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br/>최석진 대구간호사회장
백의의 천사, 영웅보다 전문 의료인이다.
‘나의 간호로 환자가 안녕을 찾는다는 보람에 나이팅게일의 정신, 그 다함없는 희생과 봉사의 길을 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혼돈의 최일선에서 몸과 마음을 사르는 주인공. “영웅이라는 찬사는 아껴 달라. 대신 간호사가 간호 전문직 의료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 달라. 그리고 그에 맞는 사회적 경제적 대우를 해 달라.” 백의의 천사 간호사들은 외친다. 우리가 저출산 고령 사회로 갈수록 다양화 전문화된 그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석진 대구간호사회장은 “이제 더 이상 영웅 같은 립 서비스는 필요하지 않다. 전문직 의료인으로서 당당하고 싶다”고 말한다. 간호법 제정도 그 실현 중 하나다.
“코로나 사태는 자원봉사 간호사에게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처방보다는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하고 확보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간호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간호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간호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이다”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 국민이 피로감에 지쳐있다. 방역과 진료의 최일선 간호사들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영웅이라는 성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는 대구 간호사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고 대구 경북 간호사회가 대구 경북 의사회와 공동으로 서상돈상도 받았다.
△코로나 사태는 자원봉사 간호사에게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처방보다는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하고 확보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현장에서 말로만 ‘코로나19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 말고 간호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간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호사들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간호법 제정이 시급하다.
- 지금 법이 있지 않은가. 의사의 진료와 치료를 맡고 간호사는 간호를 맡는다는 의료법이.
△현재 간호사는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화된 간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전체 진료비의 4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 돌봄 등 다양화 전문화 되고 있는 간호 업무의 체계적 정립이 필요하다. 그런데 70년 전 제정된 의료법은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시대적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90여개 국에서 간호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간호법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진료행위가 가능해져 의료분쟁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의사협회나 다른 보건 의료직에서 간호사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조장되어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반대도 만만치 않다. 국민들에게 직역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인다.
△모두 오해다. 지금 국회에 3개의 간호법이 발의돼 있는데 모두 간호사의 진료영역에서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게 돼 독자적 진료행위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현재 의료법 상 ‘지도’를 ‘처방’으로 변경하는 것은 의료진 사이의 정확한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다. 더구나 의료법에 있는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규정이 그대로 있어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한다는 것도 팩트가 아니다.
- 코로나19 사태가 재조명했지만 간호사의 현실적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TV드라마에서 간호사들이 점심을 먹은 뒤 잡담하는 모습을 봤다. 기가 막히더라. 간호사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혀를 찬다.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어 커피 마실 여유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지역의 한 대학병원이 병상 수를 늘이면서 간호사를 충원하자 220명 중 60명이 이직을 했다. 그런데 새로 충원하는 간호사는 30명에 불과해 힘들게 일한다는 말조차 안쓰러울 지경이다.
- 지난 해 대구 11개 간호대학에서 배출한 간호사가 1661명이었다. 전국에서는 2만3978명이 배출됐다. 해마다 2만 명 이상이 배출되는데 부족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부 통계를 보면 2019년 간호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은 86.7%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간호사 중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49.6%로 나타났다. 보건소 등 보건직 공무원과 심사평가원, 보험회사, 학교 등으로 간호사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진 탓도 있지만 육아휴직 등으로 쉬고 있는 간호사들이 많아 의료기관 근무자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 초임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높다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대구 경북지역 신규 간호사들의 40%가 서울로 간다. 경기 부산 등 타지역으로 상당수 빠져 나가니 대구 경북 지역에 남는 간호사는 25% 정도다.
경력 간호사들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병원을 떠나는 것과 달리 신규 간호사들은 업무 부적응을 이유로 병원을 떠나고 있다. 지난 2019년 입사자 2만4350명 중 44.5%인 1만836명이 1년도 안 돼 병원 현장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 간호사가 부족하다면 간호조무사를 교육해서 간호사를 충원하는 문제는 어떤가. 또 장롱면허를 재취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지 않나.
