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천지 철쭉꽃밭, 어쩌나 봄날은 가는데…
5월의 봄철 산은 철쭉이 피어나 장관이기에 이번에도 철쭉 산행을 선택했다. 광주 무등산 철쭉과 남원 봉화산 철쭉 산행이 동시에 있어 무등산 등산은 철쭉 구경은 아니나 올 초에 이미 등산해 소개<본지 1월 24일자 12면 보도>했으므로 필자는 남원 봉화산에 가기로 했다.지리산·덕유산 사이에 낀
백두대간 남부구간 중간지점
복성이재 성리마을·아막산성 볼거리
봉수대 유적도 선명히 남아있어
불타오르는 철쭉빛 입소문
최근 들어 전국서 등산객 몰려
등산이 있는 날은 바쁘다. 늘 하던 대로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한 다음 약속한 장소에 시간 전에 도착해 차에 올랐다. 케이제이산악회 전용차량은 시내에서 정해진 마지막 정류장에 7시 30분 도착해 회원을 태우고서는 행선지인 전북 남원을 향해 달린다.
이번에 오를 산은 봉화산이다. 봉화산이란 이름이 전국 곳곳에서 50여 곳이 있는데, 옛날에 봉화대가 있었던 산은 특별한 이름이 없으면 그저 봉화산이다. 거의가 적의 침입이 있을 때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렸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그만큼 적들의 침입이 많았다는 증거다.
남원 봉화산은 봉수대의 유적이 선명히 남아있고,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큰데, 우리나라에서 봉수제는 삼국시대 때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시대로 확인되고 있다.
일행을 태운 차는 88올림픽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지방도 751번을 타고 달리다가 고개 재에서 멈추어 선다. 다 왔다는 가이드의 안내를 듣고서 장비를 챙겨 차에서 내리니 복성이재다. 그런데 차들이 너무 많이 와 있고 등산하려는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어 산을 오르고 있다.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변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복성이재는 해발 601.4m의 재이다. 백두대간의 고개를 이루는 이 재의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복성이재와 복성이 마을이 만들어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전, 지역에서 조정의 양곡관리를 맡고 있던 변도탄이 천문지리에 밝았는데, 어느 날 천기를 보고 국가에 전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대비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게 한다하여 관직을 삭탈 당했다.
그 후 전란에 대비해 피난처를 탐색하던 중 천기의 기운이 북두칠성 중에 복성 별빛이 남쪽으로 비쳐 별빛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복성별빛이 멈춘 곳에 자리를 잡고 움막을 지었다하여 복성이재라 전해진다.
그 후 쌀가루로 만든 움막은 군량미로 사용하여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조정에서 변도탄의 충성심을 인정해서 큰 상을 내리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복성이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복성이재 부근에 볼거리와 현장학습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지가 두 곳이나 있어 이 기회에 소개해본다. 재 아래에 있는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우리의 고전설화, 흥부전에 나오는 마을이다. 이 마을 고둔터에는 제비가 물어준 박씨를 심어 박을 타는 유명한 장면을 모형으로 설치해놓고 흥부전의 발상지임을 알리고 있다.
또 하나는 복성이재 남쪽에 있는 아막산성(전북지방기념물 제38호)이다. 아막산성은 모산산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막 또는 모산은 남원 운봉의 옛 이름이다.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가 영토 쟁탈전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남원 봉화산은 철쭉이 곱기로도 이름난 산이다. 우리 일행들은 오전 9시 50분경 복성이재에서 봉화산등산을 시작하면서 철쭉꽃에 흠뻑 취할 산행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 봉화산 등산은 복성이재에서 출발해 치재, 매봉 정상을 지나며 철쭉꽃들을 보고 봉화산에 올랐다가 복동 구상리 마을을 내려가면 거기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총 산행거리가 복성이재에서 봉화산 정상까지는 4.1km이나 복성이재가 해발 500m이고 봉화산이 920m 정도니 정상까지 오르는 높이가 420m 정도니 힘든 코스는 아니다.
이 산은 육산이어서 보행하기가 편하니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데, 가는 길목에 철쭉꽃들이 만발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행을 시작해 얼마 안 가니 길가에 잘 우거진 소나무 숲이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백두대간 산행길이어서 필자의 마음이 한결 가볍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니 능선사이로 철쭉꽃이 만개해 있다. 많이 피어나 있지만 꽃 색깔을 보니 이제 이삼일 정도 있으면 시들 것 같은데 지고 있는 시기다. 그렇지만 지기 직전에 활짝 피어오른 철쭉은 마지막 정열로 진분홍색을 내뿜는 듯 화려한 경관이 계속 이어지니 장관이다.
