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라, 잡티 없이 푸른 속살
등산을 하다보면 그 산에 한정하는 징크스가 있다. 힘들게 올랐거나 산행 도중에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고생했던 산행의 기억은 언젠가 그 산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필자가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등산을 해왔고, 또 기회와 인연이 되어 경북매일신문에 매주 산행기 1회를 연재한 2013년 3월 이후부터 한번 올랐던 산은 가급적이면 소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지리산과 울릉도 성인봉은 2~3차례 소개를 했다.
전국최고 절경 철쭉, 겨울 상고대 등4계절 색다른 풍광 자랑하는 명산
삼국시대 역사적 문화유산도 많아
비로봉 정상 아래엔 신록의 초원
수백년 수령 주목은 트레이드 마크
올봄에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산 등산을 하고서 그 산행기를 4월 10일자로 연재했는데 그것이 벌써 100회째다. 앞으로 남은 연재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고 보니 중복되는 산 소개 없이 필자가 가보지 못한 산 가운데 좋은 산을 골라 산행기를 쓸 계획이다.
지난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급한 일이 생겨 서울과 고향 영덕을 다녀오느라 주말 산행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참에, 짬을 내어 핸드폰으로 산행정보를 찾아보니 KJ산악회에서 `짧은 코스 소백산` 산행계획이 있기에 그곳에 가리라 마음먹고 신청을 했다.
결과적인 이야기로, 막상 산행을 가보니 소백산 비로봉이었다. 이 코스는 이미 등산했던 곳으로 2014년 1월 17일자 경북매일에 `단양 소백산`을 소개한바 있는데, 추위가 가장 심한 소한 무렵 산이었으니 고생이 심했고, 겨울 등산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실감나게 했던 곳이다.
그런 기억이 있는데, 짧은 코스라고 해서 쉬운 코스를 골라서 간 곳이 공교롭게도 단양 소백산이다. 여러 등산코스 중에서 작년 1월 초 대구 드림산악회와 동행했던 어의곡에서 출발해 비로봉에 올랐다가 천동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와 같았다.
지난해는 추위로 힘들었고, 이번에는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거의 뜬 눈으로 세워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올랐는데, 등산구간만 12km였고 산길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으니 내게는 참 힘든 등산이었다. 그래서 한번 힘들게 오른 산은 두 번째 올라도 징크스 때문인지 역시 힘이 들었고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을 글의 전개부분에서 먼저 써 본다.
하지만 같은 코스라 해도 겨울에 보는 산과 초여름에 느끼는 산 풍경은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소백산 등산길은 한겨울의 칼날바람을 맞으면서 힘들게 산행한 것이라면 이번 소백산 등산은 신록이 짙어가는 계절에 산 속의 야생화나 넓은 초지를 맛보는 상쾌함은 있었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등산하면서 가장 고생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침 7시에 범어네거리 지성학원 앞에서 차를 타고서 7시 30분경 성서 죽전우방아파트 앞에서 마지막 산악회원을 태운 차는 중앙고속도로를 탔다. 차가 단양 방향으로 달리는 사이 필자는 평상시에는 등산 정보를 보면서 들머리와 날머리를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를 유익한 산행이 되도록 하기 위해 생각을 하는데, 이번에는 차안에서 피곤을 못 이겨 눈감고 휴식을 취했다.
눈을 떠보니 오전 10시 가까이 됐고, 차가 소백산 기슭에 도착 직전이었다. 대략 차가 온 방향은 단양 IC에서 빠져나와 국도 5번을 타고 고수삼거리에서 구인사 방향으로 틀어 소백산국립공원에 접어들면 어의곡 탐방지원센터가 나오는데 그곳 주차장이 관광버스의 종착지다.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들과 산행객들로 붐볐고, 중앙 공터에서는 등산객들이 등산준비를 하며 몸 풀기를 하고 있었는데 필자도 그 속에서 잠시 준비운동을 했다. 지난밤에 숙면을 하지 못한데다가 졸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체조를 해봐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그래도 소백산 짧은 코스라 했으니 오르기로 하고서 산행 안내자를 뒤따라 갔다.
우리 일행들은 어의곡에서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가 천동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지만 이곳 소백산 등산은 등산로가 많다. 소백산국립공원에서 추천하는 등산로만 하더라도 7코스가 된다. 산행 들머리로 영주지역에서는 희방사매표소, 죽령매표소 코스가 있고, 단양군 지역에서는 어의곡매표소, 천동매표소, 초암매표소, 삼가 매표소 코스 등이 있다.
비로봉 정상에만 다녀오는 가장 짧은 코스로는 이곳 어의곡에서 출발해 원점 회귀하는 코스다. 편도 거리 4.6㎞에 소요시간은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 길은 산림들이 비교적 원시상태로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고, 맑은 계곡물이 있어 이 코스를 찾는 등산객이 많다.
10시 15분경에 어의곡 들머리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막상 산행을 시작하면서 등로를 따라 올라가니 작년 1월에 올랐던지라 지나는 계곡이나 시설물들이 눈에 익숙한 것 같다. 일행과 함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줄을 잡고 작은 계곡을 건너는 코스도 있어 조심조심 올라선다.
