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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작지만 큰 고령, 한국의 스위스 꿈으로 12년 행정 맡아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가야산이 버티고 있으며 남쪽으로 경상남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경북도 최남단 고령군. 경북도의 2%(384㎢)밖에 안 되는 좁은 면적, 그나마 75%가 산이다. 1읍 7개면에 군민은 3만600여 명,일찍이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500년 도읍지였다. 지산동 고분군이 보여주는 순장(殉葬)의 기억은 1500년 전 대가야의 찬란했던 문화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 고령에 재현한 증거가 되고 있는 것인가. 그 꿈은 군민 행복지수 전국 1위라는 자부심으로 군민 어깨에 힘을 실어준다.곽용환 고령군수는 집무실에 ‘더 큰 고령’이라 커다랗게 써 붙여 놓고는 “유럽 한복판 스위스처럼 땅은 좁아도 부유하고 군민들은 행복하다”며 “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문화관광 도시 고령”이라고 자랑한다. - 군수실 TV모니터가 대형이다. 곽 군수의 스마트폰도 최신형이다. 업무하고 연관이 있나.△TV는 시청용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연결해서 업무 보고를 받는다. 그러니 종이에 프린트하고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진 한 장이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스마트폰으로 TV 화면을 연결하고는) 우곡 도로선형공사 현장 사진이다. 새로 생기는 유휴 공간 활용 방안을 연구해보라 했다. 모든 설명을 사진으로 하니 그야말로 ‘현장에 답’이 있더라. 지난해 12월 군의회 업무보고에서 처음 시도했더니 의원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업무보고와 설명 등은 모두 사진을 찍어 모니터에 올려놓고 함께 보는 것이다. 첨단 기법과 기기를 동원한 업무 보고를 행정 전반에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고령군의 2010년 취임 당시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특히 달라진 모습은 무엇인가.△먼저 군민의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삶의 만족도 전국 1위’라는 객관적 지표가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 군에서 자료를 제공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통계청에서 조사하고 확인한 거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군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높아졌다고 자신한다.전 군민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 체육 복지시설 대가야문화누리 조성을 시작으로 보건소 신축과 다산면 행정복합타운, 아이나라 키즈교육센터, 파크골프장 등 군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인프라를 조성해 삶의 질을 높인 것이 일상의 만족도를 충족시킨 것으로 본다.- 군수 취임 당시의 목표는 무엇이고 3번 연임한 현재의 군정 추진 방침은 또 무엇인가.△취임 초기부터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생각으로 군민 한 분 한 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고 항상 ‘군민 행복’을 최우선으로 군정을 운영해왔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군민의 신뢰가 없으면 작은 정책이라도 성공할 수 없고 군민들의 협조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통해 왔다.- 고령에서 가야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문화와 관련해서 고령군의 정체성을 이야기해 달라.△대가야는 1500년 전 지금의 영호남지역을 아우르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했던 나라였다. 그 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이 지산동 고분군이다.고령은 문화관광의 성장축인 대가야 문화벨트를 완성해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기 위한 여러 사업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10여년간 군민들이 노력해 왔던 고령지산동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최종 현장실사를 마치고 올 6월 등재를 앞두고 있다.군청소재지인 대가야읍은 고령읍에서 2015년 이름을 바꿨다. 그만큼 대가야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그 정통성과 정체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지역민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또 2020년에는 대가야 종묘를 건립했고 대가야 지역의 화합과 소통을 기원하기 위해 대가야 대종과 종각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험 타종까지 진행한 대가야대종은 고령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오는 3월 대가야생활촌 입구에 설치될 예정이다.가야금 발상지인 대가야의 고도로서 도립국악단을 고령으로 이전하고 고령군립가야금 연주단을 창단했으며 우륵청소년 가야금연주단 창단,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뮤지컬 제작, 각종 문화공연 등을 통해 국악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가야 문화가 고령군만이 아닌 영호남 지역에 넓게 분포돼 있고 그 중심이 고령으로 알고 있다. 가야문화권 지방자치단체간 협력과 고령군의 역할은.△2005년 고령군의 제안으로 경남북 10개 시군에서 시작한 가야문화권 협의회는 현재는 5개시도 26개 시군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행정협의회가 되었다. 고령군은 초대 의장군을 맡아 16년간 이끌어 오면서 가야 문화를 통한 영호남간 지역감정 해소, 공존과 상생, 동반적 공동 발전방안 모색, 통합과 상생의 마중물 역할을 주도해 왔다.현재 고령군은 의장군 직위는 내려놓았지만 가야문화권협의회 회원 자격으로 가야문화권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한 주도적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고령군은 대구 달성군과 이웃하고 있고 경북도 시절 같은 국회의원 선거구이자 생활권이었다. 지금 달성군은 인구가 늘어나고 급격히 발전하는 도시가 됐다.△고령군과 달성군은 낙동강 55km를 접하고 있고 일일 유동인구 비율로 봐도 달성군과의 유입 유출 인구가 가장 많은 만큼 공동생활권이라 할 수 있다. 경쟁관계가 아닌 상생을 통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령군과 달성군은 상생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아래 지난해 8월 고령 달성 상생발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낙동강의 대표적 경관자원이자 고령과 달성을 잇는 상징적 의미로서 5월 준공을 목표로 사문진교 야간 경관 조명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양 군간 공동사업과 문화교류 등 협력을 강화해 상생협력을 통한 새로운 지역가치를 창출하는 모범 사례로 만들려 한다.- 고령군의 전국적 특산물은 어떤 것들이 있나. 자랑을 해 달라.△고령옥미와 고령딸기, 우곡수박, 개진감자, 성산멜론, 한라봉 등이 고령의 전국적인 특산물이다. 고령옥미는 2009년 경북도 최우수 브랜드로 선정되고 2018년 청와대에 납품하여 옛 진상미를 재현했다.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경북 6대 우수브랜드 쌀로 선정되고 있다.고령 딸기는 40여년의 재배 역사와 기술을 자랑하며 맛과 향이 뛰어나 전국 대형 농산물유통에 납품되고 있다. 딸기 재배는 이미 전국적으로 보편화 됐지만 고령딸기는 전국 6,7위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곡 수박은 당도가 높고 육질이 아삭하여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성산메론은 무넷트메론 집산지로 파파야 양구 홈런 등 다양한 품종에다 최근에는 신품종 하미과 생산이 늘고 있다. 개진감자는 알이 굵고 색깔이 희며 분이 많아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고령군은 도농복합도시이지만 농업 인구가 30%나 된다. 농업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해주고 있나.△지금 농촌에 쌀농사를 짓겠다고 귀농하는 사람은 없다. 고령군은 특작 농가에 파이프와 비닐, 부직포 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최근 아열대작물인 한라봉 재배 농가가 늘고 있고 마늘 재배가 부쩍 늘었다. 낙동강변이 사질토여서 겨울이면 얼었는데 농가에 부직포를 지원해주면서 재배가 2배 이상 늘어났다. 타지역 농민들이 ‘고령군이라면 농사지을만하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지역 농민들에게 직접 혜택을 주고 있다.- 고령군에서 태어나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군수까지 평생을 고령군에 바쳤다. 그러다 정년 9년을 남겨놓고 사표를 냈는데.△1977년 고령군에서 공무원으로 출발해 32년 10개월을 근무하고 사퇴했다. 군청 과장과 군내 3개면 면장으로 재직하면서 군민들과 직접 소통했다. 정년을 남겨놓고 사표를 내니 그만큼 군민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보고 당에서 공천을 주었다고 들었다.- 군민들과의 소통 방법이 다양할 것 같다.△시간과 장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편지도 직접 쓴다. 내 연하장을 받은 사람들이 차곡 차곡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이름만 직접 썼다. 그러다가 내용까지 직접 썼다. 내용이나 잘 쓰는 글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정성이더라.- 그런 직접 소통은 군수가 되어서도 이어졌나. 면장 때와 군수 때는 어떻게 달랐나.△군수가 되니 면장과 다르더라. 면장 때는 민원을 받아도 안 되는 일이 많았다. 예산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수가 되어선 법령으로 안 되는 일을 빼고는 모두 해결하려 노력했다.보통 때는 민원을 받으면 현장에서 담당에게 확인하지만 술자리 메모는 이튿날 그 자리에서의 분위기에 따라 무슨 내용인지 확인한다. 술자리서 민원을 메모해 두었다가 이튿날 보면 오자도 있고 무슨 암호문 같을 때도 있었다. 민원인을 다른 자리에서 만나면 그를 기억하고 그의 민원까지 기억해주니 믿어주더라. 그만큼 신뢰가 중요하다.- 골치 아픈 민원은 없었나. 지역민과 갈등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다.△다산지역에 축산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할 때의 일이다. 이 시설은 전임자가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번복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주민들이 ‘돼지 한 마리 없는 우리 지역에 왜 축산폐수시설이 들어서나’ 하면서 완강히 반대하더라. 그래서 ‘완벽하게 폐수를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켰다. 주민들이 군청에서 집회 한 번 하지 않았다. 민원도 한 번 없었다.- 축산폐수장은 모두가 기피하는 혐오시설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주위에서도 이곳이 폐수처리시설인지 모를 정도로 만들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 대신 있어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라’. 그러면서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을 동원해 수없는 자문 거쳤다.축산농가에는 ‘돈 버는 만큼 재투자해라’고 요구해서 돈사마다 원심분리기를 갖추었다. 돈사에서 배출되는 3만ppm이 넘는 축산폐수를 최대한 걸러서 내놓게 만들었다. 축산폐수장의 파이프도 모두 지하로 설치하고 운반차는 씻어서 깨끗하게 운행토록 했다. 그랬더니 냄새도 없고 민원도 없어졌다.- 평생을 공직자로 고령군을 누볐다. 고령군민 중 한 번도 안 만나본 군민이 있겠나.△그래도 있을 것이다.- 머리를 염색할 정도로 세월이 지났지만 3연임을 하고도 여전히 정력적이다. 퇴임 후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12년 전 우연히, 그야말로 준비 없이 군수에 나섰다. 다행히 당선됐고 3선을 했지만 고령의 작은 영토 때문에 소신을 펴기에는 부족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며, 그러나 그는 토를 단다.) 물론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여건이 허락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곽용환(郭龍煥·63)고령, 고령농고, 대구미래대 행정법률정보과, 가야대 경영학과, 영남대 행정대학원 자치행정학 석사.1977년 고령군청 9급공무원. 고령군 문화체육과장, 주민자치과장. 고령군 운수 쌍림 다산면장. 2010년 고령군수. 이후 현재까지 3연임.2017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CEO 대상, 국제관광대상, 2019년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 대상, 한국의 영향력있는 CEO 혁신경영부문 대상 등 다수 수상.고교 졸업후 군청 공무원으로 고령에서만 공직 44년. 청와대나 중앙부처는커녕 경북도청에도 근무하지 않았다. 처음 군수 선거에 나섰을 때 언론에서는 ‘부군수와 면장의 대결’이라거나 ‘공중전과 보병전’이라는 식으로 그의 출현을 얕잡아 봤다. 그러나 그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3선의 군수가 됐다. 재선 때는 상대가 없어 무투표 당선이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이경우 편집위원

2022-02-07

봄이 빨라지고 여름은 길어지고 있다

겨울가뭄이 계속되니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날씨로 하루를 시작하니 날씨가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한다. 옷차림을 결정하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기상재해로 농수산물 수급에 불균형을 가져와 물가가 오르고 생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기상정보다.서장원 대구지방기상청장은 “최선을 다해 예보하고 위험 기상에 대해 국민들과 소통하여 국민생활 불편 해소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일기예보는 100% 달성하기는 불가능한 영역이니 변동가능성을 고려해 달라”고 말한다. 기후변화로 100년에 한 번 나올만한 극한기상이 늘어나고 변화의 정도도 큰 만큼 기상예보는 ‘불확실한 과학’이라는 것이다.대구지방기상청은 2021년 업무와 지역민과의 소통으로 전국 9개 기상청중 최우수 예보기관에 선정됐다. - 대구경북의 지리적 특성상 기상을 특정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실제 대구지역 기상과 시민들의 성격을 연결지을 수 있겠나.△대구는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분지 지형으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기상 특성을 나타낸다. 또한 동해안과 접하고 있어 동풍이 강하게 불 때는 포항에서 영천을 거쳐 대구까지 동풍이 유입되어 선선한 날씨를 보이기도 한다.대구 시민들은 기후 탓인지 액티브하고 반응이 굉장히 빠르다고 느껴졌다. 특히 여름에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행정기관과 시민들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도로변 그늘막 설치 같은 열기를 식히기 위한 노력이나 열 관련 산업에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은 장마가 짧았다. 늦여름 장마 비가 많이 왔다. 이런 장마 예측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장마는 기상학적으로 정체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경우를 의미한다. 과거 장마는 장마기간 동안 쉴 새 없이 비가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장마는 과거의 양상을 벗어나고 있다. 가령 정체전선의 영향권에 들어 있으나 비는 오지 않고 흐리거나, 동서 또는 남북으로 지역적인 편차가 큰 비가 쏟아지는 등 우리가 경험했던 장마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2009년부터 장마의 시작 종료에 대해 공식적으로 예보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장마가 종료된 뒤에 사후분석을 통해 장마의 시종을 알려주고 있다.- 해마다 봄이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여름도 일찍 오는 것 같다. 올 봄은 언제 올 것 같나.△기온의 장기적인 변화 추세로 최근 30년(1991~2020년)은 과거 30년(1912~1940년)에 비해 연평균 기온이 1.6°C 상승했다. 특히 봄과 겨울의 기온 상승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또 계절 시작일과 계절 길이의 변화도 뚜렷이 나타나 과거 30년 대비 최근 30년은 여름이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으며 봄은 17일, 여름은 11일 시작일이 모두 빨라졌다.과거 30년 봄의 시작은 3월 18일이었는데 최근 30년 봄의 시작은 3월 1일이었다. 여름도 6월 11일에서 5월 31일로 11일 당겨졌다. 대신 가을은 9월 17일에서 26일로 9일이나 늦춰졌다. 겨울도 11월 29일에서 12월 4일로 5일이나 늦춰졌다.-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계절의 변화처럼 지구의 온난화가 지구인의 화두가 됐다. 기후위기의 문제를 기상청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지구온난화는 산업혁명 이전에도 자연계에 있었던 현상이다. 다만 20세기 들어 석탄 석유같은 화석연료 사용량의 증가나 삼림 벌채 등으로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기상청에서는 전세계적인 기후 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수집하고 연구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 감시소를 통해 온실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기후변화 자료를 분석하고 지역별 기후 변화를 감시 예측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생산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정부와 각 지자체의 기후변화 적응대책 시행계획 수립에 지원되고 있다.국민들은 자동차 타기를 줄이는 등 생활 속에서 실행 가능한 작은 노력부터 동참해주면 좋겠다.- 기후위기와 관련,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하는 탄소중립(넷 제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제6차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탄소감축을 통한 넷 제로에 도달하는 시기가 빠를수록 미래 온난화 폭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평균기온은 탄소감축 이행 정도에 따라 넷 제로 이후 서서히 감소하는 것으로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노력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빠른 탄소감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날씨 예보가 정확해지고 지역별 시간대별로 세밀해지고 있다. 어디까지 예측 가능하나.△기상청에서는 현재 실황에서부터 6시간 이내의 초단기 예보부터 최장 글피까지의 단기예보, 단기예보 이후 10일까지의 중기예보와 1개월·3개월 전망의 장기예보, 그리고 기후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단기예보, 즉 동네예보는 전국을 5km x 5km 간격으로 세분화해 총 3500여 개의 읍·면·동 단위로 기온과 강수량 등 12개 기상요소를 1시간 단위로 예보하고 있다.- 태풍의 크기나 진로 등에 대한 예보가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이 다르더라.△태풍의 진로에 미치는 변수는 계절, 해수면온도 등 다양해서 예측이 어렵고 모델을 기반으로 관측자료와 슈퍼컴퓨터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보관 토의를 통해 최종 결정되는 만큼 나라별로 태풍 진로 예측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과 일본, 미국의 예보 방식이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각국의 자체 모델이 다르다. 한국은 재난 예방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미국 JTWC(합동태풍경보센터)는 동아시아에 있는 군사 시설의 안전이 우선이므로 태풍 진로가 바뀌면 수시로 이를 예보하고 있다. 또 일본은 태풍 피해가 많아 광범위하게 위험 지역을 설정하여 정확도가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기상기술력은 어느 정도이며, 세계적인 지위는 어느 정도인가.△대한민국의 기상기술력은 세계 6위 수준이며 7번째 기상위성 보유국이고 독자수치 모델을 보유한 9번째 나라다. 국제사회에서는 그야말로 기상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특히 한국 기상청은 2007년부터 WMO(세계기상기구) 집행이사국에 진출하기 시작해서 현재도 193개국 중 37개국이 선정되는 집행이사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2017년 포항에서, 2016년 경주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지진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래 규모 2.0 이상만도 연평균 45.8회로 나타났다.△지진학자들은 가스냄새, 동물들의 이상행동, 지진광, 지면의 변형, 지하수의 화학성분 변화 등 지진 전조현상을 통해 지진을 예측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진 예측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특정 지진에 대한 단일 성공 사례에 불과하다.우리나라 지진조기경보는 2015년 처음 시행 당시 목표는 관측 후 50초 이내에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후 계속 단축돼 2021년에는 관측 후 5~10초 내외에 지진조기별보를 발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이는 일본, 미국, 대만 등 선진국과 유사한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20년 봄 이상저온으로 일찍 개화한 꽃이 냉해를 입기도 하고 장마로 과수작물이 피해를 보는 등 농업이 기후변화와 가장 민감한 관계를 갖고 있다.△경북은 전국에서 과수생산량이 많은 지역이어서 대구지방기상청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역 특산 과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상융합서비스를 개발하여 사전에 서리 냉해 호우 폭염 강풍 등 기상재해 위험정도를 농가에 알려드리고 있다. 냉해를 유발하는 서리의 경우 예측정확도가 84%로 높다. 현재 상주 의성 안동 영천 지역에 대해 시범서비스 중인데 개발사업이 완료되면 경북도 전역으로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산업에서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어떤 것이 있나. 풍력 및 태양열 에너지와 같은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한 기상청 업무는.△국립기상과학원에서는 지상 50, 80m 고도에서 보여주는 풍력기상자원지도와 햇빛의 직달일사 산란일사 전천일사 등을 알 수 있는 태양기상자원지도를 개발해서 풍력과 태양광 예측정보를 서비스하고 있다. 기상청 기상정보와 지형정보를 반영해서 남한 영역에 대한 공간해상도 100m, 시간해상도 1시간, 예측시간 36시간의 풍력 태양광 예측 정보를 생산 제공하고 있다.특히 경북 지역에는 태양광에너지 발전단지와 풍력에너지 발전단지가 많이 있는데 이들 산업들의 특성에 맞춤한 기상정보 가공 데이터 산업은 아직 미개척 분야인 것 같다. 기상청의 나이브한 관측 예보자료와 현지 정보를 융합해서 기업에 적용하는 사업이 필요하다.- 기상청이 지역 주민의 생활이나 경제활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례가 있나.△대전지방기상청장으로 있던 2016년 폭염으로 서해안 조피볼락 양식어장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기상청은 충남도와 국립수산과학원 공동으로 세미나를 통해 조피볼락이 수온 26°C만 넘으면 먹이를 먹지 않는 등 특성을 밝혀내고 3단계 기준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전기상청은 단계별 고수온 정보를 매일 2회 제공하여 먹이제한과 산소발생기 가동, 햇빛차단막 설치 등 조치를 시행토록 했다. 이 후 2년동안 고수온 피해로 인한 양식어장 피해는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충남도청으로부터 기관장 표창을 받는 등 지역사회에서도 기상청의 역할을 인정하게 됐다.- 대구지방기상청은 전국 최초로 기상과학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대구지방기상청은 1907년 대구측후소로 창설된 후 지금까지 대구와 경북도, 동해남부해상에 대한 기상 기후업무를 수행하면서 태풍과 집중호우, 대설, 폭염, 해난사고 등 지역현안과 관련된 기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또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2014년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 기후 전문과학관으로 기상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과 우리나라 기상산업을 알릴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기상자료를 수집 가공 전시 홍보함으로써 대중에게 기상과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상의 열기구를 타고 대구 상공을 날아올라 지역 지형과 기후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영상관을 구현하는 등 시민들이 기상과 기후 과학을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과학문화시설을 지향하고 있다.- 해류, 해상풍, 풍랑, 해일 등 해양물리학을 전공한 해양기상 전문가로 대구지방기상청장이 됐다.△한국해양연구소에 근무할 때 동중국해 대만 앞바다에서 엄지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한 후 재생하기까지 6개월 고생했다. 이후 배를 타지 않으려고 기상청에 들어갔으나 해양기상과장을 맡았고 2009년 기상예보의 선진화 계획으로 500t급 기상관측선을 건조하는 임무를 맡아 2011년 성공했다. 기상관측선(기상1호) 운항으로 장마 태풍 기간 기상 민감지역에 대한 선행 감시와 예보 지원이 가능해졌다. 또 세월호 사건 당시 현장에 즉시 투입해 조류관측 및 해상예보 제공으로 잠수 최적시간 제공 등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경우 편집위원 서장원(徐章源·56)서울출생. 상문고, 한양대 지구해양과학과 졸, 대학원 석사 박사.한국해양연구소 국립기상연구소 해양기상연구실 기상청 기상기술기반국 해양기상과장, 관측기반국 해양기상과장, 기후과학국 해양기상과장, 대전지방기상청장. 기상청 지진화산국 지진화산정책과장.2009년 대통령표창(우수공무원)해양기상전문가로 2008년 5월 충남 보령 죽도에서 발생한 이상파랑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여 기상해일이라 이름짓고 사고 예방을 위한 기상해일 예측시스템을 개발했다.해양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기상관측선(기상1호)을 건조해 해상 기상예보를 활용토록 했고 대전지방기상청장 때는 기상정보로 양식어장 고수온 피해를 막는 등 재난 예방과 해결 전문가로 변신.

