 있다.
능선 한 쪽이 벼랑으로 이어지는 그 길을 걸으니 등산로에서 만나는 풍경 속에서 특히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멋진 암반들은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들이 아닌가. 주흘산 주봉을 바로 앞에 두고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주봉 밑 전망대에 멈춰 섰다. 자연 전망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천애의 단애 위로 융기된 듯이 일어나 있는 바위, 고깔봉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정말 빼어나다. 그 구경 하나로 주흘산에 등산 온 보람을 느껴본다. 잠시 넋을 잃고 비경을 보다가 정신을 차려 주흘산 주봉(1075m)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 다 됐는데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이 흘렀다.
주흘산은 문경 진산으로 조선시대 조정에서 매년 진산으로 받드는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산은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부봉 남동쪽에 웅장한 기세로 솟아올라 있고, 남쪽 사면이 수십 길 벼랑을 이루고 있어 이곳사람들은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주봉을 보고나서 우리 일행들은 다시 영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주흘산은 다른 산과 달리 주봉(主峯)이 상봉이 아닌 것이 특색이다. 주흘산에서 가장 높은 상봉은 주봉에서 북쪽으로 1.2㎞쯤 떨어져 있는 영봉(1106m)이다. 주흘산 주봉에서 하산해 능선길을 부지런히 걸어서 주흘산 영봉에 도착했다. 영봉은 주봉보다 31m가 더 높지만 조망은 주봉에 비해 떨어진다. 또 문경시가지에서 보면 주흘산 주봉은 보이지만 영봉이 뒤로 숨어 있어 주봉이 문경 진산의 상봉처럼 인식돼 왔다.
일행들이 영봉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쉬는 사이에 필자는 지나온 산행길을 되돌아보고 또 하산할 길을 번갈아보면서 주흘산의 풍취를 가슴에 안으며 생각에 잠긴다.
“영남제1관문, 이 길은/ 옛 선비들이 꿈을 안고/ 한양을 오가던 문경새재길./ 오늘은 그 꿈의 발걸음이/ 주흘산으로 펼쳐지니/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그 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정작 오르고 싶은 이 산을/ 늦은 인연으로 찾아와보니/ 아직은 바람기가 차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두머리 의연한 산`/ 주흘산 영봉을 넘으며/ 자연의 넓은 마음을 배운다.//”(자작시 `주흘산에 오르며` 전문)
영봉을 내려서서 우리 일행은 꽃밭서덜, 조곡골로 해서 제2관문(조곡관)으로 갈 계획인데, 등산객들 가운데 일부는 백두대간이 있는 부봉을 거쳐 제3관문쪽으로 가는 이들이 보인다. 산 능선을 타고 계곡에 내려서서 곧장 걷는다. 걷기 편한 길인데, 특이한 점은 등산로 오른편 50여m 위쪽에서부터 계곡까지 돌탑들이 이어져 등산객들의 시선을 끈다.
하나같이 공들인 모습인데 눅 그 많은 돌탑을 만들었을까 그 정성이 놀랍다. 빼어나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하나하나 공들여 쌓았을 사람들의 진정성이 오롯이 느껴졌다.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돌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누가 언제부터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돌탑을 쌓았는지는 알 수는 없다. 그 정성담긴 돌탑들을 보며 능선길을 30분쯤 걸으니 산죽밭과 합수지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산행 길은 넓어진다.
꽃밭서덜부터는 산길을 벗어난 평탄한 길이다. 조금 더 가면 제2관문(조곡관)이 나타나고, 거기서 제1관문 주흘관까지는 편안한 트레이닝 코스니 사실상 주흘산 산행은 끝이 난 셈이다.
산행을 이어 제2관문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이 됐다. 일행들은 출발지에서 11.7km를 걸어왔다. 제2관문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했으며,`중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1907년 훼손된 것을 1978년에 복원하였으며, 복원한 후에 조곡관으로 명칭을 개칭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문경새재, 우리 일행들은 그 길을 걸어내려오면서 옛날 선비들이나 괴나리봇짐을 메고 청운의 꿈을 품은 채 이 길을 드나들던 모습을 그렸다.
주흘산과 그 일대 문경새재는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함께 전설 등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국 등산객들이나 일반 국민들이 가보고 싶은 곳 1위를 차지하는 유명명소로 자리 잡았으니 그 멋진 주흘산 등산은 필자에게서 의미가 더욱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