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안동 사신리 천연기념물 느티나무
오래됨과 거대함에 놀랐다. 나이가 700살, 키가 30m, 허리둘레 10m 훌쩍 넘었다. 경북 안동 녹전면 사신리 257-6번지에 살고 있는 느티나무 노거수이다. 1982년 11월 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한국의 자연 유산이다. 나이와 외모에 놀라 고개 숙이고 경외감을 표했다. “어떻게 모진 세월의 풍파에도 불구하고 큰 몸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요?” 노거수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래 말을 하지 못하지, 아니 내가 알아듣지 못할지도 모르지.”
가을이면 잎 떨어뜨려 흙으로 되돌리고
삶을 마감해도 인간 곁에서 쓰임 다해
남을 품고 배려하는 聖人과 다름없어
한참을 노거수 주위를 서성이며 쳐다보고 있으니 마을 어른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시더니 말없이 정자에 올라앉으셨다. 그리고 나무와 지는 해를 바라보셨다. 하루의 해가 동쪽 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이제 서쪽 산마루에 올라앉아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모두가 황혼에 물들어 가는데 느티나무 노거수만은 늠름한 모습으로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는 서쪽 하늘의 해는 여름 더위의 열기도 거두어 갈 모양이다. 벌써 한 낮의 온기와 차이가 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어른도 느티나무 노거수도 나도 말이 없다. 침묵으로 더 많은 생각을 마음속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침 조용한 정적을 깨고 푸드덕하는 소리가 나 쳐다보니 매에 쫓긴 참새가 나뭇잎 속으로 숨어들어 용케도 죽음을 면했다. 참새는 느티나무 노거수 품에 안겼다. 느티나무 노거수는 약자의 피난처였다. 품속에서 매미 소리가 들렸다. 느티나무 노거수 품은 참새와 매 등 작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고 쉼터이다. 적으로부터 피난처이고 놀이터이다.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해 주고 삶을 이어가도록 희생을 감내한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흙 속의 영양분과 물을 빨아 먹는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얼굴과 몸을 내밀어 호흡하면서 빛에너지를 섭취한다. 다른 생명체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먹고 다른 생명체들이 호흡하는 신선한 산소를 뿜어낸다. 지구상에 무한히 있는 흙과 물, 공기와 햇볕으로 살아간다.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만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게 스스로 지구상 무한히 많은 자원으로 독립해서 살아간다. 인간처럼 미래를 걱정하면서 창고를 만들어 쓸데없이 많이 쌓아 놓지는 않는다. 가을 되면 가지에 매달린 잎을 떨어뜨려 흙의 영양분으로 되돌려 놓는다. 공기와 물을 깨끗이 정화하여 지구의 청소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욕심이 없고 남을 품고 배려하는 것을 보니 갑자기 노거수가 성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시 ‘노거수’
오랜 세월을 누리며 서 있는 노거수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니?
깊은 뿌리는 지혜의 샘이고
높은 가지는 하늘을 향한 희망의 손짓이다.
잎새에 앉는 햇살은 누군가의 선물이고
그림자는 영혼의 안식처이다.
하늘을 받드는 자연의 위대한 기둥이며
생명의 끊임없는 순환을 상기시켜 주는 존재이다.
너의 존재는 인내와 강인함의 교훈을
너의 침묵은 삶의 깊은 미학을
그리고 너의 이야기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쉬리라.
그런데도 철이 없던 시절, 나뭇가지에 톱질하고 겨울엔 몸속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래도 나무는 참고 인내하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다. 몸뚱이의 속은 시꺼멓게 타고 속살은 없어지더라도 용케 피부를 재생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태풍이라도 만나면 허리가 부러지고 심지어 다시는 재생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를 때도 있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딱따구리는 몸을 쪼아 구멍을 내고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래도 원망하기는커녕 기꺼이 몸을 내어주고 품어주었다. 이런 희생정신에 창조주도 감동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는 하도록 했다. 잎에는 독성물질과 고약한 냄새를 몸에는 가시로 몸을 보호하도록 했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는 죽으면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든지 아니면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나무는 삶을 마감해도 또 다른 삶이 기다린다. 물론 사람과 마찬가지로 후손 나무를 위하여 흙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에는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종이가 되어 역사의 기록을 담고, 집의 튼튼한 기둥과 서까래가 되어 인간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의자가 되고 탁자가 되고 칼잡이도 되어 우리의 생활 도구가 된다. 이밖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인간이 필요한 기계나 도구의 재료로 사용된다. 아름다운 무늬의 장신구가 되고 보석함이 되어 늘 우리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 있다.
생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거실이나 전시실에 걸어두고 늘 감상하면서 그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에 감탄의 미소를 띠고 있다. 음악으로 작곡되어 눈을 감고도 나무의 모습을 다른 누구의 상징물로 대신하여 그리워하며 애달파 하고 있다. 이 모두가 생전의 나무 성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 후손목의 자양분이 된다.
말없이 있던 노거수가 말을 해 왔다. “인간도 나를 보살펴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나를 도와주는 것은 자연이란다. 바람은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를 강하게 만든단다. 어릴 때는 바람에 꺾이지 않기 위하여 부드러움을 간직하지. 그리고 자라면 그동안 면역력이 생겨 버틸 수 있단다. 바람은 기능을 잃어버린 몸의 가지를 제거해 주고 영글지 못하는 열매를 떼어내어 준단다. 나를 괴롭히는 벌레를 나로부터 떨어지게 한단다. 구름과 비는 목마른 나에게 물을 주어 새로운 힘을 돋우어 준단다. 자연이 이렇게 알게 모르게 나를 돕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날씨 탓만 하지 말게나. 이 외에도 말해 줄 것이 많다마는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렴.”
노거수는 생명체라면 가리지 않고 품고 안았다. 제 것을 내어주고 그들의 생명을 이어주었다. 그저 참고 인내하면서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그에 맞는 옷을 갈아입고 살아간다. 자연에 몸을 맡기고 천수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지혜의 책을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이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종합병원이다.
나무 없는 마을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불러 줄래도 앉을 자리가 없고, 바람이 먼 곳에서 찾아와 좋은 소식을 전해 줄래도 멈추어 쉴 자리가 없다. 장수한 노거수는 마을의 역사를 도서관의 역사책처럼 나이테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을 소중한 생명체다. 우리 삶의 여정에 마주치는 노거수는 지혜와 교훈, 위안을 준다. 노거수가 담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를 탐구하는 산림 문학은 우리의 삶의 영혼을 살찌게 하리라 믿는다. /글·사진=장은재 작가