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군동 신라인들이 인공으로 조성한 고양수(高暘藪)를 지난 가을 햇덧에 찾아 해껏 돌아다녔다. 고양수 숲은 오늘날 황성공원으로 개명하여 울창한 참솔 수림으로 시민의 문화, 체육,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신라 천 년의 수도 경주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문화 도시다. 도시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유일한 곳이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 닿는 데마다 문화재로 가득 찬 노천 박물관이다. 석굴암,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첨성대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명품 문화재가 많다. 그중에서도 남들이 무어라 하던지 나는 살아 숨 쉬는 황성공원의 옛 이름인 ‘고양수’를 제일의 문화재로 올려놓고 싶다. 진흙 속의 진주처럼 고양수 숲이 품은 노거수는 숨겨진 문화유산의 진수가 아닐까. 신라 경주는 숲의 도시였으리라. ‘삼국유사’에 천경림(天鏡林), 신유림(神遊林), 계림(鷄林), 나정(蘿井) 숲, 고양수(高暘藪) 등 숲 이름이 등장한다. 그중 고양수는 경주 형산강 들판의 넓은 평지에 조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숲을 조성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시민의 울력으로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풀을 베는 작업은 예삿일이 아니다. 오늘날 공원 조성처럼 시민의 건강과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숲을 조성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숲을 성소로 여겼던 만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서낭나무, 당산나무라 하였다. 이처럼 나무와 숲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기에 오늘날까지 유산으로 남아 우리를 품고 있지 않나 싶다.고양수 숲은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노거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주류는 참나무와 소나무로 구성된 참솔 숲이다. 참솔. 그 이름만으로 힐링이 된다. 다람쥐, 청설모가 도토리를 찾고 있다. 소쩍새, 꿩, 뻐꾸기가 숲속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어 살아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잠자리, 나비, 메뚜기, 딱정벌레, 말똥구리,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매미 등 수많은 곤충과 미생물이 함께 작은 생태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생명의 숲이다. 신라인의 생명을 존중하는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는 화랑도 ‘세속오계’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상이 아닌 숲에서 자연 발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숲의 참나무는 다양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참나무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다. 몸매가 날씬한 상수리나무가 어찌 배불뚝이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굴참나무 보굿은 아버지 손등을 연상하게 하여 연민의 정을 느낀다. 숲의 소나무는 즐비하게 들어서서 서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진선미를 겨루고 있다. 진선미를 골라 몸매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렌즈에 담고 가슴에도 담았다. 숲의 느티나무는 괴목(槐木)이라는 이름으로 옛날에는 삼공의 벼슬자리에도 올랐다. 오늘날에는 새천년 밀레니엄 나무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에서 무한한 힘을 느낀다.난분분한 나뭇잎들이 만추의 스산함을 더하고 있다. 숲은 세월이 빚어 놓은 예쁜 잎과 잘 익은 열매를 내려놓고 꽉 찬 공간을 비우고 있다. 비워야 또 채울 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다. 그것이 춥고 삭막한 겨울을 지내기 위한 최선의 방편일 지도 모른다. 또다시 만화방창한 봄이 되면 숲은 새 희망의 꿈을 꽃피우겠지. 그때도 나 또한 이곳을 찾아 환호작약 하리라. 숲속 황톳길을 시민들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고 있다. 천천히 또는 빠르게 황톳길을 걷고 있다. 잔잔한 웃음 띤 얼굴에는 거친 숨소리도 들린다. 나도 따라 걸어본다. 묘한 발바닥 촉감에 신경이 곤두선다. 모든 감각 기능을 총동원하여 숲속을 걷는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비용도 들지 않고, 계절에 구애됨도 없고, 신체에도 무리가 가지 않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숲은 배움의 장이며 심신 수련장이란 생각이 든다.오늘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남으로 건강 문제는 삶의 질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환경이 옛날과 같지 않게 오염돼 건강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많은 질병을 유발하고 있다. 숲과 나무는 우리 몸속의 병원균을 죽이고 정혈작용으로 혈액순환이 잘되게 한다. 오늘날 숲의 사계절 체험은 우리 몸을 치유하는 대체의학으로 아로마 치유, 명상 치유, 자연 치유 등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숲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웰빙의 최적 장소가 아닐까. 숲은 병원이며 명의란 생각이 든다.숲속을 걷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맑은 것이 흐린 것의 근원이 되고, 움직이는 것은 고요한 것의 터전이 된다고 한다. 숲속은 맑고 고요하며 어찌 보면 순간순간 아름다운 꽃과 같다. “영혼이 피로하거든 산으로 가라”고 한 어느 독일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숲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흉허물 없이 대할 수 있다. 초목의 행복은 빛에 있다. 나무와 숲은 빛을 섭취하고 하늘로 무럭무럭 뻗어나간다. 우리의 행복은 사랑에 있다. 사랑에 물들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슬픔과 외로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숲의 요소들은 동물, 식물, 경관이다. 풋풋하고 신선한 신록의 봄 숲,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진 여름 숲, 단풍이 곱게 물던 가을 숲, 고요와 적막이 감도는 겨울 숲, 사계절 내내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을 선물한다. 신라 고양수 자연의 숲이 만신창이로 변해가고 있다. 숲 사이 아스팔트길은 숲을 파편화시키고 미생물을 감옥에 가두었다. 변하는 공원의 동물과 새, 곤충 등 뭍 생명체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떠나거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기장에서 지르는 함성에 장수풍뎅이는 그만 놀라 땅으로 곤두박질을 친다. 운도 지독히 없는지 지나가는 취객의 비틀걸음에 밟혀 소리도 못 지르고 세상을 하직한다.상수리나무는 비닐봉지 쥔 사람의 무차별적인 발길질에 다람쥐와 약속한 마지막 몇 알의 도토리도 못 지키고 그만 손을 놓는다.다람쥐는 공원 숲을 빠져나가는 비닐봉지 속 도토리만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숲의 나무는 동물, 곤충, 미생물의 생활 터전이고 그들의 집이다.황성공원이 아닌 신라 천년의 고양수란 숲이 그립다. 태초에 인간은 숲에서 출현하여 숲에서 살다가 또다시 숲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섭리를 신라인은 이미 깨달은 것일까. 숲과 노거수가 더는 훼손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기를 희망해 본다.‘고양수’라는 이름의 숲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이름이 바뀌면 규모와 성질도 변한다. 숲의 주인 나무를 쫓아내고 그곳에 주민센터를 비롯해 공설운동장, 충혼탑, 동상, 시비, 실내체육관, 시립도서관, 호림정,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장, 씨름장, 레포츠공원, 게이트볼장 등이 들어섰다. 원래의 규모에서 70%가 줄어 30%만 겨우 숲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숲이 붕대를 감고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는 느낌마저 든다. 누구도 치료해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양수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이 정도라도 형상을 유지하며 보존돼 있다는 것도 다행일까./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