2022-01-24

색과 패션으로 그린 원초적 욕망 ‘아름다움’

옷은 인간의 역사와 같이 변화해 왔다. 의식주(衣食住)라는 생존의 기본 조건에서 소속된 세계의 신분 질서를 넘어 개성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까지 진화했다.옷이 표현하는 패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충실하면서 마침내 삶의 질과 가치를 높여주는 문화가 되고 있다.섬유도시 대구에 패션 산업의 기초를 다지고 대구 브랜드를 세계에 내놓은 최복호 1세대 패션 디자이너. 그는 문화의 힘이 경제의 힘을 능가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집에 이발소 그림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꾸짖는다. 그에게 아름답고 멋있게 사는 것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 작업실이 예술품 수장고 같다. 도심 한복판에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은 야외도 아닌 촬영 세트장 같은 느낌이다.△나나랜드라고, My land, My life, 문화공장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골목이 대구의 침장골목이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제분공장이었다. 내 작업실 겸 매장 겸 공연장 겸 놀이터인 셈이다.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때로는 시니어들의 패션쇼나 연주회, 공연도 한다. 더 크게 아주 멋진 놀이 공간을 펼치고 싶었는데 코로나19가 덮치는 바람에 주춤해 버렸다. 정말 아쉽게 됐다.- 패션 디자이너에서 화가로 변신했다. 초대전이 성황을 이뤘더라.△큰 틀에서 보면 예술가는 자신이 가진 사고와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각 분야에서 정해진 규칙과 룰에 따라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표현 방식과 규칙에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하나의 소실점으로 귀결되는 것 아니겠나.패션 디자이너로 48년간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것은 입체에 그림을 그린 작업이었다. 그림은 지금까지의 활동을 평면으로 펼쳐 놓는 것이다. 근본적인 예술 활동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패션 디자이너로서 작업하고 있다.아침 일찍 청도 각북의 작업장 ‘펀앤락’으로 가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린다. 화가들이 한 가지 작업, 형식이나 대상이 일정하다면 나는 작업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정물도 했다가 인물도 했다가 추상도 하는 그런 식이다.비빔밥,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 맛을 내는 것. 그 속에는 간이 들어간다. 발효시킨다. 패션이란 다른 것을 섞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 가치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패션이 미술이다. 지난해 대백 초대전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는 어떻게 탄생했나.△대학 재학 중 입대했다가 제대한 뒤 복학 대신 국제복장학원을 선택했다. 교회 목사가 되겠다며 철학과에 입학했고 그때 동기 중 목회자도 꽤 있다. 어릴 적 교회에서 목사님이 미술 장식물 과제를 잘 해내는 모습을 보고 디자이너가 되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명성을 떨치던 앙드레 김을 비롯해 디자이너의 80%가 국제복장학원 출신이다. 패션 디자이너가 아티스트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디자이너에서 화가로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는 어떤 영역의 작가일까.△패션사를 쓰는 사람이라면 나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이너’라고 분류하지 않겠나 싶다. 90년대 환경 오염문제를 고발했던 패 션 퍼포먼스,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진혼제 형식으로 발표했던 2003년의 패션쇼 등을 보면 내가 그 동한 어떤 문제에 천착해 왔던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특히 내 데뷔작품의 메인 테마가 ‘고발의상’이었다. 화가로서는 아무래도 그러한 사회적 문제보다는 ‘자연’이라는 내면의 본연에 충실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서성이던 산등성이, 들판의 아련함 등이 노년이 된 내게 아직까지 ‘그리움’과 ‘가슴 먹먹함’이라는 감정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데뷔작이 ‘의처증 환자의 작품 D’라는, 도발적이고 당시로서는 생경했을 듯하다.△1973년 조선호텔에서 작품전을 열었는데 당시 ‘선데이 서울’이 내 작품을 화보로 실었을 만큼 센셔이셔널을 일으켰다.중부전선 3사단에서 군종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망 사건을 뒤치다꺼리 했다. 당시 병사들의 자살 사건 주요 배경에는 거의 사랑과 배신이 있었다. 군대 용어로 ‘고무신 바꿔 신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걸 화두로 중세 정조대를 현대로 불러내 완성한 작품이다.- 작업실 그림이나 디자인한 의상 등 작품들이 테마의 엄숙함이나 진지함보다는 밝고 경쾌하다. 작품들은 구성도 분방하고 그 색들은 화려하다.△인생은 즐거워야 한다.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고 인생이 지향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지금 시대는 문화의 가치가 경제적 가치를 능가하는 시대다. 이제는 삶의 질과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화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그 문화의 가치는 바로 브랜드의 가치이고 그것이 디자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지쳐 있는 이때 아름다움은 지쳐있는 삶에 원기를 불어 일상을 회복시켜주는 치유의 능력을 발휘한다. - 디자인과 그림 그리기, 패션쇼 등 창작활동만도 분방하다.△나는 혼자 노는 데 익숙해 졌다. 혼자서 외로움을 타지 않아야 한다. 초등학교를 6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외로움을 떨치려 SNS를 일찍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고 있는데 팔로우가 2만명 가량 된다. 잘 놀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즐겁게 노는 것이 삶의 한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최복호의 작품이 지향하는 목표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최복호의 활동 전성기는 언제였나.△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이징 등 정말 많은 도시에서 내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여러 나라 다양한 사람들과 인사하며 그들과 소통했다. 중동 쿠웨이트 매장에서 내 옷을 사입는 이슬람 여성을 보면서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것에 감사했다.전성기를 논하기엔 아직 내게 남은 시간이 많고 또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는 10년 후에나 다시 만나서 얘기해보면 좋겠다.- 디자이너의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작업은 어떤 것인가.△내 아이와 함께 패션쇼를 했던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국내 대학을 나와 영국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일하던 소속사를 나와 지난 2016년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한 아이와 함께 패션쇼를 열었던 일이다.- 섬유도시 대구와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에서 남긴 업적이라면.△대한민국의 1세대 디자이너로서 전 세계에 한국 패션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함으로써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패션계의 대모 최경자 선생이 한국 디자이너들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나를 “대구에 내려가 활동하는 뛰어난 감성의 디자이너 최복호, 이대 앞에서 시작한 그가 대구로 간 것은 너무도 아쉽지만 확고한 그의 철학을 믿기에 대구로 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썼더라.대구의 디자이너로서 내 역할은 ‘지하철 참사 진혼제 패션쇼’ 등 대구 사람이 겪었던 아픔을 내 방식으로 전 국민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지역 브랜드 최초로 TV홈쇼핑에서 로얄티를 받았다. 이제 대구에서 서울을 거치지 않고도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또한 대구의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자 애썼고, 대구의 섬유가 전국의 디자이너와 이어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다하려 노력했다.- 누가 최복호 패션을 입는가. 누구를 위해 패션 디자인을 했나.△양장점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롯데 현대 신세계등 전국 25개 백화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 고객은 시니어 층이다. 그렇다고 그들만이 고객은 아니다. 나훈아의 공연에 연세 많은 관객과 그의 딸, 손녀들이 함께 찾는 것과 같다.나도 여러 가지 브랜드를 통해 다양한 고객과 마주하고 있다. 해외에는 쿠웨이트, 프랑스, 미국 등 7개국에서 고객을 만나고 있다.걸그룹 소녀시대 ‘태연’과 ‘써니’가 내 의상을 입고 광고를 찍었고 미국 영화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내 옷을 입고 미국 토크쇼에 출연했다. 요즘 많이 하는 돈을 주고 하는 광고 형식의 계약이 아니었고 그들의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부탁을 했고 협찬 형식으로 진행했던 일들이다.- 패션은 시간을 앞서 간다고 했다. 얼마나 앞서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나.△시간을 앞서 간다기보다 그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용필이 2013년 발표한 바운스를 들어보면 젊은 세대가 들어도 전혀 올드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시대에 맞게 그 흐름에 맞게 늘 작업 방식을 변화해 왔다.더구나 지금은 정보의 처리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디자이너는 물론 소비자가 더 똑똑한 세상이다. 유행을 캐치하거나 따라 잡거나 앞서가는 것을 논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시키고 자신의 아이콘을 만드는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이너 최복호에게 아름다움의 원천은, 디자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부터 나오나.△유행은 사람의 몸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파리도 뉴욕도 아니다. 몸이 요구하는 원초적 본능, 그건 육체를 드러내는 거다. 청바지 허리춤이 내려오고 쫄바지 스키니즈가 등장하지 않았나. 지금은 커텐도 망사로 진화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컬러풀 대구에 컬러가 없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골목부터 컬러, 색을 입힐 계획이다. 그리고 시니어들이 놀 수 있는 노인 전용 골목을 만들고 싶다. 교통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는 죽어가는 시장을 리모델링해서 ‘할배 할매의 거리’를 만드는 거다. 거기서 갈 곳 없는 노인 세대들을 안아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부터 나이가 드니 시니어들의 공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멋있게 늙으면 치매 걸릴 여유도 없을 거다.최복호 (崔福浩·73)선산출생. 성광고, 계명대 철학과 중퇴. 국제복장학원 졸업. 경일대 및 대학원 섬유패션학과 졸업.대구패션협회 초대회장, 대구미래대·경일대 겸임교수, 패션아카데미 회장, 한국 모델리즘 산학교수협회 공동대표, 한국패션협회 부회장, 대구패션조합 이사장을 역임.현 ㈜씨앤보코 대표이사 및 대표 디자이너, 한국패션협회 이사.한국섬유대상, 2014년 한국 패션의 글로벌화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았다.1973년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해 48년간 디자이너로 활동. 섬유도시 대구에 패션 산업의 초석을 놓은 패션 디자이너 1세대로 지금은 노년의 삶을 즐겁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이경우 편집위원

2022-01-17

오페라의 도시서 가곡이 흐르는 도시로

오페라극장이 있는 도시,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도시, 100년 전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한 도시. 유네스코가 음악 창의도시 네트워크로 선정한 도시, 대구다. 도시의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예술 문화의 힘을 앞자리에 놓는다. 더러는 오페라극장이 있느냐로 그 기준을 삼기도 한다.음악의 힘은 현실에 꿈과 상상력으로 감동을 주고 창의력을 샘솟게 한다.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불리게 만든 주역, 성악가 김완준은 “대구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한류의 중심에 음악이 있다면 그 음악의 정점을 가곡으로 장식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갖고 있다.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 100년을 맞는 올해 대구에서 대한민국 가곡제를 여는 것”도 그런 당위성에서다. - 지난 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도 성황리에 끝났다. 두 달 간 이어진 오페라 축제를 매스컴도 극찬했다.△그렇다. 대구는 한국에서 문화도시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대구는 1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오페라 축제를 열었다. 전국적으로 따져 봐도 이런 오페라 무대를 감당할 수 있는 도시가 몇 군데 되지 않는다.객석점유율 90%를 기록했는데 확실히 대구시민들의 수준도 높이 올라왔으며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 높다고 평가한다.작품도 훌륭했고 특히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합창단이 대구오페라하우스와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 주변도 깨끗이 정비됐고 오페라하우스 내부도 객석을 나무의자로 교체해 성악가들의 소리를 맑고 투명하게 들을 수 있게 했더라.-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선정됐다. 도대체 대구의 음악창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대구는 예전부터 음악의 도시였다. 한국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 선생님도 대구 출신이며 현제명 하대응 김진균과 같이 뛰어난 작곡가들도 대구 출신이었다. 대구는 클래식 전용극장, 오페라 전용극장, 종합예술 극장 등 좋은 무대들이 많이 있으며, 그 극장들을 채우는 공연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에 그 가능성은 끝이 없다고 본다. 현재 많은 대구 지역 출신의 음악가들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대구를 거쳐 전국, 전 세계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대구가 오페라 중심 음악도시가 된 배경에 지역 대학이 한 몫을 한 것으로 안다.△일제강점기 서양 음악이 뿌리 내린 곳이 대구이기도 한데 특히 6·25전쟁을 기점으로 대구는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52년 효성여자대학교, 1959년 계명대학교, 1969년 영남대학교의 순으로 음악과가 신설되면서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음악인들이 배출되기 시작했고 음악 인구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경쟁력도 높아졌다. 당시 부산지역 음악교육 지도자들이 서울보다 가까운 대구로 와서 교육을 받았을 정도다. 1980년대까지 대구의 음악교육은 질과 양 양면에서 뚜렷이 성장한 시기였다. 특히 오페라는 199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 내가 유학에서 돌아오니 지역에 영남오페라단 대구오페라단 계명오페라단 등 민간 오페라단이 27개나 됐다.- 대구오페라 축제가 명실상부 국제적인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한다고 보나.△국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 오페라 작품을 올리고 외국 관객이 많이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함께 국내에서도 우리 지역뿐 아니라 전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또 논개나 이순신, 녹두장군 등 지역별 특색 있는 작품들을 초청하고 그들을 대구 무대에 올리는 이벤트를 여는 것이 좋겠다. 외지인들이 대구를 찾으면서 대구를 홍보하는 것은 덤이다.- 오페라와 대구, 음악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오페라는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즐길 수 있나.△오페라를 구성하는 대본은 소설처럼 그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다. 다만 클래식 음악이라서 어렵다고 느껴진다는 생각들과 외국어로 노래를 불러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편견이라고 본다. 우리가 외국어로 된 영화를 한글 자막을 통해 재미있게 보고 즐기는 것을 생각해봐라. 겨울왕국의 많은 노래들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외국어 가사로 된 노래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선입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선입관을 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본다면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오페라가 음악인들만의 축제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일반인들에게는 오페라의 벽이 두껍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페라축제도 음악인들만의 축제라고 불만을 터뜨리곤 한다. 이런 불만을 깨고 오페라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청중들이 거리낌 없이 보는 오페라가 필요하다. 그래서 야외 오페라를 제안한다. 물론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긴 하다. 대구는 지난 2000년 밀레니엄과 2002년 월드컵 대회때 대구 두류공원에서 대규모 야외 오페라 공연을 열었고 각각 6만명의 관중을 동원했던 기록도 있다. 서울 잠실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면 오페라 대중화에 도움이 되겠나.△오페라를 대중화한다고 싸구려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라면 반대다. 멋진 의상에다 화려한 무대장치로 신비감마저 들게 해서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첫인상을 재미있고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 고교생을 위한 오페라를 만든다며 3억, 4억원 들여 만들어야 하는 오페라를 2천만, 3천만 원 들여 만들어서야 학생들이 감동하겠나. 오페라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 건축 디자인 연극 의상 등이 결집된 종합예술이다. 첫 인상을 좋게 만들지 못하면 접근방식은 실패할 것이 뻔하다.- 한류가 세계적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국내에서 불고 있는 트롯 열풍도 그 하나같다. 성악가로서 트롯 열풍을 어떻게 보나.△사실 트롯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국한된 장르로 생각됐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빠르게 유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이에 발맞춰 트롯은 TV무대뿐 아니라 트롯 계통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현재의 유행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가곡이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도 있는데 교육자로서 어린이들이 트롯을 부르는 데는 왠지 비교육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아쉬운 점이 많다.- 그렇다면 가곡과 트롯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나.△우리 가곡은 서양음악의 클래식이 넘어와 그 기법으로 작곡된 곡에 우리 가사를 붙인 것이다. 가곡의 시어에는 철학과 감성이 농축되어 있다. 이에 비해 트롯은 서양음악의 블루스 계열 대중가요와 일본의 엔카가 넘어와 만들어진 것이다. 작곡 기법만 다른 것이 아니고 한국가곡은 시인들의 순수 예술작품인 시를 중심으로 가사가 만들어졌다. 물론 트롯도 시가 있지만 주로 사랑과 이별을 중점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직설적인 내용의 가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음악교육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장년층이면 중고교에서 학창시절 선구자나 오빠생각, 비목, 보리밭, 그 집 앞, 옛 동산에 올라 같은 가곡들을 배우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음악시간이 없다. 자라는 청소년들의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가곡들은 창의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 감성의 70%가 길러진다고 교육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런 음악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가곡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특히 AI(인공지능)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을 기르기 위해서도 인문학, 특히 음악 교육은 필요하다.- 박태준 기념사업회 회장도 맡고 있다. 우리가 문화강국으로 발전하는 것과 가곡운동이 관계가 있나.△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의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대구는 국제오페라 축제, 뮤지컬 축제, 재즈 축제 같은 음악 축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함께 대구는 음악의 도시답게 가곡의 발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특히 2022년 올해는 한국가곡 100주년을 맞는 해다. 박태준 선생이 동무생각을 발표한 것이 1922년이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가곡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류를 세계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대구에서 대한민국 가곡제를 열려고 한다. 다른 도시에 앞서 이미 가곡제 특허를 얻어놓았다.-성악가로서 음악 행정력도 대단한 것 같다. 대구시립오페라단이 생기고는 예술감독을, 오페라하우스가 생기고 초대 관장을 맡았다. 수많은 음악 단체 대표를 맡았다.△우리는 예술단체에 대한 행정기관의 입김이 강한 듯하다. 문화예술이 전시 효과만 노려서는 발전이 없다. 그런 면에서 문화 예술 책임자를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베르린 필의 캬라얀은 35년이나 지휘봉을 잡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나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관장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맡으면서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세우고 또 추진하고 있다. 행정기관에서 관장들을 돌려막기 하듯 해서는 전시효과만 노려서는 문화 예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서울 덕수초등 2학년 때 KBS의 ‘누가 누가 잘하나’에 출연해 1등상을 받았다. 그 뒤 낙향한 부모를 따라 고향 의성에서 초등학교 다니면서 악대부 단장도 했고 초등 교장이었던 아버지 뜻에 따라 대구상고에 입학해서는 악대부 단원으로 활동했다. 부모의 뜻에 반해 계명대 음악대학에 진학하면서 성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소양은 아마 외가 쪽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여전히 열정이 대단하다. 최근 무대에서는 주로 어떤 노래를 부르나.△성악가로서 젊은 시절에는 ‘가곡 팝’ 같은 신작 가곡들을 많이 불렀다. 요즘 ‘내 마음의 강물’ ‘옛날은 가고 없어도’ 같은 노래들을 즐겨 부른다. 후배들은 원로성악가로 부르는데 나는 여전히 현역이다.□ 김완준(73)의성출신. 대구상고, 계명대 음대·음악대학원과 이탈리아 로시니 국립음악원 졸업,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일본, 폴란드, 독일 등 국내외에서 20여 회 독창회를 갖고 오페라 카르멘 등 50여 편 주역 및 감독한 성악가이자 계명대 성악과 교수로 후학 양성한 교육자.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만든 주역 중 한 명.대구음악협회장 및 대구예술인총연합회 부회장. 대구시립오페라단 초대 예술감독, 대구 오페라하우스 초대 관장, 계명아트센터 초대 관장, 대구경북성악가협회 회장, 경주문화재단 상임이사 및 경주예술의전당 관장 역임. 현 한국공연예술진흥협회 이사장으로 음악 행정가로서 수완 발휘.대구시문화상, 대구예술대상, 금복문화상, 자랑스런 대경인상 대상 수상.계명대 교수 정년퇴임 기념 독창회를 계명아트센터에서 열었고, 70세 기념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독창회를 가졌다. 올 해 대한민국 가곡제를 준비하고 있다.

2022-01-10

담대한 도전과 변화를 선도할 VIP 리더십 필요하다

지금은 담대한 도전 정신과 변화가 필요한 때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이상이고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첨단 기술과 첨단 산업을 선도하는 선진경제강국에 들기 위해서는 VIP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새 국가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대대적인 국가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인재주의 경제학자 이효수 전 영남대총장은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시대일수록 긍정의 힘을 믿고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자세를 가져달라고 당부한다.‘이효수 경세제민’ 블로그를 통해 경제 현안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 전 총장은 창조경제 시대일수록 독서를 통해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고. 그에게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앉아서 하는 독서’다. - 코로나19의 팬데믹 속에 다시 새해가 열렸다. 올 해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지금 우리나라는 전에 없이 어려울 때다. 경제는 저성장의 함정에 빠져 있고 인구는 초저출산의 함정에 빠져 있다. 부분적인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중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국민이 국가가 함께 각오를 다져야 한다.특히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 대통령부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국가적 위기를 인식하고 담대한 비전을 갖고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 국민 모두는 아무리 어려워도 절망하지 말고 긍정적 힘을 믿고 내 일을 스스로 열어 가겠다는 자세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히 VIP 리더십을 강조했다. 지금 왜 VIP 리더십인가.△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산업경제에서 창조경제로 경제발전단계가 이행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새로운 국가비전이 필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혁신이 필요하다. 국가혁신에는 기득권 세력의 강한 저항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면서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면 선진 경제강국으로 도약하지만 산업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급격하게 쇠락하게 된다.VIP 리더십은 Vision(비전제시 능력) Innovation(혁신역량) Passion(열정)을 갖춘 리더십을 말한다. 이번 대선에서 VIP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이유다.- 몇 년 전 출간한 ‘창조경제’에서 세계 최초로 제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창조경제는 어떤 관계인가.△세계경제포럼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2016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냈고 제4차 산업혁명이 그 해 세계경제포럼 주제가 되면서 세계적 이슈가 됐다. 나는 그보다 2년 앞선 2014년 창조경제를 출간했다. 제4차 산업혁명에 의해서 산업경제에서 창조경제로 경제발전단계가 이행하고 있고 제4차 산업혁명과 창조경제는 창의적 지식을 핵심 생산 요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과 창조경제는 함께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창조경제 시대에 제대로 잘 대응하고 있나.△잘 못하고 있으니 지금 중국에도 밀리고 있는 것이다. ‘창조경제’에서 창조경제의 성공 여부는 창조경제 생태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밝히고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9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문재인 정부는 전 정권과 차별화하면서 아예 창조경제라는 용어조차 기피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0년 간 미국과 더불어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허송했다. 그 결과 신성장 동력 확보에 실패하면서 저성장 함정에 빠지고 인공지능, 드론 등 신산업에서 중국에도 밀리는 상황에 왔다.- ‘Y형 인재에 투자하라’는 책을 냈고 Y형 인재를 강조한다. 현재 영남대 홈페이지에 Y형 인재 항목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영남대의 인재상이 되었다.△우리나라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정형화되고 표준화된 복사(Xerox)형 인재 육성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후발 산업국가일 때는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X형 인재들을 활용하여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다.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적 지식을 생산(Yields)할 수 있는 Y형 인재를 양성하고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Y형 인재는 인성과 창의성 진취성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를 말한다. 이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을 혁신해야 하며 교육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학자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총장 선거에는 왜 나왔나.△기획처장을 맡았을 때를 기억하는 동료 선후배 교수들이 나를 강력 추천했다. 당시 총장 선거는 고교동문전이기도 했고 일부 정치권을 모방한 혼탁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한사코 반대하다가 선거 캠프에 ‘보직약속, 접대골프, 룸살롱접대’ 세 가지를 안 하기로 약속하고 출마했다. 대학과 지성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식의 총장은 내 가치관이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서 ‘저래서 무슨 선거를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우리 교수들의 수준을 믿고 선거를 치렀고 당선됐다.- 기획처장으로서 무슨 일을 벌였기에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나.△서울대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당시 상경대학장이 부학장을 제안했다. 나는 아직 공부할 나이여서 안 된다고 거절했으나 워낙 강경했다. 50대가 맡던 보직을 당시 33세에 맡았다. 그 경력으로 법·상대 통합 고시원이 생기고 2대 원장을 맡았다. 특강과 모의고사, 세미나 등 교육혁신을 통해 3년 만에 17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그 인연으로 김기동 총장의 발탁으로 최연소 기획처장이 되었다.기획처장을 맡으면서 ‘나는 총장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지금 모 대선후보가 충성관을 피력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기획처장으로서 학교를 혁신하면 기득권 조직원들로부터 ‘욕’을 먹을 것이고, 혁신하지 못하면 보직을 맡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획처장 재직 당시 예·결산 전산시스템을 만들어 재정의 누수를 막는 등 학교 운영 시스템을 전면 정비했다.- 총장이 되어서는 또 어떤 변화를 몰고 왔다고 평가하나.△학교 예산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재정운영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 교내 회계전문가 등 30명을 동원하고 외부 기업과 함께 130억 원이 소요된다는 비용을 46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대학 특성에 맞는 교육과 연구 분야를 포함한 모든 재정 집행 내역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단과대학 등 250개가 넘는 교내의 각 부서별 통장을 일거에 없애버렸다.이와 함께 다단계 직원 채용 규정을 만들어 외부 청탁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등 학교의 인사시스템도 바꿨다.- 영남대 로스쿨이 다른 지방대와 달리 최고 수준 명문대학이 되면서 비결에 관심이 높다.△로스쿨 초기 10년 내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양극화 되고 초기 전략이 로스쿨 운명을 결정한다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의 지방 사립대학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초기 단계에서부터 경쟁 우위 확보가 필요했다. 입시요강을 변경하고 ‘대학을 학원화 한다’는 비판 속에 고시원장 시절 효과를 본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다행히 교수들도 적극 협조해주어 지금은 영남대 로스쿨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예상대로 변호사 시험에서 전국 톱3에 들어가면서 명성을 확보했다.- ‘박정희 스쿨’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1987년 하버드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에 연수와 있던 개도국 공무원들이 한국의 압축성장에 대해 물어왔다. 순간 한국의 개발 경험과 새마을운동으로 특화된 박정희 스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총장이 되어 이 생각을 실천했다. 구미시의 지원으로 현판식까지 했는데 학생들이 현판을 떼어 총장실로 와서 항의했다.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인권을 중시하는데 빈곤이야말로 가장 큰 인권 유린 아니냐. 수많은 개도국 지도자를 양성하여 세계빈곤퇴치운동에 앞장서는 자랑스런 대학을 만들겠다’며 박정희 스쿨의 설립 계획과 전략을 이야기해서 학생들을 설득했다. 현재 70개국에서 박정희 스쿨에 지원하고 졸업생들이 모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의 영남대 연장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안다.△2004년 경산시가 발표한 경전철 건설 계획을 보고 경산시 건설도시국장을 찾아가서 대구 지하철 2호선을 연장할 것을 요청했다. 그 뒤 경산시 재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대구시와 경북도, 경산시가 각각 2대 1대 1로 비용을 분담하자는 논리를 제공했다. 결국 경산시의 노력과 대구시의 협조로 영남대 연장 노선이 추진됐다. 그래서 8년 후인 2012년 영남대 총장으로서 2호선 영남대역 연장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정년 퇴직 이후에도 ‘이효수 경세제민’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최근 ‘이효수 블로그’의 내용들이 일간지에 자주 소개되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이효수 경세제민’에는 경제학자로서 국내외 주요 경제 문제들을 분석하고 ‘이효수 세상보기’에서는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본 정치 사회 문화 등 일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청년의 길’에서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자유여행’에서는 세계 배낭여행기룰, ‘시의 정원’에서는 자작시를 올리고 있다.- 창조경제론자가 특히 독서와 여행을 강조한다.△퇴직하면 부부가 세계 배낭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는데 코로나가 막아 버렸다. 내게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면서 하는 독서’다. 아담 스미스가 여행에서 돌아와 국부론을 썼던 것처럼 여행을 통해 실제 공부를 하고 싶었다.제4차 산업혁명 시대 창의성이 강조될수록 책과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은 정보를 신속히 확보할 수는 있어도 생각의 깊이나 창의성을 기르는 데는 종이신문이나 독서를 당할 수 없다. 독서를 통해 글의 이면과 행간, 글쓴이의 의도까지 읽어내면서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학회 참석이나 공무 출장으로 세계 여러 곳을 많이 다니지 않았나.△물론 세계 여러 도시들을 갔지만 대부분 학회나 공식 업무에 전념했다고 생각한다. 페루 갔을 때 한국에서 온 학자들이 30여 명 있었는데 개회식이 끝나고 나니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다. 나는 사회와 발표에 토론과 세계 석학들과의 만남 등으로 닷새를 꼬박 학회에 매달렸다. 학회가 끝난 후 따로 시간을 내어 마추픽추를 다녀왔다. 그러나 티티카카 호수는 끝내 가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 이효수(李孝秀·70)청도출신. 대구상고. 영남대 경제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석사, 박사.영남대 교수, 13대 총장.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부회장, ILERA 아시아대표 집행이사, 대통령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대통령자문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 위원, 대통령자문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 위원, 대구경북 고용인적자원포럼 창립 초대대표, 창조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포럼 초대대표 등 사람중심 경제활동에 주력한 인재주의 경제학자.사람중심 경세제민을 화두로 PDR시스템 이론, 단층노동시장론, Y형 인재론, 창조경제론 등을 개발했다.한학자였던 할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가난한 농촌에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로부터 지혜와 자비의 가치를, 아버지의 유훈을 통해 도덕과 성실을 배웠다./이경우 편집위원

