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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도시서 가곡이 흐르는 도시로

등록일 2022-01-10 20:57 게재일 2022-01-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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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성악가 김완준

오페라극장이 있는 도시,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도시, 100년 전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한 도시. 유네스코가 음악 창의도시 네트워크로 선정한 도시, 대구다. 도시의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예술 문화의 힘을 앞자리에 놓는다. 더러는 오페라극장이 있느냐로 그 기준을 삼기도 한다.

음악의 힘은 현실에 꿈과 상상력으로 감동을 주고 창의력을 샘솟게 한다.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불리게 만든 주역, 성악가 김완준은 “대구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한류의 중심에 음악이 있다면 그 음악의 정점을 가곡으로 장식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갖고 있다.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 100년을 맞는 올해 대구에서 대한민국 가곡제를 여는 것”도 그런 당위성에서다.

 

오페라 중심 음악도시 대구의 역사는

6·25 기점 지역대학 음악과 신설로

전문적 교육받은 음악인 배출 이어져

90년대엔 오페라단만 20여개나 활동

대구국제오페라의 연이은 성공 비법은

수준 높은 작품·시향 등과의 협연

오페라 하우스 객석·주변 정비 등

지난해 객석점유율 90% 이끌어내

오페라의 대중화·국제화 방안은

외국작품 공연·지역별 이색작품 초청

야외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 시도해야

한류 새바람 일으킬 ‘가곡운동’은

올해 박태준 선생 동무생각 100년 맞아

대한민국가곡제 개최 한류전파 기지로

- 지난 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도 성황리에 끝났다. 두 달 간 이어진 오페라 축제를 매스컴도 극찬했다.

△그렇다. 대구는 한국에서 문화도시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대구는 1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오페라 축제를 열었다. 전국적으로 따져 봐도 이런 오페라 무대를 감당할 수 있는 도시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객석점유율 90%를 기록했는데 확실히 대구시민들의 수준도 높이 올라왔으며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 높다고 평가한다.

작품도 훌륭했고 특히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합창단이 대구오페라하우스와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 주변도 깨끗이 정비됐고 오페라하우스 내부도 객석을 나무의자로 교체해 성악가들의 소리를 맑고 투명하게 들을 수 있게 했더라.

-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선정됐다. 도대체 대구의 음악창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대구는 예전부터 음악의 도시였다. 한국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 선생님도 대구 출신이며 현제명 하대응 김진균과 같이 뛰어난 작곡가들도 대구 출신이었다. 대구는 클래식 전용극장, 오페라 전용극장, 종합예술 극장 등 좋은 무대들이 많이 있으며, 그 극장들을 채우는 공연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에 그 가능성은 끝이 없다고 본다. 현재 많은 대구 지역 출신의 음악가들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대구를 거쳐 전국, 전 세계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 대구가 오페라 중심 음악도시가 된 배경에 지역 대학이 한 몫을 한 것으로 안다.

△일제강점기 서양 음악이 뿌리 내린 곳이 대구이기도 한데 특히 6·25전쟁을 기점으로 대구는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52년 효성여자대학교, 1959년 계명대학교, 1969년 영남대학교의 순으로 음악과가 신설되면서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음악인들이 배출되기 시작했고 음악 인구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경쟁력도 높아졌다. 당시 부산지역 음악교육 지도자들이 서울보다 가까운 대구로 와서 교육을 받았을 정도다. 1980년대까지 대구의 음악교육은 질과 양 양면에서 뚜렷이 성장한 시기였다. 특히 오페라는 199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 내가 유학에서 돌아오니 지역에 영남오페라단 대구오페라단 계명오페라단 등 민간 오페라단이 27개나 됐다.

- 대구오페라 축제가 명실상부 국제적인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한다고 보나.

△국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 오페라 작품을 올리고 외국 관객이 많이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함께 국내에서도 우리 지역뿐 아니라 전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또 논개나 이순신, 녹두장군 등 지역별 특색 있는 작품들을 초청하고 그들을 대구 무대에 올리는 이벤트를 여는 것이 좋겠다. 외지인들이 대구를 찾으면서 대구를 홍보하는 것은 덤이다.

- 오페라와 대구, 음악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오페라는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즐길 수 있나.

△오페라를 구성하는 대본은 소설처럼 그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다. 다만 클래식 음악이라서 어렵다고 느껴진다는 생각들과 외국어로 노래를 불러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편견이라고 본다. 우리가 외국어로 된 영화를 한글 자막을 통해 재미있게 보고 즐기는 것을 생각해봐라. 겨울왕국의 많은 노래들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외국어 가사로 된 노래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선입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선입관을 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본다면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 오페라가 음악인들만의 축제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인들에게는 오페라의 벽이 두껍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페라축제도 음악인들만의 축제라고 불만을 터뜨리곤 한다. 이런 불만을 깨고 오페라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청중들이 거리낌 없이 보는 오페라가 필요하다. 그래서 야외 오페라를 제안한다. 물론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긴 하다. 대구는 지난 2000년 밀레니엄과 2002년 월드컵 대회때 대구 두류공원에서 대규모 야외 오페라 공연을 열었고 각각 6만명의 관중을 동원했던 기록도 있다. 서울 잠실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면 오페라 대중화에 도움이 되겠나.