△현재 간호사는 모두 4년제 간호대학 졸업 후 면허를 얻은 의료인이다. 간호조무사 중 해마다 5천명 정도가 간호대학에 입학해서 만학도로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장롱면허의 유휴간호사를 현장으로 불러내는 문제는 간호협회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단시간근무제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불안과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때문에 재취업을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원도 관리비용 부담으로 단시간근무자 채용을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 간호사 재취업을 위해서는 유연근무제 도입 같은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외국의 경우 신규 간호사가 배치되면 1년에서 적어도 6개월 정도 교육기간을 두고 교육시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교육기간이 채 1달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상급병원에서는 교육전담 간호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병원급 이하에서는 병원 경영상 교육전담 간호사를 두는 것도 부담이다. 또 갓 입사한 신입에게 1년씩이나 봉급을 주면서 교육시킨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얼마나 되며 외국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이 12명의 환자를 보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상 상급 종합병원(대구의 경우 5개 대학병원)이 12~13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으니 그나마 법정 규정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10곳 중 7곳 이상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종합병원이 19명, 병원은 24명 이상으로 많은 환자를 간호사 1명이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7명을, 미국은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5.4명을, 캐나다나 호주는 4명을 담당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12명에서 24명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업무 강도가 2 ~4배 높은 실정이다.
- 간호사의 이직률이 높은 것이나 특히 신입 간호사들의 1년 내 이직은 간호사 내부의 업무특성에 따른 전문직의 폐습이라는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아직도 병원 내부적으로는 ‘태움’이라는 관습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간호사는 24시간 환자 곁에서 환자를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판단하는 의료인이다. 갓 입사한 신입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멘토)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한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임무를 맡게 되면 학교에서 배운 이론대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수혈만 하더라도 20개의 복잡한 과정이 수행되어야 한다. 응급환자에게 CPR(심폐소생술)을 할 때 환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주위 의료진들이 모두 정신이 없이 돌아가는 판에 신규 간호사는 할 일을 못 찾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애만 졸이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렇다고 병원에서 이런 신규에게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현실적으로 혼자 15명의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 간호사 세계도 달라지지 않나.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태움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인력부족과 인권이라는 복합적 요인에서 출발한다. 근본적으로 도제식 교육이 갖는 수직적이던 간호사의 조직문화가 수평적으로 바뀌면서 표출된 문제가 태움이 아닌가 싶다. 인력 부족과 대우가 달라지면 해결될 것으로 본다.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참을성은 줄어든 MZ세대 간호사들은 발랄하다. 여기에다 2019년 7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뒤로는 ‘요즘 간호사 세계에서 역태움 현상이 나타난다’는 우스개도 나오고 있다. 병원 내부적으로도 상담활동을 강화하는 등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 간호사의 업무 특성 상 의사와의 호흡이 중요하고 그만큼 마찰이 생기기도 쉬울 것 같다. 간호법 제정에서도 의사와의 갈등이 일부 표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환자를 돌봄에 있어 가장 가까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의료인이 바로 간호사와 의사다. 그러나 두 직역 간에는 역할이 분명히 다르고 갈등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 간호사로서 제일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의사의 오더가 필요한 것들이 실제로 오더가 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수련기간의 의사가 냈던 오더가 문제가 있을 때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최선의 케어를 제공하기 위해 동등한 위치의 의료인으로서 서로 존중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원팀으로 일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들은 없어질 것이다.
- 간호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종종 갈등이 불거지는 현상을 봤다.
△하루 24시간 중 의사는 5분, 간호사는 23시간 55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간호사는 환자 곁에서 일하고 환자는 병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간호사와 보내게 된다. 그런데도 일부 환자들이 간호사를 막 대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일부 환자들이 “당신들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 그런데 뭐 그렇게 힘든 척 하느냐”는 막말에 충격을 받은 간호사도 있다. 많은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데다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멘토의 역할까지 해야 하니 간호사간의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환자와의 갈등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간호사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환자들도 환자를 돌보며 최선의 길을 찾아 애쓰는 간호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이경우 편집위원
□ 최석진 대구광역시간호사회장 (61)
대구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산학협력)
대구 정화여고, 경북대 간호학과, 계명대 의료관리학 석사. 경북대 간호학 박사 수료.
경북대학교병원 간호사(1983)로 임용된 뒤 수간호사, 팀장(간호과장) 등을 거쳐 간호부장으로 37년간 간호 업무에 투신.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산당시 전국의 간호사 자원봉사자 모집에 앞장서 코로나 확산 방지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TV미스터트롯의 코로나극복 헌신 영웅 10인에 선정됐고 의료인의 봉사정신으로 공동체 위기를 극복한 공로로 서상돈상을 공동 수상한 천생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