2022-01-03

때와 장소 가리지 않는 재난… “조심하고 실천해야 안전”

재해는 계절이 따로 없다. 화재를 비롯해 사람이 만드는 재난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고도산업사회에서 건축 시설과 구조물이 대형화 고층화 하면서 재난도 복합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모든 재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진압과 구조의 대응 요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 재난 현장의 최일선에는 구조와 진압에 나서는 소방대원이 있다. 119구조단도 그 중 하나다.소방관으로, 응급구조사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리가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양순주 대구소방본부 119구조단장. 국민들에게 “먼저 자신부터, 그리고 주위부터 안전을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라며 “실천해야 안전하다”고 생활 속 안전을 당부한다. - 특수구조단은 일반 소방관과 어떻게 다른가.△대구에는 8개 소방서가 있다. 11개 구조대, 8개의 구급대에 68대의 구급차가 있어서 각종 사고가 날 때마다 출동한다. 지난 2012년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사고는 일대를 초토화시켰고 지역민과 공장들이 심각한 재난을 겪었다. 그런 위험물질 사고와 화생방 사고, 지하철 사고, 수난사고 등 특수한 사고에 대응하려면 특수한 장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지난 2013년 지역마다 별도의 대응조직을 만든 것이 119특수구조단이다.- 특수구조단의 특수 장비는 어떤 것이 있나.△화학구조에 대비한 화학분석장비와 시료 채취, 제독차 등이 있다. 또 소방헬기가 2대 있다. 헬기 2대 중 최근 구입한 1호기는 주로 구조활동과 응급이송을 하고 2호기는 주로 산불진화에 활용하고 있다.특수구조대는 팀당 8명씩 3개 팀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소방항공대는 대원 30명이 4개팀으로 편성돼 근무하고 있다. 각 팀마다 조종사와 정비사, 구조대원, 구급대원 등으로 구성돼 있고 항상 출동 대기 상태에 있다. 특히 최근 구입한 1호기는 헬기 내에 응급의료장비가 완비되어 있어 구조활동과 응급이송을 하고 있으며 2호기는 한 번에 소화수 3000리터를 실을 수 있는 대형 헬기로 주로 화재 진압에 활용한다. 전국의 산불 현장에도 지원한다.- 특수구조단의 단원은 어떻게 선발하나. 일반 소방관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119특수구조단은 119특수구조대와 119항공대가 있다. 특수구조단이라고 특별히 능력이나 자질을 가진 요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다만 화학 관련 사고에 대비한 특수자격자와 소방헬기 조종을 위한 조종사와 정비사는 특별한 자격을 요구한다. 조종사는 20년 이상 비행경력을 갖고 있다. 정비사는 군이나 민간항공사 정비사 출신 전문가를 대상으로 특별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구조대원과 구급대원들은 소방서의 구조대, 구급대와 순환근무 한다. 모든 소방관은 체력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위험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119구조대원은 군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다고 보면 된다.- 화재 진압을 위한 출동 골든타임은 얼마인가.△7분이다. 화재 발생 원인 중 대표적 요인인 전기화재를 보면 과열로 소파 등 가연물에 불이 붙고 몇 분 동안은 불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온 실내로 불이 번지면서 대응 곤란한 시기가 오는데 이 시간을 대략 8분 정도로 보고 있다.대구시의 경우 화재 발생시 소방차량 7분 이내 도착률이 85% 이상으로 전국 3위 수준이다. 전국 평균은 67% 정도인데 거리가 멀거나 도로가 좁은 곳은 현장 도착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도의 경계를 허물고 거리 중심으로 출동하여 초기단계부터 공동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재난 발생시 인접 출동대가 즉시 지원출동을 하고 있다.- 화재나 재난사고가 복잡하고 대형화 다양화 되고 있다. 건물의고층화와 산업 현장의 대형화에 대비한 소방 장비는 어떤 것이 있고 대응력은 충분한가.△최근 부산 울산 등의 사례에서 보듯 초고층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가 어렵고 피난 대피 문제도 있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대구에는 52m 정도의 고가사다리차가 9대 있지만 최고 17층 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 현재로서는 초고층건물의 경우 외부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그래서 초고층건물에는 강화된 소방 방재시설을 설치하고 철저한 유지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또 외벽 건축자재의 불연재 사용과 대피공간 설치 의무화 등 안전성 강화를 위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화재 예방 생활화와 초동대처 요령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군사 농업 물류 교통 등 여러 방면에서 ICT(정보통신기술)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접목한 드론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소방에도 드론을 활용하고 있나. 할 계획은 있나.△현재 우리 특수구조대에서도 4대의 드론을 운용하고 있으며 화재 현장이나 강변 수색현장 등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구는 인구와 건물들이 집약된 도시여서 드론 운용 여건이 아주 좋은 편이다. 대구에 전문드론대를 1개소만 운용해도 화재 진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대구에는 내년 상반기에 드론 전용 지휘차량이 도입될 예정이다.- 직업에 따라 여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최근 여성경찰관이 현장 출동에서 타깃이 되기도 했다. 소방에도 여성 소방관들이 많이 있다. 채용에 어떤 차이를 두나. 특수구조단에도 여성 소방관이 있나.△지금은 없다. 채용에는 차별을 두지 않지만 현장 근무에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작은 여성이 20kg이 넘는 공기호흡기 등 방호 진압장비를 걸치고 반동이 심한 소방호스로 화재를 진압하거나 70kg이 넘는 피해자를 구급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캐나다에는 소방관 채용에서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들었다. 우리도 중앙 차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방관 중에서도 더 힘들게 일하는 부서가 있다면 어디인가.△119 구급대원들이다. 그들은 주간은 물론 심야에도 119구급차를 타고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 구급대원으로 응급 환자를 이송하다가 폭행당했을 때는 정말 내가 왜 소방관이 되었나 후회되기도 했다.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술 취한 응급환자로부터 얼굴을 얻어맞기도 했고 한 번은 배를 걷어차이기도 했다.대구시의 2020년 출동 건수를 보면 화재는 1천233건(0.8%)이었고 구조가 3만869건(20.4%), 구급은 11만9천379건(78.8%)를 차지했다. 대부분이 구급출동이고 그만큼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대원들도 많다. 대구에서 최근 6년 동안 119구급대원을 폭행해서 징역 등 처분을 받은 사람이 56명이나 되고 그 중 징역이 7명, 집행유예 18명, 벌금 18명이고 재판 중인 사람이 11명이다.- 화재 진압하다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어떻게 부상을 당했나.△119구조대장 때 일이다. 낮에 출동을 네 차례나 했는데 그날 야간에도 당직 근무를 섰다. 자정쯤 모텔 4층에서 화재가 나서 1시간이 넘도록 진압 작전을 펼쳤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플래시 오버를 접했던 현장이었고 롤 오버까지 모두 경험한 현장이기도 했다. 기진맥진한 가운데 또 다른 현장으로 출동했고 불을 끄던 중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허리를 다쳐 4주간 입원했다. 당시에는 공상 처리하면 기관평가에서 큰 감점을 받게 되니 공상처리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병원 치료비도 지원받지 못했다. 현재는 이런 불합리한 기준이 개선되어 공무상 부상 시 국가 지원제도가 좋아졌다.- 소방청 국회계장을 하면서 어떤 일을 했나.△3년 동안 세종청사와 여의도 국회를 왕래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소방청이 추진하고 있는 법률 제개정과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의원실과 전문위원, 입법조사관 등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일을 했다.지난해 소방시설 공사 분리발주와 관련된 법안이 통과됐을 때는 정말 보람을 느꼈다. 정보통신공사와 전기공사는 1970년대부터 분리발주를 했지만 소방공사는 규정이 없었다. 그래서 건축주가 소방시설공사를 건설공사에 포함해서 일괄 발주하면 전문소방업체가 하도급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저가공사 수주가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 법이 통과된 것이다. 소방인들의 염원이었고 선배들의 20여년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 이 공으로 지난해 ‘자랑스러운 소방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험상 가장 위험한 현장은 어디인가.△폭발화재 현장이다. 일반 가정마다 LPG나 LNG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배관불량이나 가스레인지 불량 등으로 가스가 누출하면 점화원이 있으면 폭발한다. LP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바닥 부분에 체류하고, 도시가스로 주로 사용하는 LNG는 공기보다 가벼워서 천정부분에 체류한다. 이 때 전기 스위치를 켜는 순간 그대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냥 화재뿐만 아니라 건물이 붕괴되고 물건들이 날아가 버린다. 가스레인지 불 관리도 중요하지만 평소 가스누출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소방관이 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때는 언제인가.△2007년 ‘영웅소방관’에 선정되었을 때다. 1992년 임용돼 동료들로부터 불 잘 끄는 소방관으로 인정받았고 구조대원과 구급대원으로도 3년씩 활동했다. 정말 충실히 해왔고 이것을 국가에서 인정해주니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이튿날 아내가 장식장을 구입해서 영웅소방관 상패를 진열해 줬다. 몇 년 동안 출근할 때마다 영웅소방관 상패를 보면서 경례를 하고 다녔다.- 연말연시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실천해야 안전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다. 불이 났는데 옆에 소화기가 있어도 사용 요령을 몰라서 큰 불로 키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 가까운 사람이 눈앞에서 심정지가 왔는데 심폐소생술을 할 줄 몰라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장도 보았다. 안전에 대한 관심을 조금만 더 가져주시고 다소 귀찮더라도 주변의 불안전 요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스스로 지키는 것은 ‘오로지 실천에 달려있다’고 다시 당부한다.양순주(梁淳周·54)전북 남원. 남원고, 대구대 역사교육과, 방송통신대 미디어 영상학과 졸, 강원대 소방방재공학 석사.1992년 전주소방서에서 소방사로 임용됐다. 이후 정읍 남원소방서에서 근무하다 소방청을 거쳐 남원소방서 현장기동단 지휘조사팀장을 맡았다. 2015년 대구 달성군 현풍에 설립된 중앙119구조본부 기획협력팀장으로 대구에 와서 3년간 근무, 올 2월 소방본부 특수구조단장(소방정)으로 발령. 영웅소방관, 자랑스러운 소방인상 수상.어릴 적부터 남원에서 외가인 대구로 왕래했던 대구통. 5시간 걸리던 대구길이 지금은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며 광주 대구 고속철 건설에 기대. 40대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백두대간을 5년에 걸쳐 완주하고 이후 산악자전거로 남한 종주와 4대강 종주. 수시로 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다./이경우 편집위원

2021-12-27

포스텍 모범생, 전기차 배터리 벤처 기업인 변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지구인의 과제가 된 탄소중립,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기차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고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의 생산과 재사용, 관리는 또 하나의 과제다. PM그로우는 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에서 관리하고 재사용하는 플랫폼 기업이다.배터리를 관리하고 재사용함으로써 환경 문제와 에너지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젊은 기업인. 박재홍 PM그로우 대표는 포스텍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기업인이 되어 포항에 돌아왔다.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과학 기술로 산학연 협동의 구체적 실현을 통해 사회와 인류에 봉사한다는 포스텍의 건학 이념을 실천하는 모범생이다. 연어가 모천으로 돌아온 것처럼.기업 경력 21년의 중견기업인, 그의 목표는 전기차 시대 배터리를 편리하게 사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장차는 전기 분야에 IT시장을 여는 것이다. - 수도권을 두고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에 배터리 재사용 전용공장을 세웠다.△여건이 배터리 재생공장을 설치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포항은 신재생에너지의 도시이고 또 배터리특구로 지정돼 있다. 블루밸리는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재생 배터리 공장을 설립해서 운영하기에 적합하다. 교통 접근성도 뛰어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구하는 데도 유리하다. 내가 공부했고 사랑받았던 포항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PM그로우는 어떤 회사인가.△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관리 부문 선도기업이다. 현재 경기도 의양시 인덕원 IT밸리에 본사를 두고 서울 서초동에 사무실, 용인에 공장이 있으며 직원 50명에 매출 150억원을 올리고 있는 차세대 에너지 핵심 분야 기업이다.이차전지, 배터리, EMS, RE-USE, ESS, BaaS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전주기에 걸친 사업으로 전방 사업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 및 운영, 후방사업으로는 잔존 성능평가, 리유즈 제품 제조 및 운영, 서비스 플랫폼 사업으로는 렌트카 케어, 데이터 관리 등을 하는 전기차 서비스 플랫폼이다.- PM그로우의 목표는 전기 자동차의 배터리를 관리함으로써 전기 자동차 전체의 이용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나.△‘전기차 배터리는 빌려 쓰는 것이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고객들이 편리하게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회사로 보면 된다.PM그로우는 단순히 전기 배터리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회사를 넘어선다. 배터리에 IT를 입힌 차세대 기업이다. 자동차 배터리 팩에 내장된 IT기술로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배터리의 사용수명, 고장관련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관리해주는 사업이다. 비싼 자동차 배터리를 우리가 사서 소비자에게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관리료를 받는 것이다. 비싼 배터리를 우리가 사 주고 관리까지 해주니까 차량 소유주도 부담이 없다.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배터리다. 이건 내연기관 자동차는 엔진 미션 등 복잡한 구조인 데 반해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의 단순한 구성이고 특히 배터리가 핵심이다. 이 배터리가 버스는 1억원, 승용차의 경우 2천만원 정도로 차량 가격의 30~40%를 차지한다. 또 배터리는 수시로 전기를 충전해 주어야 하고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교환해야 한다. 전기차에서는 주행거리가 중요하다. 배터리 성능의 75% 정도가 남을 때 배터리를 바꿔줘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우리 회사의 임무다. 전기차 배터리에 센서를 달아서 실시간 모니터링 함으로써 부품의 성능이나 수명, 앞으로의 고장 여부 등을 관리해주는 것이다. 배터리 팩은 IT기술이다.- 한국전기차산업협회장도 맡고 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 온도를 1.5도 이내로 줄이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는 사태가 과연 올 것인가. 현재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탄소중립은 피할 수 없는 시대 과제이다. 우리나라도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기차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벤츠가 203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만 생산키로 했다. 굼뜨던 일본 도요타도 2035년부터 전기차 생산을 위해 17조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대형 트럭은 수소차로 바뀔 가능성이 있지만 일반 트럭이나 승용차 버스는 전기차로 바뀌어갈 것이라는데 자동차업계나 학계에서 이견이 없다. 현재 2% 정도인 전기차가 2030년이면 25%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기차로 전환하면 우리 사회가 모든 분야에서 큰 전환이 이어질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어떤 것이 있겠나.△우선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해야 한다. 전기차 보급률이 30%가 되면 전력이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전기버스 1대가 300KW, 승용차가 60KW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데 가정집의 하루 전기 사용량이 평균 5KW다. 전기버스 1대가 하루 2번 충전하면 이는 120가구의 전기량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또 전기차가 보급되면서 기존의 차량 정비 시스템이 모두 쓸모없어 진다. 전기차 관리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중고차 시장과 보험회사도 전기차 시장에 맞춰야 한다. 도대체 전기를 얼마나 쓰고 또 배터리 용량이나 수명이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산업구조도 배터리 충전에서 운반 이동 장착 등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어떻게 전기 에너지 관련 사업을 벌이게 됐나.△처음엔 IT관련 기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벤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 역할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한전이 독점하고 폐쇄적이던 전력이 2011년 합리화 계획을 내놓고 개방을 시작했다. 전기계통의 사업을 하면 전기를 한전에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전기에 IT를 접목한 기업을 생각한 것이고 그것이 PM그로우다. P는 Power로 힘은 곧 전기를, M은 Management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IT출신으로서 모든 제품은 완벽한 것은 없으니 데이터로 전기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로우는 성장을 의미한다.- 초기 비용이 만만찮을 것인데, 창업자금 마련에 어려움은 없었나.△벤처 기업의 초기 비용은 당연히 부담해야 한다. 사업성만 비전이 있으면 많은 금융 자본들이 투자해준다. 내가 보기에 많은 캐피탈(금융 자본)이 대기하고 있더라. 문제는 그때까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PM그로우는 버스나 택시 회사들로부터 배터리를 사면서 그 담보물이 있고 또 그 관리에 따른 수익이 있기 때문에 국내 유수의 금융 자본들이 투자를 해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또 그들은 우리 기업의 비전과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IT 기업을 창업해서 꽤 성공했다. 계속 할 수는 없었나.△2001년 처음 기업을 시작할 때 IT 분야 ‘유라클’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직원 25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서 내 회사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고객과 시장의 요구에 맞춰가야 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료를 제대로 지불해 주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다. 은행 같은 곳에 프로그램을 납품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니 10년 만에 접었다.그 때 송도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 3천500세대에 납품할 기회가 생겼다. 붙박이 냉장고처럼 인바디 프로그램인데 개인의 체력측정을 통해 맞춤형 운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프로그램당 100만원 받던 것을 3개당 500만원을 받았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유형의 하드웨어에 장착해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스텍 1회 졸업생으로 1호 박사다. 왜 학문의 길을 두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나.△포스텍 1회 입학생이자 포스텍에서 석 박사를 마쳤고 목표는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박사 후 병역특례로 대기업을 갈 때 많은 곳을 제쳐두고 현대전자를 선택했다. 과장으로 들어가서 차장으로 나왔다. 나중에 교수 할 거니까 4년 동안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내 일을 찾아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었다. 현대에서 처음 2년은 시스템 개발 팀장으로, 마지막 2년은 당시 이슈가 됐던 이동통신 3G 표준화 관련 업무를 맡았다. 표준화는 미리 몇 년 앞을 내다보고 벌이는 전쟁이다. 지금은 5G시대지만 당시 삼성이나 현대 모두 퀄컴에 로얄티를 주고 있었고 통신사들이 서로 자기네 특허로 시스템을 장악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던 시기였다.그 때 핸드폰에 인터넷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1년 병역특례가 끝나고 나오니 한 친구가 ‘벤처 같이 하자’고 제안해 왔다. 그 때는 벤처 붐이 식어들 때였지만 ‘군 특례로 경험을 쌓았으니 내 인생에서 2년은 바치자’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현대전자에서의 경험을 살려 유라클을 창업했다. 대기업은 지정된 항로를 갈 수밖에 없는 항공모함이라면 벤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은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창업했다.- 포스텍 창업자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10주기를 맞았다. 생전 박 회장과의 인연이나 기억나는 일화가 있나.△당연히 많은 만남이 있었다. 특히 대학과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신 분으로 기억한다. 졸업 후 총동창회 부회장이었던 시절 박회장님에게 ‘앞으로 저희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그 때 박 회장님은 ‘각자 능력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인재가 될 것’, ‘서로 도와 더불어 살아갈 것’, ‘주변에 많은 기여를 할 것’ 등 세 가지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세 번째 기여에 대한 말씀에 우리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기여를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나. 지금 블루밸리에 공장을 설립한 것도 그 한 예로 봐도 되겠나.△그것도 포함된다. 포스텍 졸업생이 4천400명 정도 된다. 기업인이 300명 정도다. 그 중 100명 정도가 APGC(포스텍동문 기업인모임) 회원이 100명이다. 이제 포스텍 동문은 창업하면 주식 1% 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도 벌써 몇 억을 냈다. 이제 동문재단이 설립됐고 앞으로는 우리가 지역과 모교를 위해 지금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이경우 편집위원

