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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등록일 2015-01-23 02:01 게재일 2015-01-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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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길 데 없는` 호남 진산… 눈 덮이니 여기가 바로 仙界
▲ 육당 최남선 선생은 무등산을 두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 무등산에 비길 명승이 없다”고 했다. 명산으로 빛고을 광주를 안는 무등의 설경은 가히 절경이다.
▲ 육당 최남선 선생은 무등산을 두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 무등산에 비길 명승이 없다”고 했다. 명산으로 빛고을 광주를 안는 무등의 설경은 가히 절경이다.

새해가 되어도 생각보다는 날씨가 따뜻한 편이다. 지난해 1월 중순 이때에 추위가 찾아와 강원도 지방으로 등산을 갔을 때 눈보라를 맞으며 올라가며 떨고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호남 해안 지방에 큰 눈이 내려 그간에 대설주의보도 발령됐다가 해제를 반복했다. 그래서 등산을 하며 내장산, 월출산, 무등산 등의 눈꽃을 구경삼아 등산가는 팀들이 늘어났다.

이번에는 광주 무등산을 단독 등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름이나 가을 풍경도 좋지만 눈이 내리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등산 설경을 보려고 벼르던 참이었다.

산악회와 동행하는 산행은 편한 느낌이 들지만 홀로 등산은 사전에 준비할 것이 많다. 첫 번째는 산행지의 날씨와 통제구역이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인데 다행히 무등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어 공원관리사무소(062-227-1187)에서 확인하기가 쉽다.

천연기념물 입석대·서석대·주상절리대 바위군·눈꽃터널 등 절경 줄이어

최고봉 천왕봉엔 군부대 주둔, 1년에 한 두번 개방… 100만명 도시 품어

일요일 아침, 필자는 미리 준비해둔 무등산 등산 정보와 장비를 갖추고서 동대구 터미널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새벽 5시40분부터 밤 10시35분까지 40분 간격으로 차편이 많이 있는 편인데, 요금은 고속버스가 1만3천500원이다.

버스에 승차하고서는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늘 오를 산을 생각하며, 또 미리 확인해둔 정보 자료를 보다가 서정주 시인의 `무등을 바라보며`라는 시도 끄집어내 읽어본다.

서정주 시인이 6·25직후에 광주에 살 때 그 당시 끼니를 굶는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서정주 시인의 시 `무등을 바라보며` 일부)

모르긴 하되, 이 시에서는 사람들이 살다가 맞는 어려운 시기에도,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쉬어갈 수 있는 산과 같은 여유와 인내가 배어있는 시다. 무등산이 의연한 자태로 숲과 생명을 안아 기르는 지혜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차는 광주 시내로 접어들어 터미널에 도착했고 무등산에 오르는 입구인 증심사 가는 버스(09번 버스)가 있지만 필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갔다. 증심사 입구에 도착하니 오전 10시30분이 조금 넘었다. 미리 봐둔 자료에 의거해 오늘 코스는 중머리재, 장불재를 넘어 입석대, 서석대에 올랐다가 중봉으로 하산해 증심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산행할 계획이다. 소요시간은 대략 5시간 정도인데, 여유 있는 시간으로 계산해 증심사에는 늦어도 오후 4시30분 경에는 도착할 생각을 해두었다.

▲ 백설 쌓인 눈밭을 걷는 겨울산행은 멋스럽기까지 하다.
▲ 백설 쌓인 눈밭을 걷는 겨울산행은 멋스럽기까지 하다.

무등을 바라보면서 산행을 시작했다. 마침 광주에서 여러 산악팀이 산행하는 관계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일행들 속에 끼어 중머리재로 향한다.

광주지방엔 눈이 내리면 무등산에서는 오랫동안 눈이 덮여있어 광주시민뿐만 아니라 호남과 경상도, 심지어 서울에서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비단 설경이 빼어나서 뿐만 아니라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고 위험구간이 없기 때문에 무등산을 선호하게 된다.

무등산을 오르는 여러 팀들과 섞이어 눈밭을 지나 KBS방송국과 KT 중계탑이 있는 장불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낮 12시가 막 지났는데, 증심사를 출발한지 1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중머리재부터 눈꽃터널로 이루어져 있는 숲 사이 등산길은 주변 설경을 구경할 수 있는 멋진 코스다. 그렇지만 무등산 설경의 진짜배기는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거쳐 서석대까지 구간이다.

