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환 고령군수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가야산이 버티고 있으며 남쪽으로 경상남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경북도 최남단 고령군. 경북도의 2%(384㎢)밖에 안 되는 좁은 면적, 그나마 75%가 산이다. 1읍 7개면에 군민은 3만600여 명,
일찍이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500년 도읍지였다. 지산동 고분군이 보여주는 순장(殉葬)의 기억은 1500년 전 대가야의 찬란했던 문화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 고령에 재현한 증거가 되고 있는 것인가. 그 꿈은 군민 행복지수 전국 1위라는 자부심으로 군민 어깨에 힘을 실어준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집무실에 ‘더 큰 고령’이라 커다랗게 써 붙여 놓고는 “유럽 한복판 스위스처럼 땅은 좁아도 부유하고 군민들은 행복하다”며 “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문화관광 도시 고령”이라고 자랑한다.
‘민심은 곧 천심’… 군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
철기문화 꽃피운 대가야 500년 도읍지… 가야문화권協과 상생의 마중물 역할
고령옥미·고령딸기·우곡수박·개진감자 등 전국적인 특산물로 인기몰이
- 군수실 TV모니터가 대형이다. 곽 군수의 스마트폰도 최신형이다. 업무하고 연관이 있나.
△TV는 시청용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연결해서 업무 보고를 받는다. 그러니 종이에 프린트하고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진 한 장이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스마트폰으로 TV 화면을 연결하고는) 우곡 도로선형공사 현장 사진이다. 새로 생기는 유휴 공간 활용 방안을 연구해보라 했다. 모든 설명을 사진으로 하니 그야말로 ‘현장에 답’이 있더라. 지난해 12월 군의회 업무보고에서 처음 시도했더니 의원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업무보고와 설명 등은 모두 사진을 찍어 모니터에 올려놓고 함께 보는 것이다. 첨단 기법과 기기를 동원한 업무 보고를 행정 전반에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 고령군의 2010년 취임 당시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특히 달라진 모습은 무엇인가.
△먼저 군민의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삶의 만족도 전국 1위’라는 객관적 지표가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 군에서 자료를 제공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통계청에서 조사하고 확인한 거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군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높아졌다고 자신한다.
전 군민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 체육 복지시설 대가야문화누리 조성을 시작으로 보건소 신축과 다산면 행정복합타운, 아이나라 키즈교육센터, 파크골프장 등 군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인프라를 조성해 삶의 질을 높인 것이 일상의 만족도를 충족시킨 것으로 본다.
- 군수 취임 당시의 목표는 무엇이고 3번 연임한 현재의 군정 추진 방침은 또 무엇인가.
△취임 초기부터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생각으로 군민 한 분 한 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고 항상 ‘군민 행복’을 최우선으로 군정을 운영해왔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군민의 신뢰가 없으면 작은 정책이라도 성공할 수 없고 군민들의 협조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통해 왔다.
- 고령에서 가야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문화와 관련해서 고령군의 정체성을 이야기해 달라.
△대가야는 1500년 전 지금의 영호남지역을 아우르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했던 나라였다. 그 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이 지산동 고분군이다.
고령은 문화관광의 성장축인 대가야 문화벨트를 완성해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기 위한 여러 사업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10여년간 군민들이 노력해 왔던 고령지산동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최종 현장실사를 마치고 올 6월 등재를 앞두고 있다.
군청소재지인 대가야읍은 고령읍에서 2015년 이름을 바꿨다. 그만큼 대가야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그 정통성과 정체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지역민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또 2020년에는 대가야 종묘를 건립했고 대가야 지역의 화합과 소통을 기원하기 위해 대가야 대종과 종각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험 타종까지 진행한 대가야대종은 고령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오는 3월 대가야생활촌 입구에 설치될 예정이다.