2021-12-20

인문적 소양과 소통능력 가진 사람들이 가치있는 삶 살 것

학생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교사는 학생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제자 가르치는 것을 보람으로 삼아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에서 강사로, 교육 컨설팅과 교육설계자로, 언론을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른 교육의 길로 이끌려고 노력한 윤일현 교육문화연구소 대표의 교육관이다.대학입시, 목숨 걸고 명문대를 고집하기보다 ‘진짜 경쟁은 대학 입시 후 한다’는 긴 호흡으로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선택하라고 충고한다.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직업은 삶의 방편이고 이제는 과정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글과 말은 그 사람의 세계다. 책을 읽어야 사고가 깊어지고 바르게 읽을 수 있어야 바르게 쓸 수 있다.” 무슨 교육이든 책읽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시인이자 교육평론가 윤일현의 지론이다. - 올 수능은 ‘불수능’이라 하더니 실제 성적이 낮아졌다. 시험 난도가 수험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수험생들은 문제가 어려워 다소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도 때문에 유불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전체 입시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 만점자가 1명에 그친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언론에 제발 ‘지난해보다 몇 점 어려웠다’ 같은 분석은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상대평가는 문제가 어려워도 전체 응시자의 4% 안에 들면 1등급이 된다. 또 절대평가는 문제가 어려우면 1, 2등급 받는 학생이 적으니 피해를 본다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한 수험생이 적어 수시에서 모집 정원을 다 뽑지 못한다면 정시로 이월해서 뽑는다.- 수능시험 성적을 받아든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수능시험은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다.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 등을 대학 나름의 방식으로 조합해 수치화 한 후 지원자를 일렬종대로 세워 정원만큼 잘라서 합격시킨다. 문제가 어려우면 변별력이 좋아 앞뒤 사람의 간격이 넓어진다.수험생에게 수능시험은 스포츠에서 선수 시드배정과 같은 것이다. 결승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유리한 시드에 배정돼야 한다.고교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2016년을 기점으로 80% 아래로 떨어졌다. 학부모의 생각은 가장 현실적이다. 이제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사회 진출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학력에 관계없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면 그 때는 지금의 입시와 교육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는 ‘진짜 경쟁은 대학에 들어가서 한다’는 긴 호흡으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최근 여러 해 동안 수시가 대세가 되었다가 ‘조국 사태’ 이후 다시 정시 인원이 늘고 있다. 두 제도의 장단점과 현행 입시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말해 달라.△대다수 학부모와 학생은 공정한 전형을 원한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기준으로 하는 수시는 정착되기 어렵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신뢰성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객관식 시험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은 수시와 정시 비율을 5대 5 정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기능공적인 지식인을 양산해야 하던 때는 공정성 시비가 거의 없는 단답식 또는 객관식 문제가 힘을 발휘했다. 지금은 창의력이 경쟁력이자 생존수단인 시대다. 교과 성적과 수능점수에 의한 한 줄 세우기를 지양하고 학생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중시하겠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고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다면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왜 말썽이 되고 있나.△1920년대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도입한 미국에서도 이 제도가 특정 인종을 배제하고 원하는 학생들을 골라 뽑기 위한 도구로 악용된다는 논란이 일었을 정도다. 당시 아이비리그의 유대인 합격 비율은 하버드가 21.5%, 콜롬비아가 40%에 육박했다. 그러자 성적이 아닌 인성, 리더십, 과외활동, 봉사 등을 고려한 새로운 학생 선발 방식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미국의 경우 대학마다 수십 명에 달하는 훈련된 전문 입학사정관이 있다. 그러나 계약직 입학사정관이 대부분인 우리 대학에서 단기간에 수백, 수천 명을 심사하여 창의력과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적 비중을 줄이고 비교과영역을 중시하라는 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단기간에 우수 학생을 변별하기 위해서는 수상경력이나 외국어 인증, 대외활동 등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신종 고급과외 시장이 형성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전국 단위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중단하고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를 폐지하는 등 급속도로 변화를 주려고 한다.△평가 없는 교육은 없다. 맞춤식 수업을 하려면 학생의 현재 수준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학업성취도평가를 해야 한다. 다만 그 평가 자료에 석차를 매겨 우열을 가리는 식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잘하는 학생은 더 잘 할 수 있게 자극을 주고, 좀 뒤처지는 학생은 좌절감이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다소 느리지만 배우는 기쁨을 맛보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 못하면 모든 것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태도도 바꿔야 한다. 교과 성적은 다소 부진해도 다른 영역에서는 탁월한 학생이 많다. 자사고 특목고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공적인 자리에서 평등론을 주장하고, 자사고 특목고에 반대하는 수많은 학부모를 만났다. 그들은 정작 자기 자녀의 문제에 가서는 거의 예외 없이 엘리트 교육을 하려고 했다. 그런 이중적 태도가 생산적 토론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 상당수 대학은 더 좋은 학생을 뽑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대부분 지방대학은 모집 정원을 못 채우고 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수도권 상위권 대학도 정원을 줄여 수험생 감소에 대한 고통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지방대학은 정부의 지원과 대책만 요구해서도 안 된다. 모집 정원을 과감하게 줄이고 산학연계를 강화해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학, 지자체, 지역 산업계, 교육, 언론계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학원 강사로서 경북대 총장과 학장 등 보직교수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면서 안주하고 있다고 질타한 적이 있다. 그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지방거점대학으로서 경북대가 변해야 하는 이유를 마라톤에서 1등 기록이 좋아야 2등, 3등도 성적이 좋아진다고 비유했던 기억이 난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넘어 선진국에 진입했다. 이제 우리 교육도 행복을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성적과 입시를 연관시키는 교육에 집착해야 하나.△창의력을 가진 전문가를 배출해야 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과거의 교수·학습 방법을 바꿔야 한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아프리카의 강 하류에서 살았던 원시 부족 이야기가 그걸 말해 준다. 백인들이 상류에 댐을 건설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카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댐이 완공되자 그 부족과 그들의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지금 그 댐에는 인공지능(AI), 로봇 같은 물이 채워지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카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4차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끄는 구글이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협업’이다. 우리는 아직도 내 자식, 내 가족만 잘 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소통, 상생, 협업’ 같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제도와 교과과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 앞으로는 창의력, 상상력, 협동심, 인문적 교양, 감성, 공감 등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직업에 종사할 것이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다. 의사, 판검사, 공무원 등 직업은 삶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수단을 얻는데 진을 다 뺀다. 이제는 과정을 중시하고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행복’이란 말이 늘 함께 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독서 교육을 특별히 강조했다. 최근 ‘그래도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교육 평론 책도 펴냈다.△오랜 교육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것이다. 제철고에서 독서반을 이끌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독후감을 숙제로 냈다. 100페이지를 넘겨야 비로써 등장인물이나 스토리가 익숙해지는 장편인데 학생들을 통해 독서의 효과를 확인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심이 돼야 하고 이를 고양하기 위해 시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입시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면서 입시학원에서 ‘교육문화센터’를 열었다.△사설 입시 학원 진학지도실장으로 수많은 교육 컨설팅과 교육설계를 했다. 언론사와 공동 입시설명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돈과는 인연이 없었음을 실토한다.학부모를 상대로 한 인문학교실 ‘윤일현 금요강좌’를 15년 동안 280여 회 가졌고 거쳐 간 수강생만도 5000명이 넘는다. 인문학 강좌 붐이 일면서 백화점에서도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자 중단했다. 학부모들의 재개 요청에도 ‘아쉬울 때 끝내자’며 2019년 종강했다. 입시학원에서 문화센터를 연 것은 학원이라는 곳을 탈출하고 싶어서였다. 찰리 채플린이 ‘세상이 너무 슬퍼서 나는 웃긴다’고 했다. 학원이 너무 몸서리나는 무한경쟁의 장이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며 현장에서 40년 가까이 활동했고 지역 입시계에서는 산증인으로 알려졌다. 또 시인, 교육평론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팬이 많다.△다양한 일을 겪었고 많은 고비가 있었다. 그때마다 바른길을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나 스스로는 동그란 구멍 속 네모 같은 존재였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분들이 많다. 이제 읽고 쓰는 일에 좀 더 힘을 쏟으면서 개인과 단체가 도움을 요청하면 필요한 봉사를 하려고 한다. 힘든 시기를 함께 한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겨울 모두가 따뜻하고 행복하면 좋겠다.윤일현(尹一鉉. 65)대구 출생. 계성고. 영남대 영문학과 졸업포항제철고 교사로 재직 중 전교조의 전신인 ‘민주교육전국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가 해직됐다. 이후 지역 주요 입시기관에서 최근까지 입시전문가, 교육평론가로 활동.현재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대구시인협회 회장. 저서로 시집 낙동강, 꽃처럼 나비처럼,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 등과 교육 평론 불혹의 아이들,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밥상과 책상 사이, 그래도 책 속에 길이 있다 외 다수가 있다. 조부가 척사유생(斥邪儒生)인 항일 독립 운동가의 집안에서 자랐고 5·18때는 수배명단에도 올랐다. 오랜 단절과 고립, 추방에 익숙하다며 스스로를 교육계의 투사도 현실주의자도 아닌 낭인(浪人)이라고 겸손해 한다./이경우 편집위원

2021-12-13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대구시민의 발’ 될 것”

하루 40만명이 넘는 고객들이 1천250원으로 대구지하철 1호선에서 3호선까지 91개 역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다. 거기에다 30분 이내면 시내버스를 무료로 환승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시민의 발이다. 전체 이용자의 30%는 무임승차하고 그 손실비용을 감당 못해 몇 차례 정부에 지원을 건의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내년이면 개통 25년을 맞는 대구지하철은 몇 차례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그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도 있다. 그래서인가. 홍승활 대구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철도, 대한민국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하는 대구도시철도를 계속 지속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 대구 지하철이 개통 25년을 맞는다. 사장으로 대구도시철도를 자랑한다면.△장년이 된 대구도시철도를 안전과 고객 서비스에서 전국 최고의 도시철도가 되도록 노력했고 또 전국 최고의 도시철도라고 자부한다. 3호선 지상철의 성공적인 개통과 지하철 1·2호선의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다. 대구도시철도는 국가고객만족도 13년 연속 전국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마자 24시간 비상대책방역본부를 설치 가동해 열차와 역사에 대해 방역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에는 과잉 대응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시민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을 방역해 도시철도를 통한 코로나 감염은 단 한 건도 없었다.- 1·2·3호선이 각기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시민들은 도시철도 3호선의 무인 운행을 불안해한다.△1997년 개통된 1호선과 2005년 개통된 2호선은 모두 1인 승무 방식으로 같이 운행된다. 그러나 2015년 개통된 3호선은 이와 달리 종합관제실을 통해 원격 자동제어 되는 무인 운용 시스템으로 설계 건설됐고 운영된다. 무인으로 운행되지만 차량상태나 차내 상황을 원격 모니터링하고 직원이 안전관리 차원에서 1명 승차하고 있다. 객실 내 외부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화재에 대비해 승객탈출용 스파이럴 슈트와 워터 미스트식 소화설비가 구축되어 있다.특히 3호선은 폭설 시 결빙 방지를 위해 강궤도빔 내부에 열선을 설치하고 본선 궤도빔 신축 이음부를 충격완화형 핑거 플레이트로 교체했다. 강궤도빔에 논슬립 테이프를 붙여 전동차의 미끌림을 방지하고 있다.사실 1·2호선도 운행은 무인으로 종합 통제되고 있다. 객차가 지하철 역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정지되며 기관사는 승객들이 안전하게 승차한 것을 확인한 뒤 문을 닫고 출발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자동 시스템으로 구간을 56, 57분 사이 표정속도로 운행되고 있다.대구도시철도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안전관리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역사와 열차, 관제 등이 실시간 협력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장의 경영 노하우가 궁금하다. 어떻게 13년 고객만족도 1위에다 16년 연속 무분규 노사평화를 실현할 수 있었나.△노조를 이해해주니 노조와 공사가 서로 윈-윈(win-win)한 것이다. 2014년 취임하고 보니 대구도시철도 노조가 꽤 강성으로 소문나 있었고 장기파업(2013년 88일 파업)의 여파로 11명이나 복직 투쟁을 하고 있었다. 노조에는 해고자들의 무노동 무임금을 관철시키면서도 무조건 복직이 아닌 특별채용 형식으로 절차와 규정을 지키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로도 노사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합과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분규를 사전 조정했다.- 3호선 지상철은 대구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됐고 세계적 명물이 됐다. 특히 건설 당시 지적됐던 미관문제는 지금은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도시 분위기를 바꾸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현재 지방자치단체 학교 기업체 등이 3호선 28편성 중 25편성에 광고를 하고 있다. 3호선 광고는 법을 개정해가면서 해결했다. 교통시설의 경우 창문을 제외한 면적의 4분의 1만 광고판을 설치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을 행안부와 국토부를 찾아 직접 설명해 2분의 1로 바꾸어 냈다. 삼성이나 SG, SK 등 대기업이 대구에는 구매력이 없다며 광고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지역 광고업자들을 설득해서 광고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 5월에는 입찰을 통해 3년간 30억원이 넘는 광고수익을 챙겼다.- 대구는 지상철 건설과 운영의 노하우를 수출해서 성공했다. 싱가포르와 파나마 해외사업에 진출한 사업의 진행상황과 성과는.△대구도시철도가 해외사업으로 연간 40억원 정도(5년간 186억원) 벌어들이고 있다. 2019년 3월 싱가포르에 ‘DTRO SINGAPORE’라는 현지법인을 개소해 싱가포르 센토사 익스프레스 관리사업을 높은 신뢰도 속에 운영하고 있다. 현재 대구도시철도 직원 7명이 파견돼 운영하고 있는데 사업수익 이외에도 대구와 대구도시철도의 브랜드 마케팅과 운영능력, 신용을 세계에 홍보하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이에따라 내년에는 싱가포르 센토사 익스프레스의 운영과 정비 사업에도 도전해 해외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또 중남미 섬나라 파나마에서 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이 벌이고 있는 3조원 규모의 메트로 3호선 건설사업에 대구도시철도가 설계자문과 시공관리, 시운전 관리, 운영 컨설팅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구도시철도에서도 RD 개발로 특허와 지적 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대구도시철도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 91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17건은 사업화되어 19억원의 기술지분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전 역사와 객차가 쾌적한 실내 공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도시철도가 개발한 양방향 전기집진기가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세계 최초로 개발한 양방향 전기집진기는 올해 10억5천만원의 기술지분료 수익을 올렸다. 대구도시철도가 개발한 각종 기술은 수백명 석박사들이 포진해 있는 지역대학에서도 해내지 못한 성과라고 자랑한다.- 1일 4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수익만도 1일 2억원이 넘는데 연평균 운영 수익은 얼마나 되나. 또 운영비는 얼마나 되나.△도시철도 운영 수익은 최근 연평균 1천900억원을 유지했으나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은 1천306억원으로 전년대비 33%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2020년 인건비를 포함한 영업비용은 코로나19에 대응한 특별방역과 소독 등으로 4천707억원으로 전해인 2019년의 4천569억원보다 오히려 138억원이나 늘어났다. 이 때문에 대구도시철도가 해마다 1천400억원 정도 발생하던 손실이 2020년에는 2천62억원이나 됐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작되고 승객이 늘어나면 재정상황이 서서히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도시철도의 건설비용과 운영비를 고려한다면 실제 적정 운임은 어느 정도 되어야 자체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현재 도시철도 운임은 성인기준 1천250원이다. 그런데 무임승차나 환승손실, 청소년 어린이 요금 할인을 제외하면 실제 1인당 평균 요금은 700원 꼴이다. 이는 코로나19사태로 승객이 줄어든 지난해의 수송원가 4천266원의 16.4%에 불과하다. 평상시로 환원시키면 2천750원 정도 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도쿄 지하철의 경우 3천원 정도 요금을 받으면서도 환승 할인의 개념도 없고 거기에다 거리가 늘어나면 추가 요금까지 지불해야 한다. 우리도 노후시설 감가상각비와 안전시설 투자비용을 고려하면 수송원가 정도는 받아야 운영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서 현실적으로는 요원한 이야기다.- 공사 사장을 3연임했다. 재임 때는 대구시 첫 인사청문회 대상이 됐다.△한번만 하려 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지역 모 대학에 부교수로 가기로 예정이 돼 있었고 대학에서 연구실을 마련해 놓았을 만큼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다. 그런데 처음 임용 대상자가 낙마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권유해 사장 재공모에 지원했다. 그후 공모요강에 없던 인사청문회를 강요했고 규정에는 맞지 않았지만 공직 생활을 떳떳이 했기에 응했다. 청문회에서 모 시의원이 팩트도 아닌 헛소문을 들고 나와서 현장에서 맞받았는데 뒤에 사과하더라.- 선출직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 그런 마음이 있었나. 지금 후회되지 않나.△무슨 소리. 결단코 없었다. 대구시청에서 인사 주무와 시장 부속실, 대변인실 등을 거치며 많은 관선과 민선 단체장을 모셨다. 그러면서 선출직에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이 나오더라. 실제 많은 권유가 있었다. 이 자리에 있으면서도 지역 정치권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나오지 않았던 것을 참으로 잘 한 결정이라고, 다행으로 생각한다.- 공사 사장으로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도시철도의 적자를 메꿔줄 무임수송 손실비용에 대한 국비지원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해마다 30% 정도, 올해만도 10월말까지 9만9천명으로 378억원의 무임수송 손실을 입었다.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으나 정부 지원을 얻어내는데 실패했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돼 정부 지원을 얻어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및 지자체와 협의하고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공사 사장인데 지하철은 평소 얼마나 이용하나.△시내 업무가 있을 때나 주말 종점까지 등산하면서 이용하는 정도다. 일부러 암행감사하듯 이용하지는 않는다.- 공직생활과 공사 사장으로서 보람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대구시청 인사와 부처를 두루 섭렵하고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에서부터 훌륭하게 마무리지었다. 거기에다 510억원이라는 체육기금을 남겼으니 보람이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도시철도에서는 겁 많던 3호선을 개통시켰다. 그리고 3호선을 대구의 새로운 관광 명품으로 만들었고 그 기술력과 운영력을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 홍승활(洪承活·65)대구도시철도공사 사장. 예천출생. 영남대 영문과, 경북대 행정대학원 석사. 계명대 행정학 박사.1975년 예천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출발해 1980년 경북도 대구시로 전입. 이후 달서구청 경제진흥과장, 대구시청 인사담당, 문화예술과 문화기획담당 등을 거쳐 대변인 행정자치국장을 지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위원회 유지지원부장과 조직위원회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다. 2003년 ~2009년 경운대 경찰행정학부 겸임교수.평소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을 좌우명으로 삼아 자기 관리에 철저. 어항 속 물고기가 강물에 놓여지면 1m 이상 되는 큰 물고기로 자라는 코이처럼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꿈과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환경을 강조한다./이경우 편집위원

2021-12-06

탄광촌에서 전국 제일의 힐링 명품 관광도시로

정중동. 어떤 기쁜 소식을 들려주려는 것일까. 위드코로나의 시대 문경은 코로나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도시답게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천혜의 관광 자원에다 사통팔달의 교통망 확장과 각종 개발 사업은 문경을 거대한 레저와 스포츠 힐링타운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문경은 지저분할 틈이 없다.” 문경시청의 고윤환 시장도 임기 말년의 느긋함보다 초임처럼 분주하다.전 국민이 힐링 명소로 찾는 문화 역사 생태가 공존하는 명품 일류 관광도시 문경. 그곳에 사는 시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 평일인데도 문경새재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국내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는데 문경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문경은 위기대응 능력이 뛰어난 도시다. 2004년 폭설 이후 단 한 번도 재해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적이 없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다. 코로나19의 대응과 극복에서도 문경은 한발 앞선 선제적 대응과 시민들의 협조로 확진자 발생이 전국 평균의 6분의 1 수준을 유지했다.- 탄광촌이었던 문경이 명실상부 전국 제일의 국민관광지로 완전히 변신한 것 같다.△물론이다. 문경 관광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관광자원을 확충하여 문경 관광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취임 초기 문경새재 위주의 관광에서 문화 생태 영상을 덧입힌 관광 콘텐츠를 개발했다. 새로운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해 관광 수입을 코로나 이전의 70%까지 회복했다. 문경은 문화와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레저 스포츠와 힐링의 명품 일류 관광지로 위상을 굳혔다.- 관광 문경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까지인가. 고윤환 시장의 임기 중 달성 가능한가.△관광도시 문경의 목적은 지속 가능한 관광지 구축과 지역경제의 재도약이다. 2022년에는 새로운 관광마케팅 프로그램 도입과 각종 공모사업 발굴을 통해 시민들이 피부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관광문경의 완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문경은 경북관광산업의 선도 주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는 문경에서 삽니다’는 말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장이 자신하는 문경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문경은 우리나라 제일의 장수도시이자 힐링의 도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건강한 먹거리 덕분일 것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해 남한지역 690km 구간 중 110km가 문경을 지나가고 있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 4개의 명산(희양산, 주흘산, 대야산, 황장산)이 있어 공기가 깨끗하고 물이 맑은 청정 지역이다. 이런 환경에서 재배된 오미자, 사과, 쌀, 표고버섯, 약돌 돼지·한우 등 먹거리도 풍부하다.- 3선 시장으로서 재임 중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취임 초기의 문경시와 지금의 문경시를 비교하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함양이다. 특히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준비하면서 시민의식 개혁운동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범시민 3% 개선운동’과 ‘더 잘 합시다 문경운동’을 거쳐 지금의 ‘문경사랑 주소 갖기 운동’까지 각종 캠페인을 전개했다.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함께 시민의식을 개혁한 것이다.- 시장으로서 행정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그동안 문경의 위상을 어떻게 올려놓았나.△2012년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취임 당시 문경시는 행정안전부의 경쟁력지수로 전국 지자체 중 180위였다. 빚이 484억원이나 됐고 경상경비 등 27개 지표에서 도시경쟁력이 최하위 수준이었다.문경시의 예산을 임기 동안 2배로 확대하고 본예산의 10%가 넘던 채무를 삭감했다. 지금 문경시는 경쟁력으로 30위권 이내로 진입했다. 자치단체의 재정이 뒷받침되니 문화와 예술도 살아난 것 같다.- 인구 8만이 채 되지 않는 중소도시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할 말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대회가 성공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극복해 내면서 보람도 있었다. 2012년 취임하고 보니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대회를 44개월 앞두고 있었지만 경기장도 숙소도 심지어는 부지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대회는 유치했으나 시민들의 열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중앙 정부의 예산 편성이 늦어지면서 애를 태웠고 증액된 예산의 분담 비율을 놓고는 경북도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2015 문경 군인체육대회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달리 최소 비용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결과적으로 빚 없는 대회, 시설 관리 문제가 전혀 없는 대회로 세계적인 모범 대회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대회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18억원이라는 성금을 모아 준 시민지원위원회와 2천명이 넘는 서포터스, 오랜 시간 고생해 준 시청 직원들이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가능하게 했다. 정말 모두 고맙다.- 이동식 숙소 카라반의 인기가 대단했다.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성공에는 카라반 선수촌이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인 것 같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카라반 캠핑이 대유행인데 그 때 문경 군인체육대회가 계기가 된 것은 아닌가.△처음 대회 숙소로 국군체육부대 연병장에 에어컨과 냉장고를 갖춘 천막을 설치하자는 안이 나왔다. 그러나 세계 대회에 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던 중 대회 8개월을 앞두고 카라반이 전광석화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즉시 업무추진기획단을 새벽에 출장 보냈다. 1채당 2500만원짜리 카라반을 임차료 1000만원을 주고 350채를 들여와 대회 기간 활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카라반 이동식 숙소는 모두가 만족했고 세계적으로도 크게 히트했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매각했더니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남으면 경북도와 문경시에서 구입하는 방안까지 마련했으나 기우였다.- 서울에서 문경 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문경이 우리나라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된다고 했다. 문경의 내일을 어떻게 전망하나.△(철도 이야기에 고윤환 시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철도망이 그려진 지도 앞에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수도권에서 문경까지 연결되는 중부내륙철도가 2023년 개통을 목표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김천에서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이 2028년 준공 예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서산에서 아산과 울진을 잇는 동서철도가 지나고 중부내륙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대한민국 중심을 지나는 새로운 경제축이 만들어질 것이고 문경이 그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면 문경은 새로운 물류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문경시는 그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1시간 남짓이면 문경에 도착한다. 지금 주말이나 노후를 문경에서 보내려는 많은 서울 사람들이 앞 다퉈 문경 지역에 별장을 짓고 있다. 맑은 공기와 청정한 먹거리 등 문경에 매료된 서울 시민들에게 문경이 제2의 정착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물류의 중심은 어떤 콘셉트이며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나. 교통망이 좋아지면 문경은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문경 인구나 경제가 오히려 서울로 빨려 들 역작용도 있지 않나.△그런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문경읍 마원리 일대 35만7천㎡ 부지에 788억원을 투입해 문경 역세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기업과 공공기관, 문화, 관광, 주거가 결합된 새로운 상권을 구축하려고 한다. 특히 이 사업은 다른 도시의 역세권 개발과 달리 입주업체의 요구를 과감히 수용해 개발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사업 성공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물류단지 구상은 문경역 역세권의 입지 조건과 우리나라 경제 트렌드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면 물류단지로 개발될 가능성도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또 문경새재를 비롯한 단산관광모노레일 에코렐라 등 자원을 활용한 관광서비스 산업과 봉암사 문경세계명상마을, 고요아리랑 민속마을, 성필립보 생태마을 등 치유공간, 정주욕구를 채워줄 전원 휴양마을 조성으로 인구 유출을 방지하고 머물고 싶은 관광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니 문경이 서울로 빨려 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구 문제는 국가적 대사가 됐고 지방소멸은 자치단체들의 절대 명제가 됐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경시의 대책은 무엇인가.△우리나라는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추월하는 데드크로스가 시작됐다. 문경시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한 때 16만명까지 기록했던 문경이 1980년대 폐광과 함께 인구 감소 위기를 겪고 있다. 문경은 이 위기를 귀농·귀촌·귀향의 활성화와 새문경 뉴딜정책-모듈주택 공급 사업으로 극복해내고 있다.모듈주택 사업은 귀농과 귀촌을 고민하고 있지만 집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농촌에서 살아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귀농 귀촌에 대한 실패 확률을 줄이고 안정적 정착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문경을 찾는 이들에게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시골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폐가나 빈 집을 정비함으로써 지역에는 주거 환경 개선과 지역경기 활성화 등 1석 3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청년일자리 사업을 통해 매년 100여 명의 신규 일자리를 지원하고 양질의 일자리와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펴고 있다. 지난해 3천500억원 규모의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직접일자리만 280명, 간접일자리 3천600명을 창출하게 된다. 또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정년정책단을 통해 많은 청년들이 문경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도 준비해 두고 있다.- 예천 출신으로 문경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어떻게 문경시장에 출마해 3선까지 하게 됐나.△부산시 부시장으로 있을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경 시장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문경지역 인사들은 물론 서울의 향우회 인사들이나 동창 등이 내게 출마를 권유했다. 내가 나서면 아무도 안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출마하고 보니 많은 후보들이 나서서 정말 고생했다. 행정고시 합격 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행정자치부, 인천시청, 부산시청 등에서 근무했지만 늘 고향 문경에 잊지 않았다. 친구들과 문경의 산을 찾았고 경로당마다 찾아 다녔다.고윤환(高潤煥·64)문경중 문경종고 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 졸(경제학사) 서울대 행정학석사, 인하대 행정학박사.24회 행정고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국무총리실 과장, 인천시 경제통상국장, 남동구 부구청장. 행정자치부 주민과장. 미국연수(국장급 고위공무원). 행정안전부 국장. 부산광역시 행정부시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부회장.조상 대대로 문경이 고향. 예천 출생이나 문경으로 이사 와서 중 고를 나왔다.막강한 중앙 인맥으로 문경시 국비 예산을 확보해 지역 경제에 활로를 뚫고 지역 민심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다. 단체장으로 3선이면 충분하다며 “그동안 실력 발휘를 못하면 자격 없는 것”이라 말한다. 재임 10년 동안 문경을 기초부터 닦아 놓았다며 ‘후임 시장은 일하기 쉬울 것’이라고 큰소리다. 문경을 찾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터를 닦아 놓았으니 이제 쉬고 싶다고./이경우 편집위원

