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br/>생태사학자 강판권
나무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자신을 지켜낸다. 인간의 역사는 나무와 함께 했다. 나무는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뿌리를 내렸다. 나무는 숲을 이루었고 숲은 인간의 울타리였다. 나무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풀었다. 그런데 인간이 숲을 해치고 나무를 배신했다. 그러자 판도라 상자가 열리듯 대역병이 창궐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코로나19가 함께 온 것은 문명대전환기의 황금시대를 꿈꾸는 인간에 대한 복수다.”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추구하는 생태사학자 강판권은 생명 가치의 동등성을 주장하며 생태계 복원을 강조한다.
가을비가 여름 장마처럼 내리던 날, 계명대 인문국제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시내 초등학교 특강에서 막 도착했다며 가쁜 숨을 골랐다.
나무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풀었다. 그런데 인간이 숲을 해치고 나무를 배신했다. 그러자 판도라 상자가 열리듯 대역병이 창궐했다
-특강은 예정대로 진행됐나. 비가 오는데도 야외에서 하는 이유가 뭐냐. 학생들에게 교내의 나무를 세어보라고 과제를 낸 이유도 궁금하다.
△ 물론이다. 나무를 관찰하는 것이다. 비가 오면 그런 대로 운치도 있고 나무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무를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관찰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무를 세기 위해서는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학생들에게 나무 관찰 일기를 쓰게 하면 스스로 변하게 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 그래서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관찰자의 창의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나무는 살아 있다는, 그래서 변화한다는 세상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답변이 굉장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다. 동양사학을 전공한 인문학자가 나무 공부를 하고 나무 관련 저술을 내고 강의를 한다니 선뜻 연관이 되지 않는다.
△ 나무가 자연과학의 대상이어서 인문학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무는 인문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군자에서 보듯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인문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스스로를 생태사학자라고 했다. 어떤 학문인가. 또 학생들에게는 어떤 과목으로 강의하며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 역사를 생태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생태사학이다. 생태(Eco)는 평등한 ‘관계성’을 뜻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생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 연구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주로 인문이나 사회 생태만 다룰 뿐 자연생태에 해당하는 식물이나 토양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태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명 가치의 동등성을 인식하는 것이 생태의식이다. 그래서 역사를 자연생태까지 포함해서 연구하는 나 스스로를 생태사학자라고 부른다.
학생들에게는 전공과목으로 동양사를, 교양과목으로 전통생태문화, 숲과 문화, 나무와 선비문화 등 나무와 관련한 강좌를 강의한다. 특히 나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교양강좌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고 평가받는다.
-생태사학자가 보는 나무의 덕목은 무엇인가. 인간이 나무에서 배우는 지혜는 어떤 것들이 있나.
△ 나무의 덕목은 아낌없이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무에게는 최대의 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무가 열매나 목재를 주는 것만으로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나무가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이유는 한 순간도 쉼 없이 살아가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삶의 태도 때문이다. 나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도 그렇다.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2년마다 솔잎이 떨어지면서 그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기 때문이다. 나무는 어떤 경우에도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자세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다. 특히 인간에게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는 경(敬) 공부의 대가라 할 만하다. 이런 태도는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실천이라 할 만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은 나무에게 기대고 살아왔나. 역사적으로 나무와 인간과의 관계는?
△ 인간은 직립보행하기 전에 나무위에서 살았다는 것이 인류학자의 견해다. 나무에서 내려온 인간은 결국 손을 사용하면서 생존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인간이 준비한 생존수단은 도구였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이 사용한 도구의 절대다수는 나무였다. 그래서 산업혁명 이전 단계를 ‘목재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청동기, 철기, 의식주 등은 대부분 나무 덕분이었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나무 없이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는 나무를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대해줘야 하나.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강조하나.
