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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의 위상이 시민의 수준이고 도시의 격이다

등록일 2021-10-25 19:28 게재일 2021-10-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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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세계적 미술가들이 대구에 왔다. 프랑스 국보인 마르크 샤갈의 대표작 ‘La Vie(삶)’를 비롯, 프랑스와 한국의 대표 작가 78명의 작품들이 대구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2011년 5월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산비탈에서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10년 동안 110여 차례의 전시 기획을 통해 지역 미술 활성화에 앞장서 왔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대구시민의 미술에 관한 식견과 관심을 높이 추켜세운다. “서울을 제외하고 이렇게 꾸준히 작가들이 배출되는 도시, 끊임없이 전시가 이어지는 도시, 세계적인 작가들이 등장하는 도시가 많지 않다. 화랑이 60개가 넘고,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컬렉터들이 끊임없이 후원해 주는 곳, 바로 대구다.”

대구미술관의 위상은 미술을 넘어 시민의 수준과 도시의 격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 이렇게 꾸준히 작가들이 배출되는 도시,

끊임없이 전시가 이어지는 도시, 세계적인 작가들이 등장하는 도시가 많지 않다.

화랑이 60개가 넘고,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컬렉터들이 끊임없이 후원해 주는 곳, 바로 대구다.”

대구미술관의 위상은

미술을 넘어 시민의 수준과 도시의 격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 어쩌다 한 번씩 오는 길이지만 그때마다 익숙하지 않다. 도심 명소는 아니더라도 접근성이 아쉽다. 미술관 입구도 심심하다. 서비스 공간은 불편하다.

△주변이 좋아지고 있다. 지금 고쳐가고 있으니 차츰 나아질 것이다. BTL로 지어져 전시 외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맹점이 있고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아트숍 커피숍 등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들어서서 고대미술 중심 전시관이 되고 부속동을 리모델링해서 근대미술관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일대는 암스테르담이나 마드리드의 뮤지엄지구처럼 변신하게 될 것이다.

 

- 대구미술관이 개관 10년을 맞았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모던 라이프’기획전을 열고 있다. 마르크 샤갈, 알렉산더 칼더, 알베르토 자코메티, 호안 미로, 피에르 솔라쥬, 페르낭 레제 같은 프랑스 매그재단의 주요 소장품과 서세옥, 박서보, 이강소, 이우환, 김창열 등 대구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모두 당대의 빛나는 작품들이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해서 10개의 전시를 기획했고 그 중 하반기에 해당하는 전시다. 대구 미술의 뿌리와 현재, 세계 속의 대구 미술을 통해 ‘로컬이 곧 한국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기획이다.

 

- 최근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 홈’을 공개해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다. 미술관이 차 한 잔 마실 수 없었고 휴게 공간도 없었는데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가시는 분들을 보고는 대구의 문화수준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구 시민들의 작품 감상에 대한 욕망에다 삼성과 대구와의 연고를 인식하는 시민들의 관심이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희 컬렉션 21점에 대구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던 근대미술품 중 전시 주제와 맞는 작품들로 특별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들어서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건희 컬렉션을 대구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

△정책입안자가 아니고 미술관장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대구미술관은 시 소속이고 대구시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이 500점이 넘는다. 또 대구시에는 근대 미술을 다룰 수 있는 대구미술계의 인적 자원도 충분하다. 소장품은 기획전이 구성되지 않는다면 소개되기 쉽지 않다. 근대 대구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테마 별로 보여드릴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덕수궁 미술관장 시절(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 소장품이 1천200여 점이었다. 덕수궁 전시관이 생겨 전시가 기획되면서 근대미술품을 모을 수 있었고 지금은 3천점에 이르고 있다. 이런 성장 동력은 덕수궁 미술관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근대 작품을 모으고 연구하는 체계적인 국립근대미술관이 대구 같이 의미 있는 도시에 세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구가 한국 근대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역량도 물적 자원도 갖추고 있으니 미술관이 세워진다면 지역에 흩어져 있는 미술품들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구 근대미술관이 너무 과대 포장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대구 근대미술의 실체에 접근하기보다 말로만 근대 미술의 의미를 과장하고 있다는. 대구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한국근대미술사에서 대구는 경성(서울) 평양과 함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근대에 가장 걸출한 작가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이인성 이쾌대 등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작가들 중에 대구 출신이 많다. 만약 한국에 근대미술관이 설립된다면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덕수궁 관장 시절 전시를 기획할 때마다 대구를 내려와야 했다. 대구는 전쟁 피해가 적어 근대미술품이 남아 있는 도시다.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화가들의 이야기가 있고, 근대미술 컬렉터, 근대미술 작가들의 유가족들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대구미술관장으로 임명돼 첫 임기를 마치고 재임용됐다. 대구에 부임하기 전 인상과 실제 대구에 와서 본 대구미술관의 실체는 어떻게 변했나.