2021-11-29

뚝심 하나로 자수성가한 빈농 출신 기업인 권영훈

기업인. 일자리를 창출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래서 나라 경제를 살리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장인정신을 갖고 또 늘 혁신해야 한다.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학생들의 무거운 책가방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뛰어든 사물함 사업이 35년 만에 종합가구기업으로 성장했다. 환경을 생각하고 국민 건강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기업 휴코스의 권영훈 회장. 그의 인간과 기업에 대한 소신은 분명하다.“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정직은 기본이다. 그리고 효도해야 한다. 그것이 인륜이다. 인륜이 돼 있어야 개인도 그 기업도 성장이 있다.” - 휴코스는 안동에서 교구 사업으로 성장한 가구업체다. 어떻게 안동이라는 지방도시에서 전국적인 사물함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나.△안동에서 역무원으로 일할 때 휴무일이면 아내의 깨알 같은 문방구 물품 정리를 도왔다. 그때 안동여고 서무과장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내가 하는 일을 보고는 ‘학교에 한 번 가봐라’고 했다. 교실에는 학생들의 책가방과 참고서, 도시락 등 수많은 개인 물품들이 저마다 박스에 담겨 있었다. 사물함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왔다.때마침 신문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척추측만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당시에는 모든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시대였고 이 짐을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운명처럼 머리를 짓눌렀다. 과감히 직장을 떨치고 나왔다.- 특별한 기술이나 계획이 있었나. 당시 직장을 팽개치고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그렇다고 기술도 계획도, 판로도 없었다. 단지 사물함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사업에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리고 학교 사물함을 만들기 시작했다.전국을 발로 뛰면서 판로를 개척했다. 처음엔 학교에서 사물함 주문을 받아 외주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브로커도 있었다. 주문했다 계약금을 떼이고는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하는 버릇도 배웠다. 그러다가 대구의 한 공장이 부도가 나서 전화요금을 내지 못한 것을 대납해주고는 내가 인수했다. 안동에서 계속 사업하기에는 한계를 느끼고 대구로 진출했다.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이었다.국가나 경제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강을 위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의 사업이 됐다.- 사물함에서 시작해서 지금 휴코스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보니 종합가구점 같다. 얼마나 많은 제품을 제작하고 있나. 또 경쟁업체는 중소기업인가 대기업인가.△사물함과 의자 책상 교탁 청소 비품함 급식테이블 등 학교 교구에서부터 사무용 가구 및 일반 가구 등 50여 품목에 개별 아이템은 1300여 개가 된다. 지금은 자체 연구소에서 침대 메트리스도 개발중이다. 사물함 제작은 전국 1인자임을 자부한다. 35년 된 종합 가구업체로 이제는 대기업들이 모두 경쟁자다.- 사물함을 학교에 단체 제작하면서 사업이 확장된 것 같다.△처음에는 학생들 자부담으로 사물함을 제작했는데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어려운 학생은 내가 부담하기도 했다. 정부 예산으로 제작하기 위해 학생들의 휘어진 척추 X레이 사진을 노동부와 교육부에 보내면서 진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2년이 지난 뒤에야 조금씩 예산이 책정되기 시작했다. IMF 전에 대구시교육청의 예산으로 사물함을 제작하면서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덕분에 성서공단으로 이전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회사명이 바뀌고 사훈도 바뀌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회사 초창기에는 ‘마음’이 중요했다. 마음이 바로 서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영일교구일 때는 ‘정직한 마음, 성실한 마음, 창의적인 마음’을 사훈으로 했다. 회사의 틀이 잡히고 나니 창조하고 혁신하고 열정이 있어야 했다. 2014년 달성 테크노파크로 이전하면서 회사명을 ‘휴코스’로 바꾸고 사훈도 바꾼 것이다.사명 휴코스는 Human Comportable System furniture의 머릿글자다. ‘생각을 만드는 가구’가 거기서 나왔다. 생각하지 않으면 개인도 기업도 성장할 수 없다. 회사 연구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성의 새 제품을 구상하고 상품화 하고 있다.- 평소 사원들에게 사훈 외에도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대답보다 먼저 ‘권효가(勸孝歌)’가 새겨진 탁자 위 유리판을 가리킨다.) 정직과 효도다. 정직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강조해 왔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정직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그릇된다. 효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말하는 거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바르게 사는 것이며 그 출발은 효에 있다. 효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것이 개인 생각이다.-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학생들의 책걸상이나 가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사용자들의 주문에서 어떤 변화를 알 수 있나.△편안함과 기능성을 요구하면서 환경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다. 학생들은 체격이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무르다.’ 의자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서 체격에 맞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잠자는 학생들을 위해 서서 수업 받을 수 있도록 높이 조절용 책걸상을 보급하고 있다.- 최근 휴코스의 기능성 식탁이 조달청에서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는 자랑을 들었다. 부설 연구소의 개발 작품인가. 휴코스의 연구 개발 실적은?△그렇다. 연구 개발이 기업 발전의 핵심이라는 생각으로 연구소에 우수한 인재를 영입해서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다. 식탁과 일체형 의자는 전국 14개 회사 제품이 출품해서 휴코스 제품만이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 청소할 때 식탁 위에 의자를 올려놓지 않고도 의자가 들리는 일체형 식탁으로 식탁과 의자를 별도로 사용하는 것보다 공간 활용과 기능성에서 우수하다. 대장균 등 항균 기능을 가진 상판을 사용하여 위생까지 모두 챙기는 효율성을 갖췄다.이 제품은 한국발명품진흥원으로부터 우수 발명품으로 인증 받았다. 우리 회사는 스툴의자 일체형 테이블 구조체로 조달청 우수제품에 선정되고 우수발명품으로 지정되었다. 가구에서 연결구를 이용한 조립식 가구와 친환경 항균 시트 등 6개의 특허와 각종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객의 요구에 맞춰 혁신적 제품을 개발해 내야 기업이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가구에서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옛날에는 원목가구를 썼으나 지금은 가공합판을 이용한다. 가공합판의 본드 냄새는 조달청의 인증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인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기 위한 가구라면 무엇보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비싸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자재를 사용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친환경 인증에 필요한 공정을 지켜 친환경 인증 확인 후에 납품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떤 정당의 대선 후보가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 노동 현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현장의 반응은 어떤가.△주 4일 근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는데 현장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 사업을 하는 기업인으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근로 현장에서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도 얼마나 힘 드는지 말 못할 지경이다. 근로자들조차 잔업이 많은 다른 회사로 가려 한다. 그들에게 생산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현실과 맞지 않은 듯하다.- 사업장에서 상급자의 갑질이 자주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도 사용자의 갑질이 언론에 등장했다. 권 회장의 개인적 생각은 어떤가.△세상이 변했다. 시세에 따라야 하고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그런 일을 시키려면 그만큼 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업장에서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특히 사용자는 업무상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나이에 비해 올드해 보인다. 평소 외부활동에서도 근엄하게 대하는 편인가.△호적보다 실제 나이는 더 많다. 교구 사업의 특성상 교장이나 서무과장을 상대하면서 감색이나 검정색 양복을 입었고 넥타이도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하다보니 저절로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역무원으로 9년 간 근무하면서 제복이 체질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작업 현장에서 직원들을 엄하게 대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나 작업 효율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올드하게 보일지 몰라도 생각은 늘 혁신을 강조한다.- 기업인으로서 사회 기여나 기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실제 필요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맨 투 맨(man to man)’ 식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달성군 노인복지관에 사물함을 기증하기도 했다. 나 자신 봉사단체의 전국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과 합의한 위안부 문제를 현 정부에서 뒤집었다. 그 뒤에 보니 여성단체가 있었고 그 순수성을 의심받았던 것도 그런 이유 중 한 사례라고 본다.- 기업인에게 성공은 어떤 의미인가,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나.△공직자는 때가 되면 승진해야 하듯 기업인도 사업을 벌였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받아야 한다. 개인적인 성공보다도 기업인은 정말 애국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니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기업인에게도 권리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제발 그들이 일 할 수 있도록 자꾸 건드리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권영훈(73)안동 풍산에서 빈농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산 넘고 강 건너 30리 길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 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누나가 사는 부산으로 가서 영도고를 다녔다.졸업 후 국제화학에서 쇳덩이 가마를 분해 조립하는 불덩이 속에서 4년 근무하다 철도청 안동역에서 고용직으로 입사해 정식 역무원이 됐다.9년 만에 안동역에서 나와 학교 사물함 제작에 뛰어든다. 1986년 교구를 제작하는 영일교구사를 설립했고 주식회사 영일교구에서 휴코스로 사명을 바꿨다. 가구 제작 경력 35년째인 모범 장애인 기업이다. 일에 몰두하다 건강을 해쳤고 사업은 성공했으나 청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청각장애를 얻었다.호적은 실제보다 3년 늦다. 겉은 투박하고 올드해 보이지만 제품 개발과 기업 경영에는 혁신을 강조하는 경상도 사나이. 뚝심 하나로 기업을 일으켜 세웠듯 일에서만큼은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의 소유자이다./이경우 편집위원

2021-11-22

정치인은 후손들이 잘 사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를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는 데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은 방송과 광고가 다르지 않다.MBC 대구문화방송으로 지역에 TV방송 시대를 열었고 TBC대구방송 초대 사장으로, 또 안동MBC사장으로 지역 언론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21세기 ICT 시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움직이는 변태석 BB 커뮤니케이션스 회장.“어려운 시절을 겪어봤다. 후손들이 잘 사는 미래를 물려줘야 한다.” 절제와 자기관리를 브랜드로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그의 바람이다. “나라가 잘 돼야 한다.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언론인이고 모두가 미래를 걱정해 줬으면 좋겠다.” - 지금 지역 곳곳에서 재개발과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분양광고도 많을 텐데 광고업은 어렵다고 그런다. 언제나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미디어산업이 다매체 시대여서 어려움이 더한 것 같다. 지금 상황으로는 미래조차 불투명하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또 다르다. 대구에 대형 아파트 건설이 잇따르고 있지만 서울의 대형 건설사들이 광고업체까지 패키지로 데리고 내려와서 지역 광고업계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에 대형건설 사업이 일어나도 돈은 모두 서울로 빠져나가니 지역 경기도 더욱 어려워진다. 대형 건설사가 지역 협력업체를 50% 이상은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대구시와 구청에서 지역 업체의 참여를 일정 부분 강제하는 제도를 확실하게 행사해 줬으면 한다.- 대구MBC가 범어동 사옥을 처분하고 지난 9월 욱수동으로 이전했다.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안다.△대구MBC가 대구시 체비지를 사서 중앙로 사옥을 수성구 범어동으로 이전했던 것이 1973년이다. 당시 대구MBC의 경영진들은 물론 대주주였던 쌍룡그룹 관계자도 반대했다. 어렵게 대주주였던 당시 쌍룡그룹 김성곤 회장을 현장에 모시는 기회를 만들었고 김 회장의 결단으로 부지 매입이 성사됐다. 그 자리가 범어동 1번지였고 그 거리가 MBC네거리가 됐다. 대구법원청사와 함께 수성구 시대의 중심으로 수성구 발전을 견인했던 대구 역사의 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대구 MBC를 떠나 안동으로 가면서 ‘나 죽으면 이 자리를 한 바퀴 돌아서 묻어달라’고 공개했을 만큼 애정이 담긴 곳이다. 지켜줬으면 하는 개인 욕심인데, 참으로 섭섭하다.- 대구MBC 설립 멤버였다. 당시 언론계의 방송사 현황이나 광고시장의 분위기는 어땠나.△대구를 비롯해 부산 대전 광주 제주에 TV방송국을 설립하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TV수상기도 없던 시절이라 ‘누가 본다고?’ 하는 회의론 속에 장소 물색에 나섰지만 대구시내엔 방송국이 들어설 만한 제대로 된 건물조차 없었다. 새로 건설하던 대구백화점 건물에서 영남TV 방송을 개시했다. 흑백TV 수상기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때라 광고가 있을 리 없었다. 직원 월급날이면 은행에서 방송 기계를 담보로 돈을 빌려 해결했다. 그랬는데 6개월 만에 광고가 들어오더라. 마침 구미에서 삼성전자와 금성사(LG 전신)에서 흑백TV를 생산했는데 방송이 나가면서 수상기가 팔리기 시작한 거다. MBC라디오와 통합해서 대구문화방송으로 거듭 났고 1년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마치 모두가 반대하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던 상황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이 시기 구미와 창원 포항 등에 공단이 들어섰으니 우리나라 산업화의 씨앗을 뿌렸다는 자부심이 생기더라.- TBC대구방송 초대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TBC의 안정적 경영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는다.△다매체 시대 방송의 어려움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직 TBC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설립 당시 대구MBC보다 타이트한 규모를 지향해 적은 인원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안동과 구미 포항에 무인중계소를 만들어 경북지역까지 방송 영역을 확장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MBC 시절의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언론인으로 내세울 만한 업적이나 자랑거리를 든다면 첫 번째로 꼽는 것은 무엇인가.△TBC를 개국하고 나서 전 직원들을 모아놓고 업무관련 금품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 해 추석 지역 유명인사가 봉투를 들고 직접 찾아와 돌려보내는데 애를 먹었다. 회사를 꼭대기부터 지하실까지 구석구석 직접 안내하면서 TBC를 소개하고 회사 입장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창사 기념품을 챙겨 주차장까지 가서 배웅했다. 성의를 거절했다며 ‘너희가 뭔데’ 라는 역풍을 맞게 될까봐 조바심 났다. 직원들이 따라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개인 경력이 화려하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여러 전력을 거쳤지만 역시 언론인이다. 5·16장학회와의 인연으로 MBC 문화방송의 설립부장으로 시작해서 대구문화방송 상무와 안동문화방송 사장까지 지냈고 TBC대구방송 초대사장을 지냈다. 대구경북언론인회의 전신인 달구벌클럽을 설립해 회장을 맡았고 지금도 아시아포럼21 이사장을 맡고 있다. TBC대구방송 사장 임기 1년 반을 남겨두고 지금의 광고회사 BB를 만들었다.처음 대학을 나와 상주고에서 화학과 물리과목 교사를 2년 남짓 했다. 당시 취직할 기업이라야 한국은행이나 철도청 정도였고 대학에서 제조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언론사 말고는 대구MBC 사우회와 재구상주향우회도 만들었다. 경북신용보증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것은 당시 이의근 경북도지사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지금 광고기획사 BB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광고회사 경영이 특이하다. 사원들에게 회사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떤 뜻인가.△회사는 사원들의 것이다. BB는 거송기획을 인수해서 1997년 재출범한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회사다. 이 회사의 영업권과 주식과 장비 일체를 직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현금 10억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유동자금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쯤이면 이 약속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고향 상주에도 많은 애정을 갖고 있더라. 개인적으로 기여를 했고 수많은 포상과 감사패를 받았던 것으로 안다. 의미 있게 생각하는 상은 어느 상인가.△고향 상주시 내서면 서원리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또 공로패도 받았다. 고향 밤원체험마을에 농촌 체험활동과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토지를 기부했다. 고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 실천이 고향 사람들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을 때 정말 보람을 느꼈다. 상주시장으로부터 상주시민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대구경북언론인회가 시상하는 대경언론인상 제1회 특별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언론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현재 후배 언론인들을 위해서도 기부를 하는 등 많은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물론 언론인회의 상도 의미 깊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 해 대구경북언론인회와 대구경북기자협회 아시아포럼21에 각각 기금을 출연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선배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부나 개인적 지출은 모두 개인 주머니를 털어서 쓴다. 앞으로도 지역의 언론인들을 위해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공약이 나오고 있다. 여당 후보로부터는 친일파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유년기를 보낸 입장에서 코멘트해 달라.△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매일 아침 등교하면 정문 앞에서 책보를 내려놓고 동쪽 신사를 향해 참배를 하고나서야 다시 책보를 챙길 수 있었다. 노는 시간에 동무들과 우리말로 장난이라도 치다가 일본 선생에게 들키면 어김없이 ‘귀싸대기’를 얻어맞아야 했다. ‘번갯불’이 번쩍했던 그때의 상처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여당 후보 논리대로라면 그 시대 초등학교만 다녔어도 모두 친일파가 아닌가.- 건강에 유별 관심과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는 평이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미수(米壽)인데 건강 비법은 무엇인가.△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건강하기 위해 지금도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한다고 자신한다. 자고 일어나면 발목 들기 운동부터 1시간30분가량 움직인다. 젊어서 시작한 골프도 틈틈이 인도어에 나가고 한 달 서너 차례 필드에도 나간다. 75세 때 처음으로 에이지 슈트(age shoot)를 기록한 뒤 여러 차례 에이지 슈트를 했다.집에서 소백산맥 중턱에 있는 하령초등학교까지는 7km나 되는 산길이었다. ‘개다’(일본인 나막신)가 반대편 발 복숭아뼈를 건드려서 개다를 벗고 맨발로 걸었다. 그 훈련이 평생을 건강하게 만든 첫걸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손수 운전을 해서 다닌다. 4층 사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것을 고집한다. 내려올 때는 더러 앨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지만.- 인생을 마치 살얼음판 걷듯 행보가 진중하고 분명하다. 폭탄주를 들이켠다거나 친구들과 밤 새워 술잔을 기울이면서 세상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런 낭만의 주인공은 되고 싶지 않았나.△술은 체질에 맞지 않아 마시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생활 하는데 불편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TBC 사장 시절 지역 기관 단체 대표들과 저녁 자리에서 폭탄주가 돌았다. 내가 나서서 ‘폭탄주는 2차에 하고 1차는 주량 껏 권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 뒤로 술은 아예 안 마시는 것으로 치부하니 나도 편하더라. 술 말고도 다른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운동으로 골프를, 취미로 바둑을 두는 데 실력이 프로급이라 들었다.△사무실에서 원로 언론인들 사랑방처럼 정기적으로 모여 바둑을 뒀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이제 곧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원 중에 프로급 실력자도 있고 내 실력은 아마3급 정도 될 것 같다. /이경우 편집위원 ◇변태석(86)호 이당(伊堂). 상주 출생. BB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상주농잠. 국립부산수산대 제조학과 졸. 상주고 교사. MBC문화방송 지방방송 설립부장. 대구문화방송 총무국장, 관리국장, 상무. MBC안동문화방송 사장. TBC대구방송 사장. (사)대구경북언론클럽 회장. 계명대 신방과 초빙교수 겸. 경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 지부장(현), 아시아포럼21 이사장(현).이웃집 인자한 할아버지. 그러나 경영에는 냉정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가는 곳마다 초대 직함을 만들어냈고 그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멘토가 됐다. 영원한 현역 언론인이자 지역 언론계의 대부다.