컨디션이 좋은 평상시 같았으면 일행들이 출발을 준비하는 사이에 필자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산행했겠지만 이 날은 다르다. 아무래도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산에 오른다.
숲속 계곡길을 지나 2km쯤 걸어가니 돌계단을 만나 오르고, 계곡이 끝나고 조금 더 올라가니 3km 지점에 쉼터가 나온다. 잠시 쉬면서 이정표를 보니 비로봉까지는 아직 2.1km 남았다.
낙엽송과 상수리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편안한 등산길 이어지는데 비로봉 정상을 1km 정도 앞을 남겨두고 나타나는 초원지대를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목책 사이길을 천천히 걸으며 신록의 소백산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어의곡 삼거리를 지나 비로봉 정상에 오르는 길을 걷는다. 직진하여 400미터만 더 가면 비로봉이다. 필자는 힘들게 산에 오르는데 이번에도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소백산 비로봉과 제1연화봉, 제2연화봉은 겨울철 피어나는 상고대가 멋있고, 눈에 쌓인 주목나무 풍경이 멋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또한 진달래, 철쭉꽃이 피는 봄철이나 초원에 갈대가 나부끼는 풍경이 고운 가을에도 등산객들이 붐비는 곳이니 사계절 이름난 명산이다.
고무매트길을 걸으니 지난해 겨울 이곳을 등산했을 때 눈보라와 칼바람으로 한치 앞을 볼 수 없어 고생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고생했던 길에서 이번에는 쌓인 눈 대신 초원의 푸른 초목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필자를 맞이하고 있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괴롭다.
다른 날 같았으면 정상 4~500m가 앞에 보이면 일행을 제쳐두고 혼자서라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서는 사진도 찍고 주변을 바라보며 시상에 잠기기도 하겠지만 조금 전에 쉬었어도 또 쉬고 싶어서 혼자서 목책 사이로 빠져 나와 잠시 쉬면서 비로봉 정상 쪽으로 올려다본다.
잠시 쉬고서는 비로봉 정상에 올랐는데 어의곡에서 출발한지 2시간 20분이 됐다. 힘은 들었지만 빨리 올라온 셈이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말씨를 들어보니 전국에서 다 모인 것 같다. 사람들 틈에서 구경하면서 소백산의 자료를 떠올린다.
`백산`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白`에서 유래하고 있다. 소백산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다. 이 산은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백제·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특전국의 철쭉 군락지 가운데 비교적 늦은 시기에 피어나는 소백산 철쭉은 해발 1천m 이상 고산지대에서 연분홍빛을 띠며 군락으로 형성된 게 특징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국망봉·신성봉으로 이어진 주능선 일대와 연화봉 일대에서 연분홍 색깔로 피어나는데, 철쭉 철이 되면 주위 비경과 어우러진 이곳 풍경은 국내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힌다.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
조선 중종 때의 천문지리학자인 남사고는 소백산을 일러 이렇게 말하였으니, 오늘날에는 이 명산 소백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많이 찾아 이름난 곳이다.
비로봉(1439m) 정상에서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서 차가 대기하고 있는 천동탐방지원센터 주차장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하는데 거리가 6.8km다. 걱정이 되지만 달리 방도가 없으니 쉬면서 내려가기로 했다. 500~600m 내려오니 우리나라 최대의 주목 군락지가 있다.
주목은 소백산의 트레이드 마크다. 비로봉과 제1연화봉 사이의 북서사면에 분포하고 있는 주목은 총 본수가 3천798본이나 되며, 평균 수령이 350년 정도인데, 가장 오래된 노령수는 800년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많은 등산객들이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주목군락지를 보고 내려서서 천동쉼터를 지나면서 멀리서 펼쳐지는 산들을 보며 길을 걷는다.
길게 늘어선 나무숲 길을 걸어서 천동계곡 옆으로 난 등산로를 타고 내려선다. 하산길에는 경사길 없어서 다행이긴 했으나 계속 내리막 돌길을 걸어와야 하는 힘든 코스였다.
천동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50분이었다. 어의곡을 출발해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에 올랐다가 하산 코스인 천동 마을까지 11.4km 등산길이 7시간 40분이나 걸렸다. 1~2시간이 더 걸렸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나오는데, 그것이 이번 소백산의 두 번째 등산에서 고생한 애환이다.
또 있다. 지금까지 등산에서 보고 느낀 생각들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하산해 차를 타고서는 바로 정리해 한편의 시로 만들어 기록물을 남겼지만 이번에는 산에 오르고 내리는 데 신경 쓰느라고 시상은 뒷전이었다. 몸 컨디션이 별로이긴 해도 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소백산 잔영을 정리한 필자의 자작시`단양 소백산에서`를 지인들에게 전하는 이 시간만큼은 기분이 좋다.
“비로봉에 올라/ 산 아래 등성이를 보니/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서/ 바랜 연분홍빛으로/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시들어가는 철쭉꽃 향연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비로봉에 올라/ 멀리 산 위로 하늘을 보니/ 흘러가는 흰 구름이 유유한데,/ 내려서는 산길에서 만나는/ 소백산의 또 다른 유혹/`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은 정말 멋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