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 <br/>이준우 구미전자공고 교장
‘전문적인 직업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산업계의 수요에 직접 연계된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 마이스터고등학교는 취업을 최고 목표로 하는 전문 직업교육 고등학교다.
내년이면 개교 70주년을 맞는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는 2010년 마이스터고교로 전환한 이래 11년 평균 취업률 96%로 전자 교육의 메카로 자리를 굳혔다. 이 학교 출신 선배이자 중견기업 CEO 경력의 이준우 교장은 후배들에게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무엇을 아는 것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동료에게 존중받는 기술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기업가로서의 경험을 “기업은 잘 나갈 때 새로운 먹거리를 찾거나 다른 곳으로 안착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충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직원 수천명에 연매출 3조원 회사 경영하던 CEO서 모교 구미전자공고 교장 맡아
2010년 마이스터고 전환 이래 11년 평균 취업률 96% …전자 교육메카로 자리 굳혀
동료들에 인정 받아라… 솔선수범으로 금전적 약간 손해 본다는 느낌으로 행동해야
-기업 대표에서 고교 교장으로 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팬택 대표로서의 마지막 소임이었던 M&A를 완수하고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퇴사를 며칠 앞둔 때 구미전자공고 총동창회를 비롯한 여러 경로를 통해 모교에 교장을 새로 뽑는데 한 번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망설이다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보람이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모교여서 새로운 의욕으로 지원하게 됐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최근 구미전자공고를 방문해 뉴스의 중심이 됐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3월 구미전자공고를 방문해 ‘전자기기용 인쇄회로기판(PCB)’설계 수업을 참관했다. 이날 이 회장의 방문에서 인재양성에 대단히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학교를 방문한 것도 그런 점을 격려하기 위한 행보였을 것이다. 구미전자공고가 인재 양성의 표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인정받은 것으로 본다. 이 회장에게 학교장으로서 부임 후 시스템반도체반 운영 동 특화교육과 ‘Clean Up School 캠페인’의 지속적 추진을 설명했다. 깨끗한 학교 환경 속에서 학생들의 바른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3정5S’의 생활화를 통한 인성교육 프로젝트를 설명해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학교의 예전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부임하고 학교를 신축하고 정비했다. 학교 교육의 혁신과 함께 시설투자도 추진한 결과다. 2021년 본관을 신축했고 2020년 융합전자관을 신축했다. 지난해에는 풋살장과 안내실을 준공했다. 그밖에 여학생 기숙사 주변 환경 정리사업과 본관 중앙정원을 정비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준우 교장이 학교 경영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가.
△시스템의 정착이다. 학교도 사회 속에서 경쟁하는 일종의 공동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역사상 많은 문명과 국가들이 번성하고 소멸했으며 범위를 좁혀보면 기업, 학교는 물론 많은 단체나 기관들이 경쟁에 쳐져 사라졌다. 영속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나는 취임 초부터 ‘시스템 경영의 정착’을 강조했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떠나기 마련이다. 조직의 수장이 바뀐다고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도출된 원칙이나 운영 시스템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가 마이스터고의 특성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나.
△마이스터고는 취업을 최우선 교육목표로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마이스터교의 목적이다. 마이스터고의 강점이라 할 방과 후 교육을 학교 재량으로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1학년부터 2학년 1학기까지는 영어와 전공을 교육하고, 그 뒤로는 전공심화교육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이를 발전시켜 학생들의 적성과 역량, 학업성취도 등을 주기적으로 평가하여 진로를 지도하는 ‘G-value Up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학생 개개인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맞춤식 진로지도를 통해 행복한 취업을 실현하는 ‘구미전자공고 가치키움 진로지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공기업이나 대기업을 희망하지만 학교로서는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 역량 등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최적의 취업을 성취시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제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
-구미전자공고 자랑을 해 달라.
△무엇보다 높은 취업률과 우수한 취업의 질을 자랑하고 싶다. 물론 예전에도 구미전자공고의 취업률은 높았지만 마이스터고로 전환한 이후 11년 평균 누적 취업률이 96.2%를 기록했다. 직군별로 보면 대기업 44.3%, 공기업 11.5%, 중견 중소기업이 40.4%다. 마이스터고 개교 초기에는 대기업 취업 비중이 60%를 넘었으나 2016년 부임한 이래 학생들의 취업목표를 대기업과 공기업 50%, 중견 강소기업 50%로 설정하고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 전체의 노력으로 2019년 전국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교경영 최우수학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전자고라는 특수성에도 전자분야기관 최초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종합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구미전자공고만의 선도적 교육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구미전자공고는 대기업이나 공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R&DE반을 운영하여 우수한 인재를 중견 중소기업에 취업시키고 있다. 2020년부터는 고교로서는 처음으로 시스템반도체 기업의 테크니션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는 실리콘밸리 출신 전문가와 금오공대 교수가 와서 지도하고 있다. 팹리스 기업에 반도체 인력을 공급하려는 목적인데 이는 기술 발전과 산업수요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물론 반도체의 설계는 박사급 연구원들의 몫이지만 분석과 검증 같은 테크니션은 마이스터고에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국가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대학에서의 시스템반도체 교육 강화에 앞서는 획기적 발상이고 시도다.