2021-11-15

바다 위 안전을 지키고 생명을 구하는 해양경찰

바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나이도 성별도 학력도 계급도 친소도 가리지 않는다. 그 바다는 우리와 함께 있다. 해양도시 포항에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그 바다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 바다 위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그 바다의 경계를 지켜주는 사람들. 해양경찰이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육지와 같이 생각하거나 취급하면 안 된다. 넓고 험한 바다에서 움직이는 기동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상철 포항해양경찰서장은 “사고가 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임무라며 “사고가 났을 때는 인명구조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결기를 보인다. 바다에서의 구조 활동이나 단속 업무는 육지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 해양경찰의 임무는 일반 경찰과 어떤 점이 같고 또 어떤 부분이 다른가. △해양경찰의 첫 번째 임무는 해양영토 주권을 수호하는 일이다. 불법조업을 하는 외국어선 단속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바다에서의 사고에서 수색과 구조 활동, 연안안전 관리 임무다. 지상에서 경찰이 있듯 바다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의 예방과 수사는 하는 일이 세 번째고 해양오염사고에 대응하는 것이 네 번째 임무다. 선박교통관제(VTS)를 통해 행상(→해상)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해경이 하는 주요 임무다. - 해경이 해양주권을 지키는 임무 수행과 해군의 역할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업무 수행상 충돌은 없나. △해군의 임무는 전쟁을 억제하는 국가 안보 등 국방에 있다. 이와 비교해 해양경찰은 해양영토를 수호하고 바다에서의 생명 구조와 해양환경 보호, 선박의 교통안전, 수상레저 안전관리, 해상 사건 사고의 수사 등 업무를 하는 것이다. 해군이 전쟁 발발 상황에 이르는 고강도 분쟁을 맡고 있다면 해양경찰은 극한상황을 피하기 위한 저강도 분쟁을 맡고 있다. 물론 양 기관은 업무협의와 합동훈련 등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 포항해양경찰서의 관할구역은 어디까지인가. 또 어떤 특성이 있나. △포항해경의 관할 해역은 포항과 경주를 중심으로 한 해안선 213km(직선 95km)이며 면적은 3만4540㎢로 경북도의 1.8배나 된다. 이것도 2017년 11월 울진해양경찰서가 신설되면서 상당부분 줄어든 것이다. 해역은 일본EEZ(배타적 경제수역)와 인접해 해양안보 주도권 경쟁이 발생하면서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포항해경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고질적 토착 범죄인 불법대게 및 고래 포획 범죄 단속에 집중하고 있다. 또 해양사고 예방과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 관할해역이 넓은데다 업무 또한 다양하다. 임무 수행에서 특히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가. △어느 일이나 쉬운 게 없지만, 바다에서의 구조 활동이나 단속 업무는 육지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망망광대한 해역의 특성상 해난사고나 사건이 발생하면 함정이 긴급출동 하더라도 4~5시간 걸리기 일쑤다. 현실적으로 넓은 바다를 지키는 함정이 곳곳에 포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독도 북방에서 발생한 어선전복사고에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해경을 봐라. 파도가 4m 이상 치는데 뒤집어진 어선 위에서 구조작업을 펼치는 임무 수행은 목숨을 건 일이다. 이럴 때면 3D 직종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밤새워 구조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 그렇다면 넓은 바다에서 불법 조업 행위나 중국 어선의 침범 등을 어떻게 단속하나. 바다에서도 음주운전을 단속하나. △위성 GPS와 항공기, 군 레이더와 함정의 레이더가 해상의 모든 선박 운행 상황을 24시간 입체적으로 감시하고 상황실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경비함정이 해양경비 활동 중에 법령 위반 어로행위를 하거나 의심되는 선박을 발견하면 해상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한다. 어선의 경우 어군 형성수역이 아닌 곳에서 어로행위를 한다거나 의심스러우면 불법 대게 포획이나 고래잡이인지 확인하고 단속하는 식이다. 동해 북방 수역으로 북상한 중국어선만도 최근 3년간 평균 2천100여 척이 됐고 올해만도 600여 척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영해 침범이나 EEZ에서의 무허가 조업 등 불법 행위나 우리 어선과 어구의 피해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다에서도 선박의 음주운항은 단속한다. 올해 동해청 관내에서 5건의 음주운항을 단속했다.- 불법어로행위를 단속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순간이 수없이 많았다. 대형 함정이 접근하지 못하니 소형 함정으로 접근해서 단속 업무를 할 때면 소형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중국 어선을 단속할 때면 고무탄 총이나 무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 해경은 조직상 오랫동안 내무부 외청 경찰 산하 조직이었다. 몇 차례 조직이 바뀌었는데 업무상 불편하거나 불리한 점은 없나. 지금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독립한 것도 세월호 사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조직원들의 사기나 동요는 없었나. △여러 차례 수많은 조직개편을 겪었지만 임무는 흔들림 없이 수행하고 있다. 2019년 8월 해경의 조직과 직무범위를 규정하는 해양경찰법이 제정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고 해상종합 치안기관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해양경찰관 출신이 해양경찰청장으로 임명돼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1953년 내무부 치안국 산하 해양경찰대로 발대해 해양경비대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곧 해양경찰대로 되돌아왔다. 1991년 경찰청 소속 해양경찰청으로 직제가 바뀐다. 1996년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독립하면서 청장 직급이 경찰과 같은 치안총감(차관급)으로 승격했다. 2008년에는 국토해양부 소속으로, 2013년에는 다시 해양수산부 소속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후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가 됐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경찰청으로 재독립했다. - 바다 환경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대응도 중요해지고 있다. 프라스틱 같은 쓰레기 문제나 낚시꾼에 의한 바다 오염에 대해 해경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나. △해양경찰에서는 해양쓰레기 없는 깨끗하고 안전한 바다 조성을 위해 ‘해양쓰레기 예방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해양쓰레기의 불법 배출 점검과 단속을 강화해 해양쓰레기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해양쓰레기 수거 지원을 확대하며 모니터링을 통해 해양쓰레기를 관리하고 있다. 해양쓰레기 수거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관계기관 등과 협업으로 수거를 지원하고 연안 및 수중 정화활동을 수시로 하고 있다. 올해는 포항해경 소속 명예해양감시원과 함께 모니터링을 실시해서 해경과 포스코, 포항환경공단 등 6개 기관 단체 63명이 참여해 이가리 간이해변, 죽전항 방파제 일대에서 해양쓰레기 2.5t을 수거했다. - 육지 소년이 해양경찰이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동해 바다를 보고 바다를 동경하게 됐다. 그때 칠포리 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해군에 입대했고 해경 순경으로 지금까지 31년째 바다 사나이가 됐다. - 이강덕 포항시장이 해양경찰청장 출신이다. 불편한 점은 없나. △해양경찰의 업무를 이해하고 적극 협조해 준다. 개인적으로 이 시장이 해양경찰청장 시절 본청에서 선박위치 발신 장치를 구축하는 해양경계TF팀장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는데 지금은 포항시장으로 정말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해양경찰의 특성상 시청뿐 아니라 경찰과 군, 소방 등 모든 기관과 협조돼야 하는데 모두들 잘 협조해 주고 있다. - 포항해양경찰서의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인가. △바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 위험도 공평하다. 그 바다에서 인명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또 사고가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것이다. 민생침해 사범이나 환경오염 등 범죄를 예방 단속하는 것도 임무다. 해양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해양경찰의 임무다. - 포항에 해양경찰서장으로 부임하고 내세울 만한 업적이 있다면 무엇인가. △해양사고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방안과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고 조직원을 훈련시킨 것이다. 내가 부임한 직후인 올 2월 19일 새벽 선원 6명이 타고 구룡포항에서 출항한 거룡호가 당일 오후 경주시 감포읍 동쪽 23해리 해상에서 침수 전복됐다. 사고 즉시 헬기와 경비함정을 급파해 높은 파고와 최악의 기상 속에서 10일간 목숨을 건 수색작전을 펼쳤지만, 선내에 고립됐던 1명과 해상 표류자 1명만 극적으로 구조했을 뿐 실종자 4명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사고 후 해상 사고에 대한 맞춤형 원인 분석과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해양사고 1만6천건을 6개월 동안 빅 데이터로 분석해 649건의 사고 원인을 찾아냈고 이를 진행 과정에서 결과까지 단계별로 분석해 99건의 대응책을 만들었다. 원인 분석과 대응책을 만들어 적용한 결과 최근 3년간 발생하던 해양사고가 평균 74건에서 58건으로 줄어들었고 현재까지 연안사망사고는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 최근 해양경찰청장배 구조경진대회에서 포항서가 전국 1위를 차지한 것도 이 대응책의 실현과 관계있을 것이다.  ◇한상철 (55) 포항해양경찰서장  봉화 출신 안동고, 인하대 정책대학원 석사(행정학) 1991년 순경으로 해양경찰에 입문. 이후 해양경찰에서 정보국 정보계장, 경비안전국 해안경계임무 인수TF팀장, 장비기술국 정보통신계장, 동해 1511함장, 해양청 수상레저과장, 동해해양경찰서장, 중부지방해양청 경비과장을 거쳐 올 1월 포항해양경찰서장으로 부임. 산골서 태어나 해경 순경으로 출발해 31년째 해양경찰로 근무하는 바다사나이가 됐다. 소형 특수함정에서 중형을 거쳐 1천500t급 대형 함정 함장까지 근무하면서 적극적으로 현장대응을 하면서도 늘 자신보다 승조원의 안전을 걱정하고 해상사고가 발생되면 국민의 생명을 한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생활하였다고 말한다.

2021-11-08

경북도립대가 공유대학으로 지역 전문대학 교육을 견인해야

경북도립대학교는 경북도가 설립하고 재정을 투입해 운영하는 대구경북지역의 유일한 공립대. 취업률 1위에다 등록금이 아예 없는 작지만 강한 경도대가 개교 25년을 맞았다.김상동 총장은 경도대가 고등교육 거점 공유대학으로 지역 전문대학을 선도해야 한다는 야심 찬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마다 독립적으로 모든 자원을 갖추는 것보다 대학들이 협력해서 자원을 공동 활용하는 대학 간 협업과 공유대학을 만들어야 하며 공립인 경북도립대가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경북도의 정책과 재정적 뒷받침으로 전문대학 교육 시스템을 경북도립대가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 정원의 82%를 뽑는 1차 수시모집 기간이 끝났다. 올해 수시모집의 성과는 어땠나.△지난해보다 경쟁력은 조금 낮아졌지만 지원자들의 경도대 선호도가 뚜렷하더라. 외형적인 지원율에 일희일비 않는다. 문제는 합격자를 얼마나 지켜내느냐다. 이를 위해 학과장은 물론 총장도 서한을 보내는 등 경도대에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경북도립대의 장점이 무엇인가. 무엇으로 학생들을 유인하고 있나.△우선 2022학년도에 입학하는 모든 신입생은 실질적으로 등록금이 없다. 입학생 모두에게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또 졸업생들의 2020년도 취업률이 72.8%로 전국 7개 도립대학 중 1위다. 그냥 취업률이 아니다. 교육부가 확인하는 유지취업률 조사에서 우리 대학이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어떤 학생들이 경도대를 지원하고 있나.△우리 학교는 작지만 강한 명품대학이다. 경상북도가 설립하고 지원하는 공립대학이다. 12개 학과 전체 신입생 355명의 소규모지만 지역 출신은 60% 정도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찾아온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숨겨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졸업 후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는 고등공교육을 실현하는 것이 경북도립대학의 임무다.- 경북도립대학교의 설립목적과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고 있나. 교육전문가로서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나.△대통령선거를 불과 4개월 남짓 앞두고 있는데도 대선 예비후보 어느 누구도 고등교육 관련 공약이나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분개할 일이다. 지금 대학의 어려움인 입학자원의 감소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기에 대학들은 단순히 신입생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스템을 개선해야지, 4년제 대학에서 전문대학의 인기학과까지 복제 모방해서 입학자원을 싹쓸이해서는 안 된다. 일반대학은 연구중심과 교육중심 대학으로 재편해야 한다.전문대학은 모든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기보다 개별 대학과 지역 특성에 맞는 특정 분야의 전문기술 양성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북도립대학교가 공유대학으로 전문대학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동 총장이 주장하는 공유대학이란 어떤 형태인가.△지방자치단체의 주요 특화 산업에 필요한 자원을 기동성 있게 배출하기 위해 광역단체와 대학이 연합하는 형태다. 특화 산업 분야에 70% 이상의 공동 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하고 개별대학에서 나머지 30% 과정을 수행하면서 두 대학의 학위를 복수로 주는 것이다. 대학은 국가와 자치단체 특화산업에 공동 참여해 개별 대학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학생 감소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고 중복 투자도 피할 수 있게 된다. 개별대학이 참여하는 공유대학 시스템으로 대학과 지역 소멸을 넘어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공유대학은 경북도가 설립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경북도립대학교가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필 경북도립대학교가 해야 하나.△공립으로서 경북도의 고등교육정책을 보여줘야 한다. 서울시립대가 4년제 대학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경도대가 지역 전문대의 교육시스템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 투자는 많이 해야 하고 돈은 안 되니 공립인 도립대가 나서야 한다. 다른 대학들에 혜택을 주는 것이다. 도립대를 통해 고등교육 정책과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스마트농업이 대세다. 농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전문대가 만들 수 있다. 경도대가 만들고 다른 대학들이 합류하고 참여해서 농업공유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경도대의 자동차과는 이미 괘도에 올랐다는 평가다.△우리 대학은 전공별로 현장 맞춤형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산업체나 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과의 도장 기술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도장 기술 숙련도를 높여주는 실습프로그램으로 전국적으로 특화된 기술이다. 지난 9월 한독상공회의소와 ‘아우스빌둥 직업훈련교육 업무협약’을 통해 더욱 특성화됐다. 교육훈련생으로 선발된 2022년 신입생은 자동차 도장 및 정비 기술에 관한 이론교육을 받고 졸업 후에는 대학의 전문학사 학위와 독일 연방 상공회의소의 아우스빌둥 인증서를 받게 된다. 이들은 BMW그룹코리아나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아우디 폭스바겐코리아 등 자동차 기업에 취업해 숙련된 전문인력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경도대는 경북도가 설립했고 지원해준다. 그렇다면 대학과 경북도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나.△경도대는 경북도가 운영하는 경북도 직속기관으로 경북도의 고등교육 정책 실현 최일선에 있는 대학이다. 학생수가 적은데다 저렴한 등록금과 많은 장학금 때문에 등록금 자체가 대학 재정에 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경북도와 경북도의회는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는 적극적 재정 투자와 지원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최상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대학은 또 학생 교육과 복지, 지역사회 기여 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나는 경북도의 정책자문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경북도의 정책 수립과 이를 위한 업무나 자료 제공으로 경북도 발전에 대학이 기여하면서 상생해야 한다.- 지역에서의 대학의 역할과 대학 사회의 발전에 대한 총장의 생각은 어디까지인가.△대학의 설립 목적이자 존재 이유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기여다. 특히 인구 격감 시대에는 지방소멸에 맞서는 유일한 기관으로 남을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인구가 없는 지역에도 국방의 개염으로 대학이 존재하고 있다. 청년들을 머무르게 할 수 있고 지역을 이해시킬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다.- 경도대의 예천 지역에서의 역할은.△지역민에게 양질의 교양교육 및 진로변경 교육 등 평생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경도대는 경북도의 평생교육정책에 맞추어 도민행복대학, 예천평생교육원 운영 등 평생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앞으로는 대학 운영도 다양한 성인 학습자를 정규교과과정과 연계하는 학사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단순히 성인교육에 참여하는 지역민 대상 교육뿐만 아니라 학습자에게 의미있고 지역 특성을 반영하는 학습자 위주의 교과과정으로 함께 상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활체육과의 육상부 운영으로 예천군 육상대회 유치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축산과에서 경북축산농업인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식이다.- 지난 이야기지만 경북대 총장 임명 당시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래서 국정감사에서도 논쟁을 벌이는 걸 봤다. 경북대 총장을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총장 재임하면서 4번의 국정감사를 받았다. 한 번은 감사 2시간 중 1시간50분을 혼자 답변하면서 정말 고군분투했다. 나중엔 ‘수첩에 이름’ 이야기까지 나오니 총장을 그만 두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맞받았다.노동일 총장 시절 교무부처장과 기획관리실장 등 보직을 맡았다. 그 때 경북대의 발전 방안이 있음을 알았다. 내가 총장이 되어서 경북대를 제대로 바꿔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싶었다.- 총장 재임 시절 경북대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북대가 라이덴대학 THE세계대학영향력평가에서 세계 99위를 했더라. 경북대 총장재임중 제일 큰 업적으로 무엇을 꼽고 싶나.△학교의 외형을 번듯하게 만드는 하드웨어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변화다. 경북대의 세계적 평가 소식에는 나도 깜짝 놀랐다. 국내에서는 3위였다. 또 상하이 자오퉁대학 평가에서 국내대학 공동 7위를 차지했다. 드디어 라이벌 부산대를 젖혔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정말 경북대 총장으로서 업적이라면 교양학점 상한제를 만든 것이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 중 전공을 제외하고 모두 교양과목으로 학점을 채우는 학생들이 있었다. 심하게는 140 졸업학점 중 80학점을 교양과목으로 메꾸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를 교양과목은 42학점을 상한제로 묶었다. 2년 걸렸다. 졸업장도 4M(메이저, 매크로, 마이너, 마이크로)으로 구분했다. 말로만 하던 융합을 실제 적용한 예라고 자부한다.- 경북대가 올해도 RIS(지자체-대학 협력기반사업) 선정에서 탈락했다. 경북도립대에도 영향이 있나.△RIS는 교육부가 대학의 지역 혁신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경북대총장시절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에게 지역 혁신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성공한 휴스타 사업이 그 모델이다. 2019년 휴스타 사업은 지역 기업을 통해 높은 성과가 입증됐다. 그런데 올해 경북대의 RIS 지원 기획은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선도적 사업인데 탈락했다. 오히려 새 캠퍼스를 조성하겠다는 충남대전세종 지역 사업을 선정했다. 정부의 지방균형 발전과 지역강소대학 집중 육성이라는 공약이 무색해졌다. 경북도립대도 컨소시엄에 참여했고 기대했는데, 우리 지역은 우리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게 됐다. /이경우 편집위원 ◇김상동(62) 경북도립대학교 총장경북 상주, 경북고, 경북대 문리대 수학과 졸, 서울대 수학과 석사.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 박사. (응용수학, 수치편미분방정식 전공).경북대 사대 수학과 교수, 자연대 수학과 교수.경북대 교무부처장, 교수학습센터장, 기획처장.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 선임직 이사.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위원장.경북대총장(2016. 10 ~2020. 10).2004년 과학기술부의 세계적 선도과학자 선정.창의성이 따르지 않는 교육은 유사문제 풀이에 불과하고 교수는 학원강사에 불과하다며 계속 수학을 연구하는 학자이고 싶은 교육행정전문가.

2021-11-01

대구미술관의 위상이 시민의 수준이고 도시의 격이다

세계적 미술가들이 대구에 왔다. 프랑스 국보인 마르크 샤갈의 대표작 ‘La Vie(삶)’를 비롯, 프랑스와 한국의 대표 작가 78명의 작품들이 대구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2011년 5월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산비탈에서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10년 동안 110여 차례의 전시 기획을 통해 지역 미술 활성화에 앞장서 왔다.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대구시민의 미술에 관한 식견과 관심을 높이 추켜세운다. “서울을 제외하고 이렇게 꾸준히 작가들이 배출되는 도시, 끊임없이 전시가 이어지는 도시, 세계적인 작가들이 등장하는 도시가 많지 않다. 화랑이 60개가 넘고,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컬렉터들이 끊임없이 후원해 주는 곳, 바로 대구다.”대구미술관의 위상은 미술을 넘어 시민의 수준과 도시의 격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 어쩌다 한 번씩 오는 길이지만 그때마다 익숙하지 않다. 도심 명소는 아니더라도 접근성이 아쉽다. 미술관 입구도 심심하다. 서비스 공간은 불편하다.△주변이 좋아지고 있다. 지금 고쳐가고 있으니 차츰 나아질 것이다. BTL로 지어져 전시 외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맹점이 있고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아트숍 커피숍 등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간송미술관이 들어서서 고대미술 중심 전시관이 되고 부속동을 리모델링해서 근대미술관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일대는 암스테르담이나 마드리드의 뮤지엄지구처럼 변신하게 될 것이다.- 대구미술관이 개관 10년을 맞았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은 어떤 의미인가.△지금은 ‘모던 라이프’기획전을 열고 있다. 마르크 샤갈, 알렉산더 칼더, 알베르토 자코메티, 호안 미로, 피에르 솔라쥬, 페르낭 레제 같은 프랑스 매그재단의 주요 소장품과 서세옥, 박서보, 이강소, 이우환, 김창열 등 대구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모두 당대의 빛나는 작품들이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해서 10개의 전시를 기획했고 그 중 하반기에 해당하는 전시다. 대구 미술의 뿌리와 현재, 세계 속의 대구 미술을 통해 ‘로컬이 곧 한국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기획이다.- 최근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 홈’을 공개해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다. 미술관이 차 한 잔 마실 수 없었고 휴게 공간도 없었는데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가시는 분들을 보고는 대구의 문화수준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구 시민들의 작품 감상에 대한 욕망에다 삼성과 대구와의 연고를 인식하는 시민들의 관심이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희 컬렉션 21점에 대구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던 근대미술품 중 전시 주제와 맞는 작품들로 특별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들어서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건희 컬렉션을 대구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정책입안자가 아니고 미술관장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대구미술관은 시 소속이고 대구시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이 500점이 넘는다. 또 대구시에는 근대 미술을 다룰 수 있는 대구미술계의 인적 자원도 충분하다. 소장품은 기획전이 구성되지 않는다면 소개되기 쉽지 않다. 근대 대구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테마 별로 보여드릴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덕수궁 미술관장 시절(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 소장품이 1천200여 점이었다. 덕수궁 전시관이 생겨 전시가 기획되면서 근대미술품을 모을 수 있었고 지금은 3천점에 이르고 있다. 이런 성장 동력은 덕수궁 미술관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근대 작품을 모으고 연구하는 체계적인 국립근대미술관이 대구 같이 의미 있는 도시에 세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구가 한국 근대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역량도 물적 자원도 갖추고 있으니 미술관이 세워진다면 지역에 흩어져 있는 미술품들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대구 근대미술관이 너무 과대 포장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대구 근대미술의 실체에 접근하기보다 말로만 근대 미술의 의미를 과장하고 있다는. 대구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한국근대미술사에서 대구는 경성(서울) 평양과 함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근대에 가장 걸출한 작가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이인성 이쾌대 등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작가들 중에 대구 출신이 많다. 만약 한국에 근대미술관이 설립된다면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덕수궁 관장 시절 전시를 기획할 때마다 대구를 내려와야 했다. 대구는 전쟁 피해가 적어 근대미술품이 남아 있는 도시다.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화가들의 이야기가 있고, 근대미술 컬렉터, 근대미술 작가들의 유가족들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대구미술관장으로 임명돼 첫 임기를 마치고 재임용됐다. 대구에 부임하기 전 인상과 실제 대구에 와서 본 대구미술관의 실체는 어떻게 변했나.△올 4월 2년 임기를 마무리하고 2024년까지 임기가 3년 연장됐다. 국립미술관에 오래 있었는데 그 때 지역 미술관들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대구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또 공격적인 미술관 운영을 하고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 장 사오강 같이 중앙에서도 유치하기 힘든 해외교류전을 과감히 벌였고 그렇게 명성도 쌓았다. 미술관 명성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그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느냐’로 결판나는 경우가 많은데 대구미술관은 그 전략을 잘 했다는 생각이다. 대구미술관장으로 부임하고 보니 그런 명성은 좋으나 조직 체계가 매우 느슨했다. 미술관이 가져야 하는 역할과 기능이 미흡했다. 소장품 수집, 연구, 전시 기획, 교육 기획, 홍보 등을 해야 하는데 소장품 수집 팀도 없이 전시 기능만 가진 학예연구실이 있었다. 부임 첫해에 미술관 시스템을 정비했다. 수집연구팀과 전시기획팀, 교육팀의 3팀 체제로 기본 체계를 갖추었고 전시 관련 회의 체계를 만들어 전시 기획을 시스템화했다. 관장으로서 큐레이터들과 전시 기획 회의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지역미술 활성화를 위해 대구미술관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시립미술관으로서 전시 교육 이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미술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구지역 중견 원로 개인전인 ‘다티스트(DArtist)’와 30대 미만의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Y아티스트’ 프로젝트, 이인성을 기리는 ‘이인성 미술상’과 ‘대구포럼’ 등이 그것이다. 특히 대구포럼은 동시대 현대 미술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큐레토리얼 어프로치가 필요한 전시다. 열린 공간에서 현대 미술을 토론하고 주제를 찾고 작가를 찾아내는 국제전시다.-미술관은 올해 10주년 기념전처럼 수시로 시즌 기획전을 열고 있다. 대구미술관 자체 역량으로 기획이 아닌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가 가능한가.△기획전이 없을 경우 소장품 활용 전시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3천점은 확보해야 한다. 취임 초에 소장품이 1천300여 점이었다. 5개년 계획을 세웠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마다 140~150점을 구입하고 200점의 기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와 올해 기증은 원활하게 이루어져 목표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소장품 매입은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다. 예산을 확보해서 목표를 달성해 나갈 생각이다.- 대구의 미술품 기증문화를 칭찬했다. 어떤 작품들을 기증 받았나.△지난해 대구출신 패션 디자이너 고 박동준 분도갤러리 대표 105점, 작가 및 소장가 70점 등 175점을 기증받았고 올해 상반기에도 이건희 컬렉션 21점 등 223점을 기증받았다. 지난해에는 권정호 최학노 서근섭 공성훈 작가 등의 작품을 기증받았고 올해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묵화가 서세옥 화백의 작품 90점과 최만린 조각가의 작품 58점, 한운성 화백의 작품 30점 등을 기증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태동안 기증된 작품만도 400점이 넘는다. 이런 기증문화가 대구에 있음을 확인하니 가슴 벅차다.- 대구 미술계에는 작가들이 클 수 있는 컬렉터 문화가 있다고 했다.△미술관은 미술시장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공적 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저변에서 창작자가 계속 나오고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후원자와 창작자를 매개하는 기획자들이 있는 도시가 대구라는 생각이다. 대구미술관이 잘 성장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되고 미술관과의 활동을 통해 대구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배출된다면 더이상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길을 향해서 묵묵히 가는 사람들이 미술관 사람들이다.-공공미술관의 기능 중 교육과 관련, 어떤 전략을 갖고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나.△비전, 전략, 목표를 큰 틀로 하여 ‘평생 교육을 실현하는 미술관’을 위해 대상별 연령별 주제별 교육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역경 속에 시민의 삶을 회복하는 응원으로 대구미술가를 소개하는 ‘나의 예술세계’, 소장품 이해를 돕는 ‘보물찾기’ 등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뿐 아니라 4인 이내 가족단위로 체험교육을 실시한 ‘전시연계 워크숍’, 송수신기를 이용해 전시 설명 프로그램 ‘도슨트’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온 오프라인 교육을 통해 3만9천900여 명의 참여자가 미술관 교육과 함께했다.-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대구시의 대구미술관에 대한 지원은 만족할 만한가. 대구시민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코멘트 해 달라.△국립현대미술관에서 26년, 경기도미술관에서 4년 있었다. 대구미술관 2년반 동안 경험해 보니 가장 ‘나이스’하더라. 전문가로서의 관장 이야기, 의견들을 존중해 준다. 전문적인 식견 의견 태도를 발휘할 수 없었던 곳과는 달리 대구에서는 미술관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미술관은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스미고 우리 삶의 한 영역으로 작동하는 곳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긴 호흡으로 보고 응원을 부탁한다. ◇최은주 (58)△서울생△서울대 서양학과, 서울대 대학원 석사, 미술교육 박사△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학예연구사)로 출발, 1994년 28살에 전국 최연소 학예연구관으로 승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3번의 학예실장, 2번의 덕수궁관장, 서울관 운영부장 등 26년 근무했다. 2015년 정년을 8년8개월 남겨두고 ‘나를 위해’ 명예퇴직하고 경기도 미술관장에 지원, 임용됐다. 그리고 2019년 대구미술관장으로 왔다.△서양화 전공이지만 책 보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2005년 박사과정에 입학하고도 논문 쓸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14년 만인 정년 후에야 여유를 찾아 ‘R. 타고르의 교육철학과 산티니케탄 미술학교 칼라-바반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이경우 편집위원

