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으로 빛나는 주목숲, 새하얀 천국을 이루다
을미년 새해 2015년이 환하게 밝았다. 그 기운을 받아 올해에는 경북매일신문 독자들이 힘든 일 없이 만사형통이 됐으면 하는 기원이다.
아울러 모든 이웃들의 평안과 함께 가족, 친지들의 새해 건승을 빌고 매 주말 산행하는 필자 또한 무탈하기를 경건하게 빌어본다.
지난 한해에도 거의 한 주일도 쉬지 않고 필자는 주말 산행을 다녀왔다. 본지에 실린 필자의 산행기를 모아 새해 달력을 1부 만들어 사무실에 놓아두고 보고 있으려니 산행을 다녀온 곳마다 겪었던 기억들이 엊그제 일인 양 한꺼번에 몰려든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반복되는 가운데 계절을 두루 거치는 등산하는 기쁨이 내게는 크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범벅이 되어 오르는 산행이나 매서운 한파를 뚫고 정상에 올라가는 동안 칼바람을 맞는 심경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가을날 더없이 높아져가는 맑은 하늘을 보면서 단풍이 울긋불긋 든 산을 오르내리는 기분은 상쾌하려니와 봄 등산을 하며 산과 들에 피어나는 새싹과 꽃들을 대하면 자연의 경외감을 저절로 느끼게 되니 하나같이 즐겁고 마음 흡족했다.
설천봉~향천봉 눈꽃터널·전국서 네번째로 높은 명산으로 이름나새해 아침 눈내린 풍경 하나하나 자연에 조화, 신비감으로 눈부셔
올해도 등산을 이어가면서 전국의 좋은 산과 산행정보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니 사명감에 불탄다. 그래서 2015년 첫 등산은 전북 무주의 덕유산 이야기로 산행기를 엮어본다. 사실 본격 등산을 한 2011년 이후에도 필자는 덕유산에는 서너 차례나 다녀왔다.
그때는 산행이라기 보다는 무주 리조트에 놀러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곤돌라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새해 들어 첫 등산인 만큼 일출을 보는 새벽등산보다는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무주 덕유산을 정상 등산하기로 마음먹고 새해 새벽에 무주로 향했다. 지금까지 매년 일출 장면을 직접 보아온 터라 아쉬운 감도 있지만 지난해에는 일출 명소라고 하는 제주 성산 일출봉에 올라 해돋이를 보았고 그 전에도 울산 간절곶 해맞이축제, 영덕해맞이 축제, 포항 호미곶 축제 등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래서 올해는 새해 첫날에 산을 타면서 마음 들뜸과 흥분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가 주는 모습을 마음껏 탐닉하며 차분하게 보내자는 뜻에서 무주 덕유산을 선택한 것이다.
차가 무주 지역을 접어들어 설천동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무주 리조트로 향하는 길에는 벌써 덕유산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해돋이를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첫날 하루를 산에서 보내며 자연의 은혜를 마음껏 되새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새해의 아침 해가 무주 리조트 설원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고, 산행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날따라 더 밝은 것은 아무래도 오늘이 새해의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덕유산 일출 행사 관계로 1월 1일 설천봉으로 올라가는 곤돌라는 새벽 6시부터 운행되고 있고, 일출을 보러간 많은 인파들이 벌써 다녀갔으니 곤돌라를 탑승하기가 쉬웠다.
곤돌라를 타고서 15분 만에 정상, 향적봉 바로 아래인 설천봉까지 쉽게 오르내리니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무주 리조트에 휴식 겸 관광하러오는 사람들로 넘친다.
지난해에도 3만여명이 무주 리조트와 덕유산 일출 여행을 다녀갔고, 올해에도 그 정도 인파가 몰렸다고 하니 설산 해맞이 명소로서 덕유산 일출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곤돌라가 설천봉에 도착했고, 지금부터 60년 만에 다가온 청양(靑羊)의 해 새날 아침에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은혜를 마음껏 감사할 시간을 가질 요량이니 필자는 감개무량하다.
설산 위에 서서 필자는 떠오른 아침 해를 보고, 다시한번 경건한 마음을 가져본다. 이웃들의 근심과 걱정이 줄어들고 행복한 사회가 되게 해주십사하는 기도다.