-4차산업과 AI가 주도하는 시대에 학교 교육내용이 산업사회 현장에서 쓸모없어지는 사태가 생겨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염려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학교로서의 존재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요즘 많은 일선 학교에서도 학과 개편이라든가 교육 내용에 변화를 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학교 홈페이지의 학교장 인사말에서 ‘미래사회는 IT 및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다. 새로운 시대는 첨단 분야에서 실무능력을 갖춘 기술인재인 뉴 칼라를 요구한다’고 썼다. 다만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명제에 충실한지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SW(쇼프트웨어), 콘텐츠의 무한 변신을 보면서 앞으로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궁금하다.
△솔직히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이 부분은 기술자나 교육자의 영역이 아닌 인류학자나 철학자의 영역인 것 같다.
-교훈과 교육방침 외에 학교경영방침이 ‘Back to the Basic’이라고 붙어 있다.
△학교에 오니 직원 월급 줄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제일 좋더라. 학교는 회사와 달리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면 되니 경영상 리스크는 약하고 학교장의 적극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불변하는 교훈과 달리 교장으로서 경영방침을 도입키로 하고 처음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 정했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존중하면서 더 잘 해보자는 뜻이었다. 그러다가 2년 뒤에 학교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전 구성원의 중지를 모아 ‘Back to the Basic’으로 정하고 세부 항목으로 ‘품성 동심 정진(品性 同心 精進)’으로 정했다. 학생들에게는 바른 품성을, 교직원은 학교 발전을 위해 한마음을 모으며 전 구성원이 힘써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학교 경영에서 교직원이나 학생들과의 마찰은 없었나.
△수천명의 조직원을 두고 연매출 3조원 이상의 회사를 경영해 본 CEO로서 고교를 운영하는데 특별한 점은 없었다. 기업은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당장의 성과 보다는 방향을 정확히 잡고 기다리면서 천천히 목표를 향해 가면 된다. 우리 학교는 취업이라는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팬택은 어떤 회사였나.
△휴대폰 업계에서 세계 10대 기업에 들었던 기술력 있는 기업이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폰 도입 초기에는 2위였다. 팬택은 수많은 세계 최초의 기술을 보유했고 그 기술력에서 세계적 자부심을 가진 회사였다. 전 직원이 일심동체가 돼 미친듯이 일한 때가 좋았다. 삼성이나 애플보다 앞서간 기술도 갖고 있었다. 휴대폰 사업 초기에는 많은 기업이 뛰어들어 모두 돈을 벌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성숙기가 되면서 하나씩 사라지고 일부만 살아남았다. 팬택에 그 순서가 닥쳐왔던 것이다. 너무 잘 나갔던 것 같다.
-팬택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아쉬웠던 대목은 어디인가.
△몇 년 전 내가 취임했을 때 모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하겠다며 학교에 찾아와서 묻더라. 모두가 팬택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M&A를 통해 쏠리드와 인수합병을 완료했다. 회사경영을 이어달리기로 표현하면 나는 주어진 구간을 완주하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긴 것이다. 다만 조금 더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회사가 잘 될 때 휴대폰 기술과 관련된 사업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거나 다른 곳에 안착시키려는 노력을 추진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생일 때, 기업인일 때, 교장일 때, 이준우의 욕심에 차이가 있나.
△욕심이라기보다 추구하는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인일 때는 연구원 출신이어서인지 세계 최초, 또는 대한민국 최초와 같은 제품이나 기술에 집착했던 것 같다. 기술로서는 절대 경쟁사에 뒤지지 말자는 소명 의식이 있었고 실제 성공한 예도 많다. 세계최초 one-board PCB휴대폰, 내장형 카메라폰, Endless metal case 폰, 국내 최초 지상파 DMB폰 등이 그것이다. 교장이 되고나서는 최초보다 표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 타이틀로 ‘마이스터고의 표준’이라고 적어놓았다. 마이스터고로서는 가장 모범적이고 선도적인 모델을 추구하고자 하는 학교 구성원의 의지와 소망을 담은 것이다.
-평소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졸업생들에게 사회에서는 누구보다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직장의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스킬이 요구될 때도 있고, 부하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자칫 관대함으로 흐르기 쉽지만 동료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동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선수범의 리더십과 함께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약간 손해를 본다는 느낌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설명해 준다.
□ 이준우(李俊雨·60)
국립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교장
강원도 홍천. 국립구미전자공업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포항공대 전자공학과 석사, 박사.
현대전자 시스템 IC 연구소 선입연구원, 이동통신단말기본부 선임연구원(PCS단말기 HW연구실장).
팬택앤큐리텔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 상무. 중앙연구소장.
팬택 부사장, 사장. 대표이사. 팬택자산관리 법률상관리인 대표이사.
평소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젊은 청년으로 보아주길 바라는, 자칭 ‘보통 사람’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좀 멋지다’고 평가받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는 남들이 맡기 싫어하는 어려운 일을 솔선해서 맡아 성공시켰다. 보상이 나오면 부하 직원들에게 나눠줘 다면평가에서 늘 1등을 받았다. 시간이 되면 산에 가거나 친구들과 필드에서 운동을 한다. “구미는 가족이 있는 판교보다 여유가 있는 도시다. 선후배와 친구들도 많아서 정이 간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