2021-10-25

생태계 복원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해야 한다

나무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자신을 지켜낸다. 인간의 역사는 나무와 함께 했다. 나무는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뿌리를 내렸다. 나무는 숲을 이루었고 숲은 인간의 울타리였다. 나무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풀었다. 그런데 인간이 숲을 해치고 나무를 배신했다. 그러자 판도라 상자가 열리듯 대역병이 창궐했다.“4차 산업혁명 시기에 코로나19가 함께 온 것은 문명대전환기의 황금시대를 꿈꾸는 인간에 대한 복수다.”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추구하는 생태사학자 강판권은 생명 가치의 동등성을 주장하며 생태계 복원을 강조한다.가을비가 여름 장마처럼 내리던 날, 계명대 인문국제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시내 초등학교 특강에서 막 도착했다며 가쁜 숨을 골랐다. -특강은 예정대로 진행됐나. 비가 오는데도 야외에서 하는 이유가 뭐냐. 학생들에게 교내의 나무를 세어보라고 과제를 낸 이유도 궁금하다.△ 물론이다. 나무를 관찰하는 것이다. 비가 오면 그런 대로 운치도 있고 나무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무를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관찰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무를 세기 위해서는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학생들에게 나무 관찰 일기를 쓰게 하면 스스로 변하게 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 그래서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관찰자의 창의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나무는 살아 있다는, 그래서 변화한다는 세상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답변이 굉장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다. 동양사학을 전공한 인문학자가 나무 공부를 하고 나무 관련 저술을 내고 강의를 한다니 선뜻 연관이 되지 않는다.△ 나무가 자연과학의 대상이어서 인문학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무는 인문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군자에서 보듯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인문학의 대상으로 삼았다.-스스로를 생태사학자라고 했다. 어떤 학문인가. 또 학생들에게는 어떤 과목으로 강의하며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역사를 생태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생태사학이다. 생태(Eco)는 평등한 ‘관계성’을 뜻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생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 연구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주로 인문이나 사회 생태만 다룰 뿐 자연생태에 해당하는 식물이나 토양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태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명 가치의 동등성을 인식하는 것이 생태의식이다. 그래서 역사를 자연생태까지 포함해서 연구하는 나 스스로를 생태사학자라고 부른다.학생들에게는 전공과목으로 동양사를, 교양과목으로 전통생태문화, 숲과 문화, 나무와 선비문화 등 나무와 관련한 강좌를 강의한다. 특히 나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교양강좌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고 평가받는다.-생태사학자가 보는 나무의 덕목은 무엇인가. 인간이 나무에서 배우는 지혜는 어떤 것들이 있나.△ 나무의 덕목은 아낌없이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무에게는 최대의 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무가 열매나 목재를 주는 것만으로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나무가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이유는 한 순간도 쉼 없이 살아가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삶의 태도 때문이다. 나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도 그렇다.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2년마다 솔잎이 떨어지면서 그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기 때문이다. 나무는 어떤 경우에도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자세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다. 특히 인간에게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는 경(敬) 공부의 대가라 할 만하다. 이런 태도는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실천이라 할 만하다.-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은 나무에게 기대고 살아왔나. 역사적으로 나무와 인간과의 관계는?△ 인간은 직립보행하기 전에 나무위에서 살았다는 것이 인류학자의 견해다. 나무에서 내려온 인간은 결국 손을 사용하면서 생존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인간이 준비한 생존수단은 도구였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이 사용한 도구의 절대다수는 나무였다. 그래서 산업혁명 이전 단계를 ‘목재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청동기, 철기, 의식주 등은 대부분 나무 덕분이었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나무 없이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다.-우리는 나무를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대해줘야 하나.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강조하나.△ 근대 이전까지는 대부분 나무를 인간에 대한 효능 가치로 평가한 본초학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본초학은 식물을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보지 않고 ‘식물인간’이란 말에서처럼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한 점이다. 인간의 식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바로 나무를 생명체로 인식하는 ‘생태의식’이다. 일상에서 늘 만나는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순간 경제적으로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면 나무와 숲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나. 지금 지구 환경의 위기라는 온난화도 숲과 관계 지을 수 있나.△ 직접 관계있다. 인간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이고 이는 곧 숲을 제거한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이 숲을 파괴하고 일군 문명은 매우 화려했지만 그림자도 그만큼 짙었다.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지구온난화는 지구 자체의 변화와 더불어 인간의 행동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결국 유사 이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인간은 숲이 인간 생존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생태사학자로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대전환기는 종전 청동기까지와 비교하면 도구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말 산업혁명은 이전의 대전환기와 차원이 달랐다. 증기기관이 이끈 산업혁명은 단순히 인간의 삶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엄청난 대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1세기만에 전기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산업혁명이, 20세기 중엽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21세기 초에는 IT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불과 250년 만에 일어난 대전환이다.2020년 1월까지만 해도 인간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끈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기술이 경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데 분주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들의 삶도 좋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한 것이다.인간이 만들어낸 4차 산업혁명까지의 긴 과정에서 잉태한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은 결과적으로 코로나19를 탄생시킨 총결산의 원인 중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일어난 문명 대전환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또 다른 대전환 시대를 이끄는 출발점으로 보인다.-코로나19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산물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포스트코로나19의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 처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UN에서 SDG(지속가능발전목표고위급회의)를 개최하고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속속 등장하는 등 방법을 찾고 있지만 세계 모든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 인문학자로서 역할이 있나.△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라면, 지금 이 시대야말로 인문학자들이 나서야 한다.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 코로나19와 연결해서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인문학자가 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축의 시대’ 예수와 공자와 석가가 그러했듯 인문학자들이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총동원해서 축의 시대 선각자처럼 대전환시대에 인류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한다.-코로나19의 대응 방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포스트코로나19 시대에는 무엇보다 방역이 중요하다. 방역은 단순히 백신과 치료제 개발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최근 백신 접종이 코로나19 정복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평가하기도 하지만 접종률이 높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는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신규 환자 발생률이 높다.근본 대책은 원인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숲의 제거는 코로나19 발생원인 중 하나다. 또 숲의 제거는 기후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한국의 지형과 숲은 포스트코로나19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상이다. 숲을 살리는 길이 생태계를 복원하는 길이고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나무인문학자로서 개인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 있나.△ 진행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코로나19의 발생 원인과 포스트코로나19의 대안을 제시하는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는 한국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세계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K방역의 우수성이다. 주곡인 벼 생산에서 공동 노동과 주식인 밥을 함께 먹는 공동체 문화는 성리학과 함께 공동체를 이념적으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코로나19를 맞아 선방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자발적인 마스크 사용과 국가 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등의 한국인의 의식 문화는 코로나19를 평가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런 분석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강판권(60)계명대 사학과 교수, 생태사학자.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 사학과, 계명대 대학원 역사학과 석사, 경북대 사학과 박사.대구생명의숲 공동대표, 대구사학회 이사 등 활동 경력.연속 올해의 저술상(2010년 숲과 문화회,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을 받은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과 베스트셀러 ‘나무철학’(2015)을 비롯 ‘나무열전’(2007) ‘숲과 상상력’(2015) 등 2002년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에서 지난해 ‘위대한 치유자, 나무의 일생’까지 30권의 나무 관련 저서를 냈다.‘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2018) 등 8권의 공저, ‘미국의 중국 근대사 연구’(폴 코헨 저, 2007) 등 7권의 공역서 저술한 동양사학자. 중앙과 지방 방송과 신문 잡지에 특강과 기고 활동도 활발한 전천후 멀티플레이어이자 나무와 인간과의 관계, 나무를 통한 인간의 길 찾기를 모색하는 나무인문학자./이경우 편집위원

2021-10-18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부터 인권·법질서 지키는 것이 변호사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자부심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법률 전문가라는 자존감과 고난도 관문을 통과하고 사회 최상위 계층으로 진입했다는 자긍심으로 뭉쳐진 변호사.한 해 1천명 정도 배출되던 변호사는 로스쿨 도입 이후 1천750명까지 늘어났다.회원 700여 명의 대구지방변호사회는 1948년 설립된 법정단체로 1985년 부산고등법원이 생길 때까지 경상도 전체를 관할하는 역사와 위상을 갖고 있다.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은 “변호사가 월등한 고소득자일 이유는 없지만 약간의 소득적 메리트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면 고비용을 들여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변호사 기피현상이 생기면 국가 전체가 선진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도 전문 법률지식과 지갑을 열어 기꺼이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함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그들은 변호사다.-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범죄자에 대한 변호사 수임과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변호사 임무 사이에 충돌은 없나.△변호사는 범죄자로 의심이 가더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의뢰인을 변호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무리 여론이 나쁘고 중죄인으로 의심 되더라도 정당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다.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다. 국가 권력은 언제든지 폭력으로 변할 수 있고 이 권력으로부터 인권을 지키고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 변호사다. 그래서 인권의 보루이자 최후의 방패라 한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문제점이 생겨나면서 사법시험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과 존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로스쿨 3년 과정이 너무 고비용이어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보완제도가 필요하고 변호사시험 불합격자 누적으로 고시낭인 같은 사회적 병폐를 개선하기 위해서 로스쿨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년 이상 시행해 온 로스쿨 제도를 또다시 전면 수정한다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를 너무 많이 뽑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법은 없나.△로스쿨은 25개 법전원의 정원 2천명에서 매년 1천500명 정도를 변호사로 뽑으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해마다 1천750명 가량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변호사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우리보다 먼저 로스쿨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낮아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은 입학생을 모집할 수 없어 로스쿨 인가를 반납하는 대학이 생겨났고 입학생 숫자가 줄어들어 변호사 시험 합격자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로스쿨 결원 보충제’가 있어 상위권 로스쿨로 재입학해서 생기는 결원을 다음 해 신입생으로 뽑을 수 있도록 보장해 줘 로스쿨이 줄어들지 않고 변호사시험 합격자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판사 임용 자격을 현재의 법조경력 5년 이상에서 내년부터 7년으로 늘였다. 2026년엔 10년으로 늘어난다. 법관 충원에 문제가 없나.△실력도 있고 경력도 쌓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법관을 뽑으려는 것은 법원의 욕심이지만 법조 경력이 쌓인 그런 변호사는 이미 자리가 안정돼 판사직을 지원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경력과 실력을 갖춘 훌륭한 법관을 뽑는 것은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 판사의 업무량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이고 더구나 최근에는 판결에 따른 비난이 일기도 한다. 판사의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판사 수를 무한정 늘일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 판사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판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판결을 존중하는 풍토도 조성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변호사회 가입자만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거나 유사 법조 직역으로부터 변호사 업무 영역 수호를 위한 과잉 대응은 변호사 집단의 기득권 지키기로 보인다.△소송은 전문적인 영역인데 이 업무를 기득권 지키기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변론을 잘못 해서 재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소송은 법률 전문가가 맡아야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 법조 직역에서 간단한 소송을 수임해서 대리하도록 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법무사는 변호사의 숫자가 적었던 제도 시행 초기 법원의 등기 등 일부 업무를 사법서사에 위임했던 데서 출발했다. 또 변호사는 세무사의 자격을 갖고 있으며 일부 변호사는 세무사보다 더 업무에 적합할 수도 있고 소송까지 가는 문제가 생기면 결국 변호사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결코 변호사가 회계사나 변리사 등 다른 직역의 업무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IT 산업의 발전과 함께 법률 시장에도 온라인 법률 플랫폼 로톡이 등장했다. 국민으로서는 법률시장 접근이 쉬워지고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제도라고 보는데 변호사회는 강력 규제로 대응하고 있다. 이 또한 기득권 지키기 아닌가.△로톡은 변호사에 대한 정보 제공을 넘어 고객을 적극 유인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다 소수 유료 회원을 적극 추천 알선하고 있어 합법적 광고의 범위를 벗어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변호사는 법의 지배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법률 전문직으로서 자존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에 봉사해야 한다. 변협은 로톡이 변호사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대구지방변호사회를 비롯한 전국의 변호사회가 변호사 소개 플랫폼에 대해 엄정 대응키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강력 규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오랫동안 나라 여론을 달궜다.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의견은, 또 변호사 업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경찰의 수사권은 강화되었으나 그 통제기능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경찰 내부의 통제기능만으로 우리가 비판해 온 검찰 수사 권력의 폐해가 또다시 재현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지휘권을 무력화시키는 현 제도는 보완되어야 하며 현재 경찰조직을 행정과 수사로 철저히 분리하여 독립기관으로 분리할 필요가 생겼다. 변호사의 업무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적극 변호업무를 수행해야 할 필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우리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임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되도록 하는 법이 언론 보도를 위축시키고 있다.△헌법재판소가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명예훼손적 표현에 대한 처벌조항을 5대 4 의견으로 합헌 판단했다. 온라인 공간의 팽창으로 언론 매체가 다양해지고 전파 속도와 파급 효과가 커진 때문이다.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 명예훼손죄의 특성이다. 그러나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면 처벌을 면하도록 하고 있어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있어 합헌으로 판단했다.위헌이라고 본 재판관들은 진실을 적시할 경우 명예훼손보다는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문제는 사실적시에 대한 입증 책임에 달려 있는데 우리의 현행 법 체계를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행위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 침해만을 처벌하도록 하고 이를 검찰이 입증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형사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많은데 비해 변호사가 범죄인을 변호하고 국선변호인 제도를 두는 등 형사법 운용이 피의자 중심으로 치우친 것 아닌가.△처벌 대상인 범죄인에게 국가 예산을 들여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피의자·피고인의 보호는 범죄인 보호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한 일반 국민의 권익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범죄피해자의 보호에 소홀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범죄피해자 구조제도, 성범죄피해자 국선보조인제도, 피해자 진술권 보장 등을 통하여 범죄피해자의 지위를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이 법 위반으로 자주 여론에 오르고 일반 국민이 법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나라와 법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라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사람들이 관계를 맺어 사회를 형성하는 한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할 수가 없다. 더구나 다양한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현대사회에서 법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필연이기도 하다. 우리는 법을 위반하지 않는 사람을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도 따지고 보면 법의 보호를 받으니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법이 없다면 힘 있는 자의 핍박으로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약자를 위한 법은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법 집행의 공정에 관련된 것이지 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하자면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언론의 자유가 더욱 보장되어야 하고 언론의 책임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기득권자로 인식되고 있다. 사회적 인식에 걸맞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다고 보나.△로스쿨 제도 도입이후 변호사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고 자격 취득을 위하여 투입한 비용에 비하면 소득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가 과연 기득권자인지는 개인적으로 의심해 보기도 한다. 기득권자 논쟁은 아웃사이더에게 진입 장벽을 형성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있었고 그 해결책으로 로스쿨제도가 도입됐다. 하여간 재능보다 태생이 중요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대구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의 공익적 지위에 맞추어 많은 공익적 사업을 하고 있다. ‘국선변호’ 활동이 그것이며 법원과 경찰서 시청 사회복지관 등에서 하는 ‘무료법률상담’이 그것이다. 또 소외계층 연탄나누기, 급식행사,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봉사금 전달과 사회복지시설 기관에 대한 기부금 전달과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해마다 대구의 인권활동가를 선정하여 ‘애산인권상’을 시상하고 있다. 대구지방변호사회가 매달 지급하는 사회봉사금과 기부금이 1천여 만원이고 그 밖에도 회원들은 각자 개인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면서 나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석화(李錫華)대구지방변호사회장(60).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변리사.성광고, 고려대 법법학과 졸. 1997년 사법시험 39회 합격 사법연수원 29기 수료.(재)한빛문화재연구원 대표이사.2012년 헌재로부터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을 받았다.지난해 12월 55대 대구지방변호사회장단 선거에서 98%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성장기와 변호사 경험을 바탕으로 엮은 수필집 ‘얼굴에 먼저 이른 봄빛’을 냈다.6·25 참전 군인으로 다부동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은 ‘청탁불문(淸濁不問)’이지만 아버지의 “남의 술을 마시고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고수./이경우 편집위원

2021-10-11

대학·지역사회가 동반성장하는 ‘청년 희망도시 경산’

