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br/>백선기 칠곡 군수
낙동강 방어선과 다부동 전투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 대구시와 구미시 김천시 등 대도시에 포위된 인구 12만명의 시 승격을 지향하는 도농복합군이다. 지역 토착세력과 도시로 유입된 외부인들이 뒤섞이고 읍면별 성격도 뚜렷해 통일된 정체성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3선으로 재임 10년을 맞은 백선기 군수는 호국의 고을 칠곡을 평화의 도시 칠곡으로 군 외연을 확장시켰다. 지역민의 다양성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하나의 목소리로 순화시켜 계층간 화합을 이끌어 내고 최악의 적자 살림을 채무 제로의 건강체로 바꿔 칠곡을 빚더미서 건져냈다.
취임해 보니 채무가 예산의 21% 넘는 715억으로 전국 82개 郡 중 1위
군수 관사부터 포기 50억 체납 세븐벨리 골프장 과감한 공매처분 등
2012년부터 재정건전로드맵 마련해 2018년엔 채무제로상태에 돌입
- 코로나팬데믹이 2년째 전 세계를 휩쓸고 국내에서도 대다수 이렇다 할 축제들이 모두 중단되거나 무기 연기되고 있다. 이 판국에 칠곡은 낙동강 세계평화문화대축전을 개막했다. 어떤 자신에서 큰일을 벌였나.
△ 많이 망설였다. 군민들이 그동안 너무 지쳐가고 있어 용기를 불어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참전 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평화의 메시지를 공유하기 위해 현장과 함께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으로도 개최하게 되었다. 호국과 평화를 관광과 접목한 축제를 통해 온택트 시대를 칠곡군이 앞장서 열어가자는 의견을 반영했다.
- 칠곡이 호국평화의 도시라고 했다. 축제도 시정도 모두 이런 슬로건아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군민들이 호국과 평화 브랜드에 만족하고 있나.
△ 6·25 전쟁 당시 전투에서 이 강토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나아가 칠곡군의 도시 정체성을 알리며 이를 관광산업과 연계시키기 위해 호국과 평화를 브랜드화 했다. 물론 군민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 관광을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공약도 했고 호국 평화를 브랜드로 관광사업도 많이 벌인 것으로 안다. 왜관 낙동강철교를 중심으로 한 U자형 관광벨트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진행되고 있나.
△ 호국평화의 도시라고 했지만 호국의 다리와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제외하면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할 뚜렷한 인프라가 없었다. 그래서 2013년부터 10년간 1400억원을 투입해 호국의 다리를 중심으로 낙동강변 좌우에 U자형 관광벨트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군청에서 2km 떨어진 낙동강변 칠곡보 옆에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조성하고 인근에 칠곡보 생태공원과 관호산성 둘레길, 향사아트센터, 꿀벌나라 테마공원 등을 조성했다. 호국 평화를 스토리로 한 역사와 안보, 자연과 생태, 문화 예술을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대규모 관광단지다. 내년 완공되면 이 일대 지도가 확 바뀐다.
- 2011년 보궐선거로 군수에 입성해 재임 10년이 됐다. 재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때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꼽나.
△ 부정적이고 서로 반목하던 각 계층간 민심을 화합시키고 통합시켰다. 지역 내 각종 사회단체의 장들로 군민대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들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렴해서 군정에 반영했다. 그랬더니 시끄럽던 지역 민심이 조용하게 주저앉더라. 내가 복이 많았던 것 같다.
- 취임 당시 빚덩이였던 칠곡군 재정을 채무 제로 상태로 바꿔 놓았다. 국가채무가 국가적 현안인데 군 단위에서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 취임하고 보니 채무가 715억원이나 되더라. 예산의 21%가 넘었다. 군부 평균이 5.8%였으니 전국 82개 군 중 1위였다. 국가기관 채무뿐 아니라 시중 금융기관의 고금리 부채도 있어 한 해 이자만도 30억원이나 갚아야 했다. 2012년부터 재정건전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채무 청산 작업에 본격 나섰다. 결과 2018년 1월 행안부 청사정비기금 58억원을 청산하면서 드디어 채무제로 상태에 돌입할 수 있었다.
-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 나 자신 오랜 관료 생활에 젖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에 나서면서 ‘군수로 누릴 부분을 과감히 포기한다’라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먼저 군수 관사를 없앴다. 도청 감사관실에서 단체장의 관사 예산 집행부터 보고 감사했던 기억을 살렸다. 주위에서는 ‘쇼를 한다’거나 ‘기존 관사보다 더 좁고 낡은 집을 구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기도 했지만 솔선함으로써 군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어냈다.
- 빚을 갚는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면 다른 곳에 쓸 돈이 줄어들어 군민들 불평이 많았을 것 같다. 특히 목돈이 들어가는 SOC 사업도 못하게 된 것 아닌가.