소나무숲과 철쭉밭을 빠져 나오니 치재 정상이다. 치재는 치재마을의 서쪽 언덕위에 있는 고개로, 고개라는 뜻의 치(峙)와 재가 합쳐서 지명이 되었고, 가까이에 임도가 나 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로는 아니다.
치재 정상에서 철쭉꽃들을 보며 잠시 쉬면서 멀리 바라보니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고 왼쪽 뒤편으로는 천황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일행들은 걸음을 재촉해 매봉 쪽으로 향한다. 키가 큰 철쭉이 등산로 주변에 빼곡히 들어차 있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좁은 길에서는 비켜서느라 비좁기도 하다. 그만큼 철쭉 철에는 등산객들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증거가 된다.
산에 지천으로 깔린 꽃들을 보며 오니 어느덧 매봉 정상이다. 이곳에서 봉화산 방향으로 산 아래 능선을 보니 온통 붉은 철쭉 밭이다. 봉화산 자락에 있는 매봉 주변의 철쭉 군락지에서 피어나는 선연한 붉은 빛의 철쭉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이나 봄꽃 산행을 자주하는 등산객들은 남원 바래봉 철쭉이나 지리산 세석고원의 철쭉보다도 봉화산 철쭉이 더 곱고 화사하다고들 말하는데, 한창 철이어서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니 이런 풍경도 있구나 저절로 입이 벌어지기도 한다.
매봉 정상에 내려서서 정자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봉화산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3.3km로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키가 큰 철쭉을 보며 능선을 타고 오르면서 여전히 봄꽃들의 화사함을 순간순간 느끼며 걷는 상춘의 등산길이니 즐거울 수밖에….
철쭉군락지를 지나고 꼬부랑재와 다리재를 지나는 길에도 계속 철쭉꽃들의 향연이 이어지니 잠시 쉬면서 눈을 감고 있어도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눈앞이 시뻘건 꽃이 다가오는 듯하다. 그만큼 봉화산은 철쭉으로 소문난 산이고 5월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드디어 봉화산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돌탑, 전망대가 있는데 어느 자리든지 먼저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필자는 인파 사이를 헤집고 주변을 둘러본다.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지는데, 멀리 장안산이 보이고 필자가 올랐던 남덕유산도 아스라이 보인다.
봉화산(919.8m)은 전남 남원시와 장수군, 경남 함양의 경계에 솟은 산이다. 남원시 아영면에서 바라보는 봉화산은 그저 동네 뒷산 언덕 정도로만 보인다. 그렇지만 덕유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 남부 구간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 뜨고 있는 봉화산은 5월 중순이 되면 철쭉꽃 천지를 이룬다. 본래 봉화산 일대에서 나무들이 없어 황량해진 산인데, 산림정비사업을 하면서 인위적으로 가꾼 산이다. 산의 서부능선과 산자락에 야트막한 철쭉을 심어놓은 것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5월의 명소가 된 것이다.
인근에 있는 지리산이나 덕유산이 워낙 유명한 산이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봉화산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5월 철쭉 철이 되면 그쪽 산보다는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절경을 이루고 또, 한적한 분위기에서 철쭉의 향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 최근에 등산객들이 몰려오는 산이다.
정상에 내려서서 필자는 양지바른 길가에 잠시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본다. 산에 올라서 붉게 피어난 꽃들이 만발한 절경 속에서 산을 생각하고 또 자연을 떠올리며 풍경을 노래한다.
“봉화산이란/ 산 이름이 유달리 많지만/ 덕유산과 지리산 사이/ 백두대간에 솟아난/ 남원 땅 봉화산은/ 철쭉꽃으로 유명하다// 5월의 바람을 벗삼아/ 정상을 오르다보면/ 나지막한 등성이부터/ 여기저기에서/ 와락 안겨져 오는/ 진분홍 철쭉꽃들의 향연에/ 내사 정신이 아득하다”(자작시 `남원 봉화산 철쭉`전문)
산행에서 걸리는 시간은 4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케이제이 산악회에서 회원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포함한 총 시간이 6시간이니 철쭉꽃들이 잘 피어난 군락지와 자연 절경을 보는데는 충분하여 필자는 쉬엄쉬엄 구경하고 쉬면서 5월의 주말에 좋은 시간을 갖는다.
이번 등산에서 필자 느낌은 철쭉 밭을 헤맸다는 것이다. 봉화산을 오르내리면서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철쭉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볕 좋은 오월 하루, 남원에 자리 잡은 동네 뒷산 같아 보이지만, 백두대간 길이어서 족보가 있는 산에서, 그것도 가득 피어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철쭉꽃들의 향연을 만끽했으니 정말 멋진 산행을 했다. 진분홍 철쭉꽃들의 절경 속에서 필자의 정신이 아득해진 봄날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