가야금 발상지인 대가야의 고도로서 도립국악단을 고령으로 이전하고 고령군립가야금 연주단을 창단했으며 우륵청소년 가야금연주단 창단,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뮤지컬 제작, 각종 문화공연 등을 통해 국악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 가야 문화가 고령군만이 아닌 영호남 지역에 넓게 분포돼 있고 그 중심이 고령으로 알고 있다. 가야문화권 지방자치단체간 협력과 고령군의 역할은.
△2005년 고령군의 제안으로 경남북 10개 시군에서 시작한 가야문화권 협의회는 현재는 5개시도 26개 시군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행정협의회가 되었다. 고령군은 초대 의장군을 맡아 16년간 이끌어 오면서 가야 문화를 통한 영호남간 지역감정 해소, 공존과 상생, 동반적 공동 발전방안 모색, 통합과 상생의 마중물 역할을 주도해 왔다.
현재 고령군은 의장군 직위는 내려놓았지만 가야문화권협의회 회원 자격으로 가야문화권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한 주도적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 고령군은 대구 달성군과 이웃하고 있고 경북도 시절 같은 국회의원 선거구이자 생활권이었다. 지금 달성군은 인구가 늘어나고 급격히 발전하는 도시가 됐다.
△고령군과 달성군은 낙동강 55km를 접하고 있고 일일 유동인구 비율로 봐도 달성군과의 유입 유출 인구가 가장 많은 만큼 공동생활권이라 할 수 있다. 경쟁관계가 아닌 상생을 통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령군과 달성군은 상생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아래 지난해 8월 고령 달성 상생발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낙동강의 대표적 경관자원이자 고령과 달성을 잇는 상징적 의미로서 5월 준공을 목표로 사문진교 야간 경관 조명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양 군간 공동사업과 문화교류 등 협력을 강화해 상생협력을 통한 새로운 지역가치를 창출하는 모범 사례로 만들려 한다.
- 고령군의 전국적 특산물은 어떤 것들이 있나. 자랑을 해 달라.
△고령옥미와 고령딸기, 우곡수박, 개진감자, 성산멜론, 한라봉 등이 고령의 전국적인 특산물이다. 고령옥미는 2009년 경북도 최우수 브랜드로 선정되고 2018년 청와대에 납품하여 옛 진상미를 재현했다.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경북 6대 우수브랜드 쌀로 선정되고 있다.
고령 딸기는 40여년의 재배 역사와 기술을 자랑하며 맛과 향이 뛰어나 전국 대형 농산물유통에 납품되고 있다. 딸기 재배는 이미 전국적으로 보편화 됐지만 고령딸기는 전국 6,7위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곡 수박은 당도가 높고 육질이 아삭하여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성산메론은 무넷트메론 집산지로 파파야 양구 홈런 등 다양한 품종에다 최근에는 신품종 하미과 생산이 늘고 있다. 개진감자는 알이 굵고 색깔이 희며 분이 많아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 고령군은 도농복합도시이지만 농업 인구가 30%나 된다. 농업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해주고 있나.
△지금 농촌에 쌀농사를 짓겠다고 귀농하는 사람은 없다. 고령군은 특작 농가에 파이프와 비닐, 부직포 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최근 아열대작물인 한라봉 재배 농가가 늘고 있고 마늘 재배가 부쩍 늘었다. 낙동강변이 사질토여서 겨울이면 얼었는데 농가에 부직포를 지원해주면서 재배가 2배 이상 늘어났다. 타지역 농민들이 ‘고령군이라면 농사지을만하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지역 농민들에게 직접 혜택을 주고 있다.
- 고령군에서 태어나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군수까지 평생을 고령군에 바쳤다. 그러다 정년 9년을 남겨놓고 사표를 냈는데.
△1977년 고령군에서 공무원으로 출발해 32년 10개월을 근무하고 사퇴했다. 군청 과장과 군내 3개면 면장으로 재직하면서 군민들과 직접 소통했다. 정년을 남겨놓고 사표를 내니 그만큼 군민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보고 당에서 공천을 주었다고 들었다.