△ 기획재정부와 국토부에 실무 사무관을 직접 찾아가 군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도청에서는 김관용 도지사께서도 진정성을 알고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으로 측면 지원을 해 주셨다. 왜관3산단 진입도로 건설비 488억원을 전액 국비로 지원받아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관호산성, 역사너울길, 꿀벌나라 테마공원, 박귀희 명창 테마공원 등은 모두 100억원이 넘는 사업비가 들었는데 국비와 도비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 그래도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에피소드 있으면 소개해 달라.
△ 재원마련이 절실하지만 그렇다고 군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지도 않았고 꼭 필요한 사업을 없애고 무리하게 빚 청산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지역의 세븐벨리 골프장이 50억원을 체납하고도 운영을 계속하고 있어 과감히 공매처분을 신청했다. 체납액도 컸지만 그 파급효과가 더 클 것이라 판단했다. 그랬더니 몇 차례 유찰되면서 낙찰 가능성이 높아지자 2년 분납 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해서 받아들였다. 과정에 수많은 압력과 방해가 있었지만 직원들의 의지로 관철해냈다. 3선을 못 해도 좋다는 결단으로 실행하긴 했지만 인기만 생각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 채무도 갚고 이제 군민을 위해 쓸 재원이 여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군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나. 계획은 있나.
△ 지급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힘든 중소 상공인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전체 군민 1인당 10만원을 지급한다면 12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그 지원으로 군민들의 생활이 좋아지거나 코로나 상황이 끝난다면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0만원은 그런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한다고 본다.
- 왜관읍내에 미군부대가 있다. 군민과의 마찰은 없나? 군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 칠곡군은 전국 어느 자치단체보다 미군 부대와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상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군은 6·25 전쟁 당시 자고산에서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혀 학살당한 미군 희생사 41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17년 한미 우정의 공원을 조성했다. 미군은 캠프 캐럴 담장의 60년 된 녹슨 원형 철조망을 자체 예산을 들여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직선 형태의 신형 철조망으로 교체하고 각종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호국 평화의 도시라고 하면서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기지 설치에는 반대하고 백 군수가 삭발 투쟁까지 했다.
△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사드 부지 선정을 위한 자치단체와의 어떠한 검토도, 요청도, 협의도 없는 상태에서 언론을 통해서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적어도 단체장에게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정부에서 사드 관련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반대했다.
- 칠곡군의 시 승격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 시로 승격되기 위해서는 인구(15만 명 이상)와 구성 가구의 도시적 산업 종사 비율 등 조건이 있는데 칠곡군은 인구증가와 지방자치법 개정이라는 투 트랙으로 시 승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인구절벽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시로 승격되면 500억원 안팎의 지방교부세를 추가로 받을 수 있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재산세 과표기준의 상향이나 국민건강보험료 감면혜택 상실, 농어촌 특별전형 제외 등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인구 증가로 생활하수와 쓰레기 문제 등 환경문제도 뒤따를 것이다.
- 칠곡군은 대구광역시와 구미시 김천시 사이에 끼인 도농복합도시다. 지리적인 이점도 크지만 불리한 점도 있을 것 같다.
△ 대도시와 인접해 숙박형 관광산업 발전에는 불리한 면이 있으나 체험형 관광은 유리하게 작용한다. 또 대도시 한가운데 위치해 공단 조성과 물류산업 발달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왜관의 소상공인들이 상당수 대구와 구미에서 출퇴근하고 있어 코로나 방역에는 애를 먹기도 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백화점식 산업이 발달한 칠곡만의 특징이 있다.
농업인구가 11%이지만 성주 참외나 청송 사과처럼 특화된 지역브랜드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소지역별로 작목반에 따라 만든 브랜드를 군에서 포장재를 지원해주며 한 개의 브랜드로 통합해 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3번 선거 중 어느 선거가 가장 힘들었나. 또 체급을 올려 도지사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 처음 출마했던 보궐선거가 가장 힘들었다. 지역 출신이지만 객지를 떠돌며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출마하니 공무원 세계에서는 알려져도 지역민들은 잘 몰랐다. 나 자신도 지역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도 없었고 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상대 후보가 굴러온 돌이라며 공격하는 통에 힘들었다. 재직 중 출마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럴 일은 없다. 칠곡에 터 잡고 살 것이다. 대구의 아파트도 처분했다.
-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남은 임기 중 미진했던 부분을 마저 완성하고 싶다. 민생 안정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 백선기(66)
칠곡 약목초등 청구중 순심고 방통대 행정학과 경북대 행정대학원 석사
칠곡군에서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경북도 총무과장, 청도부군수 등 도청 공무원으로 재직. 전임 장세호 군수의 선거법 위반으로 2011년 10월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내리 3연임에 성공하며 칠곡군 최초로 3선에 이름을 올렸다.
6·25 참전국 에티오피아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고 참전용사를 두 차례나 초청했다. 다부동 전투 당시 1사단장이었던 고 백선엽 장군을 해마다 직접 찾아보고 사망 후에는 유족과도 진한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호국의 영웅들과 의리를 지키는 작은 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