△ 근대 이전까지는 대부분 나무를 인간에 대한 효능 가치로 평가한 본초학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본초학은 식물을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보지 않고 ‘식물인간’이란 말에서처럼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한 점이다. 인간의 식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바로 나무를 생명체로 인식하는 ‘생태의식’이다. 일상에서 늘 만나는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순간 경제적으로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무와 숲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나. 지금 지구 환경의 위기라는 온난화도 숲과 관계 지을 수 있나.
△ 직접 관계있다. 인간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이고 이는 곧 숲을 제거한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이 숲을 파괴하고 일군 문명은 매우 화려했지만 그림자도 그만큼 짙었다.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지구온난화는 지구 자체의 변화와 더불어 인간의 행동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결국 유사 이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인간은 숲이 인간 생존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생태사학자로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대전환기는 종전 청동기까지와 비교하면 도구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말 산업혁명은 이전의 대전환기와 차원이 달랐다. 증기기관이 이끈 산업혁명은 단순히 인간의 삶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엄청난 대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1세기만에 전기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산업혁명이, 20세기 중엽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21세기 초에는 IT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불과 250년 만에 일어난 대전환이다.
2020년 1월까지만 해도 인간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끈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기술이 경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데 분주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들의 삶도 좋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4차 산업혁명까지의 긴 과정에서 잉태한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은 결과적으로 코로나19를 탄생시킨 총결산의 원인 중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일어난 문명 대전환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또 다른 대전환 시대를 이끄는 출발점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산물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포스트코로나19의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
△ 처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UN에서 SDG(지속가능발전목표고위급회의)를 개최하고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속속 등장하는 등 방법을 찾고 있지만 세계 모든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 인문학자로서 역할이 있나.
△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라면, 지금 이 시대야말로 인문학자들이 나서야 한다.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 코로나19와 연결해서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인문학자가 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축의 시대’ 예수와 공자와 석가가 그러했듯 인문학자들이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총동원해서 축의 시대 선각자처럼 대전환시대에 인류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한다.
-코로나19의 대응 방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포스트코로나19 시대에는 무엇보다 방역이 중요하다. 방역은 단순히 백신과 치료제 개발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최근 백신 접종이 코로나19 정복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평가하기도 하지만 접종률이 높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는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신규 환자 발생률이 높다.
근본 대책은 원인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숲의 제거는 코로나19 발생원인 중 하나다. 또 숲의 제거는 기후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한국의 지형과 숲은 포스트코로나19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상이다. 숲을 살리는 길이 생태계를 복원하는 길이고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나무인문학자로서 개인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 있나.
△ 진행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코로나19의 발생 원인과 포스트코로나19의 대안을 제시하는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는 한국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세계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K방역의 우수성이다. 주곡인 벼 생산에서 공동 노동과 주식인 밥을 함께 먹는 공동체 문화는 성리학과 함께 공동체를 이념적으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코로나19를 맞아 선방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자발적인 마스크 사용과 국가 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등의 한국인의 의식 문화는 코로나19를 평가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런 분석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강판권(60)
계명대 사학과 교수, 생태사학자.
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 사학과, 계명대 대학원 역사학과 석사, 경북대 사학과 박사.
대구생명의숲 공동대표, 대구사학회 이사 등 활동 경력.
연속 올해의 저술상(2010년 숲과 문화회,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을 받은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과 베스트셀러 ‘나무철학’(2015)을 비롯 ‘나무열전’(2007) ‘숲과 상상력’(2015) 등 2002년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에서 지난해 ‘위대한 치유자, 나무의 일생’까지 30권의 나무 관련 저서를 냈다.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2018) 등 8권의 공저, ‘미국의 중국 근대사 연구’(폴 코헨 저, 2007) 등 7권의 공역서 저술한 동양사학자. 중앙과 지방 방송과 신문 잡지에 특강과 기고 활동도 활발한 전천후 멀티플레이어이자 나무와 인간과의 관계, 나무를 통한 인간의 길 찾기를 모색하는 나무인문학자.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