△올 4월 2년 임기를 마무리하고 2024년까지 임기가 3년 연장됐다. 국립미술관에 오래 있었는데 그 때 지역 미술관들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대구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또 공격적인 미술관 운영을 하고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 장 사오강 같이 중앙에서도 유치하기 힘든 해외교류전을 과감히 벌였고 그렇게 명성도 쌓았다. 미술관 명성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그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느냐’로 결판나는 경우가 많은데 대구미술관은 그 전략을 잘 했다는 생각이다. 대구미술관장으로 부임하고 보니 그런 명성은 좋으나 조직 체계가 매우 느슨했다. 미술관이 가져야 하는 역할과 기능이 미흡했다. 소장품 수집, 연구, 전시 기획, 교육 기획, 홍보 등을 해야 하는데 소장품 수집 팀도 없이 전시 기능만 가진 학예연구실이 있었다. 부임 첫해에 미술관 시스템을 정비했다. 수집연구팀과 전시기획팀, 교육팀의 3팀 체제로 기본 체계를 갖추었고 전시 관련 회의 체계를 만들어 전시 기획을 시스템화했다. 관장으로서 큐레이터들과 전시 기획 회의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지역미술 활성화를 위해 대구미술관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시립미술관으로서 전시 교육 이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미술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구지역 중견 원로 개인전인 ‘다티스트(DArtist)’와 30대 미만의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Y아티스트’ 프로젝트, 이인성을 기리는 ‘이인성 미술상’과 ‘대구포럼’ 등이 그것이다. 특히 대구포럼은 동시대 현대 미술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큐레토리얼 어프로치가 필요한 전시다. 열린 공간에서 현대 미술을 토론하고 주제를 찾고 작가를 찾아내는 국제전시다.

 

-미술관은 올해 10주년 기념전처럼 수시로 시즌 기획전을 열고 있다. 대구미술관 자체 역량으로 기획이 아닌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가 가능한가.

△기획전이 없을 경우 소장품 활용 전시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3천점은 확보해야 한다. 취임 초에 소장품이 1천300여 점이었다. 5개년 계획을 세웠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마다 140~150점을 구입하고 200점의 기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와 올해 기증은 원활하게 이루어져 목표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소장품 매입은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다. 예산을 확보해서 목표를 달성해 나갈 생각이다.

 

- 대구의 미술품 기증문화를 칭찬했다. 어떤 작품들을 기증 받았나.

△지난해 대구출신 패션 디자이너 고 박동준 분도갤러리 대표 105점, 작가 및 소장가 70점 등 175점을 기증받았고 올해 상반기에도 이건희 컬렉션 21점 등 223점을 기증받았다. 지난해에는 권정호 최학노 서근섭 공성훈 작가 등의 작품을 기증받았고 올해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묵화가 서세옥 화백의 작품 90점과 최만린 조각가의 작품 58점, 한운성 화백의 작품 30점 등을 기증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태동안 기증된 작품만도 400점이 넘는다. 이런 기증문화가 대구에 있음을 확인하니 가슴 벅차다.

 

- 대구 미술계에는 작가들이 클 수 있는 컬렉터 문화가 있다고 했다.

△미술관은 미술시장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공적 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저변에서 창작자가 계속 나오고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후원자와 창작자를 매개하는 기획자들이 있는 도시가 대구라는 생각이다. 대구미술관이 잘 성장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되고 미술관과의 활동을 통해 대구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배출된다면 더이상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길을 향해서 묵묵히 가는 사람들이 미술관 사람들이다.

 

-공공미술관의 기능 중 교육과 관련, 어떤 전략을 갖고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나.

△비전, 전략, 목표를 큰 틀로 하여 ‘평생 교육을 실현하는 미술관’을 위해 대상별 연령별 주제별 교육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역경 속에 시민의 삶을 회복하는 응원으로 대구미술가를 소개하는 ‘나의 예술세계’, 소장품 이해를 돕는 ‘보물찾기’ 등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뿐 아니라 4인 이내 가족단위로 체험교육을 실시한 ‘전시연계 워크숍’, 송수신기를 이용해 전시 설명 프로그램 ‘도슨트’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온 오프라인 교육을 통해 3만9천900여 명의 참여자가 미술관 교육과 함께했다.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대구시의 대구미술관에 대한 지원은 만족할 만한가. 대구시민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코멘트 해 달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6년, 경기도미술관에서 4년 있었다. 대구미술관 2년반 동안 경험해 보니 가장 ‘나이스’하더라. 전문가로서의 관장 이야기, 의견들을 존중해 준다. 전문적인 식견 의견 태도를 발휘할 수 없었던 곳과는 달리 대구에서는 미술관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은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스미고 우리 삶의 한 영역으로 작동하는 곳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긴 호흡으로 보고 응원을 부탁한다.

◇최은주 (58)

△서울생

△서울대 서양학과, 서울대 대학원 석사, 미술교육 박사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학예연구사)로 출발, 1994년 28살에 전국 최연소 학예연구관으로 승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3번의 학예실장, 2번의 덕수궁관장, 서울관 운영부장 등 26년 근무했다. 2015년 정년을 8년8개월 남겨두고 ‘나를 위해’ 명예퇴직하고 경기도 미술관장에 지원, 임용됐다. 그리고 2019년 대구미술관장으로 왔다.

△서양화 전공이지만 책 보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2005년 박사과정에 입학하고도 논문 쓸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14년 만인 정년 후에야 여유를 찾아 ‘R. 타고르의 교육철학과 산티니케탄 미술학교 칼라-바반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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