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위에 또 하나의 높은 산
기암절벽이 아담하게 빚어진 얼마 전 모임에 갔다가 지면이 있는 사람이 내게 다가와 “군위 아미산에 가봤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마도 필자가 정기적으로 등산을 즐기고, 매주 경북매일신문에 산행기를 게재하는 것을 알고서는 물은 것 같은데,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랬더니 아미산이 높지도 낮지도 않고, 또 험하지도 평이하지도 않으면서 한 번쯤 올라볼만한 산이라고 등산을 권한다.
덧붙여 삼국유사의 전설이 있는 군위를 자랑했는데, 아무래도 그분 고향이 그쪽 지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위는 대구에서 가까운 곳으로 승용차로 한 시간만 달리면 다다를 수 있는 곳이건만, 바삐 살다보니 역사와 신비감이 흐르는 삼국유사의 고장을 찾아보지도 못했다. 지인의 말을 듣고 기회가 되면 군위에 등산가보기로 마음먹고 있던 차에 기회가 주어졌다. 공교롭게도 영남CEO아카데미 산우회에서 이번 가는 코스가 군위 아미산이다. 산우회 임원들이 바뀌고 나서 첫 등산지로 가까운 아미산으로 정했으니 따라가기로 했다.
역사·신비감 흐르는 산국유사 고장 뜻깊은 산행촛대봉 등 기암절벽 어우러져 `작은 설악` 애칭
사전에 산행 정보를 알아보고, 군위에 관한 자료도 챙겨보았다. 군위는 필자가 사는 인근지역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상세히는 알 수 없었는데, 자료를 보고서, 또 전에 지인이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일러준 게 생각났다.
아미산의 이름 유래에 대해선 아래에서 적겠지만, 중국 사천성에도 아미산이 있다. 이 아미산은 중국의 4대 불교 성산으로 유명한 산이다. 국내에는 이곳 군위 이외에도 강원도 홍천, 충남 보령, 전남 순천에 아미산이 있다.
군위 아미산 인근의 인각사 절에서 보조국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했는데, 그런 인연 등으로 봐서 다른 지역의 아미산도 불교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아미산 등산을 생각하니 그렇잖아도 작년에 군위 고로면 일연공원 산책로에 삼국유사 향가비가 세워졌다는 언론보도가 생각이 나서 호기심에서 향가비부터 먼저 살펴보았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한 분이다. 그가 저술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고조선과 신라, 백제, 고구려 등 삼국시대의 여러 가지 귀중한 자료를 담고 있는데, 전래되는 향가 25수 가운데 14수가 삼국유사에 들어있으니 고문학적 가치도 더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담긴 향가 14수 가운데, 필자는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安民歌)를 읽어보고서 이것이 국민을 편하게 해주는 비결이구나 생각했다. 그 글에 나오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해야 나라 안이 태평해 질 것이라는 내용에 수긍이 간다.
그렇게 되어 삼국유사의 고장인 군위의 아미산으로 등산가게 됐고, 주말 아침에 약속한 장소에 가니 지인들이 몇몇 나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차가 도착했다. 차를 타고 다음 코스에서 다른 회원들을 태운 뒤 이번 산행지인 군위군 고로면으로 향했다.
11시 반경이 조금 지나 아미산이 보이는 큰작사골삼거리 주차장에 도착했고, 먼저 영남CEO아카데미산우회 회원들이 시산제를 올렸다. 지난 2월 영남CEO아카데미산우회 총회에서 제4대 김이진 회장이 선출된 후 첫 등산인지라 전망이 좋은 양지쪽을 골라 시산제를 준비한다.
그 사이에 필자는 주변의 산들을 대강 훑어보니 아미산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입소문대로 산봉이 특이하게 생겼다. 아미산은 암릉 타는 코스도 있어 `작은 설악`으로 불리고 있다.
산우회 간부들과 회원들이 시산제를 올리는 동안 곁에서 지켜보다가 의식이 끝나자마자 필자는 일행을 뒤로 두고 먼저 산에 올랐다.
아미산 등산코스로는 세 개의 코스로 나누어진다. 제1코스는 아미산 주차장에서 무시봉을 지나 아미산에 올랐다가 장곡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로, 8.3km 거리에 6시간이 소요된다.
필자는 산우회가 시산제를 지낸 큰작사골주차장에서 절골삼거리, 무시봉을 지나 아미산 정상에 올랐다가 전망바위를 거쳐 병풍암삼거리에서 아미산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택했다.
