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꽃이 `눈물처럼 후두둑`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미당 서정주 시인 낳은 고장산봉 위용 넘치고 빼어난 경관
`호남의 내금강` 별호 얻어
백제때 창건 고찰 선운사
3천여그루 동백나무숲 `장관`
높지않은 산 전국 등산객에 인기
지난주 필자는 고창 선운산을 다녀왔다. 산행하면서도 좋은 풍경들이 흐린 날씨에 가리어 자연의 풍치를 제대로 볼 수 없었으나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몇 안 되는 산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다시 와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선운산을 두고 도솔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산행 이야기에 곁들어 이 지역의 특색을 적어본다. 지역 주민들 혹은 고창을 아는 사람들은 `고창`의 상징성을 말할 때에 선운산 복분자 술과 풍산장어, 선운사의 동백을 떠올린다. 또 한국시단의 대표적 시인인 미당 선생을 자랑한다.
복분자술이 유명하고, 함께 들면 더욱 일품인 풍산장어는 일반화되어 고창의 특산품으로 전국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고창 출신인 미당 서정주 시인은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그의 시 `국화 옆에서`가 워낙 유명해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또 하나 고창을 대표하는 것은 선운사이다. 이 지방에서는 선운사와 관련이 깊은 `선운산 보은염`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보은염은 은혜에 갚는 소금을 말한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 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한 이후 사찰 인근에서 헐벗고 끼니를 굶는 백성들이 많아 검단 선사께서 그 사람들을 교화하고 소금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생계를 유지하게 했다. 그 이후 생활 터전을 잡은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선사의 이름을 따서 검단리라 부르고 검단 선사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대를 이어 지금까지 1500여 년 동안 선운사 부처님께 소금공양을 올리고 있는데, 그 소금 이름이 `선운사 보은염`인 것이다.
선운산 자락에 있는 선운사는 조용한 사찰이지만 워낙 널리 알려진 까닭으로 고찰을 감싸고 있는 선운산이 덩달아 인기가 높은 산이다. 산림청이 정한 100대 명산에 포함되는 이 산은 100대 명산 중에서도 가장 낮은 산이지만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선운산이 전북 고창 땅에 있으니 대구에서 고창으로 가려면 한창 걸린다. 다행이 잘 닦여진 고속도로 덕분에 쉽게 갈 수 있는데, 일요일 새벽에 출발한 차는 88고속도로를 달린다. 담양과 백양사를 지나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차를 타고 오면서 긴 시간을 필자는 서해안의 봄 풍경과 유명하다는 선운사를 보는 기대에 부풀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또한 송창식이 부른 `선운사`라는 노래도 있어 그 가사를 음미하면서 가는 길이라 거리에 비해 지겹지는 않았는데, 도착하면 선운산에 올랐다가 선운사 뒤편의 동백나무숲에 들려 송창식의 `선운사` 노래말처럼 바람에 날려 동백꽃이 후두둑 지는지를 한번 유심히 살펴볼 작정이다.
오전 11시에 우리 일행들은 선운사 주차장을 출발해 선운사 계곡으로 오른다. 선운산 코스는 단순하다. 등산객들은 주차장에서 출발해 마이재를 거쳐 선운산 정상인 수리봉(혹은 도솔산)을 먼저 오른다. 다시 소리재, 낙조대로 해서 천마봉을 보고서 선운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선운사 절 입구에서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마이재 방향으로 들어선다. 왼편으로 가면 도솔암과 천마봉, 낙조대가 나타나는데, 결국은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같은 코스가 된다.
마이재를 오르는 길은 주능선까지는 경사가 상당히 한데, 주능선에 올라서보니 편안한 등로가 이어진다. 이곳이 이름난 곳이기에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오는 등산객들이 많다.
출발지점에서 1km 남짓 걸어오니 마이재 정상이다. 정상에서 보니 선운산 정봉인 수리봉이 저만치에서 보이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경수봉으로 가는 코스다. 마이재에서 훤히 보이는 선운산 정봉까지는 600m 정도 거리지만 일부 구간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산이 높지 않아 일행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선운산 정상으로 오른다.
수리봉에 올랐다. 옛적에는 이 봉우리를 도솔산이라 불렀다. 통상적으로 고창 선운산이라 할 때에 수리봉을 비롯해 경수봉, 천마봉을 포함해서 선운산이라고 부른다.