인구 27만8천명에 예산 1조1천300억원의 도농복합 기능도시 경산시. 10개의 대학에 12만명의 대학생과 170개의 부설 연구소가 있으니 학원 교육도시라고 한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식산업지구를 비롯한 300만평의 산업단지에 3천300여개의 자동차부품 화장품 바이오테크 관련 기업체가 있는 첨단산업도시라고도 한다. 원효와 설총과 일연이 탄생했고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과 임당동 고분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는 문화유적 도시라고도 한다.최영조 경산시장은 “구태여 도시의 정체성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지리적 여건과 정치적 위상이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니 경산은 모두가 인정하고 찾아오는 살기 좋은 도시면 된다”고 여유를 부린다. 시민들이 풍요 속에 서로 돕는 착한 사회를 목표로 시정을 펼친다는 재정자립도 경북 2위의 부잣집 논리다. - 대구광역시에 떼어준 고산면과 안심면은 대구 수성구 시지지구와 동구 안심 혁신도시를 이뤄 경산과 울타리 없는 이웃이 되었고 경산시는 대구의 위성도시이자 베드타운이 됐다. 대구시 경산구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두 지역의 대구시 편입으로 경산이 가장 좁은 면적의 시(市)이지만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대구와 이웃해 있어 어쩔 수 없는 점도 있지만 장점이 많다. 지하철과 대중교통 환승이 가능하고 사통팔달 교통망에 문화 시설을 공유할 수 있으며 기후나 자연 환경 교육 등 정주 여건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경산시만의 독자적인 자립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이 윤택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이전한 후폭풍도 경산에게 기회가 된 듯하다.△공무원 사회를 보면 그런 영향도 있다. 최근 도내 군 지역에서 7급을 포기하고 경산시청에 9급으로 신규 임용된 공무원도 있고 국가직을 포기하고 지방직으로 오는 공무원도 있다. 심지어 도청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면 예전에는 승진했는데 지금 경산으로 직급을 낮춰 내려오려는 공무원도 있을 정도다.- 청사 입구에서 확성기 시위가 떠들썩하다. 시장을 성토하는 현수막이 청사 앞을 뒤덮었다. 성남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논란으로 전국이 시끄럽다. 경산에도 대규모 택지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는데 특혜 시비는 없나.△ 민자로 조성되는 상방공원 사업을 두고 지주들이 토지 적정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토지 수용 절차에 들어갔고 곧 사업이 시행된다. 경산에서 수많은 택지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일어나고 있지만 대장동 같은 시비나 논란은 없을 것이다.- 최영조 경산시장이 3연임하는 8년여 동안 경산의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어떤 게 있나.△경산시의 속살이 튼실해진 것이다. 취임 당시 경산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공직자들을 추슬러서 공공부문부터 바로 세웠다. 청렴도가 2014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2017년에는 전국 자자체 중 시(市)부문 1위를 차지했다. 시민들의 기부문화도 체계적으로 정착하고 있어 서로 돕는 아름다운 기풍이 시 전역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도내 22위였던 기부문화는 완전 정착해서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 참여자 수나 이웃돕기 성금 등 각종 모금활동에서 인구 대비 전국 1위를 지키고 있다. 일정액 이상을 기부하는 착한가게도 전국 제일을 차지하고 있다. 공직의 안정이 시민 생활의 윤택함으로 이어진 것이라 본다.- 그런 무형의 자산이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 피부로 느끼거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시장의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은 없나. 공약 추진 상황은 어떤가.△민선 7기에 들면서 현안사업과 미래를 위한 사업 등 8개 분야 99개 사업을 분석해보니 올 상반기 현재 30건이 완료됐고 49건이 정상 추진되고 있었다. 이행률 94%였다. 글로벌 코스메틱비즈니스센터 건립이나 대구선 복선 전철화 사업, 동의한방촌 조성사업 등이 완료됐다. 경산정수장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완공됐고 지역경제의 중심인 경산공설시장의 시설이 현대화됐다. 경북권역 재활병원이 건립 개원했다.- 최 시장이 치적으로 자랑하는 경산지식산업지구와 경산4일반산업단지 조성이나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결 사업은 이미 최 시장 취임 이전부터 추진해 왔던 사업들 아닌가.△이들 사업들은 내가 취임하기 이전부터 서류상 추진해왔던 사업들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었는데 내가 들어와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사업들이다. 지금 이들 사업들은 모두 착공해서 완공을 향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사업들이 시장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사업이라고 치부할 수 있나. 정치권과의 협력체제 구축으로 이뤄낸 것 아닌가.△물론이다. 경산시가 국비 확보를 통해 공약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정치권과 협력체제 속에서 가능해진 일이다. 초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전 국회의원이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국비 확보를 위해 장관실을 찾았을 때는 적극 나서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특히 1호선 하양 연장과 지식산업지구 조성은 최 전 장관의 대구경북에 과학기술 연구 사업을 적극 지원 진흥시키겠다는 공약이기도 하다.- 경산의 미래 먹거리 산업 터전이 될 것이라는 지식산업지구와 경산4일반산업단지는 어느 정도 규모이고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하양읍 대학리와 와촌면 소월리 일대 116만평에 2012년부터 내년까지 10년간 사업비 1조95억원을 들여 조성하고 있는 경산지식산업지구는 내륙형 경제자유구역으로 현재 1단계 산업 연구용지 86만평에 148개 업체와 6개 연구기관이 입주해서 가동중이다. 지난해 기공식을 마친 30만평 규모의 2단지도 현재 토지보상률이 94%로 순조롭게 조성되고 있다. 진량읍 신재리와 다문리 일대 73만평에 5천740억원을 들여 조성되는 경산4일반산업단지는 현재 공정률이 85%로 이곳에는 산업시설과 지원시설 주거시설 공공시설 등이 조성중이다.이들 산업지구가 모두 준공되면 경산은 300만평의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 동력 기업들이 선도하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굳혀 갈 수 있게 된다.- 지식산업지구에 아울렛이 들어서는 것을 두고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들어서긴 하나.△지식산업지구 2단계 지역에 신세계사이먼이 1천2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아울렛을 설립키로 했으나 분양가를 두고 특혜 시비가 일어 현재 주춤하고 있다. 최근엔 김부겸 국무총리가 방문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상업지구로 변경하고 조성원가 아닌 시가로 조정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예상한 5만3천평 규모보다 축소되겠지만 2023년 개설은 가능할 것이다.- 경산은 지역내에 대학이 10개나 되고 그래서 교육도시라고도 한다. 12만 대학생과 교직원, 학교 관계자들이 실제로 경산시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경산시와 지역 내 10개 대학의 상생 발전을 위해 총장들과 매년 두 차례 대학발전협의회를 열어 소통하고 필요한 부분은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대학 문화 조성과 대학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지원해주고 대학들은 경산 발전을 위해 각종 정책 제안 및 공동 사업 추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경산시와 대학들이 ‘청년 희망도시 경산’ ‘청년이 미래대’ ‘Open 캠퍼스! Open 경산시!’ ‘상생발전’ 등 다양한 주제로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대학과 지역사회가 동반성장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대학과 경산시 간 상생 협력 사업의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다.△경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화장품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글로벌 코스메틱 비즈니스 센터가 있다. 경산시 유곡동에 228억원을 투입해 설립한 이 센터는 국제 수준의 우수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을 갖췄다. 올 1월부터 가동되면서 경산은 화장품의 연구에서 생산을 거쳐 비즈니스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경산시는 현재 이 센터를 중심으로 2025년까지 4만5천평 규모의 화장품 특화단지를 조성 중이다. 완공되면 생산 5조원에 기업유치 50개사, 일자리 3천500개 달성을 목표로 화장품 산업 인프라를 구축해 글로벌 K-뷰티 융복합 산업의 메카가 될 것이다. 지역 한의대에서 기술과 인력을 공급해 사업이 가능해 진 것이다.또 대구가 국가 로봇산업테스트필드를 유치하자 대구가톨릭대학교는 경산지식산업지구에 산학협력으로 로봇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할 캠퍼스대학을 설립키로 했다.- 경산에 대학이 있고 청년들이 있다. 이들을 위한 사업은 없나.△경산시는 2017년 청년희망도시 경산을 선포하고 여러 가지 청년 지원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 문화거리 조성과 청년문화 활성화를 위한 ‘청년희망 Y-STAR 프로젝트’ 청년들의 상상력을 사업화하는 ‘청년희망 팩토리’, 미디어 크리에이터 양성을 위한 ‘1인 미디어 콘텐츠 산업 육성사업’, 외식업 창업 과정인 ‘경북청년 키친 랩’ 등이 있다. 특히 게임과 웹튠 산업을 집중 지원 육성하고 있다.- 특별히 착한 나눔이라거나 청렴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보궐선거로 시장에 당선됐다. 전임자의 중간 하차로 보궐선거가 치러졌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시민들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 고위 공직자로서 고향을 살려야겠다는 충정에서 선거에 뛰어들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후보였고 덕분에 돈 들이지 않는 선거를 했다. 이 후 깨끗함을 모토로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공직자는 모름지기 공정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어떤 자세로 3연임하고 시정을 이끌어 왔나.△작은 불편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시민들을 참을성 있게 설득해서 시정이 올바르게 펼쳐지는 것은 시장보다는 직원들의 힘이다. 공직자들을 바르게 이끄는 것은 인사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시장이 되고는 바른 소리, 싫은 소리 듣기가 어렵다. 듣기 좋은 말만 하지만 가려서 듣고 판단해야 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인사를 할 수는 없지만 원칙에 따라 깨끗하게 하니 불만이 있더라도 수긍하고 승복하더라. □ 최영조 (66)최영조 경산시장(66) 경산. 대구상고, 영남대 행정학과. 경북대 행정대학원 수료, 경일대 명예행정학박사.23회 행정고시로 경북도에서 공직 시작. 봉화부군수 영주 구미 부시장, 경북도 보건환경산립국장, 공무원교육원장, 경제통상실장, 문화체육국장, 경주엑스포사무처장 등을 거쳐 의회사무처장을 끝으로 공직을 사퇴하고 2012년 경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당선. 본인은 2번만 하겠다고 작정했으나 3선 연임에 성공했다고. 전국기초단체메니페스트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심에 반해 대하소설 ‘대망’을 두 번이나 읽었다는 최 시장은 ‘관청민자안’(官淸民自安. 공직자가 깨끗하면 민생은 저절로 편안해진다)이라는 명심보감 문구를 집무실 벽에 붙여두고 실천하는 바른생활 공직자의 전범(典範)./이경우 편집위원.인터뷰사진/ 심한식기자

2021-10-04

“영웅이라는 찬사보다 전문직 의료인으로 당당하고 싶다”

백의의 천사, 영웅보다 전문 의료인이다.‘나의 간호로 환자가 안녕을 찾는다는 보람에 나이팅게일의 정신, 그 다함없는 희생과 봉사의 길을 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혼돈의 최일선에서 몸과 마음을 사르는 주인공. “영웅이라는 찬사는 아껴 달라. 대신 간호사가 간호 전문직 의료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 달라. 그리고 그에 맞는 사회적 경제적 대우를 해 달라.” 백의의 천사 간호사들은 외친다. 우리가 저출산 고령 사회로 갈수록 다양화 전문화된 그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최석진 대구간호사회장은 “이제 더 이상 영웅 같은 립 서비스는 필요하지 않다. 전문직 의료인으로서 당당하고 싶다”고 말한다. 간호법 제정도 그 실현 중 하나다.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 국민이 피로감에 지쳐있다. 방역과 진료의 최일선 간호사들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영웅이라는 성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는 대구 간호사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고 대구 경북 간호사회가 대구 경북 의사회와 공동으로 서상돈상도 받았다.△코로나 사태는 자원봉사 간호사에게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처방보다는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하고 확보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현장에서 말로만 ‘코로나19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 말고 간호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간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호사들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간호법 제정이 시급하다.- 지금 법이 있지 않은가. 의사의 진료와 치료를 맡고 간호사는 간호를 맡는다는 의료법이.△현재 간호사는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화된 간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전체 진료비의 4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 돌봄 등 다양화 전문화 되고 있는 간호 업무의 체계적 정립이 필요하다. 그런데 70년 전 제정된 의료법은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시대적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90여개 국에서 간호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간호법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진료행위가 가능해져 의료분쟁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의사협회나 다른 보건 의료직에서 간호사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조장되어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반대도 만만치 않다. 국민들에게 직역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인다.△모두 오해다. 지금 국회에 3개의 간호법이 발의돼 있는데 모두 간호사의 진료영역에서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게 돼 독자적 진료행위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현재 의료법 상 ‘지도’를 ‘처방’으로 변경하는 것은 의료진 사이의 정확한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다. 더구나 의료법에 있는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규정이 그대로 있어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한다는 것도 팩트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재조명했지만 간호사의 현실적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TV드라마에서 간호사들이 점심을 먹은 뒤 잡담하는 모습을 봤다. 기가 막히더라. 간호사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혀를 찬다.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어 커피 마실 여유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지역의 한 대학병원이 병상 수를 늘이면서 간호사를 충원하자 220명 중 60명이 이직을 했다. 그런데 새로 충원하는 간호사는 30명에 불과해 힘들게 일한다는 말조차 안쓰러울 지경이다.- 지난 해 대구 11개 간호대학에서 배출한 간호사가 1661명이었다. 전국에서는 2만3978명이 배출됐다. 해마다 2만 명 이상이 배출되는데 부족한 이유는 무엇인가.△교육부 통계를 보면 2019년 간호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은 86.7%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간호사 중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49.6%로 나타났다. 보건소 등 보건직 공무원과 심사평가원, 보험회사, 학교 등으로 간호사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진 탓도 있지만 육아휴직 등으로 쉬고 있는 간호사들이 많아 의료기관 근무자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초임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높다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대구 경북지역 신규 간호사들의 40%가 서울로 간다. 경기 부산 등 타지역으로 상당수 빠져 나가니 대구 경북 지역에 남는 간호사는 25% 정도다.경력 간호사들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병원을 떠나는 것과 달리 신규 간호사들은 업무 부적응을 이유로 병원을 떠나고 있다. 지난 2019년 입사자 2만4350명 중 44.5%인 1만836명이 1년도 안 돼 병원 현장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간호사가 부족하다면 간호조무사를 교육해서 간호사를 충원하는 문제는 어떤가. 또 장롱면허를 재취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지 않나.△현재 간호사는 모두 4년제 간호대학 졸업 후 면허를 얻은 의료인이다. 간호조무사 중 해마다 5천명 정도가 간호대학에 입학해서 만학도로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장롱면허의 유휴간호사를 현장으로 불러내는 문제는 간호협회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단시간근무제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불안과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때문에 재취업을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원도 관리비용 부담으로 단시간근무자 채용을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 간호사 재취업을 위해서는 유연근무제 도입 같은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외국의 경우 신규 간호사가 배치되면 1년에서 적어도 6개월 정도 교육기간을 두고 교육시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교육기간이 채 1달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상급병원에서는 교육전담 간호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병원급 이하에서는 병원 경영상 교육전담 간호사를 두는 것도 부담이다. 또 갓 입사한 신입에게 1년씩이나 봉급을 주면서 교육시킨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얼마나 되며 외국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이 12명의 환자를 보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상 상급 종합병원(대구의 경우 5개 대학병원)이 12~13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으니 그나마 법정 규정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10곳 중 7곳 이상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종합병원이 19명, 병원은 24명 이상으로 많은 환자를 간호사 1명이 담당하고 있다.일본은 7명을, 미국은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5.4명을, 캐나다나 호주는 4명을 담당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12명에서 24명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업무 강도가 2 ~4배 높은 실정이다.- 간호사의 이직률이 높은 것이나 특히 신입 간호사들의 1년 내 이직은 간호사 내부의 업무특성에 따른 전문직의 폐습이라는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아직도 병원 내부적으로는 ‘태움’이라는 관습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간호사는 24시간 환자 곁에서 환자를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판단하는 의료인이다. 갓 입사한 신입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멘토)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한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임무를 맡게 되면 학교에서 배운 이론대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수혈만 하더라도 20개의 복잡한 과정이 수행되어야 한다. 응급환자에게 CPR(심폐소생술)을 할 때 환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주위 의료진들이 모두 정신이 없이 돌아가는 판에 신규 간호사는 할 일을 못 찾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애만 졸이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렇다고 병원에서 이런 신규에게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현실적으로 혼자 15명의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간호사 세계도 달라지지 않나.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태움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인력부족과 인권이라는 복합적 요인에서 출발한다. 근본적으로 도제식 교육이 갖는 수직적이던 간호사의 조직문화가 수평적으로 바뀌면서 표출된 문제가 태움이 아닌가 싶다. 인력 부족과 대우가 달라지면 해결될 것으로 본다.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참을성은 줄어든 MZ세대 간호사들은 발랄하다. 여기에다 2019년 7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뒤로는 ‘요즘 간호사 세계에서 역태움 현상이 나타난다’는 우스개도 나오고 있다. 병원 내부적으로도 상담활동을 강화하는 등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간호사의 업무 특성 상 의사와의 호흡이 중요하고 그만큼 마찰이 생기기도 쉬울 것 같다. 간호법 제정에서도 의사와의 갈등이 일부 표출되는 것처럼 보인다.△환자를 돌봄에 있어 가장 가까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의료인이 바로 간호사와 의사다. 그러나 두 직역 간에는 역할이 분명히 다르고 갈등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또 간호사로서 제일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의사의 오더가 필요한 것들이 실제로 오더가 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수련기간의 의사가 냈던 오더가 문제가 있을 때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최선의 케어를 제공하기 위해 동등한 위치의 의료인으로서 서로 존중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원팀으로 일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들은 없어질 것이다.- 간호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종종 갈등이 불거지는 현상을 봤다.△하루 24시간 중 의사는 5분, 간호사는 23시간 55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간호사는 환자 곁에서 일하고 환자는 병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간호사와 보내게 된다. 그런데도 일부 환자들이 간호사를 막 대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일부 환자들이 “당신들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 그런데 뭐 그렇게 힘든 척 하느냐”는 막말에 충격을 받은 간호사도 있다. 많은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데다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멘토의 역할까지 해야 하니 간호사간의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환자와의 갈등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간호사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환자들도 환자를 돌보며 최선의 길을 찾아 애쓰는 간호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이경우 편집위원 □ 최석진 대구광역시간호사회장 (61)대구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산학협력)대구 정화여고, 경북대 간호학과, 계명대 의료관리학 석사. 경북대 간호학 박사 수료.경북대학교병원 간호사(1983)로 임용된 뒤 수간호사, 팀장(간호과장) 등을 거쳐 간호부장으로 37년간 간호 업무에 투신.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산당시 전국의 간호사 자원봉사자 모집에 앞장서 코로나 확산 방지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TV미스터트롯의 코로나극복 헌신 영웅 10인에 선정됐고 의료인의 봉사정신으로 공동체 위기를 극복한 공로로 서상돈상을 공동 수상한 천생 간호사.

2021-09-27

칠곡을 빚더미서 건져낸 작은 거인 백선기

낙동강 방어선과 다부동 전투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 대구시와 구미시 김천시 등 대도시에 포위된 인구 12만명의 시 승격을 지향하는 도농복합군이다. 지역 토착세력과 도시로 유입된 외부인들이 뒤섞이고 읍면별 성격도 뚜렷해 통일된 정체성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3선으로 재임 10년을 맞은 백선기 군수는 호국의 고을 칠곡을 평화의 도시 칠곡으로 군 외연을 확장시켰다. 지역민의 다양성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하나의 목소리로 순화시켜 계층간 화합을 이끌어 내고 최악의 적자 살림을 채무 제로의 건강체로 바꿔 칠곡을 빚더미서 건져냈다. - 코로나팬데믹이 2년째 전 세계를 휩쓸고 국내에서도 대다수 이렇다 할 축제들이 모두 중단되거나 무기 연기되고 있다. 이 판국에 칠곡은 낙동강 세계평화문화대축전을 개막했다. 어떤 자신에서 큰일을 벌였나.△ 많이 망설였다. 군민들이 그동안 너무 지쳐가고 있어 용기를 불어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참전 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평화의 메시지를 공유하기 위해 현장과 함께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으로도 개최하게 되었다. 호국과 평화를 관광과 접목한 축제를 통해 온택트 시대를 칠곡군이 앞장서 열어가자는 의견을 반영했다.- 칠곡이 호국평화의 도시라고 했다. 축제도 시정도 모두 이런 슬로건아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군민들이 호국과 평화 브랜드에 만족하고 있나.△ 6·25 전쟁 당시 전투에서 이 강토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나아가 칠곡군의 도시 정체성을 알리며 이를 관광산업과 연계시키기 위해 호국과 평화를 브랜드화 했다. 물론 군민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관광을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공약도 했고 호국 평화를 브랜드로 관광사업도 많이 벌인 것으로 안다. 왜관 낙동강철교를 중심으로 한 U자형 관광벨트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진행되고 있나.△ 호국평화의 도시라고 했지만 호국의 다리와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제외하면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할 뚜렷한 인프라가 없었다. 그래서 2013년부터 10년간 1400억원을 투입해 호국의 다리를 중심으로 낙동강변 좌우에 U자형 관광벨트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군청에서 2km 떨어진 낙동강변 칠곡보 옆에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조성하고 인근에 칠곡보 생태공원과 관호산성 둘레길, 향사아트센터, 꿀벌나라 테마공원 등을 조성했다. 호국 평화를 스토리로 한 역사와 안보, 자연과 생태, 문화 예술을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대규모 관광단지다. 내년 완공되면 이 일대 지도가 확 바뀐다.- 2011년 보궐선거로 군수에 입성해 재임 10년이 됐다. 재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때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꼽나.△ 부정적이고 서로 반목하던 각 계층간 민심을 화합시키고 통합시켰다. 지역 내 각종 사회단체의 장들로 군민대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들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렴해서 군정에 반영했다. 그랬더니 시끄럽던 지역 민심이 조용하게 주저앉더라. 내가 복이 많았던 것 같다.- 취임 당시 빚덩이였던 칠곡군 재정을 채무 제로 상태로 바꿔 놓았다. 국가채무가 국가적 현안인데 군 단위에서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취임하고 보니 채무가 715억원이나 되더라. 예산의 21%가 넘었다. 군부 평균이 5.8%였으니 전국 82개 군 중 1위였다. 국가기관 채무뿐 아니라 시중 금융기관의 고금리 부채도 있어 한 해 이자만도 30억원이나 갚아야 했다. 2012년부터 재정건전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채무 청산 작업에 본격 나섰다. 결과 2018년 1월 행안부 청사정비기금 58억원을 청산하면서 드디어 채무제로 상태에 돌입할 수 있었다.-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나 자신 오랜 관료 생활에 젖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에 나서면서 ‘군수로 누릴 부분을 과감히 포기한다’라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먼저 군수 관사를 없앴다. 도청 감사관실에서 단체장의 관사 예산 집행부터 보고 감사했던 기억을 살렸다. 주위에서는 ‘쇼를 한다’거나 ‘기존 관사보다 더 좁고 낡은 집을 구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기도 했지만 솔선함으로써 군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어냈다.- 빚을 갚는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면 다른 곳에 쓸 돈이 줄어들어 군민들 불평이 많았을 것 같다. 특히 목돈이 들어가는 SOC 사업도 못하게 된 것 아닌가.△ 기획재정부와 국토부에 실무 사무관을 직접 찾아가 군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도청에서는 김관용 도지사께서도 진정성을 알고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으로 측면 지원을 해 주셨다. 왜관3산단 진입도로 건설비 488억원을 전액 국비로 지원받아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관호산성, 역사너울길, 꿀벌나라 테마공원, 박귀희 명창 테마공원 등은 모두 100억원이 넘는 사업비가 들었는데 국비와 도비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에피소드 있으면 소개해 달라.△ 재원마련이 절실하지만 그렇다고 군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지도 않았고 꼭 필요한 사업을 없애고 무리하게 빚 청산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지역의 세븐벨리 골프장이 50억원을 체납하고도 운영을 계속하고 있어 과감히 공매처분을 신청했다. 체납액도 컸지만 그 파급효과가 더 클 것이라 판단했다. 그랬더니 몇 차례 유찰되면서 낙찰 가능성이 높아지자 2년 분납 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해서 받아들였다. 과정에 수많은 압력과 방해가 있었지만 직원들의 의지로 관철해냈다. 3선을 못 해도 좋다는 결단으로 실행하긴 했지만 인기만 생각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채무도 갚고 이제 군민을 위해 쓸 재원이 여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군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나. 계획은 있나.△ 지급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힘든 중소 상공인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전체 군민 1인당 10만원을 지급한다면 12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그 지원으로 군민들의 생활이 좋아지거나 코로나 상황이 끝난다면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0만원은 그런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한다고 본다.- 왜관읍내에 미군부대가 있다. 군민과의 마찰은 없나? 군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칠곡군은 전국 어느 자치단체보다 미군 부대와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상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군은 6·25 전쟁 당시 자고산에서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혀 학살당한 미군 희생사 41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17년 한미 우정의 공원을 조성했다. 미군은 캠프 캐럴 담장의 60년 된 녹슨 원형 철조망을 자체 예산을 들여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직선 형태의 신형 철조망으로 교체하고 각종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호국 평화의 도시라고 하면서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기지 설치에는 반대하고 백 군수가 삭발 투쟁까지 했다.△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사드 부지 선정을 위한 자치단체와의 어떠한 검토도, 요청도, 협의도 없는 상태에서 언론을 통해서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적어도 단체장에게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정부에서 사드 관련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반대했다.- 칠곡군의 시 승격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시로 승격되기 위해서는 인구(15만 명 이상)와 구성 가구의 도시적 산업 종사 비율 등 조건이 있는데 칠곡군은 인구증가와 지방자치법 개정이라는 투 트랙으로 시 승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인구절벽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시로 승격되면 500억원 안팎의 지방교부세를 추가로 받을 수 있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재산세 과표기준의 상향이나 국민건강보험료 감면혜택 상실, 농어촌 특별전형 제외 등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인구 증가로 생활하수와 쓰레기 문제 등 환경문제도 뒤따를 것이다.- 칠곡군은 대구광역시와 구미시 김천시 사이에 끼인 도농복합도시다. 지리적인 이점도 크지만 불리한 점도 있을 것 같다.△ 대도시와 인접해 숙박형 관광산업 발전에는 불리한 면이 있으나 체험형 관광은 유리하게 작용한다. 또 대도시 한가운데 위치해 공단 조성과 물류산업 발달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왜관의 소상공인들이 상당수 대구와 구미에서 출퇴근하고 있어 코로나 방역에는 애를 먹기도 한다.먹고 사는 문제는 백화점식 산업이 발달한 칠곡만의 특징이 있다.농업인구가 11%이지만 성주 참외나 청송 사과처럼 특화된 지역브랜드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소지역별로 작목반에 따라 만든 브랜드를 군에서 포장재를 지원해주며 한 개의 브랜드로 통합해 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3번 선거 중 어느 선거가 가장 힘들었나. 또 체급을 올려 도지사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처음 출마했던 보궐선거가 가장 힘들었다. 지역 출신이지만 객지를 떠돌며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출마하니 공무원 세계에서는 알려져도 지역민들은 잘 몰랐다. 나 자신도 지역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도 없었고 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상대 후보가 굴러온 돌이라며 공격하는 통에 힘들었다. 재직 중 출마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럴 일은 없다. 칠곡에 터 잡고 살 것이다. 대구의 아파트도 처분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남은 임기 중 미진했던 부분을 마저 완성하고 싶다. 민생 안정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 백선기(66)칠곡 약목초등 청구중 순심고 방통대 행정학과 경북대 행정대학원 석사칠곡군에서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경북도 총무과장, 청도부군수 등 도청 공무원으로 재직. 전임 장세호 군수의 선거법 위반으로 2011년 10월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내리 3연임에 성공하며 칠곡군 최초로 3선에 이름을 올렸다.6·25 참전국 에티오피아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고 참전용사를 두 차례나 초청했다. 다부동 전투 당시 1사단장이었던 고 백선엽 장군을 해마다 직접 찾아보고 사망 후에는 유족과도 진한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호국의 영웅들과 의리를 지키는 작은 거인.

2021-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