시산제가 끝난 시간이 11시 50분경이어서 아미산에 올랐다가 주차장으로 내려오려면 바쁜 걸음을 해야 할 판이다. 등산 거리는 7km나 되고 빨리 다녀오면 3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필자는 서둘러 일행보다 먼저 산행을 시작했다. 작사골삼거리에서 절곡삼거리로 가는 길은 편안한 숲길이다. 우리 일행말고 등산 온 팀들이 저 앞에 가는 것이 보인다. 가기 편한 길이어서 걸음을 빨리해 그들 앞을 지나 계속 행보를 한다.
언덕길을 넘고 절골삼거리를 지나니 등산로 길가 평평한 길에 벤치가 만들어져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는 모습이 보이다. 출발점에서 1.1km 정도 걸어가니 무시봉이 저만치에 나타난다.
무시봉의 높이는 667.4m다. 봉우리 위에는 육산의 흙이고 돌무더기가 있는데 중앙에 무시봉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무시봉 표지석을 사진 찍고서 지나서 조금 가니 소나무 숲 사이로 아미산 모습이 가까이 보인다.
무시봉에서 아미산까지는 1km 거리다. 아미산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하려다 너무 늦을 것 같아 무시봉을 내려서서 숲길 가에 자리잡고 준비해온 음식으로 간단히 먹고 잠시 쉰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아미산 바로 밑 급경사 언덕길을 올라선다. 드디어 아미산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서보니 멀리에서 구비구비 산줄기들이 이어져 있다. 숲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니 전망은 그리 좋지 않은데, 멀리 보현산과 면봉산이 보인다.
보현산이 있는 그 너머가 내게는 항상 그리운 동해바다이다. 산위에 올라 멀리 산들을 바라보고 그 너머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동해바다를 생각하니 푸른 바다에서 너울거리는 파도소리가 귓가에까지 들려오는듯하다.
아미산의 유래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높은 위에 또 하나의 높은 산이 있다`는 의미에서 아미(峨嵋)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 아래 마을인 양지리마을에서 보면 이 산이 애기동자승의 모습을 띄어 앵기랑바위라 불러져왔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다른데, 석산리 마을에서 보면 코끼리의 모습이고, 학암리 마을에서 보면 큰 바위로 왕암바위로 통칭해왔다.
아미산 정상에서는 뛰어나지 않지만 아미산 주차장이 있는 초입에 우뚝 솟은 촛대봉과 3봉 앵기랑바위는 암반으로 형성돼 있는데다가 풍경마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봉이다. 우리 일행들은 큰 작사골 주차장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등산을 시작한 관계로 촛대바위에는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니 역시 빼어난 모습이 작은 설악이라 할만하다.
정상에 서서 가까이, 멀리 있는 산들을 보며 잠시 풍경을 즐기다가 봄빛에 흠씬 취한다. 호시절에 날씨마저 화창한데 멋진 자연경관을 마음에 담고 있으려니 기분마저 흐뭇하다.
아미산을 내려서서 300m 정도 내려서니 발미곡삼거리다. 직진하면 방가산을 지나 장곡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전망바위로 해서 아미산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하산길에서 전망바위를 타고 내려와 전망대에 섰다. 전망대에서 봄이 익는 자연 풍경에 젖어들어 아미산을 올라서면서부터 생각나는 글을 다시금 정리해 읊어본다.
`아미산/ 아름다운 이름처럼/ 아담한 산이다./ 작은 공룡이라고도 하고/ 작은 설악이라 불리는데/ 그만큼 산이/ 볼품이 있다는 게다.// 봄꽃이/ 다투어 피기 시작하던 날/ 아미산을 오른다./ 하늘을 나는 구름조차/ 가벼운 깃털 같아 보이는 오늘은/ 산이 멋있어 그런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자작시 『아미산을 등산하다』 전문)
아미산 정상에서 내려선다. 조금 내려서니 등산로 양옆으로 소나무들이 빼곡하고 그늘진 곳에서는 낙엽이 수북 쌓여있다. 한겨울이 아니라 미끄러울 리 없어 편하게 낙엽을 밟고 걷는다.
낙엽을 밟고 어느 정도 내려서니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조심조심 내려서면서 병풍암에 도착해 들러보고서는 서둘러 하산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절골삼거리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여기서 아미산 주차장까지는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대곡지를 지나가니 저만치에 이번 등산의 종점, 아미산 주차장이 보이고 벌써 일행들 몇 명이 서성이는 모습들이 보인다.
마침내 주차장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출발한지 3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는데 시간상으로 보나 거리상으로 보나 힘든 코스의 산행은 아니었다.
오늘 대구에서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산, 아미산 등산은 즐거웠다. 설악산의 용아장성의 일부를 옮겨놓은 것 같은 뽀족한 암봉은 가히 `미니 설악산`이라 해도 좋을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