수리봉을 뒤로 하고 하산해 개이빨산으로 향한다. 이름이 이상하다. 아마 산모양이 개의 이빨처럼 생겼다 해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산 능선을 타고서 개이빨산을 지나 소리재를 넘는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소리재를 넘으면서 보니 눈앞에 낙조대가 펼쳐지는데, 선운산의 최고 절경이라는 명성답게 주변의 풍치가 예사롭지 않다. 가면서 눈을 돌리니 멀리에서 고창 시가지가 보이고 가까이로는 도솔암이, 또 그 아래쪽에는 선운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드디어 일행들은 260여개나 되는 마의 철계단을 건너 낙조대에 도착했다. 낙조대는 해발 335m 밖에 안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은 일대 장관이라 유명한 곳이 됐다.
아직 일몰시간이 안 되어 낙조대 전망대에서 주변의 절경을 마음에 담는다. 또 여기가 MBC 인기드라마를 장식했던 `대장금` 최상궁 촬영장소라는 것을 떠올리며 천마봉 쪽으로 하산한다.
하산하면서 눈 아래 나타나는 도솔암과 진흥암을 보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천마봉을 지나 도솔암 서쪽 내원궁 밑 절벽의 마애불 조각상이 유명하다.
조심스럽게 선운사 쪽으로 하산하면서 일행들은 도솔암을 지나 진흥암에 이른다. 지나는 주변 산들이 군데군데 암릉으로 돼 있고 특이한 모습에 다시한번 자연의 신비함에 감탄한다. 이곳에는 진흥굴이 있는데,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나서 입산, 수도한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진흥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곧장 내려서니 삼거리길이 나온다. 왼편으로 계속 가면 수리봉과 개이빨산의 중간지점과 마주치는 길이다. 삼거리길을 지나서 800m정도 걸어가니 도솔재쉼터인데, 여기서 선운사 까지는 1km 거리다.
도솔재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길을 내려와 선운사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이 됐다. 오전 11시에 나선 등산길이 그럭저럭 6시간 반이나 흘렀는데, 좋은 날, 좋은 산에 오르면서 좋은 경관을 보며 좋은 생각을 많이 했으니 이번 등산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과 관련해 설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검단 스님이 산세를 살펴보니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이 상서로워서 용을 몰아내고 연못을 메웠다. 그 즈음 아랫마을에서 눈병이 돌았는데, 신기하게도 연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날라다 연못 속에 던졌더니 큰 못은 메워졌고, 그 자리에 검단 스님이 절을 세웠으니 선운사이다.
사찰의 세운 내력을 생각하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서는 뒤편 동백나무숲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숲에 홀로 앉아서 바람에 조금씩 흔들이는 수많은 나뭇가지를 보니 그 무리들 속에서 요정처럼 매달려 있는 동백꽃 모습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른 곳 동백꽃보다 가장 늦게 피는 선운사 동백 숲은 소문나 있다. 5,000여 평 산비탈에 숲을 이룬 수백 년 묵은 3천여 그루 동백나무는 3월부터 4월까지 피워내는 꽃이 장관을 이룬다.
선운산의 고요한 산 그림자와 선운사의 아늑한 모습에 필자의 마음은 마치 참선을 하듯 말할 수 없이 편해져 온다. 그 속에서 오늘 하루의 의미 있는 시간들을 헤아려본다.
`산행 길에서/ 땀 흘리며 마이재를 지나/ 도솔봉으로 불리는/ 수리봉 위에 앉았다가/ 봄바람을 맞대고서는/ 낙조대를 거쳐 선운사/ 동백나무숲으로 내려섰다네.// 저어기 눈앞에서/ 무더기로 펼쳐지는/ 동백꽃 요정들이/ 그 사이 힘들었던 산행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주는구나./ 일순간에 황홀경에 빠뜨리는/ 선운사의 빨간 요정들`(자작시 `선운사 동백꽃` 전문)
과원에서 오랫동안 동백꽃에 취해 있다 보니 바람결에 가수 송창식이 부른 선운사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아침에 이곳 선운산으로 오는 차안에서 생각했던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 선운사 동백이라고 표현했으니 그럴듯하다.
선운사에 오면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라는 노랫말처럼 쉬 떠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봄철에는 동백, 여름에는 녹차 밭, 가을은 단풍이 예쁘게 물들고, 겨울에는 설경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이 바로 선운산이요, 선운사이다. 여기에 시인의 명시마저 얹혀 풍경을 더한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 일부)
이번 선운산에 등산 와서 산행을 마치고나서 선운사 동구를 걸어본다. 고창이 낳은 대시인, 미당 선생의 시에 담겨 있는 육자배기 가락이 필자의 가슴을 꼭꼭 찌르며 그대로 전달되는바, 애달픔과 함께 무언으로 전달되는 떨림에 필자는 작은 위안을 받았다.
그것은 필자가 본격 등산하면서 산행기를 경북매일신문에 연재한 이후 이번 100회째 산 이야기가 작은 산이면서도 내게는 큰 산으로 다가선 선운산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