필자는 장불재에 서서 정상 아래에서 펼쳐지는 무등산자락을 보면서 멋진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함께 동행하는 일행들도 그룹으로 단체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장불재는 화순군 동북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광주로 가기 위한 지름길로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빨리 갈 수 있는 고개이니만큼 예로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올려다보니 바로 앞에 바위 군들의 주상절리 모습들이 기둥 모양으로 서서 멋진 위용을 자랑한다. 여기에서 왼편으로 가면 서석대, 오른쪽으로 가면 입석대가 나타나는데 입석대까지는 400m 거리다. 입석대로 오르는 코스는 그리 힘들지 않고 평탄한데 일부 등산로에는 등산객들의 안전 산행을 위해 목재 데크가 설치돼 있다. 입석대에 올랐다. 입석대는 서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용암이 지표부근에서 냉각되면서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화산활동의 산물인데,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돌기둥, 돌병풍 등은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매우 크다.

▲ 무등산 주상절리가 멋진 입석대의 모습.
▲ 무등산 주상절리가 멋진 입석대의 모습.

입석대의 장관을 보고나니 벌써 점심때다. 준비해온 간단한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서 잠시 쉬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다.

다시 산행을 이어 서석대로 향한다. 서석대는 돌무더기의 모양이 다를 뿐 입석대와 마찬가지로 멋진 모습인데, 돌무더기 위에 피어오른 설화의 아름다움이 무등산의 자랑이기도 하다.

증심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 쯤 걸려 서석대에 도착했다. 표지석 앞에서 무등산 정상과 저 아래 펼쳐지는 광주시가지를 본다.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1천187m)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상시 개방이 안 되는 관계로 등산객들에겐 서석대가 실제적인 무등산 정상이다.

1년에 한두 번 정상이 개방되는 날은 등산객들이 서석대 정상부근 표지석 부근 군부대 경계 철조망을 통과해 인왕봉, 지왕봉을 경유하여 군부대 정문으로 나오는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무등산은 광주의 자랑이요, 상징이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이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를 품고 있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광주 무등산이 바로 그렇다.

무등산은 백제 시대 이전까지는 `무당산`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 때는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표기됐고, 고려 때는 `서석산`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불러졌다. `고려사`에 나오는 기록으로는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큰 고을이다. 이 산에 성을 쌓았더니 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며 즐거이 노래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 무등산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서석대. 윗쪽에 천왕봉 모습이 보인다.
▲ 무등산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서석대. 윗쪽에 천왕봉 모습이 보인다.

이와 같이 무등이라 불리어짐은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무유등등(無有等等)`이라는 불교용어를 빌려 이름지었다는 것인데, 이곳 산봉우리 이름으로 반야봉, 원효봉, 의상봉, 법화대 등 불교적 명칭이 많은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라 한다.

광주시민들은 무등산을 어머니산으로 부르며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고 하는데, 아침에 광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읽어본 서정주 시인의 `무등을 바라보며`라는 이미지가 새롭게 필자의 마음에 울리고 있어 잠시 이곳 풍광을 보면서 시심에 잠겨본다.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지만/ 흙길이 완만해/ 막상 올라보니 부드럽구나./ 정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만나는 기암괴석들마다/ 빼어난 경치를 더하는구나.// 지나온 아름다운 길/ 숲속의 옛 이야기들이/ 계곡마다 가득 찼구나./ 서석대에 올라서/ 빛고을을 바라보며/무등산 연가를 띄우노니/ 영원을 울려날 님의 노래여!”(자작시 `무등산 연가` 전문)

서석대는 무등산 경치의 절정이다.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입석대와 장불재가 그림처럼 있고, 그 위로는 천왕봉이 삿갓을 쓴 채로 있다. 저 멀리 바라보면 광주 시가지가 밝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정결한 풍경으로 달리 빛고을이 아니다.

육당 최남선은 무등산을 두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 여기(무등산을 지칭)에 비길 명승이 없으며, 특히 서석대는 마치 해금강의 한 쪽을 산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고 감탄했으니 무등산과 서석대의 풍경이 빼어남인데 눈마저 내려 백설로 있으니 오죽하랴.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 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서석대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무등산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이젠 하산하는 일만 남았는데, 중봉에서 동화사터, 토끼등을 거쳐 증심사 입구로 내려서는 길이 일반적이다. 특히 오늘 같은 홀로 등산에서 중요한 점은 목적지를 시간에 맞춰 잘 지키는 일이다.

하산 코스에 있는 중봉에 들렸다가 산을 내려서서 부지런히 걸어 증심사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4시30분 경이 됐다. 꼭 오고 싶었던 무등산을 새해 들어 등산했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오늘 무등산 등산을 하면서 산상과 기슭에서 펼쳐지는 눈꽃들의 향연을 보았다. 자연이 만들어준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나고 느낀 것은 필자의 복덩어리를 만난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다.

때로는 신비로움에 젖어 또 많은 시간을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걸었던 무등산 등산길, 신비롭고 화려한 무등산의 겨울 설경은 두고두고 내 인생에서 생각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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