- 군민들과의 소통 방법이 다양할 것 같다.
△시간과 장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편지도 직접 쓴다. 내 연하장을 받은 사람들이 차곡 차곡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이름만 직접 썼다. 그러다가 내용까지 직접 썼다. 내용이나 잘 쓰는 글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정성이더라.
- 그런 직접 소통은 군수가 되어서도 이어졌나. 면장 때와 군수 때는 어떻게 달랐나.
△군수가 되니 면장과 다르더라. 면장 때는 민원을 받아도 안 되는 일이 많았다. 예산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수가 되어선 법령으로 안 되는 일을 빼고는 모두 해결하려 노력했다.
보통 때는 민원을 받으면 현장에서 담당에게 확인하지만 술자리 메모는 이튿날 그 자리에서의 분위기에 따라 무슨 내용인지 확인한다. 술자리서 민원을 메모해 두었다가 이튿날 보면 오자도 있고 무슨 암호문 같을 때도 있었다. 민원인을 다른 자리에서 만나면 그를 기억하고 그의 민원까지 기억해주니 믿어주더라. 그만큼 신뢰가 중요하다.
- 골치 아픈 민원은 없었나. 지역민과 갈등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다.
△다산지역에 축산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할 때의 일이다. 이 시설은 전임자가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번복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주민들이 ‘돼지 한 마리 없는 우리 지역에 왜 축산폐수시설이 들어서나’ 하면서 완강히 반대하더라. 그래서 ‘완벽하게 폐수를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켰다. 주민들이 군청에서 집회 한 번 하지 않았다. 민원도 한 번 없었다.
- 축산폐수장은 모두가 기피하는 혐오시설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주위에서도 이곳이 폐수처리시설인지 모를 정도로 만들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 대신 있어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라’. 그러면서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을 동원해 수없는 자문 거쳤다.
축산농가에는 ‘돈 버는 만큼 재투자해라’고 요구해서 돈사마다 원심분리기를 갖추었다. 돈사에서 배출되는 3만ppm이 넘는 축산폐수를 최대한 걸러서 내놓게 만들었다. 축산폐수장의 파이프도 모두 지하로 설치하고 운반차는 씻어서 깨끗하게 운행토록 했다. 그랬더니 냄새도 없고 민원도 없어졌다.
- 평생을 공직자로 고령군을 누볐다. 고령군민 중 한 번도 안 만나본 군민이 있겠나.
△그래도 있을 것이다.
- 머리를 염색할 정도로 세월이 지났지만 3연임을 하고도 여전히 정력적이다. 퇴임 후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12년 전 우연히, 그야말로 준비 없이 군수에 나섰다. 다행히 당선됐고 3선을 했지만 고령의 작은 영토 때문에 소신을 펴기에는 부족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며, 그러나 그는 토를 단다.) 물론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여건이 허락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곽용환(郭龍煥·63)
고령, 고령농고, 대구미래대 행정법률정보과, 가야대 경영학과, 영남대 행정대학원 자치행정학 석사.
1977년 고령군청 9급공무원. 고령군 문화체육과장, 주민자치과장. 고령군 운수 쌍림 다산면장. 2010년 고령군수. 이후 현재까지 3연임.
2017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CEO 대상, 국제관광대상, 2019년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 대상, 한국의 영향력있는 CEO 혁신경영부문 대상 등 다수 수상.
고교 졸업후 군청 공무원으로 고령에서만 공직 44년. 청와대나 중앙부처는커녕 경북도청에도 근무하지 않았다. 처음 군수 선거에 나섰을 때 언론에서는 ‘부군수와 면장의 대결’이라거나 ‘공중전과 보병전’이라는 식으로 그의 출현을 얕잡아 봤다. 그러나 그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3선의 군수가 됐다. 재선 때는 상대가 없어 무투표 당선이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