△오페라를 대중화한다고 싸구려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라면 반대다. 멋진 의상에다 화려한 무대장치로 신비감마저 들게 해서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첫인상을 재미있고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 고교생을 위한 오페라를 만든다며 3억, 4억원 들여 만들어야 하는 오페라를 2천만, 3천만 원 들여 만들어서야 학생들이 감동하겠나. 오페라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 건축 디자인 연극 의상 등이 결집된 종합예술이다. 첫 인상을 좋게 만들지 못하면 접근방식은 실패할 것이 뻔하다.

- 한류가 세계적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국내에서 불고 있는 트롯 열풍도 그 하나같다. 성악가로서 트롯 열풍을 어떻게 보나.

△사실 트롯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국한된 장르로 생각됐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빠르게 유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이에 발맞춰 트롯은 TV무대뿐 아니라 트롯 계통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현재의 유행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가곡이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도 있는데 교육자로서 어린이들이 트롯을 부르는 데는 왠지 비교육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아쉬운 점이 많다.

- 그렇다면 가곡과 트롯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나.

△우리 가곡은 서양음악의 클래식이 넘어와 그 기법으로 작곡된 곡에 우리 가사를 붙인 것이다. 가곡의 시어에는 철학과 감성이 농축되어 있다. 이에 비해 트롯은 서양음악의 블루스 계열 대중가요와 일본의 엔카가 넘어와 만들어진 것이다. 작곡 기법만 다른 것이 아니고 한국가곡은 시인들의 순수 예술작품인 시를 중심으로 가사가 만들어졌다. 물론 트롯도 시가 있지만 주로 사랑과 이별을 중점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직설적인 내용의 가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차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음악교육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장년층이면 중고교에서 학창시절 선구자나 오빠생각, 비목, 보리밭, 그 집 앞, 옛 동산에 올라 같은 가곡들을 배우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음악시간이 없다. 자라는 청소년들의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가곡들은 창의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 감성의 70%가 길러진다고 교육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런 음악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가곡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특히 AI(인공지능)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을 기르기 위해서도 인문학, 특히 음악 교육은 필요하다.

- 박태준 기념사업회 회장도 맡고 있다. 우리가 문화강국으로 발전하는 것과 가곡운동이 관계가 있나.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의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대구는 국제오페라 축제, 뮤지컬 축제, 재즈 축제 같은 음악 축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함께 대구는 음악의 도시답게 가곡의 발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2022년 올해는 한국가곡 100주년을 맞는 해다. 박태준 선생이 동무생각을 발표한 것이 1922년이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가곡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류를 세계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대구에서 대한민국 가곡제를 열려고 한다. 다른 도시에 앞서 이미 가곡제 특허를 얻어놓았다.

-성악가로서 음악 행정력도 대단한 것 같다. 대구시립오페라단이 생기고는 예술감독을, 오페라하우스가 생기고 초대 관장을 맡았다. 수많은 음악 단체 대표를 맡았다.

△우리는 예술단체에 대한 행정기관의 입김이 강한 듯하다. 문화예술이 전시 효과만 노려서는 발전이 없다. 그런 면에서 문화 예술 책임자를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베르린 필의 캬라얀은 35년이나 지휘봉을 잡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나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관장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맡으면서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세우고 또 추진하고 있다. 행정기관에서 관장들을 돌려막기 하듯 해서는 전시효과만 노려서는 문화 예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서울 덕수초등 2학년 때 KBS의 ‘누가 누가 잘하나’에 출연해 1등상을 받았다. 그 뒤 낙향한 부모를 따라 고향 의성에서 초등학교 다니면서 악대부 단장도 했고 초등 교장이었던 아버지 뜻에 따라 대구상고에 입학해서는 악대부 단원으로 활동했다. 부모의 뜻에 반해 계명대 음악대학에 진학하면서 성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소양은 아마 외가 쪽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 여전히 열정이 대단하다. 최근 무대에서는 주로 어떤 노래를 부르나.

△성악가로서 젊은 시절에는 ‘가곡 팝’ 같은 신작 가곡들을 많이 불렀다. 요즘 ‘내 마음의 강물’ ‘옛날은 가고 없어도’ 같은 노래들을 즐겨 부른다. 후배들은 원로성악가로 부르는데 나는 여전히 현역이다.

□ 김완준(73)

의성출신. 대구상고, 계명대 음대·음악대학원과 이탈리아 로시니 국립음악원 졸업,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일본, 폴란드, 독일 등 국내외에서 20여 회 독창회를 갖고 오페라 카르멘 등 50여 편 주역 및 감독한 성악가이자 계명대 성악과 교수로 후학 양성한 교육자.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만든 주역 중 한 명.

대구음악협회장 및 대구예술인총연합회 부회장. 대구시립오페라단 초대 예술감독, 대구 오페라하우스 초대 관장, 계명아트센터 초대 관장, 대구경북성악가협회 회장, 경주문화재단 상임이사 및 경주예술의전당 관장 역임. 현 한국공연예술진흥협회 이사장으로 음악 행정가로서 수완 발휘.

대구시문화상, 대구예술대상, 금복문화상, 자랑스런 대경인상 대상 수상.

계명대 교수 정년퇴임 기념 독창회를 계명아트센터에서 열었고, 70세 기념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독창회를 가졌다. 올 해 대한민국 가곡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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