주변을 살피고 난 뒤에 눈꽃 터널을 지나면서 자연의 외경에 감탄하며, 마음속으로 올 한해 등산이 순조롭기를 빌면서 산행을 이어나간다.
덕유산 설경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봉인 향적봉에 오르는 길 사이가 눈꽃 터널로 유명하다.
풍경 하나하나가 자연의 조화 속에서 신비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감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자도 겨울에 들어 여러번 이 길을 다녔지만 여기에 와서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설경에 마음이 미어지는 상태니 혼자 보는 것마저 송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15분 동안 빼어난 경치의 길을 걸어 향적봉에 도착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다보니 산행 길 정비가 잘 되어 있는데, 이 눈꽃 터널 구간 중에서도 사진촬영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함께 온 사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느라 장사진을 치기도 한다.
덕유산은 소백산에서 남쪽에 자리한 지리산을 이어주는 중간에 위치하는 산이다. 최고봉인 향적봉(1,614m)은 남한에서는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명산이다.
옛날에는 광려산 또는 여산 등으로 불러졌으나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으로 나누어진다.
오늘 등산코스에서는 빠져 있지만 동쪽 아래 지벙에 신라 때의 천년고찰 백련사가 있고, 그 일대인 구천동 계곡은 전국에서도 소문난 구천동33경이 있어 가볼만 한 곳으로 소개한다.
드디어 향적봉에 올랐다. 정상에서 맞는 기분은 오늘이 새해 첫날이라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겨울 햇살을 맞으며 비쳐나는 모든 만상들이 은혜로 가득해 보인다.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 경건함이 와락 다가와 묵상의 기도를 올릴 뿐이다.
“눈부시다./ 새해 첫날의 아침 해가/ 덕유산 하늘 위에 떠서/ 온천지를 환하게 비춘다./ 산 능선 나뭇가지들도/ 하얗게 눈꽃을 달고서/ 새날 아침을 축복하고 있다.// `겨울의 낭만은 눈꽃 구경`이라며/ 몇/번 올라본 덕유산이지만/ 오늘따라 한껏 신선하다./ 마음의 때 씻어 내면서/ 향적봉 정상에 올라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은 끝이 없다.”(자작시 `덕유산의 새해아침` 전문)
설원을 등산하는 기분은 새롭다. 그것도 새해 첫날에 보이는 것마다 신선감이 묻어나는 자연 속에서 걷는 기분은 축복받은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을 가슴에 담고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와서 중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산하면서 보는 모습은 거의가 비슷하다. 눈꽃들이 피어난 산 능성이 숲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새해 첫날 등산객들과 어울려 무리를 지어 중봉을 지나 송계삼거리까지 내려왔다. 같은 코스로 내려오면서 백암봉을 지나서 동엽령에 도착했는데, 많은 등산객이 지나갔는지 길은 여전히 미끄러운데 어떤 등산객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겨울등산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상책이다. 설산을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눈길에 대비해 아이젠, 등산스틱, 여벌의 양말과 장갑 등 준비는 필수인 것이다.
안전 코스를 선택해 칠연폭포 삼거리 길을 지나 오후 4시경 필자는 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눈이 내려 때로는 미끄럽고 험한 길을 안전하게 하산했으니 안도감이 든다.
하산하면서 산 전체가 백설로 덮여져 있어 앉아서 쉴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 멋진 자연풍광을 벗 삼아 목적지를 향해 줄곧 행보했으니 생각보다는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덕유산은 봄, 여름 가을 산도 유명하지만 특히 겨울 스포츠의 대명사 스키를 타러오는 스키어들로 무주리조트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에 더해 눈에 덮인 주목과 구상나무에 피어나는 눈꽃들이 또한 장관을 이루는 모습들이 덕유산의 자랑이기도 하다.
덕유산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겨울산행이 멋지다.
필자가 본지에 산행기를 연재하는 동안 몇 번 인용한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쓰너의 글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인간이 살지 않는 지구 위의 별천지, 그러나 이 오지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는 글이다.
필자가 눈 덮인 설원, 새해 아침 해의 은혜가 가득한 무주 덕유산을 산행하면서 감동하며 느낀 건 역시 자연에 대해 가슴 깊숙이에서 우러나는 찬사다.
그래서 라인홀트 메쓰너의 글을 살짝 바꾸어 새해 첫날 덕유산 등산 글 끄트머리에서 적고 싶다.
“이 설원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마다 만나는 설경의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